교회 세우심의 원리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이 그 전에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은 불이 내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있는 것을 보고 박석 깐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니라”(대하7:1-3)
이 장면은 솔로몬이 세운 성전이 완공되고 거기에서 하나님 앞에 처음 경배할 때 일어났던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시는 원리가 어떤 것인지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의 아버지인 다윗을 통해서 성전을 지을 준비를 갖추어 놓고 그 물질들을 사용하여서 이제 성전이 지어졌습니다. 금만 약 30조원 어치가 들어 갔다고 하니까 지금같이 금값이 올랐을 때에는 훨씬 더 많은 액수의 돈이 되겠지만 그러니까 그 성전의 화려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성전을 아주 아름답게 만들어 놓았지만 그것은 건물일 뿐입니다. 이제 건물이 세워져 있어도 그 건물의 내용을 가득 채우는 교회 그 보이지 않는 교회 세우심의 원리를 올바로 알지 않는다면 세워진 건물로서의 교회로는 진정한 교회를 표상하기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최소한 네가지의 요소가 원리로 등장하게 되는데 우선 첫째는 솔로몬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라고 했는데 그 앞에 보면 솔로몬의 생애에서도 쉽게 잊을 수 없는 간절하고 절실한 기도가 바로 앞장에 장문으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 기도는 잠깐 드렸던 마음이 없는 기도가 아니라 심정을 쏟아 부어서 하나님 앞에 온전히 토해 내어진 그런 절실하고 간절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 목사님은 이제 새로 가는 교회에서 이 정신을 따라서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기도는 목회자로 하여금 자기의 약함을 알게 만들어 주고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강함에 의지하게 만들어 줍니다. 하늘 아래 있는 모든 교회가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흉악한 죄인들이 모인 교회이고 용서 받은 죄인들이지만 용서의 은혜를 간직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교회는 우리가 생각하는것처럼 고상하고 순결한 곳이 아니라 아주 험한 곳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시골길을 가다가 구멍이 뚤어진 큰 고목나무를 보더니 다가가서 만지면서 애야 너는 목회도 안했는데 구멍이 이렇게 뚤어 졌냐? 참 험한 곳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세상에서 권력을 가지고 집단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에게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목회자에게는 그런 세속의 권세라고는 없습니다. 혹시 그런것들을 교회에서 만들어서 행사를 한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교회가 조그마하건 크건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죄인들이고 용서 받았기는 했지만 바탕 자체가 죄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교회를 섬기노라면 말로 할 수 없는 많은 고생을 하게 됩니다. 그때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 생각해 보십시요. 목회를 하면서 사람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고 눈물을 흘리게 될 때 사람에게서 위로를 구하려면 자기편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목회의 본질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하면 다 미쳤다고 하겠지만 옛날에 어머니들이 딸을 시집 보내면서 애야 참아야 된다, 9년만 참거라,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그렇게 시집을 보냈습니다. 목회자도 똑 같습니다. 때로는 목회를 하면서 많은 사연이 있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내 정당성을 입증하려면 누군가를 깍아 내려야 합니다. 그것은 목회자의 할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길이 쉬운길이 아닙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이 암으로 많이 죽습니다. 조 목사님도 걸어 가는 길이 사모님과 함께 그런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목회자들이 그런 길을 걸어 갔으니까... 하늘 아래에는 인간도 다르지 않고 교회도 다르지 않고 목회자인 우리도 똑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런 길을 걷게 됩니다. 그때 그것을 마음속에서 잘 녹여 낼 수 있는 힘은 그것이 사람이 주는 위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위로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똑같은 오물인데 땅에 묻혔을 때 땅이 그것을 잘 소화해 내면 그것이 거름이 됩니다. 그런데 소화를 못해 내면 땅 속에서 그것이 독이 되어서 식물을 죽이고 나무를 자라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도 똑 같습니다. 