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 [시 곧 노래, 인도자를 따라 현악에 맞춘 것]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셀라)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시 67:1-2)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시인은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고 복을 주셔서 우리에게 그 얼굴빛을 비쳐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어두운 세상에서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빛들로 나타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빛들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의 빛이 항상 비쳐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 백성들에게 끊임없이 빛을 주시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법도 하나님의 은혜의 진리를 따라서 살지 않으려고 하는 그 불순종 하는 마음과 죄악 때문에 주님의 빛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사라지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치 그리스도 예수의 찬란한 빛을 세상에 발하는 거울과 같은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어두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다운 맛을 잃지 않고 살아가도록 하나님 앞에 우리가 탄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당신의 놀라운 은혜의 빛을 당신을 사모하고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비쳐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그 은혜의 빛을 우리에게 비쳐주셨어 우리가 먼저 그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그 은혜의 빛 안에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 안에서 누리면서 살지 아니하면 우리는 형식적이고 말하자면 이기적인 신앙생활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의 친구는 죄악이고 그가 머물고 싶어 하는 것은 신령한 하나님의 은혜의 나라가 아니라 세상의 나라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기억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가장 뛰어난 자산은 우리의 가문이나 문벌이 아니며 훌륭한 교회도 아니고, 어디에 있든지 어떤 모습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든지 그가 어떤 직업에 종사하며 살아가든지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의 빛 안에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가 만약에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빛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면 그는 캄캄한 밤에 그가 놓이게 될수록 더욱 찬란한 빛을 발하게 됩니다. 세속적인 일을 거룩한 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그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도를 만방에 알려서 모든 천하 만민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배하게 만드는 독특한 방법을 갖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바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그 은혜의 빛 안에 살아가는 것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 죄악가운데 살아가는 것과 어떻게 다른지를 우리로 하여금 체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위해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아무리 많이 기도할지라도 가장 훌륭한 해결은 기도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이 하나님 은혜의 얼굴 빛 아래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모세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대면하였던 모세는 산에서 내려올 때 모든 백성들이 그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서 그래서 산으로 내려오던 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빛 아래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가 비록 그 빛을 감추려고 애를 써도 그는 감출 수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 하신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헬라어 성경에는 히메이스토 포스넘 ‘너희’는 복수인데 ‘빛’은 하나라 우리 모두 하나의 빛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 빛이 무엇입니까?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모두가 보여주도록 하나의 일을 위해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참된 빛은 교회 생활을 하고 적당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빛이 발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를 보는 사람마다 그리스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너희가 이 세상의 빛이라 한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보고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는 우리는 현실에 있어 엄청난 차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를 분명히 빛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빛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신에 대해서 관대하게 생각해도 만약에 우리를 보고 너희는 한 빛이라 하고 말하면 각자 각자가 다 장점을 가지고 있고 인생에 있어서 누군가에게 가르쳐 줄만한 것을 한 두 가지쯤은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니까 너희는 세상의 한 빛이라 말하면 우리는 아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말씀하실 때 그것은 너희는 세상에서 그리스도니라 이렇게 말하는 것과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하시기 전에 팔복의 사람들을 이야기하면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시는 것.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마음이 가난해지고 애통하는 자가 되고 온유한 자가 되고 심령이 변화되는 일들이 먼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먹을 것만 입고 그리고 놀 수 있는 시간이 있고 즐길 수 있는 그리고 건강만 있으면 세상만사 모든 것이 다 잘된다고 믿으면서 살아가던 부유하는 사람이 어느 날 하나님의 백성들이 길이 무엇이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는 사랑에 마지막 멸망에 비참함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심각하게 이탈 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구원의 문제 같은 것 신경 쓰지 않았는데 어느 날 심각하게 내가 구원받았는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태까지는 교회 다니는 것만으로도 목사를 비롯해서 모든 교인은 자기에게 감사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신앙생활이 남을 위한 신앙생활이 아니라 내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안에 있는 수많은 죄악들이 자기를 사로잡아서 거의 하나님 백성답게 살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증거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 은혜를 받자 구원받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젠 사람이 아니라 영혼으로 보이기 시작했으니 마음이 슬퍼지게 되었습니다. 죄악 된 세상과 그리고 자기 속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 하는 요소들로 인해서 애통 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물질적인 결핍과 심경에 괴로움 이외에는 눈물 흘릴 줄 모르던 사람이었는데 그 나라를 위해서 울고 자기 속에 이루어 지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로 인해서 눈물 흘릴 수 있는 애통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신령한 이유 때문에 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도무지 자기에게 손해나는 것을 양보 할 수 없고 조금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귀한 것을 주지 못하고 비난 받을 때 참지 못하고 미워할 때 그 미움에 감정을 품고 기필코 복수를 해야지만 직성이 풀리던 그 악하고 포악한 성품을 가졌던 사람들이 예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하늘의 모든 권세를 가졌지만 온유하시므로 불쌍한 자신과 같은 인생을 위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같이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했던 양같이 비난 받고 고난을 받을 때 불평의 입을 열지 않고 온유함으로 구원의 십자가의 사역을 완성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온유함으로 나를 구원하셨으니 내가 살아 있는 날 동안에 나 같은 죄인들을 주님처럼 불쌍히 여기며 길 잃은 자들을 친절히 이끌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 되겠다는 결심을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하게 되었습니다. 온유한 자가 되었습니다. 비난을 받을 때에도 그는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하나의 깊은 갈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갈망은 바로 목마름이었습니다.
이전에는 돈만 벌수 있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아무 일이나 막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깊이 마음에 강한 심령의 역사가 일어났는데 그것은 뭐냐 하면 이제는 한없는 목마름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세상물 마시면 만족했습니다. 이제는 세상물 가지고는 만족할 수가 없고 하나님의 공의와 그리고 공법의 물 정의의 하수를 마셔야지만 헤갈을 할 수가 있고 하나님의 은혜의 샘물을 마셔야지만 만족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일날 또 새벽에 수요일에 틈틈이 경건서적을 읽으며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기를 사모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전에 없던 슬픔이 그를 지배하게 되었고 목마름이 그를 주장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고 보니까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던 돌멩이 같은 양심을 가지고 살아가던 사람이 이제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길 수 있는 마음으로 변화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고민은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다가 죽을 것인가가 아니라 자기 속에 어떻게 하면 정결한 삶을 살고 성결한 삶을 살아서 언제나 하나님을 뵈올 수 있는 그런 삶을 살 것인가 이것이 그 사람의 최대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무엇보다도 화평케 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로 더불어 화평을 쫓을 뿐만 아니라 샬롬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남들이 지출해야 할 비용을 스스로 지출하며 그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화평과 의를 이루는 하나님의 샬롬을 이루는 사람으로 바뀌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살면서 핍박과 환란을 받을 때 기꺼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받는 고난을 기쁨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변화를 경험하고 나니까 그는 저절로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빛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호와의 얼굴빛이 우리에게 비출 때 사람들의 양심에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보이시고 죄를 생각나게 하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달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므로 말미암아 그들이 하나님의 참된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고 그렇게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힘입어서 사는 사람으로 변했던 것입니다. 그는 빛이 되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 앞에 변화 받기를 원했습니다. 어느 듯 그는 빛으로 변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빛을 비출 때 사람들에게 이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그러므로 우리는 이 빛이 하나님의 교회에서 끊임없이 어두운 영혼들에게 비추어 주시도록 하나님 앞에 탄원하고 간구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빛을 통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빛을 발할 때 우리는 이 세상에 우리를 보내신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을 감당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주님이 우리에게 알게 하사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깨닫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사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