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 (2)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시 9:10)
녹취자 : 김세나
I. 본문해설
지난 시간에는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할 것입니다’라는 이 찬송을 설교하였습니다. 오늘은 하반절입니다.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이라고 말하는 부분은 히브리 성경으로 ‘키’라고 하는 부분인데, ‘왜냐하면’이라고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을 아는 것과 그리고 주님을 의지하는 것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주님을 아는 사람들이 우리 주님을 의지하는 이유는, 왜냐하면 하나님이 당신을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라는 뜻입니다.
II. 주를 찾는 자들
A. 주를 찾는다는 의미
그러면서 여기에서 ‘주를 찾는 자들’이라는 단어가 등장을 합니다. ‘찾는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히브리어 성경에는 ‘다라쉬’(vr'D;)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분사형태를 사용하는데, ‘다라쉬’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수없이 많이 나오는 단어입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는데, 대게는 찾다, 추구하다, 간청하다, 심지어는 구걸하는 것 또한 ‘다라쉬’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찾다’는 뜻은 무엇인가 간절한 열망을 가지고 원하는 바가 꼭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열렬히 추구하고 찾고 간청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실감나게 여러분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아주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간절히 찾아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권을 한번 잃어버리고 3일 동안 간절히 찾았는데, 결국 못 찾았습니다. 특히 제가 아끼던 것을 잃어버렸을 때에는 정말 절실하게 찾게 되고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때에는 체념하기 전까지는 커다란 낙심이 옵니다.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중병에 걸려서 아무 희망이 없는 남편이나 부모, 혹은 아내를 두고 약초를 캐러 나간 사람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 약초 하나만 간절히 찾을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들이 아무 가치 없어 보이고, 내가 찾는 그것만이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한 찾음의 대상이 된 것, 이게 진정한 의미에서의 ‘찾는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 ‘구한다’는 의미입니다.
B. 찾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평화로운 생활과 안정된 여건을 주셔서 평정을 유지하며 살기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좋은 것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모든 좋은 것들은 하나님이 원인이시고, 하나님이 수여자이시고, 하나님 때문에 우리가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항상 그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모든 좋은 것을 좋은 것으로 여기고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종종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로 하여금 간절히 하나님을 찾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찾게 하시는 하나님이실까? 이 문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하나님은 두 가지를 사용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하십니다.
제일 먼저는 우리의 영혼의 고통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미 한번 하나님의 사랑을 맛본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있는 그 무엇으로도 잠시는 기쁨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같은 완전한 만족을 주는 기쁨은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세상으로 돌아가서 거기에서 즐거움을 누려도 그 즐거움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영혼의 진정한 행복을 능가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늘 그리워하게 됩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그 순간, 우리가 거듭나고 변화된 사람이 됩니다. 변화되었다라고 하는 것은 겉으로만 하나님을 잘 믿고, 교회 잘 출석하고, 착한 사람이 되는 그러한 정도로 변하였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속의 내면의 세계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하나님 없이도 넉넉히 살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때로는 곤고하고 힘들기는 하지만, 모든 것이 좋아지면 다시 마음도 좋아질 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는 그 순간 하나님이 우리의 내면의 세계를 완전히 새롭게 하셔서, 그래서 우리의 영혼의 참 생명이신 하나님과 만난 사랑의 경험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하나님께로부터 깊은 사랑을 받고 그래서 하나님과의 충만한 은혜의 교제 속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영혼이 이미 맛을 보았습니다. 이미 그렇게 맛을 보았기 때문에 나머지 것들은 인간의 참 행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직접 맛보았기 때문에 다른 것으로서는 그것이 만족이 안 됩니다. 절대로 만족이 안 됩니다. 그것입니다. 절대적인 사랑을 경험함으로 그러한 만족을 누려봤기 때문에 다른 것들로는 만족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그렇게 변화되었으면 그 다음에는 거기에서 하나님이 말씀을 주셔서 말씀의 맛이 얼마나 달콤하고 우리의 영혼에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는가 경험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깊음과 기도 안에서 주님과 만나는 은혜의 경험, 예배 속에서 주님을 뵈옵는 신령한 기쁨,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한 성도들이 함께 나누는 은혜의 교제, 사랑의 기쁨, 이러한 것들을 경험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을 이미 경험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이 진정으로 경험되어졌기 때문에 이 영혼의 고통이 상대적으로 더 심해지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이러한 것이 있습니다.
