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시리즈 4
헌금이란 무엇인가(고후8:1-5)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라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매일 이 시간에는 오후에는 예배에 관련된 것들을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헌금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여러분 오늘 이 고린도 후서 8장은 우리에게 참으로 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귀한 교훈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충분치 않을 정도로 우리에게 귀한 복음 진리의 일면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두란노에서 나온 어느 만화책을 보면서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을 풍자한 만화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어느 성도가 그림에 보니까 앉아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지 됩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돈을 바칩시다. 할 때 이 성도가 벌떡 일어나면서 웬 돈?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밑에 제목이 붙어있는데 그것은 오늘날 성도들의 사장 민감한 영감대, 성감대가 아니라 영감대. 그러니까 가장 예민한 영감대가 바로 돈이다. 그러나 여러분, 저는 오늘 이 헌금이 우리가 왜 이 헌금을 헌금 통이 마련되어있지만 들어오면서 넣지 않고 예배 시간에 굳이 시간이 걸리는데도 일일이 손으로 헌금 주머니에 손을 넣도록 하는지 이 원리가 왜 바른지를 오늘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고린도 후서 8장 1절부터 5절까지 읽었습니다만 한 번에 설교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이 고린도 후서 8장이 나오기 전에 우리는 어떻게 고린도 교회에 이런 편지가 보내지게 되었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될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바울로부터 전파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고린도가 세워진 도시는 항구도시였고 아주 부요한 지방이었습니다. 항구에서 수많은 물건들이 모여들고 있고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항구 도시에서 부요한 가운데 생활하고 있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고린도 후서를 쓰지 않을 수 없었던 몇 가지 있었습니다. 첫째는 처음에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문제가 많으니까 방문을 하고 또 다시 갔다가 에베소로 다시 갔다가 또 다시 방문을 하고 짧게 두 번 방문을 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 가만히 생각하다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가서 짤막하게 두 번을 심방할 바에야 차라리 한번을 가서 오래 있으면서 이 고린도에 있는 많은 잘못된 문제들을 바로 잡아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때 고린도 교회에서는 강한 바울을 향한 비난이 일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비난은 고린도 교회에 들어온 거짓 선생들이 바울을 반대하며 퍼트린 그런 유언비어였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정말 사도인가? 열두 사도는 예수님이 직접 세웠지만 그러나 바울이 언제 예수를 본 적이 있는가. 봤다고 하지만 그것은 자기 얘기고 누가 그것을 증명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는 참으로 사도 된 것을 자기가 사도되었다고 말할 뿐이지 그 사도된 것을 우리가 믿을 수 있겠는가. 사도직에 변증, 그것뿐만 아니라 또 더 심각한 것은 두 번 온다고 해놓고 왜 다시 취소하고 한번 오겠다고 하는 것을 보니 이것은 신실성이 없다. 이렇게 신실성이 없는 사람이 하는 말을 정말 신빙성이 있겠는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아무튼 그를 비난했고 마지막에는 추측하건대 어떤 문제까지 벌어졌는가 하면 예루살렘이 큰 흉년이 들어서 백성들이 굶주리게 되었을 때 그때 이방에 있는 많은 교회들이 합력해서 연보를 모아서 예루살렘을 도왔는데 그것을 사도 바울이 챙긴 것 같다. 