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외적 세계와 내적 세계 (2)
녹취자 : 오희열
최근에 책이 한 권 나왔는데 다산 정약용 선생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알다시피 다산 정약용은 유교 전통적인 성리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서학이 들어올 때 실용주의를 표방하고 실학의 길을 택합니다. 전통 성리학자들이 볼 때는 이단적인 생각이었지만 실제로 정약용은 실천이 없는 유교, 특히 성리학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온몸으로 실학에 몸을 던집니다.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실학의 길을 따르게 되고 실학을 추구한 것이 근대화의 문을 여는 사상적인 뿌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정약용이 일생동안 고초를 겪고 유배생활을 하며 학문에 정진하여 다양한 학문을 전공하게 됩니다. 심지어는 어업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농업에 대해서도 공부하면서 다방면의 공부를 하게 됩니다. 공부를 하면서 그 사람의 화두가 무엇이었느냐, “마음지킴”이었습니다. 선비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이황 퇴계 선생의 작품 가운데 이런 책이 있습니다. “성학십도”, 도서관에 있는지 찾아보셔서 두껍지 않으니까 한번 쭉 일어보십시오. 읽어보면 조선시대에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지만 마음을 지키는 것이 모든 학문, 인간의 도리, 심지어는 정치를 펼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도리임을 알고 정통 유학자나 실학을 하던 정약용 등이 씨름했던 것입니다. 사실은 이것은 유학자나 실학자의 삶을 살기 위해 마음을 지키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살아가는 우리 모든 사람의 삶이 뒤 흔들리는 것이 우리의 마음에서 대부분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전쟁이 난다든지 이상한 부모를 만나서 내가 버림을 받는다든지 가만히 길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가 폭력을 행사한다든지 하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이 겪는 일들도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겪는 것보다는 마음에 달린 문제입니다. 전세계에 살인, 전쟁, 폭력, 이런 것으로 죽는 사람이 1년에 60만에서 70만 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은 130만명쯤 되고 자살로 죽는 사람은 300만 명이 넘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테러와 전쟁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해서 죽는 사람의 네 배에서 다섯 배의 사람이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사실 통계로 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자살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자살했지만 숨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보험금이 나오질 않습니다. 외국에서는 자살을 숨겨서 보험금을 받으려고 가족들이 숨깁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OECD국가에서 제일 높은 자살률을 보입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심각합니다. 결국 마지막에는 마음에 달린 문제입니다.
조금 전 몇 사람이 발표를 했지만 사실 자기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특히 어떤 안 좋은 습관 하나에 깊이 빠지게 되었을 때는 쉽지 않습니다. 음악을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음악 자체에 근원적으로 좋은 음악이나 나쁜 음악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어떤 음악은 우리를 차분하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생각을 정돈하게 하는 음악이 있습니다. 요한 세바스찬 바하는 “우리의 마음을 질서롭게 하지 않는 음악, 우리의 정신을 아름답게 하지 않는 음악은 음악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음악에 대한 생각이 거대한 전환을 이루게 되어서 지금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면 그게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음악이 우리에게 미치는 정신적인 영향은 굉장히 큰 것입니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듣던 음악에 대한 기록들을 다 추적해보면 그러한 감정을 계속 격려하는 쪽의 음악들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무한히 좌절과 무기력 속에 빠져들어가게 하는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자신의 심성이 그렇게 변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대로 하는 것과 내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는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나에게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 책을 막 쓰고 있을 때 어떤 독자가 따뜻한 사랑을 담아서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그때는 지금보다도 제 책을 읽어주는 독자들이 훨씬 더 많을 때였습니다. 