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급한 명령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롬 1:18).
우리가 주님을 믿고 신앙생활 해 온 과거를 돌아보면 주님을 많이 사랑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점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많이 사랑했을 때에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특별한 그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영혼에 대한 사랑을 가져온 것입니다. 영혼에 대한 이 사랑 때문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식고 사라져 버리면 우리가 영혼을 향해서 가지고 있던 따뜻한 헌신의 마음, 주님을 믿는 그 신실한 믿음의 마음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경험입니다.
I. 본문 해설
오늘 사도는 우리에게 복음이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과 이 복음을 자신이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속히 전해야 하고 또 이 복음을 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위대하고 놀라운 능력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는 우리가 이 복음을 언제든지 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속히 이 복음을 전해야 한다라고 하는 절박한 마음을 표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오늘 성경 본문이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진노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위에 임하여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진노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자신을 미워하는 진노라기보다는 우리로 하여금 올바른 사람이 되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양육하면서 그 자녀들을 무조건 사랑만 표현하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이의 교육을 망칠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를 사랑으로 대할 뿐 아니라 아이가 잘못했을 때는 엄히 꾸짖어서 아이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하고 올바른 길을 가게 하는 것이 부모의 교육적 사명입니다.
II. 믿는 자를 향한 진노
하나님을 믿고 자녀가 된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당신의 친 자식입니다. 더욱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 접붙여진 교회의 한 지체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또한 당신의 교회에 붙은 지체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죄를 지으면 하나님을 끊임없이 거슬리면 하나님이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십니다. 이 진노는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시기 위한 그런 종류의 진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죽은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없지만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에는 자기가 죄를 짓고 잘못한 것만큼 하나님 앞에 책망을 받고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자녀가 된 사람들이 주님께 거슬리고 불순종하면서 살면 계속해서 이 땅을 사는 동안에 곤고한 일을 만납니다. 마음에는 평안과 기쁨이 사라지고 삶의 환경은 끊임없는 시련과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동시에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이 설교를 들으면서 인생의 곤고함과 위기 시련 가운데 있는 분들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무흠하지만 하나님이 특별한 뜻이 계셔서 여러분들에게 그런 고난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고난을 당하는 본인들은 자기를 깊이 반성하고 하나님 앞에 바르지 않은 것이 내게 무엇이 있는가를 생각하고 지금 내가 이 땅에 살아있는 이 모습이 주님의 마음에 혹시 슬프거나 고통을 드리고 있지 않은지 깊이 반성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로 돌이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자라 할지라도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끊임없이 곤고하고 괴로운 일이 마음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대항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죄를 지으면서도 편안하고 형통한 길을 가는 사람이 있었다면 한번 여러분 말해 보십시오. 그가 정말 하나님이 택하신 자녀이면 그의 삶과 모든 행동 심지어는 마음의 옳고 그름까지 하나님께서 판단하셔서 적절히 그들을 징계하시므로 참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당신이 택하시고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향해서도 불순종하고 거역할 때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므로 당신의 진노를 보이신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으려고 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있어서 하나님을 대적하며 사는 것이 자신의 인생의 업인 것처럼 생각하는 불신자들은 얼마나 더 하나님의 진노아래 놓여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2. 믿지 않는 자를 향한 진노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한 사람이 주님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즉각적으로 그를 죽이시거나 견디기 힘든 고통 가운데 한 번에 내 던지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움에 떨면서 당신 앞에 나오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하나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주님 앞에 나오는 인격적인 신앙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까지 일체의 오래 참으심과 사랑으로 그들을 기다리십니다. 그런 기다리심과 사랑에 힘입어서 우리도 예수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서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도 한때는 마음에 뜻을 세우고 주님을 안 믿던 사람들이었으며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사람들이었고 모든 세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면서 복음을 듣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예전에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안 믿는 불신자들에게는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가 있을까요? 두 가지로 설명 할 수 있는데 하나는 마음과 영혼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그의 육체와 환경에 대한 것입니다.
