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선교방법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만방 중에 알리소서
하나님이여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 (시 67:2-3)
녹취자: 박지성
나는 오늘 복음적 교회의 존립 목적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복음적 교회의 존립의 목적은 하나님의 도를 만방에 알리는 것입니다. 전쟁을 국가가 수행할 때 전쟁의 목표가 있고 전쟁의 목적이 있습니다. 전쟁을 승리하기 위해서는 전투를 이겨야합니다. 그러나 작은 전투 하나를 이겼다고 해서 반드시 전쟁에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투에서의 승리는 전쟁의 승리라는 목적을 향할 때에 의미가 있는 것이고 그래서 그 목표들 속에는 대목표가 있고 소목표가 있어서 작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곧바로 전쟁의 승리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더 큰 전투에서 승리를 가져오는데 디딤돌이 되고 이렇게 하면서 전투를 하는 모든 일, 전투를 위해서 후원하는 국가의 모든 기능들이 하나의 목표,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귀결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타락할수록 이런 일률적인 목표의식이 희미해집니다. 모여서 우리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왜? 우리가 즐거우니까. 이러 이러한 것을 하자. 왜? 멋있으니까. 이렇게 하면 궁극적인 목표에 대한 의식이 단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들이 크고 작은 일들을 할 때 그것이 비록 돈이 많이 들어가고 몸이 부서지도록 고생을 하고 수많은 지체들이 땀을 흘리며 때로는 피를 흘리며 희생을 해도 그것이 교회의 존립목적에 직접적으로 이바지하든지 아니면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대목표의 달성에 현저히 이바지하면 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희생 없이 무슨 영광이 있겠습니까? 어디 그런 것이 있습니까? 복음사역에 희생 없이 달성되는 요행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즐겁고 아무런 희생이 따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것들이 교회의 궁극적인 존립 목적에 이바지하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의 유익과 즐거움을 위한 것이면 쓸모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존립 목적이 무엇이냐? 오늘 성경에서 보면 주의 도를 만방에 알리는 것이 교회의 존립 목적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주의 도’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길입니다. 이 길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아주 간단하게 얘기해서 우리가 믿어야할 바, 살아야할 바, 알아야할 바입니다. 그것이 도입니다. 그것은 결코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이번에 총회에서 7월 10일에 오정현목사님이 목회하는 새문안교회의 신학부 주관으로 신학부 세미나를 합니다. 교단의 목사님들이 많이 오시는데 저에게 관상기도에 대한 비평 논문을 써달라고 요청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막 논문을 쓰고 있는데 논문을 쓰면서 자료들을 쭉 읽어봤더니 참 기가 막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요즘에 무슨 운동이 벌여지냐면 목사들이 중옷 비슷한 옷을 입고 나중에 영상을 보여드리겠지만 그런 옷을 입고 기도원 같은 것을 만들어 놓고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침묵합니다. 작대기 같은 것을 들고 딱딱 때리면 성경을 읽고 딱딱 때리면 그 다음에 성경을 놓고 내가 보기에 참선을 합니다. 그리고 끝나면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잘 들여다보면 결국은 마지막에 무엇이 나오느냐면 회개가 필요 없는 신앙, 인간을 죄인으로 보지 않고 인간 속에 있는 온갖 잡스러운 것들을 침묵 속에서 걷어내면 순수한 자아가 나오는데 그것이 하나님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주 전체의 일치를 이루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화가 필요 없고 하나님을 응시하면 곧바로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아주 황당한 사상들이 엄청난 환영을 받으면서 번져가고 있는데 신학자들은 다른 하나님을 목회자는 다른 구원의 길을 성도들은 다른 신앙의 동기를 가지고 기독교를 접합니다.
어저께도 부목사님들과 얘기를 했지만 30년 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들이 한국교회에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 20년 후에는 아마 지금 봐도 완전히 다른 변종적인 신앙이 한국교회를 강타하게 될 것이라고 나는 우울하게 전망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종교 다원주의가 막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어가고 있어서 이런 상황 속에서 과연 도가 있느냐 과연 믿어야할 바, 알아야할 바, 살아야할 바라는 도가 있느냐하는 궁극적인 회의를 가지게 됩니다.