목회를 하노라면 수 많은 사연을 가슴에 품게 되고 이것들은 우리 마음에 오물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순결한 옥토가 아니니 또 어떤 오물들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나옵니다. 고난과 많은 어려움을 당할 때 기도하지 않으면 이것들이 우리의 마음안에서, 목회 안에서 독소가 됩니다. 그래서 교인들에게 많이 치이고 목회에서 고통을 많이 받았는데 은혜에서 그것을 녹여 주지 못한 사람들은 사람들이 아주 거칠고 성격이 포악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만 기도할 것이 아니라 이 기도는 목회자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도 너무나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일체의 오래 참음으로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목회자가 강대에 엎드려서 흘린 그 눈물은 교회 바닥에 두루두루 스며 들어서 쓴 뿌리는 그 기도의 물을 먹고 죽고 그리고 하나님이 심으신 그 참된 곡식들은 그 기도의 눈물을 통하여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부임하면 새벽기도에 엎드려서 장시간 동안 기도해야 합니다. 온 마음을 다 쏟아 부어서 그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 해야 하고 주님의 주권을 의지하면서 하나님 앞에 매달리기를 이 교회가 나의 생애에 마지막 교회인 것처럼 생각하고 교회의 크기와 교인들의 수를 보지말고 전심으로 매달려서 그래서 기도의 품에 온 교인과 상처가 된 교인들을 끌어 안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조 목사님의 생애 가운데 더 그렇게 많이 기도한 시간이 없을 정도로 그렇게 온 마음을 쏟아 부어서 부부가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원리는 헌신의 원리입니다. 오늘 보니까 불의 하늘에서부터 내려와 번제물과 제물을 불살랐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곳에서는 태울 제물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헌신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만쟁이들에 의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자신을 바쳐서 헌신하는 목회자와 교인이 번제물과 희생이 될 때 그 위에 하나님이 불을 내리심으로서 교회는 세워지는 것입니다. 교회를 하챦게 알고 말만 많이 하는 사람들 이론은 아주 뛰어나도 헌신이라고는 아무것도 한 적이 없는 사람들, 언제나 논리의 칼로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만 낼 뿐 자신은 교회를 위해 희생하지 않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주님의 영광을 보기를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이 세우신 제물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가 아무리 작아도 조 목사님이 그 교회에 가 보면 모든 교인은 아니어도 그 교회를 목사보다 더 사랑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 교인들의 헌신을 통해서 하나님이 교회를 복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도들도 그렇게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희생하고 온 마음을 다해서 헌신하려고 하는데 목회자는 얼마나 더 헌신해야 할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목회자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하는 일에 있어서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몸을 바쳐서 헌신하는 일에 있어서나 헌금을 하는 일에 있어서나 마음을 쏟아 부어서 일을 하는 일에 있어서나 모든 일에 있어서 교회의 유익을 자신의 유익보다 더 낳게 여기고 거기에 자신을 온전히 쏟아 부어서 헌신하게 될 때 하나님은 말에 불을 내리시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헌신된 사람들의 그 수고에 하나님이 불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 목사님이 교회에 부임하면 이렇게 온전히 헌신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번제물과 제물은 살아서 제물로 바쳐 진 것이 아닙니다. 살아 있을때 까지는 동물일 뿐이지 아직 재물이 되지 못합니다. 제사장이 그 짐승을 잡아서 죽여 목숨이 끊어져서 죽었을 때에 그것도 껍질이 벗겨지고 더러운 내장의 부위가 발라진 후에 그것이 비로소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헌신만 있어서는 안되고 그 헌신속에는 자기 죽음이 깃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가 좋아 하는 일을 자기 마음에 맞는 환경속에서 한다고 할 때에는 행복하고 기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제 목회 사역을 해 보십시요. 절대로 그런 환경만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헌신만 요구하면 될 텐데 하나님은 헌신 보다도 먼저 우리가 죽기를 원하십니다. 살아 있을 때에는 성전 뜰까지 끌려 와도 동물 이었지만 죽임을 당하여 피흘려 쓰러진 후에야 비로소 제물이 되는 것처럼 목회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고 교회가 세워지기까지 목회자는 끊임 없는 죽음을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 목사님은 그 교회에 가서 열렬히 헌신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죽은 가운데에 주님이 홀로 사셔서 자신을 드린 그런 정도의 헌신을 하여야 합니다. 