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Calvin 과 Petrus van Mastricht의
중생교리 비교 연구
개혁주의 신학에서 이 중생 교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어느 교리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이 중생 교리가 중요한 이유는 ...
그 강의안 아무리 보셔도 소용없습니다. 전혀 그거하고 비슷하게도 안합니다. 집에 가서 보세요. 소용없습니다. 포기 하십시오. 그거 붙들고 하면 5 시간해야 합니다. 집에 가셔서 읽어 보세요. 저도 안보고 할 테니까 우리 서로 안 보고 합니다.
왜 중생교리가 그렇게 중요하냐 하면 이 중생교리가 중생교리 안에 그 신학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신론부터 시작을 해서 그 다음에 예정에 관한 교리, 그리고는 철학적인 담론으로 넘어가서 인간의 의지문제, 이런 것들이 전부다 다 만나는 핵심이 중생교리에서 이 모든 논의들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리고 또 반대로 보면 이 중생교리를 누가 믿고 있을 때 그것을 잘 풀면 이것이 다른 것 얘기할 때 정체가 애매해도 중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착 풀면 이게 어떤 사람인지가 결국은 거기에서 추적해 들어가면서 알 수 있게 되는 거죠.
예를 하나 들어보십시다. 야콥스 알미니우스(Arminius, Jacobus)란 사람이 이제 이런 이야기를 하죠. 뭐냐 하면 유효적 소명, 유효적 소명은 반드시 구원을 가져오는 내적 소명이거든요. ‘유효적 소명은 그 부르심에 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부여 된다’. 자 이렇게 얘기하면 표현은 칼빈주의는 ‘유효적 소명은 부름 받은 사람에게만 온다’ 딱 두 글자밖에 안 틀려요. 그런데 이 뒤에는 하나님의 작정과 인간의 자유 의지의 능력이라는 어마어마한 철학적인 담론을 끌고 들어오는 거죠. 그러니까 벌써 인간관하고 관련 되죠.
칼빈의 논적중의 한 사람이었던 오시안더(Osiander)가 있어요. 오시안더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칭의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본질이 인간 안에 주입되는 거다’ 라고 할 때에는 조금 다른 것 같지만 결국 그것은 피조물과 창조주 관계에 있어서 초월성과 내재성이라고 하는 초대 교회에서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어마어마한 담론을 끌고 들어오는 거예요. 이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이죠.
개혁파 정통신학에 있어서 이 중생의 교리라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해서, 그래서 벤자민 워필드(Benjamin B. Warfield)같은 신학자는 말하기를 이걸 힌지라고 이야기했어요. 문이 큰 문짝이 있으면 이 문짝이 움직일 수 있도록 양쪽에서 잡아줘야지만 이게 돌아가잖아요. 그 힌지가 바로 중생론이라고 본 거죠. 왜냐하면 그 중생론 안에서 하나님 은혜의 유일성, 아까 말씀하신 솔라 그라티아(sola gratia)의 문제, 그 다음에 솔리 데오 글로리어(sola Deo gloria)의 문제, 솔라 스크랍투라(sola scriptua)의 문제, 솔라 크리스토(sola christo)의 문제, 솔라 피데(sola fide)의 문제 파이브 솔라가 이 힌지에서 다 만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중생 교리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에요.
2. 개혁파 정통주의와 중생교리 발전사
그러면 이제 서론을 그 정도로 열고, 그러면 개혁파 정통주의 안에서 중생교리의 발전사라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 임 교수님도 잠깐 말씀을 드렸지만, 이 개혁파 정통주의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맨 처음에 종교개혁이 일어납니다, 그죠? 종교개혁은 거저 일어난 게 아니라 종교개혁 이전에 Pre reformer들이 있었어요. 얀 후스(Jan Hus, 1372~1415) 나 기롤라모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1452~1498), 그 다음에 윌리암 틴데일(William Tyndale, 1495~1536) 이런 사람들의 선구적인 노력이 있고, 그리고 그 후에 그것들이 집약이 되면서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그 프리 리포머들이 바로 위클리프 그 다음에 얀 후스, 이 얀 후스는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어요. 그리고 화형 당했죠. 그리고 프라하 대학 총장이었어요.
그리고 그 다음에 이제 기롤라모 사보나롤라 제가 책도 한번 썼습니다만 그 사람이 아주 실질적으로 그에게 정신적인 지주가 된 사람들이에요. 이런 사람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나게 될 때, 그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나게 될 때, 그 핵심적인 신학 논쟁 중의 하나가 뭐였죠? 면죄부 문제였잖아요. 여러분 너무 잘 알잖아요. 면죄부 할 때에 그게 비텐베르그 성당에 95개 조항을 진짜 박았는냐, 안 박았느냐에 가지고도 사실은 그 자체에 대해서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논쟁이 많아요. 그래도 어쨋든 박았다고 그렇게 치는 게 우리에게는 굉장히 은혜가 되잖아요. 어쨋든 박았다고 치고, 박을 때도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키려고 그걸 박은 게 아니거든요. 왜냐하면 그 당시에 대학에서 그렇게 논제를 내 걸고 한번 토론해 보자. 이런 게 늘 많았기 때문에 그렇게 얘기 했던 거죠. 그때에 그 면죄부 문제를 들고 들어가다가 결정적으로 로마 교회하고 강력하게 갈라서는 놀라운 사건이 뭐냐 하면 구원론 문제를 거론하는 거였어요. 구원문제. 그 구원 문제에서 그게 뭐죠? 그러니까 이신칭의론을 내세우는 거죠. 그래서 거기에는 솔라 피데의 문제라는 거죠.
사실은 우리들이 칼빈 밖에 모르지만은 저도 누구 못지않게 칼빈 선생님을 존경하고 오죽했으면 교회 앞마당 첫 번째 자리를 우리 칼빈 파크로 우리가 했겠어요? 그렇지만 칼빈은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신학적 독창성에 있어서는 루터에 미치지 못하고, 전사적인 삶에 있어서는 카펠 전투에서 아들과 그리고 사위와 함께 장렬하게 피 뿌리고 죽은 그 쯔빙글리(Zwingli)에 미치지 못해요. 또 그 목회적인 노련함과 회중들을 끌어안는 그 경험적인 목회 신학에 있어서는 사실은 부처(Bucher)에 미치지 못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이 그렇게 위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가장 대표적인 요인 가운데 세 가지를 들자면 하나는 그의 말하고 글 쓰는 기술이에요. 그래서 제가 부처연구가의 세계적 권위자이신 스페이커르 교수님을 화란에 가서 만났을 때, 대화를 했는데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이게 절대로 부처의 신학이 칼빈에 비해서 작지 않은데 이분은 말이 어눌하고 한 얘기 또 하고 하여튼 복잡해, 근데 칼빈은 간단명료하게 깔끔하게 얘기해서 그 사람 얘기를 가져다 해도 칼빈 얘기가 더 원조인 것처럼 느껴지도록 만드는 기술이 있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고,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제네바 아카데미에요. 이것은 탁월한 거였어요. 그러니까 수많은 지성들이 거기에 와서 조직적인 신학을 공부하면서 칼빈의 사상을 습득해서 갔는데 그 사람들이 다 가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게 된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그 중의 영국의 대표적인 사람이 존 낙스(John Knox, 1513~1572) 아니에요?
