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가로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요7:37-38).
성경에서 생수라는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물론 그냥 물을 가르키는 때도 많이 있지만 이것이 비유적으로 사용될 때에는 이 생수가 하나님과의 만남, 인간 영혼의 생명력, 활기 이런것들을 의미하는 비유적 단어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물을 굉장히 신비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어에 보면 이 물을 마임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복수 입니다. 그래서 복수를 신비의 복수라고 합니다. 신비스러운 것은 전부 다 복수로 표현했습니다. 하늘도 복수이고 인간의 얼굴도 복수이고 물도 복수 입니다. 그렇게 신비스러운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사실 가만히 보면 물처럼 신비스러운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성경에서 하나님과의 만남 그 다음에 생명력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 내적인 경험적인 은혜 이런것을 묘사하는 단어로 사용된 것입니다. 그 증거가 무엇인가 하면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실제로 물을 길러 온 여자에게 내가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네가 푸는 이 물은 먹으면 목마른 물이지만 그 물은 목마르지 않는 물이다. 그것이 결국은 궁극적으로 생명력, 하나님과의 만남, 내적이고 경험적인 은혜 이것이 마지막에 성령으로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인생을 살면서 이런저런일로 힘들어 할때 힘든것들은 모두 원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태어나서 많은 고생도 하고 험한 길도 걸었지만 사실 뭐니뭐니해도 사람이 돈 때문에 단련을 받는것 만큼 힘든 일이 없습니다. 교회를 지어 보면서 아주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사람이 너무너무 힘든 것입니다. 그런것을 경험했는데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어느 목사님을 만났는데 그 목사님이 자기 교회 자랑을 막 하면서 자기들은 돈이 항상 남아서 20억이 통장에 있다고 하는데 그것 우리 좀 빌려 주세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는데 빌려 줄 리가 있겠습니까? 옛날 이야기가 다 되었지만 그렇게 힘이 듭니다. 그럴때 해결의 길은 무엇이겠습니까? 돈이 생기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 하면 돈 때문에 고통을 받고 괴로워도 양상은 돈 때문에 생겼지만 그 고통의 뿌리는 사실은 하나님 없기 때문에 생겨나는 고통이지 그렇게 된 것이 아닌 것입니다. 또 예를 들어 보십시다. 우리가 가족들간에 고부간의 갈등을 한다든지 부부간의 갈등을 하든지 사람이 늘 의견이 같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고부간이든지 동기간이든지 갈등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집에 들어 가기도 싫고 정말 괴롭습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어쨎든지 화해를 하고자 화목하게 되면 다시 또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다시 또 살아 볼 마음도 생기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것도 보면 그것은 하나의 땜질의 처방이지 인간을 그렇게 틀어지게 만든 근본적인 것이 인간속에 있는데 그것이 해결이 되겠습니까?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인생을 살게 되면 우리가 물질을 잃어 버리고 했을 때에는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명예를 잃어 버리고 나면 그것은 사실 더 고통스럽습니다. 연예인들이나 인기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인기를 잃어 버리는 것은 너무너무 비참한 것입니다. 그것이 왜 그러겠습니까? 인터넷에 올라 와서 막 욕질을 하고 이런 사람들은 몇 명입니다. 샘물교회 아프가니스탄 사태 났을 때 누가 상세히 그 이야기를 하는데 들어 보니까 천명이 올려 글을 썻는데 조사해 보니 3명이서 했다는 것입니다. 천명분을 셋이서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연예인들이나 이런 사람들 인터넷 말도 못하게 욕을 하고 하여튼 누가 좀 잘 된다고 하면 심지어는 김연아 이런 사람도 안티가 있어서 그렇게 욕을 해대고 한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잘못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다. 게다가 안양 처녀 인데... 잘못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사람들이 성격이 이상해서... 어느 소설가 한 사람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이 사람이 밤을 새는 것입니다. 그 놈이 누구인지 잡아 내려고... 그것도 못할 짓이지 않습니까? 그것도 보면 그렇게 자기를 좋아 하는 사람들은 수 없이 텔레비젼 앞에서 오늘도 쳐다 보는데 그 몇명이 그렇게 욕을 하는데 그 몇명이 욕을 들으면서 자살해 버리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것을 보면 결국 그런 문제가 해결 된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인간이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괴로워지고 이런 모든것들은 그 뿌리는 결국 인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 세상에 있는 자원을 가지고 고치는 것도 고쳐지는데 근본적으로 그 뿌리는 결국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강한 점이 바로 그 근본이 무엇인지를 찿아 내서 그것을 고치고 해결하는 그것이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강점이기도 하고 또 기독교 신앙의 일이기도 한 것입니다.
