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돌아가는 길
(2003년 설교모음)
설교기간|2003년
편집내용|녹취원본
출 력 일|2013년 3월 23일
목 차
1. 원망하는 마음을 버리고(민1:4-6) 2003.1.14 새해말씀사경회(오전) 1
2.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고(레19:17) 2003.1.15 새해말씀사경회(오전) 10
3. 게으름을 버리고(잠24:30-32) 2003.1.16 새해말씀사경회(오전) 20
4. 교만을 버리고(벧전5:5下) 2003.1.17 새해말씀사경회(오전) 34
1.원망하는 마음을 버리고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민11:4-6)
새벽시간에는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가는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첫째시간에는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서 오늘은 잃어버린 기도를 찾아서였습니다. 아침시간에 네 번에 걸쳐서는 버려야 할 것 들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이 장면은 이스라엘백성들이 출애굽해서 광야로 나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시점에서 시내산으로 들어가는데 시내산에서 11개월 동안 있다가 다시 광야로 나오게 되는데 그 광야로 나오고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에서 떠날 때에 이스라엘백성들만 떠난 것이 아니라 애굽에서 이스라엘사람들은 아니지만 다른 많은 종족들이 거기 이스라엘백성들처럼 끌려와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종살이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때에 하나님이 큰 능력의 역사를 베풀어주시니까 애굽 전체가 발칵 뒤집히면서 애굽의 모든 신들은 아무것도 아니고 이스라엘 신인 여호와라고 하는 신이 정말 하나님이시구나 하는 신앙심이 이스라엘백성들에게만 생긴 것이 아니라 애굽에 종살이를 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도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을 떠날 때에 거기에 중다한 잡 족 들이 함께 떠납니다.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라 족속의 종류도 다양한 그런 사람들이 함께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광야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이제 원망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사실은 이 원망하는 일은 이미 첫 번째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하나님 앞에 원망을 하다가 하나님이 만나를 내려주시니까 그렇게 감격하면서 그 만나를 먹고 이스라엘백성들이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 불평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느냐면 그 이스라엘백성들이 아닌 비 이스라엘사람들로서 이스라엘과 함께 따라왔던 많은 족속들, 그 족속들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불평과 원망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불평과원망은 다른 것이 아니라 고기를 먹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먹던 많은 음식들이 생각나기시작하면서 불평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날마다 맛없는 만나만 먹는 것이 지긋지긋하다는 불평이 이제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사실 만나도 그들이 하나님 앞에 먹고 생존할 것이 없으니까 고통 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서 주신 것 입니다 그리고 처음만나를 받았을 때 그들의 감격이 라고 하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와 노인까지 3백만 명 쯤이라 생각되는데 그 사람들이 먹고 사는 문제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일시에 해결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 처음 들판에 하얗게 내리는 만나를 호멜에 담아 가져와서 절구에 찧기도 하고 맷돌에 갈기도 하고 해서 빚어서 먹고 음식을 삼았을 때의 환희와 감격이 얼마나 크고 놀라웠겠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감격이 분명히 있었는데 원망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변화 받지 못하고 살 때에는 그저 이세상의 양식을 구하면서 살던 욕심이 한이 없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얼마 전 중국에서 청나라시대 때에 황제들이 먹던 음식을 재현해서 어느 식당에서 코스를 만들었는데 아침8시부터 오후 2시까지 먹는 답니다. 그런데 한 끼2인분에 5490만원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벌써12사람이 먹고 갔다고 합니다. 처음시작을 녹차한잔에 만두 두개로 시작을 하는데 그게 150만원 이라고 합니다. 나중에 마지막에 가서는 잉어100마리를 잡아서 수염을 떼어서 요리를 했답니다. 인간이라는 것이 한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우리는 그렇게 살던 사람 아니었습니까? 그렇게 살다가 어는 한순간에 주님을 깊이 만납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깊이 깨닫고 주님의 참사랑을 알고 나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꿀 송이처럼 달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자신의 영혼이 새 힘을 얻고 나니까 그 말씀 때문에 속에서 심령의 놀라운 평안이오고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까 하나님의 그 큰사랑과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그 말씀을 통해서 새로운 신앙의 세계를 보고 자기의 부족을 보고 뉘우치고 변화되고 하니까 하나님이 더 많이 사랑해주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을 받고 그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고 나니까 정말 너무나 행복하면서 비로써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이 고달픈 인생길을 살아가는 동안에 진짜 필요한 양식이 이것이구나. 전능한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필요하구나 보리밥이라도 상관없고 국수라도 상관없고 먹고 사는 것이야 하루를 버티기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먹고사는 것이지만 이 하나님의 말씀은 영생 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서 오늘 그것을 잘 먹고 만족을 누리면서 살면 우리의 영원한생명이 약속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 감사한 마음이 밀려오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으로 영혼이 배부르고 나니까 너무 행복하구나. 옛날에는 내가 불행하고 이 세상에서 고통 하는 것이 내육신의 배가 고프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나의 주린 영혼을 가득 채우고 나니까 정말 행복하구나 하면서 마음에 기쁨과 평화가 밀려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과 말씀으로 말미암는 기쁨과 평화가 가득히 밀려오면 살아가는 삶의 환경이 좀 고달파도 감사한 마음으로 잘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은혜를 받고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서 신령한 은혜와 기쁨의 세계 속 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다음에는 우리의 환경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자체가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자기가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 생겨나고 자기에게 고통을 준 여건들이 생겨나고 하는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기 때문에 그 상황을 만나는 즉시 잠재되어있던 못된 성격 바닥까지 내려가는 자기의 어떤 인간의 포악함 이기적인마음, 이런 것들이 한번에 확 살아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그런 것 들이 늘 있는데 그것을 누르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니까 솟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은혜를 받고 그렇게 살면 환경을 보는 눈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 나면 우리의 나쁜 환경이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예화) 어떤 자매가 하나 있었는데 남편을 일찍 여의고 외아들하나를 바라보고 사는데 이아들이 어긋나서 고등학교 올라가면서부터 개망나니가 되가니까 그자매가 신앙생활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극도의 원망으로 가득차는 것입니다 자기만 혼자 좋은데 가고 이런 아들하나 남겨 놓고 간 것에 속을 썩이면서 세상 살고 싶지 않는 마음이 되어 찌들게 일을 해서 벌어먹고 사는데 아들을 보면 아무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엄마가 그렇게 고생하면 이녀석이라도 사람 되게 살고 엄마가 고생하는 것을 좀 알고 살면 얼마나 희망이 되겠습니까? 하여튼 보기 싫을 정도로 말을 안 듣고 패륜아로 사는데 그렇게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살기도 싫고 너무 곤고하니까 형식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다가 주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 찌푸리기라도 붙잡는다고 아무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 예수님 붙드니까 예수님이 은혜 주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은혜를 많이 받고나서 집에 돌아갔어도 아들은 변하지 않았지만 엄마가 변하니까 그 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라고 고백하느냐하면 이아들이 이렇게 자라는 것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만약 이아들이 말을 잘 듣고 했으면 하나님 안 찾을텐데 신앙이 태만해지려하면 기질이 나오는 바람에 그러면 교회 가서 방성대곡하면서 기도하다 보면 그렇게 마음에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눈물의 자식은 망하지 않는다지만 돌아보면 아직도 안변했지만 그러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결말이야 가봐야 알겠지만 어쨌든 최소한 자기 자신의 믿음은 지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순전히 신자자신의 마음의 문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 속에 섞여있는 중다한 잡족들과 함께 이스라엘이 생활하면서 원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원망하는 일이 어떻게 발생하는가하면 그 속에 원망을 자극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누군가하면 그렇게 섞여 살던 중다한 잡족들 이었습니다. 사실 중다한 잡족들 이었기 때문에 원망을 불러일으키는 불씨가 된 것이 아니라 그들도 중다한 잡족 이었지만 분명하게 하나님을 믿고 이스라엘백성들의 일원이 되어서 이스라엘 신앙공동체 속에 들어온 것입니다 나중에 이들이 모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백성들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결코 이 사람들을 달리 차별대우를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이스라엘백성의 역사가 가지는 복음적인 특성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중다한 잡 족이었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킨다. 라기 보다는 이들에게도 주님을 믿는 신앙이 있었고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을 보고 감탄하는 믿음이 있었는데 어느 한순간에 그런 믿음이 식어지고 나니까 광야생활이 지겹고 특별히 그 음식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진 것입니다 그러면서 불평을 하게 되는데 문제는 탐욕 때문 이었습니다 탐욕이 생기니까 거기에서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신자들이 필요한 것들을 열심히 기도해서 하나님께 모두 얻어내고 사는 것도 감사한 방법이 되겠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영혼은 전능하신 하나님도 채울 수가 없습니다. 끝까지 내버려두면 인간의 욕망이 하나님의 자리까지 탐내는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아담과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도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인간의 욕망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도 들어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불과 육척도 안 되는 작은 인간이 그 속에 들어있는 욕망이라고 하는 것은 넣어도 넣어도 끝이 없는 무저갱과 같고 마셔도 마셔도 줄지 않는 대양의 큰 바닷물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 욕망을 도저히 채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많이 기도해서 필요한 모든 것을 얻어내면서 사는 것도 믿음이지만 그것보다도 더 현재적인 믿음은 주님이 주신 은혜와여건 안에서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사는 것이 경건을 유지하는 큰 비결입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이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갈 때 까지는 어차피 임시적인 나그네 생활 아닙니까? 그러니까 조금 불편해도 참고 더 궁극적인 목표인 자신의 광야생활이 마지막에 도달할 그 목표를 바라보며 사는 그런 삶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을 못 견디는 것입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정착해서 살 때 먹었던 모든 것들을 먹고 누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면서 뭘 그렇게 엄청나게 누리고 먹었겠습니까? 생선을 먹었다고 했는데 그것은 이해가 갑니다. 나일강이 흐르니까 물고기를 중심으로 섬긴 우상도 있고 하니까 먹을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광야에 그런 것이 어디 있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늘과 파를 먹었다고 했는데 그것은 아주 좋은 정력제입니다 그런데 애굽사람들이 그것을 왜먹게 했을 것 같습니까?
헤로도투스의 역사기에 보면 이 사람들이 왜 마늘과 파를 먹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피라미드 공사를 할 때 노동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일꾼들에게 준 강장음식이 파와마늘 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먹는 것만 생각했지 먹고 나서 뼈 빠지게 일한 것은 생각을 하지 못 하는 것입니다 먹을 때의 달콤함만 생각했지 그것을 먹고 애굽에서 노동에 시달린 고통은 생각을 안 하니 얼마나 바보입니까 그러니까 탐욕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의 현실생활에 만족하지 못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것이 만족을 하고 살면 만족이 되는데 일단 자기보다 더 만족을 하고 사는 사람을 보면 갑자기 자기의 삶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지하실 방에 여름이면 습기가 차서 곰팡이가 피고 하는 곳에서 살 때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고 지상으로만 올라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방이 조금 작아도 좋으니까 햇빛이 잘 드는 방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상으로 올라오는 생활이 허락이 되면 겨울이면 수도도 얼고 춥고 하는 시달림에 아파트 한번 살았으면 좋겠다. 13평이라도 좋겠다. 하는데 다시 거기서 한 일년 살다가 더 큰집에서 사는 사람 집에 가보면 집이 좁고 답답해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도 사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 한 68평,70평, 심지어는 80평 아파트 두개를 트고 산다는데 그런데 한번 갔다 오면 사는 게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안에 있는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성급한 욕망 내지는 신앙적이지 않은 욕심들이 탐욕인데 그런 탐욕이 우리를 주장하게 되면 감사한 모든 마음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탐욕에 사로잡히게 되면 즉시 하나님을 향한 원망의 마음이 생겨나게 되고 감사의 마음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노골적으로 나는 하나님을 원망한다고 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그러한 여건을 주는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생각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잘 나갈 때에는 하나님덕분이라는 생각을 잘 하지 않습니다. 잘 나갈 때에는 항상 내가 잘했다고 생각을 하고 잘 안되면 하나님 탓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자신의 삶을 주관하신다고 생각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믿음이 고달플 때에만 생겨나느냐 하는 것입니다 잘 나갈 때에도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만큼 살게 해주신 분도 하나님 이십니다 그리고 열심히 하나님섬기면서 주님이 주신물질을 하나님 앞에 바치면서 아름답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데 잘 나갈 때에는 추호도 하나님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 안 나갈 때에만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인도하셨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원망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사람의 감사도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한사람의 불평도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왜냐하면 생각의 문제이기 때문에 한사람이 인생살이에 한숨을 쉬면 옆에 사람도 따라서 쉽니다. 그런데 모두 낙심해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를 생각하면 모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스라엘백성들은 그 족속들이 탐욕을 품어서 하나님을 원망을 하기 시작하니까 이 원망이 이스라엘백성들 속으로 급속하게 파고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나오는 중다한 잡족들은 이스라엘족속이 아닌 잡족들의 불평하는 모습을 만약에 형식적인 신자의 불평이라고 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은 제대로 신앙생활하려는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위에서 무엇인가 불평하고 정말 불평할만한 여건이 생겨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잘 믿고 은혜가 마음속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이면 그런 불평들이 올 때에 그 불평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생각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생각하는 것들이 영적으로 생각을 하고 신령한마음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에서 생선을 먹었던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마늘도 먹었고 파도 먹었고 왜도 먹었을 것입니다 애굽은 그 당시에 전 세계에서 제일 잘사는 강대국 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먹거리가 풍부하고 기름진 이집트 평야에서 그 수많은 식물들이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먹으면서 살았을 것이라는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는 광야니까 그런 것은 먹을 수 없었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애굽에서는 누릴 수 있었던 것을 광야에서 누리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누릴 수 없었던 것을 광야에서 누린 것이 더 많습니까 아니면 애굽에서 누렸는데 광야에서 누리지 못한 것이 많습니까? 다시 말하면 잃어버린 것들도 있지만 그러나 얻은 것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지낸 생활이라는 것이 뼈 빠지게 대를 물려가면서 벽돌이나 찍고 노동에 종사하면서 쓰러지면 공사장에 치워져버리는 것이 인생의 전부였지 않습니까? 자식을 낳아도 자기 자식이 아니고 노예가 되어서 나라의 소유가 되어서 대를 물려가면서 그 피곤한 일들에 종사하면서 짐승취급을 받으면서 살다가 생선머리나 몇 개하고 힘내서 더 뼈 빠지게 일하라고 준 파나 마늘 몇 개 주워 먹은 것이 그렇게 대단하게 느껴지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믿고 하나님자녀 된 다음에 잃어버린 것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믿고 나면 불편해지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 믿기 전에는 돈을 벌면 모두 내 것 이었지만 죄짓고 살지 않는 이상 이제는 자기 맘대로 쓰지 못하고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예화) 옛날에 제가 학교 다닐 때 어느 자매가 왔습니다. 중년쯤 되는 자매이었는데 신학교를 밤에 다니면서 낮에 사업을 하나하면서 돈을 잘 버는데 어느 날 교수님, 교수님께 은혜도 많이 받고 강의 도 너무 좋고 하면서 한참을 추켜세우는데 그런데 돈 좀 필요하시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돈 좀 드리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그러느냐고 하니까 자기는 있는 것이 돈밖에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책 한권 내는데 돈이 얼마나 드느냐는 것입니다 그때는 한 250만원이나 300만원쯤 되었는데 그것을 자기가 몇 권낼 수 있게 하면 안 되냐는 것입니다 자기가 사업을 하는데 너무 잘되는데 돈을 벌어도 쓸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좋은데 욕심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다음에 는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자기를 위해서는 쓰지 않으니까 쓸데가 없는데 많이 벌면 뭐하냐고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데 써라 했더니 그래서 자기가 지금 드리려는 것이라고 하길래 필요 없다 했습니다. 기도하면서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써야할 때를 생각나게 해주시지 않겠느냐고 하고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니까 돈을 벌어도 또 지위가 높아져도 자기가 다른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그런 자족하는 마음 이 있을 때에 원망하는 마음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이 잡족들이 원망 하는 것들이 부러워 그들도 함께 그 원망에 동참하게 된 것은 마음속에서 이미 불신앙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만족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나서 잃어버린 것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얻는 것 얼마나 많습니까?
