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까지 증인으로 살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9-20).
신약성경에서 제자를 삼아라고 할때 이 제자라는 말은 3가지 정도로 각각 나뉩니다. 가장 좁은 의미로 제자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예수님의 12제자를 가르킵니다. 좀 넓으면 예수님을 늘 따라 다니던 그런 헌신된 무리들을 가르킵니다. 예를들면 70여명의 전도대 같은 것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가장 넓은 의미에서 쓰면 예수를 믿게 된 모든 사람을 제자라고 부릅니다. 이 말도 우리가 깊이 되새겨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은 사람들은 이제 겨우 당신에게서 가르침을 받으려고 하는 학생이라는 뜻입니다. 제자라는 말과 학생이라는 말의 차이는 무엇인가 하면 학생은 그저 지식을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이 강합니다만 제자라고 하는 것은 지식을 배울 뿐 아니라 기술만을 습득할 뿐 아니라 그 선생님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선생님의 전 삶을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방금 믿게 된 사람을 제자로 부르는 것은 이후에 그가 하나님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터득하고 누구를 본받으며 살아가야 될 것인가를 보여 줍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는 것은 아주 간략하게 이야기 하면 그들을 구원하라는 이야기와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오늘 성경을 보면 제자를 삼으면 세례를 주고 그 다음에 가르치고 이렇게 되어 있지만 사실은 희랍어 성경에 보면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나는 행위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한쪽으로는 사람들을 잘 가르쳐서 깊은 신앙의 진리속으로 들어가게 하고 또 한쪽으로는 가르침을 아주 단순화해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으니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라고 전파하고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예수 믿게 된 사람들을 신앙의 확신을 갖게 만들어서 교회의 일원이 되도록 세례를 주고 하는 일들이 한 교회가 함께 주님이 오시는 세상 끝날까지 계속해 나가야 할 사역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보면 오늘날 우리들은 이러한 교회가 전도하는 사역에 있어서 현저하게 약화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약화되어 있는 모습은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점점 줄고 있는 것을 통해서도 잘 나타나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은 옛날하고 틀려서 사람들이 전도하러 다녀도 잘 안 믿는다고 하는데 해 보았습니까? 옛날에는 정말 많이 전도했습니다. 한 30년 전으로 거슬로 올라가면 예수 믿는 사람들 모두는 전도하는 것이 의무라는 생각이 아이들에게까지 분명했습니다. 그것은 고려하지 않고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안 믿는다 해 보았습니까? 물론 그럴 수는 있습니다. 옛날 보다 사람들이 더 쉽게 복음을 받아 드릴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성경이 마지막때에 대해서 이미 예고된 것이 아닙니까? 그것은 우리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희랍어 성경에 보면 좋은 때이든지 없는 때이든지 이렇게 나옵니다. 복음을 전하기 좋은 때이든지 아니면 복음을 전할 수 없을 때 이든지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기를 힘쓰라고 하는 것입니다. 설마 하나님께서 생각이 변하고 사람의 사고가 바뀌어서 쉽게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네 책임이다 하고 책임을 물으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시대가 바뀌어서 예수를 안 믿는 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는 불가항력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30년전에 비해서 비교가 안될 정도로 전도를 안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전도를 해도 그 방법이나 목표 자체도 현저하게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30년전, 40년전만해도 교회에서 전도를 참 열심히 했습니다. 어린이 주일학교에서도 데려다 놓으면 아이들을 전도하게 시켰습니다. 특별한 훈련이나 프로그램들은 별로 없었지만 열정 하나로 그랬습니다. 우리도 주일학교때 교회에 가면 가르쳤던 내용들이 아주 원색적인 복음입니다. 그래서 그런 제시 자체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네가 가서 전도하지 않으면 네 친구가 지옥에 간다 라고 하는 아주 직선적인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어린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저씨 아주머니 할아버지 모두 이런 사람들이다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복음성가 이겠지만 제가 35년전에 배운것인데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35년전이 뭡니까 45년전에 배운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중에 아무도 이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술 마시고 장구치고 죄만 짓다가... 