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받을 만한 때에 부르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사 55:6-7)
이사야 55장은 어떤 의미에서 초청의 장입니다. 그래서 전에도 몇 주에 걸쳐서 설교했습니다만 1절에 보면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이제 이스라엘의 복역의 때가 모두 끝나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은혜를 회복시키시고 그 백성들을 당신의 사랑의 품으로 다시 한 번 부르시는 광경을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오늘 우리들이 이제 6절을 중심으로 오늘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그렇게 말합니다. 우선은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 그러나 우리들의 신앙의 경험으로 비쳐보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무시로 은혜를 베푸십니다. 수시로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있는 동안에도 하나님께서는 부를 사람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불러서 구원 하십니다. 우리가 잠들어 있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회복시키실 사람들은 기도원에서 혹은 부흥회에서 혹은 성경공부모임에서 혹은 설교를 들으면서 예배시간에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은혜주시고 회복시키는 놀라운 역사가 언제나 무시로 일어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왜 주님께서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마치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가 없는 것 같이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이제 이 우린 이점을 기억해야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1장부터 39장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을 떠난 범죄와 그 다음에 하나님을 떠난 패역한 모든 사람들을 전부 다 낱낱이 하나님 앞에 고발 했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국은 앞으로 이제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모두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그러나 성경을 통해서보면 하나님의 마음이 특별히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지만 그런 하나님께서 특별히 우리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아주 특별히 긍휼히 여기실 때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시지만 그러나 성경에는 특별히 하나님의 그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싶어 하시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언제나 사랑하시지마는 그러나 안식년과 희년이 되었을 때에 해방과 그리고 풍요와 기쁨을 경험하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자기들을 사랑해주시는가 하는 것을 온 삶으로 경험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지만 그러나 때로는 하나님이 특별히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원하는 그러한 간절한 마음이 하나님의 인격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음 공생애에 등장하시며 갈릴리에서 설교하셨을 때 그때 바로 “보라 지금은 여호와께 은혜 받을 만한 해요”(고후 6: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많은 해가 흘러갔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셔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다 보여 주셨습니다. 너무나 오랜 세월동안 병든 사람들은 그대로 병들어 있었고 저는 자들은 저는 대로 살았습니다. 눈먼 자들은 눈먼 자대로 살았고 포로 된 자들은 포로 된 자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고쳐주시고 눈먼 자를 뜨게 하고 저는 자를 일어서게 하였습니다. 포로 된 자들에게 해방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곤고하고 고통 받으며 살아가는 이 세상의 백성을 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자들을 바라보며 슬퍼하셨고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앞으로 나아오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향해 당신 앞에 나올 수 있는 문을 활짝 여셨습니다. 그분에게는 낮도 없고 밤도 없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깊은 밤까지 당신을 필요로 하는 그리고 당신으로부터 들려오는 진리의 말씀을 듣고 싶어 하는 모든 영혼들을 진실한 사랑으로 섬기셨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과 하나 되셨습니다. 백성들은 우리들이 부유하게 되기 위해서 부유한분이시지만 스스로 가난해지셨습니다. 우리의 강함을 위해서 강한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약한 자처럼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인이 아니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죄 가운데 건져내기 위해서 죄인처럼 세례를 받으시고 죄인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어떤 마음입니까? 이전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히 받지 못했던 그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처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할 때 그때에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그때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이전시대의 모든 사람이 보내는 시기 날 정도로 특별한 은혜가 당신을 통해서 백성들에게 주어질 때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지금은 은혜의 해다 너희들은 내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가 되라”라고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예화) 어느 백화점엘 갔는데 무슨 백화점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사람들이 많이 모였는데 백화점에서 떠드는 소리는 어떤 때는 무슨 소린지 잘 못 알아듣잖습니까? 방송이 막나오는데 갑자기 그 모여 있는 사람들의 대열이 막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소린가...’ 