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7.17 구역공과강좌
한국교회의 성장과 미래의 역할 3
녹취자: 김경애
2. 신학교육에 기여함
교과 읽음 (49p~50p)
지난번에도 미국에 갔을 때 교수들도 만나고 목회자들도 만나고 그랬는데 그러면서 개혁신학적인 목회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다가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면 교수들이 그러면 당신네 교회에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교육을 하느냐고 그래요. ‘그 이상을 해야지 그것만 하면 되겠느냐?’ 하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교리교육에 관한 것을 쭉 이야기 하니까 굉장히 놀래는 표정이에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나는 당신이 놀라는 것이 정말 놀랍다.’ 그러면서 우리가 개혁주의 신학을 가르친다고 할 때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그거 하나를 가르치고 그거 하나에 집착한다고 되겠느냐고 그랬어요. 그것은 최소한일 따름이고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그렇게 신성시하고 엄청나게 생각하지 그것도 교회 역사 속에서 발전해온 신앙고백서중의 하나일 뿐이거든요. 그것보다 아름다운 신앙고백서들이 많이 있고 또 어떤 신앙고백이든지 그 시대와 강조점들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최상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요. 그런 점에서 어떤 고백은 교회론이 강하고 어떤 것은 구원론이 강한 그런 차이들이 다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많은 다양한 개혁주의 신앙고백 가운데 하나이지 그렇게 절대적으로 신성화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해야 되는 것이고요. 그래서 이제 그것보다 훨씬 더 폭넓게 우리들이 사역을 해야 된다. 그렇게 공부를 하고 해야 된다는 것이에요.
내가 잊어버렸는데 크리스천 투데이에서 읽은 것인데 미국에 있는 교회인데 어느 교회인지 잊어버렸어요. 교회 역사에 있었던 신조를 중요한 신조들을 하나씩 하나씩 School 로 open을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신조를 할 때에 하이델베르크나 아니면 우리가 이야기하는 웨스트민스터 대개 그 두 개에 고정되어 있잖아요? 도르트신조 같은 것만 해도 안하잖아요. 그런데 이 교회에서는 칼케톤신조부터 하더라고요. 칼케톤,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이렇게 하면서 심지어는 디다케까지 갑니다. 교리의 영역을 저쪽의 보편교회까지 뻗어서 그것은 이제 조심스러운 해설이 필요하겠지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더 심화해야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교회사에 관한 이런 학습이 교회에 있어서는 꼭 필요해요. 그러니까 장로교인 이면서도 자기가 왜 장로교인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것을 모르고 그냥 신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등등의 이유로 그렇게 해서 교회에 대한 공부나 이런 것들이 필요해요.
그래서 이것이 나의 어떤 정확한 판단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상당히 타당성이 있는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뭐냐 하면 지난 시간부터 우리들이 공부해오면서 제일 느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개혁주의 신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교회가 잘 안되고 그러는 이유 중의 하나가 시대적 적실성을 잊어버리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이게 개혁주의라고 자기는 자기대로 간다고 그러고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 그런 개혁주의를 하면 안 되지요. 마치 소대장이 ‘돌격!’ 그러면서 달려갔는데 가보니까 자기 혼자밖에 없었다면 그것은 자기가 아무리 전투나 이런 것들을 하는 데에 있어서 무슨 전의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죠. 그러면 무엇인가 좀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그래서 현재에 있는 것들을 끌어안고 고민을 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현대인이 그렇게 사고방식이 되어있는데 어떻게 자기도 회심하기 전에는 그 현대인중의 한사람이었잖아요? 그런 것을 염두에 깔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에요. 지금 국민소득이 이만불이 좀 넘었는데 우리나라가 밖에 나가보면 나라 안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잘사는 나라입니다. 해외여행도 어마어마하게 많이들 하는데 한참 싱가포르에 많이 갈 때는 싱가포르에 갔다 쏟아 붓는 관광비용이 일 년에 일억$였다고 그래요. 그러니 뭐 다른 나라는 어땠겠어요. 그래서 이제 동남아관광은 거의 줄어든 것 아시죠? 소득수준에 따라서 일본사람들이 맨 처음에 동남아관광을 하다가 서유럽으로 갑니다. 이제 우리나라가 동남아관광에서 서유럽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고 중국 사람들이 이제 동남아관광을 하고 있지요. 그래서 경제발전을 계속 따라오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제 아마도 한 5년 정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해외 여행하는 이런 것들이 훨씬 일상화될 것이고 중고등학교 수학여행도 외국으로 많이 가잖아요? 이렇게 될 때에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더 많은 외국의 문화나 문물을 배우고 싶어 해요.