그리고 또 하나는 뭐냐 하면 그 칼빈의 탁월한 성경적 삶이에요. 그래서 그 유명한 이야기가 있어요. 그 샤들레트와의 그 유명한 논쟁이 있잖아요. 그러고 나서 나중에 야사에 나오는지, 정사에 나오는지 난 모르지만 어쨌든 사람을 보내요. ‘나는 이렇게 공부를 많이 하고 이렇게 큰 주교의 궁에 사는데도 사람이 안 따르는데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많은 사람이 따르냐’. 3000명 정도로 제네바 목회를 시작했는데 마지막에 15000명 까지 모였거든요. 그러니까 ‘한번 알아봐라’ 그러고 보냈더니 칼빈 선생 집을 두드리니까 웬 후줄근하게 생긴 종 녀석이 하나 내려 오더래요. ‘칼빈 선생 찾아왔습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주교가 보내서 왔습니다’. ‘칼빈 선생 좀 불러오너라’. ‘제가 칼빈인데요’. 거기에서 이제 충격을 받은 거야, ‘저렇게 검소하고 진솔하기 때문에 결국은 사람들이 따르는구나’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종교개혁이 있고 나면 우리 임 교수님, 저 다 그런 교육의 희생양인데 우리가 배울 때에 어떤 태제가 있었냐 하면 칼빈까지는 순결한 종교개혁 신학이었는데, 밑에 베자(Theodore Beza) 그리고 베자와 똑같은 인물이 루터파 쪽에서는 멜랑히톤이라는 이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 때부터 스승의 가르침을 살짝 외곡해서 믿음의 요소를 떼어내고 이성주의를 잔뜩 집어넣어서 반죽을 하기 시작을 했는데 그 다음서부터는 그게 계속 악화가 되어가지고 그래서 이제는 그것에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이 되지 못하도록 그렇게 망가져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그 17C 이후의 그 신학은 베자 이후의 신학은 이미 벌써 종교개혁의 원래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인간의 사변과 개신교 스콜라티시즘(scholaticism)에 들어오면서 그래서 성경 진리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우리의 신학을 세우는데 적합하지 않다. 이것을 원래 태제를 맨 처음에 세운 사람이 슐라이에르마허(Schleiermacher)라는 사람이에요. 그런 태제 밑에서 교육을 받은 거죠. 우리도 아주 명료하게 강의시간에 들었어요. 베자부터는 가치가 별로 없는 거니까 따라가지 말라,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가르치는 신학교과서가 누구꺼냐 하면 찰스 하지(Charles Hodge)를 기본으로 하는 거예요.
찰스 하지가 누구냐면 개혁파 정통주의에서 세 개의 위대한 조직 신학책이 나옵니다. 그게 역사상 가장 탁월한 조직신학 책이에요. 그 첫 번째가 제가 소개하려고 하는 이 마스트리히트(Petrus van Mastrichit, 1630~1706)라고 하는 우트레히트(Utrecht) 신학자의 Theoretico-Practica Theologia라고 하는 책이에요. 두 번째 책이 스위스 제네바 고 정통주의 시대의 황금기를 구가하던 칼빈주의 신학자 프란시스 튜레틴의 Institutio Theologiae Elencticae라고 하는 책이고, 마지막 세 번째가 레이든의 신학자 세 사람이 쓴 신학시스퓨리어시스(??)라고 하는 순수신학공간(?)이라고 하는 책이에요. 근데 이 찰스 하지의 조직신학 교재가 튜레틴의 책을 잘 정리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분 밑에서 배우고 와서 그렇게 얘기하면 그건 조상의 상투를 자르는 거죠. 그러기 때문에 이러한 잘못된 생각에서 깨어나야 된다는 거예요.
제가 최근 한 목회를 하고 나서부터 계속 공부해 오고 있는데 근데 최근 그 철학과 그 다음에 신학, 그 다음에 아우구스티누스, 조나단 에드워즈의 철학적 신앙, 그 다음에 영국의 청교도 다 한 번씩 심취했었어요. 그러다가 돌아오고 나서 제일 걸린 게 뭐냐 하면 이게 도대체 철학과 신학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가, 이 칼빈 보면 답이 안 나오는 거예요. 어떻게 되는 건가. 막 혼돈을 느끼게 되었을 때 제가 만난 분이 누구냐면 우리 임원택 목사님을 박사 논문 지도했던 리차드 멀러(Richard Muller)교수의 책을 만난 거예요. 그 책을 제가 밤늦게까지 탐독을 하면서 탁 깨달은 결론이 뭐냐 하면 눈의 비늘이 확 벗어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은 거예요. 그거를 여기서 다 열수는 없어요. 기본적으로 다 대화를 해 보니까 우리 셋이서 거의 그런 것에 대해 동일하고 그래서 이 멀러 교수님을 제가 만났는데 이분의 테제(thesis)는 제가 자신있게 이야기 하는데 최소한 300년은 갈 것이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그 테제를 공부를 해야 된다는 거예요.
자 그런데, 그러면 거기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 뭐냐 하면 이런 이야기죠. 칼빈은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쉬워요. 절대 어렵지 않습니다. 그거 그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쓴 목적 자체가 신학을 설파하기 위해서 쓴 것이 아니라 성경을 잘 이해하게 하려고 쓴 요즘으로 말하면 평신도를 위한 기독교 신앙 개론서야. 문제는 뭐냐 하면 쉽기 때문에 어려운 거야, 그게. 쉽기 때문에. 자 여러분 보십시요. 논리적으로 한 페이지를 쫙 이야기 하고, 한권의 책을 쓰면 어려울 게 없어요. 그런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그리고 가버리면 이게 한 없이 어려워지는 거죠. 왜? 너무 쉬우니까.
그래가지고 결국 뭐냐 하면 칼빈은 수많은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는 거예요. 그래서 대표적인 사례가 뭐냐 하면 이게 우리가 볼 때에는 전혀 칼빈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이 나타나서 너희들은 틀렸고, 우리가 진정한 후계자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이 중에는 알미니안 후계자도 나오는 거야. 그래 가지고 대표적인 사람, 시간이 없으니까 두 사람만 들텐데 한 사람은 뭐냐 하면 아미로라는 이단이야. 소미로 학파에서 공부한 사람이거든요. 소미로 학파는 이성주의 신앙을 도입한 그런 초기의 학교였단 말이에요. 그 사람은 전부 다 칼빈을 자기에 맞게끔 해석을 해서 우리들이 하는 칼빈 해석을 완전히 빗나간거라고 보는 거예요. 최근에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아티캔달이란 말이에요. 웨스트 민스터 로이드 존스 목사님 후임으로 들어간 사람이죠. 박사 논문을 한번 읽어봐요. 읽어보면 아주 헷갈리게 만들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냐 하면 오늘날 우리들이 전부다 칼빈 신학의 중요한 신학 논제들을 왜곡해 버리는 거예요. 그러면서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데 내가 보기에는 기발하기는 하지만 맞지는 않는다는 거죠.
결국은 개혁자들이 이루어 놓은 이 신학 사상이라고 하는 것이 멀리 바라보면 중세 기독교 교회사와 연결이 되는 거죠. 그 예가 뭐냐 하면 칼빈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일 수 있었던 이유는 기독교 개신교가 깃발을 들고 ‘와’ 해서 프로테스탄트 하기는 했는데 누구도 우리는 이렇게 믿는다 라고는 얘기는 못하는 거예요. 왜? 면죄부 파냐? 그러고 저쪽에서 구원은 그렇게 받는 것이 아니다, 이러고 지나가면 저쪽에서는 저 얘기하고 이렇게 되는 거죠. 그거를 총체적으로 정리해 놓은 거죠. 최초로, 소박하기는 하지만, 강요 초판에서, 초창기에는 신론, 섭리론 이런 것들에 대한 개혁파의 이견이 안 나와요. 그러다가 중요한 주제에서만 이게 폭탄이 터지듯이 예를 들면 기독론의 양성론, 아까 우리 문 교수님이 발표한 성례론, 교회 정치론 이런 데서 폭탄이 터지기 시작한 거지, 전체적으로 안 나와요. 그게 전체적으로 완성된 것은 훨씬 후기의 일이란 거죠. 그래서 칼빈이 사실은 대단한 철학자였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중세 철학을 그 당시에 공부하지 않고는 안 되고요. 중세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그 철학을 이해하지 않으면, 그것을 풀(full)로 사용해서 온 거거든요.
