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영광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 (역대하 7장 1절)
녹취자: 이현정
우리가 일평생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아야할 텐데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버릴쩍 거리지만 얼마나 하찮게 섬기다가 죽는지 모릅니다. 저는 어느 날 나의 살아온 인생을 이렇게 돌아보면서 지금붜 한 3~4년 전의 일입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내 인생길을 이 세월까지 살아오면서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정말 주 예수보다 귀한 것은 없다고 그렇게 알고 고백하면서 살아왔는데 주님을 위해서 한 것이 너무 없었습니다. 지금도 주님이 오라고 하시면 정말 기쁘겠지만 한 가지는 슬플 것 같습니다. 내가 그렇게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주님을 위해서 한 일이 별루 없다 이겁니다. 근데 벌써 50년 가까운 세월을 살면서 돌아봐도 주님을 위해서 한 일이 없는데 남은 생애동안 그러면 엄청난 일을 하다가 죽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한 5년 전에는 머리가 하얀 사람만 보면 그렇게 눈물이 났습니다. 왜냐하면 얼마나 허무한가. 일생을 살아서 이제는 하얀 머리가 되어 가는데 저 사람이 과연 얼마나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주님이 원래 창조하실 때 의도하셨던 삶을 살았을까.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얼마나 많이 공경하면서 살았을까 이런걸 생각하니까 그 사람의 인생이 내 인생처럼 그렇게 슬퍼질 수가 없었습니다.
한주일의 삶을 보면 얼마나 버리적 거리며 사는지 몰라요 일주일이 지나도 한 세시간도 내 마음대로 시간을 내지 못하고 짜여진 스케줄 속에서 삽니다. 근데 열매가 너무 작습니다. 마지막에 이 세상에서 눈을 감을 때도 그런 아쉬움 속에서 눈을 감을 겁니다. 토요일 마다 거룩한 부흥 속에서 그 마지막 장을 몇일 전에 읽으면서 그 데이비드 브레이너드가 병상에서 조나단 에드워드와 주고 받았던 이야기를 에드워즈 목사가 브레이너드 장래식에서 회고 합니다. 정말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입었고 그리고 정말 하찮은 인생을 살았지만 그래도 위로가 되는 것은 조금이나마 이 세상에서 주님을 섬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게 없다 이겁니다. 그 사람은 감히 마지막 죽으면서 조금이나마 주님을 섬길 수 있었다고 고백을 했는데 나에게는 그것도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하나님의 큰 일을 하다가 죽는 다는 것은 불가능 하지만 내가 그런 일들을 일으키는 불씨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무슨 뜻이냐면 성냥개비 하나가 홀로 최선을 다하여서 타오를지라도 성냥개비 하나가 태워지는 불꽃밖에는 안됩니다. 그런데 그게 커다란 장작더미 위에 불을 붙이면 발화도구가 된다면 상상 할 수 없는 엄청난 불을 일으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오늘 이 성전이 완공되고 난 다음에 솔로몬이 보여준 이 그림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 할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번제물을 다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했고 수많은 사람들은 방석을 깐 그 땅에 엎드려서 우리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영광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우리를 사르고 제물들을 사르고 하나님 자신의 영광이 교회에 가득하게 되는 이러한 역사가 바로 우리가 스스로 일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미천한 인간들이지만 우리가 불씨가 되어서 발화 도구가 될 때 하나님이 이루실 수 있는 위대한 일들이 바로 이런 일들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그러한 하늘의 불을 불러 내리는 도구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성경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이 항상 이런 식으로 하늘에서 불을 내려 보내셔서 하나님의 성전을 당신의 기이한 영광으로 가득 차게 만드셨던 것은 아닙니다. 절대 하나님을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느냐. 하나님이 절대 그렇게 아니 하시고 하나님께서 하신 위대하고 놀라운 일은 항상 드물게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런 영광이 가득하기를 원하시지만 실제로 그 일을 행하실 때에는 하나님은 항상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솔로몬 자신도 긴 세월동안 왕위에 있었지만 솔로몬 자신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의 기이한 영광이 온 성전에 가득하게 되는 이러한 경험을 늘 경험하면서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이 처럼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는 항상 사람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방법을 통해서 나타나지 않고 사람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방법을 통해서 나타나면 그 방법을 만들어내는 사람을 세상이 주목할 것이지만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주목하게 돼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이 일들을 하시는 거십니다.