교과 읽음 (50p)
그래서 이제 교리를 더 깊이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고요. 두 가지라고 보는데 교리를 더 깊이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고 두 번째는 뭐냐 하면 물론 그 교리 속에는 아까 이야기했듯이 역사도 들어가지요. 미국의 어느 교회를 갔을 때 딱 들어갔더니 ‘나는 왜 장로교인가?’ 라는 책이 앞에 있더라고요. 오는 사람에게 제일 먼저 주더라고요. 의식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제 그런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그런 사고방식들이 사실은 탈 교리를 부추기기 때문에 사실은 탈 교단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그런 것이죠. 그래서 교회가 대한예수교장로회 이런 말을 안 쓰잖아요. Community 그런 말을 많이 쓰잖아요.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그런 것들이 현대인의 코드하고 잘 맞는 것이죠. 그래서 사실은 간판을 어떻게 거느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속에서 어떤 내용을 가르치느냐하는 것인데 그래서 교리를 잘 가르치고 역사적으로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고 두 번째는 뭐냐 하면 다른 인접학문들 그래서 교회에서 사람들에게 학문을 가르쳐야된다는 뜻이 아니라 인접학문에서 발견되는 모든 진리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진리인지를 보여주는 것, 세계관이나 이런 것들과 관계 되겠지요? 그렇죠? 그런 교육도 교회 안에서 잘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점에 있어서는 조나단 에드워즈가 정말 탁월했지요. 그래서 다양한 철학, 신학, 미학, 그 다음에 역사, 문학, 자연학, 자연과학 이런 것들을 전부 다 관심을 가지고 진술하면서도 중심에 개혁주의적인 신학을 잃지 않았던 이런 자세들이 우리에게는 굉장히 중요하지요. 그래서 미국에서도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해서도 비판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데 물론 그분의 신학 속에는 그런 가시들이 조금 있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확실한 개혁주의적인 신학자였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역사상 아마 밀려드는 그 시대의 조류를 끌어안고 그렇게 몸부림치면서 싸웠던 사람은 어거스틴 이래 최대의 신학자라고 나는 생각해요.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즈의 전집을 거의 전부를 읽은 입장에서 전체적으로 놓고 볼 때 사실은 그런 비판들이 마음에 호소되지 않는 부분들이 참 많아요. 그래서 항상 비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이 과연 에드워즈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늘 합니다. 굉장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 이루어져서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교인들이 정확한 세계관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 해요. 그런데 그 세계관이라는 것이 몇 가지 조건이 있는데 우리는 세계관에 대해서 교육을 시키면 될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세계관을 형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주제가 그리스도와의 만남이에요. 그것 없이는 세계관이 형성이 안 돼요. 그것을 중심으로 해서 그 다음에 성경, 교리, 그 다음에 사회와 학문 이 모든 것들을 볼 수 있는 안목들을 다 가지고 이렇게 해서 개혁주의적인 세계관을 갖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상당히 많은 양의 공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늘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도 늘 중심에서 이것이 능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성도들이 깊이 감동을 받고 변화를 받아야 되는 그 기본적인 것들을 약화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죠. 그래서 항상 그런 것들 둘 사이에 균형을 잘 잡아야 되요.