우선 마음과 영혼이 어떤 상태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믿지 않고 복음을 끊임없이 거슬리고 있는 그 사람의 영혼은 어둠 가운데 있어서 자기를 이 세상에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만약에 자식을 낳았고 자식이 성장해서 인제는 사물들을 판단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부모인 여러분들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여러분들의 슬픔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마치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창조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장성한 아이가 되었는데도 그 부모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영혼은 어두워져서 그런 상태에 있습니다. 생각은 허탄한 것에 굴복하고 정서는 허무한 일을 사랑하도록 그의 마음은 부패해져 있습니다. 그의 마음과 영혼의 상태는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혼란과 어지러움 가운데 있고 그의 마음은 매우 곤고해진 가운데 있습니다. 잠시 이 세상의 향락과 즐거움 이 세상에 있는 것들로 말미암는 즐거움들로 인해서 자신의 영혼과 마음의 곤고함을 가려 보려고 하지만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마치 그의 인생의 마취제와 같습니다. 깨고 나면 더 큰 통증을 느끼게 되는 것이 마취제인 것처럼 육체와 향락 이 세상에 있는 것들로 마음과 영혼의 곤고함을 가려보려고 하는 불신자들의 시도는 더 끝없는 고통과 번민들을 가져옵니다. 이것이 바로 영혼의 상태입니다. 이런 영혼의 상태, 마음의 상태는 끊임없는 혼란 속으로 그 사람을 몰아넣어서 그의 마음으로 하여금 평안을 유지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오늘날 우리의 눈앞에 비치는 그 많은 이 세상의 사물들에 대한 인상들 이런 것들은 끊임없이 우리 영혼에 어떤 인상을 새기고 그래서 이 세상에 잠시 있다 사라질 것과 영원히 있는 것들 사이의 구별이 희미해지고 이로 말미암아 인간의 마음은 우리 주위에 펼쳐지는 모든 사물들의 질서를 따라 춤을 추며 마음의 평안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는 이 많은 감각의 쾌락과 육체의 향락을 향한 몸부림들은 바로 영혼과 마음에 있는 이 곤고 함들을 극복하지 못하는 인간의 혼란스런 영적인 상태와 마음의 어두움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현자들은 공통적으로 말했습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많은 부와 이 땅에 있는 많은 권력과 이 땅에 있는 모든 아름다움을 소유한다고 할지라도 그것들은 시간 속에서 사라지는 것들이 때문에 그것들로서 만은 결코 인간이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일치를 보였습니다.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 그 사람의 영혼과 마음 외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있다고 말입니다. 마셔도 마셔도 갈함이 그치지 않고 먹어도 먹어도 배고픔이 그치지 않는 그런 영혼의 상태가 바로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의 영혼의 상태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거절하며 불순종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도 자기를 도울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전에 하나님을 모르고 복음을 알지 아니하였을 때 살아가던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보십시오. 인생의 위기가 오면 그냥 좌절할 수밖에 없었고 고난이 오면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는 두려워 떨고 절망 앞에서는 우리 스스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혼란스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만약에 우리의 힘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끝까지 믿었더라면 아마 우리는 주님께 돌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 맨 처음부터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영혼은 하나님 자신이 생기를 불어 넣으시므로 산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을 의존하여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로 하나님이 이 세상에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우리를 표현하기를 양이라고 하셨으니 이는 길러주는 주인이 없으면 이 세상에 살 수 없는 아주 지극히 연약하고 인간 의존적인 존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양이 인간을 의존하는 존재이듯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도록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많은 이 세상의 불신자들은 좋으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혼란과 어려움이 밀려오게 됩니다. 돈이 없을 때는 물질의 문제만 해결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돈 많은 사람들도 불행합니다. 건강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는 건강하기만 하면 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 중에도 인생의 무게를 견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명예를 잃어버리고 부끄러움을 당할 때에는 자신의 명예만 회복할 수 있다면 자신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존귀하게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많은 사람들 중에도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견딜 수가 없어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어려움과 견딜 수 없는 많은 고통 속에서 두려워 떨며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바로 인간이 얼마나 자신의 힘으로는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인간적이었을 때는 주 없이 씩씩하게 살 때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내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알고 주님 없이 살 수 없음을 고백하며 거룩한 창조주 앞에 무릎을 꿇을 때 녹아내리는 그 마음속에서 주님으로 온전히 의지하고 따르겠다는 결심으로 참회의 눈물을 흘릴 때 그때가 가장 인간적이었을 때이고 그때 우리는 가장 두려움이 없던 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렇게 의지하는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의 모든 무게를 홀로 짊어지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이 세상에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인간이 누구인지를 아시고 우리를 그렇게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인간의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아십니다. 하나님만이 인간에게 정말 가야하는 그 길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십니다. 인간의 참된 본분과 존재의 가치는 자기를 창조하신 분을 아는 것입니다. 