왜 그랬는가 하면 그때 술을 많이 마시고 그렇게 아이들이 볼때에 최고의 타락이 막걸리 마시고 장구치는것 이었습니다. 술 마시고 장구치고 죄만 짓다가 오늘밤에 죽으면 어찌 하리요 유황불이 펄펄 붙는 지옥으로 이를 갈며 슬피 울며 끌려 가겠네 나 오라 예수 앞으로 천국의 영생도 너에게 주리니 예수 믿으라. 일제 시대때 신세 타령하는 노래 같지만 그것을 들으면서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야 된다는 것을 어린 마음에도 생생하게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히 어른들에게 가서 예수 믿으라고 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것이 주일학교 하나만의 분위기가 아니라 모든 교회 전체적인 분위기 였습니다. 그런것들은 신학적으로 보면 삶 전체를 아우르는 가르침들이 교회에 현저히 부족하고 그리고 그냥 나가서 천국이냐 지옥이냐 불신하고 지옥갈래 믿고 천당갈래 이런식으로 했기 때문에 그것들이 신학적으로 균형을 잃었다고 해서 나중에 비난을 받지만 그러나 오늘날은 그것이라도 있느냐 라고 제가 묻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대가 바뀐것은 틀림 없지만 시대는 늘 바뀌는 것이니까 우리 그때에도 시대는 있었고 사도바울때에도 시대는 있었는데 어차피 그것은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전파할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이 일이 중요하다 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이죠 복음 전파를 전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달콤하게 말을 넣어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이 전도에 성공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 우리가 이렇게 포스트모더니즘시대에 그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참 낙심스럽지만 그러나 어차피 사람이 예수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경건의 비밀을 터득하게 되는 것이 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다 라고 하면 어차피 마찬가지 입니다. 힘든것이나 안 힘든 것이나 결국은 인간은 차이가 나지만 성령의 역사는 강력하기 때문에 이 모든것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시대가 어려워졌으니까 더 열심히 복음을 전하면서 예전과는 비교도 안되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간절히 매달리면서 복음으로 승부를 해야지만 세상이 뒤집어질텐데 교회 자체가 이미 너무 많이 세속화되었고 영적인 근육이 퇴화되어서 그렇게 자기 영혼도 아니고 남의 영혼을 위해서 절실하게 비지땀을 흘리면서 매달리고 도전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달라고 매달릴 정도로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배에 기름이 너무 많이 끼어서 이제는 편안하게 예수 믿어 보려고 하는 이런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 전도가 그렇게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어느시대이든지 한 시대에 교회가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에 젖는것 보다 세상의 풍조에 젖는 것이 쉬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무릎을 꿇어야 하고 그 다음에 결단을 해야하고 진리를 탐구해야 하고 그것을 싫어하는 싫증과 싸워야 하고 깨달으면 또 도전하고 살아보아야 하고 그리고 또 잘못했으면 뉘우쳐야 하고 이렇게 피 어리게 몸부림을 쳐야지만 하나님의 진리의 영향을 끊임없이 받지만 세상의 영향을 받는 것은 그냥 맥놓고 있으면 세상의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기 위해서 노력합니까? 안하면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친구들이 왔을때 공부 잘하는 아이들보고 너는 어쩜 그렇게 공부를 잘하냐 하고 묻지 공부 못하는 아이 붙들고 너는 어떻게 무슨 일을 했길래 그렇게 공부를 못하냐 그 비결이 무엇이냐 하고 물어보는 사람 없습니다. 비결 없습니다. 그냥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럼 문제는 무엇인가 하면 두가지의 기로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밀면 밀리는 대로 밀리고 그리고 떠나 밀면 떠 밀리고 하면서 그렇게 한 시대에 묻어 나는 그런 세파속에 젖어 들어가서 세상의 또 한 부류가 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 것이냐 아니면 그것을 끊임없이 거스르면서 주님이 내게 주신 그 은혜를 감사하면서 삶의 모든 방면에서 어떻게 하든지 복음이 우리의 삶의 원리가 되도록 몸부림치며 사는냐 하는 그것입니다. 세상을 거스리지 않고 사는 것은 아주 쉬운것이고 거스르며 사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엊그제 젊은 청년들하고 같이 모여서 밤 늦게까지 이야기를 했는데 그중에 한 형제의 간증이 우리 모두를 웃겼습니다. 자기가 대학 다닐때인데 항상 교회에 다니면서 조금씩 조금씩 성경을 읽고 하면서 불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어쩌면 이렇게 교회가 복음을 안 전할까? 정말 어떻게 이렇게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저것이 인간의 사상이지 복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친구가 열린교회에 한번 가봐 거기에는 복음이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왔는데 십자가 사경회때 였는데 말씀을 전하는데 무섭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복음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거부감이 드는 것입니다. 