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성장과 미래의 역할
저는 한국 교회의 성장과 그리고 미래의 한국 교회의 역할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자타가 공인하듯이 개신교 역사상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교회입니다. 1960년을 기준으로 기독교 인구가 100만 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1970년 80년대 폭발적인 성장을 경험하고 그리고 이제 90년대 말에는 약 7 ~ 800명 정도의 선교사가 파송이 됐고 2007년 현재에는 16,600명. 최근의 통계에 의하면 제가 알기로는 2만 명을 넘었다고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실제적인 숫자와는 좀 괴리가 있지만 얼추 잡아서는 저희들이 1,200만 이라고 하는 엄청난 기독교 인구를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외적 성장뿐만 아니라 이러한 것들에 대한 반성으로 교회의 내적 성숙 그리고 문화운동 사회봉사에 대한 관심들이 증대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4년도가 한국 교회사의 분기점입니다. 이때를 기준으로 기독교의 인구가 줄기 시작했고 계속 감소하는 추세가 있고 최근 1, 2년 전에 신뢰할 만한 발표에 의하면 한국 개신교 인구가, 기독교 인구가 1200만 이라고 그렇게 이야기 하지만 실제 주일에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은 450만 정도 된다고 그렇게 통계가 나왔습니다. 이처럼 교회 성장 둔화는 심각한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한국 교회가 걸어온 길을 한번 정리하고 그리고 한국 교회의 급속한 성장의 양면을 오늘 한번 생각해보고 미래에 대한 우리의 대처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들을 한번 총 포괄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그렇게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된 것이 사실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선교 역사에서 그런 폭발적인 성장이 여러 곳에서 나타났는데 특별히 한국 교회가 두드러질 수 있었던 것은 다음 몇 가지 요인 때문입니다. 우선 선교 초기에 선교지로서의 한국 자체가 복음에 대한 수용성이 아주 극대화된 상황에서 선교가 시작되었던 것이죠. 1885년은 언더우드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와서 선교를 시작한 시점인데 이때는 한국사회가 근대화의 과정에서 전통과 새로운 사조가 만나면서 굉장한 혼란을 겪고 있던 때였고 아시다시피 일본과 미국 그리고 영국 러시아 프랑스 등등의 열강의 침략을 받으면서 굉장히 나라가 어지럽던 때였습니다. 과학 기술 같은 것들이 들어오면서 전통의 가치관들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이러면서 서구문물에 대한 동경들 그리고 개화사상에 대한 것들이 싹트기 시작하면서 복음에 대한 수용성들이 증대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종교 심리학자들은 이 상태를 심리적 진공상태였다라는 말로 묘사를 합니다. 또 하나는 네비우스 선교 정책으로 말미암아서 선교사들 간에 조화와 화합이 이루어지면서 효율성 있게 선교정책이 추구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로는 평양 대부흥의 영향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선교사에 있어서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옵니다마는 대체로 합의하는 내용이 1904년에 있었던 웨일즈의 부흥운동이 1904년~1906년 사이의 인도 카아시 지방의 부흥으로 이어졌고 그리고 인도 카아시 지방의 부흥운동을 보고 왔던 존스턴 선교사의 역할로 만주와 중국 지역에 있던 선교사들 그리고 북한지역에 있던 선교사들이 이제 각성을 하면서 1907년의 대부흥이 준비가 되었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어쨌든 1907년의 대부흥에 관해서는 우리들이 상당한 기록들을 가지고 있는데 아주 강력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는 부흥이 있었고 그런 부흥을 통해서 한국 개신교의 특징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통해 일어난 한국의 대부흥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극단적으로 나뉩니다. 예를 들어서 한쪽에서는 바로 그 부흥 때문에 한국 교회는 기독교 신앙의 참된 본질로부터 멀어졌다는 주장이에요. 왜냐하면 이후에 나타나는 타계주의적 신앙, 즉 역사성을 무시하고 그다음에 초월성만을 강조하는 그런 신앙, 이 세상 자체를 아주 더러운 것으로 보고 주님의 재림 사상에 심취하는 타계주의적 신앙들이 거기서부터 왔다 이렇게 보는 거죠. 반면에 또 한쪽에서는 그게 아니라 만약에 그렇게 부흥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굉장히 사회복음주의적인 쪽으로 갔을 거다, 왜냐하면 역사 배경을 보면 대부흥이 일어나기 직전에 선교사들 특히 미국선교사들과 한국 지도자들 사이에 갈등이 심각하게 노출되고 있었어요.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냐 하면 여러분 알다시피 테프트까스 밀약이 일본과 미국 사이에 맺어집니다. 그래서 까스라 수상과 테프트 장관과의 밀약이 맺어지면서 조선에서의 일본의 지배권을 인정하는 대신 필리핀 이쪽에서의 미국의 지배권을 인정하는 이런 상호협약이 맺어져요. 여기에서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굉장히 배신감을 느끼고 그리고 어떻하든지 한국이 일본과 맞서 싸워야한다 라고 할 때 이 문제를 놓고 미국선교사들과 갈등이 빚어지게 됩니다. 그 증거가 뭐냐 하면 평양 대부흥이 있던 그 때에 사람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던 그 설교, 이 길함 선교사라고 기억이 되는데 그 설교 내용이 뭐였냐 하면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오는 교회의 지체됨을 설교할 때에 커다란 각성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만약에 부흥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갈들이 계속 노출되는 가운데 아마 훨씬 더 빨리 기독교의 복음 자체가 말하자면 사회 운동 속에서 유실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이렇게 보는 거죠.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 어느 쪽이 절대적으로 맞다라고 평가할 수 없겠지만 이 순간에 어쨌든지 간에 평양 대부흥은 이후에 한국 교회의 기독교를 특징짓는 아주 중요한 결정적인 모멘텀이 되었던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성장의 요인은 그런데 이 요인만 가지고 한국 교회가 성장한 것이 아니라 여기에는 배경이 있습니다. 먼저 우리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정치 사회적인 변화였어요. 무슨 뜻이냐 하면 알다시피 1985년(1895년을 잘못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 녹취자 의견) 아펜젤러가 들어오면서 그 전후를 중심으로 해서 굉장히 많은 전쟁이 작은 전쟁들이 일어납니다. 노국의 사건을 필시로 하는 그다음에 만주사변 러일전쟁 이런 크고 작은 전쟁들이 많이 일어나면서 한국에 평화가 그칠 날이 없었죠. 그런 속에서 사람들은 이 세상의 소망 같은 것들이 사라지게 되요. 여러분들은 한국의 인사가 뭐죠? ‘안녕하셨습니까’ 이렇게 묻잖아요? 그 얘기는 안녕이라는 말이 무슨 이야기냐 하면 히브리말로 샬롬 이거든요. ‘시츄에이션 위드아웃 컴플리트’ 요 그러니까 전쟁이 없는 상태예요. 그러니까 안녕하셨습니까, 밤새 편히 주무셨습니까 하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내일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살았다는 거예요. 어느 정도 진실성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인사말들이 그 시기에 형성됐다고 보는 거거든요. 그러면 이런 사회 속에 있었기 때문에 옛날 종교에 대한 신앙들이 굉장히 많이 퇴색했습니다. 그런 속에서 기독교 신아에 대한 갈망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렇게 보고.