많은 사랑을 받아서 많이 팔릴 때는 1년에 20만부 이상 팔리기도 했습니다. 1998년, 1999년쯤에 국내에서 기독교 베스트셀러 10권이 나오면 그중에 6권이 내 책이었습니다. 지금도 기록이 있을 것입니다. 그 메일에 좋은 이야기가 써있고 좋은 음악이라고 하면서 음악 파일을 첨부했는데 “Love affair”였습니다. 즉시 답장을 했습니다. “저는 이런 음악은 듣지 않습니다.”하고 마음과 음악의 관계에 대해서 쭉 써서 보냈습니다. Love affair 의 주제가 나쁜 음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때의 나에게 있어서 그런 음악은 나를 한없이 멜랑꼴리하게 만들고 뭔가 무기력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센티해지게 만들어서 너무 좋지 않았고 그런 음악이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실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강력한 답변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달라져서 조 부드러워지긴 했습니다. 그 답장을 본 독자가 충격을 받고 잘못 아닌 잘못을 저에게 고백하는 헤프닝도 있었습니다. 음악도 항상 실험을 해봐야 합니다. 이 음악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말입니다. 모든 것들이 그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문제는 이것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내 마음을 나도 어떻게 할 수 없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안 됩니다. 그것은 자기 인생을 다른 사람에게, 혹은 상황에 내던지고 맡기는 결과가 됩니다. 그것은 매우 나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인생에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마음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제가 회심을 스물한 살에 했는데 열여덟, 열아홉, 스물, 이때에 팝송, 샹송에 거의 매니아였습니다. 거의 모든 음악을 알고 있고 즐겨들었습니다. 그 음악들이 없이는 공부도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스물한 살 가을에 회심을 했는데 며칠 사이에 그 음악이 모두 싫어졌습니다. 그느낌들이 모두 싫어졌습니다. 그렇다고 찬송가만 좋아했느냐, 물론 찬송가를 좋아했지만 그런 팝송의 가사들이 가져다주는 것들, 특히 마리화나를 피우며 듣는 음악들이 있었는데 그런 음악들이 예전에는 나를 그렇게 심취하게 했는데 달라진 것입니다. 마음이 바뀌니까 그런 음악 자체가 싫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식당도 어둑어둑한 식당은 들어가지 않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식당은 햇살이 환하게 비치는 깨끗한 식당, 음식이 좀 맛이 없어도 용서가 됩니다. 맛있으면 더 좋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바뀌면 음악을 좋아하는 것도 바뀝니다. 반대로 그런 것들을 들으면 우리의 마음도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한번 해 보십시오. 그리고 유행가 같은 것보다는 클래식을, 클래식 중에서도 마음에 잘 들어오는 세미클래식이나 소품부터 시작해서 콘체르토, 심포니쪽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세계가 엄청 넓고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학문과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여러분의 전공이 인생이라면 영원한 부전공은 마음, 마음학입니다. 그것을 누구에게도 나 자신의 인생을 맡길 수 없다고 생각하고 내 인생에 내가 주체가 되어서 살기를 원하면 나는 마음에 이끌리는 사람이 되지 말고 항상 마음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삶의 보람이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6페이지의 내적세계와 마음으로 들어가겠습니다.
B. 내적 세계와 마음
7. 인간의 마음은 인간 자신의 내적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또한 인간 자신이 자기의 영혼과 정신의 세계를 이해하게 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인간의 마음이 가지는 신비한 작용이 여기에서 나타난다. 여기서 하나님의 성품(divinity)과 인간의 성품(humanity)가 서로 만난다.
신기한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볼 때 신앙의 자리가 인간의 마음에, 인간의 영혼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 영혼을 돌이키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너희 마음을 돌이키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 은혜와 인간의 주체성이 만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마음에 대해서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8. 인간의 마음은 영혼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이 인간의 의식 세계와 만나기 위해 찾아오시는 곳이며 또한 인간이 자아와 대화하고 하나님과 만나기 위해 돌아가야 하는 곳이다. 이 인간의 마음의 작용의 일관성과 상태는 위로는 영혼의 상태의 반영이며 또한 아래로는 그 마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모든 행동과 삶에 대한 인상이 영향을 주는 곳이다.
