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치 않는 나라와 은혜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히 12:28).
11장에서 믿음의 위대한 역사를 설명했습니다.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복을 받았던 사람들 또 그 약속을 붙들고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았던 수많은 믿음의 증인들을 거론하였습니다. 그리고 12장에서 사도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우리에게 있으니 예수를 깊이 생각하자.' 한 것이죠. 12장에서는 11장에서 믿음으로 살아야 할 당위성을 수많은 예증을 들어 설명했다면 12장에서는 그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12장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가운데 우리가 죄와 더불어 싸우되 피 흘리기 까지 싸워야 하고 또 우리가 그렇게 살지 못했기 때문에 그릇 행하였을 때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신다는 이야기를 꽤 길게 거론을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잠시 믿음을 잃어버림으로, '한 그릇 식물을 위해서 장자의 명분을 팔았던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되지 않도록 우리 조심하자.'고 서로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사도는 구약 시대의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뵈었던 그 영광스러운 광경을 예로 듭니다. 그러면서 그 구약의 하나님이 큰 임재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함께 해주시던 그때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게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이 보여주신 기적이었습니다. 빽빽한 구름 가운데 모세는 하나님을 뵈옵기 위해 올라갔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이 큰 음성으로 말씀하셨고 그들이 모인 그 산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에 오늘 성경에 따르면 '보이는 바가 이렇듯 무서웠기 때문에 모세도 말하기를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고 하였다. 그게 바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 속의 하나님이 임재 하셨을 때의 모습이다. 그러나 너희가 지금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서 다다르게 된 하나님의 임재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이 흔들려서 두려워하던 그런 종류의 임재가 아니라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의 하늘의 기록된 장자들의 총애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 그 속에서 모두 주님의 임재 앞에 서있다.' 그러면서 성도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사도 바울이 설명해 주고 있는 거죠. 이 정체는 소속의 문제예요. 그러면서 여기서 두 나라를 대조해서 보여줍니다. 진동하는 나라와 진동치 않는 나라예요.
그러면 진동하는 나라는 무엇이냐? 우선 이것은 첫 번째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언약 백성으로 삼으셔서 당신 앞에 살게 하신 때의 경륜을 가리키는 거죠. 그래서 이 진동하는 나라는 바로 하나님의 큰 엄위와 임재가 함께 있는 나라예요. 구약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함께 했을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커다란 기적의 역사를 베풀면서 그 나라를 친히 이끄셨어요. 왕이 있었고 선지자가 있었고 제사장이 있었지만 그러나 그들에게 나라를 맡기신 것이 아니라 그들은 종들이었고 하나님의 심부름꾼들이었어요. 그 나라를 친히 주장하시는 궁극적인 왕권은 하나님께 있는 거죠. 왕이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하고 그리고 선지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기 전에 먼저 그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릎을 꿇은 종이어야 됐습니다. 제사장도 제사를 드려주는 지도자이기 전에 먼저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이 백성들의 죄를 지고 나아가 겸손하게 주님의 용서를 탄원하는 그러한 하나님의 종이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끄시면서 커다란 기적과 능력을 보이시므로 "나 여호와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노라.'고 말씀하셨던 것이죠. 이것이 바로 진동하는 나라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당신의 임재를 나타내실 때에 하나님이 큰 능력을 보이셨어요. 빽빽한 구름 가운데 혹은 땅을 뒤흔들어 놓으시는 주님의 큰 위엄 속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커다란 이적 속에서 하나님 자신이 얼마나 위대하고 엄위로우시고 영광스러운 분이신지를 보여주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이 땅을 진동시키시고 큰 기적을 일으키시는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과 떨림을 가지고 그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가슴에 새기며 살아야 했던 것이죠. 그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동시에 함께 깊이 경험하고, 경험하고 난 후에는 함께 경험한 사람들이 언약의 연대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죠.