오늘도 여기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얼핏 들으면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그 대부분 사람이 목이 안 마르겠지만 그래도 혹시 목 마른 자들이 있으면 그것이 아니라 여기서 누구든지 라고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입니다. 목마르거든 이라고 했는데 원래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목마른 것입니다. 다만 그것을 목마르다고 느끼고 죽을것 같이 고통을 이 안에서 겪는 사람이 하나님이 부르시는 사람이고 복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은혜받기 직전에는 마음이 천국이었기 때문에 은혜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대부분 미끄러졌다가 돌아 온 사람은 하나님이 은혜로 데려 가시기 전에 지옥 같아서 도저히 나는 여기에서 안주할 수 없다 살든지 죽든지 나는 정말 이것이 싫다 그런 마음이 생겼기 때문에 하나님 은혜에 대한 갈망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우리가 성령의 충만한 은혜가 부어 지기 전에 먼저 목마름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목마름이 있는 곳에 주님이 나타나셔서 역사 하시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총회에서 목사 장로들이 모여 기도를 했는데 저에게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 그 책이 생각이 났는지 예배에 대해서 이야기 해 달라고 해서 그 높으신 분들 한테 가서 무슨 이야기를 하나 절반이 목사이고 절반이 장로인데... 그런데 하나님이 힘을 주셨습니다. 그래 맞다. 수천명이 모이는데 하나님이 기회를 주셨는데 내가 좋은 말로 해서 달래고 내가 가지고 있는 이론을 펼치지 말고 한번 직설적인 화법으로 가자 하고 원고를 한보따리 써서 주고 갔는데 원고 읽을 시간도 없었습니다. 50분밖에 안 주고 또 앞에 잘라 먹으니까... 소개한다고 하고 또 찬송부른다 하고 이것 빼고 저것 빼고 시간도 없습니다. 그래서 가서 제가 그랬습니다. 도대체 예배를 드리는데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가 하면 갈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려고 오는 사람도 별로 없고 어떻게 하든지 우리 장로들이 몸부림을 쳐서라도 성도들을 주님 만나게 해 주어야 한다 하는 것도 없고 그냥 목회자 한사람 쳐다 보고 있는 것인데 미안한 이야기지만 목회자인 우리 자신도 오늘 저녁에 우리 성도들이 주님 만나게 해주지 못하면 내가 정말 살아서 무엇하나 하는 결심이 없다. 그렇게 모여서 마치 텔레비젼 시청하듯이 민방위 교육하듯이 그렇게 만났다 가는데 절대 거기에 하나님이 안 계시다. 오신다고 하시면 내가 말리겠다. 하나님 오시지 말라고... 그 대목에서 굉장히 많이 충격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하나님께서 더 힘을 주셔서 쎄게, 원색적으로 다시 안 부르면 할 수 없지 하고 열심히 하고 그리고 통성기도 하고 왔는데 어느 목사님께서 문자를 보냈습니다. 요즘 그 논문을 읽으면서 자기 마음이 간절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문제는 뭐냐하면 목마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목마름이 둘인데 자기에 대한 목마름과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입니다. 그러니까 목마름이 얼마나 충만한지 모릅니다. 그렇게 뭘 하자고 모이자고 해도 안 모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몇년전에 케니지라는 사람이 피리 하나 들고 잠실 운동장에 나타났더니 3만명이 모인 것입니다. 너무너무 마음이 상했습니다. 나는 나타나봐야 삼천명도 안 모이는데... 저 사람은 피리 하나 들고 모이는데 3만명이 모이고 그러면서 열광을 하고... 가수들 와서 노래 부르다가 젊은이들 기절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목마름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목마름이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제일 먼저 수련회를 앞두고 기도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하면 목마름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몸이 아무리 아파도 배고픈 것을 느끼면 안 죽습니다. 그런데 진짜 죽을병에 걸리면 배도 안 고프고 목도 안 마릅니다. 그래서 죽어 가는 것입니다. 아파서 누워 있는데 먹여야되, 아! 배고파! 낙지볶음도 먹고 싶고, 육회도 먹고 싶고 아무리 온 몸에 붕대감고 누워 있어도 절대 안 죽습니다. 그런데 목마름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에 예수님이 한탄을 한 것입니다. 피리를 불어도 그 다음에 배곡을 해도 반응이 없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든지 춤을 추든지 해야 될 것 아닙니까? 안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국은 뭐냐면 영적인 무감각입니다. 너무 무감각한 상태에 들어가면 그렇게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안됩니다. 영적인 무감각은 위험한 것입니다. 굉장히 이상합니다.