불났다는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근데 사람들이 막 이렇게 옹기종기 모여서 야채도 사고 또 생선도사고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그 방송을 듣자마자 막 대열이 움직이고 어디로 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게 뭐 자기네들 말대로 깜짝 세일이랍니다. 그래서 선착순 30명에 한해서 생선꽁치를 10마리에 만원에 준다고, 또 무엇을 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어떤 때는 ‘참외를 세일합니다.’ 하면 조금 아까 전까지 가지고 갔던 사람은 이천 원씩 받던 것을 천원에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와서 몰려들었습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바로 그 가게에서 은혜의 해가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와르르 몰려드는 것입니다. 조금아까 산 사람들은 그런 혜택을 볼 수 없었는데 선착순에 한해서 혜택을 본다니까 바구니를 들고 아줌마들이 냅다 뛰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호와를 만날 때에 그때는 바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는 특별한 긍휼의 때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바로 그런 특별한 긍휼의 때에 살고 있다고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때에 살고 있고 우리는 특별히 말세를 당해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신령한 은혜가 아니면 올바른 믿음생활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니 이것은 내가 교만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시 정말 예수 처음서부터 다시 믿어야 될 사람들 천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쏟아놓고 기도를 하면서 살아갑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사모해서 그 말씀을 듣기 위해서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립니까? 사는 것 같기도 하고 조는 것 같기도 하고 깨어있는 것 같기도 하고 죽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이 세상의 인간들이입니다. 세상에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삶을 사는 것을 너무너무 안타까워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진정한 은혜와 참된 사랑을 모르면서 살아가는 것 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할 수 있으시면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부어 주셔서 그래서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되는가 하는 것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시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깜짝 세일만 해도 사람들이 와르르 몰려다니는데 신앙에 대해서 사람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 믿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웬만큼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이 예수를 믿어가지고는 그 사람들이 정말 하나님의 복음 안으로 돌아오지 아니하는 그런 강퍅한 심령을 가지고 살아가는 어려운 때라는 사실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또 믿는 자들의 입장에서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믿음을 지키면서 살아가기가 너무너무 어려운 시대입니다. 확실한 것 하나는 무엇이냐 하면, 지금부터 한 30년 전만해도 말입니다. 30년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한25년 전만 하더라도 교회가 모이는 게 이렇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우리 어저께 구역장님들이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모였습니다. 100%출석 했습니다 조금 지각은 했지만은. 너무너무 어렵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생활들이 너무너무 복잡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믿음 지켜나가기가 말세가 되면 될수록 너무나 어려운 것입니다. 20년 전만 하더라고 어른이니 애나 이렇게 바쁘지 않았습니다. 지금 유치원 다니고 1,2학년 애들도 하는 말이 바빠! 바빠! 안 바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때가 될수록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때에는 특별한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걸 부어주시기 원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누가 그랬습니다. 옛날이니까 엘리야 같은 사람이 큰소리 칠 수 있었던 것이고, 요즘은 엘리야정도의 능력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합 시대보다도 훨씬 더 악하고 어려운 시대를 살기 때문에 그 정도 가지고는 게임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 동의할 수 없지만 그러나 그 기본적인 생각은 우리가 충분히 수긍할 수 있습니다. 왜? 이전보다 믿음을 지키면서 살기가 너무너무 어려운 때를 당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의 삶이 너무 바빠서 그럽니까? 여러분 사람들이 먹고 살기 바쁘다고 해가지고 신앙생활 잘 안하고 한가하다고 해서 신앙생활 잘하는 줄 아십니까? 어림없습니다. 여러분 1960년대에 천막만 쳐놓으면 사람들이 새카맣게 모여들어서 부흥회 참석하고 은혜 받을 때 그 사람들이 할 일이 없어서 거기 모여든 사람들입니까? 낮이면 방직공장으로 아니면 가발공장으로 아니면 브로크공장으로 가죽공장으로 날염공장으로. 그냥 돌아다니면서 밤늦게까지 일하던 사람들이 헐레벌떡 달려와서 은혜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 앞에 와서 한없이 통회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제가 처음 회심하던 교회에도 금요일이면 철야를 하는데 그 철야 오는 사람들 가운데 3분의 1은 누구냐 하면 그 근처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자매들이입니다. 그게 뭐냐면 맞교대하는 자매들이입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일하고 그리고 밤에 와서 철야를 하는데 그 다음날 가서 또 하루 종일 일해야 될 사람들이입니다. 