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영광, 사람들 중에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 2:14)
녹취자 : 장주은
아마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이 기쁜 소식을 사회적으로 미천한 사람들에게 먼저 알리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의 목자들이 밤에 자기의 양떼를 지키고 있을 때 주의 사자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게 바로 다윗의 동네에 그들을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 라는 것입니다.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를 보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인데 그분이 다윗의 동네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의도가 깃들여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랫동안 다윗 왕국의 재건을 꿈꾸던 사람들이었고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부흥이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동네에 오심으로서 다윗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그 이스라엘의 재건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그 복음의 나라가 하나님의 왕국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의미심장한 것은 이제 이렇게 강보에 싸여서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를 볼 텐데 그것이 너희에게 표적이 된다, 그랬습니다. 표적은 어떤 사물이나 사건이 가지고 있는 눈에 보이는 의미보다도 더 깊이 감추어진 어떤 의미가 있는데 그것을 우리가 표적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것이 큰 기적을 동반했을 때 우리가 그것을 표적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믿음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성찰을 요구합니다. 사실 이스라엘을 가기 전까지는 그저 성탄 카드나 이런 것을 보면서 의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거기에 가서 보고 나서 비로소 깨달은 것이 구유가 크리스마스에 통나무로 파서 죽을 부어서 먹이는 것처럼 되어있는데, 후대의 사람들이 생각해서 거기에 집어넣은 것이고 당시의 구유는 땅을 파서, 아니면 터가 돌멩이들이 많은 곳은 돌멩이 같은 부분을 파서 거기에 구멍을 말들이나 짐승들이 먹는 사료 구멍으로 삼고 웅덩이에 먹을 것을 집어넣으면 짐승들이 와서 먹는 그것이 구유였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나무로 만든 구유도 아니고 그저 돌멩이를 파서 만든 웅덩이에 예수 그리스도가 눕혀지셨다, 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려내는 것 보다는 훨씬 더 비참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다윗은 비천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다윗은 화려하였고 그리고 웅장한 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게 정말 비천한 말구유에 노예의 자식처럼 태어나셔서 그를 통해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위대한 나라가 얼마나 영적인 나라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그때에 홀연히 수많은 천군 천사가 나타나서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천군이 천사와 함께 찬송을 하였다, 라는 것은 아마 같은 표현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야외‘째바오트’라고 하는 구약의 군대라고 하는 것입니다. 전쟁의 측면에서 보면 천사들이 하는 일들이 여럿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기도 하고 자기의 하나님을 택하신 사람들을 돕기도 하고, 수호천사가 있느냐 없느냐, 이런 이야기는 칼빈도 잘 모르겠다고 했지만, 이런 이야기라든지. 그런가하면 전쟁과 관련해서 말할 때는 천사들이 싸우는 군대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아마 천군과 천사의 이야기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것도 보면 신학적으로 우리에게 깊은 통찰을 줍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복음의 전파가 영적인 전쟁과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위대한 메신저적인 선포와 함께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우리가 교역자 시간에 기도 많이 해야 된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신학을 공부하고 열심히 전도하고 하는 것이 말하자면 천사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알리는 것이라면 거기에는 영적인 군사들이 필요해서 영적인 힘을 가지고 그 모든 세력들을 제압하면서 전파하는 복음이 효력이 있도록 그리고 우리들이 먼저 그 말씀에 붙들려 살도록 하는 영적인 전쟁이 우리에게 뒤따른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무튼 그러면서 들려오는 의미 깊은 찬송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그랬습니다. 뭐가 그랬다는 겁니까?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있다,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가 있는데, 무엇 때문에 그런 영광, 평화가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 때문에 이루어지는 영광이요, 이루어지는 평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아기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이루어지느냐.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보게 되어 그분 앞에 부복하게 됨으로써 영광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아기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모든 것이 결국은 우리들이 말하는 효과적인 영광인데 이 놀라운 영광이 어떻게 드러나느냐 하면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사역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전에도, 성탄절에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마는, 예전에도 하나님은 살아계셨고 그때도 하나님은 살아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쉼 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일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안에서만 일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바깥에서도 일하시고 아무도 보지 않는 자연의 세계 속에서도 하나님은 일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역사하고 일하셨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의미를 이스라엘 사람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계시의 불완전한 성격 때문에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불완전함 때문에 또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불완전한 세계관과 오염된 신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어떤 일들을 이 세상에 이루시는 가에 대한 이해가 박약해서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서 그 하나님이 이 세계를 향해 하고자 하는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일들에 신학이 무엇인지를 드러내셨는데 그게 바로 세계의 비밀스러운 경륜을 이루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인간들을 구원하여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게 하시는 위대한 사역이었습니다. 이 위대한 사역, 이 위대한 일들을 이루심으로서 결국은 이 땅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존재하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대해서 이런 의미를 가지신 분이구나, 그리고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이런 사람이 되고 이런 존재가 되어야 하는구나, 하는 것을 비디오와 오디오로 보게 해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사신 생애의 사역이었고 생애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천군 천사가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노래했던 이유는 이 비록 구유에 누인 아주 하찮은 노예의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셨지만 그분을 통해 이루어질 영광이 얼마나 큰 것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비천한 구유에 낮은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정했던 것처럼, 우리는 또 그런 낮아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함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당신을 전하실 때 일어났던 것과 꼭 같은 효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일평생 우리에게 전할 그런 전파의 최고의 제목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이것이 하나님이 이 세계를 향해 가지고 계신 비밀스러운 경륜의 나타남이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두 번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했습니다. 이 영광, 즉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시고 창조하신 세계가 무엇이고 인간인 내가 왜 태어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게 될 때에 그것을 알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적어도 그 사랑이 없이는 그 하나님의 경륜을 알 수 없고 그 경륜을 올바르게 안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 사랑을 그 안에서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으로 재편된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그런 평화를 누리면서 그 결과로서 평화를 주어지게 되는데 그것이 ‘샬롬’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이 이루어지고 화목이 이루어진 사람들은 오늘 아침에 빌레몬서 1장 1절과 2절에서 본 것처럼 반드시 하나님과의 변화된 관계는 인간들과의 변화된 관계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 속에 온전한 평화가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달은 사람들이 누리게 되는 평화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깊이 만나고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변화가 없는 사람들의 은혜는 신뢰하기 어려운 은혜입니다. 그것이 정말 은혜인지 아니면 감성적인 움직임인지 그것은 우리가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반드시 사람들과의 관계에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이 샬롬이라고 말할 때 하나님과의 샬롬만이 아니라 하나님 그리고 그 하나님과의 샬롬으로 말미암는 모든 사람, 자연의 모든 만물과의 샬롬, 그 안에서 자신이 안녕한 상태, 모든 것을 포괄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에게 바로 이런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의 비밀이 알려졌으면 우리가 또한 이 화목을, 이 평화를, 사람과 자연의 이 세계 속에서도 아울러 이루어 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