어렸을 때 병아리 기르는 것이 취미였습니다. 요즘은 안 그러는것 같습니다. 학교 앞에서 왜 그렇게 병아리를 많이 팔았는지 모릅니다. 말 들으니 그것을 감별해서 숫컷만 팔았다나 죽을것 같은 병아리만 팔았다나 그러던데... 그것 사가지고 오면 다섯마리 사면 두마리는 죽어도 세마리는 살았습니다. 잘 길러서 학교 갔다 올 때 시장에 들러서 배추잎 썰어서 사료에 묻혀 주고 중닭까지 자라면 우리집에서 그것을 사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이 닭이 얼마나 웃기는가 하면 바보입니다. 닭이 쭈구리고 자는데 날개 품으로 쥐가 들어 옵니다. 그런데 옆구리를 다 파 먹어도 가만히 있습니다. 왜 그러나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누가 가서 나뭇가지로 툭 치면 소리를 지르고 닭이 뛰어 갈텐데 쥐가 파 먹었습니다. 그래서 쥐에게 몇마리 죽었습니다.
그것이 무감각입니다. 자신의 영혼이 많이 망가지고 형편이 없어지는데 무감각한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가 하면 목마른것도 얼핏보며 은혜가 떨어져서 그렇지만 은혜가 남아 있기 때문에 목이 마른 것입니다. 그 은혜를 구하고 은혜를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 은혜가 조금씩이라도 주어 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주어지지 않으면 목마른것 자체도 잊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결국은 하늘자원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삶이 얼마나 어지럽고 혼란 스럽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치거나 몸이 상했을때 처음에는 우리 몸의 감각이 없어도 딱지 떨어지고 새 살이 돋고 하면 몸의 감각이 생겨나지 않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회복되려면 제일 먼저 하나님 저에게 목마름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은혜에 목마른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수련회를 앞두고 사랑하는 성도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야 할 기도의 제목들입니다. 물론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 모두가 이런 은혜에 대한 목마름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두번째로는 뭐냐면 이 생수의 강이 배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히브리 사람들 사고방식과 관련이 있는데 우리는 영혼이 심장에 있다고 생각을 많이 하는데 또 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프리카쪽에서... 그래서 여러분 지금은 없어진 사람들이지만 이디아민같은 사람들은 자기의 종족을 죽여서 반란을 일으켰던 부하의 배를 갈라서 간을 먹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뭐냐면 영혼 자체를 자기가 죽여 버리고 더이상 활동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미신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끔찍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사람들은 영혼의 자리가 인간의 배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문화를 빌어서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고 하는것은 무슨뜻인가 하면 영혼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생명이, 성령의 은혜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들이 기도를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도구일 뿐이고 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고 그 깨달음이 도구가 되어서 성령의 역사를 동반하게 될 때 그때 우리가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생수의 강과 같은 은혜가 넘쳐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알고 있는 진리대로 살 수 있는 하늘의 자원을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혼과 육체를 살게하고 우리를 수난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믿음생활을 이어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것이 믿는 사람들이 마지막에 받을 큰 복입니다. 결국 이러한 물이 우리의 은혜 안에서 가득 넘쳐 흐를 때 그때 다른사람이 이 물의 덕을 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고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을 오래 참고 관계를 지속하기에 너무 힘든 사람들을 참고 이해하고 견디고 하면서 믿음생활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 물이 흘러 넘쳐서 나 자신에게 가족들에게 우리 구역원들에게 순원들에게 흘러 나갈때 그때 한 사람의 배 안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는데 그것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은혜의 유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이 하나님의 은혜를 많은 사람들이 누리면서 그렇게 해서 이 생수의 강이 흘러 가는 그것이 전도이고 생수이고 이 생수의 강이 흘러가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입니다. 그러니까 이번 수련회에서 성도들 한사람 한사람 모두 심지어는 어린 학생들까지도 이렇게 정말 목마른 마음을 가지고 참석해서 주님을 깊이 만나서 영혼의 생수를 얻게되는 그래서 늘 패배하는 것을 운명처럼 생각하던 사람들이 승리의 기쁨을 누리는 이런 신앙생활이 되도록 우리가 준비하고 기도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