그런 소문을 낸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사도가 8장에서 헌금에 대해서 자기가 정말 깨끗한 사람이라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고린도에서 거짓 선생들이 재정적으로 의혹이 있다고 사도 바울에게 뒤집어씌운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고린도 후서 8장에서 지금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마게도냐 교회에게 주신 은혜룰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조금 아까도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이 마게도냐 교회는 얼마나 행복한 교회일까? 사도가 세운 교회가 한 둘입니까? 사도가 다녀서 전도한 곳이 한 두 곳입니까? 수많은 교회를 세우고 수많은 교회를 전도했는데 고린도 교회를 바로잡기 위해서 너희들이 아무데를 본받아라 말할 때 사도의 마음에 첫 번째 떠올랐던 교회는 마게도냐 교회였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마게도냐 교회, 그러면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 가슴이 찡하도록 가슴에 밀려오는 커다란 감동이 있는데 그 감동이 무엇인가 하면 수많은 교회들이 있는데 이 마게도냐 교회가 넘치는 헌금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연보가 거액의 연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니까 이 마게도냐 교회가 어떤 정도로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렸는가 하면 이 마게도냐 교회는 그 고린도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그렇게 하나님 앞에 많이 헌신할 수 있었던 좋은 특징들을 마게도냐 교회는 하나도 가지고 있지를 못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부요한 교회였고 고린도 교회는 평안한 교회였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항구에 인접해있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이름 있는 사람들도 아마 고린도가 훨씬 많았을 것입니다. 또 마게도냐 교회는 그런 이야기가 없지만 고린도 교회에는 아무튼 성령을 많이 받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은사를 많이 받고 방언을 받고 능력을 받고 신유의 역사가 일어나고 많은 역사가 나옵니다. 그런데 마게도냐 교회는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마게도냐 교회는 어떤 교회였는가 하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는 환난이 닥쳐왔는데 한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환난이 하나 둘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환난이 그 교회에 불어 닥쳤습니다. 특별히 이 마게도냐가 바로 오늘날 그리스도 지방입니다. 그러니까 로마가 제국을 한손에 넣기 전에 그 이전의 지배가 바로 여기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로마의 특별한 압박을 받았음에 틀림없습니다. 특별한 압박을 받으면서 더군다나 여기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제국 중에서도 심한 수탈이 행해지던 곳이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정치적인 핍박과 경제적인 수탈과 종교적인 핍박이 함께 가해지던 그런 불미한 지방이었습니다. 이곳에서 환난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이 교회가 그 환난 가운데서 많은 시련을 당했습니다. 시련이 한 번의 시련이 아니라 파도와 같이 수없는 시련이, 그래서 사도 바울조차도 그 마게도냐에서 계속 살았던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도 바울이 마게도냐를 기억하면 환난과 시련이 한없이 많이 받은 교회, 그 교회가 마게도냐 지방의 교회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교회였습니다.