그래서 뭘러 교수가 내리는 뭘러 태제의 핵심이 뭐냐 하면 종교 개혁을 그 context에서 보자. 어거지로 보지 말고 중세에 와도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가지고 있고, 종교개혁자들이 그렇게 해서 종교개혁이라는 사건을 만들고, 신학의 내용을 전투적으로 구성을, 한가하게 구성을 한 게 아니라 공격을 해오면 치열하게 싸우면서 신학을 뭉텅, 뭉텅, 뭉텅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러나 이것들을 조직적으로 배열은 못한 거죠. 이게 후에 개혁파 정통주의에 이어오면서 이것들이 자리매김을 다 하면서 정돈이 되어서 오늘날 우리들이 개혁주의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어마어마한 개혁주의의 신학이 수립이 되는 거라는 거죠.
그러면 그게 어디 있습니까? 지금 없어요. 왜 없습니까? 유산을 원천으로 연구를 안 해요. 그러니까 종교개혁 때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이 되면 소명 받았다고 목사가 될 수가 없어요. 여러분 소명 받았다고 의사하겠다고 지금 부엌칼 들고 나가서 가게 차리면 장사가 되겠어요? 법적으로도 허락을 안 하지, 왜냐하면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신학자가 되어야 하는데 신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그 라틴 교부들과 히랍 교부들의 그때까지 내려오는 약 1500년 동안에 집적되어 온 중세까지의 그 자료, 실제로 보면 대충 최근에 나오는 토널티(?)에서 나오는 것만 해도 약 500권 내지 550권 정도 되는 데 그것들을 자유자재로 읽을 수 있어야 해요. 그렇게 하면서 그 다음에 자기의 신학을 세우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거죠.
근데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요? 18C 이후로는 개혁신학의 발전이라는 것이 딱 끝입니다. 그리고 정형화 되어서 그것들을 Repeat하는 거에요. 후에 개혁 신학을 하는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서, 나야 부담이 없다고 했죠. 목회를 하니까. 그러니까 그 원천에 대한 연구를 안 해, 그리고 남이 한 말을 조금씩, 조금씩 바꿔서 이야기를 하면서 내려와서 그 양이 점점점점점점 줄어들어가지고 지금은 아주 일부만 남고, 거기에서도 그 장엄하고 철통같은 논리같은 것들은 사라지고, 대부분 성경에 대한 해석 같은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이거예요. 그래서 아주 빈약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개혁파 정통주의라고 하는 것은 뭘 가리키냐 하면 개혁주의, 개혁주의 그러는데 어느 개혁주의? 개혁주의를 최광의(最廣意)로 얘기하면 카톨릭 빼고는 다 개혁주의야, 저쪽의 아나벱티스트들과 그 다음에 퀘이커 교도까지 모두 포함해서 루터까지 포함해서 전부 다 개혁주의예요.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 해 가지고는 의미가 없고 “내 의견은 개혁주의의 견해입니다” 그러는데 나는 항상 마음속으로 웃음이 나오면서 “어느 개혁주의?” 분명하게 얘기해야 하죠.
개혁파 정통주의라고 하는 것은 이제 그것보다도 훨씬 더 좁은 개념이에요. 그래서 이 개혁파 정통주의가 지역적으로 분할을 하면 이렇게 되는 겁니다. 우선 첫째 뭐냐 하면 첫째로 초기 스위스 개혁파 신학이 있어요. 그건 이제 칼빈, 쯔빙글리, 갈리아 신앙고백 제2스위스 신조 이런 것들이 중심이고, 그 다음에 뭐냐 하면 루터, 부처, 루시누스 이런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는 초기 화란-독일 계통이 있고, 그 다음에 이제 윌리암 에임스 퍼킨스 스코틀랜드 등등의 영국이 있고, 그리고 도르트 총회가 있고 이게 다시 후기로 세계가 다시 발전을 하는 거야. 그래서 이 정통주의 시대를 칼빈 사후부터 시작해서 1725년 경 그러니까 이성주의가 밀려들어 와서 이 신학이 변질되기 직전까지가 우리들이 개혁파 정통주의의 시기라 이렇게 보는 거라 이거죠.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 개혁파 정통주의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위로부터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의 내용을 질료로 물려받고, 그것을 자기 시대에 맞게끔 새롭게 빚어내는 일들을 사용할 때에는 스콜라주의라고 하는 것이 들어오게 되요. 스콜라주의학이 들어오게 되면 그냥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는데 스콜라주의의 내용은 건전하지 않지만, 방법론은 학문하는데 있어서 신학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 학문의 도구가 되는 거죠.
그 스콜라주의의 핵심이 뭐냐 하면 분석과 종합이에요. 학문이 같은 류를 종합하고 같은 류로 보이는 속에서 difference를 찾아내서 분리하는 작업을 통해서 이 지식을 쉽게 습득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는 거라 이거죠. 그런 스콜라주의가 들어오게 되는 거죠. 그렇게 들어오게 된 이유는 두 가지에요. 첫째 하나는 뭐냐 하면 상황 자체가 논쟁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는 거죠. 카톨릭같은 경우에 처음에는 무조건 정치적으로 탄압하다가 후에 카야탄(?) 같은 사람이 나오면서 사돌레토같은 경우도 대표적인 경우에요. 그러니까 절실하게 이 학문에 출중했던 사람들이 이 개신교 신학을 철저히 연구를 해서 그래서 뭐가 잘못됐는지를 학문적으로 공격을 하는 거에요.
칼빈이 스트라스부르그에서 부처 밑에 있다가 다시 제네바로 돌아오게 되잖아요. 그때에는 제네바에 있던 사람들이 완전 항복하고 삼고초려를 해서 모시고 와요. 모시고 오게 된 가장 중요한 정치적인 동기가 뭐였어요? 그게 뭐냐면 사돌레토라고 하는 카톨릭 신학자한테 정식으로 편지를 받아요. 근데 그 사람들이 믿는 신앙에 대해서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면서 정식으로 질의서를 내는 거예요. 모여서 아무리 회의를 해 봐도 이러한 정도의 질문에 수준 있게 대답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우리 칼빈 선생님밖에 없다 그러고 칼빈을 찾아가게 된 거에요. 얼마나 대학자였는가 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거죠. 칼빈은 절대로 자기가 아는 것을 기독교 강요나 이 속에서 다 쏟아 내지를 않았어요. 왜냐하면 중세 스콜라주의에 대한 반감이 있었기 때문에 어쨌든 따지는 거를 싫어하고 어쨌든 잘 믿을 수 있도록 길 가르쳐 주는 것으로만 만족을 했어요.