저것은 너무 적나라 하지 않아... 저것은 너무 복음속으로 들어 가다가 복음속 이단이 된 것이 아닐까? 이런 혼란이 들어 오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랬습니다. 그것 참기름 장사 이야기하고 똑같다. 제가 오늘 중요한 것 가르쳐 주겠습니다. 슈퍼에 가서 참기름을 한병 사가지고 왔는데 집에 와서 따 보니까 아주 고소하더라 그 다음에는 그 메이커 사면 안됩니다. 그것이 향료 입니다. 그래서 제가 확인했습니다. 가게에 가서 보니까 참기름 맛 기름 이런것이 있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참기름 맛 기름이 있습니다. 깨알 같은 글씨로 쓰여 있는데 참께 0% 입니다. 참께가 아니라 옥수수나 콩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했는가 하면 색깔 나오는것 집어 넣고 그 다음에 참기를 냄새 나는것 집어 넣고 해서 혼합해서 한 것입니다. 그래서 참기름이 아니라 참기름 향 기름입니다. 혹은 참기름 맛 기름입니다. 그런것을 가지고 어떻게 여기에 참기름 하나도 없는데 이것이 어떻게 참기름일수 있느냐 하면 그 주인이 뭐라고 하는줄 아십니까? 당신 붕어빵에 붕어 들은 것 보았냐?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기름 향 기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속에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음식점에 갔을때 비빔밥 같은것 해 주는데 참기름 냄새가 확 나지 않습니까? 100% 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것들이 결국은 하나로 집약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면 복음입니다. 하나님 중심주의의 원천은 복음을 경험하고 복음 안에서 깨뜨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 인간인가 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모든것들을 다 생략하고 오늘 우리가 관심이 있는 복음전도에 가져다 놓고 한번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라 그리고 이 복음을 전해라 그리고 그들을 세례 주고 그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라 이것을 동시에 하라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럼 이 제자들에게 주신 명령은 11명에게만 주신 명령이겠습니까? 만약에 11명에게만 주신 명령이라고 한다면 지금은 더이상 이 명령을 수행하는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받은 이 명령은 교회 전체에 주실 명령을 자기의 생애를 모두 지켜 본 12제자들에게 그것도 어느 순간에 예수님이 성령의 능력을 크게 부어 주셔서 병 고치고 귀신 쫒는 권세를 주신 다음에 예수님이 뭐라고 했습니까? 이스라엘의 잃은 양에게로 가라고 했지 모든 족속에게로 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 명령을 언제 주셨는가 하면 부활 승천하시면서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럴까요? 왜 그러면 부활 승천할 때가 되어서야 이 명령을 주실까요? 똑같이 그 전에도 마태복음 10장에서 모든 약한것을 고치며 병을 고치며 귀신을 내어 쫒고 죽은자까지 살릴수 있는 권세를 주셨는데도 그때에는 모든 족속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이스라엘의 잃은 양에게로 가라 그러셔 놓고 이세상 끝날까지 이세상에 있는 모든 족속들에게 복음을 전할 이 원대한 복음을 주신 시점이 예수님이 부활하고 이제 승천하시면서 남기신 고별사속에서 주시는 이유가 무엇때문입니까? 이것이 성령강림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나서 성령이 강림하지 않습니까? 그 성령의 강림이 바로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할 것이다 하는 예수님의 약속의 실현입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의 약속이 성령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든 사람들속에 또 다른 주님이신 성령이 우리안에 동일하게 내주하심으로서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라고 하시는 이 약속이 실현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가시고 성령이 오신 다음에 모든 믿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예수님은 항상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1차적으로 예수님께서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것이다 라고 하는 약속은 복음 전파의 명령과 함께 세례의 명령과 함께 그리고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는 이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1차적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참 놀라운 것이 무엇인가 하면 이 세가지 일, 세례를 여러분들이 줄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서 영혼을 세우고 무지하고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전할때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것을 안하면 조금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많이 받았으면 직접적으로 영혼을 위해서 헌신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는 아주 놀라운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아무리 가르쳐도 못 알아 듣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사랑으로 가르치고 눈물로 타이르고 또 마음이 변하면 가서 달래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하나 가르쳐 주면서 그 영혼을 위해서 빌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그 영혼을 변화 시키는 위대하고 놀라운 증거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전도할때 이런 일들이 놀랍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매순간 함께 하시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뭐가 부족한 것이 있습니까? 