또 하나는 경제 문화적인 배경이거든요 어쨌든 일제시기를 벗어나는 것부터 시작을 해서 우리나라와 강력한 관계를 맺게 된 나라가 러시아와 일본 그리고 미국입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퇴출되는 쫓겨나는 분위기였으니까 결국 러시아와 미국인데 아시다시피 북한에서는 안 그랬을지 모르지만 남쪽에서는 미국과 아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이제 독립이 이루어지고 그 다음에 신탁통치 반대가 이루어지고 그리고 독립이 이루어지고 그리고 새 정부가 서게 되고 하는 이런 모든 과정들이 미국과 뗄 수 없는 연관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사실 미국 문화에 대한 동경 이런 것들 그리고 또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실제로 미국 사람들과 가까워야지만 먹고 살 수 있고 출세를 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였기 때문에 이런 통로들이 기독교가 들어오는 상당히 좋은 환경들이 되었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 다음에 교회적인 요인들은 뭐냐 하면 평양 대부흥 이후로부터 이어지는 부흥운동이었어요. 제가 이 시간에 리바이벌과 리바이벌리즘에 관해서 여러분들에게 긴 강론을 할 수는 없지만 평양 대부흥은 리바이벌이었다면 이후에 이어지는 부흥운동들은 리바이벌리즘이었어요. 그래서 이런 리바이벌리즘의 운동들이 번지기 시작하면서 물론 거기에는 순수한 요소들이 어느 정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번지면서,
이게 평양 대부흥의 특징이 굉장히 중요해요. 이후의 한국의 기독교 선교 과정에 녹아듭니다. 그 뚜렷한 것이 뭐냐 하면 회개예요. 회개. 여러분 역사 속에서 보셨죠. 평양 부흥이 있고 나서 술집에 간판이 붙었어요. 술집이 문을 닫는 거예요. 술집에 ‘주인이 부흥회에서 회심했음 폐업’, 쌀집에 간판이 붙었어요 ‘내가 여기서 몇 년도서부터 장사를 했는데 쌀을 팔 때 그 밑에다가 판자대기를 대서 한 말 쌀 팔 때 마다 이 만큼씩 덜 줬다. 피해를 입은 사람을 난 기억 못하니 나와 거래를 하다가 피해를 봤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와라. 그럼 나는 보상해주겠다’ 그 이후에도 더 많은 스토리들이 생겨나게 되요. 그리고 돈을 빌리고 안 갚던 사람들이 회개한 다음 제일 먼저 빚을 갚으러 다니는 거에요. 길선주 목사의 회개도 자기가 아는 친구 부인에게 재산을 자기가 유언을 따라서 그 때 돈 백 달러를 맡았다가 그걸 자기가 사취하잖아요. 그걸 회개하고 나서 그걸 다시 그 부인에게 돌려주겠노라고 고백을 할 때에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1월에 임한 거거든요. 그러니까 그 본을 똑바로 본 거에요. 그러니까 한국 교회의 초기의 전통은 삶과 주님을 만나는 은혜의 경험이 아주 클로서리하게closely 엮여져 있었던 거죠. 이런 전통들이 초기에는 아주 좋게 내려간 거예요. 또 하나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이 뭐냐 하면 지금은 잊혀져 버린 말인데 사경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 자는 살핀다는 뜻이에요. 썰치한다는Search 뜻이죠. 그리고 ‘경’은 바이블Bible 이에요. ‘회’는 미팅Meeting 이라는 말이죠. 그러니까 모이는 목적 자체가 불 받기 위해서 모이는 뜨거운 체험을 하기 위해서 모이는 이것은 후대의 산물이에요. 1960년대 이후이 산물이에요. 적어도 1960년대, 길게 보면 1940년대 이후로 볼 수 있지만 그 초기로 올라가보면 적어도 제가 접한 자료에 의하면 1930년대 후반까지는 모이면 그 모이는 목적 자체가 뜨거운 체험을 하고 성령을 받기 위해서 모인다기 보다는 서치 더 바이블Search the Bible 성경을 살피고 생각하기 위해서 모이는 거죠. 그것이 바로 사경회의 전통이었어요. 그런데 이것이 시대가 흐르면서 뜨거운 체험을 강조하는 분위기는 남고 성경을 진지하게 살피는 전통은 사라지게 되었어요. 어쨌든 그렇게 해서 같은 종류의 집회를 하는 거, 목표 자체가 사람들에게 회개하게 하고 죄에서 돌이키게 하고 그리고 예수를 위해서 헌신하게 하는 이러한 종류의 집회들이 이후로 위에서부터 점점 아래로 내려와서 저 목포, 진주 아래 까지 불길처럼 계속 번져갑니다. 그것과 관련되어서 어떤 운동이 벌어지냐하면 백만 구령운동, 그래서 그것은 주님이 곧 오실 텐데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멸망이다, 하는 아주 다급한 구원의 메시지를 가진 운동으로 번지게 되요. 그리고 또 하나가 아마도 50년대 이후의 일인데요. 기도원 운동들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기도원 운동. 이것이 한창 한국에서 절정을 이루었던 때가 70년대였어요. 기도원을 교회가 세우는 것이 일이었고 교회가 기도원을 세우면 어떤 경우에는 기도원의 헌금 수입이 교회의 헌금 수입을 능가해서 교회가 그 기도원으로부터 도움을 받았어요. 제가 엊그제도 그런 운동을 하던 교회에 설교를 하러 갔거든요. 이름만 대면 다 알 수 있는 무지하게 큰 기도원이에요. 지금 어떻게 됐냐하니까 거꾸로 교회에서 계속 돈을 갖다 넣어야 된대요. 이제 그런 시대가 사라진 거죠. 왜 사라졌나도 제가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러나 계속해서 나가겠습니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어떤 일이 있었냐하면요 한국에 폭발적인 경제 성장이 70년대와 특별히 80년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1974년도가 백억 불 수출을 달성한 해가 되고 국민소득이 천 불이 달성 되던 해입니다. 그리고 그 전 까지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삶을 살았어요. 자, 예를 하나 들어드리죠.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였습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종례시간에 이렇게 말했어요. “예들아,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집에 가서 밤늦게 밥을 먹으면 건강에 안 좋다. 그러니 그렇게 하지 말고 그저 가볍게 계란 하나 정도 부쳐 먹고 우유 한 모금 정도 먹고 자도록 해라” 할 때 우리 모든 학생들이 다 웃었어요. 왜 웃었는지 아세요? 언리얼리스틱unrealitic 하다 이거에요. 아무도 그렇게 여유를 가진 학생이 거기에 없다. 당신은 선생인 정도니까 그게 가능하지 우리들은 불가능하다. 그런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어요. 그게 1969년도, 70년대의 일이에요. 그런 정도의 수준이었어요. 그러던 것이 1974년도가 아마 70년대에서는 최고 호황을 누리던 시기였어요. 중동 건설 수출 붐 이렇게 하면서. 아까 김상복 목사님 말씀하셨지만 아주 워크 하드work hard 하는 거예요. 