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은사체험과 하나님의 인격의 체험(2)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
(막 10:1)
지난시간의 설교를 여러분들이 다 들으셨을 것입니다. 못 들으신 분들에게는 테이프를 나눠드렸는데 듣고 오셨으리라고 믿고 요약을 하자면 마태복음 10장을 예를 들면서 거기서 제자들이 그 놀라운 성령을 성령의 권능을 귀신을 내어 쫓고 병든 자를 고치는 그런 놀라운 성령의 권능을 받았는데 그거를 통해서 우리들이 무얼 보여주고 싶었냐 하면은 왜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한없이 많이 체험하고 그리고 또 기사도 체험하고 그리고 또 병 고치는 은사도 받고 그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곧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왜 왜 그렇게 성령을 많이 체험한 것과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어떻게 그렇게 구분되어질 수 있는가 그리고 또 구분해야 될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은사를 받고 성령을 체험합니다. 우리도 그런 체험을 했어요. 그러나 그런 체험이 우리의 신앙을 견고하게 붙들어주고 참된 신앙의 길로 우리로 하여금 걸어가게 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잠시는 그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커다란 추진력이 되지만 그러나 계속해서 그것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그리고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들이 뭔가 성경과 성경에서 우리에게 언급된 그리스도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려고 했던 그 참된 믿음의 도, 그 진리로 돌아가게 하는데 있어서는 그 체험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설교를 하면서도 우려를 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마태복음 10장의 성령체험도 못한 사람에게 그 체험이참된 것이 있고 참된 것이 아닌 것이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하니까 이제 한 단계 건너뛰고 더 뒤의 단계 올라가서 생각해야 하니까 좀 헷갈릴 수 있는데 그러나 우리가운데는 그런 마태복음 10장적인 그런 성령의 체험을 하신 분이 꽤 여러분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또 이것이 지금은 여러분들이 확연하게 가슴에 와 닿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말씀이 입력이 되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오늘의 이 말씀이 생각이 나요. 그리고 우리가 한참 걸어가 보고 실험해보고 그리고 우리가 오류를 많이 저지르고 난 다음에야 깨달을 수 있는 것을 지금 미리 입력을 시켜 놓는 것이에요. 여러분 자신뿐만 아니라 여러분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그 모습들을 보면서 성령의 은사와 그 능력을 많이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지 그 사람의 신앙을 그것을 정말 성경적인 신앙이라고 받아들여주기는 선뜻 내키지 않는 그런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의 놀라운 은혜와 권능을 체험했는데 그리고 그 성령의 놀라운 은혜와 권능은 곧장 전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전도할 수 있게 되었어요. 구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고 그리고 구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자들은 예수님이 왜 죽으셔야 하는지 심지어는 왜 오셨는지 앞으로 어디로 가실 것인지 그런 거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단 말이에요 그럼 어떻게 성령을 받고도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다음시간서부터는 왜 성령을 받았는데도 그렇게 귀신을 내어 쫓고 그렇게 놀라운 성령을 받았는데도 왜 그 예수 그리스도가 왜 오셨는지 또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부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런 것들을 모를 수가 있느냐 그 원인에 대해서 다음 주서 부터 계속하겠습니다.