두 번째로는 이 하나님의 진동하시는 역사는 이 땅에 있는 나라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거룩한 백성이기는 했지만 만약에 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 나라를 흔들어 놓으셨어요. 땅이 흔들리는 이 광경은 지진을 방불케 하는 광경이죠. 하나님이 얼마든지 당신의 능력으로 이 세상의 나라를 흔들어 놓으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는 두 개의 신학이 흐르며 갈등을 하였습니다. 하나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어지는 하나님의 섭리와 그리고 하나님의 경륜, 이것들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의 갈등이 유다의 멸망을 앞두고 그들 속에서 분쟁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죠. 즉 '하나님이 불순종 하는 너희를 멸망하기로 작정하셨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눈물로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저 사람은 매국노'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실 리가 없다는 것이죠. 언약을 맺고 그들을 사랑해주시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맺은바 언약은 한 사람 한 사람과의 언약인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 전체와 맺은 언약이었습니다. 한 시대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버림을 받고 전쟁 속에서 죽어가도 하나님의 약속이 그것 때문에 폐기되었다고는 말할 수가 없는 것이죠.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불순종하고 거스르는 자들이 교회와 맺은 하나님의 언약 때문에 언제든지 불순종과 죄 가운데서도 번영을 누리고 행복해야 된다는 논리는 통하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이러한 엄위를 당신의 임재를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진동할 수 있는, 진동하는 나라로 삼으셔서 그래서 그들이 불순종할 때는 하나님이 어김없이 오래 참고 기다리시며 당신의 종들을 보내셨지만 돌아오지 않는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뒤흔들어 놓으셔서 그들을 하나님께서 움직여 놓으신 것이죠. 이러한 세상의 나라를 뒤흔드는 역사는 이스라엘 언약 백성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나라를 흔들어 놓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서 입증이 되었던 것이죠. 한없이 강성할 것만 같았던 애굽,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삼았던 그 애굽을 하나님께서 꺾으시고 그들의 나라를 주저 앉히셨습니다.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것이라고 생각하던 위대한 바벨론이 무너지게 하셨습니다. 메데와 바사와 이어지는 여러 나라들, 하나님이 멸망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처럼 당신의 큰 권능을 가지고 이 세상의 나라들을 진동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나라가 번영하고 강성할 때에 자신들의 이 힘을 자랑하고 이 제국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어느 나라도 이 세상에 있는 나라는 영원한 나라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 자신들을 임금 삼은 이 나라는 영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주님이 보여주셨기 때문에 앗시리아와 바벨론뿐만 아니라 메데와 바사, 역사적으로 메디아와 페르시아라는 제국뿐만 아니라 이후에 이어지는 그리스 제국, 마케도니아 왕국과 이후에 이어지는 로마제국도 하나님이 무너지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 나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많은 백성들은 그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왕국에 순종하고 복종하기를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복종하기 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일보다 이 세상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사랑하고 자랑했던 나라는 모두 진동하는 나라였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언약을 맺으신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 나라, 이스라엘의 지상 나라도 흔들어 놓으실 수 있었다면 언약을 맺지 않은 이 세상의 나라는 얼마나 잘 흔들어 놓으실 수 있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현실적으로 두 나라에 함께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는 분명히 이 땅에 있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우리는 이 나라의 운명과 지상의 운명을 같이 합니다. 나라가 전쟁에 휩싸이면 모든 백성들은 전쟁하고 거기에 동원되어서 피 흘리며 죽어가야 합니다. 나라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죠. 나라가 번영하고 잘 살면 이 나라에 적을 둔 모든 국민들은 어디 가든지 대접을 받습니다.