그런대도 나온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먹고 살기 바빠 죽기 때문에 신앙생활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대에 따라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달리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안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이 마지막 때가 되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정말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회개해서 하나님께 돌아오기가 어려워지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올바른 믿음생활을 해나가면서 세상과 더불어 싸우기가 너무나 어려운 때가 온다고 하는 사실을 하나님은 이미 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큰 은혜를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서 준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게 바로 은혜 받을 만한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일하시고 싶어 하시는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은혜 받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두운 세상을 불꽃처럼 살고 그 불꽃을 들고 선교지로 나가고 이방인들에게로 다가가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간절히 만들어 내고 싶어 하십니다. 마지막 때는 특별한 은혜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 붓듯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 하면서 결단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 오늘은 힘들다, 어렵다, 정말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내가 신앙생활 못하는 것은 당연해’ 그렇게 생활을 하면 죽을 때까지 환경이 여러분들을 도와주지 않아요. 환경이 여러분들을 놔주지 않아요. 이 세상에서 뜻을 정하고 성공을 쟁취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도 ‘운명아 비켜라 내가 간다!’ 말하는데 하나님을 힘입어서 ?을 사랑하는 우리들이 환경에 굴복하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싸움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며 이렇게 뜻을 세우고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위로부터 능력을 공급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능력을 힘입어 이 말세지말(末世之末)을 승리하고 이기며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기를 잃어버리고 신앙의 참된 기쁨을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소위 생명을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불행한 사람들처럼 삽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영광과 축복의 세계를 누리기를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놀라운 축복과 약속을 내 것으로 받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억지로 신앙생활을 하고 그리고 코 꿰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그렇게 억지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점점 우리의 눈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섭리하신 하나님이 나의 믿음의 생활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생각하기에 앞서서 사람들이 ‘집사인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사람들이 ‘권사인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렇게 사람 앞에서 우리의 모습을 비춰보는 그러한 외식적인 신앙생활로 우리의 믿음생활을 영위해가고 있지나 않느냐는 것입니다. 늘 말씀 드립니다. 이 세상에서 빽 있는 사람 하나를 믿고 살아가는 사람도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하고 다릅니다!
(예화) 제가 방위훈련을 받을 때 정말 안경 쓰고 살이 좀 찐 대다가 그렇게 굼뜬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얼굴은 곱상한데 정말 요즘말로 하면 고문관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꼭 훈련받고 쉴 때 면은 그 부대장이 소령입니다. 소령하고 방위훈련병하고 엎드려서도 쳐다볼 수 없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 양반을 꼭 만납니다. 어깨를 툭툭 치면서 “힘들지 않았냐?” 그러더니 한참 훈련을 받는데 헬기가 떴습니다. 옆에 앉아서 자기 친구하고 둘이 얘기하는 것입니다. “아참 오늘 우리 작은아버지 온다고 했지?” 알고 보니까 작은아버지가 육군 참모 차장입니다. 그러니까 벌써 그 소식이 다 들어갔습니다. 자기 아버지도 아니고 작은아버지가 육군참모차장이니까 훈련을 받으면서도 살아가는 훈련받는 모습이 세상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뭐가 있습니까? 나에게는 든든한 밀어주시는 분이 계시다! 수시로 개인적으로 부릅니다. 뭐 할 얘기가 많은지. 그래서 “너는 참 특과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나라의 사람들이 세상에서 전부 다 당당하고 사람들 앞에서 그리고 이 세상 앞에서 그리고 변하지 않는 이 세상의 풍조 앞에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더구나 말세지말(末世之末)에 하나님께서는 은혜 받을만한 때에 당신은 당신께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령 부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귀신이 들려도 사람이 변하는데 성령이 들리면 사람이 바뀌겠습니까? 안 바뀌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을 만나는 우리가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그 마지막 때에 우리가 이 죄가 많고 그리고 불신앙으로 가득한 세상을 이기면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성령의 놀라운 능력이 우리 안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세상의 사람들과 조금도 다름없는 그런 삶의 모습을 가지고 똑같이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이 세상에 가서 구걸하고 군침 흘리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몸은 광야 길을 걸어서 가나안으로 가고 있으나 마음은 항상 죄악의 고향 애굽을 그리워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놀라운 은혜의 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의 놀라운 때를 맛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도 당신께 나아오는 사람들마다 하나님께서는 남종과 여종들에게 하나님의 신을 물 붇듯 부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은혜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마지막 때에 얼마나 우리가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어려운가 하는 것을 하나님이 아시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시대면 하나님의 은혜도 강렬하게 역사합니다. 