근데 이제 그렇게 커다란 성령의 권능을 받았는데도, 예수그리스도의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제자들에게 당신이 왜 왔는지 그리고 왜 십자가에 달려야 하는지 또 왜 또 부활해야 하는지 그리고 부활하고 나면은 자기가 어떻게 승천할 것이며 그리고 승천한 후에 예수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는 것을 얘기해주셨어요. 안하셨어요? 해주신 정도가 아니라 지루할 정도로 수시로 끊임없이 특별히 마지막 십자가 지실 때가 다가와가지고는 집중적으로 비유를 들고 예화를 하면서 집중적으로 말씀해주셨지만 그러나 제자들은 깨닫지 못했어요. 그들이 그렇게 성령을 받아서 전도의 효과가 나타났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사도들이 귀신을 명하매 귀신이 나가고 병을 고치매 병이 나았어요.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예수를 믿게 되었어요.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어요. 그러나 그 복음이 정말 온전한 복음이었는가 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복음을 잘못 전했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어도 그 복음의 광대한 특성들을 다 드러내지 못하고 어느 일면만을 말해줄 수밖에 없었을 거다 이거죠. 그러니까 예수그리스도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나니까 제자들은 아무 할 일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베드로와 함께 고기 잡으러 갈릴리 바다로 나가는 제자들을 보십시오. 후줄근하게 고기를 잡으러 나가는 그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언제 한없는 성령의 권능을 받아서 갈릴리와 예루살렘을 누비며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고치던 그 사람들이었느냐 말이에요 이상하지 않아요?
또 하나는 사도들이 그렇게 성령의 놀라운 권능을 받고 나가서 복음을 전한 건 사실이지만은 설교가 별로 나오질 않아요. 제가 추측할 때는 간단간단한 메시지였습니다. ‘예수가 오셨다’, ‘지금이야 말로 은혜 받을 만한 때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왔다’, ‘이스라엘의 잃은 양이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이런 아주 간단간단하고 초보적인 메시지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같은 성령인데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이 임하시게 되었어요. 물론 이 사건은 성령 강림사건이에요. 이거는 구원사적으로 성령이 오셔서 이제는 이전에는 성령이 필요할 때 필요한 사람에게 오셔서 그래서 그들을 가지고 역사하시고 일정한 목적이 끝나면 그 성령이 가시는 그런 관계였는데 이제는 성령이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성령이 제자들 속에 와서 예수님이 하시던 그 일들을 계승해서 예수님이 하시던 그 일을 대신해서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전에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셨던 것처럼 이제는 성령이 오셔서 성령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이제 성령이 함께 계심으로써 이제는 하나님이 우리 위에 계시던 시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던 시대 그 시대를 지나서 이제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그런 성령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 성령이 우리 가운데 내주하셔서 믿는 자 안에 들어오셔서 그래서 영원토록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러는 거죠. 그러니까 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후로 이 세상이 성령을 통해서 경험하는 영적인 축복은 그 이전에 모든 사람들이 그 시대가 오기를 사모하면서 그리워했던 것입니다. 바로보고 즐거워하면서 죽어갔던 그런 시대가 새롭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도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아직은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임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한편으로는 또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어요. 예수님이 뭐라 그랬어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증거가 무엇이냐 명하매 귀신이 쫓겨나가고 천국의 복음이 전파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냐 얘기하는 거죠. 그러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아직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는 임하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확실히 예수님이 오시고 또 성령이 오신 이후에는 특별히 그 이전의 시대와는 완연하게 구분되는 그런 시대가 되서 천국에서나 맛볼 수 있는 그런 놀라운 생명과 그런 놀라운 기쁨들을 이제 이 시대에 맛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는데 그런 구원사적으로 볼 때 그런 특별한 은총이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을 통하여 임하게 되는데 오늘의 주안점은 그 문제보다도 오늘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바는 뭐냐면 오늘이 이 2장을 우리가 다 읽었습니다. 제가 설교하면서 이렇게 긴 본문을 읽어보긴 처음이죠. 