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 6:13中)
녹취자: 김혜원
3주에 걸쳐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를 말씀을 드렸고 오늘은 기도제목가운데서 마지막 기도제목 송영을 빼놓으면 마지막 기도제목이 되겠습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라는 이 말씀을 오늘 강해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제 지난 몇 달 동안에 계속해서 이 주기도문을 살펴보면서 이 주기도문이 예수그리스도께서 평소에 하시던 그 기도를 당신의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시기를 원하셨고 그리고 그 기도제목은 순서도 매우 중요하고 내용도 중요하지만 예수께서 그렇게 기도하셨던 그런 기도의 영안에서 살아가는 영적인 삶이 선행되지 않으면 아무리 아름답고 훌륭한 기도제목이라도 그것이 우리의 기도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처음 이 강해를 시작하면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예수그리스도 이래로 주기도문은 끊임없이 순교를 당하고 있다.’ 마르틴루터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야말로 오늘날은 주기도문이 아니라 주문이 되어지고 있죠. 생각도 없고 뜻도 없이 그냥 외우는 그런 구절이 되어버렸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이 만약에 이 주기도문을 깊이 이해한다면 복음 전체를 보는 그 틀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에 개혁자들이 처음 예수를 믿으려는 사람들을 거의 1년에서 3년 가까이 주기도문과 사도신경과 십계명을 가르쳤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낱낱이 이 주기도문 하나하나를 해설하면서 끊임없는 질문과 대답 속에서 주기도문의 뜻을 공부하고 설교 듣고 학습해 나아갔습니다. 그만큼 예수그리스도의 이 기도자체는 삶 자체였다 이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첫번째 기도제목으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이루어지며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죄지은 자를 사하여 주시고 또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마지막에 일곱번째 악에서 구하옵소서 라고 하는 마지막 기도제목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늘 말씀드립니다만은 주기도문에서는 뿐만 아니라 성경에서는 순서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왜 악에서 구해주옵소서라는 기도가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며’ 라고 하는 그 기도 바로 뒤에 나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 기도가 마지막 기도가 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들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일곱 번째 ‘우리를 악에서 구하옵소서’ 라는 이 기도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라고’ 하는 기도제목의 바로 뒤이어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시험에 드는 것과 악에 빠지는 것이 그렇게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악은 시험에 든 결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악을 행하고 그 악에 빠지는 것은 모두 시험에 들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시험에 든 모든 사람이 악에 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시험에 들었을 때 그가 어떤 태도와 신앙으로 그 시험을 마주하느냐에 따라서 악에 빠질 수도 있고 악에 빠지지 아니하고 그 시험을 이기고 승리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유혹을 받는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는 광야에서 주리실 때에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심지어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의 신앙고백을 받을 그 때에도 베드로를 통해서 오는 사단의 시험을 받았습니다. 내가 십자가를 지고 이제는 죽어야 하리라 말씀하실 때에 베드로는 말렸습니다. 주여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사옵나이다 결단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사옵나이다 아니 되옵나이다"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유혹을 물리치자 시험을 받고 유혹을 받는 것과 악에 떨어지는 것이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유혹을 받고 시험을 받았으나 악에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승리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악에 빠진 모든 사람들은, 악에 빠진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시험에 들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또 시험에 들고 그 시험에서 벗어나지 아니하면 반드시 악에 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제가 악에서 구하옵소서 말하니까 여러분들은 살인, 강도, 간음, 이런 것들만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성령의 열매를 아홉 가지로 말하면서 솟아나는 육체의 열매들을 열여섯 가지 열다섯 가지나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솟아나는 모든 것은 악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오늘 이 주기도문의 기도를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그리고 나라가 임하고 그리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고 그리고 죄를 사하여 주시고 그리고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하는 이러한 주기도문의 기도들이 우리 속에서 감격가운데 하나님 앞에 기도제목이 되어지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모두 시험에 든 사람들입니다. 