이거는 제 사견인데 나 개인적으로는 그렇다고 근거가 없이 확신하는 것은 아니에요. 나 자신 두 분 교수님은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나 자신이 확신하기를 또 자료적인 증거에 의해서도 어느 정도는 Support를 받는 얘기인데 루터 밑에 멜랑히톤이 있었고 칼빈 밑에 베자가 있었어요. 근데 루터와 칼빈은 자신의 생애 안에서 자기가 던져 놓은 이 신학에 대한 진술이 충분하지 않다라고 하는 것을 깊이 느꼈다는 거예요. 나는 이것을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확신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없으니까 내 증거 딱 하나만 댈께요. 그 마르틴 루터가 이제 마르틴 루터가 자기의 그 신학을 누굽니까? 멜랑히톤에게 계승하잖아요. 루터가 살아 있을 때 신학교를 만들고 교과목을 다 짜요. 그런데 이 사람이 누구냐면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을 거기서 가르치고 논리학을 가르치는 거예요. 그리고 철학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루터 신학을 집중적으로 발전시키기 시작하는 거죠.
똑같은 예를 베자에게서 들어볼까요? 칼빈이 그 이제 제네바 아카데미 하잖아요.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당시 커리큘럼이 뭔가 하고 보면 1/3이 인문학이에요. 놀라워요. 더 놀라운 증거를 제가 최근에 발견했는데 오늘 논문에 나오데요. 그게 뭐냐면 첫 시간에 우리 문명우 교수님이 베르미글리를 발표했죠. 그죠? 이 사람은 굉장한 사람입니다. 전적으로 동의하고 굉장한 사람입니다. 이 베르미글리라고 하는 사람이 중세 철학부터 시작을 해서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철저히 꿰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신학자인데 리코마코스 윤리학 주해석을 씁니다. 리코마코스 윤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약 59권 정도의 책을 쓰고 남아 있는 게 50 몇 권 정도 남아있는데 그 중에서 리코마코스 윤리학은 선이 무엇인가라고 하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거예요. 그것을 해설을 하면서 기독교적으로 비판을 가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선론을 교정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그분이 쓴 책 가운데 최근에 편집돼서 나온 게 Philosophical Writing 이라는 책이 있어요. 오늘 문명우 교수님이 논문 발표한 것은 대부분 The two nature of Christ 라고 하는 책의 내용인데 Philosophical Writing에 보면 거기에는 성경 설교와 주석 속에서 아주 Philosophical한 문제, 의지와 하나님의 작정의 문제라든지 그 다음에 이런 문제들 있잖아요. 선과 악, 신정론의 문제 이런 것들만 모아 놓은 거예요. 그걸 보면 보통 철학자가 아니에요. 근데 엄밀하게 여러분들이 만약에 그 사람의 책을 잘 읽은 다음에 이 소식을 들으면 여러분들은 충격을 받을 거예요. 그 사람이 누구냐면 존 칼빈이 제네바 사역의 후계자로 삼고 싶었던 사람이에요. 그리고 실제로 이 베르미글리가 쓴 주석서를 간절하게 추천하고 그리고 출간을 재촉하던 사람이에요. 고린도전서 주석이 아주 유명한 주석인데 이 사람이 쓴 글을 보면서 이 사람을 칼빈이 좋아했을 거라고 믿어지지를 않는 거예요. 왜냐하면 too philosophical해. 그런데 여섯 번을 부탁합니다, 여섯 번을. 그러면서 부탁하는 것이 뭐냐 하면, 이 사람이 이태리 사람이에요. 그리고 아버지도 신학자였고 할아버지 때부터 핍박을 받아서 도망을 온 사람들이거든요, 근데 그 베르미글리가 그렇게 그런 철학적인 사람이었는데 칼빈이 간절히 불러요. 여섯 번을 부릅니다. 그래서 그쪽의 자기네 고향에서 온 사람들을 이제 가르치도록 그렇게 부르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부름을 받은 대표적인 사람인 존 낙스가 제네바 바로 옆에다가 영국 난민들을 위한 교회를 만들었거든요. 또 칼빈 자신이 스트라스부르그에 가가지고 한 사역이라는 게 그렇게 핍박 받아서 온 프랑스 난민들을 목회한 거예요. 그래서 거기서 칼빈이 마음이 많이 녹아지는 거죠. 왜냐면 그 불쌍한 사람들 돌보면서 은혜를 많이 받으면서 부드러워지는 거죠. 그래서 후기 사역을 성공적으로 수행을 하는 거예요. 연단을 좀 받아야 해요 여러분들도.
그런데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마지막에 뭐라고까지 얘기했냐면 “당신은 왜 이렇게 나의 부름에 응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빨리 와서 나의 이 제네바 사역을 뒤 이어 주십시오.. 당신이 그렇게 오지 않는다니 내가 할 수 있으면 손목을 꺾어서라도 데려오고 싶습니다.” 그 편지를 내가 확인을 했어요. 이게 결국은 뭐냐 하면 그거 하나 가지고 단언한다는 것은 어렵지만 자기의 시대 초창기와는 많이 상황이 바뀐 거예요. 치열한 논쟁들이 이뤄진 거예요. 그때 후학들이 오히려 자기의 종교개혁 신학을 아주 아름답게 가꾸고 있다고 생각한 측면이 많다 이거예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마지막 내리고 싶은 결론이 뭐냐 그러니까 결국 우리는 물론 칼빈을 공부해야 하고 그건 기본이구요,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말고 그 칼빈의 신학이 어떻게 발전해 오게 되었는지를 추적해 가면서 읽어야 되는데 그 자료가 겸손하게 하리만큼 어마어마해요. 어마어마한데도 감사한 것은 내가 손에 넣은 그 개혁파 정통주의 자료만 지금 현재 600권이 넘어요. 보통 하나가 700Page이상 되는 것들이에요. 글씨가 깨알같아요. 그러면서도 감사한 게 뭐냐면 35%정도는 영어예요. 그래도. 물론 그 영어는 우리 영어가 아니고 거의 외국어 수준의 고대 영어지. 그러나 상관없어요. 그런 줄 알고 공부하면 되니까, 존 오웬 영어도 400년 전의 영어인데 우리는 그냥 6년 7년 계속, 제가 제일 처음만난 게 15년 전이거든요. 계속 읽었거든요, 영국 사람이 우리교회 와가지고 그거 읽어보라고 주었더니 못 읽더라구요. 근데 우리는 읽어 왜? 우리는 원래 영어가 그러려니 하니 꾸역꾸역 읽는 거지. 그래서 내가 오히려 설명을 해줘야 돼, 근데 그걸 탐구를 해야 되는 거예요.
내가요. 가슴 벅차서 얘기 다 못해요. 내가 한마디만 할께요. 플라톤을 공부하면서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대해서 무한히 자부심을 느꼈구요. 그 다음에 아우구스티누스를 공부하면서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무한한 자부심을 느꼈다면, 개혁파 정통주의를 공부하면서는 내가 개혁파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는 거예요. 깔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선조들의 유산이 있는 거야, 근데 이 자식들이 칠칠치 않아서 아버지가 산이며 밭이며 빌딩이며 집이며 섬이며 뭐며 수없이 막 은행의 통장까지 남겨줬는데 까막눈이어가지고 지 아버지 재산이 어디 있는지 증서를 보면서도 이걸 못 읽는거야, 이게 문맹이어가지고, 그게 지금 오늘날 우리의 상황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지금 벌써 많이 늙으셨네요. 내가 대학에 있는 아이들한테 가서는 내가 강력하게 촉구해, 공부하라고 말이죠. 지금부터 머리가 터지도록 라틴어 공부해라, 그래서 반드시 라틴어를 읽어내라 말이지. 근데 우리는 옛날에 라틴어하면서도 왜 공부하는지를 안 가르쳐준 거야, 그러니까 동기를 부여가 안 되었지. 그래서 집어쳤 버렸지, 나중에 알고 보니까 이렇게 중요해 50이 넘어서 라틴어를 배우는데 그게 머리에 들어갑니까? 두 개 배우면, 천재는 하나를 가르쳐주면 10을 안다는데 우리는 하나를 가르치면 10개를 잊어버리는데. 그래서 개혁파 정통주의로 들어가자 이 얘기입니다.
