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선교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니라”(사 43:7).
I. 본문해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신 후에 이제 40장서부터 위로의 말씀을 주시고 그들을 회복시켜서 당신의 나라를 위하여 봉사할 수 있게 해주신다는 내용을 40장부터 계속해서 전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당신의 언약 백성들을 당신과의 관계로 회복시키시고 새롭게 그 영혼들을 소생하게 하실 때에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당신의 이름으로 일컫는 수 많은 자들이 있음을 말씀하시면서 그들은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이들이니까 그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러 오게 하라고 요구 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 창조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모든 이 세상의 인류를 목적이 있으셔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Ⅱ. 인간 창조의 목적 : 영광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뿐 아니라 이방의 모든 백성들까지 당신의 목적이 있어서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 모든 인간들은 본래 하나님이 그들을 창조하신 목적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오늘 하나님께서는 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인간이 타락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난 후에는 자기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살고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가장 올바른 것인지를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인간들은 결국 하나님이 자기를 창조하신 목적대로 사는 대신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오히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배반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하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이렇게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떠나 사는 사람들을 일깨우고 변화시켜 그래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제사장 나라로서의 사명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히려 자기를 주인 삼으며 살아가는 이방나라의 백성들의 삶을 본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독특성을 상실하였고,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강력하게 책망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으로 회복되어 당신께로 돌아올 것으로 예고하시면서, 그렇게 당신께로 돌아와 자기가 창조된 목적을 하나님 앞에 깨달은 이스라엘은 그의 사명이 바로 자신들이 아닌 또다른 이방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선포함으로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지으신 하나님을 알게 하고 또 그 영광을 위하여 그 목적에 이바지하게끔 돌아오게 하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목적이었다는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을 동일하게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 지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이 세상의 모든 인류,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들을 창조하시되 그 목적은 모두 똑같아요. 그러니까 우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창조하신 목적이 따로 있고, 지금 불신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지으신 목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에요. 원래 하나님의 목적은 모두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모든 인류를 창조하신 거예요. 그래서 모든 인류를 한 가족처럼 그렇게 하나님 앞에 하나의 덩어리로 살게 하시려고 주님이 창조하신 것이에요. 그래서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부합하는 삶을 살도록 하나님이 강력하게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제일먼저 선택하셔서 온 인류가 돌아와야 할 참된 인간의 길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거예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하고 나면, 우리의 생각과 사랑과 우리의 모든 삶의 질서들이 모두 바뀌게 됩니다. 예전에는 우리도 한때 하나님이 아무대도 없다고 믿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각기 우리의 욕심을 따라 방황하고 그리고 자기를 스스로 주인 삼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과 그 분이 우리의 참 주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우리는 주님을 인정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자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중심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내가 중심에 있을 때에 펼쳐졌던 사랑의 질서들은 주님이 중심에 오시자 사랑의 중심은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내가 주인이었을 때에 사랑하였던 것을 주님이 주인이 되신 때는 미워하게 되었고, 또한 내가 주인이었을 때는 사랑했던 것들을 주님이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자 그 다음에는 그것들을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내 인생의 목표이었던 것이 이제는 아무 가치 없는 지푸라기 같은 것들이 되었고, 예전에는 가치 있다고 생각되지 않았던 것이 내 인생에 목표가 되기까지 한 것입니다. 때로는 그 목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릴 정도까지 헌신하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중심에 하나님이 오셨을 때 일어난 변화들입니다. 그렇게 인정이라고 하는 것은 무서운 것이에요. 우리가 그 하나님을 인정하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우리의 삶의 모든 질서들이 우리가 인정한 그 하나님을 중심으로 재편됐고, 예전에 인정하게 된 것은 거부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각자 말로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께 찬양을 돌린다는 그것은 우리가 정직한 삶이 아니에요. 만약에 한 사람의 마음속에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겠다고 하는 고백이 진실하다면 하나님을 인정하는 그것이 그의 삶의 모든 질서를 재편해야 되는 것이에요. 그것을 중심으로 모두 바꿔야 하는 것입니다.