깊이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들은 시험에 빠져서 살아가기가 일수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험 속에서 단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의 은혜만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안에 그 안에 이미 그렇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속에 벌써 악이 자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빛이 따로 있고 어두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빛이 사라지면 어두움이 가득차고 빛이 비치면 어두움은 물러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참된 사랑과 그리고 그 큰 은혜와 그리고 신령한 빛이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사라지면 어두움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어두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참된 사랑이 우리에게서 사라지면 그것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참된 경외심이 우리 안에 가득하고 그것으로 충만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속은 이기심으로 가득차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와 그 성령의 능력의 지배를 받으며 살지 아니하면 우리는 육체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시험에 든 모든 사람들이 그 시험을 이기고 유혹을 뿌리치고 승리하지 않는다면 그는 필연적으로 악에 빠지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들은 더 쉽게 이해할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팔 그 끔찍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사단이 가룟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를 팔 생각을 집어넣으니라’ 했습니다. 이 성경구절처럼 논란을 많이 일으킨 성경구절이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뭐라고 말합니까? 가룟 유다가 무슨 죄가 있느냐 사단이 와서 가룟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를 팔 생각을 집어넣었으니 책임은 사단에게 있는 것이지 누구든지 와서 그렇게 집어넣으면 생각의 지배를 받지 않을 사람이 어디l있겠느냐 그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단의 시험 그 시험이 결국은 승리하여 그 시험으로 말미암아 악에 떨어지는 것 그 시험은 준비된 마음에만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찬양)
주 예수님 내 마음에 오사
여러분 수많은 사람이 이 찬송을 불러도 주님이 오시는 사람은 정해져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준비된 사람의 마음속에 주께서 찾아가십니다. 주님은 학력의 높음이나 낮음이나 가문이나 문벌이나 신앙의 경력이나 믿음의 연정은 얼굴의 잘생기고 못생긴 것 그리고 얼마나 돈을 잘 버는지 못 버는지 이런 것들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런 것을 보고 주님 찾아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유명한 자에게 나타나셨는가 하면 무명한 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강한 자에게 오셨는가하면 미천한 자에게 오셨습니다. 여인에게 오시는가하면 남성들에게도 오셨습니다. 어른에게 오는가 하면 어린아이에게도 그분은 오셨습니다. 그러나 준비된 사람이 아니면 주님을 만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반드시 준비된 사람의 마음을 찾아가시고 그와 만나시고 그리고 그에게 다른 사람이 알 수 없는 신앙의 감격과 기쁨과 참된 신앙의 체험을 넣어주시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희미하게 보이던 예수의 사랑이 지금은 뚜렷하게 보이고 이전에 깨달을 수 없었던 진리들을 선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주님이 오심으로써 이루어지는 거죠 근데 시험에 들었습니다. 즉 무슨 뜻입니까? 예수를 팔아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사단에게로 부터 받아서 하게 된 것, 그럴 생각이 머리에 스쳐간 것은 죄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들어왔습니다. 그를 지배했습니다. 그의 심령을 사로잡았습니다. 마음을 정복했습니다. 그의 생각을 모두 지배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그 시험에 빠지자 그는 그 시험에 들었던 상황에서 갖게 된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은 30을 받고 예수를 팔게 되었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우리아의 아내가 밧세바가 목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왕이 그것을 보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걸 어떻게 안보겠습니까? 그 자체는 죄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를 보고 그담에 그 시험에 지고 그 시험가운데 들게 된 생각에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리고 간음했습니다. 그리고 죄를 범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제는 그 죄를 덮어놓기 위해서 우리아를 죽이는 사건에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바로 시험과 악의 관계가 이러한 것입니다. 이렇게 시험에 든 사람들 그 시험 속에서 오래 머물러 있으면 악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여기서 벗어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깊은 속까지 감찰하시고 우리의 내면의 깊은 사정까지를 관통하십니다. 여러분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신 이 기도는 우리에게 우리의 연약함을 꿰뚫어보시는 예수그리스도의 놀라운 신앙의 통찰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시험에 들면 신앙의 감격만을 잃어버릴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험에 들면 신앙의 감격만을 잃어버리고 신앙생활의 기쁨만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악을 가까이 하고 악에 점점 깊이 빠져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에 오래 든 사람들은 금방 시험에 든 사람들보다 그 시험에서 벗어나기가 훨씬 더 어려운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시험 속에서 악으로 악으로 자꾸 빠져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이 같은 악에 빠지는 것은 경험하지 못했지만은 그러나 시험에 들게 될 때에 그 시험의 수렁아래서 입을 벌리고 울부짖는 악의 세력들을 보았습니다. 다니엘이 굴에 떨어지자 그 밑에는 굶주린 사자들이 입을 벌리고 기다렸던 것처럼 시험의 웅덩이에 떨어지게 될 때에 그 속에서 우리는 악의 사자들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악에 떨어지게 되니까 그 악 속에서 더 죄를 짓고 그 악의 구렁텅이 속에 있으니까 더 하나님께 돌아가지 못하고 그러한 상황을 만나게 되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시험의 문제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시험을 당할 때 그 시험을 믿음으로 이기고 신앙으로 그 시험을 물리치고 시련을 맞이할 때 그 시련 속에서 믿음으로 시련을 극복하며 하나님 앞에 서는가 이것이 바로 악에 빠지지 않는 유일한 길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늘 이 일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악에서 구하옵소서’ 이 일곱 번째 기도가 예수그리스도의 이 주기도문의 마지막 간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 기도가 응답되면 그러면 이 기도만 응답되도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그래서 악에서 구하옵소서 다만 악에만 빠지지 않을 수 있다면 시험에 드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을 텐데 시험 그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시험 그 길을 지나면 즉시 악이 우리를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주기도문 이 자체가 이렇게 하나하나 떨어진 것이 아니에요. 