(예화) 지금도 영국에 갔더니 영국에 있는 한인교회가 다 비상이야. '왜 그러냐.' 하니까 한인의 수가 정해져 있는데 그 사람들이 사업을 하러 오거나 유학을 오거나 이민을 오거나 셋 중에 하나잖아요. 맥없이 이민 가는 사람이 없겠죠. 그렇게 살기 좋은 나라도 아니니까... 대개 유학을 오거나 사업을 하러 왔다가 그게 길어지면 정착을 해서 시민권을 받고 그 나라 백성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뭐냐면 영국이 경제가 너무 어려워요. 뭐 우리나라보다 더 심각할 정도로 어려워요. 그러니까 집 앞에 있는 자전거가 남아나질 않는대요. 도둑들이 와서 다 훔쳐가는 거예요. 자동차 유리창 깨고 뭐 훔쳐 가고... 자동차 운전대를 아예 커다란 쇳덩어리로 잠가놓고 다니더라고. 못 훔쳐가게. 그러니까 어떻게 되요? 영국의 유학 비용이 엄청 비싸거든요. 유학생들이 내는 돈이 영국의 중요한 수입이예요. 엄청 비싸요. 일 년에 학비가 보통 4천 만원 까지 가요. 일 년에 학비가 비싼 데는.... 그러니까 그 4천 만원에다가 먹고 해야지...이게 장난이 아니거든요. 싸도 2천5백 만원 3천 만원 간다 말이죠. 그러니까 돈을 대다가.. 또 환율이 오르잖아...그러니까 돈을 대다가 대다가 부모가 지치니까 그만 공부하고 와라. 그러니까 유학생들도 돌아가지, 사업했던 사람은 영국이 경제가 어려우니까 물건을 팔기가 힘드니까 본사에서 철수해라 그러니까 가는 거예요. 교인 5~60명 모이는 교회에서 6개월 사이에 여섯 가정이 돌아갔느니 일곱 가정이 돌아갔느니 해서 어느 교회는 아예 반으로 교인이 줄어들었어요. 경제가 그렇게 어려우면 다른 나라가서도 그렇게 특별히 기를 펴지 못해요. 힘들어 하는 거죠. 그러나 또 잘 하면 칭찬도 많이 받죠. 거기 있는...영국에 에디오피아에서 유학 온 어느 목사라나 그런 사람이 그러더라구요. 한국을 너무 부러워 하더래요. '왜 그렇게 부러워하는냐.' 하니까 그 나라가 옛날에 우리나라 보다 잘 살았거든요. 그 나라가 참전국이예요. 6.25 때 불쌍하다고 도와주러 온 나라거든요. '왜 그러냐 .'그랬더니... 한국은 산업화도 했고 민주화도 했다 이거예요. 자기네는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 이거예요. 그래서 미개한 나라에서 고생을 하는 걸 외국에 나와서 공부를 하고 눈을 뜨고 보니까 자기네 나라가 너무나 불쌍한 거예요. 이렇게 이 지상의 나라와 운명을 함께 하는 거예요. 그런 거죠.
그럼 우린 현실적으로 여기 살고 있어요. 그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예요. 싫든지 좋든지 이 나라를 귀하게 여기고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도 이 세상에서의 소명이예요. 그러나 이 세상 사람들은 이 나라에만 속했지만 우리는 또 한 나라에 속해있어요. 몸으로는 이 세상의 나라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영혼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거예요. 영혼만 하나님의 나라에 속했다기 보다는 이 세상의 나라는 수단일 뿐이고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진정으로 이 나라에 살면서 섬겨야할 그런 나라다 이거죠. 그런데 이 세상에 있는 나라는 이렇게 흔들리는 나라예요. 경제가 어려워도 흔들리고 전쟁이 나도 흔들리고 평화가 깨져도 흔들리고 하는 흔들림이 있는 나라예요. 그러나 우리는 또한 진동치 않는 나라에 속해 있어요. 이 나라를 오늘 성경은 말하기를 우주적인 교회로 묘사해요. 그래서 뭐냐 하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장자들의 총회, 이건 뭐냐 하면 천국 유업을 받은 백성들의 무리예요.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 의롭다 칭해주신 의인의 영들 그리고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고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로 말미암아 맺어진 이 모든 우주적인 교회의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 이 사람들, 이 성도들이 있는 나라는 흔들릴 수 없는 나라예요. 왜냐하면 이 나라는 하나님이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죠. 