돌이켜 생각해보십시오. 사도들이 처음 그리스도인들이 어디를 지나든지 그들은 핍박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두운 땅에서 밀려오는 엄청난 핍박을 능히 이기고 나아갈 수 있는 그 특별한 은혜를 하나님께서는 초대교회에게 물 붇듯 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찬송하고 경배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마음속에, 우리의 심령 속에 은혜를 부어주시기를 원하는 때 이때가 바로 은혜 받을 만한 때라는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에게 이런 놀라운 은혜를 주시는가? 오늘 성경은 말하기를 만날만한 때에 거저 부어준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만날만한 때에 너희는 찾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55장 1절에서는 “너희 목마른 자들아 이리로 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마음껏 먹으라고 마시라”라고 모든 것을 다 저당해 놓으신 예수님이 예수님의 놀라운 그 구원의 능력을 여기서 예표하고 있는데 이렇게 모든 것을 먹고 마시라고 열어 놓으신 그 하나님이 이번에는 그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것을 받는 길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너희는 하나님을 찾으라!”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으라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예화) 어떤 사람이 아주 중요한 여권을 잃어 버렸습니다. 근데 잃어버린 여권이 길거리에서 쓰리를 당한 것이 아니라 잘못 알고 그 식모가 쓰레기통에 넣었는데 가보니까 쓰레기를 벌써 치워 간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그것을 찾을 수가 있겠습니까? 쓰레기차가 싣고 가서 벌써 난지도에 퍼부었는데 어떻게 그것을 찾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며칠 안에 꼭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찾았는지 아십니까? 난지도에 가서 넝마주이들을 다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무엇이라 했냐하면 그중에 어떤 사람들은 일당을 주고 어떤 사람들은 안주고 여기에서 파란색으로 어떻게 생긴 게 있는데 그 여권이 난지도에 쓰레기로 실려 온 것까지만 확인되었다. 그리고 그 날짜는 언제다. 누구든지 찾으면 오십만 원을 주겠다고 현상금을 걸었습니다. 그랬더니 매일 쓰레기차가 들어와서 어느 구에서 들어온 차가 어디다 붓고 하는지 알고 있잖아요. 며칟날 들어온 쓰레기가, 어느 구청에서 들어온 게 어디쯤 버렸다하는 것이 나온 것입니다. 이러니 넝마주이들이 새카맣게 달라붙어서 그때 돈 오십만 원이면 굉장히 큰돈 이었죠. 그냥 그 집게로 밤낮없이 찾는 것입니다. 결국 사흘 만에 찾았습니다.
그러면 그게 바로 찾는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당신께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마지막 어두운 세상의 세상 말세지말(末世之末)에 이기면서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물 붇듯 부어주시기를 원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 (찾는 사람)들에게 부어주시기를 원하는 것 이입니다 그러니까 죄가 많아서 은혜를 못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안 찾아서 은혜를 못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까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죄를 지었던 사람들도 마음이 변해서 하나님을 찾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죄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물론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 1:18) 또 오늘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너희가 나를 찾고 믿음이 돌아오면 그가 하나님인 그분이 너희의 모든 죄를 기꺼이 용서해 주시겠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죄 중에서 가장 심각한 죄는 살인이나 간음이나 아니면 이 세상에서 어떤 형무소를 드나드는 그 죄가 하나님 앞에 큰 죄가 아닙니다. 가장 커다란 죄는 무엇이냐? 하나님을 찾지 않는 죄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5장에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유다나라는 결국 하나님께 범죄 한 사람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라 범죄 했을 지라도 하나님을 찾으면 되는데 하나님을 찾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 앞에 주님을 전심으로 붙들면서 신앙생활하지 않고 내 힘으로 이 세상에서 대충대충 살아가면서 그리고 형식은 신앙 속에 있고 실천적인 내용은 내가 신앙의 대상이 되어있는 자아중심적인 생활로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기뻐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벌써요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은 벌써 틀리단 말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은 그 찾는 간절한 마음이 말하자면 자기의 모든 삶과 마음속에 배어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도 당신을 찾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온 땅을 두루 살피면서 감찰하시는 것입니다. 히브리말로 이 찾는다는 말이 ‘다라시’입니다. 다라시라는 말은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찾는다는 것입니다. 집요하게 끝까지 그것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을 그렇게 찾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하나님을 찾되 구하고 응시하며 시위를 당기는 사람들처럼 눈을 지그시 감고 표적을 겨냥하면 그 표적을 동그란 점 하나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두 번째 동그라미로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그 정 가운데 십 점짜리 동그라미 하나만 보이는 것입니다. 