교과 읽음 (50p)
그러니까 교리교육을 강조한다고 그러면 머리만 키우는 것이 아니냐고 그러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항상 물어보는 것이 ‘당신이 어느 교회가 머리가 큰지 얘기해보라!’고 그래요. 있지도 않은 교회를 그렇게 염려해요. 있지도 않은 교회가 될까봐 염려를 하느냐 말이에요. 그것은 하나의 피상적인 것이고 그리고 오늘날은 거의 교회의 입장에서는 지성적인 것들을 포기했지요. 그래서 지난번에 미국에 갔을 때 먼로 교수님을 만나서 이야기하는데 거기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려보면 미국의 교회는 거의 Show라는 것이에요. 예배가 아니라 Show라고 그래요. 그런 현상이 세계적인 현상이에요. 전체적입니다. 영국도 마찬가지에요. 그런 속에서 여러분들이 제 얘기를 잘 들어야 되요. 여러분들이 교리 설교가 굉장히 중요해요. 그것 하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돼요. 그래서 교리 설교뿐만 아니라 교리 설교 이외에 다양한 형태의 설교들을 해낼 수 있도록 그렇게 자신의 능력을 쌓아 가야되는 것이죠. 그래서 Narrative 설교라든지 그렇게 우리로 말하자면 ‘게으름’이나 그런 류의 생활설교들도 개혁주의적인 신학에서 쭉 풀어낼 수 있어야 되요. 그게 사실 청교도들의 전통이에요. 그래서 청교도들은 너무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설교했지요. 예를 들자면 ‘마음의 평정에 대해서’ 쭉 시리즈로 설교했고요. ‘미움에 대해서’, ‘용서에 대해서’, 꼭 교리적이고 스콜라적인 그런 접근뿐 만이 아니라 그런 다양한류의 설교를 할 수 있어야 되요. 이것은 마치 크기가 다른 그물과 같아요. 예를 들자면 바닷가에 팔뚝만한 고기가 있으면 멸치 잡는 그물로 하면 안 되지요. 다 놓쳐요. 왜냐하면 그물이 느리잖아요. 큼직한 그물로 잡으면 아주 신속하게 잡을 수 있지요. 그런데 고기가 멸치밖에 없다면 그 그물만 가지고 하면 멸치가 잡히겠어요? 주먹 하나가 빠져나갈만한 그물인데 잡혀요? 그럴 때는 빨리 신속하게 작은 것으로 해야 되겠지요. 그리고 만약에 고기가 나타났는데 고래가 나타났다면 그 어떤 그물로도 안 되지요. 그것을 커다란 포경선을 몰고 가서 공격해야 되지 않겠어요? 그렇게 다양한 도구들을 자신들이 가지고 있어야 된다는 것이죠.
교과 읽음 (p50~51)
그런데 지금의 분위기는 그런 식이잖아요. 그러니까 뭔가 이렇게 진리를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려고 하는 진지한 지성적인 노력이 성령의 역사를 방해한다고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런 것을 자꾸 포기하려고 그러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자꾸 옳지 않은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면서 큰 능력이 나타날 때 그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에요.
교과 읽음 (p51)
그러니까 이제 교회가 항상 사역을 할 때에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느냐 하면 세 가지의 지평인데 하나님이 한 교회를 주셔서 내가 여기서 이 교회를 위해서 목회를 한다는 것과 자신이 이……. 여기에 교회가 있잖아요? 특정한 시대에 있을 것이 아니에요. 여기에 ‘나’ 라는 사람이 목회자가 되어서 목회를 해요. 이것은 최소한 세 가지 지평을 생각해야 된다는 것이에요. 첫째는 뭐냐 하면 이 개교회적인 것이죠. 개교회에 충실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다음에 목회를 할 때 밖에 나가서 무슨 활동을 한다고 그러면서 교회를 거의 내팽개치고 그렇게 하는 것은 올바른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자기 교회에 충실해야 됩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마치 이렇게 물건을 돌리는 것처럼 사람이 여기에 서서 줄을 잡고 돌리잖아요. 이게 자기 목회가 구심점이 되어야합니다. 목회 자체가 역량이 많이 생기면 좀 더 넓게 활동을 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또 활동할 기회도 잘 안주어지지요. 그러니까 자기 목회를 하는 것이죠.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요렇게 그 시대의 보편교회에 충실한 것이에요. 그래서 항상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느냐 하면 개교회주의적인 생각만 가지면 안 되고 ‘나’라는 사람이 나의 시대에 보편교회에 속한 그 많은 그리스도의 몸에 일부로서 우리 교회가 존재한다. 그렇게 해서 이 교회가 그 시대에 보편교회가 하나님 앞에 바르고 더 풍성하게 되는 일에 어떤 식으로든지 이바지 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생각을 해야 된다는 것이에요.
