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과 은혜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벧전5:5)
물이 높은데서 결국은 낮은데로 흐르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도 겸손한 자를 향해서 흘러내려갑니다. 낮은 웅덩이가 물을 보전하고 봉우리에는 물이 고이는 법이 없듯이 겸손한 마음에는 주님이 은혜를 주실 뿐만 아니라 주님이 주신 은혜가 잘 보전됩니다. 이게 겸손함이죠. 참 이 말씀은 언제나 참 진리입니다. 우리들이 경험한 게 작년 십자가 사경회 때인가 이 기도모임을 만들었어요. 근데 거의 안 모였어요. 작년 십자가 사경회 때지? 가을 기도학교 사경회 때였죠. 그래가지고 첫 날 제가 참석했다가 얼마나 마음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픈지 너무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이게 사경회가 다가왔는데 열댓 명 모여가지고 기도하는데 교역자만 모여도 열댓 명인데 말이죠, 한 이십 명 모여서 기도했나?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그러고 나서 이제 우리 교역자들이 기도하고 열심히 했더니 그 다음 날 가득 모였어요. 그때 모였을 때, 열 몇 명이 모였는데 기도가 간절해지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몇 명 안 모였는데 그날 기도회가 정말 은혜로울 수밖에 없는 게 상황이 하나님을 찾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죠. 그래서 간절히 눈물로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그 다음 날 그 기도장소가 발 들여놓을 틈이 없이 꽉 차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셨어요. 그러더니 하나님께서 가을 기도학교 사경회에 은혜를 많이 주셨어요. 평이한 말씀이었지만 가을 기도학교를 통해 흔들리던 지체들이 마음을 굳게 정하는 축복이 많이 나타난 사경회였어요. 그래서 일년에 네 번씩 우리들이 집회를 하지만 어느 한 집회에도 우리들이 자동으로 잘된 집회는 하나도 없어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도하고 거두시기도 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베드로서에서도 사도가 이야기하기를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사실 이 이야기를 베드로가 했다는 데에 대해서 우리는 더 큰 감동을 받는 거예요. 이 사람이 사실 겸손하고는 좀 거리가 먼 사람이었거든요. 처음부터. 항상 큰 소리치기 잘하고 선두에 서기를 좋아하던 그런 사람이었는데 주님을 깊이 만나고 신앙생활을 하고 또 핍박을 받으면서 전도자로서 사역을 하고 흔들리는 영혼들을 붙들면서 함께 눈물과 땀과 피를 흘리는 목회사역을 감당해나가면서 깊이 깨달은 진리가 있는데 그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교만한 사람들이 아니라 겸손한 사람들에게 주신다. 근데 아마 사도는 이글을 썼을 때, 하나님께서는 하고 괄호를 열고 예전에 나처럼 괄호 닫고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괄호 열고 요즘에 나처럼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시느니라 아마 그러고 싶었을 거예요. 사실이에요. 그러면 여기에서 은혜를 받는 겸손함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거든요. 은혜를 받는 겸손함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저는 이것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서 생각을 해보는데 첫째는 뭐냐 하면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춘다는 이야기는 뭐냐 하면 자기의 비천함을 하나님 앞에서 깨닫는 거예요. 자신의 비천함을 깨닫기 전까지는 어떠한 인간도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할 사람이 없어요. 자기의 비참함을 깨닫고 무엇도 나를 도와줄 수없다 라고 하는 그러한 벼랑에 선 의식을 느낄 때에 그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게 되는 거죠.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고 주린 사람이 음식을 찾듯이 하나님의 은혜에 굶주린 사람들이 은혜 주시기를 구하지 배부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는다 이거죠. 그러면 정말 배부른 사람이 있는가? 배부른 사람이 없죠. 다만 영혼이 너무나 많이 망가졌기 때문에 굶주렸는데도 굶주린 줄 모르고 목마른데도 목마른 줄을 모른 것뿐이지요. 그렇죠? 예수님께서 회개하지 않는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의원은 건강한 사람에게는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필요하다고 할 때, 정말 그 사람들이 건강한 사람들이었어요? 건강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 말 하셨습니까? 의인을 구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했을 때, 정말 그들은 의인이었고 예수님과 먹고 마시는 창기와 세리들은 죄인이었어요? 