왜 거기로 명중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한 관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다’라고 하는 의미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이렇게 형식적으로 안주하면서 살아가는 이것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지 못하게 하는 가장 커다란 원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주시고 하나님이 누구인지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그리고 하나님이 어떤 자들에게 의무를 주시는지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찾습니다! 오늘 우리교회 어떤 새로 와서 인사하신 분이 있습니다. 청주에 계신 분인데 우리교회에 왔습니다. 왜 왔습니까? 마산에 있는 친구가 가라고 해서 왔다고 합니다. 마산에 집회를 한번 내려갔습니다. 자기 친구가 그런 고백을 하더랍니다. ‘부흥회기간 동안이었는데 교회 가기만 하면 전에는 안 그랬는데 교회를 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걷잡을 수 없는 은혜를 자기에게 주셨다고 합니다. 그게 왜 그럽니까? 전에는 그냥 왔다 갔다 하던 교회인데 어느 한 순간에 그 교회 들어가니까 마음속에서 막 눈물이 흐르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납니까? 그러니까 자기의 영혼에 하나님이 우시니까 거기에는 울어야 할 이유가 있고 기뻐해야 할 이유가 있고 감격해야 할 이유가 있고 내가 이렇게 어려움 속에서 물질적으로 곤고하고 그리고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여러 가지 환난과 어려움에 처하면서 살아도 감사하며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단 말입니다. 하나님을 응시하는 것, 하나님을 찾는 것. 그러니까 그런 그 하나님께 감격한 눈물이 있고 참회의 눈물을 흘려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신앙생활이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은혜를 지키는 삶을 살기가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말세에는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마음이 둔하여져서 세상의 염려와 그리고 세상의 재물에 대한 근심,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을까?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남에게 뒤지지 않고 그렇게 살아볼까 하는 세상 사랑과 세상에 대한 욕망 때문에 마음의 각질이 생기고 영혼이 말하자면 두터워져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사랑을 알고도 거기에 반응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어져 간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 속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서 그것 따라 반응하는 것입니다. 속에 신령한 은혜의 세계가 있는 사람들은 은혜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 하나님의 은혜 받은 이야기,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진정한 믿음의 길은 무엇인가 하는 소식을 들을 때 마음이 뜨거워지고 심령의 새 힘이 솟아나고 그리고 거기에 매달리고 그것을 듣고 싶고 그것을 사랑하고 싶고 그것을 받아 가지고 싶어 하는 사모하는 마음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령의 각질이 생기고 두터워져서 하나님을 도무지 찾지 않으면서 죄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고 은혜 받는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한없이 은혜 받을 때에 잠자는 심령으로 이 은혜의 자리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가도 세상의 돈 버는 이야기만 하면 그냥 폭포수같이 쏟아놓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음속에 그러한 세계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그렇게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게 나타나리라” 아니 “너는 나를 찾으라 나를 찾으라” 하나님을 찾지 않고 마치 너희를 찾는 것이 너희를 만나는 것이 너의 인생이 전목표인 것처럼 하나님 앞에 그렇게 간절하게 찾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 42:1) 그런 목마름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찾으라! 사모하는 마음으로 너는 나를 찾으라!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도 우리의 신앙생활을 바라볼 때 하나님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평가하실 때 하나님이 우리가 주를 찾는 사람들 중에 들어간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그냥저냥 살아간다고 생각 하시겠습니까? 여러분 주님께로부터 “너희는 하나님을 찾으라 너희 중에 나를 찾는 자가 하나도 없구나!” 그렇게 말씀 하실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언제나 성전에 있었고 그리고 거기서 연기가 올라가고 하나님 앞에 제사하고 예배했습니다. 절기로 사람들이 모이고 그리고 성령의 대화로 사람들이 모이고 안식일과 각기 월삭을 따라서 사람들은 모였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나를 찾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고나”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그러한 간절한 목마름을 가지고 드리는 그 기도 속에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할 때에도 리처드 백스터 목사가 말한 것처럼 죽어가는 한 사람으로써 죽어가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그런 마음으로 외치는 사람들을 붙들어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런 신앙의 법칙들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태도를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정말 너희들이 전심으로 나를 경외하고 또 나를 필요로 하는지 아니면 괜히 말뿐인지 하나님께서는 헤아리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성도들을 통해서 주님이 하셨던 것은 무엇이죠?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사 29:13)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간절히 찾는 사람들을 오늘도 찾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찾기만 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 됩니다. 죄의 문제도 해결 됩니다. 그리고 시련의 문제도 해결 됩니다. 그리고 고통의 문제도 해결 됩니다. 