그분을 공평하게 알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르면서 매순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걸어가는 그러한 삶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고 바로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창조하시고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알지 못하는 이 세상에 있는 많은 불신자들은 이런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을 거슬릴 수밖에 없고 불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정하신 이 세상의 질서를 거슬리며 살기 때문에 그들은 바위에 부딪히는 어리석은 짐승같이 끊임없이 부딪히며 피 흘리지만 자신의 고통이 어디에서부터 오는 고통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그들이 당하는 고통도 끝없이 아픈 것이지만 죽음 이후에 당하게 될 그들의 영혼에 대한 심판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심판과 하나님의 진노는 시간 속에서 사라지는 것이지만 죽음 이후에 당하게 될 그들의 영원한 심판은 시간을 초월해서 끊임없이 당하는 영원한 고통이기 때문에 과연 그러한 것입니다. 천국이 점증하는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기쁨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라면 지옥은 끊임없이 다가오는 하나님의 그 두려운 성품에 대한 인식 때문에 끊임없는 고통과 하나님의 진노아래 자신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의 영혼은 다함이 없는 끊임없는 고통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피하여야 할 지옥의 궁극적인 형벌인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 복음의 진수가 되는 지옥의 형벌에 대해서 천국의 기쁨만큼이나 빼어놓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라고 말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진노, 심판, 두려운 하나님의 형벌 이 모든 것들은 바로 우리에게 심각한 하나님의 진노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궁극적인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애써 외면하고 그러한 사실에 직면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 만약에 끝까지 불신앙으로 주님을 거절하고 죽는다면 그들의 최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우리들은 직면하기를 싫어하고 외면하지만 우리의 사랑하는 아내가, 나의 사랑하는 남편이, 내 사랑하는 자식이, 우리가 사랑하는 부모가 지옥의 형벌 속에 떨어진다고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이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은 것만큼이나 엄연한 사실이 바로 끝까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지옥의 형벌을 준비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이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III. 복음 전파의 화급성
오늘 사도 바울이 복음의 전파에 대해 다급한 마음을 가지고 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다급한 영적인 상황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만약에 깨어있다면 우리를 구원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우리들이 알고 있다면 바로 이렇게 우리의 영혼을 기다리고 있는 궁극적인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될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지금보다는 훨씬 행복해 질 것이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지금도 행복하지만 예수 믿으면 더 행복할 텐데... 그래서 저 사람에겐 복음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요, 그 위에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 있기 때문에 우리들이 이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있다고 하는 의미는 이 세상에 공간 속에 나타나서 시간 속에 사라질 많은 물질과 인간들을 한정된 공간과 시간 안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영원의 문맥에서 인생을 보면서 그 모든 것들을 판단하는 지혜를 갖는 것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 주님을 끝까지 믿지 않을 때 어떻게 될 것인지를 그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지금 느끼는 것이 사랑이고 깨어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지 않는 것은 그들의 강퍅함이 크기 때문에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하나님의 자녀들이 마음이 하나님 앞에 녹지 않고 그들의 마음이 굳어져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이 복음을 정말 뜨거운 사랑으로 말할 수 없는 간절함과 사무치는 열망으로 이 복음을 전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복음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있는 인간들을 사랑하십니다. 자기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시기까지 사랑하시지만 그들을 구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 복음을 전하게 하시므로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교회가 침묵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입을 다물면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를 알고자 해도 그들에게 예수를 알게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사랑하는 교회에 이 복음을 주시고 이 복음의 비밀을 알 수 있는 지식을 주시고 또 이 예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을 주셔서 그들의 마음에 은혜를 물 붓듯 부어주시므로 영혼을 향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이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충성스런 사람들이 살던 시대에는 더 많은 사람이 복음을 들었습니다. 내 가족이 예수를 믿어도 형식적으로 믿으면 내 가족은 모두 지옥으로 달음질 쳐 갔습니다. 내 가족이 비록 가난하고 병들고 연약했어도 예수의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뜨거운 감격이 있을 때 그들의 눈에서는 가족을 향한 눈물이 흘렀고 믿지 않는 이웃을 향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언제나 그들을 대신해서 통회하고 자복했습니다. 그래서 그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진지한 눈빛을 보며 예수의 복음을 들을 수 있었고 이 복음을 전하며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게 만들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은 그들이 느끼지 않으면 결코 그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가슴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주는 사랑의 사람, 그 뜨거운 은혜의 복음에 불붙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잠들어 있는 교회에는 주님의 사랑이 없었습니다.
깨어있는 교회에는 자기 같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내려오신 예수님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 사랑은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이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고 승천하시면서 자기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복음을 만천하에 전하라고 당부하신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성령이 강림하신 후에 은혜를 받은 사도들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그렇게 피 흘리고 분투하며 온 마음과 뜻을 다해 애쓰면서 일평생동안을 주님을 위해서 고난을 받으며 수고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온 마음을 다하고 그것을 위해서 온 힘을 다해서 그들이 땅 끝까지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죽는 데까지 나아가서 이 복음을 외쳤던 것입니다.