바닷가에 가면 파도가 확 밀려와서 암벽을 탕하고 때리면 그러면 수많은 물거품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불과 몇 십초 지나지 않아서 모두 거품이 되어서 사라져 버리고 다시 변함없이 파도는 계속해서 칩니다. 그런것 처럼 이 세상에 저마다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는다. 주의 일을 한다고 하지만 모두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불러오는 훌륭한 도구로서 살다가 죽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거품처럼 나타났다가 거품처럼 사라집니다. 그래서 인생을 70밖에 안 되는 짧은 인생을 살고 그 중에 어린유아시절을 20대까지 제하고 나면 뜻을 세우고 살아가는 기간은 50년 밖에 안 됩니다. 침체에 들었던 때 병들어서 마음이 있으나 섬길수 없었던 때, 이젠 너무 나이 들어서 직분을 가지고 있으나 활동적으로 섬기지 못하던 때를 다 제외하고 나면 실제로 우리가 섬기다가 죽는 기간은 정말 얼마 안 됩니다. 그 얼마 안 되는 기간 동안에 무얼 위해서 살고 한 번 밖에 없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내 인생의 분명한 목표가 무엇인지 인식도 없이 욕망에 휘둘리고 이 세상에 가치관에 흔들리면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길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다가 우리의 인생이 어느 날 불현듯 끝나게 됩니다. 그것은 남의 인생이라고 할지라도 우리에게 그렇게 슬플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한번밖에 없는 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하고 고정된 목표를 가져다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오늘 성경에 보니까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이런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인터쉽 과정하면서 우리가 인생을 훌륭하게 살고 정말 아릅답게 사역하는 것은 너무 쉽습니다. 말로는 너무 쉽다 이겁니다. 그래서 아까도 그런 이야기를 했죠. 책을 써서 좋은 책도 보면 다 이해안가는 것이 없습니다. 다 이해 갑니다. ‘그렇게 살아야지 그래 나도 늘 생각하던 건데 여기 다 나오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든 사실들을 아는 사람에게 나타나시는 것이 아니라 사는 사람에게 나타나십니다. 설교만 해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면 정말 살아있는 설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간단합니다. 땀 흘려 연구하고 준비된 설교를 놓고 (녹취불가) 기도하고 외칠 때 피를 토하면 됩니다. 딱 세문장 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이 몇 사람이 됩니까. 그래서 우리들이 몰라서 못하는 것이 많지만은 사실 대부분의 것은 못해서 안하는 거지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보십시오.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제사를 지낼 때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에 가득했습니다. 성전에 가득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마음을 쏟아 부으면서 녹아내리듯이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솔로몬이 뭘 기도 했을 까요? 부귀와 영화와 영토를 위해서 기도 했겠습니까? 그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나라를 주님의 공의대로 다스려서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무한히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고 그래서 그는 자신의 생애에 정말 몇 번 안 되는 하나님을 향한 절대 의존의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매달렸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간절한 기도를 드릴 때 그 때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여러분들이 나아가서 이제 인터쉽을 마치고 가서 사역할 때 ‘아 사역을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그런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일 먼저 유년부면 어떻습니까. 중고등부면 또 어떻고 청년부는 더 좋습니까? 여러분들이 무엇을 맡고 있던지 거기에 가서 하나님의 영광이 그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에 충만하게 나타나기까지 죽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치 유년부 전도사를 하면 내 존재의 목적이 이 유년부 전도사에 있는 것처럼 기도하고 이 사역이 끝나면 나도 하나님의 나라에 갈 것처럼 (녹취불가) ‘여기서 한 일 년 굴러먹다가 그리고 내년쯤에 청년부 한번 맡아 봐야지 청년부에서 한 2년 워밍업을 한 다음에 또 장년교구 한번 가봐? 