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비한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그 때에 내가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스 8:21-23)
녹취자: 김명진
아닥사스다 왕 때에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였습니다. 이 사람이 바벨론 포로 귀환을 주도하게 됩니다. 첫 번째는 아니었습니다. 첫 번째는 이미 스룹바벨에 의해 이루어졌고, 이제 이 에스라의 포로 귀한이 그 다음에 이루어지는데,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포로로 끌려 간 지 70년의 세월이 지났고 20세를 한 대로 한다면 삼 대, 할아버지 대에 이미 바벨론의 포로로 갔고, 손주 때에 귀환을 한 것입니다. 강제적으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 마음에 감동 된 사람들만 돌아가도록 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문제는 70년 동안에 이미 이루어졌던 삶의 모든 기반들은 확실했지만 이것을 버리고 예루살렘이 어떤 형편인지도 모르고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겠다고 올라간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결단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오랫동안 살았던 삶을 접고 선교사로 가는 것보다도 더 막막한 삶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바벨론 포로로부터 돌아오게 되는데 왕이 모든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부족하고 어려운 것이 있으면 왕에게 청구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라가 아하와 강가에 왔을 때 하나님 앞에 갈 길을 생각하니까 아득했던 것 같습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끊임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투서들이 후에 들어가게 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렇게 고운 시선으로 성전 건축을 지켜봐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무장한 군인도 없이 그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떠나가게 될 때에 안전하게 예루살렘에 들어갈 것이라고 누구도 확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라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한 것입니다.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금식의 특징은 하나님을 향한 집중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절실한 집중이 금식기도의 커다란 힘이었습니다. 따라서 금식을 선포했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제 이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지으러 예루살렘에 갈 때까지 우리의 모든 길을 오직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지켜주셔야 된다.’라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매달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절실하도록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렸고 이런 간절한 매달림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일치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해 가져야 할 가장 커다란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우리들이 하나님의 용서에 대해서 계속 공부를 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길고 어려운 용서의 과정을 거치게 하셨을까?’ 하나님은 어떤 식으로든지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복수하시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복음에 반하는 개념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떠한 잘못을 했건 죄를 지었어도 하나님은 당신의 구원받은 자녀들에게 우리의 죄 때문에 당신이 받은 손해에 대한 앙갚음으로 하나님의 자녀에게 보복하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그러면 성경에 나오는 그 풍부한 복수의 개념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를 교화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마치 엄마가 아이에게 “학교에서 곧바로 집에 오지 않으면 너 죽어”라는 의미가 아이를 위해서 칼을 갈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듯이 표현이 과격하면 과격할수록 어떤 일에 대한 아이의 순종을 요구하는 엄마의 강한 의지와 욕구를 보여줍니다.
구약에 나오는 진노에 대한 표현들, 특히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진노의 표현들에 대해 우리는 뒤집어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무참한 보복에 대한 경고는 뒤집으면 하나님의 가슴 저미는 사랑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께 복수만 받지 않으면 다행이다. 보복만 받지 않으면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히 회복시켜서 당신과의 사랑 안에서 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회복은 단지 하나님이 복수를 하지 않으시겠다는 선언으로 그것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떤 잘못을 계기로 우리의 신앙과 삶의 모든 한계를 총체적으로 보고 그 앞에서 하나님을 다시 한 번 경험하게 하시는 은혜의 기회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명령을 내리셔서 모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되었을 때, 그 때에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것을 다 주셔서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에스라도 그것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의 정체성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데 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금식을 선포한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랄 분은 우리 하나님 한 분밖에 없고 그 속에서 주님만이 우리를 지켜주시는 유일한 분이시고, 우리가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우리의 구원이시오. 우리의 방패시며 우리의 요새이신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라고 하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우리의 존재가 가장 아름다울 때가 둘 있는데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할 때와 진실하게 회개 하는 그 순간, 그 때가 하나님을 인간을 보실 때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상태입니다. 그 두 경우 중 어느 경우든지 공통적인 것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의존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입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모든 피조물과 만물에 대한 의존을 벗어나서 초월적으로 독립하시는 것이고, 인간의 아름다움은 그 하나님을 의존하며 사는 것, 그것이 바로 한 인간의 아름다움입니다.
이렇게 에스라가 하나님 앞에 금식을 선포하고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겸비해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들의 무가치함을 깨닫고 한 순간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다는 절실한 상태가 되는 것, 그것입니다. 똑같이 낙심했지만 가룟 유다는 절망감으로 나아가 목매어 죽었고 베드로는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였습니다. 그것이 성경이 그리고 있는 완전한 복음적인 회개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는 회개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겸비를 배웠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정말 기뻐하셨을 때가 백성 전체가 하나님 앞에 겸비해졌을 때입니다. 홍학의 춤이 아름답지만 한 마리가 추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수만 마리의 홍학이 춤추는 군무가 아름답듯이 한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도 아름답지만 공동체 전체가 한 나라의 백성 전부가 그렇게 겸비하여져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더 아름다운 것입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겸비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우리와 우리 어린아이들과 우리의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하나님께 간구하였다고 했습니다. 왕이 평탄케 해주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에게 말하기를 “우리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모든 사람, 즉 하나님 자신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구하고 찾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고백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직접적인 도움을 받고 싶었지 왕의 군대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예루살렘에 무력으로 쳐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학사 에스라의 신앙적인 측면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세월이 많이 흐르면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도 잘하고 눈치도 생기고 사역의 세계에 대한 이해도 갖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세월이 많이 흐르면 저절로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간사님들 처음 발령장을 받고 맨 처음 직원예배에 참석했던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선배들은 잘 하는데 내가 이 속에서 정말 잘 할 수 있을까? 하나님 정말 도와주십시오.’ 그런 기도를 드렸던 기억이 날 것입니다. 교역자도 처음 떨리는 마음으로 어린이 예배의 설교를 했던 그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매 순간 순간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의 문제이고 사랑의 문제이지 세월이 흘러간 경력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사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갈 때에 겸비해졌던 것은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됩니다. 기도할 필요 없이 쉬운 길이 있었음에도 오히려 그 길을 버리고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는 길을 택했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척 큽니다.
저는 휴가 기간 동안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내가 가진 재능으로 하나님을 깜짝 놀라게 해드릴 수 있을까?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하나님을 깜짝 놀라게 해드릴 수 있을까?’ 무엇으로도 우리는 하나님에게 깜작 놀라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 그래서 주님의 손에 붙들려 살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 ‘주님이 아니면 나는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라고 하는 어린 아이와 같은 고백 속에서 산다면 그것은 정말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