터키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순교의 소식을 여러분들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일어난 일들은 여러분들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선교사들이 무참하게 난도질을 당해 머리가 잘리고 형제 보는 앞에 배를 갈라 창자를 꺼내어서 가위로 잘랐다고 합니다. 이런 소식을 들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제는 숨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있고 나서 수 백 명의 사람이 터키 광장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도 함께 죽여라고 외쳤습니다.
이 세상에는 주님을 알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그 복음을 들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영혼을 너무나 불쌍히 여기기 때문에 그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뜨거운 열망을 가지고 있어도 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들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고 전파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가족들이 나의 가까이 만나는 이웃들이 복음을 알지 못하고 허무한 인생을 살다가 지옥의 형벌 속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지옥의 불길은 타오릅니다. 우리의 눈에 그 처음 사랑의 때처럼 영혼을 위한 눈물이 흐른다면 그들을 위해서 목 놓아 기도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복음이 전해 질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보다도 더 뜨겁게 사랑하고 주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침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강림하신 후에 사도들의 이 피맺힌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집과 논밭을 다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다 두었습니다. 이것은 은혜가 감사해서 헌금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자신에게는 이렇게 이 세상에 얽매어 살 수 없는 중차대한 사명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살던 집과 땅까지 팔아서 사도들 앞에 가져다 두고 무소유의 삶을 살며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일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다시 돈 버는 일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하나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따라서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온 천하에 다니며 이 복음을 전하고 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쳐 영혼들을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하는 그 일, 그것이 바로 사도들이, 그리고 사도들의 은혜를 받은 사랑하는 지체들이 했던 일이었습니다. 사도들 뿐 만 아니라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유무명의 사람들이 피 흘리며 죽어갔고 거기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꽃이 피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하신 일이 3가지가 있었으니 전파하시고 고치시고 가르치신 일이었습니다. 병든 자들을 그 헌데를 예수님이 친히 어루만져 치료해 주시고 주린 자들은 주님이 친히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셔서 기적의 떡과 이적의 물고기를 먹이셨습니다. 기적의 떡과 이적의 물고기를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무지한 그들을 깨우치시기 위해서 알아듣기 쉽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한 가지 일을 위한 것이었으니 그것은 바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멀리 떠나 목자 잃은 양같이 유리하고 고생하게 된 불쌍한 많은 영혼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그 영혼들을 끌어안고 섬기신 생애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종처럼 사셨습니다. 마치 우리를 위해 섬기기 위해서 오신 노예처럼 일생을 사셨으니 예수 친히 말씀하시기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오히려 섬기려 하고 자기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대속물로 주시기 위함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처음 믿었을 때 우리의 마음에 사무쳤던 예수의 사랑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때 우리 마음에 있던 한 가지 소원은 나 같은 죄인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의 사랑, 나의 많은 죄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큰 고난, 이 십자가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에는 예전에 들을 수 없는 영혼들의 신음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온 힘을 다해 예수의 이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신 것처럼 우리들이 고난을 당하며 살아도 이 복음을 전파하여야 하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우리 속에 품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우리들에게는 이러한 뜨거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기쁘게 복음을 전했고 복음이 전해질 때마다 핍박을 당할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으로 인해 즐거워했고 사람들에게 거절을 당할 때도 우리들은 기뻐했습니다. 영혼들이 돌아오면 돌아온 영혼 때문에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복음을 거절하면 그 영혼들의 안타까움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전도했습니다. 그들이 강퍅해서가 아니라 예수 때문에 녹아지는 사랑의 사람들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을 믿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복음을 전파할 사명을 주셨습니다. 믿지 않는 내 부모를 위해 흘리는 눈물이 우리에게 있다면 시간은 언제일지 모르나 반드시 주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형제를 위해서 흘리는 눈물이 있다면 반드시 그들을 주님 앞에 돌아오게 해 달라는 형제의 눈물의 기도를 주님이 거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믿지 않는 여러분들의 이웃과 가족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끼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아마 여러분들이 이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지난 한 주간 북한에 있었습니다. 농장 한 가운데 십자가가 잘린 채 서 있는 폐허된 교회의 건물을 보았습니다. 믿으려고 해도 전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계에서 가장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왜 이렇게 무제한의 자유를 주셨을까요? 통일이 되기 전에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우리에게 이런 무제한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 일은 북녘의 동포들이 우리를 위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외국의 선교사들이 우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 있는 내 동포, 내 가족들에게 쉼 없이 복음을 전하고 이들로 예수를 알게 하여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며칠 더 눈물을 흘리고 고난의 길을 갑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복음의 강물에 떠밀려 주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릴 수 있게 될 때까지 더 많이 수고하고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전도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