거미줄처럼 잔뜩 얽혀있는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해달라고 그렇게 간절히 사모하면서 기도할리가 없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사모하지 않는 사람들이 과연 개인의 삶에 있어서나 그리고 전 세계적인 삶에 있어서나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을 리가 없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이 없이 자기의 뜻으로 자기 인생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에게 시험이 되고 시험은 악을 낳습니다. 여러분 예수그리스도께서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하는 이 기도를 보면서 우리는 인간자체가 얼마나 절망스러울 정도로 힘이 없고 무력한 존재인지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말고 하나님 있이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시험에 들게 되고 시험에 깊이 들었을 때 그 시험을 이기지 못하게 되고 이기지 못하게 되었을 때 악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는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최근에 우리는 이 사회에서 세기말적인 현상들이 일어나는 것을 눈에 보고 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을 통해서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한결같이 하나님 앞에 받아야할 메세지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의 참된 모습이, 과연 하나님을 떠나서 살아가는 인간의 참된 모습이 과연 죄인이구나 라고 하는 이 메시지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하였고 그 죄 가운데 살아가도록 익숙해진 사람들을 이 세상의 법과 질서로 단속하고 그리고 바로잡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세상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서도 그대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때 그 때에만 비로소 우리가 시험을 이기는 힘을 얻게 되고 시험에 빠졌을 때에도 악에 깊이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시험에 든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악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악에 빠져서 그 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문제의 근원이 시험에 든 자기와 그리고 그 시험으로 말미암아 악에 깊이 빠지게 된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지 아니하고 환경과 여건과 다른 사람들에게 있다고 믿는 것이야 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런 존재인 것입니다. 주님이 붙드시고 하나님이 지키실 그 때에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처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붙드시고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그 은혜를 향하여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하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의 믿음으로 붙들고 우리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더 확고히 하며 말씀가운데 매일매일 분별하며 살아갈 그 때에만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시험에 든 모든 사람들은 악에 빠지지 않기를 위해서 더 하나님 앞에 절박하게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악에 빠지는 모든 것은 우리를 잠시 시험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시험이 우리에게 악에 빠지게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악이 우리로 하여금 그 시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시험에 든 모든 사람들이 시험으로 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시험에 든 모든 사람들은 시험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함께 놀고 이야기하고 떠들 때에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뜨면 시험에 든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속에 하나님의 참된 생명과 그리고 하나님의 참된 사랑이 자기의 영혼 속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요. 세수하면서 거울을 보면서도 우리는 시험에 든 모든 사람들은 시험에 든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면서 확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단지 시험에 드는 것이 그것뿐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마치 어두운 동굴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암벽을 두드리는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다가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시험 속에서 출구를 찾기 위해서 동굴을 두드리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깨닫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험 속에서 깊이 하나님을 떠나고 그리고 그 시험 속에서 악에 빠져있을 때 우리는 그 시험이 우리에게 주는 불편함 만을 생각하기가 십상이에요. 시험에 들면은 모든 게 불편해요. 왜그래요? 시험에 들게 되면 일단 기쁨이 없잖아요. 그리고 더욱 불편해요. 죄의식 생각 의욕의 상실 심지어는 질병 이런 모든 고통들이 있게 되니까 그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그 시험을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되는 거죠. 그러나 우리는 단지 시험에 든 것이 아니라 그 시험 속에서 우리는 악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시험에 든 가운데서 우리를 통하여 산출하게 되는 그 우리 자신 속에서 나오는 그 모든 죄와 그 악한 것이 이번에는 우리를 얽어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우리의 영적인 삶을 위한 최선의 치료책은 시험에 들고 시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 수고보다는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예방적인 기도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훌륭한 영적인 삶이라는 것입니다.