(예화) 평생 엄마 곁을 떠날 줄 모르고 집을 떠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사람들이 학교를 들어가거나 혹은 그렇게 오래토록 고대하던 좋은 직장에 입사하였을 때, 그렇게 사랑하던 가족들을 떠나 기숙사로 가기도 하고 혹은 직장 생활을 더욱더 충실하게 하기 위해서 지방에 있는 집을 떠나서 서울에 와서 하숙을 하기도 합니다. 이게 바로 중심에 온 것을 향해 재편되는 질서입니다. 이름은 잊어버렸습니다만, 우리나라에 어느 야구 선수가 있었는데, 그 야구선수의 투수들의 중요한 임무는 공을 잘 던져서 타자들이 못 치게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사람의 기량이라고 하는 것이 차이는 있지만, 어느 수준에 오르면 그만그만 하잖아요. 자기는 탁월하게 잘 던지고 싶은데, 손가락이 태어날 때부터 다른 사람보다 짧아요. 그래서 그 사람이 가서 둘째와 셋째 손가락을 찢어서 성형 수술을 했어요. 그래서 손가락을 더 길게 만든거죠. 그러면 어떻게 보면 기형이라기 보다는 장애 아니에요. 그런게 바로 장애이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 수술이 완치되고 나서 공을 자기 마음대로 던질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렇게 기뻐하였대요. 왜 그렇죠. 그 사람은 야구를 잘 해야 된다라고 하는 것을 인정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중심으로 자신의 삶을 재편한 거예요. 그렇게 되는 거죠.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하나님을 인정한다라고 하는 말의 의미에요. 그래서 우리의 치열한 성화의 삶의 마지막 목표는 하나님 한 분 이외에는 중요한 사람이 없는 사람이 되는 거죠. 그리고 하나님이 가장 중심에 오시고 그래서 하나님 때문에 모든 것들을 어느 분량 만큼 어떻게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는지가 결정되어서 모든 우리 삶의 생활의 요소들이, 생각의 모든 요소들이 하나님 한분을 향하여 집중되는 거죠. 마치 호수를 향해 돌맹이를 던지면 풍덩하고 빠지면서 파문이 그려져 가듯이 그렇게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중심에 오고 파문을 그리듯이 사랑의 질서가 이루어지는 거죠. 그 사랑의 질서는 가치의 질서에요. 가까이 있는 것들은 더 많이 중요하고, 멀리 있는 것들은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파문이 바로 질서에요.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거예요. 그게 바로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의미에요.
그러면 생각해 보십시오. 많은 이 세상의 나라들이 각기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고, 분쟁이 일어나고 심지어는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들이 모두 하나님을 인정하고 돌아오게 되면 그러면 한 사랑 안에서 파문을 그리면서 모든 인류가 하나가 되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대하셨던 인류이고 하나님이 최종적으로 이 모든 세계를 완성하신 후에는 그러한 사랑 속에서 인류가 살아가게 될 것을 우리는 굳게 믿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서 이루어 가도록 하나님이 부르신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 모든 인류라고 하는 커다란 호수위에 던진 돌맹이처럼 사용하신 거예요. 그 이스라엘이 풍덩하고 떨어지면서 파문을 그리면서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면서 살아가는지 이러한 것들을 온세상에 퍼치며 보여주기를 원하셨던 거죠.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였습니다. 율법을 버리고 선지자의 목소리를 거절했습니다. 각기 제 소견에 옳은 대로 살면서 그러면서 강력한 반항심으로 하나님께 대들고 그리고 수없는 탐욕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독특한 성질을 잃어버려가고 있었어요.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경고하시기 위하여 이사야를 거룩하게 하셔서 소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선포하도록 만들어 주신 것이죠. 그래서 그 하나님의 영광을 안 것만큼 그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고, 그 하나님을 인정한 것 만큼 자기를 복종시켜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을 이루게 하신 것이죠.
그러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에 하나님의 교회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실하게 회심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인정하고 그러한 인정에 있어서 일치를 이루게 된다면, 이 세상에서 교회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에요. 그리고 아마도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교회를 보면서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탁월한가에 대해서 알게 될 것이에요. 그렇지만 만약에 교회가 그렇게 하지 못할 때, 교회는 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정말 추루한 곳이 될 것이에요. 왜냐하면 입술로는 하나님을 한 아버지라 고백하고, 자신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태어났다고 고백하면서 실제 보이는 삶에 있어서는 서로 물고 뜯으며 자기 사랑에 치열하게 충실하면서 그러면서 그렇게 자기 사랑에 충실한 것 만큼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죠. 교회마다 일어나는 물고 뜯는 수많은 분쟁과 견딜 수 없는 고통과 많은 좌절들은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오게 될 때, 다시 이스라엘이 아주 고요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열방의 많은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하는 선교에요. 선교.