최근에 잘 알고 있는 재크린 오나시스 하고 결혼했던 오나시스 라고 하는 그리스의 선박왕의손자가 유산으로 받은 돈이 거의 1조가 되는데 그 젊은이가 자선단체에 그 돈을 기부하고 자기는 그냥 샐러리맨으로 살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던 돈 때문에 불행하게 살았던 인생을 보고 빌게이츠재단에 기증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것들이 결코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이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서 잃어버린 것이 많이 있다고 할지라도 얻은 것이 얼마나 많은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들이 만약에 주님을 몰랐더라면 애굽에서 뼈 빠지게 노동하다 죽었을 이스라엘백성들처럼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그렇게 소망 없이 죽어갔을 것입니다 신앙이 없었으니 술을 퍼마셨을 것이고 노래방에 가서 기분 좋게 놀았을 것이고 계하면서 수입도 잡았을지 모르지만 그렇지만 그것이 우리인간의 영혼 안에 있는 궁극적인 목마름을 해갈해 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모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이 세상을 만드신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분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을 하나님이 그렇게 생각 안 해도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하셔서 눈동자처럼 보호하시고 어디에 있든지 여러분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생각하시면서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 만 바라 볼찌라.
그래서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이 우리를 다 지켜보시고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구하지 않기 때문이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하나님이 안 주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기도하면 꼭 주셨고 간절히 기도해도 안주신 것은 우리를 보호하시기 위해서 안 주신 것입니다 철없는 어린아이가 화약을 달라면 주겠습니까? 철없는 아이가 칼을 달랜다고 그 손에 쥐어주겠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얻지 못한 것들은 우리들이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얻지 못한 것 들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안 주신 것이 없습니다. 주님을 믿으면서 손해 본 것은 아주 작은 것이고 주님이 우리에게 노예상태에서 해방시켜주시고 무엇 보다고 하나님의 참사랑을 알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짐승처럼 하나님원망하고 대적하고 죄를 지으면서 살다가 지옥 불에 던져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까지도 믿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이 우리의 가슴에 믿어지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나 같은 인간을 위해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내려오셨다는 것과 그리고 지금도 나와 같은 인간을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보좌우편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의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우리들이 하나님을 등지고 살던 원수들이었는데 피 뿌리신 그 보좌에 이르는 새 길을 걸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그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끔 만들어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바른 믿음을 가지고 살지 않기 때문이지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향해 말할 수 없는 사랑을 갖고 계시고 여러분들이 당신께로 돌아와서 당신의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을 받으면서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마음에 기쁨이 되고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마음에 즐거움이 되는 그런 생명적인 관계를 누리면서 살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너무나 사랑하셨기 때문에 자기의 외아들인데도 이 세상에 보내어서 여러분들을 위해십자가에 못박혀죽게 만들어주셨는데 하나님에게 아까운 것이 무엇이 있을지 한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우리를 위해내어 주셨는데 하나님에게 무엇이 더 소중한 것이 있겠습니까? 예전에는 혼자 걸어가는 인생길이 너무 곤고했는데 이제는 기도할 수 있고 곤고하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 의심과 두려움에 가득 차서 불안하던 마음에 한 줄기 빛이 들어오고 그 두려움이 변해서 기쁨이 되고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를 주관해주시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 어떤 사람들이 자기가 인생의 막다른 길목에 도달했을 때에 이렇게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 주님을 만나고 어려울 때에 찾아가면 주님이 언제든지 대답해주시는 그러한 친근히 여기는 하나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은 없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들 중에 하나가 거지보다 불쌍한 사람이 길거리에 사과 괘짝 엎어놓고 점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사주팔자를 보는 인간을 보면 눈물이 돕니다.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갈 데가 없으면 3000원 들고 거기가 쭈그리고 앉아서 자기 인생의 갈 길을 물어 보겠습니까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오늘 내가 너무 곤고합니다. 인생의 막다른 벼랑 끝에 내몰렸습니다. 하나님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까? 이제까지 잘 못 살았어도 이제 나의 갈 길을 인도해 주십시오.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습니까? 얼마나 많은 것을 얻었느냐는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수없는 불신앙의 유혹과 이런 것들을 대항해서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예화) 옛날에 어느 자매가 정신과 치료를 많이 받았던 자매인데 돈을 많이 없애도 정신과 다니면서 상담을 했는데 확실히 상담을 하고 나면 정리가 되는 것 같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해결은 잘 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교회는 싼 겁니다. 목사님 설교한번 듣는 것이 훨씬 나은데 교회는 정신과에 들어가는 돈만큼은 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얼마나 큰 복입니까 일년 한해를 어떻게 살지 몰라서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명쾌하게 원망하며 살지 말아라. 그러면 하나님의 축복은 없다 그리고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지 모르니까 원망을 버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생의 세계를 얻는 것입니다 원망하면서 살아왔는데도 진실 되게 회개하면 하나님이 한순간에 우리의 모든 죄를 아들의 피로 깨끗이 씻으시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주님이 기회를 주시지 않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요 주님의 놀라운 사랑인 것입니다 예수 믿고 잃어버린 것도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너무 작은 것이고 예수 믿고 얻은 것이 너무나 많지 않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서 여러분들이 주님을 처음 믿고 은혜가운데로 들어왔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너무 감사했던 것은 기도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 어린나이에 예수님을 믿고 기도할 때에 기도의 응답이 무엇인지알고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즉시 마음에 파고들어온 생각이 이제 나는 외롭지 않구나 인생에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면 그 하나님은 보이시지 않지만 이렇게 놀랍게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구나 하는 것을 깨달으면서 이제 내 인생은 외롭지 않구나 하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에서 고생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목표가 있는 아름다운 고생이었지 않습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겠다는 소망 거기서 나라를 이루시겠다는 소망 그곳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너희를 의의 나무로 삼으시겠다. 라고 하는 소망 이런 것이 있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믿음이 없으니까 그런 소망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직 생각나는 것은 애굽에서의 고달픈 종살이도 생각이 안 나고 오직 입안에 가득히 번져가던 마늘향내 파의 쌉쌀한 매콤한 맛 이런 모든 것들만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을 믿고 믿음생활 해나가는데 물론 어려움이 있고 신앙생활 잘해서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들에게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의 계획이 있지 않습니까? 사명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괴롭지 않겠습니까? 사명을 감당해나가는 일은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모두 지나가는 과정입니다 그렇게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예전에 하나님 없이 예수님도 모른 체 세상에서 먹고 마실 때에는 돈을 많이 벌고 건강하게 살아도 희망이라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예수님 믿고 주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 나니까 그다음에는 우리에게 소망이라는 것이 생겨나지 않습니까? 저는 한 해 한 해 가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하고 인생을 여기까지 살아왔나 아마 저보다 연세 많으신 분들은 더 심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을 하면 참 우울해지고 견딜 수 없는 허무감 같은 것이 가슴에 파고듭니다. 그러나 또 생각을 바꾸어서 내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과 함께 일생을 살아왔는데 지금도 그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지 않는가 겉 사람은 후패하지만 내 속사람이 날마다 새롭고 그래서 믿음을 지키면서 신앙을 따라서 잘 살면 인생을 사는 것이 꿈과 같이 덧없는 것이지만 내 인생의 모든 파도를 헤치고 내가 그토록 사랑하고 보고 싶어 했던 우리주님을 죽음건너편에서 만날 것이다 하는 소망을 가져보면 빨리 인생을 살고 죽고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이라고 일컫는 이 광야의 날과 같은 인생의 시기동안에 원망하지 말고 마음을 잘 지키면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모자라는 것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혹시 모자라는 것이 조금 있다면 그것은 사소한 것입니다 커 보이지만 사소한 것입니다 이미 주님이 여러분들에게 주신 것을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이스라엘백성들처럼 애굽과 같은 죄악의 세상에서 건져내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가끔 근심 걱정하는 가정에 가서 심방을 하면 걱정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기도하면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것이고 살다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면 돌보아주는 목자가 있고 살아가는 동안 고달프고 외로울 때에는 함께 눈물을 흘려줄 형제들이 있는데 무엇을 걱정하시냐고 합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 하십니까
응답 주는데 왜 염려 하십니까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모자라는 것이 무엇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무엇이 모자라서 그렇게 낙심하고 불평 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목자가 있고 함께 눈물을 흘려줄 형제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면 됐지 어려운 일 있으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인생을 살다가 갈 길을 모르면 목자의 지도를 받고 살다가 너무 곤고하면 형제들을 의지하면서 위로를 받고 그렇게 살다가 가는 것이 인생인데 낙심하고 방황하고 그렇게 왜 사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보십시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만약에 마음을 굳게 하고 마음이 답답해져서 살아가고 있다면 오늘 한번 반성해 보십시오. 혹시 원망의 죄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원망은 다른 죄 중에서 아주 신속하게 우리의 마음을 돌맹이 같이 만들어버리는 그런 강력한 효과가 있습니다.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사이인데 그 사랑의 마음이 일순간에 얼음장처럼 차갑게 만들어줄 수 있는 무기가 있다면 그것은 원망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원망한 죄 들을 아주 가볍게 생각하는데 사실은 원망의 죄는 살인이나 간음의 죄 못지않게 우리의 영혼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원망하면서 계속 사경회 참석하고 기도하고 봉사한다고 하면서 하지만 결국은 그렇게 살면 여러분들이 여기 있어야할 중에 있던 그 무리들 같은 사람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지체들에게 신앙의 영향을 끼쳐도 될까 말까인데 이런 불평과원망의 영향을 끼쳐서 자기의 영혼도 넘어지고 다른 사람의 영혼도 넘어지고 공동체도 더럽히는 그런 사람들 하나님이 반드시 심판 하십니다 우리들이 절대로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많이 기도해도 하나님을 못 만나고 있고 여러 해 동안 계속 몸부림을 치는데도 무언가 역경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곤고하고 괴로운 일들이 자꾸 일어난다면 여러분의 마음속에 원망의 죄를 짓고 있지 않은지 한번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너무나 감사해서 눈물 흘려 본적 있습니까? 시편에 많이 기록했던 다윗의 생애를 보십시오. 하나님을 향한 아름다운 감사와 찬송의 시들이 고난과 시련으로 가득 차서 미친 척 수염에 침을 바르며 도망 다니고 어려움 속에서 헤쳐 나오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찬송의 시들이 흘러나온 것입니다 교회음악을 전공한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한번 하셨습니다. 교회역사를 보면 주옥과 같은 찬송의 감사의 시가 치열한 전쟁과 고난의 때에 대부분 쓰여 졌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베푸신 놀라운 은혜 때문에 가슴이 저리도록 그렇게 눈물이 핑 돌면서 나의 잔이 넘치나이다. 주님이 제게 안 해주신 것이 없습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우리들이 처음사랑을 가졌을 때 그때 하나님이 그렇게 감격하고 하나님 앞에 내가 무엇으로 주님께 받은 은혜를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할 때에 하나님이 집을 사주셨습니까? 복권에 당첨되게 해주셨습니까? 그런 것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그런 일도 해주셨지만 그런 일 때문에 감사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시고 나같이 쓸모없는 인간을 이렇게 사랑해주셔서 은혜를 베푸시고 충성스럽지도 않은 이비참한 인간에게 주님이 사명을 주셔서 하나님의 교회한구석에서 라도 섬기며 살 수 있게 만들어주신 그 은혜가 감사해서 눈물이 앞을 가렸지 않습니까? 그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에 가득 찬 원망을 버리고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할 때 감사한 마음이 생겨나고 비로써 우리의 눈의 껍질들이 벗겨지면서 얼마나 우리주변에 감사할일들이 많은지 깨닫게 되는 것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 되심을 인해서 너무 감사하고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불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시면서 원망하실 일들이 너무나 많으실 텐데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향해 원망하신 적이 있습니까? 오히려 하나님이 안 해주신 것 없이 모든 것을 주셨는데도 하나님원망하고 원망하게 되면 반드시 불신앙의 죄를 짓게 되고 마음이 강퍅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올 일년에 하나님 앞에 무언가 받아야 되겠다고 하는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무겁게 여러분들을 짓누르고 있었던 원망의 죄들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 기도할 때 말씀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마음깊이 원망했던 죄를 가슴아파하며 회개하고 주님 제게 주신 은혜가 너무나 족 합니다 제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일 만 분지 일도 보답하는 삶을 살지 못했고 수많은 탐욕들 때문에 눈멀어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진실한 눈물어린 사랑을 내가 읽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아무것도 없어도 주님만 있으면 저는 행복 합니다 한번 그렇게 고백을 해보십시오. 그래서 금년에는 원망의 죄를 모두 버리고 하나님 앞에 정말 감사하면서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미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레19:17)