일을 열심히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해가지고 외국의 신임을 얻으면서 많은 달러들이 유입되기 시작을 하는 거였어요. 그러면서 건설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국민 생활들이 나아졌지요. 많은 선교학자들의 공통된 지적은 복음에 대한 관심사 말하자면 그 분기점을 GNP 오천달러라고 본답니다. 오천달러. 오천달러를 기점으로 그 이전까지는 종교적인 갈망이 계속 오다가 그걸 피크로 해서 이젠 떨어진다는 거죠. 그럼 지금은, 지금은 어림도 없죠. 놀라지 마십시오. 강남 압구정의 소비 수준이 십만 달러입니다. GNP 십만 달러. 울산시 전체의 소비 수준이 사만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이런 정도로 발전을 하기 때문에 종교에 대한 무관심, 특별히 기독교에 대한 무관심이 생겨나는 것은 이것은 당연한 현상이라 이렇게 보는 거죠. 어쨌든 이렇게 되다가 어떤 일이 있었냐 하면요 1973년에 빌리 그레함이라는 목사님이 한국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의 특유의 전도 집회를 열게 됩니다. 그때에 엄청난 사람들이 모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에 이루어지는 엑스플로 그리고 몇 몇 번의 민족 복음화 대성회 이런 것들이 차례로 이루어지면서 여의도 광장을 중심으로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세를 과시하는가를 보여주는 거죠. 그래서 백 만 씩 모이는 놀라운 성과를 이룹니다. 이것이 그 당시 경제 개발의 분위기와 맞아 떨어지면서 한국 교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남기게 되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성장 제일 주의적인 관점을 남기게 되는 거에요. 연세 드신 분들은 아나 와우 아파트 사건을 기억하실 거예요. 김현옥 시장 시절에 아파트를 세웠는데 아파트가 저절로 무너졌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그 이유가 뭐냐 하면 매년 서울 시장은 대통령에게 아파트를 지난 해 보다 몇 퍼센트를 더 지었느냐를 보고해야 해요. 그래서 지난해에 십만 채를 지었는데 금년에 십만 채를 지었으면 증가 제로야. 십일만 채를 지어야지만 십 퍼센트 증가된 거야. 그러니까 이 수치 자체가 자기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었기 때문에 내용은 보지 않고 철저하게 이 수치에 매달리면서 말하자면 개발 논리들이 이루어지게 된 거죠. 이런 논리들이 교회에 들어오게 되면서 교회를 세우기만 하면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정말, 정말 모였어요. 시유지에다가 텐트 치고 가마니 깔고 등잔불 하나 걸어놓으면 사람들이 모였어요. 그러면 구청에서 와서 때려 부수면 또 세우고 또 세우고 그러면 구청에서 너무 지쳐가지고 그러면 불하를 받아라 그러면 눈물 흘리며 기도해서 돈을 모아서 불하를 받고 블록으로 교회를 짓고 그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납니다. 그러던 때였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어떻게 되죠. 목회자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요. 그러니까 할 수없이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신학교들이 생겨나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소위 여기에는 십 팔세기 마지막에 미국의 켄터키에서 일어났던 그 신비주의적인 리바이벌리즘 소위 원더풀 프리덤이라고 하는 내가 은혜를 받아서 주님께 소명을 받으면 바로 목회자가 될 수 있다라고 하는 프리덤의 논리 이런 것들도 굉장히 많이 들어와서 반지식주의를 형성하는 토대가 됩니다. 한국 교회 안에서. 어쨌든 이렇게 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좀 더 진도를 나가서 한국 교회의 유산이 뭐냐, 그런데 사실은 저 강의 제목을 제가 받았을 때 한국 교회에 과연 월들리한 유산이 있냐 하는 것에 대해서 제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물론 이런 것들은 하나의 유산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일사각오의 신앙이라는 것이 있었어요. ‘주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으니 나도 주님을 위해 죽는다.’ 그런 신앙. 그런 것들은 한국의 고유한 것이 아닐까요. 교회마다 그런 게 없는 건 아니지만 굉장히 중요한 특징을 이루었죠. 그런 거라든지 아니면 열렬한 기도라든지 등등이 있잖아요? 이런 것들을 한 번 다 종합을 해서 긍정적이든지 부정적이든지 사소한 것들은 빼버리고 우선 크게 네 가지만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뭐냐 하면 한국 교회의 이러한 성장의 역사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느냐하면 경건의 중심은 기도다 하는 사상을 남겼어요. 경건의 중심은 기도다 하는 사상을 남긴 거예요. 여러분 알다시피 1907년에 평양 대부흥이 있기 전에 선교사들이 넉 달 동안 평양에서 기도회를 합니다. 처음에 두 시간씩 기도회를 하기를 시작을 했다가 매일 그렇게 모이다가, 매일은 아니고 일주일에 두 번씩인가 그렇게 모였어요. 맨 처음에. 그러니까 선교사들이 자기 g라 일을 방해받는다고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나왔어요. 그럴 때 그들이 다시 기도하면서 투덜거릴 게 아니라 시간을 더 늘려야 된다 그래서 한 번 모일 때 네 시간씩 기도하자고 정하면서 평양 대부흥 운동이 준비가 되는 거죠. 그게 있고 나서 바로 생겨난 게 새벽기도 운동이거든요. 그래서 새벽 기도 운동의 시작이 된 게 길선주 목사에요. 그래서 이 평양 대부흥이 있고 후에 시작된 게 아니고 전에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나라가 어렵고 교회가 어려운데 특별히 하나님께만 바쳐져서 목숨을 걸고 나와 함께 기도할 사람은 모여라 그랬는데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새벽마다 교회에 모이기 시작했는데 이게 한국에서의 새벽을 신성시하는 정령 신앙의 컨벌젼이에요. 그렇게 하고 나서는 정작 평양 대부흥이 있고 나서는 새벽 기도 운동이 너도 나도 아주 빠른 속도로 온 교회에 번져가서 오늘날은 보편적인 것이 되었는데 지금은 많이 없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교회들은 새벽 기도 안하는 교회들이 있는데 굉장히 많아요. 이것도 이제 그런 점에서 레가시Legacy 라고 할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이 떠올라요. 어쨌든 그런 상황이 됩니다.
