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2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 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사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사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마 6:9-14)
녹취자: 김혜진
지난 시간에 이어서 이번 주에도 주기도문의 다섯 번째 기도,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라고 하는 기도를 계속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를 지은 사람들을 용서한 것처럼 그 기도를 통해서 결국 죄를 피해서 살 수 없는 그 인간의 모습, 그리고 또 하나님 앞에 용서 받아야 한다는 사실 등등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사하여 주옵소서. 네 번째 기도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우리의 육체가 하나님께로 부터 주어지는 매일 매일의 양식을 가지고 살아가듯이, 우리의 영혼은 매일 매일 위로부터 주어지는 그 죄 사함의 은혜로서만, 하나님과의 생명적인 교제를 나누며 살 수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오늘 다섯 번째 기도는, 단순히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라는 이 기도는, 단순히 하나님 앞에 올리는 기도로 만족할 수 있는 기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응답을 받아야할 기도라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 다섯 번째의 기도에 하나님의 응답이 없다면, 앞의 네 가지의 기도를 드리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하는 우리의 탄원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그 죄 사함을 기초로 하나님의 은혜의 깊이와 구원의 기쁨을 회복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이 용서하신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단순히 용서를 받았을 뿐만이 아니라, 나아가서 용서이상의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하고 있다는 징표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다섯 번째의 기도는 우리의 영적인 삶이 왜 하나님 앞에 구원의 참된 기쁨과, 그 은혜의 참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지 못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세상의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범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이 사용하셨던 위대한 사람들이 죄를 피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보면서 ,우리는 오히려 위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소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의 땅에서 인도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낼 때까지 사십 년의 생활, 광야에서 사십년의 훈련의 생활 그 모든 팔십 여년이 넘는 생활을, 오직 하나님 한 분을 위해서 살아왔던 그 모세도 성경은 말하기를 그의 죄로 말미암아,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왕국을 통해서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셨던 믿음의 사람 다윗의 범죄를 생각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이 이처럼 죄로부터 떠날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범죄로부터 피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이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바는, 문제는 얼마나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죄 없는 삶을 사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의 위대함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위대한 하나님의 사죄를 체험 하는가 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죄를 체험한 영혼은 순결한 영혼으로 기쁨과 거룩함으로 다시 덧입게 되어 지고, 당당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영적인 삶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생기를 잃어버린 신앙의 생활과, 우리 모든 얽매인 영적인 모든 삶의 궁극적인 원인은, 바로 하나님 앞에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 형편에 기인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그 죄 사함을 우리들이 소유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자기가 죄인임을 깊이 확신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에, 그 말씀이 우리의 죄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지적하는 지에 대해서 귀 기울이기를 즐겨하는 사람들은 복이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말씀을 듣거나 성경을 읽으면서도, 그 속에서 죄에 대한 지적을 받기를 싫어하는 모든 사람들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 다섯 번째의 기도의 응답을 받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부어지는 죄의 참된 용서가 아니면, 그러면 우리는 결코 그 어디서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그 참된 영적인 생활의 깊이와 은혜와, 하늘나라의 기쁨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그러면 이렇게 중요한 다섯 번째의 기도를 응답 없이 살아가는 일에 익숙해짐으로서, 자기의 영혼이 곤고하고 고통을 받으면서도 이런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까?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참된 죄 사함과, 죄인 스스로 용서 받았다고 생각하는 죄 사함을, 조심스럽게 구분하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죄인들은 언제나 스스로 자기가 죄 사함을 받았다고 착각하면서 살아갈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속게 되면 참된 하나님의 죄 사함이 더 이상 자기에게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죄 용서를 받아야 할 인간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어리석음에 떨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기를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용서하는 이런 어리석은 죄인들에게는 언제나 자기가 스스로 죄 용서함을 받았다고 생각할 뿐이지, 그는 죄 사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지는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지는 그 참된 은혜의 징표 참된 은혜의 표가 없다. 