오늘 우리의 목적은 이 2장을 차례대로 다 설교하는 것이 아니에요. 오늘 이 2장을 통해서 우리들이 오순절에 성령강림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제자들을 비롯한 사람들의 마음에, 삶에, 영혼에, 신앙에 미친 영향이 마태복음 10장에서 비친 것과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을 오늘 확인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에요. 그 가장 중요한 특징 중에 하나는 무엇입니까? 성령이 불의 갈라짐같이 왔다 방언을 했다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라 그 성령이 임했을 때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예수님의 제자들 이전에도 이런 성령을 받은 적이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중요한 거는 물론 오순절에 받은 이 성령이 그야말로 세례, 세례였을 것입니다. 세례라는 것은 확 쏟아 붓는 거죠? 흠뻑 흠뻑, 물로 치자면 말이야 이렇게 슬슬 뿌리는 게 아니라 온 몸을 완전히 적실정도로 이렇게 푹 퍼다가 완전히 확 들이붓는 것입니다. 우리 세례줄때 이렇게 해서 물 찍어가지고 이렇게 이렇게 주는 거 나는 좋아하지 않아요. 좀 많이 부었으면 좋겠어요. 한바가지 정도 푹 퍼서 많이 물속에 들어가는 거는 지금 쉽지 않으니까 많이 옷은 갈아입으면 되잖아요. 한바가지나 한 바게쓰를 푹 퍼서 확 부어야지 실감이 나지 않겠어요? 세례 아니에요 세례. 말하자면은 성령을 받는 것이 이렇게 받는 게 아니라 큰 바께쓰나 드럼통으로 한번 확 들이 부어가지고 구석구석 안 젖은 데가 없도록 들이 부어지는 것 아마 그런 개념의 성령이 오실 것이라고 하는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라고 하는 비유로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얼마못가서 성령으로 어떡하리라 세례를 받으리라 푹 잠겨버리게 되리라. 확 물을 들이부어서 몸 어느 한 구석도 젖지 않은 데가 없으리라. 그렇게 말씀 하시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근데 마태복음을 보면 말이에요 느껴지는 게 뭐냐 하면 그 예수님께서 성령을 주시면서 사도라고 불러서 세우시고 그들을 전도하러 내보내실 때 하셨던 말씀으로 볼 때에는 그 10장에서 주신 그 성령도 결코 우스운 정도가 아니에요. 뭐라 그러냐면 귀신을 내어 쫓고 그것도 어때요? 모든 귀신을 내어 쫓고 그 다음에 또 어때요? 병든 자를 고치고 그중에서도 강조하면서 뭐라 얘기해요 문둥병 얘기가 나오죠. 불치의 병이라고 알려져 있는 그 문둥병을 고치고 그래서 정결케 하고 심지어는 어떻게 해요? 죽은 자도 살리고 그러니까 이게 우리들 속에서 지금 흔히 볼 수 있는 성령의 능력보다는 훨씬 뛰어난 그 무엇이라는 거죠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 2장 이후에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가 굉장히 장엄하고 크게 나타난 것도 2장에서 부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대로 부어주시는 그 성령이 세례를 받으리라고 한 말씀으로 보아서 아주 특별한 성령의 부으심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능력의 정도에 있어서 마태복음 10장과 사도행전 2장이 차이가 난다고 말하기에는 왠지 석연치 않을 정도로 10장에서 나타나는 성령의 능력이 엄청난 권능을 약속 받고 있다는 거죠 그렇죠?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러니까 2장에 성령이 오신 것을 통해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것은 ‘2장과 10장에 나타나는 성령의 능력이 어느 게 더 능력이 많으냐’ 재는 것은 이 본문을 보는 중요한 관점이 아니라는 거죠 분명히 동일한 성령이었어요, 동일한 성령이었죠. 그런데 앞에는 분명히 귀신을 내어 쫓고 죽은 자를 살릴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인데 그 능력의 성령이 임했는데도 여전히 이게 부서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뭐에요?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예수님과 함께 그렇게 오래 살고 죽는 것까지 목격하고 부활한 것까지 목격하고 승천하는 것까지 목격하는 그 시점에 그 많은 가르침을 들었는데도 여전히 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그 관점은 뭐냐 하면 예수께서 다시 오셔서 그래서 정치적인 메시아로 오셔서 그래서 자기의 동족들이 오랜 동안 사모해오던 바와 같이 이 로마에게 억압받는 나라를 구출해내어서 그래서 이 땅에 다윗왕국 시대의 그 찬란한 민족의 영광을, 나라의 영광을 다시 한 번 꽃피우는 그런 시대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고가 그렇게 엄청난 성령이 임했는데 깨어지질 않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까 어때요 그들에게 실제로 권능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열정도 있었습니다. 그렇죠? 그러니까 핍박을 받더라도 그들은 복음을 전했어요. 말씀을 전하고 싶어 했어요. 병든 자마다 고쳐주려고 했죠. 귀신 들린 자마다 쫓아내려고 했고 실제로 쫓아냈어요. 나중에 못 쫓아냈던 적도 있지만은 쫓아냈어요. 