Ⅲ. 하나님께 돌아오게 함 : 선교
그거예요. 그래서 선교의 가장 중요한 것은 선교하는 나라의 문화를 수출하거나, 혹은 선교하는 나라의 어떠한 좋은 장점이나 물질적인 좋은 혜택을 다른 사람이 받게 하거나 하는 그것이 선교의 본질이 아니에요. 선교의 본질은 하나님을 멀리 떠난 인간들을 문화의 차이를 넘어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전파함으로써 그들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선교에요. 물론 이 일을 위하여 우리는 그 나라의 문화를 사용할 수도 있고, 또 그 나라 사람들이 잘 이해하고 있는 언어와 그리고 그 사람들이 잘 이해하고 있는 생활 풍습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통로로 사용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모두 수단이요, 도구이고 정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들려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자신이 자신들이 창조된 목적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음을 깊이 깨닫게 하고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늬우치고 회개하여 하나님이 원래의 그들을 창조하셨던 목적으로 돌아오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에요. 그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렇게 이미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소외되어 있습니다. 이중 삼중으로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으로부터 차단되어 있어요. 나면서부터 불교의 땅에서 태어난 사람, 나면서부터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슬람으로 종교가 정해진 사람,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없는 환경속에서 사는 이러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로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그 많은 사람들은 누가 직접 찾아가서 복음을 전해주지 않는 한, 그들은 결코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선교는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이 땅에 한국처럼 교회가 많고 그리고 주위에 안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나라에서는 물론 어느 교회든지 복음을 전할 때에는 우리가 안전해도 남이 전할 것이라고 하는 생각을 하면 안되겠지만, 우리 아니면 이 복음을 전할 사람이 없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야 하겠지만, 그러나 이치적으로 따져보면 이렇게 많은 교회들이 있고, 교회들이 복음을 전하려고 애쓰기만 한다면 한 교회가 전하지 못한 복음을 다른 교회가 전해서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예 교회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심지어는 법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금지 되어 있는 나라, 경우에 따라서는 예수를 믿을 때 커다란 형벌을 받아야 하는 그러한 반기독교적인 법이 존재하는 국가에는 복음을 들을 가능성들이 희박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전해야 하는 것이에요.
(예화) 어떠한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이고 그렇게 많은 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가서 불과 며칠 동안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고 오는데, 그게 무슨 성과가 있겠는가.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한국 교회의 처음으로 복음이 전했던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제네럴 셔먼 호를 타고 왔던 토마스 목사님이 젊은 나이에 대동강변에서 순교했을 때, 그는 조선 땅을 밟아서 누구에게도 복음을 전하지 못한 채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성경 한권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사형시켰던 망난이 그 사람이 그 성경책을 가지고 갔대요. 종이가 하도 좋으니까 그것을 가지고 찢어서 이렇게 저렇게 사용을 했는데, 그리고 어떠한 사람은 가지고 가서 그것을 벽에다가 발랐대요. 벽에다가 발랐는데, 이 사람은 글을 아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낮잠을 자기 위해 툭 쓰러져서 자면 항상 성경 구절이 떠오르는 거예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돌아 누으면 그 성경 구절, 돌아 누으면 그 성경 구절, 결국에는 그렇게 성경을 읽고 예수가 누구인지 궁금해 하다가 결국은 중국으로부터 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접하면서 회심을 한 사람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는 이렇게 복음이 접촉될 수 없는 지역에서의 역사는 아주 특이해요. 그래서 하나님이 선교적으로 복음을 전하러 올 가능성이 없는 매우 희박한 선교지에서는 이렇게 복음이 편만하게 전해질 수 있는 좋은 환경속에서 역사하시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역사하셔요. 그래서 아주 많은 기적도 일어나고, 그리고 아주 작은 복음 전파인데 그 실락 같은 조각을 붙들고 하나님이 회심의 역사를 일으키셔요. 그러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라고 하는 것은 결국엔 무엇을 보여주는가 하면, 하나님이 그러한 이방 민족들도 얼마나 빨리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계시는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선교의 역사를 보면 어느 것이 경제적인 선교의 역사이겠습니까. 우리 나라는 철저하게 쇄국 정책을 했고, 외국의 배들을 철저히 막았고, 더욱이 서양 귀신이라고 불리우는 예수 이야기만 하면 핍박하고 죽이는 일들이 일어났고, 복음이 전파된 후에도 수많은 순교자들이 나왔습니다. 그런 곳에 복음을 전하는 그것이 정말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일이었겠습니까.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아무도 없었습니다.