지난번에 그린 그림처럼 여기에 인간의 마음이 있고 이 위로는 영혼이 있습니다. 이 마음은 이렇게, 이것이것 자기의 세계라면 영혼이 이렇게 있고 이 영혼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마음이 영향을 받습니다. 영혼의 상태가 나쁘면 마음도 악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다음에 외부세계와 접촉을 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많은 정동들을 경험합니다. 이런 것들이 마음이 많은 행동들을 낳고 외부세계에 대한 반응도 낳지만 반대로 외부세계에서 느끼는 것들을 통해서 감각을 통해서 정동들이 마음에 일어나게 됩니다. 마음은 영혼, 하나님, 그리고 영혼, 세계, 이렇게 끊임없이 흐르면서 인간의 마음은 항상 가변적인 위치에 있게 됩니다. 항상 인생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것은 사람마다 어떤 사람은 의지에 민감한 사람이 있고 지성에 민간한 사람이 있고 감정에 민감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끊임없는 외부세계와의 감각들을 통해서 마음에 정동이 일어날 때 항상 자신에게 훌륭한 점은, 어떤 점에서는 마음을 지키는데 그것이 어려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생각이 많은 사람들은 생각은 많지만 좀처럼 마음을 주지 않습니다. 그런가하면 의지가 뛰어난 사람들은 의지는 강하고 뛰어날지 모르지만 그에 따른 정돈된 생각이나 풍부한 감정은 모자랄 수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감정에 예민한 사람들은 어떤 생각보다는 자기 마음의 원하는 바에 쉽게 이끌리는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을 때는 모두 다 좋은 점으로 발휘되지만 일단 은혜에서 물러나게 되면 자기에게 무거운 짐이 됩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결국 우리의 마음을 잘 지키는 것도 필요하지만 또 하나는 마음의 상태와는 상관없이 우리가 정확하게 지식을 가지고 인간이 누구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마땅하고 나는 내가 이렇게 행할 때 그 결과는 어떻게 따라오는지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마음을 지키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각이 정돈되지 않으면 굉장히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적이 쳐들어옵니다. 풀포기 하나도 없는 사막이고 언덕도 없는 완전한 평지입니다. 저기 지평선에서 적군이 오는 것을 망원경으로 본다면 한 명이 한 발자국 옮길 때의 먼지까지 다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 전쟁이 자기도 별로 가보지 못한 숲속, 울창한 여름이라고 한다면 굉장히 어려울 것입니다. 지형도 잘 모르는데 적군들이 은닉하고 숨을 수 있는 곳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싸움이 굉장히 어려워집니다. 우수한 전력을 가지고 있어도 패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게릴라 전술같은 것이 그런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마음이 어떤 상태에 있는 것과는 별개로 지식을 정확하게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이가 많이 들어도 어린아이와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서 정준호가 학력고사에서 1등이었습니다. 나중에 엄마 정애리에게 울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엄마는 나를 교육하는 데 실패했어. 전국 수석을 했지만 내가 50이 다 되도록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가르쳐주지 않았어.” 하면서 울고 엄마도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지적질을 합니다.
이런 것이 바로 이 마음에 대한 개념들이 안 서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인문학 공부를 하는 것은 성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참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나온 것입니다. 오늘날의 미국이 저렇게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정신사적 이유를 꼽으라고 하면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강철왕 카네기. 이 사람이 그 당시에 록펠러와 함께 세계 최고의 갑부였습니다. 어마어마한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는데 은퇴하고 난 후 그 돈을 오직 한 곳에 다 썼습니다. 사재를 털어 미국 전역에 3300개의 도서관을 짓고 거기를 책으로 꽉꽉 채웠습니다. 갈 데도 없이 가죽공이나 차며 놀던 아이들이 거기에 가서 책을 읽으면서 60년대에 그 책을 읽은 아이들이 청년이 된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공부를 한 것입니다. 도서관 하나가 그렇게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1900년대 초에는 지금같은 강대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그것을 보고 안타까워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하버드 클래식 라이브러리의 전신인 인문학 서고를 만듭니다. 5피트 책꽂이를 내놓습니다. 약 1m50cm 정도 됩니다. 약 60권 정도의 책이 들어갑니다. 고전 중에서 이 책을 읽으면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뭔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고전들을 싼값에 만들어서 대량으로 공급했습니다. 대학을 나오지 못한 사람들에게 적어도 인생과 역사에 대해서 대학을 나온 사람만큼은 스스로 생각할 능력을 키워줄 책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듣고 싶으시면 “하버드의 인문학 서재”라는 책을 읽으시면 됩니다. 굉장히 감동적이었습니다. 이것이 점점 늘어나서 지금 제 방에 있는데 책꽂이 열세 칸 정도 되는, 한 칸에 40권이니까 500권이 넘습니다.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한 10년 전에 그 전체 볼륨을 1200만 원에 구입했습니다. 엄청난 양입니다. 미국에서 시작해서 그리스 로마시대까지 있고 한쪽에는 라틴어가 있고 한쪽에는 영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것을 만들어야 합니다. 미국 도서관에 들어가 보면 초등학교 6학년도 원문으로 읽을 수 있도록 전부 ??을 해 놓고(25:10) 정리를 해 놓았습니다. 그런 데서 나오는 것이 어마어마한 힘입니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지식을 갖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 이런 지식을 갖기가 굉장히 쉽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기본적으로 진리라고 믿고 있고 많은 썰들, 철학과 문학과 역사의 썰들이 있는데 거기서 잘못된 것들을 떼어내고 진짜가 남았다고 한다면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성경과 일치를 합니다. 일단 성경을 잘 공부하고 성경 주위에 있는 신학을 공부하고 신학에서 학문을 더 뻗어나가면서 진리에 대한 확고한 이해를 갖게 될 때 이 지식을 갖게 됩니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도저히 바꿀 수 없는 사람을 하나님이 바꾸십니다.