그럼 도대체 여기 나오는 이 마스트리히트라고 하는 이 사람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냐. 얼굴 한번 보여줘 보세요. 마스트리히트. 크게 보여주지, 쬐끔해. 이 사람이 바로 오늘 논문에 나오는 페트루스 판 마스트리히트라는 사람이에요. 1630년에 태어났으니까 칼빈이 1509년에 태어났고, 존 오웬이 1616년에 태어났으니까 대충 시대가 이해가 될 거예요. 그런 시대의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스승이 보헤티우스라는 사람이고, 보헤티우스라는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나더레 레포르마티에‘라고 하는 화란에서 일어난 제 2 종교개혁의 말하자면 선구자격이 되는 거죠.
그런데 너무 재미있는 경우는 뭐냐 하면 우리 로버츠 전공하셨으니까 우리 윤교수님은 참 좋아하실 텐데 화란에서 일어난 '나더레 레포르마티에'(더 나아가는 개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 뭐냐 하면 영국 청교도 신학입니다. 특별히 청교도들 중에서 쌍방성, 단방성 말씀하셨는데 그런 어떤 언약 관계에 있어서 편무적 성격이 아니라 쌍무적 성격을 강조한 것이 대륙에 물론 있었지만, 청교도들에게 들어가서 이것이 청교도적인 상황에서 재해석 되요. 그렇게 해 가지고 아주 찬란한 언약 신학을 수립해. 이때도 똑같이 종교 개혁의 연속선 상에서 continuity와 discontinuity를 가지고 똑같이 영국적인 상황에서 나가는 거죠. 왜 그렇게 나갈 수 있냐하면 막 수시로 핍박이 일어나고 정치가 업치락 뒤치락하니까 배교가 출몰하는 거야. 그럼 어떻게 되겠어요? 그냥 똑바로 믿고 우리들이 끝까지 신앙고백을 하자 라고 하는 게 나오는 거죠. 그것은 duty 개념이 나오는 거죠. 언약을 맺었으면 그러면 인간에게도 의무가 있지 않느냐, 그래서 그것이 결과적 조건이 되는 거죠. 그래서 네가 끝까지 신앙을 지키면 하나님이 구원을 해 주신다 그게 아니라 끝까지 신앙을 안 지키고 우리가 변절했다면 그건 거꾸로 투사해서 옛날에 받은 그게 구원이 꽝이다 그게 가짜다, 그 열매가 없으니까 니가 여태까지 믿었다고 하는 거는 가짜다. 그렇게 해가지고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수긍하기 어려운 정도의 토마스 맨튼이나 그 다음의 존 오웬이나 이런 사람들의 아파스터시에 관한 수많은 무서운 글들이 나오게 되는 거예요. 그 적시성은 지금 여기에서 논할 거는 아니지만 그렇게 해서 소위 얘기하는 '나더레 레포르마티' 운동이 일어나게 되는 거예요. 이게 제 2의 종교개혁 운동이에요. 종교개혁의 정신이 너무 흐려졌다, 그러고 말하자면 일어나게 된 그때 중심이 된게 우트레이트 대학이에요. 거기에서 제가 보헤티우스를 전작을 읽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은 뭐하지만 제가 2차 자료를 통해서도 보헤티우스를 볼 때 이 사람은 천재입니다. 그리고 카톨릭을 카톨릭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엄청난 철학자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자였습니다. 엄청난 철학자였습니다.
근데 그 사람이 복음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을 한 거죠. 소그룹 운동이 거기서 시작이 됩니다. 물론 거슬러 올라가면 안브루셔스까지 올라가지만 본격적인 근대의 소그룹 운동이 거기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그럼 여러분 뭔가 좀 비슷하지 않아요? 소그룹 운동, 말씀대로 살자는 운동, 그러면서 기도 운동 종교개혁사에서 어디하고 좀 비슷한 기운이 들어요? pietism(피에티누스) 뭐죠? 경건주의 운동, 그래서 실지로 ‘나더레 레포르마티에’ 운동이 미칩니다. 이 사람이 바로 마스트리히트가 그런 선생님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아르미니우스가 나와요. 그리고 유니우스가 나오고, 유니우스가 칼빈의 제자였단 말이에요.
그런데 내가 처음 마스트리히트를 어떻게 만났느냐? 마스트리트는 만날 수도 없어요. 왜냐하면 저작이 번역이 안됐구요. 그리고 다 라틴어로 되어 있습니다. 화란어로는 좀 작품이 있고, 그 다음에 나머지는 없어요. 근데 조그만 책 한 권을 만났어요. Regeneration이라고 하는 그 분의 조직 신학책 중에서 중생론만 딱 떼어서 영어로 번역한 책을 만났어요. 근데 읽었는데 정말 내가 여기도 표현했는데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교의학이에요. 그 이후에 이제 화란의 자유대학에 있는 아자하우드리안 교수나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뭘러 교수님,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이제 논문에 실린 2차적인 자료들로서 마스트리히트를 보기 시작했어요. 긜고 못하는 라틴어지만 일단 그걸 어렵게 복사판을 구해다 놓고 조금씩 읽기 시작했어요.
근데 우리 맨날 보는게 신학책이니까 사실 다 읽지 않아도 순서만 봐도 벌써 뭘 전개하는지 알잖아요. 근데 너무너무 아름다워요. 그것 말고도 개혁파 정통주의 자료들을 지금 계속 읽어나가고 있는데요. 결론은 이렇게 이야기 하면 되요. 우리가 신학교에서 여태까지 배운 개혁 신학이라고 하는 것은 18평형 C형 아파트 정도고, 이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의 신학은 80평형 래미안 아파트입니다. 탁 그랬어요. 어쩜 이렇게 조직신학이 예쁠 수 있을까? 야, 정말 아름답다.
근데 어려워요. 굉장히 어렵습니다. 어려운 이유가 뭐냐 하면 이미 사전에 훈련이 충분히 된 사람들이 이걸 쓴 거예요. 그 당시에는 신학생들의 수준이 지금처럼 플라톤의 이상국가 한 권도 안 읽고 온 사람들의 수준이 아니라 이게 구라파에서 집나주의면서 교육을 받으면서 탄탄하게 기초가 잡히고 그 위에 2000년 교회사에 그 신학 논쟁들을 거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굉장히 축약적이죠. 그렇게 그런 교리학을 만들어 낸 거예요.
나는 거기서 또 하나 깨달은 게 있어요. 특별히 이 마스트리히트를 보고 깨달은 게 뭐냐 하면 목회자는, 신학자는 외과 의사하고 비슷해요. 외과 의사에게 요구되는 세 가지 조건이 있어요. 첫째는 뭐냐 하면 사자같은 심장, 그래서 겁내지를 말아야 해요. 심장에 이상이 있다, 그러면 그냥 칼로 배를 확 갈라버려야 되요. 뇌에 종양이 있다 그러면 톱으로 그냥 확 돌려서 뚜껑을 팍 열어야 된다는 거죠. 어이구, 이거 피나는데 어떻게 해 이렇게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 대담함, 그게 어디서 올까요? 나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그리고 나의 이 학문과 그 다음에 이 성경의 해석은 진리에 입각하다 라고 하는 그 철저한 확신이에요.