몇 해 전 영국에 갔을 때, 토마스 목사님을 파송했던 그 교회, 거기에서 목회하시던 그 분 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듣고 묘지도 보았습니다. 그 아버지가 거기에서 목회할 때, 젊은 토마스 선교사가 중국으로 파송을 받았고, 중국에서 사랑하는 아내가 결국은 아기를 갖은 채, 복중에 아기를 갖은 채 죽습니다. 그리고 단신으로 이제 거기에 조선에 들어와 아들마저 순교했다는 소리를 불과 얼마 사이를 두고 차례대로 그 죽음의 소식을 접했을 때 그 목사님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을 하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오히려 더 많은 영국의 젊은이들이 선교사로 지망을 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 하지 않는다는 것은 죄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파할 수 있는 이곳에서 전파할 뿐만 아니라 전파할 수 없는 그곳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다고 생각하고 비록 그들에게 하루 다가가서 일주일 다가가서 유창하게 설교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땅을 밟고 그들에게 쪽 복음 하날도 전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더듬 거리는 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할 때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역사를 일으킬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도 그들을 지으신 본래의 목적으로 돌아오기를 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종종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들이고 가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을 여유가 있어서 가고 그렇게 생각을 하면 안돼요. 이것을 의무라고 생각하면서 가야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일년동안 외국 사람들은 우리 나라 사람들도 마찬가지죠. 요새 국민 소득이 나아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에요. 그래서 어떠한 사람들은 일년에 한번씩 그룹을 지어서 적금을 든다고 합니다. 여름 휴가를 가기 위해서 여름 휴가 갔다온 다음 달부터 한달에 십만원씩, 오만원씩, 이십만원씩 적금을 들어서 일년 뒤에 적금을 모두 타서 해외 여행을 단체로 간다고 합니다. 또 어떠한 사람들은 강남의 좋은 음식점이 있으면 한달에 오만원씩 모아서 6개월에 한번 모아서 그것을 시식하러 간대요. 그러한 자기의 육신을 위한 목적을 위해서도 그러한 일들을 하는데,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듣고 선교의 사명을 느끼고 있다면 우리가 얼마나 더 많이 헌신해야 할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도 여러분들이 그렇게 훈련을 시키셔야 해요. 선교 간다고 덜컹 선교비 주고 그렇게 하지 마세요. 1월부터, 1월부터 착실하게 어린 아이들의 마음에 선교에 대한 소명을 품고 쓰고 싶은 돈 안쓰고, 먹고 싶은 것 덜 먹으면서 푼돈을 모아서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 앞에 목적 의식을 가지고 선교를 하게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이죠. 그게 진정한 선교에요. 그렇게 해서 정말 하나님 앞에 그렇게 모여진 돈, 그 아까운 휴가를 다른 것에 얼마든지 쓸 수 있는데 선교를 위해서 그렇게 쓰기 위해 몸부림 칠 때,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당신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고, 인생의 목적을 올바로 알아서 미격이나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살면서 인생의 방향을 잡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거예요. 정말 놀라워요. 그것이 바로 선교에요. 그 티끌같은 섬김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이 정말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셔요. 당장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우리가 씨를 뿌리는 그 일을 위해서 열심히 할 때, 하나님이 그것들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큰 영광을 위하여 일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 일을 선교라고 부르고 교회는 바로 이 일에 있어서 엄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주신 많은 은혜의 자원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많은 성도들이라고 하는 인적 자원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이 땅에 주신 많은 자원들을 자신들끼리 먹고 마시고 쓰고, 소비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더욱 힘을 다해서 그래서 이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에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그 일에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 사람들이 항상 그러한 이야기를 하죠. 이 동네에서도 복음을 못 전하는데 가긴 어디까지 가. 둘 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 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말씀하셨을 때에 그것은 모두 동시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차례대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도 온 유대에서도 사마리아에서도 땅끝에서도. 보십시오. 예루살렘이 다 복음화 되지 않았는데도 강력한 핍박을 받게 하셔서 그래서 제자들이 모두 두려움속에 삼지 사방으로 도망치게 만들어 주시잖아요. 그리고 그곳에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게 만드시잖아요. 바로 그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들이 복음을 전하기를 원해요. 여기서도 열심히 전하고, 힘 닿는 대로 멀리 가서 그래서 이틀씩 비행기타고 날아가서 이틀밖에 복음을 전하지 못하였다고 해도 경제원칙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거예요. 우리가 가기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들을 수 없는 지역이에요. 그러면 그런데일수록 이틀을 비행기를 타고 하루를 전하고 올지라도 그것이 너무나 큰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비경제적으로 희생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의 빚진자로 살아야 합니다.