적어도 처음에는 쫓아낼 수 있었어요, 그렇다면 성경이 거짓말이 되니까 그렇지 않다면,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사도행전 2장에서는 따라서 사도행전 2장과 10장의 성령의 능력을 어느 것이 더 큰 능력이냐를 재는 것은 그거는 말하자면 본문을 보는 중요한 관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 뭐냐 왜 10장에서는 그렇게 죽은 자도 살릴 정도에 엄청난 성령이 부어졌는데도 결국은 이 고정관념이 깨졌어요, 안 깨졌습니까? 깨지지 않는 것입니다. 근데 오늘날 이런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말해요 성령에 대한 체험을 했고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신앙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억을 하셔야 해요. 대안이 될 수 없어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런 고정관념들이 안 깨지면 성령의 능력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는 신앙은 이상한 신앙이 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2장에서는 기이한 게 뭐냐면 성령이 큰 권능으로 임하자마자 제일 먼저 그 그리스도인인 제자들 속에서 어떤 일이 먼저 일어났죠? 우리 모두 병 고치러 가자 그것이었습니까? 우리 모두 귀신을 내어 쫓고 죽은 자를 살리러 가자 그것이었습니까? 무엇이 제일 먼저 나타났죠? 물론 방언이 나타났고 그다음에 뭐가 나타났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니까? 14절에서부터 베드로의 설교가 쏟아져 나오잖아요. 그런데 그 설교를 보면서 여러분들이 기이한 느낌을 갖게 되잖아요. 그게 뭐에요? 설교를 하는데 뭐가 나왔냐하면 우리가 이렇게 새 술에 취한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이렇게 하나님의 성령을 체험하게 되었고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성령세례를 받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러면서 뭘 얘기해요? 요엘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이게 요한복음 21장까지 에서는 생각날 수 있는 본문 이었어요? 아니었어요? 물론 요엘서는 알고 있었죠. 그러나 그것이 이렇게 연결되리라고 하는 이해가 있었어요, 없었어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정관념이 꽉 박혀있어서 이제 예수님의 그 모든 능력, 죽은 자를 살 수 있는 그런 모든 능력을 가지고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정치적으로 해방시켜주시는 그것만을 사모하고 있는데 성령을 딱 받으니까 그게 아닌 것입니다. 조각조각 돌아다니던 구약의 지식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 내가 죽어야 하리라, 다시 살아나리라, 내가 성령을 보내리라, 내가 가는 것이 너희에게는 유익하니라, 내가가면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오면 너희에게 진리에 대해서 생각나게 하리라, 깨닫게 하리라,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리라 그런 쪼가리 쪼가리 체계도 없이 막 돌아다니던 기독교에 관한 그 이상한 지식 그래서 그것을 전에까지는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적인 신앙이 아니라 그 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인 메시아가 오셔서 우리를 구할 것이라고 하는 그런 세속적인 생각으로 그 모든 지식을 꿴 것입니다. 그니까 잘 기억하세요. 하나하나 성경구절에 대한 해석을 올바로 내린다고 하더라도 그 성경구절을 꿰는 이 원리가 올바르지 않으면 하나하나는 정답인데 그거를 잘못 꿰면 이상한 결론으로 나서 잘못된 신앙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랬었단 말입니다. 그랬는데 오순절에 성령을 체험하고 나니까 구약과 신약이 뻥 뚫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이 막 떠오르기 시작하는데 그 모든 구약이 십자가에서도 제가 얘기했듯이 오직 십자가 하나만을 보고 달음박질 쳐 오는 역사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바로 다 이룬 사건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시고 우리의 모든 죄 값을 다 담당하고 죽은 사건이고 그리고 신약의 모든 사건은 이제 그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점으로 말하자면은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펼쳐나가는 구원의 역사의 사건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빛이 드러나게 되니까 이전에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 다윗 왕국의 회복 이런 것들이 성경에서 설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정관념이 다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과 신약 그 성경에 찬란하게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때요 이 설교를 들어보세요. 