하나님이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흔들릴 수 없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참된 교회, 천상과 이 지상에 있는 모든 교회들의 이 아름답고 완전한 연합은 주님의 손에 붙들려 있어서 흔들리지 않는 나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둘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죠.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영적인 이스라엘이예요. 육적인 이스라엘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시고 그 분께 접붙여진 모든 성도와 그리고 그 모든 거룩한 무리들이예요. 이 연합은 흔들어 놓을 수가 없는 것이죠. 교회가 바르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를 흔들어 놓아 그 교회를 하나님이 정결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당신의 나라를 흔드시는 것은 아니예요. 이 땅에 있는 더러운 것들이 함께 섞여 있는 불완전한 교회를 흔들어서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내고 또 흔들어서 성도들을 분발하게 하여 참된 성도로 만드시기 위하여 흔들어 놓으시는 것이지 그리고 그것은 주님 자신이 직접 자신이 흔드시는 것이지 당신의 순전한 교회는 하나님이 망가뜨리기 위해서 흔드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는 것이예요. 그렇게 강력하게 흔들어 놓으시고 그 교회를 정결하게 하실수록 그 나라는 더더욱 흔들릴 수 없는 나라라는 것이 분명해 지는 것이죠. 교회 역사를 보면 때로는 이 세상의 나라가 바라보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눈엣가시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나라는 왕들의 군대와 권력, 자원을 가지고 이 세상의 나라에 속하지 않는 교회를 흔들어 놓아 하나님의 진동하는 나라를 가지고 진동할 수 없는 나라를 흔들어 놓으려는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순교하고 죽어가고 그리고 멸망하였지만 사람들은 죽어가고 사람들은 사형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였지만 주님의 교회는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꼭 붙들고 계십니다. 물론 시대에 따라서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이 지상의 교회는 번영하기도 하고 그리고 쇠퇴하기도 합니다. 충성스럽고 진실한 사람들이 있어서 열혈이 목숨을 다 할 때에는 주님의 교회가 부흥하고 생명을 누리고 게으르고 나태할 때는 그 교회가 무너질 듯이 주저앉고 심지어는 눈에 보이는 이 지상의 교회는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예화) 영국 갈 때 마다 마음 아픈 것은 교회가 자꾸 없어져요. 거기는 도시 전체가 보통 이렇게 보면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나 빌라 빼놓고는 전부다 지어진 게 최소 1800년대 1700년대 1600년대 1500년대 해가지고 이게 대체적으로 1200년대까지 가는 거예요. 그리고 심하면 1000년대 900년대 까지 가요. 보통 1600년대 건물들은 아주 많아요. 교회는 대부분 그때 청교도들과 그 다음에 꼭 청교도들만 그런 건 아니지만 영국 국교회, 청교도들의 역사 다시 왕정이 복고되고 영국 국교도가 성행하던 그런 시대에 지어진 교회들이거든요. 제가 이번에 가서 집회한 교회는 '챨스 스펄전'이 어렸을 때 교사 생활하던 교회래요.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때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 교회를 유지했는데 지금은 교회 건물을 유지할 수가 없는 거죠. 그리고 시에서 지정을 해주어서 함부로 그것을 허물고 그러질 못하고 영국도 돈이 많지 않으니까 그런 건물들을 다 유지하라고 후원을 해줄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한두 개가 그렇게 역사적이 건물이어야 되는데 도시 전체가 역사적인 건물이니까 규제만 하지 후원은 못하는 거예요. 그런데 도저히 교회를 유지할 수 없게 되면 결국은 교회가 모두 모여서 교인들이 모여서 교회를 팔아버려요. 그리고 받은 돈은 자기들이 나눠 갖진 않고 적절한 단체에 기부 하고 흩어지는 거죠. 동네 있는 교회로, '다른 교회로 가자.' 하고 흩어지는 거죠. 