많은 환난과 그리고 시험이 그들에게 다가왔습니다. 정치적인 압박이 오는가 하면 경제적인 수탈의 시련이 오고 그러는가 하면 종교적인 핍박이 그들 가운데 불어 닥쳤습니다. 하나가 끝나면 또 하나가 오고 작은 시험을 넘고 나면 더 큰 시련이 그 교회를 압박했습니다. 마치 받아들인 그 복음의 불꽃을 시련과 환난으로 꺼버릴 것처럼 안팎에 있는 악한 원수들이 갓 태어난 교회에 시련의 바람과 환난의 폭풍을 끊임없이 보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살아있는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참된 믿음을 소유하고 있던 이 순수한 마게도냐 교회는 환난이 와서 무엇을 뛰어넘고 시련이 와서 무엇을 뛰어넘고 가더라도 시련이 뿌린 것이 기름이 되고 환난이 뿌린 것이 기름이 되어서 오히려 이 마게도냐 교회의 신앙을 더 불꽃과 같이 타오르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 마게도냐 교회는 환난의 수많은 시련이 이 교회에 불어 닥쳤던 것입니다. 그 환난과 수많은 시련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마게도냐 교회는 사도에게 있어서 고린도 교회를 일깨우는 본보기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러니 환난이 이 신앙생활에서 많으면 물론 그 신앙이 잠시는 곤고하고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시련이 한번이지 소나기와 같은 시련이 한번 와보십시오. 그런 시련 당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이리 피하려고 하면 시련의 불덩어리, 저리 피하려도 시련의 불덩어리, 뒤로 돌아가려해도 시련의 폭풍우가 몰아칠 때 그때 우리는 믿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그런 환난과 많은 시련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고 그분의 은혜를 붙들고 살아남은 교회는 오히려 그 환난과 시련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다가가고 그리고 주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더 놀랍게 시련 가운데 드러내보여 주었습니다. 여러분, 그런 것 잘 보신 적이 없을 것입니다. 불꽃이 타오르면 불이 장작불 같은 것을 조그맣게 탈 때는 아무리 잘 타는 나무라도 큼직한 거 하나 갖다놓으면 연기가 나면서 꺼집니다. 그러나 여러분, 공업용 화로를 보셨을 것입니다. 훅 하면서 아주 강력하게 타오릅니다. 쇠를 집어넣어도 그 쇠가 불꽃을 더 일으키는 재가 됩니다. 하나님 앞에 은혜를 소유하고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고 믿음을 지켰던 이 마게도냐 교회는 환난과 시련이 오히려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드러내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 소망 인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오히려 더 진한 불꽃으로 타올랐습니다. 보십시오. 어두운 세상에서 그의 인생을 마치 그리스도 예수를 밝히 보여주려는 듯이 찬란하게 타오르는 불꽃처럼 자기의 인생을 드렸던 사람들을 보십시오. 시련과 환난을 겪지 않은 성도들은 이런 영광스러운 생애를 살았던 성도들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시련과 영광, 고난과 영광은 친구입니다. 이 마게도냐 교회가 환난의 많은 시련을 당하지만 오히려 이들의 믿음이 더욱 찬란하게 타올라서 하나님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랍고 이 세상이 주님의 그 은혜의 불을 끌 수 없음을 보여주는 본보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 교회에는 환난의 많은 시련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얼마나 가난했는지 사도 바울이 가난한 교회, 그러면 마게도냐 찢어질 정도로 가난한 교회, 마게도냐 그 생각이 났던 것입니다.
이번에 집회를 가서 확실히 강남의 집회하고 틀리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헌금 봉투가 수없이 올라오는데 전부다 만원, 이 만 원, 오천 원, 삼천 원 그렇게 올라옵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가 바로 그렇게 가난한 교회였습니다. 얼마 안 되는 재물을 다 수탈당하고 그렇게 어렵게 연명하고 살아가는 그런 교회였습니다. 가난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 고린도 교회는 어떤 교회였습니까? 부자였습니다. 얼마나 부자였는가 하면 애찬식을 하는데 애찬식이라 하면 주님을 기념하기 위해서 우리가 사랑의 만찬을 하는 것인데 돈이 있는 사람, 요즘으로 말하자면 요만큼씩 자기가 만든 음식을 싸와서 같이 나누면서 사랑을 나누는 것인데 요즘으로 말하면 돈이 있으니까 그까짓 것 그렇게 해서 뭘 해. 전화를 해서 부페집에다가 한 사람 앞에 삼만 원씩 하는 음식을 해오라고 해서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먼저 먹고 없는 사람은 구석에서 손가락 빨면서 쳐져있고 이러는 일들이 일어나는 교회였습니다.