아까 우리 김기열장로님이 말씀하셨고 장로님 세분이 이번에 장로로서의 사역이 끝나는데 내가 참 감회가 깊습니다. 사실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뭣하지만 아마 앞으로 세워지는 장로님들은 이분들처럼 고생하는 분들을 없을 것입니다. 마치 비유를 하자면 그룬트비처럼 아무것도 없는 산지로 곡괭이를 들고 우리는 올라간 것입니다. 그 아까 이장로님이 큰 교회는 처음이라는데 우리 모두 태어나서 섬긴 교회 중 이 교회가 제일 큰 교회입니다. 모두 다 처음만난 상황이었습니다. 나는 부목사도 안 해봤는데 내가 당회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정말 고생했습니다. 그때 사역하고 지금 사역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다섯 배 이상 어마어마하게 늘어났습니다. 무엇을 보면 알 수 있냐면 그때는 저를 돕는 분이 거의 없었는데 지금 이렇게 돕는 분들이 많은 데도 제가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 것을 보면 사역이 얼마나 확장되었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번 잘 생각해 보십시오. 사역이 확장됐다고 했는데 우리가 교육관 하나 산 것 이외에는 우리가 대규모 토목공사를 한 것도 아니고 교회 건축을 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최근 한 3, 4년 정도 들어서 우리들이 확 급격하게 확산된 것을 십년을 어간을 놓고 보면 해외선교, 또 7년을 놓고 확산된 것을 보면 국내 아웃리치 및 선교, 그 다음에 5년 정도를 확 확산된 것을 보면 신학교육을 위해서 섬기는 일, 내부적으로 목양 이런 일들이 주종을 이루었습니다. 가만히 보면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는 잘 모르고 그냥 한 걸음 한 걸음 주님 손잡고 왔지만 주님은 본질적인 사역으로 우리를 인도하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엊그제 저를 가르치신 우리 유재헌교수님이 직원예배에 설교를 하러 오셨습니다. 학교 돌아가는 이야기를 잔뜩 하시는데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정말 신학교를 위해서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너무 너무 마음 아픈 일들이 많고 혼란스러운 일들이 많은데 그분을 보내놓고 제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노회에 가면 모든 목사님들이 저를 좋아합니다. 그러면 장로님들은 우리 교회가 많이 도와줘서 좋아하겠지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두 번째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자리를 탐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다못해 부장자리도 자기들 하라고 다 주고 나는 초연하며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나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그런 감투에 대한 열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생각을 했습니다. ‘아! 총회에서 정치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는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내 몫이 아닌 것 같다. 나와 열린교회가 해야 할 일은 지금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1200명이 아웃리치를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열린교회 성장에 무슨 도움을 줍니까? 해외 아웃리치를 나가는데 그것이 열린교회 성장에 무슨 도움을 주고 이렇게 열 개가 넘는 신학교에 가서 책을 뿌리고 하는 것이 열린교회 성장에 무슨 도움을 줍니까? 그런데 이렇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저와 열린교회에 맡겨주신 너무 중요한 사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유영규교수가 몇 년 전에 와서 저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20명을 입학시험 면접을 봤는데 그 중의 11명이 열린교회가 자기의 모델이라고 이야기했답니다. 교회의 크기로 보자면 우리교회보다 큰 교회들이 많지만 하나님이 이런 사명을 제게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분 아시다시피 외국에 가서 열흘 이상을 살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신비하게도 이렇게 길을 열어주셔서 외국과 교류를 하게하셨는데 엊그제 내가 직원들이 모였을 때도 이야기했지만 이런 것이 겉으로 보면 화려하지만 정말 힘듭니다. 제가 이번에도 유럽여행에서 돌아오면서 내가 7년이 지난 다음에 8년 되어서 65세가 된 다음에는 이렇게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이 부치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참 그 일들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아주 생생하게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 말씀의 영향력들을 우리들이 펼칠 때 정말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라고 느낍니다.