교인이 한 6~7백 명 들어갈 수 있는 예배당인데 한 3~40명 모인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도저히 운영이 안 되죠. 영국 사람들 헌금 절대로 많이 안 하거든요. 가봐야 한 5파운드나 할까 그렇게 하는데... 그 돈 가지고는 안 되죠. 그런데 다행히 할머니들이 죽을 때 그 유산을 교회에 주고 죽어요. 한 사람 죽으면 몇 년 잘 운영을 하고 그리고 그 다음 죽기를 기다려야지... 그러면 그 할아버지 또 하나 죽으면서 남겨놓으면 또 1~2년 버티고 이렇게 하면서 되는데 결국은 그것도 한계가 있죠. 결국은 교회를 운영을 못하는 거죠. 교회를 운영을 못하면 팔아버려요. 팔면 부셔버리고 다시 지으면 깨끗할 텐데 법적으로 부술 수가 없어요. 십자가를 톱으로 잘라버리고 그 속에다가 음식점을 차리는 거예요. 그리고 술집... 호주가서 직접 봤는대요 영국가서도 보고... 술집 어떤 데는 강대까지 그대로 내버려 두고 술집을 만들어요. 십자가만 떼고 의자 치우고 나머지는 그대로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 돌에 새겨진 글자 같은 거 못 건드리거든요. '이 교회는 몇 년 도에 성도들이 하나님께 받쳤음.' 그래놓고 술 파는 거예요. 그럼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가는 거예요. 문까지는 교회 문인데 열고 들어가 보면 예배당 안이 여관처럼 돼있는 거예요. 그렇게 팔려 나가는 거예요.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거죠. 그러면 그 교회들은 다시 살아날 수가 있겠어요? 살아날 수가... 뭘 살아납니까... 다 흩어져서 가버렸는데.... 그렇게 교회들이 계속 없어지고 있는 거죠. 영국의 성공회가 영국 왕을 교회의 머리로 하고 그렇게 해서 카톨릭으로 부터 떨어져 나온 거거든요. 거기도 보면 나라가.... 공무원이예요. 목사와 직원들이 모두... 마당에 풀이 모두 길 같애. 성도들은 봉사할 사람이 없어요. 다 노인네들이니까 휠체어 타고 설설 기어서 나오는데 그 사람들이 무릎 꿇고 풀 벨 일 있습니까? 못해요. 분명히 이 교회는 문을 닫았겠다, 유적지이지 그랬는데... 모인다는 거예요. 그러면 한 때 2천명 3천명씩 모였던 교회가 이제 150명정도 모여서 예배드리니까 교회에 청소하나 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까 줄 돈이 없으니까 교회는 계속 무너져 가는 거예요. 유리창이 깨져도 수리를 못해요. 그렇게 해서 급기야는 어떤 식이 되냐면... 목사 한 사람이 7~9개의 교회를 담임을 하는 거야. 그래야지만 월급을 주는 거야. 그러니 7개, 9개를 담당 한다 그러면 그 교회 교인 수가 적다고 하더라도 다 예배를 드리면서 뱅글뱅글 차를 타고 돌아야 되는데.... 그 교회가 그렇게 되는거죠. 그러면 하나님이 그 교회 버리신 거 아니예요?
이 지상에 있는 교회는 자기들이 충성스럽게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봉사하면, 이 땅의 교회들은 번영하는 거예요. 충성하지 않고 게으르게 살고 세속과 타협하고 그렇게 하면 결국은 그 교회는 그렇게 무너지는 거죠. 그걸 보고 우리도 '하나님도 교회를 버리시는 구나.' 아니죠! 사라져간 교회는 이 지상에 있는 육적인 교회야. 영적인 교회는 이 세상의 역사가 흔들 수가 없는 교회예요. 그래서 그 교회를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신 거죠. 우리가 속한 하나님의 나라가 그렇게 진동할 수 없는 나라다 라고 하는 거죠. 이 세상에서 교회는 쓰러져 가기도 하고 번영하기도 하고 그리고 교회는 팔리기도 하지만 이건 모두 눈에 보이는 교회이고 보이지 않는 주님의 교회는 흔들리지 않도록 주님이 굳게 붙들어 그 교회의 영광스러움을 이 세상에 있는 교회가 해칠 수가 없는 것이예요. 성도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이냐. 이것은 바로 이렇게 진동하지 않는 나라에 속해서 살아가는 거예요. 그 진동하지 않는 나라에 속해서 살아가는 성도는 행복한 사람인데 그렇게 진동하지 않는 나라에 속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성도의 삶이 정말 철저하고 놀라워야 해요. 그것은 굉장히 어려운 것이죠. 진동하지 않는 나라에 속해서 신앙으로 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박해를 받고 고난을 당하고 죽어가는 거예요. 얼마나 많은 특별한 헌신, 이 세상 나라에 속해서 살아가는 것은, 그것도 쉽지 않죠. 세금을 내야죠, 병역의 의무를 다해야죠. 여러 가지 의무를 다 하면서 이 땅의 백성으로 살아야지만 부끄럽지 않게 사는데, 진동하지 않는 이 나라를 위해서는 더 많은 힘이 필요한 거예요.