(예화) 제가 몇 년 전에도 예배 시간에 이러한 퀴즈를 냈는데, 부부가 둘이 같이 살았습니다. 있으나 마나하며 살고 가끔 싸우고, 그렇게 별로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둘 중 하나가 죽었습니다. 그러면 남아있는 한 사람의 수명이 연장이 됩니다. 어느 목사님이 그랬답니다. 어느 교회에 갔는데 나이 70살 먹은 자매님이 계신데, 얼굴이 환하고 너무 예쁘더랍니다. 그래서 어떻게 그 연세에 그렇게 젊음을 유지하시면서 행복한 표정을 하시면서 사실 수 있느냐고. 남편이 30년 전에 죽었답니다. 별로 사이가 안 좋으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한 부부는 너무 떨어져서는 못 사는 사람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전화하고, 문자하고 매일 매일 뜨겁게 사랑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죽었습니다. 둘다 남편이 죽었습니다. 한쪽은 맨날 싸우다가 남편이 죽고, 다른 한쪽을 뜨겁게 사랑하다가 남편이 죽었습니다. 누가 빨리 시집 갈 것 같습니까? 전자입니까? 후자입니까? 전자 일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전자의 사람은 남편한테 하도 데여서 미래에 결혼 생활을 할 엄두를 내지 않습니다. 한번 고생했으면 됐지, 또 비슷한 사람 만나서 고생하면 어떻게 하나, 그런 답니다. 둘이 있어도 혼자 사는 것과 똑같았기 때문에 죽었어도 표가 별로 안 납니다. 그런데 후자의 사람은 둘이 항상 붙어살았기 때문에 딱 죽으면 절실하게 표가 나는 것입니다. 그 빈 사랑을 어떻게 채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살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갑자기 시집을 가 버리거나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같이 살다가 자기가 죽었는데 아내가 금방 시집을 갔다, 둘이 정말 뜨겁게 사랑한 것입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디에서 오느냐 하면 사랑의 경험입니다.
그러니까 곤고함을 깊이 느끼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들이 영혼이 곤고하게끔 내어버려 두십니다. 물론 그것은 우리의 잘못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친밀한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에 오는 현상입니다. 내버려 두십니다. 그렇게 어떻게 됩니까? 영혼의 깊은 고통을 느끼게 하십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이 아니면 무엇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영혼의 기근을 경험하게 하시고, 거기에서 무엇으로도 위로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마치 고멜이 고생을 많이 한 후에 내가 내 남편에게도 돌아가리라, 결심하였던 것처럼 다시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가기 원하는 아주 절실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이 당신을 찾게 하시는 첫 번째 방법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침에 일어났는데 왜 그런지 마음이 건조하고 눈을 뜨자마자 세상의 염려와 근심이 확 밀려옵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에 대한 모든 희망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근심들이 밀려들어오면서 그러면서 마음이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내버려두기 시작하면 위험한 것입니다.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를 합니다. 조용히 묵상하면서 그러면서 마음을 주님께 고정하고 하나님을 찾기에 산란해진 마음을 가닥을 잡으려고 애를 쓰면서 저 깊은 우물에 두레박을 던지고 물을 건지는 마음으로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언어를 길어내는 것입니다. 주저리 주저리 많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가 안 될수록 기도의 내용이 마음에 깊이 잠기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깊이 마음 깊은 곳에 두레박을 던져서 물을 깃는 것처럼 첨벙첨벙 서서히 길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을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이러는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면 처음의 기도는 아주 작은 불씨처럼 꺼질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기도의 불이 마음에 불붙기 시작하면서 화염처럼 타오르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우리의 마음의 모든 질서들이 다 바뀌면서 다시 평강이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정말,
(찬양)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오랜 세월 찾아 난 알았네 내겐 주 밖에 없네
그러면서 기쁨이 확 밀려옵니다. 그리고 영혼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영혼에 진정한 위로가 하나님이라는 것.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자기의 자녀들을 버리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영혼의 만족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문제는 뭐냐 하면, 시험에 들거나 신앙이 나태해 졌어도 영혼이 곤고하면, 영혼이 곤고한 것을 알고 거기에서 경고를 받고 그리고 정말 내 영혼이 곤고하고 목마르구나, 그래서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구나, 라는 결론에 도달하면 되는데 이것이 마음이 굽고, 영적으로 무감각해져서 영혼이 깊은 고통 상태에 있는데도 마치 마비 증상이 온 사람이 통증을 못 느끼듯이 마음이 고쳐지지 않는 것입니다. 영혼이 곤고한데도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은혜가 필요하다, 라는 사실을 알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께 더 대적하고 하나님을 더 원망하고 마음이 돌덩이처럼 굳어져 가는 것입니다. 내버려두면 그 사람이 배교에 가까운 삶을 살다가 멸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마음을 돌이킬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십니다. 그것이 환경에서 오는 시련입니다. 우리들이 신앙심이 깊을 때에는 이 세상에서 칼 들고 혹은 이 세상에서 물질을 가지고 우리들을 위협하고 유혹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서 살려고 합니다. 