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강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나님께 영광을 2
녹취자: 추정민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이 있는데 인간의 경우에는 그 기준이 계속 변합니다. 50년 전의 도덕적 판단의 기준을 놓고 오늘날을 본다면 엄청나게 바뀐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선악의 판단 기준은 영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계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인간들로 하여금 세계를 잘 정복하고 다스려서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신 목적이 드러나도록 이 세계를 가꾸고, 또 인간들은 서로 사랑하고 살면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서로를 사랑하며 계시는 것과 같은 그러한 모양을 드러내기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오신 것도 이 창조 목적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거기에 맞지 않는 것이 바로 악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길버트 체스터턴(Gilbert K. Chesterton)이라는 영국의 사상가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쓴 유명한 책이 있는데『정통』(Orthodoxy)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참으로 모든 사물들의 질서와 그 수는 마치 로빈슨 크루소의 배에서 살아남은 낭만적인 잔존물인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좋은 것들은 태고적 폐허에서 살아남아 보존된 신성한 잔존물이라는 느낌이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여기 굉장히 큰 고대의 배가 있습니다. 그런데 쪼개져서 난파선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온갖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유물의 가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있는 위치와 그 주변에 있는 유물들과 서로 연관을 이루면서 각각 하나씩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고대의 생활상을 종합적으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것이 다 없어져버리고 도굴을 해서 하나씩 꺼내서 따로 팔아버렸다고 하면 이것이 몇 세기의 것인지, 바다에서 쓰는 물건인지, 땅에서 쓰는 물건인지, 여기서 생산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 가져온 것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모든 것이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모든 사물을 볼 때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한 본래의 목적이라는 연관 속에서 그것들을 해석한다면, 이 사물 하나 하나가 어떠해야 하며, 심지어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의미가 발견되지 않겠느냐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길버트 체스터턴이 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이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인간은 위로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옆으로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큰 목적을 드러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류를 서로 사랑하는 가족처럼 만드신 모습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이 인간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만물들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면서 이 모든 만물들을 원래 하나님이 이것을 지으신 목적에 이바지하면서 살게 하는 것입니다. 이 세계를 잘 이용하고 가꾸어서 보다 더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 나아가 인간과 동물을 비롯한 자연이 함께 공존하는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신 뜻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끊임없이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한 번 쓰고 버리는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양산하여 양심의 가책 없이 버립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목적과 위배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환경에 대해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제일가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신 목적을 잘 드러내서 사람들이 그 세계를 보면서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느끼게 만들고 그분을 즐거워하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해서 어떻게 해야 선을 행하며 살 수 있겠는가에 대한 모든 지식의 보고가 성경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지, 또 자연을 어떻게 돌봐야 할 것인지, 그리고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우리에게 두 가지 지식을 주셨습니다. 하나는 믿음의 규칙입니다. 무엇을 믿고 어떤 내용의 신앙 안에서 살아야 하는가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생활의 교훈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또는 하나님을 아는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만 진정으로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라는 것이 생활의 교훈입니다. 이 두 가지를 주심으로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은 행복하게 하며, 주신 자연을 잘 관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무시하고 살아가는 삶이 바로 악입니다.
죄는 인간의 영혼 안에 있는 경향성이며, 마음 안에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성향으로 작용합니다. 죄가 열매를 맺으며 자라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악이고 비참입니다. 악은 그 마음의 성향이 나타나서 죄가 실행된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열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많은 사회적 모순과 도덕적 비참은 결국 죄가 실행된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은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신 목적과 구원 계획대로 사는 것이고, 악은 거기에서 벗어난 모든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서, 주기도문의 뜻을 따라 살려고 할 때에 반드시 시험을 당하게 됩니다. 이 시험은 인간의 내면에 작용하고, 시험 때문에 인간은 결국 악으로 이끌리게 됩니다. 시험은 복음 전파를 위해서, 소명을 따라 살 때 마주쳐야 하는 환난과 시련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것을 주관적으로 볼 때에는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기에 부적합한 모든 상태를 가리킵니다. 결국 시험과 유혹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험은 객관적입니다. 시험에 대해 신앙으로 직면하는가 아니면 신앙 없이 불신앙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시험이 우리를 선으로 이끌 수도 있고 악으로 이끌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결국 하나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이 비난하는 악한 사람이 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지켜준 결과이고, 우리가 악한 사람이 된 것은 주님이 우리를 악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날마다 우리를 붙들어 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죄 없는 주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우리와 똑같은 인간성을 가지고 오셔서 시험을 당하셨기 때문에 주님이 시험 가운데 있는 사람을 붙드시는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믿으며 우리가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