아침시간에는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길 그래서 버려야 할 것 어제는 버려야 할 것 중 하나님을 향한 원망을 버려야지만 우리가 정말 주님을 만나러 갈 수 있습니다. 오늘은 미움입니다. 오늘 1절에 보니까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우리들이 흔히 생각할 때에 율법적이라고 하는 것은 지키기 너무 까다롭고 그러면서도 인간의 마음의 사정 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고 강제된 규정을 얘기할 때 우리들이 흔히 율법적이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들이 통상 생각하기에는 율법은 사람의 마음 깊은 곳은 별로 관심이 없고 우리가 형식적으로 행하기만 하면 그 율법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율법은 사람의 깊은 내면의 세계보다는 외면적인 도덕적인 의무에 관심이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은 율법에 대한 잘못된 이해이지 율법은 그것이 비록 율법의 형태를 갖기는 했지만 인간의 내면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 율법은 율법을 성심을 다해서 지키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 면 자기가 율법을 다 지켰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에 보면 젊은 부자관원이 예수님께 와서 내가 어찌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그렇게 여쭈어 보았을 때 젊은이는 돈도 많고 권력도 있었는데 영생의 문제를 가지고 고민을 많이 한 모양입니다 만약에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전부라면 이 많은 돈과 높은 지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 그러면서 고민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랬더니 율법을 상기시키시면서 율법에 나와 있지 않느냐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이런 계명들이 있지 않느냐 했더니 이 젊은이는 얼굴에 희색이 돌면서 그 율법이라면 내가 어려서부터 잘 지켰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그런데 너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너는 네 가진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사람들에게 주고 나를 따라 오너라 했더니 조금아까 까지 그렇게 희색이 돌던 얼굴이 변해서 흑 빛으로 변했고 근심과 걱정이 가득 싸인 슬픈 얼굴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그런 명령에 반응하지 않고 슬픈 기색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영생을 얻으려면 율법을 지키고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사람들에게 주고 예수님을 쫒으면 영생을 얻는구나 하고 생각하기 쉬운데 전혀 그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은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그렇게 율법의 십계명을 말씀하셨더니 어려서부터 지켰습니다. 그렇게 말했는데 그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하나님이외에는 사랑하는 것이 없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도 감히 계명을 온전히 지켰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왜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을까 예수님이 구원해주신 모든 사람에게 다 그렇게 말씀 하셨는가? 그것은 아닙니다. 이 젊은 부자에게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 마음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와 관계가 있습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영생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참 사랑하는 것이 되어야 할텐데 부모도 공경했고 살인도 하지 않았고 간음도 하지 않았고 거짓증거도 하지 않았고 ..이렇게 율법을 지켰는데 그 사람 속에 부족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물질을 사랑하는 것 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보다도 더 사랑하는 물질이 그 마음속에 남아 있어서 그것이 거치는 돌이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가 그 사람 속에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예수님을 온전히 믿을 수 없고 그 예수님께 온전히 자기의 인생을 의지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니까 그가 진정으로 그 마음속에 구원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놓고 보면 그가 이것도 지켰습니다. 저것도 지켰습니다. 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자기가 생각하기에는 지킨 것 이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그것이 지킨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예를 들자면 너는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그것은 비록 자기가 하나님이외에 이방의 신에게 절 한 적이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 것이 있으면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고 해서 이 젊은 부자의 생각에는 나는 누구도 칼로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미움은 곧 살인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렇게 파고 들어가 보면 결국은 율법이 껍데기가 아니라 깊은 인간의 내면의 마음속과 관련된 계명이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율법이 무엇인지를 잘못 깨달아서 그렇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그 율법을 생각해보면 인간이 도저히 선하게 살아도 율법을 모두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율법을 통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으니 얼마나 어리석으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율법을 모두 지키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데 이런 식으로 율법을 지킬 수 없어서 결국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을 모두 지킨 사람이 의롭게 되는데 누구도 그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나면 도저히 그 율법을 지킬 수가 없어서 율법을 지켜서 얻는 의는 우리가 얻을 수 없는 의이기 때문에 또 다른 의이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율법을 지키지 못한 우리의 죄를 지고 율법대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셔서 형벌을 감당하셨고 이제는 그렇게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의가 되어서 대신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전해주시기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율법은 절대로 인간의 겉모습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의 세계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 중 잠언에도 보면 무릇 지킬만한 것 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왜냐하면 생명의 샘들이 거기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너의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그랬으며 그 뒤에 나오는 성경이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하라 이것이 무슨 뜻이냐면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이웃 때문에 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망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미워하면 그 사람이 비록 미워할만한 마땅한 이유가 있다고 할지라도 미워하게 되면 그 미움을 당한 그 사람 때문에 자기가 그 죄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니까 그렇게 되지 않도록 책망해서 백성들을 바르게 가르치라는 얘기입니다 어쨌든 이것은 미움에 대한 하나님의 당부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누구도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누구도 이 세상에서 미워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그렇게 인간관계속에서 이러한 죄들을 지으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죄가 심각한 이유는 미움이라는 그자체가 마음에 감추어진 죄이기 때문에 사람을 미워하는 것만으로는 아직 누구에게도 피해를 준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미움이 발전을 해서 사람을 해를 가한다든지 죽인다든지 그의 명에를 손상시킨다든지 이렇게 할 때에 죄를 짓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움이 마음속에 있게 되면 그 사람에게 잘못을 해도 자기가 잘못했다는 가책을 못 느끼게 만드는 힘이 미움 속에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사람의 등 뒤에서 그 사람을 비난하고 욕하는 것은 죄이고 다른 사람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근거 없는 말을 통해서 그 사람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것은 물건을 훔친 것 보다 훨씬 더 커다란 죄입니다. 저도 신앙생활하면서 이런 것들에 대해서 언젠가 깊이 하나님 앞에 깨닫고 나서 그다음부터는 다른 사람에 관해서 이야기 할 때에는 항상 두 번 세 번 마음속으로 곱씹어 봅니다. 마음속으로 곱씹을 때 그것을 이야기 하는 것을 하나님이 조금이라도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면 절대로 말하고 싶어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굉장히 커다란 죄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정치인들의 경우 누구누구 돈 받고 나쁜 짓 많이 했다하더라 하면 저쪽에서는 펄펄뛰면서 내가 언제 그랬는지 증거를 대라하면 아니면 말고 하는 것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굉장히 커다란 악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사람의 물건을 빼앗아 갔다든지 그의 몸에 상처를 내게 했다든지 하면 벌이 큰데 명예를 손상시킨다든지 그러면 벌이 너무 가볍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시키고 등 뒤에서 악한 말을 해서 그 사람의 위엄이나 인격을 깎아 내리는 것들을 서슴지 않게 생각하는 사회가 되기 때문에 이제는 사람들이 서로 불신앙으로 사는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고쳐져야 됩니다. 벌을 많이 주어서 다른 사람의 명예와 품위에 대해서 신중한 마음을 갖게 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근거 없이 다른 사람의 등 뒤에서 헐뜯는 것은 잘못된 것인데 이 헐뜯는 대상도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자기도 어디서 듣고 왔는데 얘기를 하고 화를 내다보니까 그 사람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기와 별로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그 얘기가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니까 굉장히 미안한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모르고 있지만 그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왠지 죄 지은 것 같고 너무 미안한마음이 들어서 필요하면 내가 얘기 했던 것을 다른데 가서 애기 하지 말라고 하고 싶고 같이 얘기했던 사람들 만나서 그 사람이 그 정도 까지는 아니더라고 해명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는 욕을 했는데 그 사람은 자기가 평소에 아주 미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화가 나니까 그 사람 욕을 막 했는데 역시 알고 보니까 그 사람이 그런 일은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때는 미안한 생각이 별로 들지 않으면서 혹시 그 사람이 자기의 그런 소문에 해명을 요구해도 그 일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 일은 하지 않았어도 너는 이런 이런 나쁜 일을 했다고 하면서 싸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워하는 사람들에게는 누군가 손해를 입히고 그에게 악을 행해도 그 미워하는 사람이 자기의 악을 인해서 당하게 된 아픔이나 고통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못하게 하는 기능이 미움 속에 있다는 얘기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미워하게 되면 가치기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미움이 인간의 눈을 완전히 멀도록 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악해지도록 만드는 그러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이 미움이 우리마음에 남아있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미움이 영혼에 파괴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미움이 가슴에 가득하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고사하고 은혜도 잘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도 말하기를 부부사이에 불화한 일이 있으면 기도가 막힌다고 했습니다. 요한사도에 의하면 요한일서에서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 속에는 영생이 없다했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 의미인데 하나는 미움이라고 하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대표적인 삶의 특성입니다 또 하나는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형제를 마음속으로 미워하기 시작하면 속에 영적인 생명들이 고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생명이 되어서 끊임없이 우리 마음속에서 솟아나는데 없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에 어려운 일을 만나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 어려움에 대한 두려움이 물러가고 평강과 기쁨이 마음속에서 솟아나와 자기의 삶을 내려봐도 갑자기 금시발복할만한 일이 생겨난 것은 절대 아닌데 신기하게도 생명이 내마음속에 솟아나기 시작 합니다 전에는 근심과 걱정으로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았는데 왠지 이유모를 알 수 없는 평강과 감사한 마음이 솟아나서 다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도 우리들이 하나님의 원망에 대한 말씀을 드렸는데 그 말씀을 듣기 전까지는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원망 같은 것이 있었는데 말씀을 듣고 눈물을 흘리고 회개하니까 이상하게 마음속에 그 전까지 없었던 하나님의 평강과 은혜가 솟아나면서 이렇게 원망하고 불평해서 내 영혼을 스스로 칼로 찌르면서 살 것이 아니라 정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가 너무나 많구나 하는 감사와 기쁨의 마음들이 솟구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입니다 그런 영원한 생명, 영생하도록 있는 생명이 이 속에서 계속 솟아나는데 미움이 있으면 이런 것들이 솟아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사람을 향한 미움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실 때에도 대부분 사람을 통해서 주시고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통과 어려움을 주실 때에도 대개 환경이라는 것이 있고 사람이 없는 환경이라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환경이라고 하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이라 할 때 그 말은 반드시 상황적으로 어려울 뿐 아니라 어려움을 주는 사람들이 그 환경 속에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있으면 반드시 그러한 하나님 앞에서 느끼는 고통을 전달해 주는 수단이 되었던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제 말씀드린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사람을 향한 미움은 떨어질 수 없이 반드시 공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이런 사람 보셨습니까? 하나님을 향해서는 말할 수 없는 감사와 은혜와 찬송이 넘치는데 사람을 향해서는 마음에서 쓴물이 솟아나도록 미워하는 그런 사람 보셨습니까? 한 샘이 쓴물과 단물을 한꺼번에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쓴물이 나는 샘에서는 쓴물만 나오고 단물이 나는 샘에서는 단물만 나온다는 것입니다 10m간격으로 구멍을 파서 물을 뽑아내도 그 맛이 각각 틀리다는 것입니다 한 샘에서 한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여기에 보면 네 마음으로 형제를 미워하지 말라 아직까지 행동으로 미움을 실천한 것이 아닙니다. 행동으로 미움을 실천해서 상대방에게 손해를 가했다면 하지 말라 정도가 아니라 그렇게 하면 이렇게 하나님이 심판하신다. 라는 기록이 나오는 것입니다 살인하면 어떻게 한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면 어떻게 한다. 물질에 손해를 입히면 어떻게 한다. 이렇게 형벌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에 대해서는 일단 하나님이 마음으로 사람을 미워해도 그것이 근본적으로는 살인하는 사람의 마음과 같은데 아직 마음속으로 살인한 것이 실제로 살인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실 때에도 이 죄를 똑같게 생각을 안 하시고 실질적으로 사람이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으면 그 마음을 바꾸는 것이 어는 정도 가능하지만 실제로 악을 행해서 원수를 맺게 되면 그 미워하는 마음을 품은 것이 쉽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미움도 처음에는 무엇인가 섭섭함이나 오해 같은 것들로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라고 하는 인상을 받는 것입니다 인상 받은 것은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는데 틀릴 경우에는 죄가 더 큰 것입니다 근거 없이 미워한 것이기 때문에 더 큰 것입니다 그래서 근거 없이 누군가를 옳지 못하게 하면 정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되어서 미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영혼에 미치는 악영향이 큰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너무 미워하면 미움을 받는 사람은 돌지 않아도 미워하는 사람은 도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셨는지 모르지만 시집살이를 옛날에 너무나 지독하게 한사람들은 우울증 비슷하게 걸리는데 남편으로부터도 억압을 많이 당하면 정신병증세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마음이 우리를 그렇게 파괴시키고 일그러지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미움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생각에 들어오는데 그 생각에 저 사람은 옳지 않다 나쁘다. 라는 생각이 떠오르고 그 생각이 마음에 떨어져서 그다음에는 나쁜 사람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감정이 막 솟아나면 그것이 의지에 호소하면 실제로 그에게 무엇인가 손해를 입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미워하는 감정들이 가득 차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가 하면
