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을 주시는 하나님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깃발을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셀라)(시 60:4)
녹취자: 김명진
사실 에돔은 그렇게 강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이스라엘의 수하에 있었는데 이스라엘이 에돔과의 전쟁에서 패하게 되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은 충격은 굉장히 컸습니다. 이 시인은 다윗인데, 그 때에 이 시인은 그 역사를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에돔이 강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패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려서 흩으시고 분노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패배한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켜 주옵소서” 하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나하라임이라고 나오는데 이것은 메소포타미아지역을 가리킵니다. 아람소바도 지명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은 요압이 돌아와서 에돔 사람들을 소금골짜기라고 하는 사해 남쪽에 있는 지역에서 타파해서 일만 이천 명을 죽이고 전쟁에서 이기게 됩니다. 그 때에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이 시를 지었는데, 이 시는 단순한 감사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역사에 대한 교훈을 얻으라고 지은 시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깃발을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 전쟁에서 깃발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영화에서 보면 깃발을 서로 빼앗으려고 하고 혹은 고지에 총탄을 무릅쓰고 먼저 세우려고 하고 하는 이유는 깃발이 가진 어마어마한 상징성 때문입니다.
일본 천황이 죽었을 때 한 전직 육군 대장이 자결을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러․일전쟁 때 전쟁에 나가는 장군에게 천황이 깃발을 줍니다. (천황이 전쟁의 책임이 없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천황이 깃발을 주었는데 그것을 결국은 빼앗깁니다. 그런데 천황이 용서를 해주라고 합니다. 그래서 용서를 받고 일평생 빚진 자로 살다가 천황이 죽는 그 날, 전직 장군이 활복 자살을 하고 그 부인은 천황의 영정사진 앞에서 단검을 심장에 겨누고 그 앞에 엎드러져 죽습니다. 이것은 깃발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주께서 깃발을 주시고, 하나님이 깃발을 주셨다”는 의미는 전쟁에 나가서 승리하게 하게 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깃발을 들고 적군과 싸우는데 깃발을 높이 들었다면, 전세가 기운다면 깃발을 들고 있는 사람을 내버려 두겠습니까? 사기의 문제기 때문에 제일 먼저 공격의 대상이 됩니다.
(예화) 멜깁슨이 나오는 패트리어트라는 영화가 있는데 마지막에 북부군이 남부군에게 다 패해서 위기에 몰렸을 때에 도망가는 군인들을 어떻게 격려하였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멜깁슨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깃발을 높이 쳐들면서 소리를 지릅니다. 자기들은 다 도망을 가는데 깃발은 앞으로 나아갑니다. 거기서 사람들이 다시 용기를 내어서 깃발을 따라갑니다.
“하나님이 깃발을 주셨다”라는 말은 그 깃발을 들고 전쟁에 나가게 하셨다. 그리고 그 깃발을 높이 들어서 전세를 승리로 이끌어 가게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누구에게 그런 깃발을 주시냐 하면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주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깃발을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이 세상에서 유명해지거나, 남보다 뛰어난 지위에 오르거나, 혹은 남을 경쟁상대로 보고 예수 안에 있는 형제들을 극복해야하는 대상으로 보면 큰 복이 없습니다. 항상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냐면 하나님을 아주 겸손하게 관심의 대상이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다양한 기회를 주십니다. 당신을 위해 싸우고 당신을 위해 분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섭리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주시는 기회와 몸부림을 쳐서 다른 사람을 밟고 모함을 하고 짓밟고 경쟁상대로 보고 투쟁을 통해서 쟁취하는 기회는 현저히 다릅니다. 하나님의 복이 다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은 당신 자신의 아름다움에 기뻐하고 당신의 은혜에 만족해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하나님이 다양한 방식으로 당신 자신의 일을 위해서 쓰시게 됩니다.
제가 회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예배시간에 설교를 듣는 데 어느 목사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신들이 만약 왕이 되었다면 누구를 쓰겠는가? 배신할지도 모르는 능력 있는 사람을 쓰겠는가? 아니면 능력은 조금 모자라지만 충성스럽게 당신을 보필하고 당신에게 순종하는 사람을 쓰겠는가? 어리석은 인간일지라도 사람을 쓰는 원리가 그러한데 하물며 하나님은 어떠시겠는가?”