저는 여러분 모두 조금 부족한데서 살다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뭐가 부족한 것이 있습니까? 부족한 것이 없지 않습니까? 편안한 예배당 그리고 설교가 있고 그리고 설교하고 잊어 버릴까봐 아까 본 그 cd도 지지난주 하루 꼬박 세워서 만든 것입니다. 아침 9시까지 안 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해서 만듭니다. 손만 뻗치면 다 진열되어 있습니다. 한해가 끝나면 한해가 끝난 말씀을 깨끗이 정리해서 펼쳐 놓고 테잎을 들으면 공부가 되게끔 그렇게 해주는 것입니다. 뭐가 부족한 것이 있습니까? 그런데 그런 속에서 마치 가정에서 돈 걱정 안하고 먹는것 걱정 학용품 걱정 안하는 애들이 가정환경의 고마움을 모르듯이 도시 속에서 이렇게 신앙생활 하면서 모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 이것을 깨닫게 되는 때가 옵니다. 그때 여러분들이 시골에 가 보면 절실하게 느껴 집니다. 그 할머니 할아버지들 와서 모인 교회 적막과 같이 모여서 하나님 만나는 기쁨도 없이 드리는 그런 예배 그런속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또 그나마도 교회에 나오지 못하고 있는 시골에 있는 많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발견하게 될때 그때 얼마나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복된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정말 우리가 13년 가까이 우리가 이 사역을 해 오는데 시들시들하던 사람들이 가서 아웃리치 가서 시골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뜸 뜨고 봉사하고 청소 해 주고 말씀 전하고 하다 보면 목이 다 쉬어서 뜨거운 가슴을 안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자기가 여기서 편안하게 신앙생활 하는 것이 양심의 가책이 느껴질 정도로 정말 놀랍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그렇게 해서 은혜를 받고 하나님 앞에 변화를 받아 보십시요. 얼마나 놀라운 역사가 일어 납니까? 몇년 전에도 진도에 내려 갔을때 일인데 정말 성령의 강한 역사가 일어 나니까 동네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들을 때에 자신도 저항 할 수 없는 큰 영적인 힘에 의해서 굴복하는 것입니다. 무당이 예수 믿고 회개하지 않았습니까? 그 마을에서 무당하는 사람이... 그런 역사가 일어 납니다. 그러니까 가서 예배를 인도하는데 청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데 마치 커다란 충격을 받은 사람들처럼 은혜의 물에 한번 흠뻑 들어갔다 튀겨 나와서 인간적이고 육욕적인 힘이 없는 사람처럼 그렇게 온화한 얼굴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할때 함께 하시면서 우리에게 전해 주시는 놀라운 표징입니다.
그러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우리들이 복음을 믿으면서 이렇게 생명을 얻고 주님안에서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살아 간다는 것이 그렇지 못한 환경 속에서 보면 안다는 것입니다. 병원에서 말기에 죽어가는 사람들만 돌보는 그런 사역자가 있었는데 사역에 대한 간증을 하는 가운데 그런말을 했습니다. 학교에서 사고 치고 아이들 정학 당하고 말썽피고 하면 학교에서 사회 봉사 명령을 내리지 않습니까? 그렇게 해서 너 어디가서 봉사 하고 와라 하는데 그런 아이들이 온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와서는 오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라 재수 없어서 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온갖 냄새 환자들이 똥 오줌을 받아 내고 하는 것입니다. 첫날 와서는 쭈빗쭈빗 하고 똥 씹은 얼굴로 있다가 마음이 살금살금 열리면서 봉사 하게 되면서 아이들 표정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거기서 똥 받아 내고 오줌 받아 내고 그 다음에 어젯밤까지 돌보았는데 아침에 가니까 사람이 죽어 나가고 하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이 정신이 깨는 것입니다. 아! 내가 행복한 사람이구나. 그전까지는 불만이 많았다가 나는 너무 좋은 환경속에서 복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구나 생각하면서 아이들이 많이 바뀌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 보십시요. 여러분 최근에 구원의 은혜 때문에 감격한 사람이 있습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심령이 부패해 가는 것입니다. 이 구원에 대한 감격은 예수 믿으라고 사람들에게 전해서 그들에게 어떻게 복음이 안 들어가는지를 발견하게 될때 내가 예수 믿은것이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선물 감당할 수 없는 이것을 어떻게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큰 기쁨이 이 가슴속에 밀려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맨 처음 예수를 믿었을때 그 본래의 정신으로 돌아 가려고 힘써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이 일은 우리에게 회피할 수 없이 주시는 것입니다. 