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갈망함
"종의 눈이 그 상전의 손을, 여종의 눈이 그 주모의 손을 바람 같이 우리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시 123:2).
지금은 종도 없고 여종도 없는 시대입니다. 민주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노예가 계급으로 있던 시대의 관경을 우리들이 정확하게 그려낼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시를 쓴 시인의 시대에는 엄연히 노예들이 있었고 그 노예들은 자신의 신분과 그리고 자신의 신체와 이 모든 것들을 자기를 소유하고 있는 그 주인에게 전적으로 의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늘 시인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쨎든 심하게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당하고 그리고 사람들이 조롱하고 교만한 자가 자신들을 무시하는 상황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보면 환경이 우리를 조롱하는 것처럼 우리의 힘으로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고 시련이 있고 무엇이든지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는 것처럼 우리를 애워싼 많은 상황과 환경이 우리에게 고통을 줄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 보도록 권고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인간이 인생을 살면서 시련과 어려움이 오게 되면 누구든지 자기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신앙이 좋고 은혜 가운데 있을 때에는 해석의 작용이 우리 마음속에 있어서 항상 무슨 일이 일어나면 주님의 성품과 오늘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또 내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려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계속 해석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일어 나고 있는 크고 작은 일들을 통해서 주님을 더 많이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매달려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고 또 그 문제들을 통해서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떻한지도 점검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신앙이 식고 은혜에서 멀어지고 나면 어려움이 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신앙이 식고 믿음이 약해지기 시작하면 어려움이 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어떤 마음이 생기는가 하면 이것을 내 힘으로 어떻게 해 보아야 겠다 라는 마음이 생겨 납니다. 하나님은 안 보이고 자기가 이런 일을 겪게 만들었던 사람이나 환경 이런것들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생겨나게 되고 급기야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에 자신이 고통을 받는 것인데 오히려 자신의 안질을 고칠 생각을 하지 않고 눈 부시고 찬란한 햇빛을 미워하는 것처럼 진리를 싫어하는 마음도 생겨나게 되는데 이것이 사람안에 생겨나는 반역하는 감정입니다. 이 시인은 정말 경건하게 자신의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을 보여 줍니다. 심한 멸시가 넘쳤고 평안하 자의 조소가 자기들을 비웃고 교만한 자들의 멸시로 인해서 심령에 고통이 가득할 때 그가 한 일은 자기를 조롱하는 자를 미워하거나 자기를 멸시하는 사람에 대해서 원한의 마음을 품고 복수를 꿈꾸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럴 때 이땅에 문제가 많을 때 시인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하늘에 계신 주여 하고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하늘 높이 계시지만 온땅과 만물이 뛰어 나셔서 이 세상을 당신의 마음대로 통치 하시는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시키고 주님을 앙망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당신을 의지하라고 당신께 돌아 오라고 주님이 시련을 주시는데 자기는 그런 하나님의 부르심을 외면하고 상황속에서 사람에게 복수를 꿈꾸고 미워하고 악을 악으로 갚을 생각을 하면서 신앙을 팔아서 자신의 인생의 위기를 극복해 보려고 할 때 거기에서 벗어 날 수가 있습니까?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과연 인간이 행복해 질 수 있다면 하나님이 왜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멸시와 조롱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도록 그렇게 허락하셨겠습니까? 그래서 이 시인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면서 자신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자신이 흔히 이 세상에서 보았던 종과 여종 그리고 주인과 주모의 관계를 보면서 그렇게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 눈이 그 상전의 손을, 여종의 눈이 그 주모의 손을 바람 같이 라고 했습니다. 종의 눈은 상전의 손을 바라 봅니다. 상전이 손짓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자신에게 은택이 주어 지기도 하고 커다란 징벌이 주어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은 상전의 손을 바라 볼 때 상전에게서 혹시 주어질지도 모르는 은택을 고대 하면서 상전에 매달립니다. 한 나라의 왕의 손에도 종은 관심이 없습니다. 더 큰 귀족의 손에도 그는 관심이 없고 국제정세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인생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이 주인,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수도 있고 악을 행할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그 주인의 처분을 기다리면서 그 분의 손에 손을 고정시키며 그 주인에게서 은택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말로는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면 싫어하는 사람이 없지만 종처럼 대접을 받으면 화를 냅니다. 주인이 당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이 종처럼 당신을 바라 보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그 과정을 통해 그들에게 믿음을 연단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인생의 커다란 문제가 생기거나 기도의 제목이 생길 때 그것만 보면 오히려 가슴의 쥐어 뜯으며 하나님 앞에 매일 그 안타까운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평안하게 사는 사람들에 비해서 불행해 보이지만 그러나 영적인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하나님이 그런 기회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단련하시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기적의 역사를 보여 주시는지를 경험하게 하여 우리로 하여금 고통이 없었더라면 알지 못했을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를 보게 하신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것이 축복이라고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이 시편 119편에서 고난 당한 