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강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나님께 영광을 1
녹취자: 추정민
우리는 살면서 수시로 시험을 만나고 시험에 들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생활이 어려워지는 것을 매일 매일 겪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시험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상태에 들어가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그럼 하나님이 왜 신자들에게 이런 시험을 허락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첫째는 이 세상이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우리 내면에 있는 죄로 말미암아 시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우리의 육체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혼과 마음을 온전히 보전하는데 있어 우리 자신의 힘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거룩한 고백입니다.
시작한지가 엊그제인 것 같은데 벌써 12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이 주기도문 마지막 강의가 되겠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주기도문의 산맥을 타고 걸어왔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는 장엄한 표현으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구하고 ‘그 나라가 임하며’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도와달라는 하나님을 위한 간구 세 가지, 그리고 이어서 등장하는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 네 가지, 첫 번째 기도가 ‘일용할 양식을 우리에게 주십사’하는 하는 기도였고, 두 번째 기도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한 것 같이 우리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 세 번째 기도가 ‘시험에 들지 말게 해달라는 기도’, 그리고 지금 우리가 마지막으로 다루려고 하는 기도가 ‘악에서 우리를 구해주십시오’ 라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습니다’라는 찬송으로 이 주기도문은 마무리가 됩니다. 이 마지막 두 가지를 함께 묶어서 오늘 마지막 시간에 다루려고 합니다.
‘악에서 구해주십시오’라는 이 기도가 우리를 위한 네 번째 간구가 되겠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소명을 따라 살게 되는데 그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소명을 따라 살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시험을 만나게 되고, 시험을 만났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지 않으면 반드시 악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힘을 내어 신앙생활을 잘 해도 하나님이 악에서 우리를 지켜주시는 도움 없이는 우리가 진정으로 승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주기도문의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가장 큰 주제가 되는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에서 ‘악’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것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이냐 하는, 인간이 끊임없이 탐구해온 중요한 철학적 주제와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악의 의미는 무엇이고,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우리가 먼저 알아보아야 합니다.
구약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 악이라는 것은 사탄 자신을 의미하거나, 인간이 하나님의 율법을 거스르며 살아가는 상태, 하나님이 그것에 대해서 도덕적으로 판단하신 결과, 곧 나쁜 것이라고 하는 가리킵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이 악을 이렇게 설명하는데, 악은 곧 마귀라는 등식으로 설명합니다. 이것이 요한일서 2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악하고 비열한 사람을 가리켜서 악이라고 말합니다. 또는 악을 나쁜 것, 심지어는 육체의 연약함까지도 악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악이라는 것은 판단의 주체되신 하나님이 판단하시기를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판정을 받은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그 기준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맨 처음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선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여기서 ‘좋았다’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토브”(טוב)라는 단어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의도하신대로 세계가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기준이 있었는데 이 기준에 딱 맞는 세상이 창조된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뭔가 인간이 잘못된 일을 행해서 하나님의 창조 목적, 곧 원래의 의도로부터 빗나간 모든 것이 악입니다. 선은 기준이 있지만, 여기로부터 이탈한 것은 악이라는 의미입니다. 선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악의 판단의 기준은 또 무엇일까요? 다시 말하면 선악의 판단 기준은 무엇일까요? 인간이 어떤 선을 행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작용한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이렇게 있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어떤 식으로든지 영향을 끼쳐서 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마음으로 악을 행하잖아요? 그것은 하나님이 영향을 준 것이 아닙니다. 무엇인가가 영향을 주었을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자신이 악을 받아들임으로 악을 행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것은 결국 은혜의 결핍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가장 잘 설명한 사람이 어거스틴입니다. 어거스틴은『엔키리디온』(Enchiridion ad Lavrentivm: de Fide Spe et Caritate)이라는 자신의 유명한 책에서 상처의 비유를 듭니다. “악이라고 하는 것은 좋음이 결여된 것이다. 동물의 몸에 질병과 상처가 있는 것은 건강을 빼앗긴 것이다. 그런데 치료를 받았을 때에 몸 안에 있던 나쁨, 곧 질병이나 상처가 거기서 떠나서 다른 곳에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건강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상처가 났는데 약을 바르고 잘 치료하면 새 살이 돋아 건강이 회복됩니다. 몸 자체는 실체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지만, 거기에 나쁜 것들, 즉 질병이 생겨서 인간을 괴롭게 하면 이것을 육체의 좋음의 결핍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악이라고 하는 것도 선한 것들에 붙어서 그것을 부패시키고 망가뜨림으로 생성되는 것이지, 악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어거스틴의 유명한 논증입니다. 악의 기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는 선했는데,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죄를 지음으로 악이 들어왔다고 설명하는 것으로 기독교에 큰 영향을 끼친 유력하고도 대표적인 설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