돈이 많고 항구 도시여서 돈의 흐름이 풍부한 그런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니까 고린도 교회는 그 예루살렘의 어려운 일이 일어났을 때도 잘 돕지를 않았습니다. 부요한 사람들이 헌금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헌금을 하는 것입니다. 부요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넘치도록 헌금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보십시오. 극한 가난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환난이 헌금을 많이 내는데, 풍성한 연보를 냈다고 하는데 그 풍성한 연보는 내서 하나님 앞에 넘치는 헌신을 하게 하는데 환난이 도움을 주었습니까, 아니면 시련이 하나님 앞에 자신을 헌신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까, 아니면 극한 가난이 이 마게도냐 교회로 하여금 풍성한 헌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데 기여했습니까? 다 부정적인 요소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환난을 극복하고 시련을 넘어서고 극한 가난을 물리치면서도 하나님 앞에 넘치도록 헌금할 수 있었던 것은 딱 하나가 나오는데 기쁨입니다. 뭐라고 그랬습니까?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의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게 하였느니라. 고린도 교회는 모든 것을 다 소유하고 있었지만 이 놀라운 기쁨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그 기쁨이 이 속에 차고 넘치고 그것이 하나님 앞에 뭔가를 드리는 동기가 되어질 때 그것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 예배의 순서 중에서 가장 훌륭한 요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헌금을 하는 그 시간은 돈을 내는 그 시간이 아니라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우리의 넘치는 기쁨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그것이야말로 영적인 예배 순서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많은 초대 교회들이 헌금함을 놓는 것은 후대에 생겼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예배 순서 속에 헌금을 드리는 것이 전통적이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은 하나님 앞에 헌금을 드리는 이런 순서가 얼마나 영적인 순서인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심하게 얘기하면 하나님 앞에 넘치는 감사와 기쁨으로 드리는 돈이 아니면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헌금이 아니라 예배룰 드리는 요금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이 마게도냐 교회가 하나님 앞에 이 큰 헌금을 드린 자체를 지금 사도 바울이 칭찬하는 것입니까? 너희가 이렇게 거액을 후원해주어서 정말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고린도 교회에 알게 하고 싶었던 것은 마게도냐 교회가 드린 헌금의 액수가 아니라 그런 헌신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보이지 않은 마게도냐 교회 내면 속에 깃들어있는 그 무엇, 그것을 알게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보면서 너희들이 영적으로 우리들이 은사를 받았다. 뭘 받았다고 떠드는데 그것을 바라보면서 너희들이 근본적으로 교회가 가지고 있어야 할 그 무엇을 결핍하고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깊이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선교를 함에 있어서나 (?)하고 있어서나 돈을 의지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보십시오. 아니 환난이 많고 시련도 많고 극도로 가난한데 그렇게 풍성한 연보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기쁨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그럼 어떻게 모든 물질이 많은 그런 고린도 교회에는 없는 기쁨이 마게도냐 교회에는 있으며 환난의 많은 시련을 받으면서도 그 기쁨을 빼앗기지 않고 곱게 간직해서 결국은 마음속에 넘치는 기쁨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드리고 싶은 그런 마음이 생겨나게 되었던 이유가 바로 무엇입니까?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아니 오늘 여러분, 이런 기쁨을 소유하기를 원하시면 아멘 하십시오. 기쁨을 소유하기를 원하십니까? 아멘! 이런 마음에 차고 넘치는 기쁨이 없는 봉사는 정말 본인도 힘들고 교회도 힘듭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이런 놀라운 기쁨이 있으면 피곤하지도 않고 주를 위해서 한없이 섬기고 봉사를 해도 아까운 것이 없습니다. 아! 오늘은 뭘 하나님 앞에 갖다 바칠까? 이것이 마음속에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까? 넘치는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기쁨이 마게도냐 교회에 있었습니다. 기쁨이 환난을, 환난이 도전장을 내놓을 때 그것을 물리쳤습니다. 시련의 파도가 밀려올 때 기쁨이 높이 올라가면서 잠잠할 지어다. 환난이 파도와 같이 밀려올 때 마게도냐 교회가 벌벌 떨면서 겁을 내야지만 파도가 더 힘이 나서 으르렁 거리며 소리를 칠 텐데 으르렁 거리는 파도 소리보다 더 큰 웃음소리가 마게도냐 교회에 가득했습니다. 시련이 아무리 으르렁 거려봐야 말발이 서지 않습니다. 가난이 하나님이 주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가난하게 다 돈을 뺏기고 세금으로 수탈당하고 그렇게 가난하게 마귀가 한 번 더 가난하게 해보는 것입니다. 계속 가난하게 되었는데도 마음이 놀라운 기쁨이 넘치니까 그 가난으로도 그 기쁨을 소멸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전에 직장에 다녔을 때 한 자매를 전도했는데 성경공부 시간에 예수 믿고 난 다음에 가장 큰 변화가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니까 아주 간단한 말로 답변했는데 전도사님, 저는 예수를 믿기 전에는 만원 한 장을 주머니에 안 넣고 다니면 불안해서 못 다녔습니다. 그때 만원은 꽤 컸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나서는 토큰 하나만 있어도 마음이 너무나 기쁘고 평안해요.
