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 6:13下)
녹취자: 김혜진
오늘 주기도문 마지막 시간입니다. 우리 9절서부터 13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몇 달 동안 9절서부터 계속 왔고, 오늘로서 주기도문 강해를 끝내려고 합니다. 마지막 일곱 개의 간구가 다 끝난 다음에, 마지막에 나오는 부분은 송영입니다. 송영, 하나님을 향한 찬송입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을 외울 때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하는 부분입니다. 이거는 기도는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는 아니지마는 그러나 이 마지막 송영, 그러니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고 마지막에 하나님을 찬송하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께 있사옵나이다.’ 하는 이 찬송은 주기도문 전체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다시 말씀드려서, 처음 하나님 앞에 올렸던 기도가운데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시며, 그것은 첫 번째 송영인 나라와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죠? 나라가 아버지의 나라니까, 마땅히 하나님의 이름이 왕의 이름, 아버지의 이름이 그 아버지의 나라 가운데에서 높이 들리어지고 영광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권세였습니다. 그 권세는 두 번째 기도제목인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아버지에게는 하늘나라뿐만 아니라, 이 땅도 다스리셔서 거기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원하는 뜻이 이루어지는, 그 현실을 하나님께서 누리실 권세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영광인데 그것은 뭐냐 하면 ‘나라이 임하옵시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그 나라가 임하는 것 그 나라 안에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 이렇게 처음 기도제목 세 가지와 송영에 나오는 축사 세 가지가 연결이 되어 있음을,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이 읽고 있는 성경에는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있사옵나이다’ 이 대개 라는 말을 놓고 찬송가가 개편이 될 때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많이 벌어졌습니다. 여러분 다 기억하시겠지만, 지금은 찬송가에 주기도문이 맨 앞에 실려 있습니다. 거기에 대개라는 말이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찬송가가 통합되기 전에 합동 찬송가와 갈려져 가지고, 그 찬송가가 기장 측 그 다음에 통합 측, 합동 측 다 쪼개어 질 때 다른 교단의 찬송가에서는 대개라는 말을 빼버렸습니다. 다시 합칠 때 교단 별로 신학자 그 다음에 찬송가 만드는 사람들 전부다 모여서 회의를 할 때, 이 대개를 넣느냐 마느냐는 걸로 설전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이제 합동 측에서는 대개를 넣자, 그러니까 저 쪽에서는 자유적인 진영에 있는 교단에서는 싫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왜 싫으냐?’ 그랬더니 ‘아니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완전히 있어야지 대개만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대충처서 아버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그런 뜻으로 이해를 한 겁니다. 그런데 이 대개가 굉장히 어려운 한자입니다. 이 부분을 고쳤으면 좋겠습니다. 그 대개라는 것이 제가 지금 기억하기로는 큰 대자에다 덮을 개자로 사용하는데 개략 할 때 개자로 생각한 겁니다. 그런데 이 대개 라는 한자가 무슨 뜻인가 하면 ‘일의 원천으로 미루어 보건대’ 그런 복잡한 뜻을 가지고 있는 한자어입니다. 그러니까 저 쪽에서 생각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있다고 하니까 대개만 있으면 어떻게 하냐? 완전히 있어야지. 그래서 빼버린 겁니다. 그래서 그 쪽은 그 쪽대로 찬송가를 만든 겁니다. 근데 나중에 합쳐질 때 보니까 그 미스가 어디에서 나왔냐 하면, 대개란 말뜻을 오해한 겁니다. 그 대개는 그러한 대충이란 뜻이 아니라 ‘일의 근원으로 미루어 보건대’ 그러한 뜻입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는 ‘for’ 이렇게 나옵니다. 왜냐하면, 이는, 그래서 저도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할 때 그 앞에다가 ‘이는’ 이렇게 외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어려운 말 쓰지 말고, 악에서 구하옵소서. 왜냐하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기 때문이옵나이다. 아멘 이렇게
즉 다시 한 번 예수그리스도는 이 송영을 통해서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송영에서 우리에게 다시 한 번 보여주는 겁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우리가 이제껏 주기도문을 올릴 때에 그 기도를 들으셨던 하나님은, 어떤 한 종파의 신이나 그리고 어느 한 종족에게만 경배를 받으시는 이 세상의 신이거나, 또 특정한 지역에서만 힘을 가지고 있는 우상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송영에서 우리에게 장엄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기 때문이옵나이다. 그러니까 예수그리스도는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나라가 임하시옵소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옵소서. 그 다음에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죄지은 죄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시험에 들게 마옵소서. 악에서 구하옵소서.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를 올릴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이런 기도를, 이러한 크고 놀라운 기도를 인생의 본질적인 삶의 원천에 해당되는 이러한 기도를 그 하나님께 올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오늘 예수그리스도는 이 마지막 송영에서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와 그 권세와 그 영광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주기도문을 받으시는 아버지께 영원히 있기 때문이옵나이다.