라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비록 자기가 자기는 자기의 죄를 고백했고, 또 스스로 자기가 죄를 용서받았다고 생각할 지라도, 하나님이 그를 용서하신 적이 없기 때문에 그에게는 여전히 죄책이 따라다니고, 용서받은 자에게 들어날 수 있는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복잡하고 신중하게 생각하기를 싫어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을 찾아보십시오.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의 느낌에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신다고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죄 없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라고 요한 일서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죄 사함에 대한 갈망이 없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고 고백을 하면서 죄 사함을 받기를 원하는 갈망이 없는 것은, 스스로 속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보십시오. 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고, 성경 속에서 우리에게 약속된 그 놀라운 은혜들을, 자기의 것으로 소유하기를 그렇게 원하면서도, 사람들이 성경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그 크신 은혜와 약속들을, 자기의 것으로 소유하고 누리지 못하고 있는 그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죄 사함에 대한 갈망이 없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거짓말이란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자신에게 속지 마십시오. 스스로 여러분 자신에게 속으며 시한의 생활을 허송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펴 보십시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믿지 아니하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펼치면 우리에게 대해서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에, 성경을 펼칠 때 마다 성경은 우리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얻었습니까? 얻지 못했지만 그렇게 말하면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 성경은 당신과 더불어 더 이상 인생을 의논할 그러한 가치가 없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지 아니한 그런 시절의 우리에게 성경을 피면 말하는 바가 죄 사함을 받았습니까? 이 질문이었습니다. 죄 사함을 받지 않은 인생은 의미가 없는 인생입니다. 지푸라기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난 뒤에도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죄를 알아도 회개하는 심령이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사람들이 자기가 어떤 죄를 짓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기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그렇게 없는데 왜 여러분의 영혼이 왜 병들어가고 있습니까? 문제가 없는데 왜 우리들의 심령이 가뭄에 마른 들풀과 같이 메마르고,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고 힘없이 살아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부터 죄 사함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죄 사함을 받기를 원하는 것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무슨 천당에 못 갈까봐 죄 사함 받기를 원하는 것입니까? 주님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우리가 그 분을 구주로 영접했을 때. 우리의 죄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가 다 용서 받은 겁니다. 믿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를 믿고 그 그리스도를 영접한 다음에 우리가 죄를 피할 수 없는 삶을 살다가 죽어도, 우리는 하늘나라에 가는 겁니다. 문제는 무엇인가 하면 이 세상에서 그렇게 하나님이 용서해 주신 것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주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셔서 우리가 천국에 가게끔 보증을 우리에게 서 주셨지만, 그러나 오늘 우리가 짓는 이 죄들은 천국과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감에 있어서의 문제란 것입니다. 첫째는 어떻습니까? 이 세상에서 자꾸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 안에서 우리에게 그 죄에 대해서 빚을 갚으십니다. 또 하나는 무엇입니까? 자꾸 죄를 반복해서 지으면서 살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을 근심케 해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죄가 한꺼번에 덜컹 들어오면 누구든지 깨닫는데 서서히 들어옵니다. “예수님이 이 기도를 한 달에 한 번씩 하셨습니까? 일 년에 한 번씩 하셨습니까?” “언제요?” 매일, 매일 언제나 기도할 때마다 죄는 끊임없이 들어와 그래서 우리를 적시고 지나갑니다. 그러니까 어떻습니까? 기도할 때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던 겁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 세상에 누구든지 기도할 때마다 이 다섯 번째 기도를 해야 될 필요가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용서 받아야 될 죄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신앙생활을 제법 잘 하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죄 사함에서 오는 그런 큰 은혜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웃지 못 할 결과가 나오느냐 하면, 모태신앙이고, 뭐 이십 년을 신앙생활을 했고 뭐 그랬는데. 교회도 잘 나오고, 성경도 많이 읽고, 구제도 잘 하고, 헌금도 잘 하고 그러는데 뭐냐 하면 하나님의 큰 은혜가 내 마음 속에 부어지는 그런 부흥회적인 은혜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보니까 맨 날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죄만 짓는 어떤 사람이, 극적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기뻐 뛰는 장면을 보는 겁니다. 