이 교회가 바로 그런 기쁨을 소유했습니다. 어떻게 이 기쁨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까? 사도가 말합니다. 그 기쁨의 원인은 마게도냐 교회에 주신 그 은혜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니까 이 교회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놀라운 기쁨을 충만하게 소유한 그런 교회로 변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니까 이 교회는 환난과 시련이 꺾을 수 없는 놀라운 기쁨을 성도들의 삶 속에 차고 넘치게 된 것입니다. 은혜가 떨어졌는데 은혜가 떨어진 사람보고 너희는 서로 관용하라. 관용이 됩니까? 조그만 것 하나만 봐도 신경질이 확 나는데 그런데 어떤가 하면 마음에 놀라운 기쁨이 넘치면 어떤 일이 생겨나는가 하면 그냥 너그러운 마음이 생깁니다. 너그러운 마음, 환난의 많은 바람이 불어와도 그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라운 기쁨이 마음속에 있으니까 너무 좋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환난이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쁨,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그런데 환난이 오고 시련이 와도 우리의 육신을 괴롭힐 뿐이지 우리의 영혼에 함께 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빼앗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은 요리저리 변덕을 부리지만 주님이 주신 기쁨은 견고합니다. 이 기쁨을 마게도냐 교회가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 은혜를 마게도냐 교회가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히브리서 기자가 우리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를 받자.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은혜를 받자. 주님께로부터 부어지는 그 놀라운 은혜가 아니고 무엇으로 이 교회가 환난을 이길 수 있습니까? 이 교회가 무엇으로 그 많은 시련을 이길 수 있었겠습니까? 마게도냐에 살고 있는 마게도냐 교회의 교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 틀린 사람이었습니까? 고린도시의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이었습니까? 다른 도시의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이었습니까? 똑같은 연약한 육체의 성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고통이 싫고 즐거운 것이 좋고 궁핍한 것을 멀리 하고 싶고 부요한 것을 원하는 그런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이 모여 살던 마게도냐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가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자 이 모든 것들을 물리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꺼이 자기에게는 없을 것 같은 그 놀라운 헌신을 하나님 앞에 넘치도록 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헌신을, 이것이 바로 마게도냐가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할렐루야!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부어지는 은혜만이 우리를 변화시키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환난이 졸지에 물러가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환난 속에 서있는 우리를 그 은혜는 바꾸어줍니다. 전에는 환난 속에서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고 낙담하고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되내었는데 환난은 그대로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 앞에 서있는 우리를 바꾸어놓습니다. 그래서 그 환난 앞에서 바꾸어진 우리는 이 환난 속에서 우리를 도우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이 환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더 크고 견고하고 놀라운 은혜를 사모하고 그것을 붙들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아! 얼마나 놀랍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그러면서 오히려 이 마게도냐와 같이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은 교회는 이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환난 속에서 노래하는 것입니다. 왜 이 시련이 있고 환난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은혜가 더 놀랍고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환난과 시련 속에서 우리가 믿음을 지키고 살고 그 믿음 속에서 주님을 위해서 넘치도록 헌신하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사실을 늘 붙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 세상이 마음대로 변해줍니까? 그리고 예수를 잘 믿으면 우리 앞에 있는 걸어가는 인생길이 갑자기 확 갈라지면서 고속도로가 나타납니까? 물론 하나님은 그러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를 믿은 즉시 그렇게만 만들어주신다면 여러분들 중에 나를 포함에서 그 누구도 사람답게 살다가 하나님 앞에 갈 사람이 없습니다. 