(에화) 이번에 집회를 끝마치고 한 45분 정도 거리에 우리나라에 최초로 선교사로 와서 순교했던... 오자마자 바로 죽었거든요. 토마스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가 있다고 해서... 한국 사람들이 오면 꼭 들르는 곳이라고 해서 날 바래다 주겠다고... 마침 고맙게 그 교회의 장로님 두 분이 나와서 남자 한 분, 여자 한 분이 나와서... 부부인데... 남편이 마침 우리나라 참전 용사예요. 그러면서 자기네 교회 역사를 상세하게 들려주었는데, 그 토마스 목사가 파송된 1886년으로 기억되는데, 그때 파송을 받는데 그 예배당에서 파송을 받은 거죠. 예배당이 쬐금해요. 2층으로 발코니가 있어서 2층으로 나뉘어서 예배를 드리게 되어있는데 뭐 그저 꽉 앉으면 백 명 앉으려나... 120명 앉으면 더 이상 못 앉겠더라구. 전형적인 18세기의 건축 양식이예요. 그 역사를 보니까 말이죠... 그 교회의 아버지가 목회를 하면서 아들을 선교사로 보낸 거야. 그래서 중국을 먼저 들어가서, 그러니 지금도 거기 한 번 갔다 오려면 그렇게 힘이 드는데... 배를 타고 몇 달을 돌고 돌아가지고... 대서양, 인도양을 돌아서 중국으로 와야 되니... 그게 오죽했겠습니까. 그런데 아들이 거기 도착을 하고 며느리가 가죠. 며느리가 아이를 가진 상태에서 그 배를 타고 갔는데 여행의 과로 때문에 결국은 중국에 도착해서 죽습니다. 며느리가 죽었다는 소식을 먼저 듣고 그 다음에 아들이 거기에서 상해에서 선교를 준비하다가 그다음에 '셰먼호'를 타고 그리고 대동강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들어오자마자 바로 죽거든요. 죽음의 소식이 아버지에게 들린 거예요. 그런데 거기서 내가 눈물이 나더라구요. 그런 일이 하나만 일어나도 견디기 힘들텐데... 그 아들도 아주 젊은 나이에 파송되잖아요. 그렇게 젊은 나이에 며느리하고 가서 며느리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온 지 얼마 안 되서 아들이 한국 땅에 도착하자마자 그렇게 칼로 목 베임을 당하고 사형을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그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는 것 같았을까. 그런데 그렇게... 그 교회에 우리는 우리나라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나라가 나름대로 기독교화 되어서 이렇게 기독교를 많이 인정해 주는 나라가 됐기 때문에 토마스 선교사, 토마스 선교사 이렇게 이름을 기억해 주지...그렇게 죽은 그 당시의 영국 젊은이들이 몇 교회 건너마다 하나씩 다 있어서 너무나 많아서 일일이 기록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조선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동남아, 인도 전국 각지로 흩어졌던 그 복음에 불붙었던 청년들이 거기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죽어갔어요. 그 중에 토마스 선교사는 그래도 우리가 이름을 기억해 주고 뭐 우리 교회 토마스 선교회도 있고 이렇게 하지만... 오히려 그 사람 못지 않게 많은 고생을 하고 마지막에 순교당했으면서도 나라 자체가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완전히 잊혀진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거죠. 소개해 주는 사람이 그래요. 여기 영국의 젊은이들이 그 당시 수없이 많이 가서 그렇게 피흘리면서 전쟁하면서 군인들이 전사 통지 오듯이 그렇게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렇게 죽어갔다는 거예요. 그걸 보면 우리는 정말 편하게 선교하는 구나 생각이 드는 거죠. 그렇게 그 큰 고난과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고 그 교회에서 긴 세월을 아버지가 목회를 했어요. 40년인가 38년인가 했더라구요. 그걸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뭐냐하면... 얼마나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겠는가. 그 아들로부터 온 편지, 그 당시의 사망 소식에 신문 그런 게 다 보관되어 있어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러면서도 충성스럽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인데 그것을 위해서 그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힘이 필요하다 이거예요.