그러다 나중에 무슨 결론에 도달하게 되느냐 하면, 이럴 바에야 나도 차라리 타락을 하다 예수를 다시 믿으면 저렇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유혹을 아마 여러분들 중에도 상당수가 받아보셨을 겁니다. 그러나 오늘 분명히 정리 하고 돌아가십시오. 그러한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가 지금 하나님의 위로부터 내리는 그런 부흥회적인 특별한 은혜와, 커다란 하나님의 생명과 기쁨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죄가 모자라기 때문에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이미 넘치고 있기 때문에 경험을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생각을 갖는 사람은 두 번 죄를 짓는 겁니다. 한 번은 하나님에 대한 오해로 죄를 짓는 거고, 또 한 번은 스스로 자기를 제법 의롭다고 생각하므로 또 죄를 짓게 되는 겁니다. 다시 한 번 반복하겠습니다. 그렇게 자기가 타락하면 극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서 은혜를 받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잘못된 것이라는 겁니다. 왜? 그가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고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더 타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죄가 조금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죄가 넘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얼마나 죄에 대해서 무디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지금의 그 넘치는 죄로 죄를 죄로 느끼며 하나님 앞에 죄 사함을 열망하지 않는 그 사람이, 더 큰 죄를 지으면 그때 가서 비로써 하나님 앞에 매어달릴 것 이라고 생각 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입니다.
성경 속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결국에 가서는 회개하고 죽지 않는 사람을 여럿 보이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사람들이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죄 사함을 받아야 되겠다는 간절한 욕망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이 자비하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시고 은혜가 많으시니까 아마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해 주실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는 태평양과 같고, 우리의 죄는 그 바다위에 마치 한 컵의 오물을 붓는 것과 같아서, 하나님의 자비하심 앞에서는 우리의 죄가 없는 것과 같다. 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의 죄를 위해서 돌아가셨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물론 주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지옥의 불길과 천국의 낙원 그 사이에서, 고민하며 죄의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의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에게 부여받기 위해서입니다. 쉽게 말하면 여러분들이 늘 하는 말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세 번째로는 하나님은 죄인들을 즐겨 용서하신다는 그러한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죄인들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착각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의 죄를 결코 가볍게 다루시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죄 사함의 응답을 구하며 몸부림쳤습니까? 시인은 말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쫓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쫓아 내 죄과를 도말 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 하소서. 대저 나는 나의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하였습니다. 그들에게 믿음이 없어서입니까?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이 자비로우시다는 사실을 확신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를 신뢰했고. 누구보다도 사유하기를 즐기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자기의 죄가 하나님의 얼마나 커다란 반역인지를 그들은 보았습니다. 그들의 죄가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을 실추시켰고, 얼마나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였는지를 깊이 깨달았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 앞에 자기의 죄 사함의 문제를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감정이 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과, 하나님께로부터 죄 사함을 받아서 우리가 자유케 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예화) 지난번에 어느 교회 집회를 갔을 때, 어느 한 지체가 나와서 말했습니다. 제게는 이러이러한 끔찍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 얼굴을 보니까 해결이 된 것 같지 않았습니다. 집회 마지막 날 와서 하는 말이 그 말이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까 문제가 내 영혼 안에서 해결 된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이 정리 된 것을 내 영혼 안에서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만약에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죄의 문제가 가볍고 그렇게 아무것도 아니라면, 그러면 시편에 나와 있는 그 죄로 말미암아 고뇌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과, 오늘도 빈들에 나아가 당신의 사랑하는 그 제자들과 자기를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히 신경과민을 보이고 있는 그러한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사람들은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았습니다. 