젊은이 한 사람이 포르노에 중독이 되었습니다. 한 친구가 그 심각성을 지적해주었고 본인도 괴로워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에 그 습관이 없어졌습니다. 어떻게 했느냐고 물으니까 어떤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전의 그 습관은 어디로 갔느냐고 하니까 “모르겠어. 그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면서부터 아무 관심이 없어졌어.”라고 대답합니다. 여기서 깨달은 것은, 우리의 마음은 객관적인 공부와 객관적인 지킴의 대상이 아니라 마음을 끊임없이 하나님께 드릴 때 훌륭한 지식을 얻게 되고 가장 훌륭하게 자신의 마음을 지킬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말입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누구든지 마음에 불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고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9. 마음은 외부세계의 사물에 대하여 수동적이지만은 않다. 마음은 자신 안에서 스스로 상상하고 회상함으로써 새로운 관념들을 만들어 내고 그것들을 또한 다른 것들과 조함하고 분리하여 연결함으로써 외부의 사물의 세계가 전달해 주지 않은 새로운 관념을 만들어 낸다. 또한 외부의 사물세계에는 없는 형이상학적인 이데아나 가치들을 생각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창조적 행위이다. 여기에서 신자의 내면의 역동성이 발휘된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 마음의 작용은 자신에게 조차도 낯설다.
10. 이러한 마음 안에서 육체와 영혼의 수많은 작용들은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져 또 다른 작용을 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구현해 간다. 인간은 마음 안에서 영혼 안에 있는 다양한 힘과 기능들 그것들이 정신세계 안에서 펼치는 수많은 활동들이 질서 있는 스펙트럼을 가지고 그 마음으로 집약된다. 인간 존재의 특이성이 마음 안에서 발견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것이 마음입니다. 사과가 떨어졌을 뿐인데 뉴턴은 거기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찾아낸 것입니다. - 또한 외부의 사물세계에 없는 형이상학적인 이데아나 가치들을 생각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창조적인 행위이다. 여기에서 신자의 내면의 역동성이 발휘된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마음의 작용은 자신에게조차 낯설 때가 있다. 이러한 마음 안에서 육체와 영혼의 수많은 작용들은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져 또 다른 작용을 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구현해간다.