세 번째 지평이 무엇이냐 하면 이게 시대에요. 과거로부터 들어오고 미래를 향해 가잖아요. 여기는 현재고……. 그러면 뭐냐 하면 사명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풍성하게 해석을 해서 그래서 이러한 유산을 남기는 것이에요. 유산의 핵심이 무엇이냐 하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에요. 이게 사실은 구약에서 이야기하는 ‘다트 엘로 힘’이 되겠지요. 이런 유산들을 잘 남겨서……. 성경을 해석하는데 그 핵심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다. 그럼 이것은 단순히 성경을 해석한 수많은 자료들만 있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왜냐하면 학문적으로는 탁월한 성과를 가지고 있는 엄청난 업적도 학문적으로는 그것을 가지고 있는 엄청난 업적도 사실은 세월이 흐르면서 그것이 경건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은 휴지조각처럼 버려지는 예가 많이 있는 것이잖아요.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로 볼 때 그 모든 많은 성경을 해석해놓았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이 유산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은 도구이고 진짜 전수되어야 될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다. 그래서 성경의 참된 진리와 그 다음에 경건이 아우러져서 이것들이 이제 실제적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으로써 주어지는 것이거든요. 이렇게 놓고 생각을 해야 된다는 것이에요.
그러면 하나님의 교회의 역사를 보면 이런 해석이 아주 풍부하던 때도 있었고 그 다음에 신통치 않은 때도 있었고 다양하게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어느 시대건 하나님이 이 불을 끄지 않으셔요. 없는 시대는 항상 없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것을 그 시대 사람들이 교회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이렇게 풍성해지기도 하고 아주 이렇게 빈약해지기도 하는 것이에요. 그러면 여기에서 제일 먼저 알아야 될 것은 과거로부터 우리들이 물려받은 그런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무엇이냐? 그리고 그것이 어떤 지식의 내용들 속에서 우리에게 전수되었는가 하는 유산들을 이해하고 이것을 여기에서 발전시켜서 여기에다가 물려줄 수 있어야 된다는 것이에요.
그러면 잘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한국교회를 보면서도 아쉬운 부분들이 그것이잖아요. 사실 교회의 역사에서 꼭 우리만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사실 한국에서 초대교회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그렇게 헌신적인 삶을 살아왔잖아요? 그리고 신앙의 주장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뚜렷했잖아요. 그런데 뭐냐 하면 그렇게 살아왔던 것은 사실인데 우리에게 남겨진 신학적 유산이 없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그래서 아주 놀랍게 사역을 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사실은 그 시대에 같이 사역했던 사람들은 이해하지만 그것은 기록으로 남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라 허공중에서 없어져가는 것이니까 마지막에 남는 것은 무엇이 남겠어요? 지금은 그래도 설교의 매체가 많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옛날에는 그런 것도 없던 시절에 설교를 하고 지나가면 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도 잊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럼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마지막에 뭐가 남겠어요? 아무것도 안 남는 것이죠. 그러면 또 설교나 이런 것들의 매체가 남았다고 칩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잘 정리해서 남겨두겠지요. 내가 죽은 다음에 누가 그것을 천착을 하고 그것을 듣고 연구를 하고 그러겠어요? 또 몇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에 대해서 그렇게 하겠어요? 그렇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결국은 무엇인가 신학적인 유산을 남겨놓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바로 개혁신학자들이 먼로교수가 자기의 책 속에서 인용된 학자만 536명이에요. 그러니까 그렇게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각자 다 자기 나름대로 책을 쓰고 조직신학을 풀어내고 성경을 해석하고 했던 그것들이 이런 것들을 이해했기 때문에 하는 것들이었단 말이에요. 물론 이제 오늘날에 와서 모든 사람들이 이런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이런 신학적인 지식들이 정리되어서 마지막 때에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들이 되어야 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언젠가 실현될 가능성이야 적을지 모르지만 그런 얘기를 했어요. 존 오웬의 전집을 누가 전체를 번역했으면 좋겠다고 그러는데 사실 번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거의 없습니다. 많지 않아요. 그리고 영어를 하는 사람들이야 있겠지만 그것을 정말 전체의 자료의 맥락에서 그것을 정확하게 용어를 설정하면서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낸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교과 읽음 (p52 ~ 55)