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 했던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누구든지 행복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고통을 좋아 하는 사람이 있을리 없습니다만 고난을 통해서 주님께 감사 했던 것은 고통이 아니었으면 깨달을 수 없었을 하나님의 율법을 깨닫고 또 고통을 통해서 이전에는 그릇 행하였더니 고통을 통해서 주님 앞에 올바르게 살아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감사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당신을 간절히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기적과 같은 능력을 베푸셔서 그들을 사망에 얽매인 사슬에서 헤어 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이렇게 하나님을 갈망하고 바래야 하는 시간이 꽤 긴 시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든지 하나님께서는 정말 간절하게 당신을 사모하고 당신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며 매달리는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를 멸시하는 법이 없습니다. 새리와 창기들의 깨뜨려진 마음 하나님을 간절히 찿는 울부짖는 그 마음의 올바름은 바리새인들이 쌓아 올린 경건한 사함과 율법에 맞는 생활의 의를 능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의 보다 당신의 의, 신약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 났음으로 그리스도를 전심으로 의존하는 사람의 의를 율법을 지켜 도덕적으로 살아 온 사람의 의 보다 더 높게 쳐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참 공평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수련회를 보면 제가 중고등부 아이들 가르칠 때도 보면 우리는 수련회 가기전에 기도를 많이 시켰습니다. 40일 전부터 아이들이 기도를 하기 시작합니다. 어떤때는 가만히 보면 평소에 잘 안 빠지고 주일날 나오던 아이들도 은혜를 못 받는데 사고치고 정학 당하고 가출하고 그래서 문제아로 찍힌 아이들이 어떤때는 수련회에 와서 그렇게 은혜를 받습니다. 처음에는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은 혼란스럽게 사람들을 다루실까? 그런데 하나 분명하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인가 하면 착실하게 살아 온 긴 세월도 하나님 앞에 아름답지만 자신이 불순종하고 가출하고 정학당하고 하였어도 어느 한 순간에 마음이 불 붙어서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살 수 없습니다 라고 간절히 매달리는 그 가난하고 목마른 마음은 주님의 마음을 더 강하게 끄는 힘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여러곳에서 목마른 자들을 찿아 오시는 하나님 그리고 마음이 가난한 자들을 찿아 오시는 하나님, 이러한 하나님의 만나 주시는 증거에 대한 무수한 기록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마음이고 하나님을 사모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바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수련회를 앞두고 일주일동안 해야할 일은 하나님 앞에 마음이 가난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시키는 마음으로 수련회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에 가서 수술대에 눕는 마음으로 찿아야 하는 것입니다. 저도 작은 수술을 해 보았지만 수술을 해야 되겠다고 될 때 각서를 쓰는데... 수술하다 죽어도 좋다고... 그런데 진짜로 생명을 담보 할 수 없는 수술을 받을 때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누구를 믿는가 하면 의사를 그렇게 간절히 의지하게 합니다. 저는 불신자들 중에서 마차 자기의 병을 고쳐 준 의사를 믿는 사람이 예수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명절이면 꼭 찿아 가고... 생명의 은인이라고 나에게 소개 시켜 주었습니다. 그렇게 의존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살리시는 그 하나님을 우리들이 얼마나 의지하고 높여야 할지를 생각해 보십시요. 여러분들은 자신있게 우리 예수님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이렇게 소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정말 그렇게 주님을 의지하니까 나이와 상관이 없습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도 조그만 아이들에게도 하나님이 그렇게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당신의 은혜의 세계의 비밀들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주님의 은혜는 보좌로 부터 가난한 심령을 가진 사람들에게 흐릅니다. 언젠가 제가 이야기 한 것 같은데 영국에 가면 로이드 존슨 목사님이 설교 하시던 웨스터민스터 채플이 있습니다. 길가에 서 있는 몇백년된 옛날 건물입니다. 차에서 내리면 바로 길이고 계단 몇 개 올라가면 교회 문을 열고 들어 가면 됩니다. 런던 동네에 살던 사람이 살다가 살다가 너무 힘드니까 이제 죽어 버려야 겠다... 사람들은 테임즈 강을 잘 이용합니다. 투신 자살을 하는 것입니다. 한강도 많이 이용하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투신 자살을 해서... 그래서 한강교에는 기름을 발라 놓아 습니다. 왜냐하면 자꾸 올라가서 떨어 지니까... 미끄러지면 못 올라 가니까... 못 올라가게 기름칠을 했는데 이 사람도 이제 테임즈강에 빠져서 죽어 버려야 겠다 하고 결심을 했는데 주일날 죽기로 결심을 한 것입니다. 물론 불신이었겠죠...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더랍니다. 죽더라도 그 유명하다는 로이드존슨 목사님 저녁설교라도 듣고 죽자. 실화입니다. 그래서 저녁예배 시간에 제 시간에도 못 가고 늦게 어슬렁 어슬렁 갔는데 마침 목사님이 성경을 봉독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끄러지는 자를 붙드시며... 예배당 문은 닫혀 있는데 스피커를 통해서 그 소리가 들여 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성령이 임해서 길거리의 돌계단에서 쓰러진 것입니다. 거기에서 회개를 한 것입니다. 무엇이겠습니까? 왜 착실하게 교회 나오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그런 은혜를 안 주시고 인생 막장까지 가서 자살하려고 마음을 먹은 사람들에게 그런 은혜를 주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간절히 갈망하고 은혜를 받고 싶어 하는 사모하는 심정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 하시는가 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인 것입니다.
(찬송) 사슴이 시냇가에 우물을 찿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찿고자 주를 갈망합니다 주여 어찌합니까?
은혜 주실 주님을 간절히 갈망하게 되면 다른것에서 위로를 받거나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의 시선이 흐뜨러질 그 무엇이 마음속에 없습니다. 그때 아주 선명하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이 걸어 온 길, 지금 자신이 있는 이 삶의 상태를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 볼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주간 동안이 어떻게 보면 수련회의 그 3일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낮추고 주님을 꼭 만나야 되겠습니다 라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는 그렇게 마음을 준비해서 주님의 은혜를 받고 여러분의 인생의 변화가 일어나는 수련회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