환난을 통해서도 얼마나 깨닫게 됩니까? 시련을 통해서도 얼마나 깨닫게 됩니까? 그런데 무엇입니까? 환난과 시련을 당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환난과 시련 속에서도 마게도냐 교회를 하나님이 바꾸어놓은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바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큰 가난 속에서도 마게도냐 교회는 그 가난으로 인하여 근심하지 아니하고 그 가난 속에서 오히려 무엇을 묵상하게 되었는가 하면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얼마나 가난해지였을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한없는 은혜가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시련과 환난을 당하면서 야, 재수 옴 붙었다. 더럽다. 금년 빨리 지나가라. 한해가 지나가는 달력에다 소금을 뿌려본들 그것이 우리 인생에 도움이 됩니까? 마게도냐 교회는 깊은 은혜를 하나님께 받으니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렇게 놀랍게 마게도냐 교회를 바꾸어놓고 드디어는 마게도냐 교회는 처음으로 복음이 전해진 교회도 아니었고 2차 전도여행 때 겨우 복음을 들은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맨 처음 복음을 들었던 선배, 설립에 있어서는 선배들이 기라성같이 많았지만 나중에 창립된 이 교회가 모든 교회를 향해서 사도 바울이 나는 모든 교회들이 마게도냐 교회만 같으면 원이 없겠다. 이렇게 추천하는 교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환난을 많이 겪고 그러면서도 하나님 앞에 그 하나님을 향한 넘치는 사랑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으니 무엇을?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었던 예루살렘이 흉년이 들었다. 수많은 형제들이 굶는다고 하더라. 그래도 우리는 극도로 가난해도 굶지는 않는다. 그러면서 그들이 가난한 살림에서 돈을 모았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돈을 일 년 동안이나 모았습니다. 그러면서 풍성한 연보가 되어서 드린 것입니다. 그 풍성한 것은 보이는 것은 돈이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넘치는 사랑이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마게도냐 교회에 신실한 신앙의 넘치는 고백이었습니다. 그 풍족한 헌금을 예루살렘을 위하여 기꺼이 드릴 수 있는 이런 교회로 바뀌어졌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이 뭐라고 그랬는가 하면 힘대로 할 뿐만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하였고 자기를 스스로 추천했다고 그랬습니다. 뭘 위해서 추천했습니까?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우리도 끼어주십시오. 그리고 사도에게 사정을 한 것입니다. 우리를 빼놓으시면 안 됩니다. 예루살렘에서 오는 구제물자를 나누어줄 때 우리를 빼놓으면 큰일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는 그런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께로 넘치도록 헌금을 하는 이 고난에 처하고 가난에 처한 예루살렘을 돕는 이 일에 우리들을 빼놓으시면 큰일납니다. 그러면서 계속 사도 바울에게 졸랐습니다. 뭐라고? 성도를 섬기는 일에 우리들도 동참시켜주십시오. 사도여 혹시 우리 교회를 보고 마게도냐 교회는 가난하니까 이 사람들은 제외시키자. 그러면 우리가 가만히 안 있겠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스스로 추천했던 것입니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교회를 위해서 이일을 수고해주시겠습니까? 목회자가 자기 회사에 와서 일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까? 사람들이 배를 (?)그래서 목회자들이 하는 흔히 이야기가 아니 꼬와서 목회를 못하겠다는 목회자도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렇습니까? 교회에 대한 충성을 인간의 마음에 호소하니까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호소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늘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섬길 것이 없을까? 늘 고민을 하고 그 섬기는 일에 자기를 써달라고 언제든지 애원합니다.
제가 그래서 총각 때 신앙도 별로 없었을 때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군목 목사님을 만났기에 목사님, 목회하시면서 어느 때가 가장 행복하셨습니까? 그러니까 교회일로 곤고해있을 때 신실해 보이는 형제나 자매가 찾아와서 목사님, 제가 이 교회에 다니고 있는데 주님을 위해서 이 교회에서 봉사하기를 원하는데 그 일이 가장 천한 일이라도 좋으니 제가 섬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알려주십시오. 그렇게 말할 때 가장 위로가 넘친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번 흉내를 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오기 전에 세 번째 교회, 5년 동안 있었던 교회에 두주쯤 출석을 한 다음에 목사님께 가서 무릎을 꿇고 제가 몇 년 도에 세례를 받고 전에 있던 교회에서 무엇을 봉사를 하고 지금은 어떤 직장에 다니고 섬기고 있는데 목사님, 이 교회에서 제가 할 만한 일이 있으면 알려주시면 성심껏 교회에 있는 동안에 목사님 목회를 돕겠습니다. 너무너무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에서 5년 봉사를 했습니다. 힘에 진하도록 하나님 앞에 봉사할 때 주님께서 내 생애 잊을 수 없는 큰 은혜를 거기서 주셨습니다. 그래서 소명을 받았습니다. 무엇이 이것을 가능하게 합니까?