그게 바로 은혜라 이거죠. 그래서 오늘 사도가 말하기를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그랬으면 됐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흔들릴 수 없는 나라를 받았기 때문에 이 흔들리지 않는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은 많은 헌신, 많은 수고, 큰 사랑 이런 것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것들은 우리 자신에게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은혜를 받아야 된다 라고 하는 거죠. 세상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데는 은혜가 필요하지 않을지 몰라요. 신령한 은혜가 필요하지 않을지 몰라요. 그러나 진동하지 않는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의 백성답게 살아서 우리를 위해 먼저 앞서 간 믿음의 위대한 선배들의 족적을 뒤이어 가기 위해서는 이 땅에 있는 자원만으로는 우리들이 그런 삶을 살 수가 없어요. 돈 많다고 선교합니까, 건강하다고 봉사합니까, 젊다고 교회 와서 열심히 일합니까? 아닙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이 그 일을 합니다. 토마스 목사님 다니던 교회에는 오늘날 여덟 명의 성도들이 모여서 담임 목사 없이 예배드리고 있어요. 그걸 보면서 '왜 담임 목사를 안 모시냐?' 그랬더니... 우리 여덟 명 밖에 안 모이기 때문에...그래도 몇 년 전에는 열 명이었는데... 두 명은 벌써 죽은 거죠. '그 목사님을 자신들이 생활을 책임질 수 없기 때문에 우리끼리 모인다.' 그런데 예배 순서에 설교자가 이렇게 있어요. '이건 뭐냐?' 한 달에 한 번씩 외부에서 목사님을 모셔다가 그렇게 해서 동냥하듯이 설교를 들으면서 신앙 생활을 하는 거죠. 그러면서도 그 교회에 대한 그리움들을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결국은 우리에게 복음이 이른 것도 그런 많은 사람들의 이 진동하지 않는 나라에 대한 헌신, 진동하지 않는 나라에 대한 충성, 진동하지 않는 나라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의 피에 대한 감사. 이것 때문에 그렇게 헌신을 한 거예요. 다른 것 때문에 한 것이 아니예요. 그 일을 위해서 가보지도 못한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피 뿌려 죽어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이 진동하지 않는 나라에 속한 백성들이 된 거죠. 그러면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할 텐데. 거기 가서 마당에서 이렇게 보면서... 온 성도들이 와서 여기서 한 번 기도를 하고 가면 정신이 새로워질 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새로워질 텐데... 많은 사람들이 게으르고 나태하게 살았지만 이 진동하지 않는 나라 속에 있는 많은 백성들이 그렇게 불꽃처럼 살았기 때문에 목숨 걸고 전한 이 복음이 오늘 우리에게 까지 전해지게 된 것이죠. 그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야 할 텐데, 그 삶은 매우 어려운 삶이죠. 구름같이 허다한 많은 증인들과 함께 예수를 바라보고 주님께 때로는 책망을 받으면서도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고 그리고 고난이 오고 어려울 때에 에서처럼 배반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굳게 붙드는 이런 영광스러운 생활을 위해서는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이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고백이 아무리 올바르고 우리의 믿음의 신조가 아무리 성경적이어도 그걸 붙들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죠. 그래서 우리에게는 은혜가 필요해요. 하늘을 열고 부어지는 이 거룩한 은혜, 충만하고 영광스러운 그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은혜를 구하는 것이죠. 이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게 하는 힘입니다. 그래서 진동하는 나라를 두려워하지 않고 진동하지 않는 나라를 사랑하며 진동하지 않는 나라에서 참다운 성도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렇게 잠시 사라지는 이 세상의 나라 너머에 있는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고향을 바라보며 충성스럽게 살게 하는 이 능력이 은혜의 힘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더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 많은 은혜를 사모하게 되고 이 은혜를 받음으로써 이 땅에 성도라 일컬음을 받으며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동안 주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되고 충성된 삶을 살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이 고난 주간에 또 모여서 은혜를 받고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은혜를 받지 못하면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이 진동하지 않는 나라에 합당하게 살 은혜를 달라고 주님 앞에 간구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