이 세상에서 무엇을 입고 마실 것인가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고통과 시련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있다기보다는 그렇게 무엇을 먹고 마실까하는 문제를 해결 받고,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 태어나서 단지 먹고 살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명예를 스스로 보존 하며 살고, 또 시련으로부터 벗어나고 악으로부터 구출 받기를 원하는 것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이 주기도문을 받으시는 그 하나님과, 그런 소원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믿고 있는 신, 믿고 있는 대상, 이것과의 차이가 얼마나 놀라운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들은 기껏해야 일용할 양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그런 신을 믿을 뿐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한 조각의 떡을 주어서 우리로 생명을 얻게 하시는, 그리고 한 모금의 물을 주셔서 이 시간도 우리의 생명을 부지하며 살아가게 만드시는 그 하나님은, 단지 빵과 떡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와 그 권세와 그 영광을 영원히 소유하고 계신, 그 거룩하고 위대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오늘 이 주기도문의 마지막 송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찾아오셔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었을 때 건지시고, 우리가 악에 빠질 때에 구하실 때, 우리는 친근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셔서 우리를 고통에서 건져주십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그런 일들을 우리가 반복해서 경험하면서. 우리는 마치 그 하나님이 우리와 친구 되어주신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 만큼 그 분은 하늘 높은 곳에 계시면서도, 이 땅에 낮고 천하고 죄 가운데서 살아가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아무것도 없이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이 벌레만도 못한 나의 인생 속에 깊이 개입하시는 것을 우리는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위대하시고 크신 분이기 때문에 크고 위대한 일에만 관심을 가지시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쩨쩨하고 시시콜콜한 일에까지 관심을 가지시는 것입니다. 심지어 주님은 오늘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도 관심을 가지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먹는 그 음식이 여러분들의 건강을 지탱하기에 충분할 것인가 주님은 관심을 가지십니다. 저 가 먹고 입는 것이 인간다운 삶을 살기에 충분한 것인가, 주님은 염려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눈앞에 잠시 한 마디 노래하고 스쳐지나가는 그 들새들과, 그리고 공중에 나는 참새 한 마리도 주님께서는 관심을 가지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찬양)
오늘 피었다 지는 들풀도 먹이는 하나님
진흙 같은 이 몸을 정금 같게 하시네
오늘 피었다 사라지는 이 들풀도 주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오늘 나왔다 사라지는 이름 없는 한 포기의 풀포기 속에도, 이 인생과 미물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이 드러나 있지 않습니까? 주님은 크고 위대한 일에만 관심을 갖는 게 아니라 사소한 일에도 관심을 갖습니다. 여러분들이 동복 한 벌을 사 입는 일에도 주님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그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하고 학교를 들어가는 일에도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그 하나님의 성품을 오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너무 친근하게 우리의 삶 속에 역사하셔서, 크고 작은 모든 일까지 간섭하시는 것을, 우리의 사랑이 살아있을 때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신실하신 사랑과, 그리고 은혜를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우리의 신앙이 무디어지면, 우리의 작은 삶속에 간섭하시는 그 하나님을 귀찮게 여기거나 아니면 시시콜콜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그 하나님이 우리의 친구가 되신 것처럼, 그렇게 나쁜 의미에서도 오해하게 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충만할 때는 남편이 집안일에 나서서 감 놔라 콩 놔라 팥 놔라 시시콜콜 떠드는 것이, 애정이 담긴 충고로 받아드립니다. 그러나 마음에서 남편을 사랑하는 사랑이 식어지면, 그러면 그게 좀스러운 영감이 하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속에 깊이 개입하셔서, 그렇게 은혜롭게 우리의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실 때에, 우리는 이 기도를 다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 예수그리스도는 이것을 외우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작은 생애에 간섭하셔서, 지극히 티끌 같은 일을 간섭하셔서 우리의 생애를 인도하실 때에, 마치 주님이 우리의 친구가 된 것 같고, 그리고 우리의 인생 속에 간섭하셔서 이것을 내 마음대로 하겠나이다. 안 된다! 하면서 줄달음질을 하면서 마치 이 세상에 있는 부모들과 다투는 느낌이 들 때 이것을 외우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와 그 권세와 그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기 때문이옵나이다. 아멘.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의 크고 작은 일을 간섭하시고. 우리를 향해 한없는 사랑과 넘치는 은혜를 베푸시지만, 그러나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 분의 성품을 오해하지 않도록, 우리의 눈을 우리의 인생에 간섭하시는 좀스러운 하나님이 아니라, 그 빛나는 영광과 그 위대한 나라와 그 엄청난 권세에 눈을 돌리도록,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 주기도문의 말미를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크고 주님이 작게 생각될 때마다, 눈을 감고 이 부분을 외우는 것입니다.