이거 얼마나 장엄해요. 구약과 그 다음 수많은 구약을 꿰면서 그 역사를 더듬으면서 마지막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하나를 향하여 달음박질 쳐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뻥 뚫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가 누구인지 이제는 구도가 떠오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깨닫게 해주셨어요. 예수님 오셔서 다시 깨닫게 안하셨어요. 예수님 승천하실 때까지도 이 친구들이 십자가의 의미를 몰랐어요, 몰랐어요. 끽해야 주님이 죽으시다니 슬프다 우리가 그 자리에 못 있은 것이 얼마나 죄송한 일인가 그런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드디어 뭐가 쏟아져 나와요? 설교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설교는 단순히 착하게 살아라 잘 살아라 그것이 아니라 성경을 관통하는 쉽게 얘기하면 이런 것입니다. 신학이 있는 설교였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면 좀 더 쉽게 얘기하면 설교는 어때야 하냐하면 말이에요 한편을 듣고 나면 그 한편을 들었기 때문에 그 설교에서 다루지 않은 다른 성경을 보는 눈도 열려야 되요 신학이 있을 경우에는 그런 효과를 주는 거죠 그러나 신학이 없으면 은혜는 되는데 그것 때문에 다른 성경을 보는 눈이 열리는 건 아니죠. 보세요! 이 베드로의 설교 때문에 모든 사람은 이제 구약을 새로 보게 되었어요. 왜그래요? 구약에 ‘말세에 불의 심판이 오고 육체의 성령을 부어주리라’ 하는 이 모든 이야기가 무슨 이야긴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게 바로 오늘 이 사건을 얘기하고 있다 이 얘기에요. 시편을 읽으면서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기를’ 주가 두 번이나 나오는데 앞에 주는 뭐고 뒤에 주는 무엇인가 그랬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사실이 사도에 의해서 설교되는 것이에요. 누가 가르쳐 주었어요. 아무도 안 가르쳐 주셨어요. 그런데 어떻게 알게 되었어요? 성령이 오시니까 구약을 보는 눈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성경을 보는 눈이 열리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성경의 맥, 신앙의 맥이 잡히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에서는 그렇게 죽은 자까지 살릴 정도의 엄청난 성령의 능력과 권능이 부어졌는데도 여전히 이 제자들이 가지고 있던 틀이 벗어지질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요. 그런 모든 권능을 받고 은사를 받았던 것은 한 때 추억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왕년에 방언을 안 해본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방언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에요. 저는 여러분들이 모두 방언받기를 바래요. 아 왜 아멘을 안 해요? 모두 받기를 원해요. 그리고 그 방언의 은사로 말미암아서 여러분들이 기도하고 싶어서 안타까워하고 기도할 때마다 그까짓 것 십분 20분이 아니라 몇 시간씩 기도해도 시간가는 줄 모르는 그런 기도의 사람들이 되기를 원해요. 그러나 문제는 뭐냐면 그런 모든 은혜와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은사는 전체적으로 성경을 관통하는 이런 사도행전 2장적인 그런 성령의 체험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권능으로, 능력으로 무장되는 것 그것을 넘어서서 성령이 오셔서 비성경적인 우리의 생각과 이전에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들을 모두다 허물어버리시고 그래서 성경의 중심되신 그리스도 예수가 떠오르고 그 체험 때문에 성경을 새롭게 볼 수 있고 맥이 잡히는 신앙생활에서 배운 수많은 이야기들이 이리 돌아다니고 저리 돌아다니고 이리 돌아다니고 나중에 책가방 들고 성경공부를 얼마나 하고 다녔는지 머리가 가분수가 되가지고 말이야 머리는 이따만 하고 몸은 요만한데 머리 때문에 어디 가는지 쓰러질 것 같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우리의 신앙생활이 풍성해지느냐 하면 그게 아니거든요. 마찬가지에요 성경 공부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풍성해지는 게 아니고 또 어때요? 그렇다고 그런 거 집어치우고 맨날 불 떼러 다닌다고 해서 그게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저는 아까 얘기한 성경 공부 하러 다니는 것을 무시 하는 게 아니고 불 떼러 다니면서 은혜를 받는 그 성령의 은혜도 무시하는 게 아니에요. 제 진심을 여러분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래요. 나는 내가 병 고침의 은사가 없다고 하더라도 여러분 중에 병 고침의 은사가 있으면 대동하고 가서 여러분들이 병을 고쳐줘도 나는 조금도 자존심 상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왜? 어차피 은사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에요. 