말씀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노스웨스턴신학교에 일부러 들러서 왔는데 한국에서 목사가 온다고 외국에 공부하러 온 신학생들이 새벽에도 모일 테니 말씀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 ‘새벽에 모이겠나?’ 했습니다. 그래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차를 타고 노스웨스턴신학교에 갔는데 충격을 받았습니다. 새벽 6시에 120명이 모였습니다. 아이들까지 안고 업고 왔습니다. 얼마나 갈급한지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그러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임을 아주 선명하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정말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열흘도 외국에서 안 살던 사람이 신학자들과 만나서 신학적인 대화를 나누고 협력을 이끌고 여기까지 이렇게 오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 일들을 해 나가야합니다.
미래의 교회는 현재의 교회에 달리지 않았습니다. 미래의 교회는 현재의 교회에 달린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신학교에 달려있습니다. 이번에 제가 영국에 가서 스펄전목사님이 목회하던 태버나클처치에 들러서 피터 마스터스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이 제 이름을 알겠습니까? 왜 우리 목사님이 당신을 만나야 하느냐고 해서 상세하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래서 만나 주셨습니다. 30년 전에 30대 초반에 목사로 그 교회에 부임했을 때는 40명의 노인들만이 있었습니다. 40년 동안 전심으로 사역을 해서 지금 1600명이 모입니다. 영국에서 1600명이면 여기서 16000명이라고해도 상상이 안가는 숫자입니다. 어린이들이 600명이 모인답니다. 영국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교회에는 주로 노인들만 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모여서 뜨겁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만약에 미래의 교회가 현재의 교회에 달렸다면 40년 전의 태버나클처치의 40명이 모이던 교회에 이런 미래가 있었습니까? 피터 마이스터라는 신학생 한 사람을 하나님이 붙드시고 주님의 사람으로 만드시니까 한 인간이 와서 교회를 완전히 바꾸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도구로 쓰신 것입니다. 저는 유럽이나 미국에 출장을 가면 두 시간 단위로 움직입니다. 기적적으로 이번에 유럽에 갔을 때도 만나는 사람마다 2분전에 도착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함께해주시는 것을 보면서 내 마음속에 불타는 것이 뭐였냐면 ‘이것은 하나님이 나에게만 주신 사역이다.’
우리가 갔을 때 어느 학생이 오더니 묻습니다. 장경동목사님이 열린교회의 인턴쉽은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고 오라고 했답니다. 그 교회에서 해도 될 것입니다. 많이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제가 다 간증을 할 시간이 없지만 외국에 가면 저는 마음에 부흥이 일어납니다. 저인들 좋겠습니까? 제가 외국에 안 나가봤으면 들뜬 마음에 출장이 좋다고 하겠지만 실컷 가본 사람이 뭐가 좋겠습니까? 뉴욕을 수 없이 가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한 번도 안 올라가 봤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생생하게 함께 하십니다.
이번에 영국에 가서도 너무나 감격했던 것이 17~18명의 영국 목회자들 80%가 박사학위 받은 학문에 있어서 저와 비교가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그렇게 은혜를 받고 완전히 생각이 바뀌어서 그 중 목사 한두 사람은 거의 회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열렬하게 모인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월요일 새벽에 차를 타고 3~4시간을 와서 말씀 공부하고 열렬히 기도하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제가 시간이 없어서 한번 딱 모였는데 거의 인턴쉽 분위기였습니다. 무엇이든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는 따라하겠습니다. 그동안 기도하면서 사역을 했지만 십년을 유럽을 위해서 헌신할 때 우리의 헌신은 좁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크게 역사하실까 기대가 됐습니다.
