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마음을 품은 전도자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마 9;35-38)
녹취자: 허혜숙
I. 본문 해설
오늘 오후예배는 특별히 다음 달 첫 주에 있을 국내 아웃리치를 위해서 특별히 모인 모임을 생각하면서 드리는 오후 예배입니다. ‘예수의 마음을 품은 전도자’라는 제목을 붙여보았습니다. 사실 이 말씀이 기억에 남는 것은 제가 열린 교회를 개척하려고 마음도 먹기 전에 주님께서 제 마음을 움직여서 예정에 없이 교회를 개척하게 하셨고 그 때 제 마음에 부어주신 말씀이 바로 이 마태복음 9장 35절에서 38절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붙들고 교회를 세웠고 이렇게 23년이란 세월을 지내왔습니다.
오늘 여기에 나오는 기사는 바로 예수님이 여태까지 길렀던 제자들을 세상을 향해 보내시는 사도로 삼으시는 분기점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 10장을 기점으로 해서 이전까지는 제자들을 기르시는 사역이었다면 10장은 제자들을 사도로 삼으셔서 권능을 주셔서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사역을 하게 하시는 장면이 10장부터 나옵니다. 이것은 바로 파송하기 전 예수님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그 마음이 바로 지금 추수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빨리 추수할 전도자들이 가서 그렇게 익어서 휘어져 추수하게 된 곡식들을 거두어야 할 때이고 이때가 영혼들이 큰 기근을 느끼며 하나님을 찾는 때라고 예수님이 가르쳐주고 계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소리 내어 ‘예수그리스도여 나를 구원하여 주소서, 하나님 아버지시여 내 영혼이 곤고합니다’라고 외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칼빈이 말한바와 같이 이 세상에 자연의 모든 현상들, 인간의 마음 안에 일어나는 작용만으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충분히 보여주어 그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되겠다고 하는 마음을 갖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참 진리의 길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살면서 자신의 영혼 안에 있는 곤고함을 여러 모습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극단적인 물질주의적인 삶과 쾌락을 추구하는 생활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께 대적하는 많은 행위들과 이런 문란함들이 결국은 영혼들이 기갈에 기근 들린 상태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II. 전도자가 품어야 할 마음
그래서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전도자가 품어야할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오늘 아웃리치를 앞두고 있는 여러분에게 드리고자 하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예수님이 이 마음을 느끼셨기 때문에 가까이 두면서 계속 가르치시고 돌보던 제자들을 이제는 사도를 삼으셔서 이 세상에 파송하시는 이유입니다. 그 마음이 사도들을 파송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예수 믿게 만드셔서 이 세상에 파송하신 것입니다.
첫째는 영적인 통찰력입니다. 여기에 ‘무리를 보시고’ 라는 말은 ‘이돈’이라는 분사인데 그것은 보기는 보는데 육신의 두 눈으로 물질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어떤 정신과 영혼에 속하는 것을 보고 어떤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통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통찰력으로 보니까 무리들의 영적인 상태가 예수님의 마음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때 그 무리들이 어떠한 상태였습니까? 오늘 성경은 목자 잃은 양 같다고 했습니다. 양은 처음부터 목자를 의지하며 살도록 이 세상에 태어났고 양이라고 하는 짐승은 늘 인간의 돌봄을 받으면서 그렇게 인간 곁에서 생활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 가까이에서 길러지고 있는 양들이 아닌 야생의 양들은 전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입니다. 양은 처음부터 그렇게 인간 가까이 살면서 인간의 보호를 받으며 또 인간에게 유익을 주도록 부름 받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처지가 목자 잃은 양과 같은 처지가 되었다라고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상태에 처해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양떼들이 자기 힘으로 맹수들과 싸울 수 있는 힘도 없고, 빠르게 달려서 도망칠 수 있는 다리도 없고, 먼 곳을 볼 수 있는 눈도 없고, 강한 체력도 없는데 그나마 목자도 없이 그렇게 버려진 것처럼 괴롭힘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만약에 맹수가 나타난다든지 하면 저항할 대책이 없이 잡아먹힐 수밖에 없는 상태에 놓여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볼 때 종교 지도자들도 있었고 또 당신이 그 양떼들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고 제자들과 함께 그 양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지만 이 세상에는 이렇게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유리하며, 고생하며, 기진한 그 수많은 양떼들이 보였는데 그 사람들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것들을 보시면서 예수님이 정말로 이 인간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통찰하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이유입니다. 눈에 보이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예수의 몸이라고 한다면 그 교회가 예수의 몸답게, 예수님답게,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섬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그 교회 속에 예수의 마음이 깃들어야 합니다. 그 마음은 바로 영혼을 보는 눈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중요한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형상만큼 고귀한 인간의 운명만큼 더 소중한 것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이렇게 목자 잃은 양같이 유리하고 고생하며 지치고 기진한 사람들을 보셨고 그래서 이제는 당신의 품에서 길렀던 제자들을 사도 삼으셔서 이 세상에 파송하여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마음을 나누어 가진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분의 영적인 통찰력을 계승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제 아웃리치를 가는 것은 그냥 도시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수양하는 마음으로 아웃리치를 가는 것이 아닙니다. 