이것도 그래요. 뭐냐 하면 이제 우리 교회가 지금 어쨌든 아이폰 상에서 설교를 들을 수 있게 했는데 지금도 계속해서 개발을 하고 있고 내가 이번에 지시한 것은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는 아이폰용 어플을 만들어서 어플을 치면 열린 교회가 소개되도록 그리고 홈피를 지금 현재는 핸드폰 상에서 볼 수 있는데 아이폰 상에서 볼 수 있는데 좀 그렇지요. 그래서 아이폰용 홈피를 따라 만드는 방향을 연구해보라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을 해서 그래서 어쨌든지 ‘내가 여기 있으니까 너희들은 와라.’ 그러지 말고 그들 속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해야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어쨌든 모바일 시대로 접어들어서 저는 이미 벌써 여러 해 전에 예상하고 있던 것인데 앞으로 컴퓨터는 거의 없어집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로 없어지느냐 하면 이렇게 생각하면 되요. 지금 데스크톱은 거의 사라지고 노트북이 데스크톱 같은 용도로만 쓰이고요 나머지는 전부 다 핸드폰 상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봐요. 그래서 핸드폰의 크기는 조금 더 커질 것이고 내 생각에는 지금 아이폰 나온 것……. 요번에 나온 것 갤럭시가 아이폰보다 조금 크다고 그러지요? 그것보다도 앞으로는 조금 더 커지지 않겠는가 생각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아마도 통신용과 그 다음에 보는 것과 두 개가 분리되었다가 마이크처럼 끼면 배터리 빠지듯이 빠져서 그것으로는 통신정도를 하고……. 아마 전화번호도 찍지 않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58-4463 하고 말하면 그냥 걸리도록 말이죠. 그리고 문자도 아마 굳이 찍지 않고 ‘나 잘 있어!’ 그렇게 말하면 여기서 찍혀서 ‘전송’ 하면 전송이 되게 그런 식으로 될 것이에요. 그렇게 하고 이제 이렇게 보이는 것들은 조금 더 커지려고 하는데 기술상으로는 이것 반만 하게도 핸드폰을 만들 수 있답니다. 그런데 실용성이 없어서 그러겠지요. 이렇게 해서 커질 것이다. 그래서 미래예측이라는 것이 부정확한 것이 핸드폰이 점점 작아질 것이라고 그랬는데 핸드폰이 한참 작아지는 시대가 있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다시 커지잖아요. 훨씬 더 커질 것이라고 봐요. 커질 것이라고 보고 그것으로 거의 모든 업무들을 다 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서 교회 설교를 듣고 온다는 것은 전화기를 통해서 교회 설교를 듣고 온다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데스크톱에 앉아있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에요. 이렇게 하면 볼 수 있는 것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이제 그쪽을 연구를 더 많이 해서 거기에 맞는 무료 어플를 만들어서 무제한으로 사람들이 다운을 받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하고 홈피도 아이폰용 홈피를 따로 만들어서 그래서 핸드폰 상에서 교회에 대한 모든 정보들을 볼 수 있게끔 그렇게 해주고 다양한 방법으로 선교적인 전략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런 고민들을 계속해서 내용자체는 변하지 않더라도 형식 자체를 다변화해서 그래서 현대인들의 기호에 맞추어서 자기 자신을 제시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아이폰으로 들어가서 설교를 들어보았어요? 들어봤지요? 아주 잘나옵니다. 그것이 되는 교회가 거의 없고 사랑의 교회하고 우리교회가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앞으로 계속 개발하려고 사람들이 노력하겠지요? 그런 면에서 좀 더 앞서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D. 현대 사회와 문화에 대한 이해와 대처
1. 예견되는 21세기의 사회와 문화
교과 읽음 (p55~56)
예를 들자면 이 localization을 잘 못하고 Globalization만 믿었기 때문에 망한 대표적인 기업이 월마트에요. 우리나라에서 완전히 쫄딱 망했잖아요. 어떻게 되느냐하면 월마트는 이것이거든요. 다량의 제품을 싸게 사들여서 가장 싼값에 보급한다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예를 들자면 편의점은 싸요? 비싸요? 비싸잖아요. 그런데 잘되잖아요. 그것은 기본적인 상식을 깨는 것이에요. 편의점에 가면 모든 물건이 어떤 것은 30%가량 비싸지만 사람들이 가요. 가는 이유는 뭐죠? 여러 가지 물건이 편의하게 소량으로 살 수 있도록 24시간 구비되어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비싼 줄 알면서도 가서 사는 것이죠. 그러니까 싼데 막 이만큼씩 파는 것이에요. 그런데 주부들은 조금씩 사고 싶은 것이에요. 그러니까 결국은 그런 민첩성에 반응을 못했기 때문에 월마트가 결국은 문을 닫은 것이에요. 그럼 이마트는 그런 점에서 그런 것을 참 잘하죠. 요즘 이마트에서 기획광고를 계속하고 있는 것 있잖아요? 전복을 싸게 판다고 그러고 미국산 소고기, 광어 그런 것을 한꺼번에 수천 톤씩 계약하고 들여와서 진짜로 조금 남기고 파는데 한국 주부들의 심성을 잘 알아서 localization 에 성공한 case가 이마트에요. 그런데 그것을 못했기 때문에 망한 곳이 월마트에요. 교회도 역시 마찬가지요. 참 재미있어요. 그렇죠?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사실은 세속적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어차피 현대인들이기 때문에 그 구도 속에서 사람들이 움직여요. 그래서 그것을 잘 파악해야 된다는 것이죠.