결국 한 사람의 목회자가 깨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목회자 혼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장로님들과 이름 모를 성도들의 눈물 나는 헌신이 있었습니다. 제가 숫자를 추구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번에 교회의 성도들이 3000명을 넘었습니다. 머리 숙여서 우리 장로님들과 특별히 온 마음을 다해서 사심 없이 영혼들을 돌보고 전도하는 교역자들에 대해서 정말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 사역자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큰 복입니까? 그렇게 사람들이 도와서 세우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한 사람의 설교자를 세우시고 함께 연합을 하면서 교회를 세워가게 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결국은 하나님의 교회의 미래는 현재의 교회의 상태에 달린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달려있습니다. 목회자가 될 사람들에게 달려있습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지금 장로님들에게 말씀 드리기는 참 힘들지만 한국에 있는 신학교들이 총신, 고신, 합신 등 몇 개의 신학교를 제외하고는 다 자유주의화 되었습니다. 총신도 내부적으로 위험할 정도로 자괴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군소 신학교들 안양대학, 웨스트민스터신학교 등등의 작은 신학교들은 거의 완전히 자유주의가 다 되었습니다. 그래도 전에는 그런 것을 힘들게 했는데 지금은 거침없이 자유주의 사상을 전파합니다. 이런 끔찍한 시대에 결국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정치는 제 몫이 아닌 것 같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하든지 더 힘을 내서 사모하는 학생들이 이곳에 와서 배우고 목회자들을 새롭게 세우는 것입니다. 이번에 안양시지역 목회자들을 섬기는 데 국내전도분과에서 애 많이 쓰셨습니다만 그분들도 갈급한 것입니다. 정기적으로 자신들이 모일 테니까 자기들을 도와줄 수 있느냐고 해서 확답할 수 없다 그러나 생각은 해보자하고 돌려보냈습니다. 그리고 연변에서도 간절히 원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온전히 우리의 역량을 집중해서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에서 믿어야 할 바, 알아야 할 바, 살아야 할 바를 우리들이 전할 수 있겠는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들이 먼저 그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전파되면 그 마지막 결과는 오늘 성경 3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찬송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의 기회라고 보는 것이 있는데 뭐냐면 요즘은 결과를 가지고 말하는 시대입니다. 무슨 뜻이냐면 우리 마음은 안 그런데 교회가 은혜 가운데 잘 성장하기만하면 사람들은 순수하지 않은 방법의 의도라도 ‘저 사람들이 믿는 바가 뭐냐. 저 사람들이 아는 바가 뭐냐. 저 사람들이 사는 바가 뭐냐.’에 대해서 듣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에 각오가 많이 새로워집니다. 제 목회 생활이 이제 한 14년~15년 정도 남았는데 이 목회에 한번 목숨을 걸고 싶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저와 열린교회의 이름을 드러내고 우리 교회에 유익이 어떻게 돌아오느냐에 관심을 두지 않고 다른 교회에 어떻게 이바지 할 수 있느냐를 생각하면서 보편교회 전체가 하나님의 도를 누릴 수 있도록 어떤 식으로든지 우리들이 헌신하면서 살아야할 것을 간절히 하나님 앞에 바랍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열린교회 성도 개개인이 저를 포함해서 우리 모든 구성원들이 하나님의 긍휼이 여기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 그것 없이 어떻게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우리에게 부어 주셔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들어 주시면 이단과 쓰레기 같은 신비주의 사상에 교인들이 절대로 도취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말로 형언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밀한 역사입니다. 내가 헌신하겠다는 것은 그것을 위해서 내가 헌신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목양을 위해서. 여러분들이 지켜보시면 아시겠지만 이제 여름사역 끝나고 가을에 접어들면서 저의 사역의 구심점들을 교회 내부로 옮기려고 합니다. 교회 내부 쪽으로 더 많이 쏟고 그렇다고 외부의 사역들을 줄일 수는 없고 계속 뻗어 나가야합니다. 그래서 비상한 각오로, 어쨌든 내적인 부흥이 있어야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무슨 뜻이냐면 지난주에 평상시 주일로서 3000명이 처음 넘었습니다. 무슨 특별한 행사가 있는 주일도 아니었고 별일이 없는 주일이었습니다. 3000명이 안착되는 것도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어쨌든 3000명이 넘을 텐데 이 시점에서 우리들이 항상 조심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면 오늘도 부목사님들과 얘기를 했지만 11월부터 5월 까지 600명 정도 등록을 했고 그 중에서 370~400명 정도가 정착한 것으로 보는데 실재로 늘어난 것은 250명 정도 늘어났습니다. 나머지는 군대 가고 유학 가고 이사 가고 죽고 그렇게 빠져나간 숫자입니다. 그런데 이제 문제는 무엇이냐면 우리들이 이런 속에서 구심점을 영혼 하나하나에 대한 진정한 변화에 쏟지 않으면 이것이 교회의 무게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자면 청년부에서 지금의 두 분 사역자가 뛰어나지만 리더쉽이 교체되고 하면서 여러 가지로 걱정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제가 회심집회도하고 해서 청년부 사역을 가을에 밀어주려고 합니다. 정말 교구 구석구석에 장년들도 지부별로 심방을 해서 아주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그렇게 하나님의 얼굴빛을 각자가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꾸 저보고 장로님들과 교회의 안수집사, 권사님들이 종종 교회건축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는데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안희숙씨의 노래처럼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입니다. 그렇지만 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이 나의 남은 한 15년 동안에 교회에 큰 부흥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맺은 부흥의 그 결과물들이 외적인 것이 아니라 교회를 치료하고 고치고하는 내적인 데에 쓰여서 정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마음이 너무너무 간절합니다.