신앙이 그렇게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어두워지고 분별력이 사라지게 되면,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않을수록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아주 예민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이익, 손해, 질병, 건강, 성공, 실패,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아주 예민해지게 됩니다. 그러면 예민해 하는 것을 하나님이 때리시면 그러면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흔들리는 것입니다. 일단 마음이 흔들려질 때 변화의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종종 우리를 시련에 스스로 걸어가도록 내버려 두십니다. 능력이 없으셔서 막지 못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셔서 거기에서 자신이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간 것이 얼마나 커다란 잘못인가, 자기가 사랑하던 것들을 잃어버림으로써 혹은 하나님께 책망을 받아 시련의 고통을 당함으로써 육체의 아픔을 통해, 환경의 고통을 통해 영혼의 신음소리를 듣게끔 만드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웬만큼 신앙생활 하였으면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는 풍부한 간증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모르고 교만하게 살다가 시련을 만나게 되면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리게 됩니다. 처음에는 내가 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에 큰 시련을 만났기 때문에, 실패할 것 같기 때문에, 두려워서 하나님께 매달리고 더 위기가 와서 하나님 앞에 눈물로 간구하였는데 그 과정을 통해서 마지막에 깨닫게 된 것은 내가 하나님을 너무나도 멀리 떠났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은 바로 이렇게 병든 내 영혼을 고치기 위해서 시련을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을 읽어 보십시오. 경건한 시인들이 어떤 때는 영적인 예민함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이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며 시냇물처럼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의 공의가 사랑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간구하였지만, 어떤 때에는 그렇게 큰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던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멀리 떠나 불순종하고 죄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나님을 멀리 떠난 사람들을 한 번에 혼내셔서 돌이키게 하신다면 누구도 멀리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들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당신과의 관계 속에서 사는 생활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종종 하나님 없이 스스로 걸어 들어간 어두움의 땅에서 곤고하고 긴 시련을 만나게 하시고 거기에서 하나님 없이 살아가기를 선택한 결과의 쓴 뿌리를 거두게 하십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자신의 결점이 자신의 태도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인격적으로 깊이 체험하게 하셔서 거기에서 용서와 회복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을 새롭게 알게끔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면서 하나님은 우리들을 성숙시켜 나가시는 것입니다. 이때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결국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영혼의 곤고함 속에서 결국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됩니다. 환경의 시련을 만났을 때 처음에는 내 힘으로, 내가 가진 자원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려고 몸부림을 치지만, 결국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결국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며 주님만이 나의 산성이시오, 피할 바위이시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어린아이처럼 그 분의 은혜를 간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 불순종하며 살았던 모든 날들에 대한 진실한 회개와 하나님을 거슬려 살고자 하는 욕구가 꺾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 같은 죄인들을 용서해 주셨다고 하는 은혜의 감격이 밀려오게 됩니다.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은 죄의 저자가 아닙니다. 우리들이 스스로 선택해서 짓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사용하셔서 우리를 돌이켜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수단으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됐으면 좋을 텐데’라고 기대하였다가 ‘역시 그렇구나’라고 끝나는 것은 찾는 것이 아닙니다. 이 찾는 것은 단순히 ‘소원한다’,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내가 살아있는 것의 의미를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중차대한 문제로 여기면서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해 영혼의 시선을 고정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 아래에서 자신의 인생의 모든 문제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신앙이 없어서 곁길로 나갈 때에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이 세상에서 원인과 결과의 관계만 보였습니다. 