교과 읽음 (p56)
고도대중소비단계가 한 지금으로부터 따지면 30,000불정도로 보거든요. 30,000불 정도가 고도대중소비단계라고 보는데 이런 소비단계에 오게 되면 사회가 뭐라고 그럴까요? 물질적인 것들을 아주 풍부하게 소비하면서 정신적인 가치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사회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렇게 되면 이제 선교적으로는 훨씬 더 어려워진다고 보는 것이죠. 조금 더 읽어보겠습니다.
교과 읽음 (p56)
이러한 발전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는 사실은 아무도 모릅니다. 이번에 미국 LA에 가서 집회를 하면서 어디를 가보시겠느냐고 그래서 나는 그런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신문을 보다가 갑자기 가고 싶어졌어요. ‘여기 가고 싶다.’ 그래서 갔는데 거기가 뭐냐 하면 아이맥스 영화관이에요.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두 편의 영화를 감상했는데 여기 우리나라 63빌딩에 있는 것보다 좀 더 큰 것 같아요. 어마어마하더라고요. 그런데 하나는 바다 속의 세계를 한 것이고 또 하나는 무엇인지 잊어버렸다……. 두 가지였는데……. 애들이 마치 이스터휴가였어요. 아이들이 막 새카맣게 와서 앉았는데 아이들이 입체안경을 쓰고 바다 속에 물고기들이 돌아다니니까 전부다 손을 올려서 잡으려고 그랬어요. 물고기가 잡힐 것 같으니까 말이에요. 거기의 매력에 한번 빠지면 2D는 이제 못 봅니다. 여러분 color TV 나오고 나서 흑백TV 버린 것처럼 못 봅니다. 어휴 뭐 굉장해요. 아바타보다도 영상처리가 더 잘되었더라고요. 그런데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거기에서 발전을 해서 배가 확 지나가며 불보라가 치면 진짜 불이 쏟아지는 그런 것도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4D나 5D로 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지금 LG에서 개발하려고하는 TV가 냄새나는 TV랍니다. 다양한 향료를 넣어서 컴퓨터로 조절을 해서 꽃밭 사이를 걸어가는 장면이 나오면 꽃냄새가 확 나는 것이죠. 부엌의 장면이 나오면 부엌에서 요리하는 냄새가 나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하면 5D가 되겠죠. 여러분들이 죽기 전에는 볼 것이에요. 아마 영화관의 형태가 지금과는 상대로 되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다른 형태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이제 지금은 3D잖아요. 3D는 시각이잖아요? 3D, 4D, 5D, 6D까지 올라가리라고 보는 것이죠. 그래서 예를 들자면 바람이 확 불면 진짜 바람이 저쪽에서 불고 그러죠. 폭우가 쏟아진다면 그것은 좀 곤란하겠지만 아무튼 굉장히 다른 형태가 될 것이에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내 말이 맞는가. 틀리는가. 두고 보십시오. 극장의 화면이 일자로 한 면을 차지하게 되잖아요? 그런 식으로 안 되고 사면 전체가 그리고 영화관의 구조자체가 둥근형태가 되지 않을까 생각 되요. 둥근 형태로써 전체가 다 곡선형태의 화면이 되는 것이에요. 이해 안 돼요? 그런 식으로 될 것이에요. 그리고 아마 지금 이야기하는 이런 한쪽 면에 평면을 세우고 상영되던 이런 방식이 아니라 스크린 자체가 이렇게 둥그렇게 되어있는 상태에서 한꺼번에 화면이 전부 다 나와서 우리가 그 공간에 있는 것 같은 시각적인 효과뿐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그런 효과를 나타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훨씬 더 그렇게 되고 그런 것을 예견한 영화가 있었는데 여러분 잊어버렸을지 모르겠는데 토털리콜이라는 영화가 있었어요. 