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하게 하는 산 떡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요 6: 49~51)
이스라엘 사람들이 역사 속에서 두고두고 하나님이 자기들을 매우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회상하는데 동원했던 몇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로 먹이신 그 사건이었어요.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나아가서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모든 먹을 것들이 떨어졌을 때에 그 아침이면 하얗게 내린 그 만나를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까. 우선 그것이 맛있고 맛없고는 둘째 문제이고 우선 그런 식으로 식량의 문제를 해결 받은 민족이 예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라는 그 사실을 보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독점적으로 자기들만을 사랑하시는가,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입니다. 처음 조상들은 그 떡을 먹으면서 곧 싫증을 내고 오히려 하나님 앞에 불만 불평을 토했지만, 후대의 사람들은 두고두고 하나님께서 자기 조상들을 그런 식으로 식량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놀라운 그 은혜를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송축하고 노래했단 말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었던 그런 마음을 반영이나 하듯이 예수님께서 떡 이야기를 꺼내시는 거예요. 이 떡이 사실은 엄밀히 말하면 빵이죠. 그 사람들은 떡을 먹은 것이 아니라 빵을 먹었으니까요. 성경이 번역되던 시기만 해도 빵이 흔한 게 아니니까 떡이라고 번역을 했는데 등가번역을 하자면 이것은 주식이에요. 주식. 우리는 떡 없어도 충분히 살 수 있고 빵 안 먹어도 목숨을 이어가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밥 없으면 못 살잖아요. 마찬가지에요. 그 이스라엘 사람들이 구약시대 때에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시던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그 사건을 상기시키시는 거예요. ‘그 떡은 기적의 떡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런 식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먹이고 배불리신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이것은 어마어마한 기적이고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그런데 그런 놀라운 은혜, 놀라운 기적, 놀라운 축복을 맛보면서 그 놀라운 이적의 떡을 먹었던 너희 조상들도 광야에서 다 죽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게 너희 조상들이 먹고 배불렀던 그 떡은 사실은 이후에 너희의 영혼과 육체를 동시에 영원히 살게 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죽음을 보지 아니할 것이요. 또 나를 믿고 죽은 자들은 다시 살리라.> 고 한 그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게 하는 궁극적인 떡을 바라보고 너희에게 주신 것인데 그 궁극적인 떡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시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신 거예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신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였더라면 예수님이 오셔서 자기들 가운데 함께 한 이 사실이 하늘로부터 만나가 비같이 내려서 가득 쌓이게 된 그 광경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찬양과 감사를 드려야 했다 이거에요. 왜냐하면 그들은 그 떡을 먹고 죽었으나 이 예수그리스도를 먹는 사람들은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이었어요.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만나를 내려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먹게 하시면서 모세를 통해서 그 사건을 해석해 주시기를 ‘이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리셨다 이거죠. 그럼 그 만나를 내리신 것과 말씀이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 수 없다, 라고 하는 것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느냐. 쉽게 얘기하면 우리는 말이죠. 육신적인 것에 대해서는 매우 예민하지만, 영적인 것에 대해서는 매우 둔감한 사람들이라는 말이죠. 육신은 한 끼만 굶으면 금방 표가 나고, 그리고 음식을 먹고 싶어지고 그렇죠. 무엇 때문이냐 하면 자기의 몸의 약함을 보기 때문이죠.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오래도록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과 변화의 은혜 없이도 넉넉히 살아간단 말이죠. 그리고 그런 하나님의 은혜 없이 넉넉히 살아가고 그리고 그 속에서 병들어 가고 죽어가는 자신의 영혼의 굶주림과 배고픔에 대해서는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습이라 이런 이야기입니다. 바로 그것을 생각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일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셔서 그들을 먹이심으로서 우리가 사는 것이 우리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다, 라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어 주시는 것과 동시에 우리의 육신이 양식을 먹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것 같으면, 우리의 영혼도 또한 이렇게 우리의 육신이 양식을 통해서 배부른 것처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그 무엇을 먹고 우리의 속사람도 생명을 유지하고 건강을 얻으리라 하는 사실을 생각나게 하기 위함이었는데 그 영혼의 양식이 하나님의 말씀이었단 말이죠.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 말씀을 위해서,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이 세상에 오신 거예요. 