결국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의해서 옷감이 짜여지듯이 인생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낸시랭이 그 남자와 결혼했을 때 그 남자가 그런 사람인 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 무시무시한 사람이었습니다. 금방 불행해졌습니다. 자기 마음을 잘 알면 사람들을 판단할 수 있는 지혜도 갖게 됩니다. 제가 자매들에게 늘 충고하는데 어쩌다가 한 형제를 만납니다. 그 형제가 너무너무 사랑해줍니다. 그가 하는 말이 “나는 널 너무 사랑해. 너 아니면 나는 죽어버릴거야.” 이렇게 말하는 남자와는 절대 결혼하면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옛날에도 그랬을 가능성이 많고 지금 헤어져도 1년 후에 다른 여자를 붙잡고 그럴 사람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하느냐? “나는 너를 정말 안 좋아해.” 하는 사람을 결혼할 것이냐? 그렇진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 하나에 자기 자신을 모두 매몰해버리는 사람에게 인생을 맡기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이것을 가슴에 새기면 됩니다. 형제들도 자매를 만났는데 “오빠, 너무 사랑해. 오빠 없으면 나는 목매어 죽어버릴거야.” 하면 절대로 결혼하지 마시고 다른 친구를 소개시켜 주십시오. 그렇게 해서 행복이 얻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네가 나를 사랑한다고? 조금 생각해볼게.” 하고 돌아와서 “나도 널 참 좋아해. 잘 맞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한번 살아볼까?” 하는 사람들이 더 믿을만합니다. 지난 학기에 학생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충격받을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보다 세 배쯤 더 살아보고 내린 결론입니다. 절대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좋지 않습니다. 항상 냉정하게, 자기 판단이 살아있고 그 판단을 중심으로 감정이 확장되는, 의지가 행사되는 삶을 택해야 합니다. 나의 가치관의 닻을 어디에 내릴 것인가, 이것을 잘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때에도 좀 늦었지만 사실 중고등학교 때가 너무 중요합니다. 그때부터 이런 강의를 들으면서 마음을 스스로 지키면서 인간이 자기 자신의 주체가 되어서 살아가는 훈련을 청소년기에 들어서자마자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이 일평생 가는 것입니다.
11. 감각 세계에 대한 인간의 경험과 기억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첫째로, 인간은 육체의 감각기관들을 통해 외부의 사물들을 접하게 되고 그것들은 사물에 관한 정보들을 인간의 정신에 전달한다. 그리고 이것을 가리켜 감각이라고 한다. 둘째로, 이렇게 전달된 정보들은 인간의 정신 안에서 해석의 작용을 거치게 되는데 아직 그 사물에 대한 명료한 지식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의 덩어리를 소유하게 되는 것을 가리켜 지각이라고 부른다. 셋째로, 이 지각을 질료로 사용하여 지성 안에서의 해석 작용을 통해 사물들을 인식하게 된다.
나이가 든 경우에도 마찬가지겠지만 어렸을 때는 외모에 관심을 많이 가집니다. 물론 외모가 중요합니다. 외모가 없으면 케미가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케미스트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랑에 빠진다고 할때 정신적인 면이라면 한참 교제를 해봐야 하는 것이고 외모에서 나오는 때가 많을 것입니다. 일단 깊이 사랑에 빠지고 나면 외모는 그렇게 중요한 펙트가 되지 않습니다. 찰스 황태자를 보십시오. 그 사람뿐만 아닙니다. 사랑에 빠지고 나면 외모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가 청년들에게 항상 말하기를, “외모를 너무 따지지 말아라. 외모는 유효기간이 6개월밖에 가지 못한다. 연애할 때, 그리고 결혼하고 6개월 정도까지는 작용을 할지 모르지만 일단 좋아하고 나면 외모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더니, 어떤 자매가 결혼하고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목사님의 설교 중에서 틀린 것이 있습니다.”, “뭔데?”, “외모의 유효기간은 6개월이 아니에요.”, “그럼 얼만데?”, “제 경험에 의하면 4박5일이에요.” 신혼여행 가서 싸운 것입니다. 그럴 것입니다. 일평생을 소설처럼 살 사람을 찾지 말고 친구처럼 지낼 사람을 찾는 것이 슬기로운 것입니다. 정말 지혜로운 청년들은 연애할 때는 그림같은 자매들을 만나서 연애하고 결혼할 때는 성격이 너무 좋고 신앙이 좋은 자매에게 장가를 갑니다. 바보들이 그 반대로 합니다. 그래서 고생을 합니다.
감각세계에 대한 인간의 경험과 기억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첫째로 인간은 육체의 감각기관들을 통해 외부의 사물들을 접하게 되고 그것들은 사물에 관한 정보들을 인간의 정신에 전달한다. 이것을 가리켜 감각이라고 한다.