그게 우리의 우열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리고 그것을 주시는 것은 지지지난주에, 지지난주인가요? 말씀드린 바와 같이 교회를 유익하고 성도를 섬기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께서 그런 은사를 주셔서 활용하고 교회를 섬기는 데 유익을 끼치기를 원해요. 그럼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게 뭐냐면은 정말 우리는 어떤 성령의 체험이 우리에게 필요하냐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고정적인 모든 관념들 그런 것들이 무너지고 그리고 성경의 중심되신 예수그리스도가 새롭게 떠오르고 그리고 성경을 다시 볼 수 있는 눈이 열리는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이야기입니다. 근데 우리는 이런 것들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의 체험을 통해서 이 사도들은 완전히 설교가 변했어요? 안변했어요? 더 헌신되어지고 더 뜨거워지고 더 은혜 충만해진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도행전 2장에 임한 이 성령체험은 이 사람들을 설교자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어때요? 성경을 어디를 펴든지 말하자면 단편적으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물줄기같이 흘러들어서 예수그리스도라는 댐으로 와 닿는 구약의 물줄기가 보이는 이 역사가 이 한 번의 체험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이런 성령의 체험이 하나님을 만났다라고 할 수 있는 체험이에요. 그리고 이것은 지워지지 않아요. 지워지지 않아요. 그리고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이 기독교 신앙이 이 시대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우리의 살아온 과정과 우리가 주워들은 잘못된 모든 지식으로 말미암아 굽어져 있는 우리의 신앙들을 하나님께서 이런 만남을 통해서만이 바로 잡아서 우리로 하여금 설교자로 세우시고 또 한편으로는 기독교 신앙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성경의 중심되신 그리스도예수가 우리 신앙의 중심에 서있는 이런 것들을 우리가 체계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전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까지 새로 태어나도록 만들어준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의 체험과 함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이 사도들은 이 오순절 사건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그냥 자신들의 선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이한 어떤 능력을 가지고 계신 어떤 선지자 중에 한 분이 그러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이분은 정말 하나님 자신이시며 이 우리가 함께 먹고 마시며 마지막 감람산에서 승천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작별한, 우리의 작별을 받으신 그 예수그리스도가 모든 구약의 어마어마한 성경의 역사의 푯대였다 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이제껏 갖고 있던 그 모든 고정관념과 그리고 상식과 그런 모든 것들이 무너지면서 그리스도 예수만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그 후로는 어디로 가든지 이들은 긴 설교를 하는 설교가들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본문이던지 열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화를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됐는데 사도들만 그러는 게 아니라 심지어는 집사까지도 이렇게 돼버렸어요 스데반 집사의 사도행전 7장에 나오는 설교를 보셨죠? 장엄하게 구약의 역사를 관통하면서 힘차게 달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그의 설교가 다 끝나지 못했지만 그 설교를 정신을 바짝 차리고 듣고 은혜를 받으면 그 한 편의 설교를 들었는데 성경 전체를 보는 눈이 열린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그러면 왜? 왜? 우리가 그렇게 성령을 체험하면서도 여전히 이 성경을 보는 견해와 참된 신앙에 대한 견해가 수준이 상승되지 않고 여전히 머물러 있는가. 그리고 은혜와 성령을 체험해도 정녕 우리가 사도들이 이렇게 예수그리스도를 오순절에 성령을 체험하고 완전한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던 것처럼 그래서 그 한순간의 성령체험을 통해서 희미하게 보이던 그 모든 그림자가 걷히고 그리고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밝히 볼 수 있게 되고 성경이 무엇인지를 밝히 알게 되는 맥이 잡히는 이런 놀라운 역사가 왜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는가 하는 문제는 다음시간에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