또 하나는 성령 중심의 선교, 성령 중심의 선교. 아까 말씀 드린 것이 기도 중심의 선교라면 이번에는 성령 중심의 선교에요. 한국 사람은 굉장히 정적인 민족입니다. 그리고 절대 내세적이고 피안적인 사고 구조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굉장히 현세적이에요. 그래서 내세나 전생도 모두 현세로 수렴하는
그런 시간관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굉장히 현세적이에요. 현세적이면서도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민족이에요. 제가 미국분 어떤 분을 만났어요. 그랬더니 뭐라고 그러냐 하면 “정말 놀란 게 있다 어떻게 하면 대통령을 둘이나 잡아 가두냐 놀랍다. 그런데 두 번째 놀란 게 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풀어주냐?” 그런데 그게 뭐냐 하면 그게 한국인의 심성이에요. 돈을 오천억씩 쌓아놓고 달아나는 거 보니까 저 친구들 다 감옥에 집어넣어야 돼. 이게 막 국민적 공감대를 이루는 거야. 그런데 한 때는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파란 옷을 입고 신문에 나오는 거야. 그러니까 갑자기 ‘저건 좀 너무하지 않냐. 저 정도면 이제 충분하지 않냐’ 이런 생각이 드는 거에요. 수사 보고서가 십만 쪽이랍니다. 그게 돈이 얼마나 들어갔겠습니까. 십만 쪽의 수사 자료가. 그렇게 해서 넣다가 이년 반 만에 풀어 준거죠. 그게 한국 사람의 심성이에요. 한국 사람의 심성. 천 구백 팔십 몇 년도에 여의도 광장에서 성채대회가 열렸습니다. 백만 명이 성찬을 했습니다. 그런데 티끌 하나 안 남았습니다. 2002년도 월드컵 때 거기 모였거든요. 칠백만 명이 거기 모였는데 모인 그 지역에 수백만 명이 모였는데 어떤 사람이 소리를 쳤어요. “전 세계가 우리를 보고 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쓰레기를 가져가자” 그랬더니 하나도 안남은거야. 깨끗이. 그런데 며칠 있다가는 다시 쓰레기가 몇 톤이 나온 거에요. 그러한 정적인 민족인데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있듯이 강한 평양 대부흥이 일어난 거에요. 그리고 나서 운동들이 리바이벌 무브먼트로 번지는 거에요. 그것이 한국인들의 심성에 굉장히 어울리는 거죠. 그러면서 이제 선교 그러면 성령의 역사가 동반되지 않으면 선교는 불가능하다 라고 하는 좋은 확신이 생겨나게 됩니다. 긍정적인 면들은 지금은 이따가 말씀드리겠지만 거의 사라졌습니다만 한국교회의 신앙이 그래도 그렇게 오랫동안 복음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런 성령의 역사를 죄에 대한 심오한 회개와 연결 짓는 복음적인 관점을 최소한 80년대 말까지, 90년대 초까지 한국 교회가 굉장히 강하게 붙들고 있었던 거예요. 그랬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 제 기억으로도 교회만 가면 목사님이 그렇게 회개하라고 그랬어요. 회개하라고. 지금은 들어볼 수 없는 추억의 목소리들이 되고 말았습니다마는. 그렇게 되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측면이 뭐냐 하면 이러한 성령 중심의 선교 운동이 객관적인 성경에 대한 중심을 상당히 많이 놓치게 만들었고 그리고 신비주의적이고 미신적이고 은사오용적인 면으로 흐르는 면들이 상당히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특별히 성령 그 자체를 어떤 한 사람이 전유하고 있는, 전유물인 것처럼 그래서 사람들에게 막 나누어주는 한창때는 내가 성령을 주노니 이렇게 담대하게 외치던 부흥사들도 많았거든요. 이런 개인의 은사화하는 이런 부정적인 측면들을 가져오게 되었고 이런 극단적인 성령체험을 강조하는 것들이 유행하게 되면서 건전한 삶과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의 지적 사고에 대한 강조점을 많이 놓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한국 교회가 남긴 유산은 복음 중심의 신앙이에요. 참 재미있는 게 말이죠. 한국교회의 자유주의의 뿌리는 굉장히 오래입니다. 이미 벌써 1920년대에 있어났던, 제가 지금 정확하게 년도 기억 못하겠는데 1920년대 후반 내지는 1930년도 초반인데요. 소위 이야기하는 아빙돈 사건을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아빙돈에서 나오는 책들을 번역을 했는데 거기에 나오는 내용이 성경의 영감을 해치는 내용이 들어있어서 한국 교회에서 문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번역자 중에 한 사람이 돌아가신 한경직 목사님이어서 공격을 많이 받으셨었어요. 그런데 그런 일들이 있게 됐는데 이후로도 상당히 면면히 그게 내러옵니다. 자유주의 신학이, 그리고 특히 일제 치하에서 이제 신학이 정치적인 판단과 연결되기 때문에 그러면서 이제 자유주의에 대한 신학적인 입장들이 갈리면서 여러분도 알다시피 성경 영감설도 갈리고 조선신학교 평양신학교 나누어지게 되고 이후에도 WCC 문제를 가지고 나눠지게 되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이제 참 재미있는 건 뭐냐 하면 그건 다 위에서 목회자들끼리 하는 이야기이고 한국교회 교인은 어느 교인이든지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는 신앙은 요동치 않아요. 심지어 김주병씨가 편찬이라고 되어있는 개혁 한글 성경만 영감 됐다고 믿는 거예요. 그래서 한국 교회에서 성경을 한 삼십년 지나면 바꿔야 되잖아요. 이게 안되는거에요. 지금도 표준성경 나오니까 쓰자고 그러는데 안 바꿉니다. 어떻게 성경이 바뀔 수 있느냐. 그래서 하나의 성경을 강조하는 거예요. 이게 어떻게 바뀔 수 있느냐.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원본 사본 무슨 사본학 비평학 이런 거 모르고 그냥 번역된 새까만 성경책 이거는 하나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예요. 찬송가는 바뀌는 걸 인정을 해도 성경은 이걸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이러한 전통이 내려오게 되었던 거죠. 그래서 재미있는 사건이 뭐냐 하면 신학적으로 자유주의를 배웠어도 그냥 신학만 할 때는 자기주장을 고수할 수 있는데 목회를 하려고 가면 평신도들이 그 사람의 신학적인 신념을 익스프레스를 못하게 만드는 거죠. 우린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싶습니다.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그래야지. 이게 창세기는 누가 편집했는지 모르고 모세는 절대 아니고 그 다음에 시편은 어떻게 짜깁기가 되고 이런 식으로 설교를 하면 교인들이 당장 들고 이어나는 거죠. 이런 정도로 한국 교회가 복음중심적인 신앙을 그래도 가지게 된 것이 이러한 한국 교회의 유산이라면 유산일 수 있다 이렇게 보는 거죠.
그 다음에 네 번째가 이제 관건인데요. 성장 중심의 목회에요. 그래서 이제 이것은 두고두고 한국교회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는 대목인데 아시는 바와 같이 1960년대와 70년대 말까지 한국교회가 강력한 경제 성장 제일주의을 이룹니다. 그래서 여러분 알다시피 헝거 익스포트라고 해서 기아 수출정책까지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 자라면서 김, 오징어 이런 거 별로 못먹었지않습니까. 다 파느라고. 그렇게 해가지고 외화를 획득해가지고 그걸로 수출하고 건설하는 일들을 했어요. 그런데 그때에 한국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죠. 그렇게 경제적인 성장을 이룩하는 속에서 가난에서 벗어나고 어느 정도 경제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고 또 정치와 사회발전을 이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이 급속한 발전이 바로 이 경제 성장의 급속한 발전 시기와 딱 맞아떨어진다는 것은 아주 재미있는 발견이에요. 전체적인 통계를 제가 기억은 못하겠습니다만 순복음교회 하나를 예로 들 때에 70년대와 80년대 사이에 순복음교회가 매년 190%씩 성장했답니다. 190%씩. 그러니까 매년 교회가 두 배씩 된 거에요. 그런 발전은 다른 교회에서도 늘 있는 일이었어요. 