감각은 우리의 눈, 코, 입, 귀, 피부, 이런 것들을 통해서 외부의 세계와 접하고 그것 이외에는 외부의 세계와 접할 수단이 없습니다. 그렇게 외부의 세계와 접하는데 우리는 거울이나 보청기 같지 않습니다. 거울 앞에는 사람이 서면 그냥 비춰질 뿐이고 보청기는 소리가 나면 크게 들리게만 할 뿐이지만 우리의 마음은 그렇지 않고 어떤 정보가 들어오면 우리 안에서 해석을 합니다. 해석을 한다는 것은 밖에서 정보가 들어오기 전에 자신 안에 무엇인가 정보와 판단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감각이 있다는 것은 영혼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영혼이 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신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대개 인간의 영혼을 부인합니다. 인간의 영혼을 인정하더라도 아주 애매모호하게 인정해서 신과 연결시키지 않습니다.
둘째로 이렇게 전달된 정보들은 인간의 정신 안에서 해석의 작용을 거치게 되는데 그 사물에 대한 명료한 지식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의 덩어리를 소유하게 되는데 이것을 심리학에서 “지각”이라고 합니다.
감각(senㄴe)이 있고, 이 감각을 통해서 마지막에 인식(cognition)에 도달하게 됩니다. 감각에서 인식으로 오기 전에 사람의 눈, 코, 입, 귀, 이런 것들을 통해서 외부의 세계와 접촉하게 되고 어떤 사물 A에 대해서 접촉할 때 그 A가 “떡갈나무”라고 정보가 들어오기 전에 감각을 통해서 이 안에 두루뭉술한 무엇인가에 아직 분류되지 않은 느낌의 덩어리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것을 심리학에서 “지각”이라고 합니다. 지각은 아직 명료하지 않은 것입니다. perception. 이렇게 지각이 생기고 지각이 생겨난 곳에서 우리의 영혼이 어떤 판단력을 부여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것들이 분류가 되면서 “인식”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기존에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한 지식 풍부하면 풍부할수록 이것들은 빨리빨리 정확하게 분류됩니다.
칸트는 이런 식으로 설명합니다. 아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운데 나비를 처음 봤습니다. 너무너무 신기한데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봄이 되어서 나비가 나오는 것은 어른에게는 하나도 신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처음 본 것입니다. 아이는 혼란을 느끼고 신비함을 느낍니다. 나이를 점점 먹어가면서 나비를 보게 되면 그의 안에서 파일이 쭉 움직입니다. 무생물? 아니다, 생물?, 곤충?, 곤충도 개미부터 시작해서 커다란 풍뎅이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많습니다. 땅에 기는 것? 아니다, 땅속에 있는 것? 아니다. 그렇게 점점 좁혀집니다. 날아다니는 것? 꽃을 찾는 것?, 나비. 더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나비로 만족하지 않고 수백 가지의 나비가 있는데 그 중에서 “흰줄 호랑나비”라고 정확하게 찾아냅니다. 그냥 하얀나비, 노랑나비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것을 정확하게 분류하고 찾아냅니다.
이것을 여러분의 삶에 대입해보십시오. 살아가면서 온갖 세상일을 다 겪습니다. 그런데 판단하는 능력이 거의 없다고 하면 온몸으로 떼워야 합니다. 어마어마하게 고생을 하고 괴롭힘을 당하고 난 후에 비로소 마지막에 알게 되는 것이, “아, 나쁜 것이었구나!”하게 됩니다. 온갖 나쁜 일을 겪고 10년이 지난 뒤에 그 판단을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풍부한 앎을 가지고 있다면 뭔가 일이 생겨날 때 즉시 분석을 하면서 “아, 이것은 좋은 것이 아니구나.”하고 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마음에 대한 공부에는 항상 보상이 뒤따릅니다. 물론 마음에 관한 잘못된 이론을 공부하면 안 됩니다. 이단에 빠진 것처럼 위험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적으로 올바른 공부를 해 나간다면 놀라운 보상이 있습니다. 나중에 회상하면서, “내 인생이 그렇게 꼬인 것은 결국 이 마음에 대한 공부가 없어서였구나!”하고 깨닫게 됩니다. 지금은 꼬여봐야 크게 꼬일 것이 없습니다. 인생을 오래 살고 여러분이 이루어 놓은 것이 많고 관계들을 더 많이 맺고 결혼하여 아내, 남편, 자식, 부모, 이렇게 계속 생기다 보면 한번 꼬일 때 그것은 삶에 어마어마한 무게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셋째로 이 지각을 질료로 사용하여 지성 안에서 해석이 작용을 통해 사물들을 인식하게 된다.