거기에 보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서 선택을 하는 것이죠. ‘나는 왕이 한번 되보고 싶어.’ 그리고 누르는 것이에요. 그 다음에 아니면 ‘마누라를 한 10명쯤 거느리고 싶어.’ 눌러보는 것이에요. 그리고 남편한테 실컷 두드려 맞은 여자는 ‘남편을 반 죽이는 여자가 되고 싶어.’ 누르면 그 안에서 현실에서……. 여기에서 쓴 얘기가 그 얘기거든요. 현실에서 충족하지 못한 욕망들을 거기에서 누리는 것이죠. 그래서 현실과 가상현실 사이에 구분 점들이 자꾸 사라지는 것이에요. 매트릭스 같은 영화가 바로 그런 것이잖아요. 그런 현상들이 심각하게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fact를 중요시 여기지 않고 이번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지요. 여태까지 우리들이 물건을 만들 때 needs를 중요시 여겼어요. 기능적인 필요가 있는가? 그런데 지금은 그것보다는 wants가 중요하다는 것이에요. 감성적인 필요에요. 그래서 뭐냐 하면 needs는 기능적으로 내게 있어야 되는 것인데 이것은 옛날시대의 개념이고 지금은 wants 에요. 그래서 그것이 내게 꼭 필요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면 사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쪽이 훨씬 더 구매욕구가 훨씬 더 강한 것이에요. needs 보다는 wants 가 훨씬 더 강한 것이에요. 그것을 심어주는 것이에요. 그렇지 않아요?
2. 이에 대한 한국교회의 대처
교과 읽음 (p56~61)
그러니까 거기에 야합을 하고 그러면 안 되겠지요. 그런데 배우지도 않고 그냥 앙심만 품어요. 내가 만들어낸 표현이에요. 괜히 사실도 모르는 앙심을 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교회가 안 되고 목회가 안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이 교회를 목회하다가 교회에서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나겠어요? 어렵고 힘든 일이 일어나는데 절대 하지 말아야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교회에 대해서 앙심을 품는 것이에요. 혹은 교인들에 대해서 앙심을 품는 것이에요. 그러면 안 돼요. 그러면 목회가 병들어요. 앙심을 품어놓고 이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죠. 다른 사람의 교회가 잘되는 것은 세속적으로 하기 때문이고 자기가 안 되는 것은 워낙 올바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죠. 또 다른 사람이 안 되는 것은 워낙 능력이 없기 때문이고 자신이 잘되는 것은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죠. 그렇게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에요. 그래서는 안 돼요. 괜히 근거도 없는 앙심을 품고 그렇게 하면 되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또 찰떡궁합으로 맞아떨어져서……. 그런 극단에 빠져서는 안 돼요. 냉정하게 해야 돼요. 사실 몇 년 전에 이것을 공부했어요. 여러분 버나드 램의 복음주의 신학의 흐름을 공부하면서 우리가 한번 깊이 은혜를 받았잖아요. 같은 맥락이에요. 그런데 개혁신학을 한다는 사람으로서 그것을 안 해요. 그리고 책도 안 읽고 고민도 안 하고 그래서 마치 그런 것을 모르는 것이 놀라운 경건인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것은 눈먼 경건이에요. 눈먼 경건이라고 거기에다가 써놔요. 현대문화에 대한 앙심, 눈먼 경건, 써놔요.