굉장히 엄청난 교회의 성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이제 어떤 것들이 있냐하면 사실 근대화의 과정에서 사람들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긴장과 희생 울분 이런 것들이었거든요. 그래서 치열한 산업사회로 들어가면서 자기 노동을 가지고 먹고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시기죠. 그래서 전 지금도 또렷이 기억을 하는데 저 초등학교 다닐 때 방직 공장에 다니는 여직공들이 열여섯 시간씩 일했어요. 근무시간이 열여섯시간입니다. 열여섯 시간. 월급은 얼마 됐는지 내가 지금 정확하게 기억은 못하겠는데 하여튼 근무시간이 열여섯 시간. 그렇게 해서 쌓인 모든 고뇌와 울분과 설움을 이제 예를 들면 철야기도에 가서 확 쏟아놓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에서 적절히 힐링을 받는 거예요. 예를 들면 ‘그래 이 세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잠시 머물다 지나가는 더러운 세상이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참자.’ 그리고 용기를 얻는 거지. 아무리 더러워도 벌어야 밥은 먹고 사니까. 그리고 출근을 하는 거지. 그리고 ‘반드시 나를 성공시켜 주실 것이다’ 하는 기복신앙적인 것 하나님이 반드시 나를 성공하게 해주실 것이다 하는 그런 거요. 그런 기복신앙 같은 것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교회는 강력한 성장 드라이브로 가게 되는 거죠. 여러분 알다시피 경제발전 제일주의는 성장 제일주의를 가져왔고 모든 것은 수치와 규모로 환산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교회의 목회에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미국에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데이비드 웰즈의 설명에 따르면 19세기 중엽까지 미국에서는 목사가 누구냐에 대한 아이덴티티에 대한 컨센서스가 있었대요. 그게 뭐냐 하면 진리를 전달해주는 사람이다. 그러한 목회자의 아이덴티티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목회자의 높낮이가 없는 거예요.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시죠? 큰 교회를 목회한다고 해서 높이보거나 작은 교회를 본다고 해서 깔보거나 그런 게 없는 거죠. 그러니까 기본적인 교육은 받아야 됐으니까. 그러니까 이제 한국을 기준으로 본다면 사실 그것은 1960년대 초까지는 유지가 되었다고 봐요. 왜냐하면 폭발적인 성장이 있고 나서 교회 규모와 목회자의 디그니티가 서로 연결이 되는 풍조들이 생겨나게 되거든요
여기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작용하게 되는데 경제발전 제일주의의 영향이고 또 하나는 뭐냐 하면 70년대에 급속한 교회 성장이 있으면서 무인가 신학교들이 난립하면서 목회자의 자질에 대한 검증할 수 없는 체제의 무너짐이 있었어요.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그런 무자격 목회자들을 보면서 받은 그런 평가를 상당히 많은 목회자들에게 적용을 하게 되는 효과를 가져오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성직에 대한 신뢰도가 많이 떨어지게 되는 거죠. 그 외에도 성직자 자신의 도덕적 수준의 저하라든지 이런 것들도 사실은 이야기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제가 신학교에서 오래 가르치면서 보면요 확실한 거 하나는 이거에요. 공부 잘한다고 해서 진실한 목회자가 아니고 못한다고 해서 모두 가식스런 그런 목회자는 아니에요. 그런데 확실히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능력 있는 목회는 몰라도 보다 많은 프로티지가 상식 선에서 목회를 해요. 그런데 지적 능력이 현저하게 모자라는 사람들 중에서 상식을 일탈하는 목회자들이 많이 나와요. 비율이 높아요. 그래서 이거는 심각한 반성을 요하는 대목이다 이렇게 저는 여겨지는 겁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한국 교회의 성장에 대해 이번에는 평가를 해보겠습니다. 우선 긍정적인 면으로 보자면 사실 처음 복음이 들어왔을 때에는요 아랫것들이 믿는 신앙이었어요. 아랫것들, 아주 낮은 애들, 천한 사람들이 믿는 신앙 이렇게 여겼던 거죠.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거의 없어요. 심지어 뭐라 그러느냐 하면 불신자들은 예수 믿는 놈들은 지들끼리만 해먹는다. 왜냐하면 운전수들이 모인 곳에 가면 운전기사 선교회가 있고 미용사들이 모인 곳에 가면 미용선교회가 있어요. 그리고 환경미화원들이 모인 곳에는 환경미화원 선교회가 있구요. 제가 직접 그 사람들 만났는데요. 장관 차관 대통령 차 운전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말하자면 국가 지도자 운전기사 선교연합회를 만들었어요.
코미디언은 코미디언 선교회가 있고 그 다음에 배우들은 탤런트 선교회가 있고 그리고 정보통신부에는 정보통신부 신우회가 있고 청와대는 청와대 신우회가 있고 사람 있는 모든 곳에 그게 있어요. 직장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하는 게 그거 조직하는 거예요. 그런 점에 있어서는 기독교 전체를 확산시키는 아주 좋은 역할들을 한 거라고 보는 거죠. 그리고 이제는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에 이르기까지 어느 분야에서도 기독교인들이 중심을 이루지 않고 있는 부분이 없다 이러는 거죠. 그런데 이제 그러면서 많은 헌신적인 삶, 아까 우리 김상복(?) 목사님 말씀하셨듯이 성도들이 아주 헌신되어 있는 거예요. 그런 것들을 이제 유산으로 남겨준거에요. 그러나 그 헌신의 방향을 올바로 잡았느냐는 방향에 대한 평가 문제는 아직까지도 퀘스천 마크로 남는 거지만요. 그리고 이제 부정적인 면은 우선 몇 가지만 들겠습니다.
첫째는 뭐냐 하면 정신적이고 영적인 것들의 계량화에요. 그래서 경제개발의 논리와 함께 계량주의가 도입되면서 정신적이고 영적인 것조차 수량으로 표시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경건은 성경 지식에 의해서 그 다음에 하나님의 사랑은 헌금 액수에 의해서 목회자의 영적 능력은 치유된 환자에 의해서 그리고 목회의 축복은 교회가 가지고 있는 퀀티티에 의해서 규모에 의해서 결정이 되는 거죠. 이런 목회 풍조는 명백하게 거룩한 교회 풍조를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게 만든거에요. 그리고 크고 많은 것 강한 것이 좋은 것이라는 사고는 사실 성경적으로 바벨론적이거든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관점은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맺는 영적인 관계 속에서의 하나님의 통치의 현재적인 실현에 있어요. 예수님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원하셨던 하나님의 왕국의 도래도 사실은 그런 식으로 설명을 해야 되거든요. 각자 각자가 그리고 공동체적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고 그 분의 통치에 굴복하는 굴복할 수 있게 하는 영적인 생명을 공급받는 그런 가운데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통치의 현실화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이거든요. 이것은 사실 꿈꾸는 것은 범위적이긴 하지만 그러한 꿈꾸는 범위의 실현을 위해서 그것이 확장되는 그 모습 자체가 양적인 것을 지양해야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보십시다. 캄캄한 밤바다에 풍랑 주의보가 내려서 항해하던 수많은 배들이 갈 바를 모르게 되었어요. 그들이 안전한 포구로 돌아오기 위해서 수천발의 조명탄을 쏴서 해변을 대낮과 같이 밝힐 필요는 없는 거예요. 물론 그렇게 해도 되겠죠. 그런데 그렇게 할 필요는 없고 등대 하나만 제자리에서 정확하게 깜박이는 빛을 비추면 그것을 보고 수많은 배들이 항구로 피하는 거예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그러셨거든요. 빛은 다수였던 때가 없어요. 어두움이 다수지. 스코티아가 다수지 빛이 다수인 적은 없어요. 극서이 주님이 바라보시는 이 세상에서의 교회의 역할이에요. 그런데 보십시오.