그 죄 이외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그들은 분명히 느끼고 의식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그 놀라운 은혜와, 그리고 구원의 기쁨과 성령의 놀라운 은총과 그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죄로 말미암아 일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들은 나를 주님 앞에서 멀리 하지 마옵시고,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변치 않는 마음을 나에게 달라고 기도하고 간구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죄 사함에 대한 사모함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먼저 죄 사함을 받았을 때에 우리에게 밀려왔던 그 놀라운 은혜와 참된 기쁨에, 그 질과 그 깊이와 그 은혜가 우리 안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가를 확인해야 될 것입니다. 성경 속에서 이렇게 죄 사함을 받고 말 할 수 없이 기뻐하던 많은 사람들의 삶과 신앙을 보면서,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가 속고 있는 부분을 정리하며, 하나님 앞에 많은 죄들을 회개하고 용서를 받음으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어느 때일는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우리들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그 순간은, 반드시 이 죄 사함과 함께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갈망하기에 앞서서 죄 사함을 갈망하십시오. 그로 말하면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갈망한다고 고백하지 않아도, 하나님을 뵈옵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수없이 많은 날 동안, 나의 소원이 주님을 만나는 것이라고 말할지라도, 앵무새 같이 그 말을 반복할지라도, 여러분 속에 죄로부터 정결케 되어야겠다는 갈망이 없다면, 여러분의 기도는 모두 허공중에 있는 뜬 구름과 같은 기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죄 사함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찰스 피니는 말하기를 ‘죄인의 유일한 소망은 자기가 하나님 앞에 유죄 판결을 받은 죄수라고 하는 느낌으로 서는 것 밖에는 소망이 없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확신하기에 앞서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커다란 죄인인 줄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교도들과 신앙 부흥의 시대를 살았던 그 믿음의 선배들은 복음을 전할 때 언제나 율법부터 시작했습니다. 보여주는 바는 무엇이었습니까? 율법이 있는데 그 율법에 비춰보면 당신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율법이 숫돌에 칼 가는 소리 밖에는 들리는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을 놀라 게 만들었습니다.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무섭게 만들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엄위하시고 두려우시고 율법대로 우리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어서 그들이 하나님 앞에 소망 없는 사람들이 되게끔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비로써 한 길이 있으니 그리스도가 너희를 위해 죽은 것이라, 그가 너희를 위해 죽으셨으므로 이제 그 두려워하신 하나님 앞에, 어찌 할 수 없었던 그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것이 너희의 소망이라. 증거하고 간증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얻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인간의 소망은 자기의 죄가 무엇인지를 하나님 앞에서 깨닫는 것입니다. 마음의 어두움은 두터운 구름과 같아서 도무지 그 햇빛이 이 땅에 비취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어두운 마음의 무지와 그리고 그 깊은 흑암의 구름을 뚫고 죄에 대한 확신을 주시기까지 우리는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죄를 생각나게 하시고, 우리의 죄를 느끼게 하시고 나아가서는 우리의 죄에 대해서 애통하는 마음을 주시기까지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이것은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보다도 중요한 기도이고, 나라가 임하게 해달라는 기도보다도 더 중요한 기도인 것입니다. 그 어두움이 걷히고 흑암의 구름을 뚫고 진리의 햇살이 비칠 때, 우리는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그 사소한 죄들이 얼마나 결정적이었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소한 죄들이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오랜 세월을, 가혹할 정도로 긴 세월을 고통과 불안의 터널에서 하나님 없는 삶을 살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든 원인이라는 사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다섯 번째 기도를 왜 예수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눈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도는 무엇보다도 간절한 기도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은 삼십에 팔았던 가롯 유다를 보십시오. 그는 후일 예수를 판 일에 대해서 끔찍이 후회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써 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사랑하였던 은 삼십을 스스로 던져버렸고, 그리고 말하기를 ‘보라 내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게 하였도다.’ 라고 진실을 깨닫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가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결말은 목메어 죽는 것이었습니다. 떨어져서 창자가 터져서 흘러나오는 비참한 죽음이 바로 가롯 유다의 종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지난날에 대해서 가책을 느낀다는 것과, 하나님 앞에 회개한다는 것은 전혀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지금 가롯 유다는 의인의 반열에 서서 천국의 아랫목에서 앉아서 우리 오기를 기다릴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에 대해서 가롯 유다는 자기가 갈 곳으로 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아무리 지난날에 대해서 가책을 느끼는 것은 그건 오히려 영적인 침체를 부채질 할 뿐입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영적 침체에 대해서 설교를 하겠습니다마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돌이킬 수 없는 지난날에 대해서 뼈아픈 후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침체의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고칠 수 없이 흘러간 일은 체념하십시오. 