교과 읽음 (p61~62)
몰입은 안 돼요. 몰입되면 안 돼요. 지난번에 메르티드 클라인의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원뿔을 그리면서 설명해준 적이 있지요? 문화와 제의 관계 그 두 개를 잘 기억해야 되요. 그래서 그것들을 허물어뜨려버리거나 완전히 그냥 하나인 것처럼 해버리거나 아니면 아주 너무 극단적으로 나누거나 그러면 모두 다 나쁜 결과에 도달하게 되요. 그런데 오늘날은 사실은 이원주의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면서 그러면서 사실은 좁은 의미의 예배를 뭉개버리고 삶의 지체로 지평을 넓혀버리는 그런 면이 있거든요. 그래서 일원론을 이야기하는데 사실은 일원론이든지 이원론이든지 결국은 표현은 어찌되었든지 간에 구조 자체가 그렇게 완전히 종교와 문화가 완전히 나눠지는 것도 잘못된 것이고 두 개가 툭 터져서 하나인 것처럼 이해하는 일원론은 잘못된 일원론이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원뿔형의 구조를 가진 일원론이 되어야한다고 지난시간에 이야기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했지요? 그런 관점을 유지해야 해요. 그래서 좁은 의미의 예배는 좁은 의미의 예배대로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에요. 지금 여기서 하고 있는 이야기가 그런 이야기에요. 그 다음에 문화에 몰입해버리는 것은 둘 사이의 간격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이죠. 그리고 하나로 만들어버리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죠. 원뿔형의 구조를 가지고 그래서 막힌 담이 없이 하나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제의의 우위성을 종교의 우위성을 항상 생각해야 된다고요.
교과 읽음 (p62)
그래서 여러분들이 대중문화들을 절대로 탐닉하고 그것을 맛있어 하면 안 되고 길들여지면 안 되지만 드라마도 가끔씩 봐야 되요. 몰입해서 보아서는 안 되고 ‘아이고 너무 재미있다.’ 그러면서 TV가 끝날 때 입맛을 다실 정도가 되면 안 되고 사역을 하다가 TV앞에 달려갈 정도가 되면 안 되겠지만 코드를 읽어내고 그 다음에 대중문화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는 알아야합니다. 왜냐하면 한 시대에는 고위문화와 하위문화가 있거든요. 고위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은 아주 소수에요. 그리고 대부분이 하위문화 속에서 살아가는데 그 사람들이 거기서 먹고 마시는 문화에요. 그 속에서 사람들을 건져내야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그 속을 지배하고 있는 정신이나 구조 이런 것들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에요.
교과 읽음 (p62)
그럼 그렇게 앙심을 품고 반감을 갖게 되면 그럼 그 교회가 거의 수도원적인 교회가 될 수 있느냐하면 절대 그렇게 안 돼요. 목회자 한 사람은 그렇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막판에 어떻게 되느냐하면 에스라의 상황처럼 되기 쉬운 것이죠. 에스라가 ‘백성들이 이러저러한 죄에 빠졌습니다.’ 그럴 때 충격을 받잖아요. 그게 충격이라는 것이죠. 지도자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에요. 그것을 보고를 받고서야 겨우 알 정도가 되면 안 되죠. 그 당시에 이미 이방혼인이 일반화되어 있었는데 그 보고를 듣고 나서야 겨우 충격을 받을 정도가 되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식의 상황이 되면 안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렇게 하면 수도원적인 교회가 되느냐하면 그런 게 아니고 겉모습만 그런 것을 주창하고 속은 전부 다 물밑으로 세상과 통하는 관계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수도원 주위도 보면 요번에도 우리가 가서 보았지만 캐더린 수도원 같은 경우를 비롯해서 사막에 있던 많은 수도원들이 문이 없어요. 문이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하면 문이 있을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나오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말이에요. 그러니까 도르래처럼 판때기에다가 사람을 올려놓고 성안에서 잡아당기면 저 안에서 개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에요. 거기서 살다가 거기서 수도하다가 거기서 그냥 죽는 것이죠. 꼭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 밧줄을 타고 내려와서 갖고 가고 수도원 안에서 농사도 짓고 하니까 그렇게 살다가 죽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결국은 뭐냐 하면 이 세속이라는 것은 세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속에 있는 것이에요. 그게 세속이에요. 그러니까 세속주의의 본산은 세상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에요. 마음 안에서 세속주의가 나오는 것이에요. 수도원에서 아무리 높은 담을 쌓아도 인간의 마음에 담을 쌓을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 안에서 똑같이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죠.
교과 읽음 (p63)
Ⅳ. 결론
교과 읽음 (p67~68)
이런 탈신학적인 목회방법이 현실적응에 치우친 목회의 방법들이 실제로 성도들을 행복하게 해주느냐하면 그렇지 않거든요. 그래서 보면 인간이 워낙 절망의 벼랑 끝에 서게 되면 사실은 하나님과 참된 신앙과 복음 이외에는 그들을 건져줄 것이 없는 것이에요.
교과 읽음 (p68~69)
몰지각이 아니라 몰지혜지요. 자, 그 다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