12. 이때에 마음은 이것에 대해 싫음과 좋음, 받아들임과 배척함 등의 정서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것을 가리켜 나는 정동(affection)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정동은 기쁨과 슬픔, 두려움과 고통 등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인간은 그 마음 안에서 사물들에 대한 지식과 그것에 대한 감정이 하나로 통합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사랑이나 미움의 경향성들은 바로 이러한 마음의 지각 작용이 어느 방향으로 정동이 일어나느냐를 결정하는 경향성이다.
흔히 사랑이라는 말로 번역되는데 원래는 그런 의미보다 훨씬 깊은 뜻이 있습니다. 수업 첫날에 제가 바위가 호수에 떨어지는 것을 가지고 설명했습니다. 사람들이 여행도 가고 자꾸 새로운 세계를 접해보기도 하고, 분명히 징그러운 것이라고 이야기해줬는데도 꼭 보고 싶어하고 영화 비용을 내면서도 계속 비명을 지르는 영화를 보고 싶은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참 재밌습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행복을 생각한다면 해피엔딩의 영화가 아니라면 전혀 흥행하지 못할 것 같고, 해피엔딩의 소설이 아니면 아무도 안 읽을 것 같고, 해피엔딩이 아닌 드라마는 보지 않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소설은 비극으로 끝났기 때문에 너무 강한 인상을 남기고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 끕니다. 주인공이 죽었기 때문에 영화의 마지막이 빛이 납니다. 그런 것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행복해지고 싶어하지만 다른 사람의 불행과 고통, 슬픔, 이런 것들을 보면서 자기가 느끼지 못한 영역의 감정을 느낄 때 새로운 앎이 생겨나고 그런 가운데 자신은 무엇인가 대리만족을 경험하면서 자기가 가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체험을 갖습니다. 그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습성이 인간의 마음속에 있기때문에 그렇게 공포, 스릴러, 비극, 새드엔딩, 이런 영화들이 인기를 끄는 것입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우리에게 줄 수 있다면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명심할 것은, 그렇게 폭넓은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아주 특별한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자면, 뭘 먹어도 그냥 맛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뭘 먹어도 맛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 사람 다 행복한 사람은 아닙니다. 뭘 먹어도 맛있다면 편할 것입니다. 돈을 낭비할 필요가 없고 그냥 살겠지만 같이 사람이 재미있겠는가 생각해보면, 아내와 외식하러 나갔는데 설렁탕 한 그릇에 너무 감탄을 하면서 세계에서 제일 좋은 음식을 먹은 것처럼 생각하고, 추어탕 한 그릇에 감격을 마다하지 않고 더 이상의 행복은 필요없는 것처럼 이야기한다면 그 아내는 행복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특별한 날에는 설렁탕의 열 배 정도를 지불하더라도 못 먹어보던 음식을 먹으면서 음미하며 행복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양날의 칼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발달하면 음식을 통해서 폭넓은 것을 느낍니다. 남들이 가보지 못한 세계를 느끼면서 음식 속에서 수많은 문화와 정취를 느끼지만 그런 사람들은 자기 손을 베일 수 있는 위험한 요소도 가지고 있게 됩니다. 거기에 길들여지게 되면 설렁탕이나 추어탕에 만족하지 못하고 집에서 해 주는 밥을 사료처럼 느끼게 됩니다. 잘못하면 평생 혀의 노예가 되어 끌려다니면서 살아야 합니다. 양쪽 극단이 다 안 좋습니다. 좋은 사람은 그 두 가지를 아우를 수 있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잘 생각해야 합니다. 느껴지십니까? 음식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음악, 미술, 무용, 다른 예술, 연극,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악에 대한 경험, 선에 대한 경험, 모든 것들에 대해서 그렇습니다. 그것들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모든 진폭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느끼고 못 느끼는 것이 자기의 자기됨을 흔들어 놓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맛있는 것은 물론 좋지만 내가 부정부패를 해서까지 맛있는 것을 먹고 싶지는 않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달에 월급을 100만 원 받는데 10만 원짜리 식사를 하도록 계속 마음의 유혹을 받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면 그 사람은 절대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을 내 안에서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지킴은 어느 하나가 아니라 문화, 예술, 사회, 심리, 철학, 모든 것에 다 관여하면서 나를 나로서 살아가도록 만들어주는 중심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공부를 지금부터, 한 10년 전부터 했어야 합니다. 지금 이 이야기가 하나도 새롭지 않게 들려야 하는데 지금이라도 이렇게 배울 수 있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머리가 하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 내 마음을 나도 모른다고 하면 인생이 너무 허무하지 않겠습니까?