아니에요. 그 모두 예수님께서 비꼬면서 말씀하신 거예요. 자칭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필요 없다. 그리고 자칭 자기가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필요 없다. 그들에게는 내가 필요하지만 내가 다가가도 그들이 나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 말씀이거든요. 그러니까 은혜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죠. 근데 불행하게도 은혜 받지 못할 사람들은 자기가 은혜가 필요하다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지 못해요. 자기의 문제는 물질이요, 인간관계요, 건강이요 여러 가지 많은 환경들이라고 생각하지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을 안 하는 거예요. 그런데 겸손해지면 갑자기 자신의 인생을 보는 시선이 바뀌어요. 어떻게 바뀌느냐 하면 이제까지 내 인생의 문제는 이런 것이었다, 저런 것이었다, 생각을 했는데 다 필요 없고 하나가 없었다 라고 하는 것을 깨닫는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하나님의 은혜에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겸손해진 사람은 그 겸손에 첫째는 뭐냐 하면 하나님을 향해서 겸손해진 건데 그 겸손은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겸손한 마음, 하나님 앞에 겸비해진 마음, 이 마음이 주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마음이다 이거죠.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기를 낮추는 마음이죠. 그 마음이 겸비한 마음입니다. 주님은 당신에게 순종하는 자인가 거스리는 자인가 하는 것을 대면하여서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말씀해주심으로서 시험하시는 거죠. 그렇죠?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께서 시험하실 때 무엇으로 시험하셨죠? 말씀하심으로 똑같이 있는 나무인데 이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아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주님은 안 보이시죠, 이제는 뭐만 남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만 남았죠? 그 말씀을 기억하면서 그 말씀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가 곧 그 사람이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태도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말씀에 대한 태도와 당신에 대한 태도가 구별이 되지 않은 것으로서 자주 말씀하시는 거예요.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계명을 지킬 것이요’ 그러니까 이 하나님 앞에 겸손해진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은혜가 필요한 줄로 생각하는 신앙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릎을 꿇는 신앙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인생에 대한 한 견해를 참고삼아서 듣고자 하는 사람들이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말씀하시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서 주시는 음성인줄을 깨닫고 나는 내면에 온 세계를 주님과의 말씀 앞에 복종시킬 준비가 됐습니다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여러 번 수련회를 인도하면서 그런 생각을, 그런 결론을 하나 얻었었어요. 그건 뭐냐 하면 수련회에서 은혜 받을 사람들이 수련회 가기 전에 이미 거의 정해지더라구요. 그들은 마음의 상태가 달라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대감이 달라요. 물론 그런 기대와는 전혀 상관없이 친구 손에 이끌리고 우연히 들어왔다가 은혜를 받는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확률적으로 훨씬 떨어져요. 그런 사람들이 은혜를 받을 수 있는 확률이 20%정도라고 하면 이미 말씀 잔치에 들어가지 전에 깊이 자기를 낮추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헐떡이면서 내가 이 어려움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되겠습니다라고 하는 갈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생명을 걸며 은혜를 구하는 사람은 거의 80%이상 은혜를 받아요. 이쪽에서 희귀하게 일어나는 일이 저쪽에서는 반대편으로 희귀하게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겸손의 두 번째 실천은 하나님 말씀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거예요. 마지막 세 번째로 이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주님이 말씀을 통해서 자기에게 주시는 새로운 길들을 받아들이는 순종의 마음이에요.