우선 첫 번째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철저하게 파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죄를 굉장히 심각하게 보십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마태복음 5장에서 예물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 앞에 드리다가 혐의가 있는 줄로 생각이 나거든 가서 자기 형제와 화해하고 와서 드리라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예물을 받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되 우리의 몸으로만 경배하는 것을 원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경배하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구약에서 제사를 드릴 때 이런 제물을 드릴 때 그 제사가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아름다운 제사가 되기 위해서는 받친 제물과 이 제물을 바친 제사 자가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물을 드리는 제사자의 마음과 제물이 하나가 되어서 이제물이 제사자의 마음에 반영이 되고 제사자의 존재와 삶이 이 제물처럼 될 때에 그 제사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거기서 하나님이 사람들을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단 사람을 미워하게 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트려져 버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마음에 미워하는 생각이 가득차있고 그리고 그 죄가 처리되지 않은 채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니까 자신은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고 말씀에 은혜를 받으려고 하는데 자기 속에 있는 그 미움이 그 사람의 영혼의 상태를 맛이 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고 은혜의 씨앗이 떨어져도 어제 저녁에 말씀드린바와 같이 축축한 광에서 성냥을 켜는 것처럼 성냥불이 잘 붙지 않는 것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은혜를 하나님이 주시는데도 마음이 미움으로 말미암아 은혜의 씨가 떨어져서 잘 자라도록 환경이 그렇게 조성되지 않고 은혜의 씨가 떨어진다고 할지라도 금방 없어지기에 좋은 그러한 나쁜 환경으로 마음이 변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은혜를 받아도 미움이 가슴속에 있을 때에는 은혜를 받아도 그 은혜가 잠시 떨어지는 것 같다는 느낌은 받는데 성장하기에 너무 나쁜 환경입니다 그래서 성냥불은 붙었는데 너무나 습기가 차고 성냥개비 자체가 습기에 젖어서 나무에 그 불이 옮겨 붙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또 일단 씨를 심어서 발아는 되었는데 땅이 하도 척박하고 빛이 들어오지 않아 얼만 큼 자라다가 비실비실 말라버리는 그런 씨앗과 같이 되어 버린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움이 들어오면 제일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전체는 그 은혜의 씨앗이 떨어졌을 때는 그것이 자라기가 굉장히 힘들고 오히려 죄의 씨앗이 떨어지면 잘 자라는 환경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둡고 칙칙한 환경에 잘 자라는 식물과 햇빛과 물 맑은 공기가 있는데서 자라는 식물이 다릅니다. 예를 들면 햇빛 환하게 비치는 푸른 초원위에 버섯 기르는 사람 봤습니까? 그래서 미움이 지배하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가 채소처럼 자라는 환경이 안 되고 곰팡이 같은 죄들이 자라기에 적절한 환경이 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더 많이 파괴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중에는 그런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내가 한번 예수님 잘 믿어보려고 했는데 이제는 실패 했구나 내 마음에는 이런 곰팡이 같은 미움만 크고 죄만 계속 자라고... 그러면 하나님이 왜 그랬느냐 내가 너를 위해서 내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너를 구원해 주었고 네 마음속에 생명과 은혜의 원리를 심어주었고 그래서 잘 신앙생활 하도록 도와주었는데 왜 너는 그렇게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는 맺지 못하고 죄악의 열매만 가득한지 물으시면 그것은 내 탓이 아니라 그 나쁜 사람 만 없었어도 내가 미워하지 않았을 텐데 미워하지 않았으면 내 마음에 은혜가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이렇게 곰팡이와 같이 내마음속에서 죄가 자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모든 책임은 그 인간에게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너는 죄가 없으니까 그 사람에게 가보아야겠구나 하시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미움이 들어오게 되면 사람과의 관계가 파괴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 미워하는 마음이 들어오게 되면 미워하는 사람과 정말 마음을 터놓고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불가능 합니다 더구나 여기에 보면 형제가 그랬는데 육신적인 형제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형제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공동체 자체가 하나의 교회였기 때문에 육신으로만 형제라면 미워하면서도 한 지붕 밑에서 살아야 할경우가 있는데 그러나 신앙 안에서 형제는 얼마든지 안보고 살수가 있는 것이기에 그러면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파괴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워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물론 파괴되고 평소에 미워하지 않던 사람들과의 관계도 깨지면서 미움이 자기 속에서 계속 증폭되고 인간관계를 계속 망가뜨려 나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중심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착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황제가 되도 그렇게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반란이 일어나는데 자기도 이세상의 많은 사람 가운데 한사람에 불과하고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중심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착각 속에 빠진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걱정하는 것이 이혼율이 높아지는 것인데 엊그제 잡지에서 보니까 일곱 쌍에 세 쌍이 이혼한다고 합니다. 옛날만 해도 열명에 세 명이 이혼한다고 했는데 일곱 쌍에 세 쌍이 이혼하니까 50%까지는 안 되지만 42,3%되는 것인데 이것이 계속 치솟아 오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특별한일이 없이 10년 정도 세월이 흐르면 그때에는 20주년 기념일이 하도 귀해서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고 아마 30년을 같이 해로하고 살면 역사책에 기록해야 할 정도로 아마 희귀한 날이 올 겁니다. 그러니까 미국 같은 사회에서 보면 얼마나 이혼을 많이 하는지 통계를 확실히 모르지만 열명에 일곱 명은 이혼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 속에서 아이들의 가치판단이 흐려지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가정교육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죽어도 한번시집가면 아무 생각 없이 살라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이혼을 하는가하면 그것은 자기를 중심으로 모든 사람을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제주도에 집회가 있어서 갔는데 어렵게 표를 구해서 가는데 전부가 신혼부부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상해서 승무원에게 오늘이 뭐 길래 이렇게 전부신혼부부만 있느냐고 했더니 오늘이 손 없는 날이라서 온 사람들이 모두 그 날짜에 잡아서 결혼식을 했는데 제주도도 호텔을 못 구해서 난리가 났답니다. 제주도에 내려서 택시를 탔는데 택시운전기사가 하는 말이 저러고 결혼하면 무엇 하나 여기서 택시기사 하면서 기록적으로 빨리 깨지는 부부가 결혼식하고 내려오면서 호텔가면서 싸우더니 기사한테 차돌리라더니 공항으로 다시 데려다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항에 데려다 주었답니다. 그런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참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를 기를 때 억압하면 안 됩니다. 자신감과 자존감을 갖게 하되 항상 살면서 자기의 힘으로 안 되는 것도 있고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을 아이들이 느끼게 해주어서 무언가 안 될 때 바로 해결을 해 주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런 속에서 아이들이 참는 것을 배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성격이 본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도 있으니까 서로 그렇게 참지 못하니까 결국은 살지 못하고 헤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앞으로 점점 더 많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런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여러분의 자녀들이 어려서 깊은 회심을 경험하고 하나님 안에서 성화되어 가야하고 또 하나는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면서 사회생활을 해나가는 것을 배우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까이 하기 어려운 사람과 이해하고 용서하면서 자라가고 살아가면서 변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면 사람과의 관계도 깨지는가? 입니다. 우리들이 그렇게 내 마음에 안 드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내마음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살아있을 때에는 그것으로서 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참으려고 애를 쓰고 말이 안 된다 하더라도 불쌍히 여겨서 그들을 사랑해주고 하는 힘이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미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고 나면 그렇게 오래 참고 사랑하고 무례히 행치 않고 견디고 자기의 이익을 구치 않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 가끔 보면 결국은 견디다 못해서 가정이 이혼하거나 깨트려지는 그런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남편의 책임도 다른 사람의 책임도 아니고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의 책임입니다 왜냐하면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 참고 이해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정도까지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에 계속은혜를 받으면서 자기가 죽고 주의 은혜가 살아있을 때에는 힘들게나마 그 가정을 지키고 믿음생활을 하려고 하고 남편을 불쌍히 여기고 기도하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교회에도 보면 남편하고 사이가 거의 막다른 지경까지 가서 매일 나와서 눈물을 흘리며 이혼하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다가 변화되어서 남편과 사이좋게 사는 부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 자기가 은혜를 받으면 자기가 이해하고 용서를 해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고 자기에게 그런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지 않으면 어느 한순간에 그동안 억눌리고 살았던 그런 것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더 이상 다른 사람에 대해 참을 수 있는 힘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미워하는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여러분 옛말에 종로 가서 뺨맞고 을지로 가서 화풀이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여기에서 이 사람과의 관계가 깨트려져서 미워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의 영향력이 모두 고갈되고 나니까 은혜에 있을 때에는 얼마든지 이해하고 참을 수 있었던 일도 혈기를 부리고 일어나서 죄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지면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깨트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 다시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워하는 사람이 자꾸 늘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형제를 미워하게 되면 반드시 시간이 흐르고 나면 사람을 미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자기와의 관계가 파괴 됩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도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사람마다 자기 자신을 대하는 것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를 너무 끔찍이 위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생각을 안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끔찍이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 반대로 자기는 학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옛날에 지체하나가 그렇게 열등감에 시달리는 것입니다 얼굴이 못 생긴 것도 아니고 돈도 좀 있고 한데 그런데 자기는 무언가를 잘못하고 못났다라고 하는 열등감에 시달리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서울대학교 나왔는데 그런가 하면 학교 문턱도 못 들어갔으면서 이 세상에 자기밖에 없는 줄 아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이 모두 다 다른데 그것은자기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 말씀에 의해서 은혜를 많이 받게 되면 자기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될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와 관계를 바르게 맺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도 관계를 바로 맺지 못 합니다 그래서 열등감에 시달리는 것입니다
열등감의 원인도 여러 가지입니다 돈이 없어서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고 배운 것이 모자라서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고 키가 작아서, 얼굴이 튀는 것 같아서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 별사람 다 있습니다. 그것이 모두 자기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과 상관이 있는데 그 관계가 건설적이고 올바르게 되어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트려지고 사람과의 관계가 깨트려 져서는 안 됩니다 이런 것 들이 많이 깨트려지면 자기가 올바른 자아상을 확립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머리도 좋고 똑똑하고 모든 것이 다 좋은데 집에서 계속 학대를 받고 하면 이아이가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을 못 하는 것입니다 만나면 늘 나는 못해 나는 못해 하거나 파괴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와의 관계도 깨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미움이 하나님, 다른 사람, 자기와의 관계도 모두 파괴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렇게 모든 것들이 파괴되고 나면 살려고 놓여있는 상황이 전부 적수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서도 자기가 적군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포위된 가운데 아름다운 신앙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래서 그런 상황을 오랫동안 지속한 사람들은 교회 와서도 예수 믿겠다고 하면서도 많이 휘어있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웬만큼 받아도 휜 것이 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에게서 이상하게 사람이 깐죽거리고 성격이 형언할 수 없이 휜 그런 사람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이 안 고쳐져서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하나의 패역입니다 그런데 그런 모든 것들이 바로 미움에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을 향한 미움은 어떤 면에서 더 심각하느냐면 사람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예수님이 위해서 생명을 버리신 혹은 버리신 그 구속의 은혜가 적용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아무리 막나가는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 속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이 그 사람 속에 남아있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있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그 형상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 속에 남아있는 형상은 하나님자신의 형상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형상을 대하는 태도, 그 자체를 당신을 대하는 태도로 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형제를 많이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면서 살면 하나님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을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신문을 읽다보니 연세 드신 아주머니쯤 되는 것 같은데 아주머니가 추운 날 의경들이 근무를 하는데 얇은 옷을 입고 근무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신문에다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왜 의경들을 저렇게 추운날씨에 따뜻한 옷을 지급해주지 않고 그렇게 하느냐고 불평을 했더니 경찰에서 답장을 썼는데 옷을 안준 것이 아니라 본인이 더워서 입지 않은 것이라고 하면서 겨울이 되면 두껍고 좋은 옷을 여러 벌 주는 것에 대해 상세하게 거기에다 썼습니다. 여러분은 아들을 군대 보내 본 적 있을 것입니다 혹은 딸이 낯모르는 도시에 가서 유학을 하는데, 군대에서 아들이 편지하기를 힘들기는 하지만 학교선배를 만나서 저를 잘 돌봐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나한테 잘 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내 핏줄인 자식한테 그렇게 잘해 주는 그 사람이 이름이 누구인지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만 그 사람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자기의 자녀를 그렇게 생각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미움이 남아있으면 우리 안에 영적인 생명을 파괴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파괴하고 또 자신과의 관계를 파괴해서 자기를 아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증오하는 사람의 눈빛은 벌써 다릅니다. 그런 사람의 눈빛이 강할 수는 있지만 아주 무서운 눈빛이고 세상이나 모든 것을 바라보는 시각자체도 굽어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미워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입니다 그래서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곧 자기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에서 생활하다 보면 사람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 교회니까 예수님의 피로 구원을 받았다할지라도 우리 모두가 그렇게 쉽게 한번에 변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보니까 교회 안에서 같이 살아도 살아가면서 사람들 때문에 속상한 일도 많고 미워하는 마음도 생길 적이 많습니다. 그때마다 잊지말아야할 복음적인 원리가 이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을 생각해서 예수님은 머리이시고 교회의 모든 지체들은 지체들이 핏줄처럼 힘줄처럼 뼈마디처럼 연결되어서 몸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머리가 가자. 하면 발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근육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하면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나이가 먹어서 관절이 신통치 않아서 일어났다 앉았다 하려면 아픈데 그때에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지 않습니까? 발가락 아프다고 발가락 모두 잘라버리는 일은 안 합니다. 관절 아프다고 환자가 이런 다리를 달고 사느니 관절 밑은 모두 잘라달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자기 몸이니까 그런 것입니다 몸이 조금아파도 어떻게 하든지 고쳐서 쓰려고 하고 다른 데는 신경 안 써도 아픈 부위는 저녁때마다 약을 바르고 싸매서 매일 만져주지 않습니까? 