그리고 확 뚜렷하고 분명한 개혁사상을 가지고 있는 그런 학자들과 목회자들을 규합을 해서 연대를 이루면서 힘 있게 이 복음 사역을 감당해 나가서 우리들이 향후 15년 동안에 개혁주의 신앙에 입각해서 개혁주의적인 교회에서 힘들게 신앙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은 부정하지 않으니까 하나님께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한없이 피상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허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너무나 잘 알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을 우리들이 극복하면서 이 사명을 감당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온 마음을 다해서 신학교 사역을 위해서 섬기려고 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8월 달에 조엘 비키목사님이 세우신 미국에서도 꽤 좋은 신학교인 PRTS학교의 개강수련회에서 저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서 설교를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간에 이 사역들이 바다를 건너서 개혁신학자들과 연대를 이루면서 힘차게 나아가고 이런 통로를 통해서 정말 하나님을 견실하게 섬기려는 훌륭한 일꾼들이 한국에 나와서 뿌리를 내리고 말씀 사역을 하는 일꾼들을 세울 수 있도록 도우며 교회가 그런 영향을 받고 이렇게 하면서 하나님 앞에 세워져 가야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큰 교회들이 리더십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우리에게 커다란 걱정인데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온 마음으로 한 마음이 되어야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저 혼자 예수를 믿고 신학교를 졸업했어도 방황하고 이 교회 저 교회 돌아다니고 이 사역 저 사역 직접거리고 그러다가 죽었으면 나 혼자 죽었을 텐데 우리 집 애들이나 예수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목회에 헌신하니까 하나님께서 교회를 남겨놓으시지 않습니까? 이것은 저 혼자 한 것이 아니라 장로님들이 죽어서도 하늘나라에 가서 열린교회 내려다보시면서 기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목숨을 걸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딱 7년 밖에는 기회가 없지 않습니까? 이변이 오지 않는 한 제 임기동안에는 제가 은퇴할 때 까지는 이 원칙이 지켜질 것입니다. 한 번씩 밖에 기회가 없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서 섬겨봐야 350주입니다. 한 주씩 까먹으면 350주에 딱 끝납니다. 그렇게 온 마음을 다해서 장로님들이 “나를 따르라!” 라고 말할 수 있게끔 섬기고 정말 아름다운 덕을 남겨서 30년 후쯤에 다 하늘나라에서 만나야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여기에서 30년 후에 살아 있겠습니까? 아마 하늘나라에서 만나서 이렇게 내려다보면 우리들의 가슴이 벅찰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숙제가 있습니다.
교역자들은 오늘 집어넣어서 내일 사역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안수 받았다고 해서 갑자기 뭐가 내려오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열린교회에서 교구사역을 하려면 최소한 7년은 걸려야 합니다. 교인이 이렇게 팽창을 하게 되면 이런 교역자들을 계속 길러내는 것부터 시작해서 많은 난제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온 마음을 다하고 기도해서 열린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퍼져나가고 어디에서든지 말씀을 듣고 변화를 받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들이 들을 수 있다면 정말 기쁘고 감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금도 우리 교회의 열배가 넘는 교인들이 매주 설교를 들으면서 은혜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들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정말 아까 이장로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나를 따르라!” 이렇게 본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힘차게 3000명 이후의 시대의 사역들을 감당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