자기의 인격의 문제도 해결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간절히 찾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마음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그 사람들에게 그들을 위해서 역사해 주실 때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들을 위해서 역사하신 것을 인정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이렇게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렇게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응답해 주시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찾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런 속에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을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역사하시는 놀라운 증거들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많은 죄와 허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간절히 찾는 목말라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도 찾고 계신 것입니다. 바위에서 생수의 강이 솟아 나와서 우리의 영혼을 만족하게 하고 또 우리를 통해 수많은 이웃들이 만족하게 하는 충만한 은혜의 역사가 우리를 통해 일어나야 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찬양)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어지러운 세상 중에 곳곳마다
예수 없으면 소망이 없습니다. 왜 아멘 안 하십니까? 이 좋은데 왔으니 아멘을 더 크게 해야 합니다. 우리들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까 이제는 내 삶이 내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셔서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삶을 우리를 통해 펼쳐보여 드려야 될 것 아닙니까? 50평생 혹은 40년 30년 20년을 살아 왔습니다. 언제 우리가 주님 위해서 산 적 있습니까? 몇 월 며칠부터 며칠까지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살았습니까? 언제부터 언제까지 우리가 주님을 찾으면서 살았습니까?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다 가져갔을 지라도 하나님 내게서 주님만은 가져가지 마시옵소서. 주께서 나를 주님의 것 삼으시고 주님은 나의 것이 되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으실 때에 정말 진정으로 우리가 주님을 믿느냐고 주님이 우리를 바라보실 때에 주님 눈에 정말 우리가 주님을 찾는 자로 그렇게 나타나는 때가 언제 있었냐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었지만 그러나 우리는 자기를 만족하는 삶을 살아온 날이 더 많았습니다. 젊어서는 여기서 저기서 즐거운 일 때문에 하나님을 찾을 기력이 없었고, 아이 낳고는 뒷바라지 하느라고 바빠서 주님을 찾을 새가 없었고, 다 자란 다음에는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라고 또 하나님을 찾을 길 없고, 이제 시간이 남아서 넉넉한 시간이 된 때에는 우리는 너무 늙었고, 힘이 없어서 주님을 찾을 수가 없게 되었고, 그러면 이제 우리는 인생의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살아있는 백성들이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선택하셔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의 때가 다가온 줄도 모르고 여전히 어둠과 흑암 가운데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고 죄 가운데 사로잡혀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참된 신앙의 길을 걸어가도록 만들어 주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살아계시는 삶을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든지 곤고하든지 죄 가운데 있든지 혹은 환경적으로 너무나 어려워서 고통을 받든지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문제는 그 환경이 아니라 오늘 하나님을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많은 것을 가로 막습니다. 그에게 못 가게 가로 막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환경이 우리로 하여금 주님께 봉사하지 못하도록 가로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환경도 막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환경이 막을 수 없습니다! 내가 주님을 찾는데 누가! 누가 우리의 그 마음을 빼앗아 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간절히 찾으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은 나를 향하라 그리고 너희가 참다운 신앙생활을 옳게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서 깊이 회개하라.” 더 많은 하나님의 생명을 나의 마음속에 충만히 채워주셔서 실패를 운명처럼 생각하면서 당연하게 살아가는 이런 실패에 익숙한 삶에 반기를 들 수 있는 이런 용기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도록.
기도하는 사람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니면 정말 내가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구원해 주신 이 참된 은혜를 믿음으로 보답하며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자각하며 은혜를 그리워하며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충분한 은혜와 그리고 생명과 사랑을 부어주시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도 의로운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찾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자기를 찾는 사람,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해 있는 사람, 마치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두 사람이 성전에 똑같이 기도하러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다 똑같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의인이라고 일컬어지는 바리새인의 기도를 듣지 아니하시고 가슴을 치면서 “아버지여,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말끝을 잇지 못하고 가슴을 두드리며 통회하는... 하나님 앞에 감히 얼굴도 들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흐느끼는 그 세리를 하나님께서는 받으시고 그에게 은혜를 부어 주셨던 것입니다. 사모하는 마음 그러니까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것을 정말 싫어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결단만 안하면 마귀가 우리를 놔 둡니다. 집사도 하라고 하고, 권사도 하라고 하고, 교회봉사도 하라고 하고 다 합니다. 오히려 무엇을 제일 싫어하는지 아십니까?