여러분, 교회에서 직분을 받고 봉사를 하면서 자기의 이름이 높아지겠지. 이런 것이 동기가 된 사람은 주님 앞에 끝까지 충성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마게도냐 교회를 붙잡으니까 마게도냐 교회가 뭐 헌금을 해서 사도 바울이 끌고 다니는 전도대 주보에 맨 앞에 나오고 싶어서 지금 이 헌금을 한 것입니까? 세상에는 그런 이유 때문에 헌금을 하는 사람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마게도냐 교회로 하여금 환난과 시련과 많은 가난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다 드리는 일에 자기를 빼놓지 말아달라고 자원하면서 손을 들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이렇게 변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하나님께 은혜를 받아야지만 주를 위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은혜를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주를 위해 죽을 수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그러니까 마지막 순간에 주를 위해 죽었던 위대한 성도들이 그 훌륭한 은혜의 생활이 죽기 직전에 생겼던 것이 아니라 살아오면서 계속, 순교 말고 할 수 없이 죽은 사람 말고 정말 기쁨으로 순교한 사람들, 그 사람들은 평소에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고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다 그 은혜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주께서 바라실 때 아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손드는 이런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오늘 마게도냐 교회에 이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여러분도 이번 집회에 다른 것은 필요가 없습니다. 무슨 많은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넘치는 은혜를 받고 그렇게 주를 위해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교회에 특징이 마지막 또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오늘 성경은 말하기를 돈을 빌렸다고 말하지 아니하고 헌금을 드리기 전에 이 교회는 자신을 먼저 드린 교회라고 사도가 인정해주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돈을 먼저 드린 교회가 아니라 자신을 먼저 드린 교회였습니다. 세상에서 기분파로 노는 사람들이 아직 제대로 거듭나지도 않았는데 교회에 와서 그 기분을 푸는 사람을 가끔 보았습니다. 옛날에 거듭나기 전에 저희 아버님이 그러셨습니다. 옛날에는 좀 넉넉히 살았으니까 온 교회 식구들을 전부다 불러놓고 윳놀이를 하고 윳도 자기가 사고 장소도 자기가 제공하고 음식도 자기가 내고 상품도 자기가 준비를 하고 그러면서 이름 내는 것을 좋아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교회는 헌금을 먼저 드린 교회가 아니라 자신을 먼저 드린 교회였습니다.