내가 이러한 선택을 하면, 저런 결과가 올 것이고, 저런 결과가 오면 나는 행복할 것이라고 하는 단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에 접근을 했었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어그러지고 영혼은 고통을 받게 되고, 환경적으로 시련을 만나게 되어서 누구도 의지할 수 없는 가난하고 병든 처지가 되었을 때 마치 탕자가 아무도 도울자가 없는 위기의 절대적인 순간에 아버지의 집에 평화로운 광경이 생각났던 것처럼 여러분도 주님 안에서 살던 진정한 평화와 기쁨의 시절들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로소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그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가치를 따라서 삶의 모든 질서를 재편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하나님께 돌아가고 싶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어도 걸리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런데 영혼의 깊은 고통을 느끼고 환경적인 시련을 만나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은혜를 구하는 가운데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최고의 가치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을 위해서는 모든 것이 희생되더라도 꼭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되겠다라고 하는 마음의 결심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 때에 영혼의 놀라운 집중이 이루어지고, 마음은 그 영혼의 집중을 통해서 놀라운 쇄신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떠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느냐, 어떠한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매달리느냐에 의해서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예화) 6-7년 된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월요일마다 인턴십을 하는데, 인턴십에 들어왔던 전도사 한명이 가슴 아픈 간증을 하였습니다. 일찍 결혼을 해서 서른을 갓 넘었는데 아이가 세 명이나 되었습니다. 부인도 아주 젊은 나이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세 명을 낳았는데 서른 정도 밖에 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꾸 아프다고 해서 병원에 갔더니 위암 3기가 넘어 4기, 말기라는 것입니다. 암이 다 전이가 되어서 치료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부인이 ‘여보, 당신 전도사인데 그렇게 기도 안 해서 어떻게 해. 제발 게으르지 말고 기도 좀 해. 기도해야 당신 목회 할 것 아니야.’ 아내가 입에다가 잔소리를 달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가 그렇게 되고 나니까 앞이 캄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이제 5살, 3살, 1살, 이정도 밖에 안 되는데, ‘이것은 분명히 나보고 하나님이 정신 차리라고 주시는 시련일 것이다. 간절히 기도하면 들어주실 것이다’ 그리고 기도를 했는데 그것 가지고는 성이 안 차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 12시에 산속에 들어가 기도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집에서 성경 읽으며 12시가 되면 동네 산속으로 들어갑니다. 처음에는 무섭고 음산한데, 거기에서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밖에 정말 의지할 데가 없지 않습니까? 길이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6개월을 매일 숲속에 들어가 통곡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결국 부인이 젊은 나이에 죽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렇게 간절히 기도할 때에도 아내를 데려가실 때에는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이 처음에는 있었는데 나중에 더 기도하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자신이 영적으로 바르지 아니하니까 하나님이 이러한 큰 시련을 통해서 6개월 동안 생애적인 기도를 하게 하시고 거기에서 주님을 깊이 만나고 신앙이 무엇인지 터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내의 죽음을 사용하셔서 자기를 목회자다운 목회자로 만들기 위해서 자신을 연단하신 것이라고 간증하면서 눈물을 글썽 거리는 것을 들으면서 저도 마음속으로 눈물이 났습니다.
그러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는 가혹하실 정도로 우리에게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하나님께 매달리도록 시련도 주시고, 영혼의 고통도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직접 주신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의 큰 주권 아래에서 우리가 불순종하고 우리가 악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을 사용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때리시고 그래서 아파하지 않고는 돌이킬 수 없는 죄인들의 마음을 때리셔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평탄하고 안일했더라면 집중했을 리가 없는 영혼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게 하시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치열하게 바라며 눈물로 기도하게 하셔서 마음을 쇄신시키시고 그 마음 안에 있는 더러운 악들을 씻어 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에게 당신을 간절히 찾으며 살기를 원하시는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기 원하시는지 그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주님을 간절히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얼마나 당신을 멀리 떠났든지 그가 아무리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든지 그리고 그가 얼마나 하나님께 아픔을 드렸든지 큰 상관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그렇게 주님과의 관계로 돌아오기 위해서 몸부림치면서 기도하는 모든 사람들 가까이에 계셔서 그들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씻겨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Ⅲ.