(찬양)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딱 결단합니다. ‘내 생명이 이제 하나님께 있으니 내가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찾기만 하면...’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까 저 뒤에 모퉁잇돌 선교회에서 붙여 놓은 것 같습니다. 보니까 조선족 할머니가 북한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성경을 뿌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교 갔던 사람이 만나서 “할머니 그렇게 하다가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죽기밖에 더하겠습니까? 나는 실수를 해도 김일성이가 모르고 실수를 해도 십자가를 하나 만들어서 북녘 땅에 높이 세워지는 것을 보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마지막 일평생 소원이 무엇입니까?” “나는 내 동포들이 보는 앞에서 큰 소리로 찬송 한번 해보고 죽는 것이 내 꿈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찾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찾아오셔서 내가 너희에게 준 그 신앙의 놀라운 자유들을 너는 어떻게 활용하였느냐고 물으시면 우리는 적어도 이렇게 대답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주셨지만 우리는 세상과 어울려 사느라고 신앙의 자유를 활용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주신 건강, “너는 나를 찾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을 수 있는 건강을 주었는데 그 건강으로 네가 어떻게 내 앞에서 활용하였느냐?” 물을 때에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선교사들이 그래서 선교지에 탁 들어가면 제일 먼저 하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관습이 있다고 합니다. 불문율입니다. 선교지에 부임하는 첫 날 책상 앞에서 유서를 쓰는 것입니다. 유언을 쓰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이 얼마든지 계속될 것처럼 그리고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하나님 그분 정도야 언제든지 만나볼 수 있을 것같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을 따라서 살다가 마지막에는 믿음을 버리고 죽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성령으로 시작했으나 육체로 마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육체로 시작하였다고 할지라도 성령으로 마치는 사람들이 되어야지만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사람들이 될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간절히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을 바라고,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그 가정과 교회에 역사해 주역으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무릎을 꿇을 때에 역사가 일어나요. 마음이 하나님께로 집중되고 그리고 삶의 모든 희망을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건사람, 이 사람들은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릴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하지만 정말 하나님 앞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욘 2:4)라고 말했던 요나의 고백과 같이 하나님만을 앙망하고 부르짖는 기도의 시간들이 얼마나 되었습니까?
마귀는 우리가 형식적인 신앙생활 하는 것은 얼마든지 내버려 둡니다. 관심 없습니다.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옮기고, 그리고 이 기관에서 저 기관으로 옮기고, 이 봉사를 하다가 저 봉사를 하고, 이 직분에서 저 직분으로 옮겨 다녀도 사단은 그런 것에 관심 없습니다. 왜? 아무리 그래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삶을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나 가장 무서운 것은 결심하는 사람-오늘도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주님을 전심으로 찾겠다고 결심해 보십시오. 그러면 수많은 방해와 말하자면 대적하는 세력들에게 부딪히게 된단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하나님 앞에 매달리면서 당신을 찾는 사람들을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문제는 죄가 아니라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입니다. 내 영혼의 참된 소유는 주님뿐이시고 그리고 내 죽음의 문턱에서도 끝까지 이 세상에서 내가 사랑하던 모든 사람들,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내 죽음과 시련의 문턱 앞에서 다 내 손을 놓고 도망갈 것들입니다. 그러나 거기서도 끝까지 내 손을 잡고 당신의 나라까지 인도하실 분은 오로지 하나님 아버지 한 분입니다. 그 하나님 한 분만이 내 소망이라고 하는 사실을 깊이 깨달으며 하나님 앞에 간절히 사모하며 하나님 앞에 매달리며 그렇게 하나님 찾기를 하나님께서는 간절히 원하고 사모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 가까이 계십니다. 그래서 가까이 계셔서 언제든지 하나님께서는 여건을 마련하시고 때가 되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왜? ‘얘야 네가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내가 너를 얼마나 찾고 있는지를 내가 네게 보여주리라. 너는 나를 사랑하라. 네가 나를 사랑하면 내가 너를 향한 그 사랑이 얼마나 무궁한지를 내가 너에게 보여주리라. 너는 나를 의뢰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를 위해 공급하고자 하는 그 예비 된 것들이 얼마나 큰지 내가 네게 보여주리라.’ 하나님께서는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당신을 찾는 사람들을 간절히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공중전화 하는 것처럼 드르륵 걸고 끝내는 기도생활과 뭘 읽었는지도 모르고 넘어가는 말씀생활 시간이 되면 출근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출근 안할 것입니다. 출근하는 사람들 세 번만 지각하면 경위서 쓰라고 하고 경위서 세 번만 쓰면 일거리 안주고 그만두라고 할 것입니다 아마.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와 하나님 예배 앞에 나오는 태도는 정말 달라야 되지 않습니까? 