Ⅳ. 복음에 빚진 자로 살자
우리가 복음에 빚진 것을 기억하면 복음의 빚진 것을 기억하면 우리는 그 모든 선교를 위한 희생이나 어려움이 절대 큰 것이 아니에요. 그리고 선교지를 접하지 않으면 할 일이 없지만, 일단 가서 접촉하고 그리고 그 속에서 분투하면서 애쓰는 사람들을 보면 이 세상에는 정말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아요. 그래서 주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알고 그 복음의 빚진 사람들이 스스로 복음의 빚진 자라고 자처하면서 그러면서 하나님께 보냄을 받는 일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서 복음의 빚진 자로 살아야 합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이 복음이 전해지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아직까지도 이 세상에서 방황하고 죄를 물먹듯 마시며 그렇게 하나님께 악을 행하고 죄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긍휼의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복음을 듣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우리를 무한히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 선교를 위해 애쓸 때 이해타산을 따지지 말고 성과에 비해서 희생이 너무 크다고 생각하므로 우리 스스로 복음의 빚진 자라고 하는 자기 인식을 배신하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복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전할 사람은 복음의 빚진 사람들만이 이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교회가 선교에 앞장서는 가장 강력한 비결은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에 대해서 감격을 하는 거예요. 그것 없이는 참된 선교가 가능하지 않아요.
이 벌레 같은 나 위해 큰 해 받으셨나
그래서 자기의 인생이 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전적으로 우리 주님께 빚진 자 된 인생이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용하셔서 이 복음의 빚진 자로써 이 복음을 전하는 이 일에 헌신하고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셔야 됩니다. 정말 역사해 주셔야 해요. 그래서 이미 주님의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구원이 일상적인 것이 아니라, 정말 놀랍다, 주님이 나같은 인간을 구원해주셨다고 하는 은혜 때문에 눈물을 펑펑 흘릴 수 있는 사람이 될 때에 그때 그들은 반드시 전도할 것입니다.
이번에도 교역자 수련회에 가서 전도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만, 좀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불이 붙어야 해요. 화요일날 여리고 전도 나오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 삶의 현장에서 사람들에게 정말 영혼이라고 보고 그 영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그 영혼 하나하나에게 하나님의 참 사랑과 복음의 빚을 진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증거하는 강력한 구령의 열정이 우리의 마음속에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굳이 전도에 관한 프로그램이 필요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어디에 있든지 복음의 빚진 자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비록 연약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예수 믿도록 만드실 것입니다.
한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 그 위대한 일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 삶의 가치도 없고 중요한 것도 없이 끝없이 방황하기만 하던 인간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올 때 그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서 한영혼 한영혼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으로 돌아오고, 그들이 하나님이 자신을 창조하신 목적대로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자기 자신이 지극한 행복 속에서 살아갈 때, 그는 하나님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들을 한 것입니다. 주님의 도구가 되어서 그 일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이렇게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돌이켜 당신의 나라로 돌아오게 한 사람들을 향한 훌륭한 상급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웃을 향한 최고의 사랑을 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올 여름에도 이 복음을 들고 우리는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없는 지역에 정말 교회가 없어서 누군가가 가서 전해주지 않으면 전파 받을 수 없는 지역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일생동안 모두가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울면서 그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서 이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더 많은 일꾼들을 보내주시도록 온 마음을 다해 선교해야 할 것입니다.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그 영혼을 위해서 그 영혼의 비참한 상태를 기억하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들, 복음을 전해야 할 열정을 갖는 사람들은 절대로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요. 그렇게 한가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대부분 부패하고 할 일 없는 사람들을 늘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켜요. 구령의 열정에 불타는 사람들, 이들이 묵묵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교회는 이러한 사람들 때문에 확장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수많은 말쟁이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나아가서 외칠 한 사람의 전도자가 필요합니다. 절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