교회 일 가지고 싸우는 사람들 대부분이 헌신이 있는 사람들이지 축도 끝나자 마자 도망가는 사람들이 교회 일로 싸우지 않습니다. 헌신은 있는데 자기가 죽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까지 끌려 왔을 때에는 조용히 끌려 왔고 자기가 하나님 앞에 바쳐진다니까 엄청나게 좋은줄 알고 임직들을 했는데 이제 내가 자신을 주님에게 바치겠다고 하니까 이제 죽어야 겠다고 칼을 들이 댈 때에는 길길이 뛰는 것입니다. 더욱이 완전히 죽지 않고 반쯤 죽어서 번제단에 묶였다가 불길이 타 오르니까 줄을 끊고 내장 쏟으면서 도망가는 꼴이 바로 헌신은 있지만 자기가 죽지 않은 일꾼들의 모습입니다. 제가 사랑의 교회 임직에 가서도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16년 목회를 하면서 깨달은 사실이 그렇게 교인들이 투표를 해서 뽑아 줄 때에 장로나 권사나 안수집사하기 싫어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받는 사람들이 많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순간 자기가 죽어야 할 자리에 오게 될 때 길길이 뛰면서 결국은 제사를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헌신에 있어서 뿐만이 아니라 목사가 저렇게 죽어야 하는 구나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깊이 깨닫고 삶속에서 그 교회 세움의 원리로 입증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목회자만이 아니라 온 성도들이 마음에 새기고 헌신해야 할 일입니다.
세 번째는 영광의 원리입니다. 그렇게 자기를 죽이며 온전히 자신을 제물로 바칠 때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서 하나님이 이 성전과 매우 특별한 관계를 맺고 계시다는 표징을 그 성전에 가득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늘에서는 불이 내리고 그 불로 번제물과 제물이 활활 타오르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자 이윽고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목회의 영광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돌본다고 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목회자가 양떼들을 돌볼 때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돌보지 못 할 때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또 돌볼 수 없을 때에도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 날 때 그때 주님의 교회에 영광이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이 평생 목회를 열심히 하셨는데 감기 한번 안 걸리고 그렇게 교회에서 충성 스럽게 힘차게 목회를 하셨습니다. 그러다 덜컥하고 병으로 누웠습니다. 그러니까 교인들이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병원에 입원해서 두달 동안이나 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목회자가 두달 동안이나 교회를 비우고 병상에 누워 있었으니 매주 올라와서 그렇게 설교를 하고 열렬히 기도회를 인도하고 해도 교회가 어려운데 두달 동안 병원을 입원하고 3개월 가까이 교회를 비웠으니 교회가 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고 오히려 목사님이 병상에 있는 동안에 교회는 은혜로 충만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부목사님들이 설교를 잘 해서가 아니라 목회자가 늘 건강하니까 항상 그런줄 알다가 덜컥하고 쓰러져서 3개월씩 강대를 비우니까 비로소 교인들의 마음이 가난해 졌던 것입니다. 아! 그렇구나 목회자도 하나님이 한번에 불러 갈 수 있구나! 그리고 우리는 정말 매 순간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길 잃은 양과 같은 존재들이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선생님 밑에 있는 학생이 선생님 믿고 공부 안 하듯이 그렇게 나태하게 살다가 어느 한 순간에 그런 일을 당하며 회개하게 된 것입니다. 부목사님들이 올라 와서 설교를 해서 은혜가 되면 은혜가 되어서 회개하고 설교를 죽을 쓰고 내려 가면 우리 목사님 없어서 어떻게 하나 가난한 마음에 교인들이 목 놓아 울고 목사님이 열심히 목회할 때에는 한 마음이 안 되던 재직들이 목사님이 병원에서 입원을 하고 수술을 해서 못 나오니까 재직들이 하나 둘씩 모여서 열렬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그 교회에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거기에 계신 영광입니다. 우리들이 구해야할 것은 이 교회의 영광을 세상의 영광과 비교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조 목사님이 가는 교회는 그린벨트에 있는 작은 가 건물 같은 교회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그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주님은 큰 예배당 그리고 수 많은 인파가 모인 예배당에 영광으로 임재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고정된 마음으로 피를 쏟듯이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는 목회자의 기도가 있고 성도와 어우러져서 주님의 영광이 이 교회에 나타나기만 한다면 나는 아무래도 괜챦습니다 하고 자기 자신을 다 헌신해서 아낌없이 드리는 목회자와 교인들의 헌신이 있을 때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영광은 세속의 영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입니다.