오! 하나님, 오! 예수그리스도시여,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권세와 주님의 영광이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아멘, 아멘.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속에 오셔서 그리고 우리 인생의 크고 위대한 부분뿐이 아니라 작은 부분까지 간섭하십니다. 여러분들이 이 땅에 태어나고 죽는 일이나, 신앙을 갖고 버리는 일에만 간섭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고 살아가면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은혜를 많이 받고나서, 이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그 작은 일에까지 주님은 개입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간섭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에 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기도하며 그 기도를 가르쳐 주시며 틀림없이 우셨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왜냐하면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인데도 나라들은 하나님 없는 것 같이 살아가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권세가 그 분께로부터 났고, 그 모든 권세가 그 분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권세 자들이 그 분께 무릎을 꿇고 경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광이 하나님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자기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있는 나라를 보십시오. 그 곳에 하나님의 다스림이 충만하게 임하고, 주의 성령이 모든 사람들 가운데 오셔서 그 사람들로 하여금 이 주기도문을 받으시는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는 은혜의 때에 그 나라가 과연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 분명해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큰 은혜와, 그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사랑을 받기 전에는 그 나라가 왜 주님의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 가운데 살아가고, 그리고 이 세상의 욕심으로 주님이 좌정하실 자리가 없을 정도로 어두워진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청소되어지고. 주의 성령으로 우리의 심령이 새로워질 때, 그 때에
(찬양)
예수는 우리 왕이여, 이곳에 오소서
보좌로 임 하사 찬양을 받아주소서
주님을 찬양하오니, 주님을 경배하오니 왕이신 예수여
오소서 좌정하사 다스리소서
주님은 우리를 다스리시고 통치하시고 우리 마음대로 살지 못하게 우리의 마음을 붙드시는 이것이 한없는 축복으로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이 시간에도 우리의 마음속을 보십시오. 우리 속에 하나님의 참된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고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께 순종을 하든지 안하던지. 그 나라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간혹 공비들이 넘어와서 한 마을을 점령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고 나면, 총을 들고 잠시 그 고을의 왕 노릇 할 수 있습니다. 데모할 때 보셨습니까? 광화문 네 거리에 나가서 돌 맹이를 집어던지고 화염병을 던지며 는 30분 동안은 그 광화문의 주인 노릇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도 역시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는 곳입니다. 사람들이 꼼짝 못한다고 해서 그 곳이 자기의 땅이 아닌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하나님의 자녀들이 불순종하면서 살아간다고 해서 그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비록 교회 속에서 불순종이 있고, 그리고 우리 모두 순종보다는 불순종의 길을 택하며 살아가기 쉬운 죄의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이고, 여전히 우리는 주의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이 불순종의 반란들을 토벌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토벌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으로 토벌하시고, 그리고 여러분들이 항복할 때에는 눈물로 회개하며 항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도 이 세상의 임금들은 그 땅이 자기의 땅이요, 그 나라가 자기의 것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마는, 그러나 사실은 그 나라의 주인은 주님이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임금들이 꽃으로 쓴 금 옷은, 황금의 면류관은 광채를 잃고 말 것입니다. 