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런데 오늘 성경은 그렇게 당신을 찾는 사람들을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에서 ‘버리다’ 이것이 ‘아자브’(bz"[)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창세기 2장에 ‘그러므로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여자와 한 몸을 이룰 것이다’라고 할 때 ‘떠나다’라고 하는 단어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결국 뭐냐 하면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당신의 자녀들을 떠나가시지 않는 하나님, 버려두시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자녀들이 말입니다. 부모가 설령 뛰어난 교육을 못 해준다 하더라도 부모가 이제 자기도 공부도 잘하고, 학교도 좋은데 나오고 그랬으면, 공부를 잘 한 부모들이 애들이 공부를 잘합니다. 유전적으로 좋은 머리를 가지고 났지만 그 엄마나 아빠가 공부를 잘 했으면 자기가 어떻게 공부했는지를 알기 때문에 자식들 특히 아내의 역할이 매우 큽니다. 엄마가 공부를 잘 했으면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것을 보면서 잘 지도해 줄 수 있습니다. 그게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가서 대대로 별로 머리가 좋지 않은 집안에 머리가 좋고 총명한 자매가 들어와서 그 집안 유전자 개량을 시키고, 그리고 자기도 공부를 잘 하였으니까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사명감을 가지고 아이들 교육을 시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것을 잘하면 정말 좋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잘 못했다고 하더라도 자녀들을 충분히 사랑해주고, ‘우리 엄마는, 우리 아빠는 절대로 버리지 않았고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고, 나를 용납해 주었고, 충분히 사랑해 주었다’라고 하는 것이 자녀들의 가슴에 새겨지기만 해도 부모의 역할로서 상당부분은 다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까지 가르쳐줬다면 100%인 것입니다. 여러분 잘 보십시오. 아이들을 아주 쉽게 버리고 집을 나가는 부모들 있지 않습니까? 거슬려 보면 집안의 내력인 것입니다. 자기도 부모에게 버림을 받았으면 그 아픔을 절절하게 느꼈으니까 자식들에게 안 할 것 같은데, 그것을 쉽게 반복하게 됩니다.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보복적 모방 심리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이라면 어쩔 줄 몰라서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녀들이라면 벌벌 떠는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은 부모가 그 사람에게 꼭 그렇게 했습니다. 그 부모는 그 부모에게 그랬고, 물론 종종 돌연변이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신앙적으로 돌연변이가 되기도 하지만 그러나 내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들을 진심으로 사랑해서 ‘우리 엄마가, 우리 아빠가 나를 충분히 사랑해 주었다’, 그것을 느끼면서 그렇게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는 절대로 자기 자식을 버리지 않습니다. 절대로 안 버립니다. 한번 제 이야기 듣고 돌아보면서 예외를 찾아보십시오. 발견할 수 있겠지만 아마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은 구원받은 자기의 자녀들을 절대로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수시로 버립니다. 버려도 너무 자주 버립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완전한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심지어 우리가 당신을 버리는 그 순간에 당신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붙드시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믿고, 그 사랑을 의지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세상에 봉사하고 이바지 하는 동안에만 우리를 예뻐해 줍니다. 우리가 자기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냉혹하게 세상은 우리를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온갖 영광을 받으며 훌륭하게 살면서 당신을 잊어버리는 것보다는 오히려 이 세상에서 병든 자가 되고, 이 세상에서 버림을 받아서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 할지라도 그 실패를 통해서라도 당신 자신을 찾을 때 하나님은 그 자녀의 신음소리를 기뻐하며 당신의 자녀를 찾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멀리 집을 떠난 탕자를 기다리던 아버지의 마음이고, 매일 매일 주님을 버리고 나 원하는 길로 감으로써 지금도 그 분의 가슴에 못을 박는 우리를 향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인 것입니다.
언제나 거기 계셔서 우리가 당신을 당신답게 대접해 줄 때 뿐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아니할 때 조차도 언제나 거기 계셔서 그래서 우리들이 언제나 돌아오면 당신을 만날 수 있도록 언제나 거기 계셔서 기다려 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혼이 곤고하고 환경적으로 시련을 당한다 할지라도 긍정적으로 해석해 보면 그 모든 고통과 괴로움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만나는 항구로 가라고 우리의 배를 떠밀어 주는 이 세상 파도의 물결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 풍랑을 의지해서 주님과의 만남의 항구로 더 가까이 다가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언제든지 자기를 간절히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 전체를 통틀어 보아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그 분의 은혜를 구했던 사람들 가운데 낙심하고 좌절했던 사람, 그렇게 간절한 기도의 결과 실망했던 사람들, 우리 하나님께 배신을 당한 사람들의 경험이 어디에 기록이 되어있습니까? 언제나 하나님은 당신을 멀리 떠난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고 그리고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당신 앞에 나아오는 모든 사람들을 당신의 자녀로 여겨 버리지 않으시고 용납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러한 좋으신 하나님을 떠나서 어디로 가겠습니까? 이러한 하나님을 의지하고 붙들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참으로 복된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