장년교구에서 한 1년 업무를 살핀 다음에 드디어 내가 깃발을 꽂아봐? 그때가 진짜지 지금은 모두 연습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마직막날 까지도 결코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뭐냐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재물들을 다 태웠습니다. 이것은 헌신입니다. 헌신. 그래서 내게 맡겨준 영혼들이 누구이든지 간에 그리고 내게 맡겨진 하나님의 포도원이 크던지 적든지간에 그것과는 상관이 없이 주님이 맡겨주신 이 포도원이 내게 전부인것 처럼 내 생명을 바꿀수 있어야 합니다. 너무나 우수운 질문이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사역을 하다가 왔느냐 그건 하나님에게 중요한게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설교자는 설교의 성과에 의해서 하나님께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설교를 하기까지 받았던 고통에 대해서 보상을 받는 것이다. 성과가 크게 나타났으면 자기가 그걸 나타나게 했나? 하나님이 그렇게 하게하신 것이지. 그래서 마지막 고백이 주님의 일을 실컷 한 다음에 마지막에 고백은 우리는 무익한 종 일 뿐입니다. 그런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거기서 그게 자신의 생명의 이유인것 처럼 생각을 해야 합니다. 유치부를 맡았던지 중고등부를 맡았던지 청년을 맡았던지 하다못해 지역전도를 맡았던지 아니면은 그것도 안 되어서 일대일교사를 맡았던지 간에 무얼 맡았던지 간에 이게 이 이상은 나에게 없다 그리고 이것이 내 인생에 전부다 그리고 거기에 모든 것을 걸 수 있어야 합니다. 전부를 걸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바로 그겁니다. 그렇게해서 주님의 큰 영광을 나타내는 도구가 되면 홀로 애쓰며 일궜던 열매 백년을 모아도 맺힐 수 없었던 열매들을 하나님이 맺히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크게 역사하십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이 훌륭하게 크게 쓰셨던 사람들은 크게 쓰임 받으리라는 꿈을 꾼 사람들이 아닙니다. 처음에 자기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아파하면서 그렇게 고뇌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작은 일을 통해서 달아보시면서 하나님이 쓰시는 겁니다. 그것이 헌신입니다. 근데 여러분들 생각에는 어느 교회건 지도자가 가장 많이 헌신할 것 같죠?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왜. 이건 신앙의 문제이기 때문에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교회 장로님 한분이 와서 그렇게 괴로워했습니다. 왜 그러냐 했더니 ‘저희는 너무 목사님 하고 안 맞습니다. 괴롭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오고 싶다고 해서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냥 거기서 잘 장로역할 해야지 우리교회 오면 뭐하냐, 어떡하냐’ 하며 왜 그러냐고 했더니 ‘목사님이 교회를 사랑 안해요.‘ 아니 목사인데 교회를 사랑하지 않다니. 목사님이 헌금도 잘 안해요.’ 하도 기가 막혔습니다. 무슨 소리냐! 추수감사헌금에 2~3만원을 봉투에 넣었습니다. 절대로 여러분이 무슨 부서를 맡고 있고 교역자로 있으면 여러분이 가장 헌신 하는 것이 자동일 것 같지만 절대로 안 그렇습니다. 거기에서 그릇된 동기 빼고 하나님 앞에 올바르지 않은 것 빼고 나면 무엇이 남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절대 신앙의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로서 가장 중요한 자격은 우리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물으실 때에드 그 실패한 사람을 예루살렘교회 지도자로 부르시면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던 겁니다. 모든 헌신은 거기에서 나옵니다. 내 주님이 너무 사랑스럽기 때문에 주님이 너무 귀하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나를 세워주신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바쳐서 헌신하고 충성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쏟아 부어서 그래서 이것 밖에 없다. 그렇게 하면서 최선을 다해서 자신을 쏟아붓는 전적 희생. 전적 헌신, 이 내 인생에 최고의 가치는 내게 맡겨주신 영혼들이 잘 되는 것이다. 내가 모든 것을 허비하고 나 자신을 허비하게 내어주어서라도 될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원하노라 내가 죽어서 너희가 산다면 내가 죽는 그 안에서 너희들이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그것이 정말 기쁘다‘ 그런 고백을 하면서 살 때 하나님이 그 사람과 함께 하시며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이런 영광스러운 나타남을 보여주실 가능성이 가장 많습니다.