저를 포함해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능력도 없고 모든 것이 부족한데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간은 이미 만들어진, 똑똑하고 유능하고 잘 준비된 이런 사람들을 찾지만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을 찾으셔서 그에게 깃발을 주셔서 그 깃발을 들고 싸우고 이기게 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을 보니까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 에돔과 싸워서 승리를 했습니다. 이스라엘나라가 이방나라면 전쟁에서 이겼다고 하면 관심은 전리품에 가 있지 않겠습니까? 전쟁에서 이겨서 전리품을 모두 빼앗고 그것들을 나누어 갖고, 영토를 왕에게 바치면 왕이 그 영토의 일부를 떼어서 주고, 그런 것들이 전쟁에서의 논공행상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에서는 그것이 아니라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 다시 말해서 깃발을 들고 전쟁에서 승리해서 그 깃발이 높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돋보이고 드러나는 것은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이 당신을 경외하는 백성들에게는 자비를 베푸신다. 하나님이 당신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은혜를 베푸신다.”라고 하는 역사적인 교훈이 남겨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로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것이 아니라 실제 우리의 모든 삶에서 이 원리가 적용되어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이 드러나는 그런 것에 이바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완전히 일치하는 표현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반드시 그분의 말씀인 진리가 높이 여김을 받을 때 반드시 행복할 것이고, 그런 세상이 되게 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왜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창조하고 구원하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목적, 곧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그 일에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그 이름의 달콤함과 아름다움을 잘 모르고 하나님의 이름이 어디에서인가 높임을 받았다고 할 때 그렇게 마음속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그것이 없는 이유가 바로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경외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는 너무 소외적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만 중요하고 내가 하는 일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나에게 큰 관심사가 되지만 다른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만나는 사람 중에서 그런 점에서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분이 패트릴 백 총장이십니다. 웨스트민스턴 신학교 교장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만났어도 처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어디에서든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가끔은 중국에서 일어난 일, 혹은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선교적인 아름다운 소식들을 이야기하면 그 자리에서 온 마음으로 자기 일처럼 기뻐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모두 주님의 은혜입니다”하고 혼잣말로 계속 이야기 합니다. 그런 태도를 보면서 ‘저것이 바로 하나님이 자기를 경외하는 사람에게 깃발을 주시는 이유이구나.’ 그렇게 남이 복음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는 늘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남의 교회가 잘 되면 세속적인 타협 때문이고 자기 교회가 잘 되면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 때문이며 남의 교회가 잘 안 되면 재능이 없고 헌신이 부족해서이고 내 교회가 잘 안되면 하나님께서 연단하시기 위해서 지금 이렇게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나 자신의 삶의 태도에 대해서 정말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는 항상 마음속에 누구에게, 미국에 가든 외국을 가든 자기네 사역 속에서 하나님이 영광을 돌리셨던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내 일처럼 기뻐하는 것을 배웠었습니다. 왜냐하면 내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만이 기쁨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곳에서도 주님의 이름이 높아진다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참 기쁨이고 행복이 되는 일이어야 합니다. 그러한 정신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만약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깃발을 주셔서 그래서 그 깃발을 펄럭이면, 그 깃발이 높이 달게 했다면, 존귀히 여김을 받으셔야 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한 사람의 사역의 탁월함, 재능의 뛰어남, 또는 헌신의 철저함, 정신이나 일하는 자세나 리더십의 우월성 이런 것들에 의존되어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가 높이 드러나서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설교시간에 졸다 갔던 사람은 본문도 설교자도 자기가 예배드린 교회이름도 생각을 못합니다. 조금 은혜를 받은 사람은 본문도 교회도 기억을 못해도 설교자의 이름은 또렷이 기억하고 그의 팬이 됩니다. 그러나 진짜 하나님이 깊이 만져주신 사람은 교회 이름도 장소도 설교자도 기억이 나지 않아도 자기를 대면하셨던 하나님의 말씀만이 일평생 기억에 남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는 잊혀져야 할 것이고 그분이 기억되어야 할 이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삶이 철저하게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고 가려져야 하고 우리의 사역에 이 깃발을 통해서 보는 모든 사람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진리의 말씀은 세세 무궁토록 있으며, 하나님은 지금도 그 말씀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교회를 일으키시는구나,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랑이시구나.’ 이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사역자가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방해하는 것들을 날마다 내려놓고, 그리고 자신을 버리고 겸손해지고 그렇게 살아갈 때 하나님은 더 많은 기회를 주셔서 그에게 깃발을 주시는 것입니다. 어디서든지 그 깃발을 달아 자기 이름 석 자를 새기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그 위에 새겨 모든 사람들이 그 깃발 아래서 주님을 경외하게 하는 것, 이것이 우리 사역의 목표가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