그 한 나라를 통치하던 왕도 주께서 부르시면 왕위를 떠나고, 주께서 오라고 명하시매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나서 죽음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북에서 40년이 넘는 세월을 마치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정권이 될 것처럼 그렇게 그 세상을 다스리고 있던 김일성도 죽었습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께서 그를 부르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한 나라가 시작되고 끝나는 것이 그 분의 손안에 있고, 왕들이 바뀌는 것이 그 분의 손 안에 있고, 이 세상에서 신처럼 추앙받던 인물들도 죽음을 향하여 가고, 이 세상을 떠나는 것도 그 분의 손 안에 있습니다. 나라가 그 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이 모든 세상은 주님 앞에 겸비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겸손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권세도 그 분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그 모든 권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그 권한을 이 세상 사람들에게 부여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로 나지 아니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권세를 주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마침내 두려워하는 날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영광도 하나님께 있을 뿐입니다. 영광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영광스러운 것이 있고 거룩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하나님과 관계를 가질 때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이 세상에 있는 자녀들과 똑같이 먹고 마시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로 부름을 받음을 받고, 그리고 우리의 믿음이 우리 앞을 기다리고 있는 기업이 영광스러운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왜 우리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자녀들이라고 일컬음을 받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시기 때문이고, 그분 자신이 영광스러우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영광스러우시고, 그러므로 그 하나님과 관계가 없이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더러운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추하고 더럽고 불결하고 이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인생이라고 할지라도, 그 영광의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변하여 영광스러운 존재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전에 모든 불결한 죄인들이 변하여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로 세움을 입고, 이전에 더러웠던 사람들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사람들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렇게 모든 영광이 하나님 아버지께만 있고, 그 하나님만이 그 영광을 누려야 한다는 마땅하다는 그러한 각오로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미치게 되는 영광이 혹시 있다면, 우리는 그 영광을 받기를 두려워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름을 내기를 좋아하고 얼굴을 알리기를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높이 여김을 받기를 즐겨하는 우리의 성품은, 이전에 하나님을 반역할 때에 가졌던 성품인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가리어지고 우리는 빛을 잃으며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잊혀 지며 ,오히려 우리 안에 역사했던 그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도록 ,우리는 충심으로 하나님 앞에 주님만이 영광을 받으시도록, 간구하는 삶을 우리들이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몸에 완전히 배어서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시기를 바라는 이런 마음이 우리의 삶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사람이 우리를 영화롭게 하고 사람으로부터 우리가 영광을 받을 때에는, 우리가 불안해지고 두려워지고 오히려 우리가 가리어지고 우리가 낮아지고 우리의 이름이 빛을 잃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주님의 이름이 높아 질 때 그것 때문에 우리는 한없이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노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성경은 아멘 이라고 말합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히브리말입니다. 아멘! (certainly) 확실히 그렇사옵나이다. 전적으로 그렇사옵나이다. ‘굳게 하다’란 동사 ‘아만’으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굳게 믿사옵나이다. 혹은 꼭 그렇게 될 것이옵나이다. 아니면 확실히 그렇사옵나이다. 현재와 미래와 과거를 모두 포함하는 동의요 확신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이 주기도문을 하고 아멘을 할 때에 우리는 입으로만 아멘 하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에 있어서 이 아멘은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기도문을 마친 후에 다음에 주기도문을 외울 때까지 우리의 삶 전체가 아멘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삶으로 아멘을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삶으로 아멘 하는 삶을 주기도문을 따라서 살 때, 다음에 모여서 주기도문을 할 때, 우리는 감격 속에 아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격 속에 거기에 아멘 할 때 우리는 또 그 아멘 속에서 다음 주기도문을 외울 때까지, 우리의 삶을 아멘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공급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아멘 이라고 하는 이 마침 속에서, 우리는 아멘이라고 하는 이 마지막 말 속에서, 이 주기도문이 단순이 입으로 외우는 신앙적이고 종교적인 하나의 의례적인 주문이 아니라. 