죄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부터 인간은 하나님을 본뜨기 시작하는 거예요. 인간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본뜨게 되어 있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가 자기의 책 속에서 이런 고백을 남기죠. 인간은 어차피 하나님을 본뜨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어차피 하나님 당신을 본 뜰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면서 몇 가지 예를 드는 데 그 중에 하나가 인간의 사치를 생각해보십시오. 사치는 모든 것을 무한히 넉넉히 가지고 있는 것처럼 쓰는 것이 사치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진정 사치하신 분은 하나님뿐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것을 본뜨는 것을 사치라고 부릅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높으심을 본뜨는 것이고 그리고 사람에게 복수를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자기가 실행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든지 인간은 하나님을 본 뜰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타락하면서부터 인간이 굉장히 선한 방식으로서가 아니라 악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본뜨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더 많이 보편화시키는 거예요. 더 높이. 그래서 바벨탑을 쌓는 것이고 그리고 교만해지는 거죠. 그래서 모든 것 위에 권위를 내세우는 거죠. 이런 풍조들이 교회 속으로 들어 오는 게 70년대 개발 논리를 통해서 교회 속에 들어오는 거예요. 세속화 되어가는 현상들이에요. 사실 이것은 바벨론의 가치이고 교회는 바벨론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부름 받은 공동체가 아니라 예루살렘적인 가치관을 추구하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예요. 예루살렘의 가치는 나라가 커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시, 하나님 자신의 임재와 통치 쉐키나를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보여주어서 그것들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앎으로 돌아오도록 만들어 주는 것 그래서 그들도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의 가치이고 이런 이스라엘의 가치를 신약에서 기독교회가 계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굉장히 멀어진 측면들을 이 성장주의가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목회자에 대한 비성경적 절대화에요. 그,래서 이제 성장제일주의적인 교회의 분위기는 필연적으로 기복신앙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성경적으로 볼 때 영적인 축복과 일반 섭리의 복으로 나뉘어요. 일반섭리의 복은 말하자면 설명을 하자면 영적인 축복의 내포로부터 퍼져가는 외연이에요. 이 두 가지는 나누어지지 않고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는 거거든요. 그러면 다시 설명을 하면 내적인 영적인 축복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순종하는 삶의 전개의 과정을 통해서 일반 섭리의 복으로 결과가 오고 그리고 일반 섭리의 복들의 핵심은 거슬러 올라가보면 하나님과의 평화에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런 것들이 아주 강하게 단절이 되는 거죠. 그래서 영적인 축복은 개량화 할 수 없어요. “나 어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경험했어.” 그러는데 그게 크기가 얼마큼이었는지 설명할 수가 없거든. 그게 몇 도 였어 말할 수 없거든요. 우리 교회에서 재미있는 조크가 있었는데 “어제 하나님이 나를 만져주셨어”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물어봤대요. “ 어딜 만져주셨어?” 하나님의 영적인 축복은 계량화할 수 없고 장소화 할 수 없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변질되게 된 거죠. 그렇게 하면서 현실적으로 계량화할 수 있는 복들을 추구하게 되었고 영적인 축복조차 이러한 행복을 위한 준비적인 도구들로 이해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부흥이 잘못되게 흘러가면서 목회자 자신을 이런 것들을 연결해주는 샤만적 존재로 이해를 하게 된 거예요. 샤만적 존재로. 이제 한국의 토속적 종교와 많이 얽히는 거죠. 그러다가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냐 하면 80년대에 들어서면서 교회의 성장이 멈추면서는 이제 교회를 예전에 가지고 있었던 목회자의 카리스마적인 기준보다는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는 목회자의 경영능력이 그 사람의 평가하던 기준인 7,80년대의 카리스마를 대체하게 되는 거예요. 무슨 뜻인지 이해가시죠? 그래서 일단 교회가 계속 성장하고 있는 동안에는 제가 알기로는 성장하고 있는 동안에는 교인들이 “당신 오고 나서 교회는 성장했지만 교인들이 기도를 너무 안한다. 목회자 자리를 비워다오.”
“교회는 계속 성장하고 교인들은 늘어났지만 당신의 설교는 진리로부터 너무 멀어졌다.” 당신의, 미국말로 말하자면 임플로이 한 것을 재고해야 되겠다. 이렇게 말하는 교회는 거의 없어요. 항상 갈등은 성장이 스탑됐을 때 거기서 이제 갈등들이 생겨나게 되는 거죠. 더군다나 줄기 시작할 때는 심각한 갈등이 생겨나게 되는 거죠. 이런 풍조들이 이제 생겨나게 된 거에요.
셋째로는 이제 교회의 세속화에요. 우리들은 이 세큘라리제이션이라고 하는 세속화를 어떻게 이해를 합니까? 이게 사실은 형이상학적으로 설명을 한다면 세속화는 단순히 죄를 짓고 세상을 따라가고 그런 것이 아니에요. 모든 가치 판단과 존재 질서에 있어서 중심점이 하나님이 되셔야 할 자리에 인간을 대치하는 것이 세속주의에요. 그래서 여러분 이런 말씀 드리면 아주 이상하다 말씀드릴지 모르지만
저는 경건하면서 세속적인 목회자들을 자주 만나요. 그러면 어떻게 경건하다는 말과 세속적이라는 말이 중복될 수가 있느냐 그거죠. 목회를 하면서 돈에 대한 욕심도 별로 없어요. 그리고 자기 자식에게 교회를 물려주고자 하는 욕망도 별로 없어요. 한 마디로 이야기해서 사심이 없어요. 쉼 없이 기도해요. 교회를 꾸려가요. 그런데 뭐냐 하면 사고의 중심점이 하나님이 아니에요. 그 전도지는 제가 직접 봤거든요. 벌써 한 십 년 전 일입니다만 ‘저희 교회에 천 명의 사람을 데려다 주시는 분에게는 아파트를 한 채 드리겠습니다’ 아파트를. 진짜에요. 그리고 어느 날 교회 로비에 가보니까 승용차와, 어떻게 열고 들어왔는지 몰라, 문을 좀 뜯었겠죠. 그래서 자동차 쇼룸처럼 크고 작은 자동차와 오토바이 쫙 비치되어 있는 거예요. 저 쪽서부터 전도 1등,2등, 3등, 4등, 5등, 6등 쫙 되어 있는 거예요. 더 가슴 아픈 이야기 해줄까요? 제가 알고 있는 교회는 성도들이 전도를 하자고 해도 안 나오니까 유급전도자를 고용을 해서 일정급여를 아주 낮게 주고 생활이 안 될 정도로 한 사람을 데려다가 앤롤 시키면 인센티브를 곱하기 얼마 해서 주는 거예요. 여러분은 지금 웃으셨죠. 웃으신 저 분은 담임 목회하신 분이 아니야. 담임 목회하면 그렇게라도 해야 되겠다 라는 유혹이 오는 거예요. 이번에 제가 미국에서 온 목회자들을 만나면서 슬픈 이야기를 들었는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일어나면서 직격탄을 맞은 것이 미국 LA의 교회라고 그럽니다. 전에는 50명이 모이면 교회가 현상유지가 됐는데 이제는 150명이 모여야 현상유지가 된답니다. 그럼 50명 모이는 교회들은 어떻게 되냐 하면 문을 닫는다는 거예요. 닫는 이유가 뭐냐 하면 목사님 사례비 안 받는 건 어떻게 견디겠는데 랜트비가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문을 닫는 거예요. 그렇게 될 때에 뚜렷한 신학이 없으면 뭐는 못하겠어요? 살아남아야지 전도를 하든 뭘하는 할 거 아닙니까. 이러한 현상들이 세속화의 측면이에요. 하나만 더 예를 들어보죠. 오늘날 한국에서 굉장히 유행하는 게 힐링 미니스트리죠. 치유 목회죠. 모든 치유 목회를 제가 다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이에요. 아니에요. 