오래전에 내가 설교에서 한것 같은데 어느 책에 보니까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다에서 항해를 하다가 배가 쾅하고 밤중에 폭풍이 이는 밤에 좌초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작은 보트를 타고 오다가 그 마저도 부서져서 나무 조각을 타고 간신히 바닷가로 헤엄을 쳤는데 눈을 떠 보니까 태풍은 끝나고 그리고 자신은 바닷가에 쓰러져 있습니다.그래서 보니까 배는 난파 되어서 다 죽고 시체가 둥둥 떠 다니고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때 보니까 또 다른 사람이 한명 살았습니다. 그래서 모두 죽고 두 사람만 살았는데 너무 신기한 것입니다. 그래서 둘이 그런 생각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산 것은 정말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우리를 살려 준 것이니까 이제 사는 것은 우리것이 아니라 사실은 덤으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러니까 우리 여기서 사고가 많이 나니까 우리 여기서 모닥불이나 피우며 살면서 폭풍이 나면 우리 가서 사람들을 건져 오는 그런 일을 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연장시킨 하나님께 헌신을 하자 했습니다. 그래서 수시로 사고가 나니까 가서 사람들을 건져 온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또 그것이 감사해서 자기들도 다른데 안 가고 여기서 구조대원 노릇 하겠다고 이러면서 사람들이 점점 모였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니까 어느날 그러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이 너무 많다 그리고 이렇게 바닷가에서 언제까지나 텐트나 치고 살겠나 그러지 말고 좋은데서 편안히 자고 나면 아침에 힘도 불뚝 날테니까 그러면 밤에 헤엄도 잘 칠 수 있고 더 많은 사람을 건질 수 있을 테니까 우리 이제 집을 짓자 해서 튼튼하게 집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따뜻하게 불을 때고 이제는 아랫목에서 지지면서 잤습니다. 그리고 구조 활동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어느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인원이 많이 늘었는데 서로 친교를 안 하니까 구조할때 협력이 안 된다. 그래서 이제 커다란 호를 하나 만들고 우리 수시로 파티를 하기로 하자. 그리고 샹데리아까지 하나 걸어 놓고 그리고 수시로 파티를 하면서 친목을 다졌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제 사람들은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렇게 바람이 불고 폭풍이 몰아 치는 날 사람들을 구조하러 간다는 것은 너무 위험한 것이다. 그러면서 생각 했습니다. 우리 모두 이렇게 밤을 세울것이 아니라 돌아 가면서 당번제로 하자.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당번이 아닌 날은 밖에서 살려 달라는 고함 소리가 들여 와도 계속 고스톱이나 치면서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현대 교회에 전도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전도를 하라고 했더니 헌금 모아서 전도하는 사람 몇사람 모아서 대리 시키는데 이것이 무슨 파출부가 하는 일 입니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이 일을 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오늘 여기 모인 사람뿐만이 아니라 이것은 우리가 세상 끝날까지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일년에 한번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골교회에 진 빚을 여러분중 시골에서 안 올라온 사람 있으면 한번 손 들어 보십시요. 아마 몇사람 없을 것입니다. 다 시골서 올라 왔을 것입니다. 시골에서 올라 왔으니까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서 복음을 전해야 될 것 아닙니까? 거기에서 예수를 믿고 올라온 사람들은 더 빚진 것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이 시골에서 올라 왔기 때문에 교회들이 다 비어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 안 전해 집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가서 온 힘을 다해서 그 시골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젊은이 없다고 한탄할 것 없습니다. 없는 젊은이를 우리가 창조해 낼 것입니까? 어떻게 하겠습니까?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잘 전해서 그 사람들 한사람 한사람 예수 믿고 구원 받게 하는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러한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3년도 아니고 30년도 아니고 3일 입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이틀입니다. 이틀 동안에 그 영혼들을 끌어 안고 간절히 복음을 전할 때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변화될때 여러분들의 영혼도 함꼐 변화 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꼭 많이 헌신해서 여러분들의 구원의 기쁨이 새로워지는 은혜의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