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중생과 회심을 그리고 죄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회개를 돌이킬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은혜의 능력을 보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눈을 열어 진리의 기이한 빛을 보도록 만들어 주는 그 하나님의 영혼 변화의 능력이 바로 목회의 영광입니다. 제가 오늘 설교자의 삶을 살도록 부흥을 보고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을 마주 했던 장소도 깊은 숲속에 있는 폐교의 초등학교 분교의 나무로 된 교실 한 쪽에서 전기불도 잘 들어 오지 않는 그 밤에 그렇게 주님을 배웠습니다. 그러니 그 교회의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가득차도록 그렇게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종들이 되기를 바라고 또 교인들은 목사님의 사역이 그렇게 되도록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경배의 원리입니다. 이런 영광이 가득 찼더니 거기에 있는 이스라엘 모든 자손들이 엎드려서 하나님 앞에 경배하며 감사하였습니다. 도대체 누가 교만한 교인을 굴복시킬 수 있으며 교인이 은혜에서 멀어지고 강팍해 질 때 하나님도 손톱의 때 처럼 여기는데 목회자가 무슨 안중에 있겠습니까? 쓰레기 같이 자기 눈에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세상에 있는 것들로 그들을 그렇게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경배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오직 여호와의 충만한 영광이 그들을 압도할 때 그들이 비로소 하나님 앞에 자기가 얼마나 미천한 인간인가 하는 것을 깨달으며 하나님께 경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 마음을 다 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기를 이러한 목회의 영광이 나타나서 아주 빠른 시간 안에 교인들이 말씀과 하나님의 은혜 앞에 엎드려 경배 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게 만들어 주시도록 하나님 앞에 매달려야 합니다. 사람이 모이는 숫자 너무 많이 마음 쓰지 말고 잃어 버린 영혼들의 가치에 눈을 뜨고 전도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든 교인들이 다 잠을 자도 모든 사람을 잠들게 하는 교회는 없습니다. 깨어 있는 사람들을 일깨워 전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주님을 깊이 만날 때 그들이 비로소 하나님을 경배 하는 사람들이 되고 목회자가 누구이고 그를 붙들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성품을 가지신 분이신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뭐라고 노래 했는지 아십니까? 그는 선하시다 인자하시니 영원하도다 라고 노래 했습니다. 우리말로 지금 하자면 사람이 하나님을 노래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조 목사님은 그 교회에 가서 모든 교인들이 꿈꾸고 바라는 교회가 큰 건물을 가지고 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가 아니라 그 양떼들이 얼마나 모였는지간에 그 마음속에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깃들어서 하나님은 참으로 선하시고 우리를 위해 자기 아들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분이시로구나 내가 이 교회에서 하나님을 믿었고 그리스도의 몸에 한 지체가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 이렇게 감격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교인들이 되도록 그렇게 목회를 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이 길을 들어 설 때 큰 부를 누리고 이 세상의 영광을 얻으려고 들어 선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큰 은혜, 십자가의 사랑에 감격하면서 복음에 빛이 없어 어두움에 있는 사람에게 이 복음의 빛을 전해 그들에게도 우리와 같이 하나님을 기뻐하고 사랑하고 순종하며 살게 하려고 우리가 이 길에 들어 서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부임하는 교회에 가서 그렇게...
(찬송) 존귀함과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니 이름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이름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그렇게 온전히 주님을 섬겨서 그 교인들이 모두 주님 앞에 엎드러진 양떼들 주님을 경배하고 그 선하시고 인자하신 성품의 영원하심으로 인해 감격하는 그런 양떼들로 만들어 비록 교회는 작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큰 기쁨을 주는 그 교회가 거기에 있어서 주님의 마음에 큰 기쁨이 있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빌며 우리 모두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