왜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이시냐, 그것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말씀하신 그 말씀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시던 말씀이었고, 예수님이 삶으로서 보여주신 그 행동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싶어 하셨던 말씀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말씀하시나 행동하시나 무엇을 하시든지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드러내시고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이었단 말이죠.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해하기를 바라셨던 것이죠. 그러나 불행이도 6장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벳세다 광야에서 베풀어주신 이적의 떡을 먹고 배불렀기 때문에 그 예수님의 기적에 대해서 감탄하고 그리고 그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추종하는 장면들을 살펴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따르고 추종하는 모든 사람들을 기뻐하신 것이 아니라, 어떤 동기에서 당신을 따르는지, 그리고 그들이 자기를 따라와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 참된 믿음인지 이것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가지셨단 말이죠.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만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을 하는 것만이 교회에 나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어떤 동기에 의해서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는가. 마지막에 예수 그리스도를 끊임없이 따라가서 마지막에 그 예수님께로부터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들을 알지 못하고 따라가는 그러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다시 한번 명확하게 당신이 누구이신지를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바로 당신이 하늘로부터 내려 온 산 떡이시라는 것, 이것은 두 가지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데 하나는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과 두 번째는 그 분이 살아있는 떡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떡을 먹지 않고는 당시에 생명을 부지할 수 없듯이, 그 예수 그리스도를 먹지 아니하고는 누구도 생명을 부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계신 겁니다. 그러면 먹는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말 어느 카톨릭 신자들이 이야기 하는 것처럼 성찬을 통해서 예수님의 살과 피를 진짜 먹고 마시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이거죠. 중요한 것은 먹는 행동이 아니라 먹은 후의 결과에요. 우리들이 우리 앞에 음식이 있을 때에는 음식과 우리는 완전히 다르죠. 우리는 우리고 음식은 음식이에요. 그것을 먹어요. 씹고 그리고 삼켜서 소화돼요. 그리고나서 찌꺼기가 밖으로 나가고 나면, 음식은 이제 우리의 몸속에서 음식과 우리의 몸이 나뉘어 질 수 없게끔 우리가 하나가 되어버려요. 피가 되고 살이 되어서 우리의 몸이 일부분이 되어서 이제는 하나가 되는 거예요. 분명히 살이 찌고 피가 흐르고 건강을 유지하게 된 것이 떡 때문인데 이제는 먹기 전에는 그 떡이 나와는 별개였지만, 먹은 후에는 이 떡과 내 몸이 분리가 되지 않는다 이거죠. 어디에 있는지 떡을 따로 찾아내고, 우리를 따로 찾아내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에요. 어제 먹은 음식이 분명히 우리의 살을 찌게 했고, 그리고 어제 먹은 음료가 분명히 우리의 몸의 피가 되었을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우리 이 살과 몸에서 어제의 음식을 분리해 낼 수 있느냐 말이죠. 그러니까 이것은 먹는 게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있다기 보다는 정확하게 말하면 먹은 후의 결과를 가지고 음식과 우리와의 관계를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로 대비해 놓은 것이에요. 믿기 전에는 예수님은 예수님이었고, 나는 나였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면, 그 분이 오셔서 우리 안에 사시죠. 내가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이 내 안에 계셔서 더 이상 어디까지가 주님이고, 어디까지가 나인지 주님과 우리를 이제는 분리해 낸다, 라고 하는 것이 불가능한 생명적인 관계를 갖게 되는 것이에요. 불가능해요. 아이가 엄마의 몸에서 잉태되어서 자랄 때 아이와 엄마를 분리해 낼 수가 있겠어요? 분리할 수도 없거니와 혹시 분리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에요.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가 바로 그러한 관계다, 이거죠. 이것을 위해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은 믿음에 의해서 가능해 지지만, 믿기만 하면 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가 예수 안에 있는 그러한 연합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자기의 생명을 우리를 위해서 내어 주셔야 했던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성경이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나 나의 줄 떡은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다.’ 이것은 명백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가르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기를 지시고 고난을 당하신 것은 결국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와 하나 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고 죽으신 거예요.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서 그 일이 이루어졌어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살고 어떻게 연약하든지 간에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가 주님 안에 있어요. 