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겸손이에요. 그러니까 비유를 하자면 교만은 조각가의 손에 붙들린 굳은 진흙과 같고 겸손은 토기장이의 손에 붙들린 아주 부드러운 진흙과 같아요. 그래서 농노에 진흙 덩어리를 올려놓고 발을 구르면서 이 다섯 손가락, 열 손가락을 어떻게 움직이냐에 따라서 항아리도 나오고 접시도 나오고 단지도 나오고 수많은 그 도자기들을 자유자재로 만들 듯이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이렇게 열린 마음을 가지고 무엇이든지 자기를 향해서 주님의 뜻이라는 것이 입증되기만 하면 순종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의 마음, 이 마음이 진정으로 겸손한 마음이에요. 더군다나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는 것과 관련하여서 말할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라고 하는 것이죠. 조금 아까도 제가 글을 쓰다가 나왔는데 글을 쓰면서 이제 거기에서 나온 내용들이 뭐였냐 하면 이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계속 가슴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작용이 계속해서 반복해서 일어나는 거예요. 한 가지 작용은 뭐냐 하면 회개고, 한 가지 작용은 뭐냐 하면 신앙이에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회개의 아픔을 맞보고 또 한편으로는 신앙의 기쁨을 맞보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그런 살아있는 신앙의 세계, 은혜가 머물러 있는 사람들의 내면의 세계에는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고정된 공간이 아니에요. 그래서 아주 숨 가쁘게 움직입니다. 아이들의 시체를 병실에 눕혀놓았을 때는 몇 달이 지나도 그냥 있지만 살아있는 아이는 가만히 있지 않듯이 우리의 심령이 살아있을 때에는 움직이지를 않아요. 죄가 찌르면 꿈틀해요. 하나님의 은혜가 부르면 헐떡여요. 반응을 우리의 내면의 세계가 계속해서 반응을 보여요. 하나님의 말씀의 빛으로 우리의 잘못이 보이면 아프게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총의 빛이 비치면 신앙으로 그것을 붙드는 작용들이 이 살아있고 은혜가 있는 성도들의 마음속에서는 계속 반복되는 거예요. 그분의 겸손한 사람들이 바로 그런 하나님의 은혜의 실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에요.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늘 현재적인 경험 속에서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며 늘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는 거죠. 매 순간 하나님의 손이 어루만지시는 그 감동을 경험하는 거죠. 그래서 말씀 속에서 자기를 비추면서 회개하고 또 한편으로는 신앙의 기쁨을 경험해요. 그러면서 하나님 안에서 성장하는 신앙으로 자라나는 것이에요. 오늘 이번에 우리들이 이 사경회를 통해서 개인적으로 우리가 기대하는 바도 그거에요. 첫째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깊이 낮아지는 사람,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가 아니면 살수 없습니다하는 그런 마음,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무릎을 꿇는 마음, 그리고 세 번째는 사경회를 통해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간에 그대로 순종하면 살려고 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어진 마음, 이런 마음들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경회를 기다리면서 준비시켜 주시고 또 사경회를 통해서 그런 마음을 더 강화시켜주시고 그래서 사경회가 끝난 후에는 그 마음으로 온전히 살아가서 하나님 앞에 성장하고 성숙한 그런 신앙이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우리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더욱이 이번 사경회는 목적이 너무나 뚜렷한 사경회죠. 우리가 무슨 기도 제목이 있어서 그걸 응답받겠다거나 어느 교회처럼 무슨 이번 사경회에서 헌금을 걷어가지고 교회를 짓겠다고 하는 사경회는 아니죠. 이번 사경회는 우리들이 어떡하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복음에 더 깊은 실제 속으로 들어가서 그 진리를 깨닫고 우리가 사경회 때에 문제로 제기되었던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하므로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이 의의 말씀을 경험하고 하나님 앞에 새로운 변화를 체험하게 되는 이러한 사람들로 바뀔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관건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일들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먼저 여러분 자신이 이번 사경회를 통해서 큰 은혜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