가끔 어떤 사람들은 과거에 자신이 시험에 들고 죄악에 빠져서 타락한 것을 자랑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런 과거를 지닌 것이 우리에게 자랑일 수 없습니다. 어느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면서 “아빠 아빠 나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게 되었어. 너무너무 감사해.” 아버지가 “왜 그렇게 감사하냐?” “내가 오늘 차를 운전하고 오다가 고속도로에서 차가 뒤집혔는데 차는 다 불에 타고 나는 상처하나 나지 않고 이렇게 구출을 받아서 경찰차를 타고 집에까지 왔어요. 아버지 나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아버지가 하는 말이 “그런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때는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않다가 왜 그런 사고를 당하고 나서야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느냐”
하나님 앞에 그런 커다란 죄와 악에 빠진 것이 자랑이 아니라 우리가 늘 하나님 앞에 기도하므로 시험에 들지 않는 인생을 살고 그리하여 깊은 악에 빠지지 않고 주님을 찬송하며 노래하며 사는 이 신앙생활이 복되고 유익한 신앙생활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마지막 악에서 구해달라는 기도 속에서 과연 우리가 시험에 들어서 악에 빠졌을 때 이미 그렇게 된 모든 사람들에게 참된 소망이 무엇인지를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바는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그 악에서 구원해 낼 수가 없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그 죄 가운데 빠진 악의 구렁텅이 속에서 시험 가운데 헤매는 그 사람들을 건져내실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 당한 모든 사람들에게 참된 소망은 오직 하나님뿐이신 것입니다. 그 시험 속에서 악에 빠져 고통하는 모든 사람들의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 아버지뿐인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그 악에서 건지셔서 더러운 죄인을 깨끗케 하시고 불결한 인생들을 정결케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께서 이처럼 시험에 드는 일과 악에서 구해달라고 하는 기도를 매일 들으셨던 사실을 보아서도 우리는 얼마나 우리가 시험 속에서 악에 빠지기 쉬운 존재들인지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무엇이나 된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는 교만함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안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이 우리를 붙드시는 그 동안에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듣기 싫은 말이 기본신앙 기본신앙 기본신앙 기본신앙은 있다 기본신앙 없어요. 기본이라는 게 없어요. 다윗봐요. 기본이 무너지잖아요. 인생이 하나님 앞에 그런 것입니다. 그렇게 피할 수 없는 죄와 악의 구렁텅이 속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돌아가려고 애를 쓰고 몸부림 치지만 그러나 늘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죄인들이 자기의 힘으로 자신을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믿으셨던 것은 악에 빠진 모든 사람들이 오직 하나님의 손으로 말미암아서만 구원을 받는 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뱀에 물려 고통을 받을 때 장대 끝에 놋뱀을 매달아서 높이 들고 그것을 쳐다보는 사람은 살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요한복음 3장에서 반복하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모세가 지팡이를 높이 든 것과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 그 후에 그 유명한 말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니까 인간이 자기의 힘으로 자신을 건져낼 수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이기에 어떤 믿음이 우리를 시험가운데서 건져주고 어떤 믿음이 우리를 악에서 구원해 줍니까 그 믿음은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잠잠히 바라보는 것입니다. 자기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악의 구렁텅이에서 고통하며 몸부림칠수록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같이 점점 더 하나님에게로부터 멀어져 가는 수많은 죄인들의 유일한 소망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구원의 밧줄을 던져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마지막의 기도 속에서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인생과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모든 삶이 오직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악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것임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께서 우리를 이 우리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이 죄와 악으로부터 구해주시도록 기도하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삶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시험에 이미 든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악에서 부터 구원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세상과 그리고 마음 속에 있는 그 많은 악함들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모든 시험에 든 신앙생활과 그리고 그 모든 악에서 건져내어주실 수 있는 유일한 힘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구렁텅이에서 빠진 더러운 우리의 심령을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게 하시고 이미 구겨지고 상처받고 그리고 때묻어버린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씻으셔서 우리를 고쳐주시는 것입니다. 