이 주기도문은 그야말로 우리의 삶으로 이루어 가야할 이 주기도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도 삶으로 이 주기도문을 향해 아멘이라고 마침표를 찍지 않은 사람들은, 또 다시 주기도문을 외울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삶으로 이 주기도문의 마침표를 찍은 모든 사람들은, 그 삶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이요, 하나님을 위한 삶이요, 이 주기도문이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는 삶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거의 넉 달 가까이 끌어온 이 주기도문의 강해를 오늘로서 마칩니다. 여러분 저의 이 주기도문의 강해는 끝났지만, 주기도문을 들은 이 신앙의 각오는 영원히 계속되어져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 달라는 기도가, 우리의 모든 기도 가운데 가장 압도적인 기도의 제목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분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현실로 인하여 애통해 하고, 나라가 임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실지로 우리의 영적인 군사로서의 삶을 살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못하게 하는 우리 속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들과, 악한 것과 하나님을 향해 거스르고 반역하는 모든 것들을, 죽이고 멸하며 그리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나라를 거역하고 주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가로 막는, 모든 불의하고 악한 세력들과 더불어 말씀과 성령으로 싸우는, 그러한 역동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임할 때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군사로서,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반란의 깃발을 든 모든 죄인과, 악한 세상을 향하여 선전포고하며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검을 빼들고 그들을 무찌르고 그것이 그리스도 예수의 깃발이 세워지고, 그리스도 예수의 흘리신 보혈의 피가 그들의 영혼을 적시고, 급기야는 그들을 그 속의 강물 속에 정결케 하기에 이르도록, 하나님 앞에 영적인 군사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부귀와 안일함과 명성을 원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세상 부귀 안일함과 명성을 원치 아니하고, 오히려 즐겁게 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며 땅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고대하면서, 즐겁게 고난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그러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확신 합니다. 한국 교회가 모일 때마다 눈물로 이 주기도문을 외운다면 몇 년 되지 않아서 우리나라는 엄청나게 변화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바로 이렇게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달라붙은 그 모든 죄와, 그리고 이 시간에도 우리를 누르고 있는 모든 불신앙과 세상의 염려로부터 벗어나서, 이렇게 그리스도를 향하여 이 주기도문을 외우며 살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한없이 낮아지고 겸비해 지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사모하고, 우리는 마치 막힌 하수구를 뚫는 세척제와 같이 우리가 가서 사는 그 곳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던 그 곳에 바로 그 장소에 우리들이 살아있고. 그 곳에서 예수를 믿고 그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기 때문에,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던 가정에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던 우리들의 자녀들의 삶 속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교회 속에 나라 속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그런 세척제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뜻을 따라서 살았고. 주기도문을 깊이 이해하고 이 감격 속에서 살았던 이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영광 받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부귀와 명예를 귀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니 세상에서 천년을 지내는 것보다, 하나님의 집에서 문지기로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주님의 도구로 쓰임받기를 기뻐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늘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이 식탁 앞에서 이것이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임을 기억하며, 겸비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하루라도 주께서 마실 물과 먹을 양식을 주지 아니하시면 주려 죽을 수밖에 없는 이러한 인생들이 바로 우리들인데, 그 인생들을 주께서 바로먹이시고 입히시는 것입니다.