교회에서도 가만히 보면 목숨을 건 사역자들에게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생명을 건 사역자에게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내게 맡겨진 영혼을 내가 가장 사랑하고 그리고 내게 있는 소유와 나의 건강 그리고 내게 있는 미래의 모든 기회들 까지도 그 영혼의 자녀들을 위해서 모두 쏟아 부은 사람들에게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그랬습니다. 너무나 사랑하니까 두렵지 않습니다. 자유함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은 모두 헌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그 이야기를 회심하고 나서 얼마 안 되어서 제가 들었습니다. 벨기에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반뉴벤이라고 하는 선교사였습니다. 소록도처럼 섬이 하나 있어서 나환자들을 모두 모아놨습니다. 옛날 얘기죠. 지금은 나병이 불치의 병이지만 옛날에는 더 했습니다. 모두 모아 놓고 그 젊고 건강한 청년이 거기에 선교사로 가겠다고 자원을 했습니다. 아무도 안가는 곳을. 가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내가 거기에 가서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데 하나님이 나를 건강하게 지켜주실 것을 믿습니다. 내가 거기 가서 감염될 것을 우려할 나머지 악수도 안하고 그들을 멀리 떨어뜨려 놓고 말씀을 전한다면 누가 복음을 듣겠습니까. 그리곤 그 흐물흐물한 손을 가진 사람들과 악수를 하고 심지어 빰이 뭉그러져가는 사람과 끌어안고 입술을 맞추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니 절대로 나병이 안 걸렸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정말 여기에서 이 영혼들을 위해서 섬기고 죽고 싶다.. 그럴 정도로 예수의 사랑을 열심히 전했습니다. 이상하게 회심자가 안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괴로워서 자기의 숙소에서 빠져나와서 산책을 하는데 곳곳에서 이 텐트를 쳐놓은 그 곳에서 수용되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의 불빛이 새어나오면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렇게 들어보니 “야! 반뉴벤 선교사 봤지? 말씀전할 때 인물이 나잖아 얼마나 말씀을 잘 전하시냐. 너도 그 선교사님 말 듣고 예수 좀 믿어라.” “아니야 몰라서 그래 그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우리에게 하나님 말씀 전한다고 하지만 자기가 건강하니까 그렇게 되지 그 사람이 만약에 우리처럼 나병에 걸린다면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을 계속 가지고 그 일을 할 수 없을 꺼야.” 또 다른 텐트에 가보니까 그런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자기가 성한 사람이니까 그렇게 말하지 우리같은 사람이 되어봐, 그럼 자기도 아마 신앙을 갖기 힘들 꺼야. 하나님이 자신들을 이렇게 저주하시는데 어떻게 내가 그 하나님을 믿을 수가 있겠어.” 돌아와서 이 반뉴벤 선교사가 무릎을 꿇고 딱 한번 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믿음으로 기도하던 그것을 범벅합니다. 나에게 자연적인 원리에 의해서 이 나병이 옮아 오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나서 정말 얼마 안가서 눈꼽처럼 하얗게 핀 나병환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이 마디하나하나 떨어지는 그 상황에서 이 고름에 뭍은 성경책을 들고 예수의 이름을 찬송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다. 우리의 육신은 이렇게 이 질병에 의해서 무너져가지만 그러나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우리 안에 있는 이 아름다운 영혼은 하나님의 나라에 간다.” 그러면서 결국은 치료함을 받지 못하고 거기서 사역하다가 순교했습니다. 그 광경을 보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회심자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입니다. 마음이 녹도록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다 주도록 그렇게 모두 바쳐서 그렇게 해서 헌신하고 희생하려고 할 대 그때 하나님이 그런 사람의 기도를 들으셔서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그러한 삶을 사셨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러분들 인턴들은 물론이거니와 교역자들 그리고 또 구역을 돌보고 있고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직원들에게 있기까지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모두 하나님께 드리며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 곳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는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 이래로 사면을 두루 살피시면서 이렇게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하나님을 위해 자기를 다 비운 사람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나타나기를 갈망하는 그런 사람을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찾으시면 너무너무 기뻐하시며 그를 위해서 무엇이든지 주시려고 하는 마음. 우리 주님의 마음. 여러분들이 한 사람 한 사람이 흩어진 포도원에서 그렇게 주님의 마음에 기쁨이 될 때 교회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