두 번째가 뭐냐 하면 독수리 같은 눈이에요. 사자같은 심장만 있고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어요. 그러면 조폭이 사람을 수술하는 거랑 비슷하잖아요. 조폭한테 수술대 맡기는 것하고 똑 같잖아요. 사자 같은 심장은 있는데 아무것도 몰라, 우선 머리부터 열고 보는 거야. 그렇게 드러나는 두부를 어떻게 하려고, 순두부 같은 뇌를 어떻게 하려고 그래서 예리한 눈, 마스트리히트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나는 개인적으로 확신하면 안될 지 모르지만 주님 오실 때까지 이 사람이 쓴 조직신학 책이 끝일 거 같아요. 이거를 능가하는 책은 안 나올 거 같아요.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즈가 성경 다음으로 난 이 책을 추천한다라고 했어요. 카튼 매드는 ‘이 책을 전심으로 읽어라’ 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가 뭐냐 하면 여자의 손길이에요. 독수리 같은 눈이 있어도 그걸 꼬매고, 짜르고, 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탁 짤라놓고 어, 이건 신경이잖아 그럼 안 되잖아요. 확 꺼내놓고 창자를 건드렸는데 이거 왜 심장이 딸려 나오지?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여자의 손길, 이 세 개를 마스트리히트에서 다 볼 수 있었던 거죠.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더 재미있는 얘기는 많은데 넘어가구요.
결국 결론은 뭐냐 하면 칼빈은 칼빈주의 교의학을 완성을 못한 거죠. 그리고 절대 완성할 수 없습니다. 결론은 뭐냐 하면 그렇게 기독교 강요를 쓴 그런 방식으로는 개혁파 교의학이 완성될 수가 없었고, 또 위대한 저자들은 자기 책을 완성본이라고 부르지 않고 기대하지도 않아요. 오히려 수많은 위대한 저자들은 자기의 책 속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여, 그래서 결국은 실컷 욕하고 싸우고 논쟁을 했는데도 알고 보면 그 사람 품 안에 있는 거야. 그 대표적인 인물이 중세에 있어서는 아우구스티누스란 인물이에요. 넘어설 수 없는 인물이죠. 위대한 인물이에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아우구스티누스 학자들 속에는 아우구스티누스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비판하는 것도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배웠다. 비판하는 방식도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배웠기 때문에 실컷 비판하고 나면 결국은 아우구스티누스를 강화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결국 뭐냐 하면 이 개혁파 정통주의에서 발전해 온 이 신학의, 종교개혁 신학의 발전사를 무시하지 마라, 이 안에는 그 대신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가 들어 있는데 부정적인 요소를 제하고 긍정적인 요소를 취해서 오늘날 우리의 신학을 세운다면 아주 아름다운 신학이 될 것이다. 아멘을 해야지, 아멘을. 아멘
그러면 이제 칼빈하고 마스트리트의 중생교리가 어떻게 다르냐, 이건 세 시간이나 걸려요. 그래서 이렇게 한 장씩 줬어요. 열어보세요. 일사천리로 끝내겠습니다. 여기 교수님들 갖다 드리세요. 요약지. 보세요. 자 보겠습니다. 자 이제 오토바이 탑니다.
자 John Calvin과 Petrus Mastricht 중생론 그랬어요. John Calvin과 Petrus van Mastricht를 비견하는 유익은 뭐냐 하면 개혁파 정통주의 이전에 그 개혁파 신학의 원조를 보여줘요. 사실은 어떻게 보면 루터의 신학은 아주 거칠었거든요. 여기서 잘 정돈이 된 거거든요. 그런데 핍박한 피터판 마스트리히트는 이 사람 때 와서는 이 개혁파 정통주의 발전 과정의 끝무렵이에요. 전성기에요. 전성기여가지고 이것들이 아주 아름답게 결실을 하는 시기에요. 그러니까 둘을 비교해 보는 것은 아주 유용하다는 얘기죠. 그 다음에 보겠습니다.
중생의 개념이 뭐냐? 그러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구원의 아홉차서쪽(?)의 중생은 존 칼빈이 가지고 있는 개념이 아니에요. 존 칼빈은 넓은 의미설을 택합니다. 넓은 의미설은 칼빈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그 당시의 모든 종교개혁자들, 물론 마르틴 루터도 포함하고 심지어는 이후에 아르미니우스까지 포함이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칭의만 구별했어요. 그리고 나머지는 다 중생이라고 봤어요. 그래서 중생이 점진적인 과정이에요. 그래서 중생이 곧 성화, 이런 개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중생에 있어서 칼빈은 지성우위적인 해석이에요. 그래서 오성, 오성이라고 있거든요. 뭐냐면 이제 전통적으로 내려오기를 Mans라고 그래요. Mans는 뭐냐 하면 인간의 지성이야, 그러면 지성은 다시 intelligentia와 그 다음에 ratio로 나뉘어요. intelligentia는 오성이야. 오성은 퍽하고 들어오면서 들어오는 어떤 깨달음의 빛, 믿음도 그런 오성을 받아들이는 한 방법이고, 우리들이 감각적인 사물을 보면서 확 하고 들어오는 이 모든 인상들 같은 것들이 전부다 다 intelligentia에 들어가는 거에요. 그 다음에 이제 이성은 이치를 추론하는 거예요. 그렇게 나뉘게 되는데 이 지성 우위론적인 해석을 하게 되요. 그러니까 뭐죠? illumination을 중요해요. 조명을.
그에 비해서 Mastricht의 견해는 중생의 포괄적인 개념을 인정은 해요. 그런데 이미 이때 오면 포괄적인 개념은 보편성을 상실하고, 좁게 그래서 어떻게 하냐면 소명, 중생, 믿음, 회심 이런 종류의 구분을 분명히 해서 이미 피터판 마스트리히트의 신앙 face하나 빼고, 구원 서정 8계 단계가 모두 완성이 됩니다.
그 다음 두 번째 필요성과 신적 의도, 이게 John Calvin과 Mastricht의 차이는 존 칼빈의 경우에는 이 중생의 필요성이 창조론적 특성을 가져요. 이에 비해서 마스트리히트는 인간론적인 특성을 갖게 되요. 창조론적 특성을 갖는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이 이 사람을 중생시켜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어요. 그 형상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원래의 하나님 자신을 위로 알아보고 창조세계를 이해하고, 창조목적을 아는 가운데 하나님 뜻대로 살 수 있게 하는 영혼의 상태, 혹은 영혼 안에 있는 형상이란 말이에요. 그것을 타락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렸어요.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을 알아 볼 수도 없고, 창조 목적을 따라서 살 수도 없는 거예요. 그런 사람의 형상을 다시 회복하게 해 주는 것이 이게 말하자면 중생의 필요성이라 보는 거예요.