미국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가 하면 법원에 제소를 했는데 십일조 반환 청구 소송을 했습니다. 고소내용이 무엇인가 하면 십일조를 내면 복 받는다고 해서 그것을 믿고 5년을 드렸는데 복은커녕 쫄딱 망하니까 교회룰 걸어서 그 십일조를 달라고 고소를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미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헌금을 덜컥 내놓고 나서 나중에 후회하고 심지어는 목회자에게 전화해서 약속헌금 낸 것을 취소시켜 줄 수 없냐고 하는 사람들도 저는 봤습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 앞에 귀한 물질을 드리고 오히려 시험에 드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자신을 드리지 못하고 돈을 먼저 드리니까 이런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이 교회는 사도가 아마 요만큼 쯤 바쳤으면 하는 그런 목표치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훨씬 지나쳤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돈을 바치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렸더니 거액의 연보를 예루살렘 교회에 큰 구제사역을 하고도 시험에 들지 않은 교회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섬김의 원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 앞에 자신을 기꺼이 드리는 이런 은혜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아낌없이 드리는 사람은 자기에 속한 모든 것을 자기의 것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종이 자기의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자기가 종이면 자기 자식도 주인의 재산이고 주머니에 있는 모든 것도 다 주인의 것입니다. 마게도냐 교회에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니까 이 교회는 먼저 자신을 주님 앞에 다 드렸습니다. 고통당하는 예루살렘을 보면서 주님이 얼마나 슬퍼하실까? 우리가 그 고통을 나눌 수 없을까. 그리고 고민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 앞에 넘치는 헌금을 할 때 시험에 든 것이 아니라 이 헌금과 연보를 통해서 이 교회는 오히려 더 신앙이 견고해지는 놀라운 은혜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은혜가 이 마게도냐 교회를 강하게 사로잡으니까 이 교회는 돈이 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돈이 하나님을 섬길 기회인 달란트로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쓸 수 있는 이런 교회로 변화된 것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을 이렇게 바꾸어놓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받는데 있어서 경제적으로 부요하고 더 크고 유명한 고린도 교회였지만 지금 후배 교회로부터 이렇게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너희가 잘사는데 있어서는 마게도냐 교회보다 앞지르고 성령의 은사를 받는데 있어서는 마게도냐 교회보다 뛰어난지 몰라도 마게도냐 교회가 받은 은혜를 너희가 알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간절히 바란다. 마게도냐 교회에 은혜가 임하니까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고 그리고 성도들을 섬기는데 있어서 나를 써달라고 손을 높이 들고 사도에게 자기들을 그렇게 써달라고 간절히 구하는 이런 자원하는 헌신을 이들에게 가져왔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살기를 원해도 마음속에 그렇게 살고 싶은 뜨거운 욕망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해결은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하나님을 위해서 살지 못하는 뭔가 줄에 매어 있어서 하나님을 위해 살지 못하는 구속을 받고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 대한 해결은 하나님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이 놀라운 은혜는 교회를 바꾸어놓고 사람을 바꾸어놓습니다. 쓸모없는 사람을 바꾸어서 하나님의 일에 없어서는 안 될 유일한 사람으로 만들어줍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세상에서 목자 잃은 양같이 고생하며 유리하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아픔을 주던 그런 암적인 존재를 변화시켜서 오히려 수많은 사람을 치료하고 새롭게 고치는 교회에 없어서는 안 될 하나님의 훌륭한 도구로 삼아주시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주님의 은혜를 넘치게 받지 않았을 때 사도 바울을 섬겼고 빌레몬의 종이었던 오네시모는 노예들 가운데 사고뭉치였고 그리고 노예들 가운데 말썽만 부리고 마지막에는 주인의 집에서 뭔가를 훔쳐서 도망을 가는 이 나쁜 놈이었지만 그러나 옥중에서 사도 바울이 그에게 복음을 전해서 하나님이 오네시모에게 은혜를 주시니까 그 벌레 같고 쓰레기와 같고 아무 쓸모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변했습니까? 내게는 가장 유익한 종이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말해줄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인생이 변화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가 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상태와 자기의 상태의 비참함을 인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세상에서 버림받고 찢기고 문제가 많은 사람이 들어올수록 우리는 일어나서 환영을 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그에게 들어가서 그를 변화시켜놓기만 하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과 상처를 주던 사람이 변화되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생명과 기쁨을 나누어주고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 하는 밝은 빛이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이런 변화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마게도냐 교회가 받은 은혜가 마게도냐 교회가 이 은혜를 받지 못했다면 무엇을 내세울 것이 있습니까? 환난도 많아서 주님을 버리기가 십상입니다. 시련도 많아서 항복하기 십상입니다. 극히 가난해서 주님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교회가 되었는데 은혜 그것 하나가 주어지니까 수많은 불리한 것들이 단번에 극복이 되면서 세상이 넘볼 수 없는 기쁨이 견고하게 그들에게 심겨져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훌륭한 교회로 변화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이번 집회를 통해서 마게도냐 교회의 후배가 한번 되어보지 않겠습니까?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