포기하십시오. 그리고 잊어버리십시오. 생각나야 될 것은 무엇이냐 하면 가책이 아니라, 이러한 가책, 지난날의 죄에 대해서 가장 진한 것을 마치 하나님 앞에 깨어있는 양심을 가지고 있는 증거나 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낼 수 없습니다. 가책이 깊어지고 중해지면 마지막에 가롯 유다와 같이 자기 파멸을 부를 뿐입니다. 오히려 이 사람이 가책을 덜 받고 살다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 회개하는 유대인들 무리에 끼었더라면 더 축복되었을 뻔 했습니다. 돈도 다 쓴 다음에, 이런 것은 사단이 가장 기뻐하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 가책을 받는 것,
하나님의 자녀의 필요한 것은 진심으로 자기의 죄를 인하여 끊어진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애통하며 용서를 비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없이 가책을 받는 것은 제대로 되어질 일이 잘못되어 졌다고 하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지나친 후회가 가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죄 사함을 받기위해 간구한 그 참된 용서는 무엇인가 하니, 죄 지어서 잘못 된 것은 포기하는 겁니다.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그러나 무엇을 가지고 애통하여야 하나 하면 이 자체가 아니라, 이것으로 말미암아 끊어진 과거의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 나와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인해서 애통하며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용서를 받게 하는 죄의 고백이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의 세리를 보십시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자기가 행한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심판하는 것에 대해서 부당함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죄가 무엇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이 죄악 덩어리였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죄를 지었나를 일일이 돌이켜 보면서 하나하나 따지는 것은 세리에게는 의미가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 자신이 이미 죄인이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죄악의 덩어리였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심에 죄인 된 자기의 유일한 소망이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죄에 확신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에 대한 확신은 슬픔을 불러일으키고, 이 경건한 슬픔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로 인하여 애통하며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입니다. 죄인들의 회개하는 눈물과 용서를 구하며 부르짖는 자들의 부르짖음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겠습니까? 이미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미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기도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하는 믿음의 기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참회하는 그 태도의 깊이가 우리로 하여금 죄에 대한 용서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가 죄에 대한 용서를 가져다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죄 사함을 필요로 하는 인간들에게 이 십자가는 무엇을 말해 주고 있습니까? 우선 이 십자가는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다루실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십자가는 죄를 간과하고 넘어가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보여줍니다. 이 세상의 죄인들을 용서하고자 하되, 이들에게 대신 죄를 지어 죽게 하지 아니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을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미 획득한 안전한 구원, 그러니까 나는 어떻게 살든지 천국에 가리라는 그것 하나로만은 이 어두운 세상을 행복하게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티켓 하나를 가지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든지 확실히 기쁘게 살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티켓도 가짜입니다. 마음속에 구원을 받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결코 이 다음에 천국 가는 것 가지고는 만족할 수 없는 그것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나의 삶속에서 지금 내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참된 기쁨과 용서와 은혜를 누리며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기쁨과 사랑 속에서 살아가지 못하면 만족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안전합니다. 그러나 죄 많은 세상 험악한 풍파를 헤치고 살아갈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구원 해 주실 것이라는 약속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완전한 화목, 그 안에서 그를 사랑하는 자에게 부어주시는 구원의 기쁨과 은총, 사랑과 생명의 능력이 없이는 참된 행복도 영적인 승리도 믿음의 기쁨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죄 사함을 진심으로 간구하기까지 이러한 용서의 은혜를 유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로 말미암아 끊어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며, 마라와 같이 쓴 물을 머금은 고통과 불안의 세월을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자기의 죄를 미워하고 슬퍼하며 용서를 간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십자가를 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는 이전에 뿐만 아니라, 지금도 당신이 하나님 앞에 괴로워하고 있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크고 무거운 죄가, 거룩한 피로 단번에 용서받았음을 보여 줍니다. 