그러나 이제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기본적인 사유?)의 근간이(57:55) 인간의 고통의 문제에 대한 신학적인 이견이 생겨나기 시작한거에요. 성경적으로는 인간의 고통의 문제는 죄의 심프틈이에요. 예를 들면 내가 감기 바이러스는 보지 못하지만 기침을 콜록콜록하고 콧물이 나오면 아 내가 몸살이구나 감기구나 라고 생각을 해서 콧병약이나 목구멍 약을 사는 게 아니라 감기 바이러스 죽이는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는 거예요. 그리고 땀 빼고 나면 그 다음날 건강해진다 이 이야기에요. 그런데 이제 이런 기본적인 성경의 골격을 이루어오던 인간관의 중대한 변화가 일어난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지금 고통을 받고 이러는 것들은 환경의 책임이다 그래서 심지어 인간이 죄를 짓는 것조차도 그 자신이 부모로부터 잘못된 유전자를 받고 왔고 또 유전자가 발현되지 않도록 사회가 충분히 돕지를 못했고 또 가정이 충분히 그것을 도와주지 못했기 때문에 발현되었을 뿐이다 그게 어떻게 그 사람의 잘못이냐 그런 점에서 그 사람은 상처받은 사람이다 그렇게 접근을 하는 거예요. 그런 것들이 결국은 영향 자체가 건전한 신학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현대 심리학의 영향을 받은 새롭게 조성된 인간관이 신학의 논리를 거칠게 파고 들어와서 나온 결과에요. 그런데 이런 것들에 대한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진지한 이해와 평가가 없이 일단 사람이 모이고 어떤 사람에게 가시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되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거예요. 무비판적으로. 그렇게 받아들이고 나니까 목회 현장 자체가 일관성 있는 신학을 중심으로 하는 목회가 어려워지는 거죠. 이런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오늘날 이루어지고 있는 사형제 반대론들도 지금 벌서 유럽에 있는 나라들에서 우리나라 협박하고 있잖아요. 통상문제로까지 번져서. 아마 집행을 못할 거다 이렇게 생각을 해요. 그것도 결국 이런 인간관을 깔고 있는 거죠. 이걸 교회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그릇된 인간관을 유포시켜 나가는 거죠. 이렇게 되면서 결국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목회의 탈신학화가 이루어지는 거죠. 한국교회의 성장주의의 제일 큰 문제는 이제 신학의 기준들을 무시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제는 예배드리는 양식이나 교회의 질서들을 보고는 이게 침례교회인지 장로교회인지성결교회인지 감리교회인지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거죠. 교파적 특성은 사라져가고 있는 거죠. 그리고 이제는 목회를 할 때 젊은 사람들 의식 속에 교파를 내세우는 목회를 안 하고 교회를 내세우는 브랜드 목회를 하려고 하는 거죠. 그러면 그것이 목회에 훨씬 더 도움이 된다. 그렇게 보는 거죠. 이런 현상들이 이제 일어나게 되는 거죠. 그러면 이제 이십일 세기 세계 속에서 마지막으로 한국 교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되겠느냐 하는 것이죠. 우선 첫째는 개혁주의 신학과 청교도 전통의 부흥이 필요하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말씀드린바와 같이 신학을 무시하면서 교회는 성장화 과정을 밟아왔거든요 그런데 이제 우리 목회자들이 잊지말아야할 사실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예전에는 교인들이 편의주의적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교회에서 교리를 안 가르치고 신학을 무시해서 사도가 말한 것처럼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이렇게 말하지를 않고 은과 금은 교회에도 있나니 이렇게 말하면 교인들이 모이는 시대는 지났다는 거죠. 그래서 내가 여러분에게 목회자도 계시고 신학교 선생님도 계실 텐데 정직하게 저의 질문에 답을 한 번 해보십시오. 여러분 주위에 있는 교회들 중 여러분이 동의하실 수도 있고 안하실 수도 있지만 그것하고는 상관이 없이 여러분들이 주위에 있는 교회들 중에서 신학을 버렸기 때문에 그 이유 때문에 사람이 많이 모이고 성장한 교회가 어디 있는지 한 번 꼽아보십시오. 실제에 있어서는 없어요. 그럼 여러분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겠죠. 조엘 오스틴의 교회 같은 경우가 그렇지 않겠느냐 그러는데 조엘 오스틴은 사실 신학을 버렸기 때문에 사람들을 모았다 그러기 보다는 그 특유의 퍼스넬리티 그리고 말재간 그의 독특한 현대인의 코드와 맞는 신영지주의적인 사고와 신번영주의적인 사고와 신번영주의적인 사고가 아직까지 미국에 남아있는 성공주의적인 사고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그렇게 성장을 한 거라고 나는 보거든요. 누가 저보고 그래요. 제 책을 읽은 독자가. 조엘 오스틴이 어떤 사람이냐 신학이 뭐냐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시간이 없어서 그 긴 이야기를 내가 할 수 없는데 그가 그리스도인이면 내가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그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내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하나는 명심해두셔야 될 것이 있어요. 지금 미국을 중심으로 신번영주의가 일어나고 있거든요. 이게 신기복주의라고도 저는 표현을 하는데 신번영주의가 일어나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제 아셔야 될 것은 70년대 한국을 휩쓸었던 번영주의하고는 완전히 다른 변종이에요. 70년대에 한국을 강타했던 번영주의는 가난에서 해방되어서 인간적인 기본권을 누리기 위한 번영의 갈구였어요. 그러나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은. 지금의 이 번영주의는 그런 번영이 아니라 인간의 자아 자체를 플리하게 엑츄얼라이제이션 하려는 그러한 종교적인 번영주의에요. 그래서 번영주의를 주창하는 미국의 대부분의 설교자들의 사고가 영지주의와 만나고 있는 이유에요. 곁가지로 나갔습니다만 그럼 영지주의 사고가 여기 왜 툭 튀어나오냐 그러게 되죠. 자 그러면 조금만 밖으로 나가겠습니다. 여러분들은 근대의 시작이 데카르트 부터라는 것은 아실거에요. 데카르트는 전혀 독창적인 철학자는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런데 중요한 분기점을 만들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이전에 있었던 모든 쏘우트Thought 사고 시스템이 존재론 중심이었어요. 그래서 신이 중심에 있고 그리고 그 주위를 인간을 포함하는 모든 것들이 객체가 되어서 도는 거예요. 그러니까 누구도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절대라고는 말할 수 없는 시대였어요. 그러다가 이 사람이 이 존재론을 확 바꾸어서 인식론 중심으로 돌려놔요. 그래서 객체로 밀려놨던 나를 중심에 놓고 신神도 자기중심을 돌고 있는 객체 중 하나로 놓고 돌아가는 거예요. 이렇게. 그래서 그가 뭘 이야기합니까.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고 말하죠. 그것도 사실은 자기 것이 아니라 명백하게 아우구스티누스를 채용한 거거든요. ‘씨뽈로 뽈리오르 에루구숨’ ‘만약에 내가 오류에 빠진다면 나는 존재한다’ 똑같은 거죠. 그리고 거기서 ‘사유한다’라는 ‘꼬기따래’라는 말이 그게 그냥 생각한다라는 말이 아니라 의심한다 라는 말이거든요. 모든 것은 다 의심한다. 마지막의 끝까지 의심해갈 때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사실 팩트Fact 하나만 남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 이것은 부인할 수가 없는 거예요. 거기에서 존재의 근거를 찾는 거예요. 이러면서부터 근대 이성주의가 들어오면서부터 여러분들 알다시피 칸트, 프리드리히, 헤겔, 니체 이런 사람들이 쭉 나오잖아요. 그러다가 무슨 일이 있게 됐냐하면요