그리고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와 생명적인 연합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결별할 수 없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헤어질 수 없고, 또 설령 헤어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지 현실 속에서는 불가능하다 이런 이야기죠.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기적만 바라고 그 이 세상을 구원하고 그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을 바르게 믿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말씀을 하실 때 과연 예수님의 마음속에서는 단지 우리의 이 영혼 속에 오셔서 이제 취소될 수 없는 생명적인 관계를 가지신 것만으로 만족하는 그러한 관계가 되기를 원하셨는가? 그것은 분명히 아니라고 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가시고 또 우리가 예수 안에 있어서 주님이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와 생명적인 연합을 이루신 이것이 단지 우리의 영혼 속에서의 작용과 결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 때에 떡을 먹고 그 떡으로 배부르고 그 떡이 우리의 살과 피가 되는 것처럼 우리와 주님이 그러한 관계가 되고 끊임없이 떡을 먹고 끊임없이 그렇게 자기의 몸과 떡이 하나가 되어서 거기로부터 영양을 공급받고 생명을 유지해 가는 것처럼 예수님과 하나 되는 그런 삶도 1회로 끝나는 삶이 아니라 우리가 떡을 매일매일 매 끼니마다 먹듯이 그렇게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생명이 공급되어서 생명적인 관계가 확인되고 강화되는 그러한 연관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살기를 원하셨던 것이에요. 우리들이 왜 예수님께서 하필이면 이 떡, 우리로 말하면 ‘밥’에다가 비유하셨을까?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예방주사가 같은 것은 한 번 맞으면 평생 면역이 되는 예방주사도 있지만 밥은 면역이 되는 것이 아니에요. 그냥 끊임없이 끼니때마다 늘 먹어서 그것이 우리 몸에 소화되어서 매 순간 매 순간 그 음식을 통해서 우리들이 새 힘을 공급받는 것처럼 예수님이 우리 안에 오시는 모습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이 모습도 이러해야 했다, 라는 사실을 보여주시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 안에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셔서 우리와 하나 되셨지만, 예수님께서는 단지 우리의 영혼 안에서 우리와 하나 되신 것으로 만족치 아니하시고 진심으로 우리가 삶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기를 절실하고 절박하게 원하신 거예요. 그래서 이 시간에도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생명적인 연합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그리워하시는 거예요.
오늘 예수님께 기적을 보고 이적으로 만든 떡을 먹었지만, 이러한 예수님의 기대와는 상관없이 단지 배부르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열렬하게 따르는 이 사람들의 모습을 보시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잠시 후에는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셔야 하는데 자기의 마음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이 무지한 백성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주님의 참된 소원은 우리들이 주님과 함께 한 생명을 누리며 주님이 우리 안에 있고, 우리가 주님 안에 있어서, 우리가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 우리가 바라는 그 삶이 주님이 바로 이 세상에 계셨으면 살고 싶어 하셨을 그 삶이 되는 그러한 하나 되는 관계를 예수님께서는 너무나 원하셨던 것이에요. 그리고 오늘 이 시간에도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 자신을 통해서 받는 그 은혜가 한 번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요. 주님이 나를 위해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신 그 구원의 놀라운 감격이 한 번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요.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그 분이 우리 안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또한 그 분이 우리 안에 오시지 아니하시면 우리들이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지만, 그러나 매일매일 매 순간마다 주님이 우리를 새롭게 사랑하시는 증거들을 성실하게 인쳐 주시지 아니하시면, 우리들이 충분히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아요. 그래서 끊임없이 주님이 우리와 하나 되게 하신 것을 굳게 지켜갈 뿐 아니라 끊임없이 우리 안에 주님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주님이 오시도록 우리는 구하고, 그래서 주님과의 끊임이 없는 하나 된 경험 속에서 우리의 생명이 철저하게 그 분에게 의탁되어 있다는 사실을 날마다 날마다 체험하면서 그 분과 합일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정말 이 떡을 먹는 사람들처럼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롭게 새롭게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 속에 있는 잠자는 은혜들을 일깨우시고 그리고 죽어 있는 것과 같은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일깨우셔서 주님이 고치시고 치료하시는 이런 놀라운 변화와 은혜를 간절히 갈망하는 그러한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버리신 그 끔찍한 고난은 결국은 마지막엔 그 고난을 통해서 얻고 싶어 하셨던 것은 이렇게 주님이 죽지 아니하시고 우리가 주님을 믿지 아니하였더라면 주님의 생명과 아무 관계가 없었을,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죽어 있던 저희들을 새롭게 살리시고, 그래서 하나로 만드시고 한 연관 속에서 살아가게 하시려고 주님이 오늘도 우리를 부르셔서 당신 곁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주님을 의지하면서 살게 하시려고 주님이 오늘도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 생명 안에서 이 생명을 누리고 사시는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