그것이 자기 몸이니까 끊어낼 수가 없으니까 그렇게 날마다 만져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자기무릎이 아프면 무릎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몸의 한 부분은 모두 연결되어있어서 한쪽무릎이 아파도 내가 상관이 없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무언가 미워할만한 지체가 생기고 연약한 것들이 발견되면 내 몸에 부스럼이 생겼다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더 특별히 보양하고 돌보고 싸매주고 하면서 주님의 몸으로 온전하게 세워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적인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살아가면서 절대로 미움을 버려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맺힌 것을 풀지 않고는 절대로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이 미움의 죄를 털어버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첫째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사람과 화해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고 네 번째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든 미움을 치료하는 궁극적인 해결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지금도 만약 마음속에 누군가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깊이 화해하고 편지라도 보내서 화해해서 마음에 이제는 이 사람을 더 이상 미워하지 않겠다는 고백을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진심으로 사랑하려하고 기도하려 하고 그렇게 하면서 미움이 모두 치료되어서 하나님과 사람과 여러분자신과의 관계를 파괴하지 않도록 그렇게 치료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영혼에 건강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일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일이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사실 쉬운 일이 아니라서 어떻게 보면 미워하는 것은 살인하는 것이지만 그 미움을 용서하는 것은 자살하는 것만큼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자신의 힘으로는 용서하기가 정말 힘이 듭니다. 여러분은 감동적일 정도로 누군가를 용서해보신 경험이 있습니까? 그냥 내가 참지 하는 정도는 용서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복수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용서하는 것은 너무나 힘이 듭니다. 제가 맺힌 것을 풀어야 한다. 라는 책에서 얘기를 했습니다. 재개발을 하기 이전에 한동네에서 모두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재개발을 한다지만 우리는 돈이 없으니까 보상금 조금 받고 쫓겨나야 되니까 그 돈 가지고는 어디 가서 집을 얻을 수 없으니까 개발 파 개발 반대파가 서로 싸우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직장 갔다 오니까 집이 없어져 버린 겁니다. 트랙터가 모두 쓸어버렸데 저쪽 땅속에서 어느 아줌마가 머리에 피를 흘리며 기어 나오는데 우리 어머니인 겁니다. 그래서 왜 그랬냐고 하니까 경찰들하고 철거반하고 와서 씨름하다가 무엇인가에 맞아서 피가 흐르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때 내가 은혜생활을 잘할 때 이었는데 저나 여러분이나 바탕이 참 나쁩니다. 순간에 은혜가 정지되면서 속에서 피 끓듯이 미움이 올라오는데 이 자식들을 내가 죽여 버리겠다는 마음에 그 자리에서 단걸음에 파출소로 뛰어 간 겁니다. 그렇게 파출소에 가서 책상을 치면서 술 먹은 사람 난리치듯이 고래고래 소리치면서 민중의 지팡이 라는 사람들이 주민들을 그렇게 폭행해서 피 흘리게 하냐고 나쁜 사람들이라고 가만 안 두겠다고 거의 인사불성이 되어서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그리고 나와서 철길을 죽 걸어오는데 어떻게 고발을 해야 법적으로 대응을 해서 경찰 몇 명을 옷 벗게 해야 겠다. 는 분노가 마음속에서 일어나면서 걸어오는데 한 중간까지 왔는데 갑자기 주기도문이 생각이 나는 겁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한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시고 ...그런데 너무 너무 아픈 겁니다. 어머니가 다쳐서 아팠을 때보다 그 사람들을 용서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아픈 겁니다. 그런데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이 주님이 나를 어떻게 용서해 주셨는가 나는 정말 하나님의 마음에 피 흘리기까지 죄를 지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하나님이 내가 당신께 지은 죄에 대해 서 복수하지 아니하시고 그렇게 말할 수 없는 사랑으로 오셔서 나를 용서하시고 내 죄를 사해주시기를 얼마나 자주 많이 하셨던가 그리고 생각하니까 주님이 나를 용서해주실 때에도 이렇게 힘들고 아프셨을까 주님도 나를 용서해주실 때 이렇게 힘들고 아프셨겠지...그런데도 나를 향한 사랑이 그 아픔보다 컸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를 용서하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나니까 눈물이 겉잡을 수없이 흐르는 겁니다. 그러면서 찬송이 하나 떠오르는데
예수가 함께 계시니 시험이 오나 겁 없네
기쁨의 근원 되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
결국은 1km 걸어오기 전에 다 용서하고 철길에 주저앉아서 펑펑 울면서 주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이렇게 악한 사람입니다 주님이 나를 용서하신 것 잠깐 잊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니까 정지되었던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자기를 버리신 하나님의 그 은혜가 속에서 확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에 미움을 품었을 때에는 순간적으로 독약과 같은 쓴물이 올라서 우리 안에서 은혜를 일시에 정지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건한 사람이 칼을 들 수 있는 지경에 까지도 바뀌는 것입니다 그러니 미움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회개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불을 품고 있는데 어떻게 데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위해서 반드시 회개하고 그것이 바로 다른 사람을 살리기 이전에 먼저 자기의 영혼을 하나님 앞에 살리는 길입니다 이렇게 미움을 버리고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미움을 버려서 주님의 사랑을 만나고 십자가의 사랑을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3.게으름을 버리고 1
내가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그 전부에 퍼졌으며 그 지면이 거친 풀로 덮였고 돌담이 무너져 있기로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노라(잠24:30~32)
주님을 만나러 가는 길에 버려야 할 것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을 향한 원망을 버려야 한다. 이고 어제는 미움을 버려야 한다. 이었고 오늘은 게으름을 버려야 한다. 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의 영혼에 커다란 타격을 주는 죄들은 우선 소문나고 모든 사람이 다 알 수 있는 죄도 우리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지만 이런 것들은 자기가 그런 죄를 지었을 때 자신의 양심이 그 죄를 지었다는 것을 증거 해서 알게 하기 때문에 그 죄를 분명히 인식하는데 반해서 어떤 죄들은 야금야금 자신의 영혼을 파괴시키는데도 그것이 가슴에 선뜻 다가오도록 파악되지 않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게으름이 죄라는 사실은 인정하십니까? 그러면 게을렀던 죄를 뼈가 저리도록 회개했던 분 있습니까? 많지 않습니다. 거짓말을 했거나 도둑질을 했거나 이런 죄들은 하나님 앞에 뼈아프게 회개하는 경우가 자주 있어도 게으른 죄를 회개하는 것은 주일 대표기도 시간에 한번쯤이나 할 정도이지 게을렀던 것에 대해서 가슴이 사무치도록 뼈아프게 회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게으름에 대한 회개를 자주 안한다는 이야기는 그 죄가 처리되지 않고 계속 우리 속에 남는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보면 내가 증왕에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 즉 거친 풀과 잡초들이 돋고 엉겅퀴가 돋고 돌담이 무너졌다 그래서 내가 많은 생각을 했다 지혜 자가 그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증왕이라는 것은 원래 히브리 성경에는 안나오는데 굳이 풀이 하면 옛날에, 예전에 그런 뜻입니다 이것은 없어도 되는 말 이고 내가 예전에 게으른 자의 밭이란 게으른 자가 하는 밭을 뜻 합니다 밭 매는 것은 장난 아닙니다. 사람들은 씨를 뿌려놓으면 저절로 자라나는 줄 알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기름진 밭일수록 그곳에는 잡초가 많이 자라나고 그것을 내버려두면 땅의 자양분들을 빨아 먹어서 심은 곡식들이 제대로 자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밭일 중에서 가장 여러 번 해야 하는 일이 김을 매주는 일입니다 씨는 한번만 뿌리면 되고 거둘 때에도 두 번거두지 않고 한번거두면 끝나지만 그러나 김을 매는 것은 늘 새로 매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잡초들을 뽑아내고 땅을 북돋아서 공기가 들어가게 하고 비료를 주고 해서 곡식을 생산해 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게으른 자의 밭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게으른 자의 밭에는 풀이 자라고 잡초가 뒤엉키고 해서 결국은 잡초는 많이 자라고 먹을 것은 잘 자라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우체국장으로 있을 때에 발령을 받아서 가니까 그 앞에 있던 선임자가 한 자동차 몇 대 세울만한 땅을 1년에 만원을 주고 얻어놨으니까 당신도 거기에다 상추라도 심어먹으라면서 상추씨를 뿌려놓고 갔습니다. 그래서 나는 전임자가 뿌려놓고 갔으니까 점심시간 되어 상추 좀 뽑아와 봐라 점심에 먹자 해서 가지고 오는데 상추가 비실비실한 것이 상추크기가 손가락만한 것입니다 그래서 좀 큰 것 없나 했더니 모두 그만하대서 나가보니까 씨만 뿌려놓고 누가 가꾸지를 않아서 풀이 잔뜩 자라서 풀밭인지 상추밭인지 모르겠더군요. 그 풀 사이에서 상추를 뜯어가지고 오니까 상추가 자라지 않고 그것도 병아리들이 와서 많이 뜯어먹어서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때 느낀 것이 이것이 씨만 뿌려놓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농부들이 가난하게 사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쌀이 한 톨에 수백 수천 톨씩 열리는데 이 세상에 그런 장사가 어디 있습니까? 만원투자해서 가을에 이천만원씩 거두는 그런 장사가 있습니까? 그런데 왜 못살까 쌀 한 톨에 수천 톨씩 열매가 맺히는데 못살까 쌀 한 톨이면 수천 톨이 가을에는 쏟아져 나오는데 ....그런데 거기에서 풀들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부지런함이 몸에 배인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 지혜 자가 지나면서 보니까 게으른 자의 밭을 보니 가시와 엉겅퀴가 솟아나고 돌담은 무너지고 그래서 결국은 곡식이 될 수없는 그런 묵은 밭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또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났다 했는데 포도원은 무, 배추 저리가라 할 정도로 일이 많은 것이 포도나무입니다 포도농사를 지어보지 않았지만 포도밭을 자주 다니면서 보면 포도원주인 들이 겨울부터 일합니다. 그래서 포도나무를 가꾸고 하는데 포도가 약을 주고 거름을 주고 하는 정도가 아니라 포도가 맺히면 한 송이 한 송이 봉지에 싸고 가지가 늘어지니까 하나하나 줄로 묶어서 울타리에다 매달고 그렇게 정성을 들입니다. 그렇게 해서 가꾸는데 여기에서 보니까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이라 했는데 사실 히브리 성경에 보면 마음 없는 자의 포도원이라 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마음 없다. 라고 하는 것은 농사를 짓기는 하는데 애정이 없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에는 그 포도나무에서 아름다운 실과가 맺히는 것이 아니라 버려두면 들 포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가꾼 포도가 아니라 내버려두면 들 포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 포도는 먹지 못합니다. 그래서 버려진 과수원에 사람들이 가서 과수 따먹는 것 보셨습니까? 먹을 수가 없으니까 따먹지 않습니다. 몇 년 만 지나면 과일나무니까 과일이 맺히기는 맺혀도 사람이 돌보지 않기 때문에 못 먹는 과일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지혜 자가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 게으름이 그런 죄인데 왜 죄인지 이게 말씀드리겠습니다만 게으름은 우리의 죄책감으로 잘 파악이 되지 않는 죄이기 때문에 게으름으로 말미암아 우리영혼이 아주 피패 하기 쉽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이 게으름의 궁극적인 이유를 세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우선 첫째는 이 게으름의 이유가 인간에게 깊이 있는 부패성 때문에 게으름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부패성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심령 깊은 곳에 죄의 영향이 누룩처럼 번져있어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주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서 태어나게 하신 목표를 따라서 살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왜 보내셨겠습니까? 원래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를 보면 왜 하나님이 세상에 인간을 창조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담과하와를 이 세상에 창조하신 이유는 생육하고 번성해서 온 땅에 충만하고 다스리기 위함 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이 세상에 창조하신 목적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문화적인 목적이고 또 하나는 종교적인 목적 이었습니다
먼저 종교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고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이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사람을 이 세상에 만드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지만 영이신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수 있을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그 인간과 함께 가족처럼 살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 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도 두 번째는 문화적인 목적이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해 놓으셨지만 하나님이 당신이 직접 다스리고 싶으셨던 것이 아니라 사람을 그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관리자로 삼으셔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이 세상에 창조된 세계를 다스리는 그런 세상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만약 아담과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으면 인간에게 노동이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반드시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노동을 하고 애를 써서 일하는 것을 다 죄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죄 때문이 아니라 그 노동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다만 죄가 들어오고 나니까 노동을 할 때에 기쁘고 감사한 생각이 안 들고 고달프고 짜증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노동해서 맛보는 고통이 죄의 대가이지 노동 그 자체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죄가 들어오지 않았어도 인간은 경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기르기 위해서 봉사하고 그러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많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다스리고 해나가는 것이 인간을 창조하신 문화적인 명령인 것입니다 죄가 안 들어왔어도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더 발전시켜서 어떤 식으로든지 인류의 문화는 다른 양상으로 발전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발전시킬 명령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그런 명령을 따라서 살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선 첫째는 종교적인 명령을 지키려고 안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고 주님을 자랑하고 영광 돌리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만물의 주인이신 것을 기억하면서 살고 해야 하는데 안 그러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화를 건설해 가는데 그 안에 하나님은 없는 문화인 것입니다 그래서 문화가 발전되면 그것으로 인간들이 더 쾌락에 빠지고 그것으로 더 죄를 짓고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죄가 들어온 다음부터는 가만히 내버려 두면 종교적인 명령을 따라서 살수도 없고 문화적인 명령을 따라서 살수도 없는 존재들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에 그 사람을 보내신 목적을 따라서 살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그 바로 본래의 목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용서받고 거듭나고 자기 안에 주신 은혜의 생명의 원리가 장성해 져서 죄를 이기고 살면 이 죄악 된 세상에서도 종교명령을 준행하면서 살고 이렇게 하나님 없는 문화를 건설해 가는 속에서도 하나님이 계신 문화를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되어서 창조 시에 사람들에게 거셨던 그 기대를 따라서 살 수 있게 하나님께서 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부패성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죄 때문에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살 수없게 된 인간의 더러움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것중의 하나가 게으름 입니다 그래서 이 게으름은 죄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죄를 용서받고 깨끗이 회개하고 나면 게을렀던 사람도 부지런하게 됩니다. 해가 동산에 떠오르도록 잠만 자던 사람이 예수를 믿고 은혜를 많이 받으면 새벽기도도 나오고 은혜도 받고 하면서 부지런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부패성 때문에 그런 부지런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뚜렷한 목표 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그때 주님하신 말씀 내 샘에 와 생수를 마셔라
주님을 모르고 죄 가운데 있을 때에는 우리들이 구하는 것은 허탄한 것들입니다 의미가 없고 중요하지 않은 일들 그런 것에 생사를 걸고 사는데 오늘은 이것을 좋아했다가 내일은 저것을 좋아했다가 마음이 목표가 없이 밤낮없이 돌아다니는 것이 예수 믿기 전의 우리의 삶입니다. 그런데 신자가 되고 나서도 게으르게 사는 이유는 목표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신앙적으로 따져볼 때 사명감 없는 사람이 부지런히 분투하면서 사는 것 보신 적 있습니까? 없습니다.