주님만이 이 일을 하시는데 주님은 이일을 하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자동차를 장마철에 막 몰고 다니다가 우리 친구목사님을 태웠어요. 차를 타면서 옷을 계속 이래요 왜 뭐가 묻을 꺼 같아서 잠시 세워놓고 점심먹고 오는 동안에 차를 닦아달라고 세차를 부탁했어요. 깨끗이 닦아놓으니까 차가 갑자기 다른 차가 되버렸어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렇게 세수시켜 놓으니까 아직도 이차 새차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이렇게 깨끗이 새차된 차를 반짝반짝 거리는 태양빛 아래서 바라볼 때 기분이 너무 좋아요. 우리 인생이 하나님 앞에 이렇게 새로워지면 하나님이 얼마나 큰 기쁨이 되겠는가 하나님만이 우리를 그 모든 불의와 죄에서 건지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모든 악에서 주님이 끊임없이 건져달라고 기도하면서 생애를 살아오셨습니다. 지금도 보좌우편에서 이런 우리를 위한 죄사함의 기도와 중보의 기도는 그치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일곱 번째 마지막 기도를 보면서 우리 자신들이 얼마나 깊이 시험가운데서 악 속에 빠져있으며 그래서 우리가 그 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있는지를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악한 속에서 우리는 더욱 악한 것들을 내고 그로 말미암아 마음으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를 원하지만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악을 만들어내는 기계처럼 그렇게 악에 빠져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마음을 끊임없이 비우며 우리자신의 참된 모습을 우리의 교만한 눈이나 우리의 어리석은 생각으로 보지 말고 주님의 마음으로 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불쾌하게 생각하시는데 우리를 대견하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잠시 위로 받을지 모르지만 우리 영혼의 참된 소망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인생을 바라보시면서 고통하시는 그러한 마음으로 우리의 인생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우리의 시험 그리고 우리의 시련 때로는 이기기 원했지만 지금은 져서 그것이 우리 속에 악으로 자라가고 있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그 악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이러한 삶으로 나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이 시간에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구해달라고 우리를 위해 빈들에서나 산에서 그 장막 안에서 기도하셨던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그 외롭고 간절한 기도가 생각나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시험의 줄과 악의 모든 그물로 부터 벗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을 위해서 우리는 전심으로 고정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정함이 없는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모든 이러한 삐뚤어진 삶과 잘못된 영적생활과 병든 신앙생활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구원받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이 주기도문의 수준 높은 기도의 제목들을 보십시오 이것은 몇몇 특별한 영적인 사람들을 위해서 가르쳐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서 가르쳐주셨던 것입니다. 정상적인 기독교인의 영적인 삶은 이 기도가 모두 살아서 예수님의 기도가 아니라 나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이 마지막 일곱 번째 기도의 제목을 강해 받으면서 우리는 이 시간에 깊이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시험을 받으셨지만 악에 빠지지 아니하셨기 때문에 시험 속에도 언제나 하나님 나라의 보좌를 움직일 수 있는 기도의 권능을 소유하셨던 것처럼 우리들이 또한 그런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며 그러한 영적인 삶을 우리들이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그 모든 시련과 시험과 죄악의 늪에서 건질 수 있는 (유일한 분)이였던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 한 분을 절대적으로 바라보면서 그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그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에서 건지시고 악에서 건지신 이후에 주님의 이름을 위해 나라를 위해 그 뜻을 위해 죄사함을 선포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이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게 하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