어제도 식구끼리 모여서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누가 산에 울타리를 쳐 놓고 염소도 키우고 개도 키웠으나 심사가 편하지 않아서 개들에게 밥을 주지 않으니까, 개들이 매인 줄을 끊어버리고 달려가서 염소를 물어뜯어서 다 죽여 버렸다고 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간이 바로 그런 존재이다. 여러분 한 번 몇 년 만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이 귀한 세상이 되어보십시오. 악은 엄청나게 증가할 것입니다. 그리고 끔찍한 살인과 폭력이 잇달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북에서 비행기 한 대 넘어올 때 공습경보 분 적이 있습니다. 단 이 삼분 사이에 슈퍼마켓의 라면이 동이 났습니다. 그게 싸움 싸우듯이 다 뺏어갔습니다. 하여튼 전에 이북 이상한 친구 하나 나와 가지고 불바다를 만들겠다고 그랬더니, 백화점에 가보니까 주먹만 한 컵 라면까지 싹 쓸어 가버렸습니다. 생수 다 팔리고. 부탄가스 다 팔렸습니다. 그게 인생입니다. 근데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므로 우리는 살아있는 겁니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 정직해야 됩니다. 주님이 일용할 양식을 주시므로 우리는 겨우 살아있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 없이 살 수 없음을 고백해야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것처럼, 그렇게 우리의 죄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죄를 지은 모든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그 사람에게는 괴로움과, 그리고 심령의 썩어 들어가는 고통이 계속될 것입니다. 용서에서 나아가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공동체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 곳이 있다면 아마 그들은 구원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서로 용서하고 또 용서를 받으며, 또 용서를 받고 그래서 용서하고, 그렇게 사랑하고 그러면서 완전한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할 때마다, 우리는 나의 죄를 위하여 피 흘리고 살 찢으신, 그리스도 예수의 그 용서의 고통을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 받을 때마다 우리는, 사람을 통해서 주어지는 용서지마는 그 속에서 우리는 아무 공로 없고, 결국 이렇게 살다가 주께서 우리를 용서하시매, 우리를 주께서 주의 나라로 받으신다는 복음을 경험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이 주기도문을 마치면서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모두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용서에서 나아가서 서로 사랑하십시오. 누구든지 사람을 용서하지 않고 가슴에 원망을 품고 있는 사람은 그 원망이 자라서 우리의 가슴이 창질이 나고 썩어지며, 그리고 고통스러운 쑥의 독기를 뿜어내어서 우리의 심령을 피로 멍들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용서의 그 위대함과 그 영광과 그 축복과 그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마지막까지 단 한 톨도 경험하지 못하고, 결국은 용서하지 못하는 자에게 처하는 지옥의 유황불에 떨어지고야 말 것입니다. 한없이 용서하고 긍휼히 여기며 사랑하면서 우리는 주기도문을 배우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깨어서 하나님 앞에 살며 시험 속에서 위대한 믿음을 가지고 그 시험을 극복하는 그런 용기를 보여주겠느냐고 하는 노라고 하는 만용을 갖지 말고., 시험에 들지 않고 사는 것이 가장 주기도문 적인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악으로부터 구출을 받도록 늘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 악으로부터 건짐을 받도록 우리의 소원을 모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기도가 이루어졌을 때, 사람들이 우리의 주기도문적인 삶을 우리의 주기도문적인 신앙을 위대하다고 칭찬하고 훌륭하다고 칭찬하고, 심지어 우리를 성자라고 말할 때, 이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원히 있기 때문 이옵나이다, 이 송영으로 사람들의 칭찬에 답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기도문의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