작년까지는 신청하면 웬만하면 모두 데려갔지만 이제 올해부터는 일정하게 훈련을 받지 않으면 사람들이 갈 수 없게 만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가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어떤 정신을 가지고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정말 이렇게 시골에 있고 농촌과 어촌에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활의 수준이 도시에 있는 잘 사는 사람들보다 못 하기 때문에 가엾은 것이 아니라 영적인 통찰로 그들을 바라볼 때는 도시에 사는 사람이나 농어촌에 사는 사람이나 모두 다 목자 잃은 양같이 지치고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들은 무엇인가 결정적인 섬김을 우리로부터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 마음을 가지고 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아웃리치가 참가하는 자체가 그저 좋은 공기를 마시고 심신을 수양하는 정도의 목적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일 먼저 전도자로서 마땅히 품어야 할 그 마음을 가슴에 품도록 주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아웃리치를 교회 개척하고 나서 얼마 안 된 다음부터 계속해서 처음에 파견될 때에는 불과 열 서너 명 정도 되어서 아웃리치를 하다가 이제는 청장년만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까지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역사를 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웃리치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그런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모두 본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정확하게 마음으로 당신을 찾는 사람들, 그 마음으로 주님의 통찰을 계승하며 그렇게 목자 잃은 양같이 유리하며 고생하며 기진한 영혼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구원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들, 그래서 그들이 스스로 자기를 위해서 울지 못할 때 눈물 흘려주고 그들을 위해서 안타까워하는 그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적절하게 역사하셔서 정말 생생한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정말 나태하게 신앙생활 했던 사람들이 영혼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나서 자신이 얼마나 감사를 잃어버린 삶을 사는가 하는 것을 깊이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먼저 전도자가 품어야 할 마음을 품도록 주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영적인 통찰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가까이 두고 가르치고 돌보시던 제자들을 이제 세상으로 파송하여 사도라 이름 하심은 그렇게 하실 수밖에 없는 내적인 동기가 예수님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은 ‘불쌍히 여기셨다’라고 되어있습니다. 희랍어 단어에 ‘에스프랑크니스테’라고 하는 이 단어는 창자가 흔들리기까지 감동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인간의 영혼의 자리가 창자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우리말로 이것을 표현하자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프셨으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이렇게 번역을 하면 우리 말고 꼭 맞는 번역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매우 강렬한 표현입니다. 인간 영혼의 깊은 밑바닥, 인간 영혼의 깊은 자리가 흔들리기까지 그 영혼들에 대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예수님의 가슴에 사무쳤고 그 사무친 가슴이 당신 곁에서 돌보고 아끼시던 제자들을 죽음을 무릅쓰고 이 세상에 사도로 파송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 사도들의 사명은 나아가서 예수를 선전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단에 사로잡혀있는 그 복음의 광채를 받지 못하고 있는 불쌍한 백성들을 주님의 품으로 다시 데려오는 것입니다. 그 마귀의 권세를 무찌르고 그들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피를 바르도록 그리스도예수의 복음을 전파하고 그 심령들을 불쌍히 여기는 예수의 마음으로 건져내는 것, 그것을 위해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도로 파송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돌봄을 받으며 어린아이처럼 주님의 품에서 양육받기를 원하지만 예수님은 적절한 시간에 우리를 이 세상에 군사처럼 파송하기를 원하십니다. 인간존재 근원에서 솟아나오는 불쌍히 여기시는 가슴 찢어지시는 사랑으로 영혼들을 바라보는 그 마음을 계승한 사람들은 복음 전도자로서 부름을 받은 이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압니다. 그래서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 것들에 메여서 그 사랑을 잊고 살았던 삶을 후회합니다. 그리고는 지금 오늘이라도 주신 이 기회에 예수를 대신해서 예수의 마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나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늘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을 조금 만난 사람들은 다른 일을 하지만 예수님을 워낙 깊이 만난 사람들은 영혼을 위해서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형태이든지 천국에 가면 주보에 오르내렸던 사람들이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전혀 이름도 알지 모르는 사람들이 면류관을 쓸 것입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교회 한 구석에서 불쌍한 영혼들을 부여 앉고 아파하고 눈물 흘리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주님이 칭찬하시고 소중히 여기시고 쓰실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 날에 주님께 칭찬받는 사람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III. 적용과 결론
말씀을 맺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영혼들이 목자 잃은 양같이 고생하고 기진하지만 하나님은 하늘에서 나팔을 불어 직접 그들을 구원하시지는 않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함에 있어서 당신의 사랑을 아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사용하도록 작정하셨습니다. 성경을 증거 하는 복음 전도자를 사용하기로 다짐하셨습니다. 동토의 땅과 같이 얼어붙은 그 마음을 하늘의 기적으로 녹이시지 않습니다. 그 사랑에 사무친 전도자의 눈물어린 증언으로 그 마음을 녹이시고 주님을 향해 닫혔던 그 마음을 열게 하시고 십자가를 이 세상에 가장 어리석은 것이라고 비웃던 사람들의 마음을 찢어 그 십자가 앞에 회개하고 주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주십니다. 당신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을 부르셔서 이 복음전도에 사용하십니다. 여러분은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 부름 받은 전도자들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구원하시기까지 여러분은 기억도 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눈물의 기도와 헌신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똑같이 여러분이 감격하고 있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에 목이 매여서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했고 여러분이 너무 가엾어서 눈물로 그 사랑을 전했고 그래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이름 모를 기도와 전도 속에서 여러분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바로 그 부름에 응답할 차례입니다. 이번 아웃리치에서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예수의 마음으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창자까지 흔들리도록 가슴이 찢어지는 안타까움으로 복음을 전해서 많은 사람이 예수그리스도께로 돌아와 구원을 얻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