(예화) 제가 아는 지체 한사람이 아이들을 언어연수 보냈는데 그 아이들이 한국에 다시 들어오려고 하지 않으니까 할 수 없이 부모들이 정리를 해서 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부모가 나이가 들어서 고향, 친척 버리고 이민을 갈 때에는 얘들 하나 보고 가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아이들이 좋은 교육시스템을 만나서 거기서 열심히 공부해서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뛰어나지만 반대로 그렇게 공부안하고 놀면 한국에 있는 것만도 못합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바로 살면 외국에서는 우리나라보다는 환경이 깨끗하지만 정신 못 차리고 마음먹고 불결한 사회에 접근하려고 하면 외국이 한국보다 훨씬 심각하게 아이들을 망칩니다. 마약 폭력 음란문화 그러니까 정신 차리고 살면 그런 것들로부터 어느 정도 보호 되는데 나쁜 것에 관심을 가지면 우리나라 못지않게 수렁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가서 그렇게 나쁜데 빠진 것은 아니지만 어떤 원대한 꿈을 갖고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공부를 하면 괜찮은데 그런 것들이 별로 없으니까 엄마가 오히려 더 애를 쓰면서 공부하려고 하니까 아들이 타이르는 겁니다. 그 나이에 무슨 공부냐고 이제까지도 힘들게 살았으면서 좀 쉬엄쉬엄 살지 지금도 그렇게 힘들게 살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일단 목표가 사라지고 나니까 다른 사람들이 목표를 가지고 사는 것도 피곤해 보이는 것입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은혜를 받고 신앙적인 분명한 목표가 있을 때에는 게으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신앙적으로 개인적인 삶속에서 별로 목표가 없을 때에는 게으름이 누룩처럼 번져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때문에 신자는 정말 분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제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어제저녁에 누워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세월이 살같이 흐른다는 이야기는 문학작품에나 나오는 줄 알았는데 참으로 빨리 지나가는구나. 눈뜨고 나면 한달 다시 눈뜨고 보면 일년 언젠가는 한 3년 전 일쯤인가 하며 생각하니 10년 전 일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그렇게 눈물이 핑 돌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흘러가는 세월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흘려보낸 세월을 누가 보상을 해주겠습니까? 그러니까 오늘이라고 일컫는 이날 동안에 열심히 사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장기적인 목표 중기적인 목표 단기적인 목표 이달의 목표 금주의 목표 오늘 하루의 목표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보니까 독서를 하세요. 라고 써 붙여 놨습니다. 하루에 15분씩 책을 읽어서 40년을 읽으면 대학을 네 개 나온 것 하고 같은 정도의 양의 책을 읽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목표가 있으면 게으르게 살수가 없습니다. 한 학생은 전철타고 갈 때에 카드에다 새까맣게 단어를 써서 만원 전철 속에 매달려 흔들거리면서도 눈을 감고 외우면서 가고 한사람은 털썩 앉아서 타자마자 고개를 푹 숙이고 잠을 자는데 그런 똑 같은 생활을 3년 정도만 하면 두 사람의 차이는 가까워질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자기사랑 때문에 게으른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고 많이 변화되고 나면 신기하게 찾아오는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전에는 자기만을 위해서 살 때 그렇게 행복했는데 변화를 받고 보면 이제는 남을 위해서 살고 하나님을 위해 살 때 더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눈이 떠지면서 인간의 원래 목적이 무엇인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아마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인간은 죽을 때 손마디에 굵은 못이 박혀 죽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렇게 노동을 해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성취해 가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이 바로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 노동에서 맛보는 고통은 없었겠지만 그 즐거움은 있었을 것입니다
힘든 것이 항상 괴로운 것은 아닙니다. 예전에 선교사 한분이 한국에 왔는데 선교를 하면서 외국사람들은 에너지가 넘치니까 운동을 하는데 그땐 테니스를 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테니스를 치는데 그 사람한테 전도 받은 양반이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선교사한테 왔는데 그 양반이 목사님 뭐하십니까? 해서 테니스 친다고 하니까 아이고 그런 것은 아랫것들 시키시지 왜 목사님이 땀을 흘려가며 하시냐고 하더랍니다. 그런 것은 힘들지만 기분 좋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자기사랑이 있기 때문에 인간들은 부지런히 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있어서는 부지런하게 살려고 하지만 의무를 행함에 있어서는 그렇게 살려고 하지 않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사랑 때문에 인간들이 게으르게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인입니다 그래서 게으른 사람들은 모두 이기적입니다 거의 틀림없습니다. 자기편안함을 많이 받치는 사람치고 이타적인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럴 정도로 사람들이 이기적 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자기사랑이 인간으로 하여금 게으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에도 게으른 사람들은 문쩌귀가 돌 위에서 뒹굴뒹굴 도는 것처럼 침상에서 일어나지 않고 도는 것입니다 게으른 사람들이 늘 잘 쓰는 말이 피곤하다하고 늘 늦기 좋아하고 그것이 결국은 파고들어가다 보면 자기 자신을 위하는 자기사랑 자기집착 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인간들이 그런 이유 때문에 게으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게으름은 어느 방면으로 나타나는가? 그리고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선 첫째는 일반은총적인 차원에서 우리의 직업생활에 있어서 게으름은 궁핍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을 보니까 바로 뒤편에 보면 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그래서 게으르면 좀더 자자 좀더 졸자 그러면 빈궁이 강도같이 오고 강도라는 것이 힘으로 빼앗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했는데 전쟁이 확 밀려오는데 그것을 막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음식점을 가도 게으른 사람이 하는 음식점은 안갑니다 어쩌다가 할 수없이 한번가면 그다음에는 딱 집어 놓았다가 절대 안가고 다른 사람에게도 절대 가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 음식점은 맛이 있을 리가 없고 또 맛이 있다고 해도 정직하게 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한 사람들이 대개 정도를 찾아 살려고 하지 게으른 사람들은 복권이나 달라고 합니다. 그렇게 게으른 사람들은 요행수를 바랍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요행수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직업생활을 그렇게 하면 반드시 빈궁이 강도같이 몰려오고 곤핍이 군사같이 일어납니다. 좋은 기억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게으르면 나중에는 모두 무너지게 됩니다. 가시와 엉겅퀴가 기업에 가득하고 돌담이 우르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화) 제가 아는 약사 한사람이 있는데 약국은 언제 사람이 많이 가느냐 하면 저녁 때 많이 가는데 사람들이 하루 종일 생활하다보면 저녁이 되어서 머리도 아프고 어지럽고 하니까 집에 들어오는 길에 약국에 들러서 약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국이 한 참 바쁠 시간이 한 6시에서 10까지인데 이 약사는 겨울이면 5시에 문을 닫고 여름이면 6시에 문을 닫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기는 테니스 치러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고도 먹고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약국에 가면 약 먹어도 잘 낫지를 않는데 그 집은 나으니까 직장에 있는 남편이 부인한테 전화 걸어서 약을 사다 놓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자기 직업에 대한 자존심이 있어서 내가 지어주는 약 먹고 싶으면 근무시간에 와라 하는 것입니다 그 정도 성의를 보이라는 것입니다
(예화)강남에 있는 음식점은 당일 날 가서 밥을 달라고 하면 안 줍니다 속을 들여다보면 텅 비었는데도 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루 전에 예약을 해야 하는데 아무리 자리가 비어있어도 우리음식점에 음식을 드실 건데 어떻게 그 정도 성의도 없습니까? 하면서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잘 된답니다
제 동생이 레스토랑을 하는데 통계가 나왔답니다. 식당에 가서 음식이 아주 맛있을 때 는 6명까지 전파되는데 음식이 맛이 없을 때에는 삽시간에 16명까지 전파가 된다고 통계가 나왔답니다. 그러니까 그 집에 가서 꼭 먹으라고 말하는 사람보다는 그 집에 절대 가지 말라고 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무엇인가 노력을 해서 남다르게 해야지 그 약사는 공부를 아주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떨 때에는 5시에 퇴근해서 공부하러 가서 밤늦게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 하나를 지어도 남다르게 지어내고 물약도 자기가 조제를 해서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그 약의 효과를 보니까 자기가 고객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내약을 팔아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어주는 약 먹으려면 일찍 와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무엇인가 자기의 세계를 가지고 분투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이 직업 활동을 할 때에도 항상 전문가가 되려고 애를 쓰면서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항상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 눈물 나게 노력을 하면서 부지런해서 무엇인가 자기가 맡은 직업의 분야에서 다른 사람보다 훨씬 앞서 가려고 하는 그런 욕망과 재능을 가지고 해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교회를 지으면서 그런 인생의 지혜를 참 많이 배웠습니다. 때문에 부지런해야 속지 않고 자기의 일들을 감당해 나가는 것입니다 게으르게 되면 자기의 직업생활에서도 기쁜 날이 없습니다. 항상 남이 하는 것 보니까 계속 노력하며 부지런하게 자기직업 생활하는 사람을 쫒아갈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사기를 쳐서 사람들을 속여서 한번 크게 얻으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정당한 직업활 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엊그제 하나님의 사랑에 빚진 사람이라는 이야기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지 않습니까? 그렇게 신실하게 살아야 하는데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면 그렇게 정상으로 승부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꾸 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치열한 경쟁의 세계인데 피 눈물 나게 노력을 해야지 자기직업에 있어서 승부를 보지 게으른 사람들은 자기 직업에 있어서도 패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열심히 노력을 해도 그것 가지고는 안 되고 하나님의 섭리가운데서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는 일단은 부지런하게 자기 일에 성실할 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니까 가난과 곤핍이 군사와 같이 몰려온다 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 번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전도사로 가난하게 살면서 청년부하면서 돈 걷어 가지고 구제하러 간다고 가보니까 우리 집보다 더 잘 사는 것입니다 칼라TV 냉장고 무슨 비디오 오디오... 그런데 굶는다니까 도와주고 오면서도 아주 기분이 안 좋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돌아오면서 청년회장보고 굶고 산다더니 우리 집보다 살림이 더 많다 하니까 전도사님 그거 다 월부입니다 그래서 굶는다니까 정말 배신감 느끼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게으른 사람은 직업 활동에 있어서도 자꾸 낙후되고 처지고 뒤로 밀리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신자들이 직장생활을 해서 남에게 고용인으로 있거나 해서 봉사하는 처지에 있을 때에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성실한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고 직업 활동을 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빗자루라도 드는 사람이 누군가 했더니 예수 믿는 사람이더라. 직장에서 신우회만 참석하고 ..신우 회 참석해 보니까 게으르다고 찍은 사람들이 모두 신우 회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변화를 받고 삶을 바꾸는 사람도 많이 있지만 게을러서 맨 날 지각하고 그렇지 않으면 뇌물 받고 징계 받고 무능해서 여기에서도 필요 없다 하고 저기에서도 필요 없다 하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밝혀질 때 직장생활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많이 가리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직업 활동의 영역에 있을 때 일단은 부지런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개인적인 성화의 삶에 영역에서 부지런해야 합니다. 오늘 여기에 보니까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내가 봤더니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고 돌담장은 모두 무너져서 황폐하게 되었더라. 그랬는데 이것이 우리의 영적상태와 똑 같습니다 우리들이 부지런히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일에도 부지런하고 또 기도하는 일에도 부지런하고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일에도 부지런하고 이렇게 해서 자기의 영적생활을 부지런함으로 잘 간수해 나갈 때에는 똑같이 부패한 죄인이지만 그 부패한 죄가 올라와서 우리를 전체적으로 지배하지는 못 합니다 그래서 악한 생각이 씨를 뿌릴 만 하면 회개의 눈물로 씻어내고 또 무지와 어두움으로 말미암아서 잘못생각하고 판단력이 흐려질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공부하면서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었구나. 