근데 여러분, 그 하나님의 형상이 한 번에 회복이 되겠어요. 점진적으로 회복이 되잖아요. 중생과 함께 시작이 되어서. 넓은 개념을 갖게 되는 거예요. 이 형상이 훼손되지 않고 완벽하게 가지고 있었던 단 한 사람의 인간이 있었는데, 그 분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라는 거죠. 그래서 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는 이제 불어로 ‘integrite et rondeur’라고 하는 표현을 사용해요. 순전함과 온전함으로 사람답게 산 유일한 인간이에요. 그래서 그분이 우리의 모델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마스트리히트에 와서는 이 필요성과 신적인 중생의 의도가 아주 현실적인 특성을 가져요. 그게 인간론적 특성이라고 내가 제목을 붙였어요. 그게 뭐냐 하면 인간 영혼의 죽음의 상태가 이게 바로 하나님이 중생을 주셔야 했던 이유에요. 그러면서 뭘 설명하냐 하면 하나님의 베타적인 monergism 동력설이라고 하는데 하나님 홀로 살리신다고 하는 베타적인 동력성을 강조해요. 그리고 중생을 ‘opera physicae’ 힘의 작용이라고 규정해요.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인간이 죽어 있는데 인간이 섭력(?)할 수 없는데 하나님이 그의 영혼에 힘을 보내셔서 그 힘으로 죽은 영혼을 일으켜 세우신다 그런 뜻이에요. 그렇게 중생을 힘의 부여로 이해하게 되는 거죠.
그 다음에 원천과 저자에 있어서 이제 왜 그럼 하나님이 사람을 중생시키시느냐, 이것을 칼빈은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찾았어요. 그런데 독특한 게 뭐냐 하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에서 찾지 않는 사람은 없어요. 근데 그 하나님의 사랑의 근거를 설명하는 방식이 독창적이에요. 그게 뭐냐 하면 영원한 선택과 pactum salutis,구속 언약의 개념이 들어오는 거죠.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사이에 맺어진 영원 전의 인간 구속의 언약, 여기에서 찾는 거죠.
그에 비해서 마스트리히트의 경우에는 전통적 trinitas의 해석이에요. 전통적 삼위일체론적 해석이에요. 개혁 신학에서 보자면 말이지 이렇게 되는 거예요. 삼위일체라고 하는 것은 성경에 이런 하나님 저런 하나님의 표현이 나온다고 할지라도 이렇게 그러니까 이렇게 이해를 해야 해요. (삼각형) 이게 3각으로 되어 있죠. 각 각을 어디서부터 해도 좋으니까 성부, 성자, 성령이라고 생각하면 되요. 어느 위도 두 위를 excre(?) 역사하는 방법은 없다. 그래서 어떤 사역은 성부가 주도적으로 관여하고 나머지 위가 부차적으로, 어떤 사역은 성자가 principlely하게 주도적으로 개입을 하고 나머지 위가 부차적으로, 그 다음에 어떤 사역은 성령이 이렇게 하는 거죠. 창조는 성부, 구속은 성자가 구속의 적용의 믿음은 성령으로 그러면서 어느 위도 거기에 안계시지 않는 거예요. 이게 바로 삼위일체의 사역적 설명이에요.
그런데 이제 이 사람 마스트리히트는 이런 방식으로 설명을 하는 거예요, 전통적인. 그래서 어떻게 하냐 하면 똑같이 그런 표현이 나오는 거는 아니지만 성부는 내가 정리를 잘 해 준거에요. 그래서 성부는 중생의 수요적 원인으로 'Patri tributur', 그 다음에 성자는 공로적 원인 'causa meritoria'라고 나오는데 근데 성령은 이런 식으로는 안 나와요 그렇지만 'Spiritus vivificus' 해서 굳이 원인으로 설명을 한다면 수요적 원인, 공로적 원인, 생명적 원인 이렇게 되는 거예요.
수단은 여기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수단은 이게 칼빈의 경우에 신앙론적 특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중생하는데 중생의 수단이 뭐냐? 여기에서 이것이 신앙론적 특성을 갖는다는 거죠. 그래서 성령보다도 뭘 강조하냐 하면 믿음을 강조하게 되요. 그럼 왜? 사실은 믿음을 강조하면 믿음 자체가 또 하나의 행위가 될 수 있잖아요.
그런데도 믿음을 훨씬 더 강조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에요. 첫째는 루터의 해석의 영향이고, 두 번째 본질적으로는 gratia infusa의 교리를 의식했기 때문이에요. 무슨 뜻이냐면 gratia infusa의 교리는 아까 첫 시간에 쭉 설명을 했잖아요. 뭐냐 하면 성례에 참여하면 그것은 거역할 수 없는 은혜가 신자가 의식하지 못하는 속에도 주입이 된다고 보는 거거든요. 그런데 만약에 칼빈이 ‘중생의 수단이 성령이다’ 라고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러면 gratia infusa 교리하고 당시에 있던 사람들에게 헷갈리는 거예요. 또 하나는 뭐냐 하면 이 사람이 넓은 의미의 중생론을 택했기 때문에 faith, 믿음으로 살아야가야 될 것은 구원을 얻을 때 한번이 아니라 성화과정에서도 마지막 견인되고 마지막 영화되기 직전까지, 죽기 직전까지 계속 성도는 믿음으로 살아야 되거든, 그러니까 이 faith적인 특징을 강조한 거예요.
그런데 이제 뒤에 넘어가면 마스트리히트에 와서는 이게 word centric해요. 말씀 중심적이기, 믿음보다는 말씀을 강조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게 후기 스위스 신학자들 예를 들자면 튜레틴이나 하이데커, 헬베트 신조 이런데 나오는 거하고는 또 달라요. 여기서는 이제 딱 오늘날에는 그런 것들을 물려받고 있는 거죠. 그래서 원리적인, 도구적인 수단은 하나님의 말씀, 원리적인 수단은 성령님, 성령님은 내적 수단, 그 다음에 말씀은 외적 수단, 이게 오늘날 우리들이 거의 받아들이고 있는 거거든요.
근데 이제 마스트리히트는 이것을 거부합니다. 거부하는 요인이 거부한 이유가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우선 첫째는 뭐냐 하면 성령의 위치 문제예요.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 중 한 분이신데 그분이 어떻게 수단이 될 수 있는가? 그 분이 삼위일체로서 하나의 하나님과 함께 중생의 주체가 되는데 그 분이 어떻게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겠는가 하는 위치 문제예요. 그래서 결국은 말씀만이 수단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에요. 자 여기에서 이제 성령이 수단이 되실 수 없다, trinitas를 강조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 과연 말씀이 중생의 수단이냐? 만약에 말씀이 중생의 수단이라면 그러면 말씀을 듣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되냐? 이런 복잡한 문제가 나오잖아요. 그래서 이것은 사실은 아주 복잡한 토론으로 이어지게 되요. 이 문제를 개혁신학에 입각해서 기가 막히게 푸신분이 있는데 그 분이 고마로우스라고 하는 사람이에요. 그 다음에 이제 뒤로 넘어가겠습니다.
구원의 대상은 별 커다란 다른 차이가 없어요. 그 다음에 이제 다른 표현이 나와요. 여기에서 이제 주목할 만한 중요한 문제가 하나 등장하게 되요. 칼빈의 경우에는 중생의 다른 표현이 대표적인 것이 한 6개 정도 나오는데 중요한 차이점이 있는 것만 여기에서 3개정도 뽑았어요. 다른 표현을 사용할 때 그 방향이 목회적, 실천적 사역을 염두에 두어요. 이에 반해서 마스트리히트는 철학적, 신학적 사용을 염두에 둡니다. 그래서 칼빈에게는 회개가 중생의 또 다른 표현이에요. 또 성령의 내주도 중생의 또 다른 표현이에요. 중생은 곧 성령이 내주하시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의 내주가 바로 prima pietatis tirocinia가 되는 거예요. 경건의 첫 시작이 되는 거예요. 자녀된 내주하시는 성령의 증거, 이렇게 성령중심적인 해석으로 나아가게 되는 거죠.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거예요. 여기에서 설명할 게 많은데 공동체적인 해석 요소도 여기에서 나와요.