이것이 바로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자기의 죄인 됨을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는 자들에게 위로의 버금이라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고, 눈물을 흘리는 자는 주님이 친히 그대들의 눈에서 눈물을 씻기실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그 눈물을 씻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에 밀려오는 하나님의 참된 사랑과, 막을 수 없이 쏟아지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분이 사랑이심을 이제는 지식으로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으로 고백을 하게 되고. 요한처럼 그 분의 품에서 주님의 숨소리를 들으며, 박동소리를 들으며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우리를 송사하던 모든 양심과 율법의 송사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말할 것입니다. 시인처럼 고백할 것입니다. ‘행악하는 자들아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곡성을 들으셨도다.’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말하시면서,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나 개인의 죄 만이 아니라 우리 전체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이 기도는 주님 자신이 올린 기도였습니다. 주님은 스스로 죄 없으신 분이였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죄 사함을 구하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에게 우리의 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 자기의 죄가 없기 때문에 죄 때문에 고통을 받거나 슬퍼하실 리가 없었음에도, 그는 여전히 죄로 말미암는 고통과 슬픔을 경험하며 사셨습니다. 자기의 죄가 아니었으나 그러나 우리의 죄를 인하여서 경건한 그 분의 심령은 고통을 받았고, 그 분은 우리의 죄를 인해서 죄 없으신 몸으로 죄의 형벌을 당하여야했습니다. 주님이 자기의 죄를 인하여는 슬퍼하신 적이 없었어도, 이 세상 사람들의 죄로 인하여는 늘 아픔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죄가 개인적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의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적인 지체의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지 못한 개인의 영혼은 곤고할 뿐만 아니라, 다른 지체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다윗의 죄는 나라의 고통이 되었고, 다윗의 죄를 알지도 못하는 죄 없는 사람 7만 여명을 온역으로 삼일 만에 죽게 만들었습니다. 주님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성을 보고 우셨을 때에, 그 예언이 성취되어서 사십년 후에 예루살렘은 회개치 아니하므로, 멸망을 당해서 수십만 명의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 수십만 가운데는 경건한 사람이 한 사람도 들어있지 않았겠습니까? 우리의 죄를 자기의 죄처럼 여기며 기도하셨습니다. 아간 이외에는 아이 성을 전투 할 때에 죄에 대해서 아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한사람의 죄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고통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죄 없으신 분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죄인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가운데에서, 우리는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기의 죄가 아닌 죄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용서를 기도하던 대제사장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주님이 매일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아버지 앞에 간구하지 않습니까? 우리 가운데에 있는 죄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갚아야할 공동의 부채인 것입니다.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지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게 죄 지은 자들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니껀 니꺼, 내건 내꺼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죄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갚아야할 공동의 부채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한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믿음의 가족들은, 다른 식구들의 죄를 위하여 간구하여야하는 의무의 짐을 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주님을 우리들과 한 식구처럼 사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 사함을 구함에 있어서도 주님은 우리의 죄가 자신의 죄인 것처럼 기도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하여 무감각해지는 것은, 죄로 말미암는 무감각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매일 이른 새벽 미명에 제자들이 잠든 깊은 밤에 한적한 곳으로 나아가, 죄 없으신 몸으로 죄 있는 자들의 죄를 마치 당신이 갚아야 할 빚처럼 여기며 눈물로 죄 사함을 간구하였습니다. 십자가에서 남긴 마지막 간구도 ‘아버지여, 저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가 아니었습니까? 이렇게 매일 죄 사함을 구하며 살아가는 기도와 삶의 방식이 십자가의 유언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일용한 양식을 달라고 기도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우리의 영혼은 죄 사함으로 말미암아 내려오는 하늘의 생명의 양식과 그 은혜를 누리고 있는지를 돌아보며, 이렇게 나의 죄를 위해 우리 공동체의 죄를 위해, 나라와 민족의 죄를 위해 제사장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가 탄원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도록 부탁하신 주님의 가르침이 주는 의미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