깨닫고 그것들을 쓸어버리는 것입니다 바르지 못한 길을 걸어갈 때도 있는데 부지런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참고하고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하기 위해서 애쓰는 동안에 자기가 걸어가는 길이 잘못된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라서 그것도 털어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누가 완전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잘못 생각할 수도 있고 잘못된길을 걸어갈 수도 있지만 부지런한 사람들은 그것을 털어내 버리고 그것을 새롭게 그 실패를 딛고 발전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화의 삶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게으른 사람치고 신령한 영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교회역사에서도 보면 하나님이 쓰셨던 정말 신령한 사람들은 모두 부지런한 사람이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을 그렇게 깊이 만나고 그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되었는데 인생의 남은 날들은 정해져 있으니까 어떻게 부지런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주님을 섬길 날들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여러분 밭을 갈다가 뉘엿뉘엿 해가 지면서 땅거미가 지는데 대충하고 가지 않습니다. 자기 밭인 경우에는 끝까지 갈고 갑니다. IMF난 뒤 지금생각하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옛날에 우리 어렸을 때만해도 노가다 십장 감독이라고 하면 거의 군대소장같이 그 사람한테 잘 보이지 않으면 너 내일부터 나오지마. 그러면 온 집안 식구가 굶으니까 시키는대로 했습니다. 그런데 주택 백만 호를 짓니 어쩌니 하니까 사람들이 품귀현상이 일어나서 아무 기술 없는 사람도 시키고 10만원씩 받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는 세상에 못해먹을게 노가다 십장이고 현장감독이라고 했는데 사람을 구할 수없으니까 십장이 뒷정리다 하고 사람들 구슬러서 그 다음날 나오게 해야 되는 겁니다. 이렇게 하다가 IMF를 맞은 겁니다. 그렇게 해서 거들먹거리던 사람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고 그렇게 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영적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기도생활은 어떤 때에는 응급처치 같을 때도 있습니다. 인생이 다급할 때 한번 기도 했는데 적시에 응답해주시고 삶의 벼랑 끝에 있는 우리의 인생에 역전의 대드라마를 주십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에는 기도는 보약과 같아서 한번 기도 빼먹는다고 그 다음날 죄의 구렁텅이에 빠지지는 않지만 오늘 김매는 것과 내일 김매는 것이 달라 보이지 않는데 농부는 다르게 보는 것처럼 그것을 내버려 두면 땅을 못 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김을 매야겠다. 하면 부지런하게 손을 놀리면서 밭 사이에 쭈그리고 앉아서 김을 매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뉘엿뉘엿해가 지면 더 부지런히 김을 매서 농사일을 마감하는 것이 농심 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개인적인 성화의 삶에 있어서 너무 변화가 안 되고 자기는 하나님 앞에 변화가 안 된다고 하는데 변화되기 위해서 부지런히 노력을 해봤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 속에 죄의 생각이 떨어지고 그것이 악하게 자라고 마음에 쓴 뿌리가 되고 하는 그런 것들은 기가 막히게 잘 보호를 해서 잡초가 자라도록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떨어져서 은혜를 받고 하면 그것들을 잘 보호하려는 노력들은 안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결심은 있는데 그 결심이 이행이 안 되는 것입니다 금년 들어서는 새벽기도를 열심히 하겠다고 그러다가 2,3월 지나면 시들먹해지고 또 십자가 사경회 때 한번 찔리면 게슴치레 일어나서 하다가 다시 푹 쭈그러 들었다가 여름 수련회 때 가서 또 한번 며칠가고 기도학교 사경회 할 때면 또 찔리다가 그러다가 연말이 되면 나는 안 되는데 하다가 신년 사경회 때 다시 창세기부터 펴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렇게 쉽게 쉽게 게을러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사니까 삶에 있어서 철저한 삶이 없습니다. 자기를 꼼꼼히 살피지 않으니까 항상 신앙생활이나 말씀에 대한 태도들이 대충 합니다 그러다보니까 모든 것을 악이 있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열매를 만지다가 잎을 만질 때 잎을 만지다보면 가지를 만지고 하면서 이것이 어디에서부터 왔나 하다보면 줄기가 나오고 줄기를 만지면 둥치가 나오고 둥치를 만지다 보니까 뿌리가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부지런하지 않고 자기의 내면의 문제를 성찰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가지라도 신앙에 관해서 철저하게 아는 것이 어설프게 백가지를 아는ㄴ것보다 훨씬 그 사람을 깊이 있게 알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를 터득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매달리고 자기가 신앙의 어느 지점에서 미끄러졌으면 그것을 그냥 슬쩍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왜 내가 미끄러 졌는가 찾아내는 것입니다 도서관에서 언젠가 한번 무심코 책을 뒤지다 보니까 6.25전사라는 두꺼운 책이 나와서 펼쳐보니까 6.25때 전투기록들이 모두 담겨있었습니다 강원도 어느 지역 아군 몇 사람과 북한군 몇 사람이 접전하였음 당시 사단장이름은 누구 저쪽 사단장이름은 누구 병력은 몇 명 이쪽 병력은 몇 명 몇 월 며칠에 전선그것이 다 기록이 남아있었습니다 그것을 왜 남겼을까요? 그런 기록들 하나하나 남기면서 한편으로는 역사를 기록하고 또 한편으로는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날 때에 그런 모든 자료들이 적군이 어떻게 용병을 하고 그것들로 어떻게 전쟁을 수해하는지에 대한 통계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번에 월드컵에서 어떤 사람이 패널킥을 찼는데 꼭 이길수 있었는데도 막아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막아냈냐고 했더니 6개월 동안 자기와 상대해서 패널킥을 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패널킥 쏘는 장면만 비디오로 공부 했답니다 그랬더니 그 선수를 생각해보니까 항상 왼쪽으로 차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 공이 워낙 빠르기 때문에 막을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한쪽을 포기하고 왼쪽을 막았는데 공이 손에 가서 딱 걸린 겁니다. 그러니까 보십시오. 그렇게 부지런하게 기록을 남기니까 패배할 수밖에 없는 전쟁을 이기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영적으로 미끄러져서 신앙적으로 엎드러졌으면 그것은 여러분들의 약점이 있기 때문에 넘어진 것이니까 그 약점은 개선이 안 되고 나중에 또 그곳으로 치고 들어오니까 항상 연약한 부분이 계속 남아있으니까 한번 시험이 왔다가 물러간 것이 아니라 다음에 또 오고 다음에 올 때에는 그 약한 부분을 잘 기억해 놨다가 그 부분을 공격을 한단 말 입니다.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시험에 들었고 미끄러졌었다 거기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회복을 시켜주셨다 하면 부지런히 탐구를 하고 생각을 해서 내가 왜 미끄러졌을까 미끄러졌을 때 내 상황은 어떠했는가?
세 번째는 미끄러질 때 어떻게 나에게 유혹이 왔는가? 그 오는 경로와 방법은 어떤 것이었나? 네 번째는 그런 것들을 내가 어떻게 대처했더라면 그 시험을 이길 수 있었을까 여기서 얻은 교훈은 무엇이며 성경은 이런 시험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는가 하며 정리를 해놓고 있을 때 다음에 시험이 오면 이시험이 어떻게 시작이 되어서 어느 쪽으로 공격을 해서 나를 파괴시키고 들어올 것이라는 것들이 파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길목에 매복을 하고 있다가 단칼에 치면 물러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 그러는 것입니다. 어떻게 시험이 드는지도 모르고 허우적거리고 난리를 치다가 보니까 나왔는데 어떻게 나왔는지도 모르는 겁니다. 다음에 시험이 또 와도 새로운 겁니다. 교과서도 참고서도 없고 작전도 없습니다. 결국은 부지런하지 않고는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도 말씀에 은혜를 받고 변화를 받을 때 집중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의 영혼에 도움이 되고 변화가 되는 그런 삶을 계속해서 살아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서 노력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보다도 훨씬 가치 없는 일에 발목을 담그고 허덕거리면서 살다가 결국은 많은 말씀들을 놓치고 그 말씀을 붙들고 살 수 있는 많은 기회들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생각이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성화의 삶에 있어서 진전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지식 뿐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 앞에 성화를 위해서 은혜 받을 수 있는 생활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얼마나 부지런해야 하는지 여러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주님이 주신 좋은 선물 가운데 하나가 건강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하지 않으면 자기도 원하지 않는 게으른 삶을 택할 수밖에 없고 자기도 원하지 않게 그런 삶이 영적으로 손해를 가져옵니다. 그러기 때문에 건강이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선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돈이 좀 없고 생활이 좀 힘들어도 일단 하나님이 건강을 주시면 은혜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 앞에 매달릴 수 있고 힘들고 어려울 때 주님의 말씀에 매달릴 수 있고 그래서 부지런히 주님이 주신 건강을 가지고 자기생활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화의 삶을 살기위해서는 자신의 삶을 할 수 있는데 까지 단순하게 해야 합니다 쓸데없는데 빼앗기는 시간을 줄이고 단순화시켜야 합니다. 결국은 부지런해서 내가 예수님 안에서 성화된 삶을 살아야 겠다. 는 목표가 내 마음에 불타면 그것을 중심으로 생활이나 모든 것들이 재편되면서 살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 때 어렵고 힘든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그래서 모든 믿음의 선진들이 애쓰고 산 것을 기억하면서 자기의 성화를 위해서 많이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우리교회에도 기특한 사람이 많이 있는데 말씀에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은 많지만 꾸준히 말씀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 애를 쓰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지금 모이는 성도수로 올해 테잎이 한 7만개 정도 나갔다고 하는데 우리교회처음 할 때 12만개 테잎이 나갔습니다. 교인들마다 집에 가보면 농심 라면 박스 하나 가득 이었습니다. 자기가 개인적으로 사서 계속적으로 공부하는 것입니다 한 박스 두 박스 어떤 사람은 풀세트로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가 설교시간에 깨달았다고 생각됐는데 30%가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듣고 노트정리까지 해서 공부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정리를 해나가는 사람들은 그것이 보통일이 아닙니다. 설교가 또 좀 깁니까? 어떤 것은 두 시간을 육박하는데 하루에 책상에 꼬박앉아서 테잎을 들으면서 정리하려고 하면 그렇게 시간 내려면 다른 시간을 희생시키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게 노력을 하면서 2년을 살아온 사람과 와서 말씀의 은혜를 받고 별로 노력하지 않은 사람사이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의 폭은 비교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청교도들의 책을 읽고 하면서 자기의 말씀지식을 위해서 노력한 사람들의 발전은 2년 정도만 그렇게 하면 비교가 안 됩니다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과기도와 예배의 은혜와 이런 것들을 위해서 열심히 자기 개인의 영적인 삶을 위해서 노력을 할 때, 부지런한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거기에 많은 성화의 은혜의 열매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견고한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은혜를 받아도 얼마나 미끄러지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은혜를 받다가 사단에 의해서 미끄러지고 다시 하나님 앞에 나와서 붙들고 하는데 자기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부지런함으로 말씀에 기도에 자기의 영적은혜의 관리들을 해나가면서 자기가 성화되어질 때 누가 그것을 빼앗아 갈수 있겠습니까? 이세상의 돈은 세상이 빼앗아 갈 수 있고 이세상의 지위는 시간이 지나면 빼앗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많이 주님을 닮은 것을 이 세상에 누가 빼앗아 갈수 있겠으며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누가 훔쳐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신자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 가운데 하나가 예수님을 많이 닮는 것입니다 그런 성화에도 부지런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는데 있어서도 이런 부지런함이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나면 반드시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분량을 따라서 사명을 허락해주십니다 그 사명은 교회에 존재할 수도 있고 개인의 경건의 삶속에 존재할 수도 있고 가정에 존재할 수도 있고 직장에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또 이웃들과의 관계 속에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먼 선교지 와 관련되어서 존재할 수도 있지만 어떤 것이든지 간에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그 은혜의 계획을 성취하고 싶어 하시고 그 은혜의 계획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신자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명은 어떻게 오는가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달으면서 주님이 나를 여기에 세워주셨다 그리고 이일은 하나님이 내게 맡기셨다 그런 확신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명감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그 일이 모두 남의 일인데도 자기 일처럼 생각하며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어떤 사람이 낚시를 하러 충청도를 갔답니다. 낚시를 하는데 어쩌다가 물에 시계를 떨어트렸는데 가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화가 나서 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무슨 시계를 이렇게 만들었냐고 하면서 얘기하니까 알았다면서 다음날 오후 2시에 그 시계를 고치려고 서울에서 내려 왔답니다. 그런 일은 이제 우리나라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죄송하다고 하면서 그 자리에서 시계를 깨끗하게 고쳐주고 한 번 더 고장 나면 새것으로 바꿔주겠다고 하면서 갔답니다. 그것이 바로 사명감이 없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서선교부에서도 내가 테잎 하나 만들어도 늘 얘기하는 것이 이 테잎이 백년이 지나도 불려 다닐지 모른다. 너희들이 잘못 만드는 것은 지금 고쳐도 계속 돌아다녀서 내가 만들었다. 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자존심을 가지고 그것에 대해서 책임질 마음으로 만들어야 하며 그것이 바로 사명감 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사명이라고 하는 것은 이처럼 하나님이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 라고 하는 분명한 인식을 주시면서 그 자리에 서서 나로 하여금 감당하게 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과업입니다 그 일을 시키신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일이 잘 성취되면 영광을 받으시고 그 일이 잘 성취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명을 대하는 태도는 곧 하나님자신을 대하는 태도와 같습니다.