간절히 사모하면서 하나님 앞에 주님을 찾고 싶어 하고 애원하고 매달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그리워하며... 우리는 너무나 많은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을 만나면 다행이고 안 만나도 괜찮은 그런 것처럼 우리가 기도하고 예배하고 찬송하고 섬기고 그렇게 하나님을 찾는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야 하나님께서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갈망하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당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큰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예화) 이 기도원에만 오면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1989년도 8월 15일입니다. 기도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여름수련회를 한번 갔다 와서 두 번째 수련회를 하는데 다 가고 여학생 하나가 뚝 떨어졌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인가 그런데 너무너무 수련회가 가고 싶은데 같이 갈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약도는 받아들었습니다 어디인지는 압니다. 그런데 버스에서 딱 내렸는데 캄캄한 숲이 나오는 것입니다. 기도원이 500미터를 들어가야 되는지 100미터를 들어가야 되는지 1킬로를 들어가야 되는지 알 수가 있어야합니다. 동네에 누가 지나가면 “여기 기도원이 얼마나 들어가야 되요?” 라고 물어볼 텐데 지나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500미터를 가야되는지 1킬로를 가야되는지 캄캄한 산길을 그냥 걸어오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얼마나 질렸는지 다행히 그 기도원이 가까운데 있었습니다. 500미터밖에 안 됩니다. 얼마나 질렸는지 기도원에 들어오자마자 대성통곡하면서 울었습니다. 참 하나님은 신기합니다 족집게같이 그 저녁집회에 늦게 참석했는데도 딱 족집게처럼 집어내가지고 은사를 물 붇듯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것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 같으면 하나님이 안 그러셨을 지도 몰라! 그 까짓것 컴컴한 길 그냥 노래 부르면서 걸어가지... 그러나 그 자매에게는 너무너무 힘든 길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그걸 가능하게 합니다. ‘나는 가야한다! 그 일념 하나님을 만나야 된다! 그 일념 그러니까 평상시 같으면 목표가 없으면 도저히 그 길을 갈 수가 없는데 목표가 있으니까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니까 오죽했으면 들어와서 대성통곡을 하면서 무서워서 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딱 집어서 그에게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당신을 찾는 것을 너무너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교회가 은혜가 제일 넘치는 예배가 수요예배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건 하나님이 참 은혜를 안주실 수가 없습니다. 멀리 온 사람들이 순서적으로 은혜를 받는 것 같습니다! 왜? 2시간 반 어떤 때는 3시간씩 막혀가지고 그냥 땀을 뻘뻘거리고 고생을 하다가... 여러분 돈 준다고 하면 오겠습니까? 아마 안 올 것 같아 없이 그냥 집에서 덜 먹고 덜 마시는 게 낫지 돈 준다고 오겠습니까? 살면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으시도록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그렇게 당신을 찾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 찾는 것을 기뻐하십시오. 저 회심하고 얼마 안돼서 삼각산 기도원에 굉장히 자주 오르내렸는데 걸어서 올라가는데 장정발걸음으로 1시간 40분입니다. 그것도 낮에 가 본적은 거의 없습니다. (한번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캄캄한 밤에 올라가는데 그 곳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거기 올라 다니던 목사님들이 뭐라 하냐면 올라오면서 은혜는 80프로 다 받는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올라가기만 하면 진짜 통곡이 나옵니다. 왜? 너무 힘들게 걸어 올라와가지고 주님이 그렇게 반가운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선 올라가면 내려오는데 1시간 20분 걸립니다. 그러니까 본전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올라온 사람들은 철야기도 11시부터 시작해서 새벽 5시까지 훤할 때까지 기도하는데 휴식시간 10분도 없습니다. 돌아앉아서 계속 기도하는데 그 기도가 이어집니다. 왜? 그렇게 하나님을 찾는 마음으로 1시간 40분을 처자의 몸으로 혹은 남성이라 할지라도 그 고단한 직장을 마치고 그 산꼭대기까지 올라오는데 할아버지 목사님들 숨을 몰아쉬면서 열댓 번씩 쉬면서 올라오는 것 그렇게 하나님을 찾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귀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면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 점점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찾지 못하도록 하는 거침돌들을 우리들에게서 치우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럴 때 있지 않습니까? 자꾸 세상이 나를 시험합니다. 시험하는데 뜻을 딱 세우고 ‘나는 어떻게 환경이 바뀌든지 이렇게 산다!’ 이렇게 하면 시험이 없습니다. 죽어도 주일을 지킬 것인가 말 것인가 이렇게 고민을 하니까 시험이 드는 것입니다. ‘죽어도 내 가정, 내 신앙은 주일을 지킨다!’ 이렇게 딱 결심하면 그다음엔 시험이 없습니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강렬히 위로부터 내리시는 은혜를 힘입어서 세상과 맞서고 뜻을 세우면 세상이 물러가고, 마귀는 뜻을 세우면 악한마귀는 물러가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결단하고 하나님을 따르기를 원하는 우리들을 (하나님을 찾는 우리들을) 하나님께서는 함께 해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찾을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통해서 그 은혜의 일들을 행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길입니다. 우리 다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