그런데 여기에서 이 petrus 마스트리히트의 경우에는 이것을 은혜라고 불러요. 그래서 은혜가 일반 은혜와 중생 은혜가 있다고 보고, 이 일반 은혜는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 하는 일반은총이고 중생 은혜는 내적인 은혜이고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 개혁 신학적인 해석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상을 물려받은 사람이 조나단 에드워즈인데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즈는 이 은혜, 그 자체를 뭐라고 보냐면 성령이라고 바로 봅니다. 자 아까 임 교수님 강의를 통해서 우리들이 많은 깨달음을 얻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그거 아니에요? 은혜를 받겠다고 열렬한 사람도 별로 없지만 요즘은, 어쨌든 은혜를 받겠다고 보따리 싸들고 여기저기 다니는데 주님은 물으시겠죠 ‘내가 은혜를 주면 뭐 할래?’ 그러면 여러분들은 뭐라고 하겠어요? 나는 여러분의 대답을 알어, 분명이 이렇게 대답할 거예요. ‘좋잖아요’. ‘야, 너 왜 나한테 은혜를 달라고 하니?’ ‘좋잖아요’. ‘뭐가 좋은데?’ ‘기쁘잖아요’. 기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일까? 그게 아니에요.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가 Doctrina Christiana하는 기독교 교향론, 혹은 교육론에서 이런 얘기를 합니다. 은혜란 무엇인가? 이 양반이 형이상학적인 정의를 참 잘 내려요. 그래서 뭐냐 하면 은혜란 무엇인가? 맨 처음에 읽었을 때 며칠 동안 잠을 못 잘 정도로 도전을 받았어요. 우리 교인들은 다 외우고 있어요. 은혜란 무엇인가? ‘인간으로 하여금 마땅히 행하여야 할 의무를 행하도록 선한 의지를 불러일으키시는 하나님 사랑의 감화’ 다 들어간 거예요, 거기에. 우리 임 교수님이 발표한 논문이 바로 이거에요. 하나님이 은혜를 많이 주시는 이것은 기쁘잖아요. 좋잖아요. 얼마나 신나는데요? 은혜를 못 받은 사람보다는 우월하잖아요. 이게 아니라 그런 은혜를 주시는 목적 자체가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선한 일을 그 선한 일이라는 것은 창조의 목적에 따라 사는 거예요. 그거를 할 수 있도록 선한 의지를 확 불러 일으켜 주는 거예요. 그렇게 해 가지고 은혜가 없을 때는 도저히 못하던 것을 하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자기 고백론에서 유명한 얘기를 하는 거죠. 자기가 가만히 회심의 경우를 보니까 어떤 결론이 나오냐면 하나님이 도둑질 하지 말아라, 다른 사람 미워하지 말아라, 남의 것 탐내지 마라, 그러고 말씀하시는데 자기는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거야, 자기 훔치고 싶은 거야, 그리고 그렇게 죄를 짓고 악하게 살고 싶은 거야, 그래서 몸부림치다가 마지막에 깨달은 게 뭐냐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안 되는구나. 그러면서 한 유명한 이야기가 남은 거예요. 명하는 것을 먼저 제게 주시옵소서. 원하시는 것을 내게 명하시옵소서. 원하시는 것을 내게 먼저 주시옵소서가 무슨 뜻이에요. 당신이 나에게 명령하시려고 하는데 그것을 이행할 수 있는 은혜를 내게 먼저 주십시요. 그리고 당신이 이걸 행하라고 명령하십시요. 그럼 제가 순종하겠나이다. 그러니까 순종을 하면 그거는 내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오직 나를 순종하게 하는 거고, 불순종했으면 은혜를 안 주신 하나님 책임이 아니라 원래 내가 그렇게 못됐으니까 그렇게 한 거라 이렇게 결론을 내리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런 의미에요.
그래서 은혜가 지금 이야기한 은혜는 이것은 주관적인 은혜예요. 은혜를 객관적인 은혜로도 설명이 되는데 그게 뭐냐 하면 너희가 구원 얻은 것은 선행이 아니라 은혜로 된 것이다. 그건 뭐냐 하면 하나님이 객관적으로 죄인에게 사죄를 주시는 은혜라는 거예요. 또 하나의 은혜가 은혜 그 자체를 성령이라고 보는 거예요. 이 견해가 에드워즈의 단독적인 견해가 아니라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 안에서 상당한 뿌리를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주목을 해야 될 아마 보시게 될 거예요. 이게 뭐냐 하면 영이에요. 이게 소문자로 쓰여진 것을 잘 기억을 하세요. 이 사람 마스트리히트는 성령의 또 다른 표현을 하나님이 영을 주신 사람이다 이렇게 본 거예요. 그래서 Spiritus Santus는 성령이에요. 거룩한 성령과 spiritus datus는 뭐냐 하면 이것은 주어진 성령이에요. 이것을 구분하는 거예요. 요건 강의안을 내가 봐야겠어요. 강의안을 봅시다. 46쪽을 3번의 e번의 그 다음에 마스트리히트의 영 각주 121번 정도 찾아가시면 됩니다. 이걸 보십시요. 그러면 47 페이지를 한 번 보십시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은 46 페이지고 3번째 줄입니다. 읽어보겠습니다.
“(page52)그는 이 ‘영’이라는 단어를 ‘주시는 성령’(Spiritum dantem)이 아니라 ‘주어진 영’(spiritus datus)이라고 본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주시는 성령이 아니라 주어진 영으로 이해한다. 이 주어진 영은 만약 나쁘게 주지 않는다면 열매이다.. ” -- 책 참조.
그래서 지금은 그런 논의들이 거의 사라졌는데 이때의 개혁파 정통주의자 학자들은 잘 들으세요. 성령이 이렇게 존재론적으로 우리 속에 쏙 들어와 계시다고 그렇게 보지 않는 거죠. 왜냐하면 성령은 혼자 계시지 않고 성부 성자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만약에 성령이 쑥 들어와서 우리 안에 계시다면 그것은 성부 성자 성령이 다 이 속에 들어와 있다는 개념이 되기 때문이에요. 그것은 물질 세계와 거룩하신 하나님과는 그런 식으로 교통할 수 없다라고 보는 거죠. 그렇게 하고 인간 안에 성령이 새 영을 넣어서 그 영과 영혼의 결합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이 되고, 그리고 그렇게 우리 안에 중생으로 주신 그 영은 그 대신 성령님과 매우 특별한 관계를 가지면서 그러면서 아까 삼각형을 만든 것처럼 성령님을 Principly하게 하면서 삼위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면서 성령과 특별한 관계 속에서 성령의 영향을 받는다고 해석을 했던 거죠. 이유가 뭐냐 하면 그 당시에는 이 내재론자들, 그래서 특히 아나뱁티스트같은 경우에는 빛을 강조하는 거예요. 내 안에 지금 그 성령님이 계시다, 그래서 성경 필요 없고 우리를 이렇게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이렇게 물질 속에 침투해 들어오는 어떤 그 신적인 본질의 침투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는 거죠. 아까 이야기한 오시안더같은 사람도 마찬 가지예요. 이런 것들을 차단을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자 이제 끝내겠습니다. 자 이렇게 하고 생명은 생략을 하겠습니다. 모두 다 끝내구요 마지막 결론은 뭐냐 하면 마지막 결론 가지고 계신 맨 뒤페이지에 결론을 읽어보시겠습니다.
"결론 책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