이제는 이성주의 자체를 가지고는 만족하지를 않고요 왜냐하면 이성이 왕좌에 등극을 해보니까 그래서 이성이 꽤 신뢰할만한지 알고 하나님 대신 섬겼는데 그 결과가 일차대전 이차대전 그 다음에 수많은 빈국들의 출현 독재자들의 억압, 모순된 환경 파괴 이런 현상들이 이십 세기에 다 노출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여러분 알다시피 이차대전이 끝날 무렵 즈음 돼서 데땅뜨니 파괴주의 디스트럭션 데까당스 문학적으로 이런 것들이 사조들이 막 일어나면서 기존의 체제들을 부인하는 운동들이 일어나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모든 모럴 시스템 소위 이야기하는 모럴을 가능하게 하는 소트 시스템들이 다 기득권층이 다 인간을 억압하기 위해 형성해 놓은 기존 질서라는 거죠. 그래서 사르트르 같은 사람이 등장을 하면서 뭐라고 그럽니까. ‘나의 평생 과업은 진리라고 하는 모든 것들을 허물어뜨려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면 인간 존재는 뭐냐 이거는 완전히 있을 필요가 없는 잉여적인 존재다 하이데거가 이야기하는 던져진 존재지만 자기의 존재 근원을 물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그것이 놀랍게도 포스트모던 시대를 여는 놀라운 단초를 제공하는 거죠.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이 갓GOD 하나님이에요. 그러면서 화란에서 정죄를 받고 그리스도인이었는데 출교됐습니다. 익스커뮤니티 됐어요. 그게 뭐냐면 스피노자라는 사람의 사상이 다시 놀랍게 떠오르는 거예요. 그 사람의 사고가 뭐냐 하면 우주 전체가 신성에 의해 에워쌓여있고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는 바로 그 하나의 일자로 환원하는 존재다. 그러니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거기에서 찾아내는 거예요. 또 기독교 전통 속에 보면 데이삐까찌오 라고 하는 신화의 교리도 나와요. 이런 것들과 만나면서 기독교의 사상이 확 섞이는 데 이런 것들에 대한 사상적인 기반들 골격들이 영지주의가 딱 맞아떨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막 각광을 받는 겁니다. 이런 속에서 이런 시대정신이 교회를 심각하게 막 파고들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은 게 이거에요. 오늘 한국 교회에서 70년대까지만 해도 고전적으로 들려지던 그 선포 리펜트Repent 회개하라 오알or 페리쉬Perish
회개하든지 멸망하든지 둘 중 하나. 네가 오늘 정말 주님 앞에 네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믿을 것이냐 말 것이냐. 그런 분명한 외침이 우리에게 지금 남아있습니까. 나는 거의 완벽하게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러니까 어떻게 되죠? 고전적으로 볼 때 목회의 영광은 회심이에요. 신학적으로 회심은 리제너레이션Regeneration의 펄스트first 익스프레션Expression이에요. 중생한 상태의 영혼이 최초로 활동을 해서 움직여서 인간의 의식 세계 속에서 시공간 안에서 형체를 드러내는 것이 그게 바로 컨벌젼Conversion 이에요. 그러면 그것 없이는 구원이 없는 것 아닙니까? 지금 제가 이 문제를 말씀 드리면서 이 속에서 피가 끓어요. 피가. 지방에 있는 어느 도시로 제가 설교를 하러 내려갔어요. 몇 천 명 모이는 교회였어요. 거기에 담임 목사님은 없고 부목사님 몇 분이 나를 맞이했어요. 그리고 교회를 자랑하기 시작했어요. 우리 교회는 몇 천 명이 모입니다. 목사님은 최근에 이 도시에서 한창 스타처럼 뜨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계속 몰려옵니다. 저는 나쁘게 생각한 적 없어요. 그걸 싫어하는 목회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물었어요. 당신이 신학공부를 어디서 했습니까? 당연히 총신에서 했지요. 그러면 총신의 학생들은 그렇지 않아도 아직까지 교수님들은 에반젤리컬Evangelical하게 가르치고 그중에 교수님 몇 분은 오늘 오신 캐빈 교수님 같은 분들은 철저하게 리폼드 띠알러지Reformed Theology를 가르치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내가 물어봤어요. 너 회심이라는 것을 아냐 그러니까 안대요. 그러면 예외가 있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성인의 경우 컨벌젼 없이 구원받을 수 있느냐 없다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네가 목회자로서 양심에 손을 얹고 네가 돌보고 있는 영혼들이 누구냐 어른들이라는 거예요. 몇 명이냐. 오백명이쯤 돌본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중에서 컨벌젼한 사람이 얼마나 되냐 그러니까 트웬티 펄센트Twenty Percent , 트웬티 펄센트 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너는 뭘 자랑하는 거냐. 그대가 자랑하는 목회의 영광, 교회의 자랑이 어디에 있는 거냐. 텔레비전에 많이 나오고 신문에 수시로 나오고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구경하기 위해 드나들면 그것이 글로리 오브 처치Glory of Church냐?제가 한 침을 탁 놨어요. 넌 안 된다. 그렇게 하면. 그건 안 된다. 왜냐하면 목회라고 하는 것 자체가 페스토링하는 거잖아요. 뭘 패스토링합니까. 할드 오브 쉽Sheep 아니에요? 회심하지 않은 사람은 고트Goat야. 쉽이 아니야. 그건 목회가 아니야. 목회가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자신에 대해 분노하기도 하고 이렇게 살아야지 하고 디사이드Decide 하기도 하고 그래야되쟎아요.
두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첫 째는 뭐냐 하면 신자라고 믿어지지 않는 사람은 세례를 주지 말자. 그걸 양보하지 말자. 그가 진짜 본 어게인Born Again 했는지. 확실히 확인을 하고. 그 다음에 두 번 째 본 어게인을 했어도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뭘 의미하는지에 대해 날리지가 없으면 벱타이즈 할 수 없잖아요. 그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된다 이거에요. 그리고 두 번째는 신자가 교회 안에서 철저하게 교리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 그것을 제가 강조하는 겁니다.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이것은 제가 십 칠년 동안 교회를 개척해서 오면서 시종일관 철저히 유지한 원칙이에요. 이것은 안줘요.
우선 그 사람이 본 어게인 한 것을 테스트파이해서 완벽하게 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우리에게 그것이 받아들여져요. 인문학(?)에 되어 있는 카타키스무스 우선 아쉬운 대로 웨스트민스터 쇼트 케터키즘이라도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 까지 완벽하게 외워야되요. 그리고 그걸 시험을 봐요. 그래서 장로님과 목사님들이 있어서 패스 되면 주고 패스 안 되면 안주는 거예요. 그리고 이후로도 계속 진전된 교리 교육을 시키고 그래서 어떻게 하냐 하면 집사 될 때 결혼할 때 교리 시험을 봐야 돼. 그래서 통과돼야지만 시켜요. 왜냐하면 그래야지 태어날 아이에게 가르칠 내용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 다음에 집사가 될 때 다시 교리 시험을 봐요. 그리고 교리를 통과한 사람들은 그 다음에 조직신학을 공부를 해야 돼요. 그래서 중급 교리반에 들어와서 기본 교제가 루이스 베르콥의 시스티메틱 띠알라시 매뉴어르를 가지고 한 학기 동안 공부해서 위클리 테스트 그 다음에 중간 테스트 기말 테스트 해서 그 속에서 90점 이상을 맞아야지만 집사가 될 수 있어요. 그 때 비로소 가르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거예요. 하나 더 올라가면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한 학기 동안 육 사 이십 사 이천 사백 페이지 정도를 공부를 해서 그것도 위클리 테스트 중간 테스트 기말 테스트해서 90점 이상 나와야지만 투표를 해서 당선될 수 있는 위치에 켄디데이트 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거예요. 그리고 그걸 계속 해나가는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책을(구원과 하나님의 계획) 써서 구원론이거든요. 써서 그래서 이걸 공과 공부로 쓰고 그 다음에 성화에 대해 가르치고 싶으면 이런 책을 써서(죄와 은혜의 지배) 그래서 가르치고 이렇게 하면서 신학적인 틀들을 가지고 나가고 그리고 모자라는 것들은 세미나를 열어서 기독교 세계관 그 다음에 현대사상, 복음주의의 역사 흐름, 현대 문화 이런 것들에 대한 이해를 넓혀 가는 방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