13.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정동의 원인은 감각의 대상이 되는 사물들의 아름다움과 추함에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어떤 사물에 대해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에 대해 애호하는 감정에 정동을 반복하여 경험하게 되면 사랑의 경향성이 마음과 영혼 안에 발생하게 되고, 반대로 추함을 발견하여 그것을 싫어함의 정동의 경험이 반복되면 그것이 배척의 경향성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미움의 정체이다. 미움과 사랑의 감정은 인간 마음의 서로 다른 작용이 아니라 인간의 지성을 구심으로 하는 하나의 동심원을 이루는 그 외연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리하여 사랑은 미움 반대편에 있는 감정이 된다. 그리고 그 중간 대역이 싫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에게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가장 좋은 비결은, 자기의 아름다움을 그 사람이 계속 발견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외모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외모에 마음이 끌리기는 하지만 외모에 끌린 마음보다 그 사람의 성질 때문에 괴로워하는 마음이 커지게 되면 절세의 미녀도 다 버리고 아주 평범한 여자에게 장가를 가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톰 크루즈가 니콜 키드먼과 왜 헤어졌습니까? 모릅니다. 브루스 윌리스가 데미 무어와 왜 이혼했습니까? 모릅니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살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왜 힘들었는지는 각자 물어봐야 합니다.
그런 아름다움을 계속 보여주려면 아름다움이 실제로 있어야 합니다. 그 아름다움은 육체뿐만 아니라 육체와 정신, 영혼에 이르기까지 발견하면 발견할수록 “야, 진짜 좋은 사람이구나! 저런 아름다운 면이 있었구나!” 하게 되겠지만 외모에만 반해서 한번에 시집을 가거나 장가를 갔는데 두고 보면 볼수록 상상할 수 없이 나쁜 놈이고 이상한 여자라면 불행하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자기의 마음을 송두리째 헌납하는 경우는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남녀가 사랑을 해도 자기가 한 인간으로서의 깊은 고뇌와 고독은 누구도 해소시켜줄 수 없습니다.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그런 것들이 사랑함으로써 다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기대를 걸지 않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런 기대는 일종의 마취에 취하는 것입니다. 돈 많은 여자들이 프로포폴에 취하기도 하고 이번에 이부진씨도 조사받기도 했습니다. 나는 100% 이해가 됩니다. 프로포폴 맞아보셨습니까? 프로포폴이나 미다졸란을 맞아보십시오. 건강검진 가서 수면내시경을 할 때 맞는 약이 미다졸란입니다. 예전에 이승연이 맞아서 문제가 된 것이 그것입니다. 맞아보면 순식간에 잠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데 너무너무 달콤하게 빠져들어 갑니다. 안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어마어마한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옛날에 어떤 배우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 병원을 다니면서 200만 원어치 맞았다고 합니다. 의사들도 나쁜 사람들입니다. 그거 한 병에 얼마나 하겠습니까? 한 대 놔주고 4~5만원 받으면 될 것을 50만 원씩 받았다고 합니다. 한 번 맞고 서너 시간 자고 다른 병원에서 또 맞고 자고 한 것입니다. 나중에는 중독이 되어서 도저히 깨어있을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상실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추함을 발견하여 그것을 싫어하는 정동이 반복되면 그것에 대한 배척의 경향성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미움의 정체이다. 미움과 사랑의 감정은 인간 마음의 서로 다른 작용이 아니라 인간의 지성을 구심으로 하는 하나의 동심원을 이루는 그 외연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리하여 사랑은 미움의 반대편에 있는 감정이 된다. 그리고 싫증이라는 것은 바로 그 중간 대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음 시간에 설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