오늘 새벽에 말씀드린 것이 그것인데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와 사명을 대하는 태도는 똑같다 그렇게 사명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데 은혜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사명이라고 하는 것이 없습니다. 주일에도 안 나와서 교역자가 심방을 가고 난리를 치면 억지로 11시40분에 나왔다가 축도 끝나기 전에 도망하는 사람에게 무슨 사명이 있겠습니까? 그 사람의 사명은 예배시간에만 잘 나오는 것이 그의 사명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신앙생활하다가도 어느 한순간에 하나님이 은혜를 많이 주시면 하나님이 우리에게는 꿈도 꿀 수 없는 사명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의 분량에 따라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큰 사명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작은 사명을 주십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법칙은 한번에 하나님이 어마어마한 사명을 주시는 법은 없습니다. 또 주셨다고 하더라도 한번에 그것을 맡기시는 것이 아니라 사명을 주시면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그 사명의 작은 것들을 맡기셔서 우리의 태도를 검사하시고 거기서 우리들이 충성하면 그것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를 훈련시키시면서 또 다른 사명을 맡기시고 이렇게 하면서 우리자신이 성장해 가면서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시는 사명도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대기업의 회장이나 이런 사람들이 자기 자식들이 얼마나 귀중할 텐데 데려다가 말단사원부터 시키지 않습니까? 자식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외국에 유학이나 하고 와서 어느 날 갑자기 높은 자리에 앉으면 무너집니다. 그렇게 해서 되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밑자리에서부터 하나 씩 하나 씩 훈련을 받으면서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가 목회를 하면서 너는 한때 무언가 이 나라와 조국교회를 위해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이라고 생각을 하고 희망과 포부를 가졌는데 이렇게 세월이 하는 것도 별로 없이 순식간에 흘러가는 것이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이 흐를 정도로 세월이 가는 것이 야속 합니다 그러면서 느끼는 것이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까 한사람이 태어나서 목회자가 되어서 작은 교회라도 하나 이끌어가는 것이 이것이 그렇게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구나. 그러면서 지난날에 대해서 그렇게 후회가 될 수 없습니다 왜 나한테는 날 야단을 쳐주고 이 길이 바른길이라고 가르쳐주는 그런 목사님들이 없었을까 완전히 안 계신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나에게 누군가가 전체적으로 가르쳐주고 이미 평신도 때에는 네 사명이 무엇이고 교육전도사 이었을 때에는 네 사명이 무엇이고 이렇게 하는 것은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것이고 이것은 못 감당해 나가는 것이고 진짜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사람은 이런 사람들이고 하는 것을 내가 그 시절에 회초리라도 맞으면서 누구한테 배웠더라면 내 인생의 많은 시간의 낭비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아름답고 건강하고 젊은 날들을 오류와 무성의 게으름 나태 혹은 게으르지만 않았다고 할지라도 바로 알지 못하는 무지 속에서 그렇게 허무하게 흘려보낸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그렇게 가슴이 아릴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10년을 하나님이 돌려주시면 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지나간 날들을 후회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제 남은 날들을 잘살아서 교회에 있는 부교역자들 보면서 내 마음에 회한처럼 남은 것들을 그렇게 해주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돌아서서 눈물을 흘려도 야단을 칠 때에는 심하게 야단치고 가르쳐 줄때는 바르게 가르쳐주려고 해서 나름대로 이 시대에 조국의 교회를 품고 그 일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만나면 많은 사람들이 은혜는 하나님이 주셨는데도 그 은혜를 너무나 쉽게 흘려버립니다. 주님이 많은 사람들에게 빚어서 먹이라고 주신 그 아름다운 만나의 가루들을 게으름 속에서 내버려 두니까 벌레가 먹어서 썩어서 그렇게 쓰레기 통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주님이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는데도 신실하게 살지 않고 그 사명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일이 없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도 지키지를 못하고 사명도 감당해나가지 못하는 그런 불행한 일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만한 때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하나님이 도처에 많은 사람 죄인들이 나와서 회개할 때에도 은혜를 부으시고 한동안 영적인 어두움과 무질서 속에서 산 사람들도 나와서 은혜를 구할 때 하늘을 열고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의 빛 진리의 광채를 비추어서 그들에게 은혜를 부어주시는 때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잠자고 있는 동안에도 말씀의 은혜를 받고 생애적 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엊그제 양평으로 심방을 갔습니다. 갔는데 난 정말 가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코앞에 교회 두고도 게을러서 새벽기도 잘 못나오는데 거기는 새벽기도를 나오고 싶어도 양평에서 멀어서 못 나오니까 몇 집 등록한 그 집집마다 6시 15분에 애들을 모두 깨워서 마루에 무릎 끓고 앉아서 컴퓨터를 틀어놓으면 어제 새벽설교 방송이 나오니까 그것을 듣고 예배를 드리고 큰애는 이방 엄마는 저 방으로 흩어져서 거기에서 새벽기도를 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고 한사람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살면 가족들이 모두 변하고 아이들도 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언제든지 은혜를 주시는 분이시지만 솔직히 우리의 생애에 월 화 수 목 금 토 일 123456, 2002,3,4,5년 해마다 날마다 우리가 맘먹으면 수도꼭지에서 물 나오듯이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가 쏟아집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해주고 싶으셔도 우리의 존재자체가 그렇게 되어먹지 않아서 하나님의 은혜가 그렇게 수도꼭지처럼 아무 때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5년 혹은 10년, 20년 해봤지만 하늘을 열고 이제는 나에게 은혜를 쏟아 부으시는구나 그런 것을 경험한 것은 몇 달이나 됩니까? 한번 은혜를 받아서 몇 년씩 먹고 살다가 다시 견딜 수 없어서 매달리면 하나님이 하늘을 열고 은혜의 단비를 내려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항상 날이면 날마다 받는 은혜가 아니기 때문에 한번하나님이 죄 가운에 있는 여러분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은혜를 베푸셨을 때에는 그것을 마음에 잘 간직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의 불씨를 계속 간직하고 살아서 여러분들에게 은혜를 주신 은혜의 목적을 따라서 부합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길인 동시에 여러분자신을 위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불순종과 태만이 사명감 없는데서 나오고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에 대해서 게을리 하고 살고 태만하게 사는데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영혼도 망가지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게으름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주일학교 선생님이 되었으면 한 시간 내지 40분쯤 일찍 나와서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고 아이들을 맞이해야지 예배시간 다되어서 화장도 안 한 얼굴로 헐레벌떡 들어와서 공과를 준비해오기를 하나 그런 모습을 하나님이 보시면서 얼마나 마음 아프시겠습니까? 선한 목자입니까? 구역장이면 진짜 구역의 식구들을 사랑합니까? 그들을 위해서 기도합니까? 사람은 그것을 모두 헤아리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주님이 물으셨네.
네게 오는 많은 양떼 네게 맡겨 줄 터이니
사랑하는 내 친구야 많은 양떼를 부탁한다.
자기의 구역의 양떼의 영혼들이 신음하는 소리가 이 목자의 마음에 들립니까? 그들이 아파하고 많이 고통 할 때 어느 부분까지가 그들의 죄와 악함이고 어느 부분까지 목자인 내가 올바로 돌보지 못 한 것이라는 인식이 여러분에게 있어서 그들이 영혼의 고통이나 아픔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고 있습니까? 정말 여러분들이 일년 동안 살아오면서 남 때문에 흘린 눈물이 얼마나 됩니까? 주님이 세워주신 영혼을 돌보는 사명의 자리에서 예수님은 그 영혼 부둥켜안고 통곡하시는데 웃으면서 여유 있게 태만하게 살아오지는 않았습니까? 그렇게 하고도 하나님과의 관계의 개선이 있고 영혼의 놀라운 부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느 시대이건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당신도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당신의 사명에 충성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얼마나 우리를 향해 신실하신지를 보여 주십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고난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고난에서 맛보는 고통보다 더 커다란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에 대한 고백이 있습니다. 정말 주님이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사명에 충실했습니까?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에 늘 영혼들을 향한 눈물이 있고 주님이 우리를 위해 우셨던 것처럼 여러분들도 울면서 그 사명을 감당했습니까? 사람은 모르지만 주님은 모두 내려다보시고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유리하고 고통 하는 많은 영혼들을 보시면서 추수할 일꾼들을 찾으시고 그 영혼들을 돌보아 줄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것이 사명이기 때문에 그 일을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히 여기고 그 일을 위해서 자기를 모두 바치고 드리면서 사는 그런 사람들에게 나타나서 당신이 누구인지를 보이시고 당신의 자비와 은혜를 알리시고 싶어 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명을 감당해나갔던 훌륭한 모본이신 예수님의 생애는 머리 둘 곳조차 없는 생애 이었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 들 곳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노라고 하신 그런 생애 이었습니다 집도 없고 자기의 거처도 없이 인생을 사시면서도 그분의 마음에 계속 타올랐던 것은 오직하나 영혼들에 대한 깊은 사랑이었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양떼들을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끝까지 사랑하신 것이 예수님이 사명을 감당해 나가시는 방식 이었습니다 여러분 많은 영혼들이 교회에 들어옵니다. 누가 이 영혼들을 돌보겠습니까? 사육을 하는 것이라면 돌볼 사람이 필요 없고 삯꾼이 와서 먹이나 주면 되겠지만 교회가 사육 하는 곳이 아니지 않습니까? 교회가 커질수록 많은 일꾼들이 필요하고 눈물 흘리고 그 영혼을 위해서 예수님처럼 자신의 생명은 떼어내 줄 그런 사람들이 필요 합니다
여러분 얼마나 우리들이 게으름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그 은혜의 사명을 소홀히 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남다르게 하나님이 사명을 주신 적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사명을 맡았을 때에는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의 존경과 인정을 받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남다른 재능을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런 재능은 주신 것은 사명을 맡겨주시기 위해서 재능을 주셨고 남다르게 헌신하며 살라고 하나님이 재능을 주신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비교한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사랑을 우리가 사명을 위해 헌신하는 것하고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우리를 위해 내어주시되 자기의 생명까지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사명으로 생각하셨기 때문에 그분이 사명을 감당하셔서 우리들이 구원을 얻게 되었고 주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우리가 이처럼 주님 앞에서 누리는 많은 영혼의 축복도 그분이 사명감을 가지고 자신의 사명을 감당해나가신 열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주신 남다른 재능은 주님이 쓰시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이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제일 먼저 이 재능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이것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실 분도 하나님뿐이시라고 생각을 하면서 그 재능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절대로 게을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넉넉하게 소비하면서도 하나님을 위해서 사명을 감당해나가는 일에 있어서는 자신의 재능을 하찮게 여기고 주님의 일을 소홀하게 여기는 그런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 앞에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주시는 그 모든 재능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알고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이일을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부지런하게 섬겨야할 의무가 있고 그렇게 섬김으로서 하나님이 나에게 더 많이 사랑을 베푸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섬기고 사랑하고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남다른 장점과 물질이 있다면 그것도 주님을 위해서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부지런히 벌어서 자기를 위해서는 조금 쓰고 그 다음에는 이웃을 위해서 넉넉히 쓰고 하나님을 위해서 많이 써서 돈벌어서 남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공부 많이 해서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하고 무지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지식의 빛을 깨우치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 사명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해보고 주님이 여러분들ㅇ게 주신 모든 것들은 주님의 은혜로 주신 것들이고 그렇게 주신 것들은 물질이든지 시간이든지 재물이든지 직분이든지 모두 사명입니다 그리고 그 사명은 일체의 태만함과 게으름을 버리고 성실하고 부지런함으로 자신의 사명을 훌륭하게 감당해 나가는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입니다
우리가 게으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그 게으름이 우리의 영적인 무지와 침체를 타고 우리의 뼈 속 깊이 스며들어오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을 오늘 모두 씻어내어서 그 게으름을 내어버리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주님이 내게 주신 시간, 내게 주신 직분, 내게 주신 물질 ,재능, 남다른 좋은 모든 것이 다 주님을 섬기기 위한 사명인줄을 믿습니다. 생각하면서 게으르게 살았던 날들 깊이 회개하며 촌음을 아껴 쓰면서 주님을 위해서 성실히 살아서 주님 앞에 설 때에 밥벌어먹다 온 사람이라고 그렇게 고백을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왔느냐 저는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인데 주님이 제게 주신 많은 은혜의 계획을 따라서 이런 저런 일에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다가 피 묻은 전투복을 입고 주님 앞에 왔습니다. 그렇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일체의 게으름을 혐오하고 미워하면서 힘들고 괴롭고 어렵다고 생각되어서 꾀가 생길 때 마다 자기의 마음을 고쳐 잡아서 주님을 위한 모든 부지런함과 성실함속에서 사는 이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4.교만을 버리고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5:5下)
하나님을 만나러가려면 첫째 하나님을 향한 원망하는 마음이 남아있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으니 그 원망을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깨지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깨지고 자기와의 관계도 깨진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두 번째 날은 미움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미운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이 어떠한 제물도 받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세 번째는 게으름을 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의 삶은 항상 부지런해야 합니다. 힘들다고 말하면 안 되는 것이 우리가 스스로 택한 길이기 때문이라서 남들 살아가는 것이 모두 고달픈 삶인데 그 위에 십자가의 삶을 하나 더 살기로 한 것입니다 내가 예수 믿는다고 우리가족들이 비상대기 할 수 있습니까? 안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부지런해져서 자기건강도 관리를 잘해야 하며 부인이 예수 믿고 나서 집안이 깨끗해졌다는 소리를 들어야지 가족들이 복음을 신뢰를 하지 예수 믿는다고 모두 팽개치고 집안도 안치우고 돌아다니면 누가 신뢰를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부지런해야 합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그래서 힘든 것은 하나님 앞에 상 받을 만한 것입니다 그다음에 또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교만이 있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이제 베드로가 핍박이 가까워오는 자기의 교회들을 향해서 특별히 편지를 쓴 다음에 마지막에 장로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장로들이란 오늘날 목사들이라고 보는 것이 사실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같은 목사인데 교회를 돌보는 쪽에서 보면 장로가 되는 것이고 말씀을 전하는 면에서 보면 목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명칭입니다 그런 목사들에게 너희들은 양 무리의 본이 되어라 부득이한 일을 위해서 양들을 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헌신하고 양 무리들에게 본이 되어라 그렇게 목회를 잘하라고 일침을 놓으면서 또 젊은이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젊은이들에게 이야기를 했을까 하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젊었을 때에는 항상 객기가 많아서 무언가 고분고분하지 않으려고 하고 거스리려 하고 질서를 싫어하고 권위에 복종하지 않으려 하고 하는 반발 같은 것들이 젊었을 때에 많이 있으니까 모든 교인들에게 필요한 교훈이지만 특별히 그 젊은이들에게 너희들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라 한 것은 교회에서 목사들이 너희들을 목회하며 돌볼 때 잘 순복하라 하는 것입니다 순복하라는 것은 네가 잘 이해가 안 가도 겸손하게 복종해서 교회에 화평과 질서를 지키고 거기로부터 목양을 받고 가르침을 받도록 해라 하고 타이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그 하반 절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성품하나를 상기시키면서 너희들이 꼭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면서 강조하는 것이 하나님이 교만한자는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베푸시느니라. 하는 것입니다 이야기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실 장로들이 목회를 하고 돌볼 때에 거기에 잘 순복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오늘 교만이라고 하는 말씀을 가지고 그것을 버리고 우리들이 주님을 만나러 갔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교만이라고 하는 것은 첫째로 자신의 마음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빌딩 높은 꼭대기에서 오물오물 개미처럼 기어 다니는 사람 본 적 있을 것입니다 전 직장 다닐 때 점심 먹고 8층 꼭대기에 잘 올라갔는데 올라가서 이렇게 내려다보면 쬐끄만 사람들이 개미같이 와글와글 다니는 것을 내려다보면 인생이 참시시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찍을 때 사진 찍히는 사람을 위대하게 보이려면 밑에서 위로 치켜 올려서 찍어서 사람이 높이 보여서 위대해 보이게 하는데 위에서 밑으로 찍으면 사람이 하찮고 가치 없어 보입니다. 그것이 사진기법 중의 하나인데 높아진다. 라고 하는 것은 마음이 위로 올라가서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교만해지게 되면 모든 것이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정확하게 안보이고 사람들도 정확하게 안보이고 자기 자신도 제대로 안 보이는 것이 바로 교만이 가져다주는 문제인 것입니다 이 교만은 사실 마음속에서부터 시작 됩니다. 다른 모든 죄가 그렇듯이 교만의 죄는 마음으로부터 흘러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두 번째로 교만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그리고 세 번째로 왜 교만해 지는가? 그리고 교만해 지지 않는 대책은 무엇인가 에 대해 차례대로 생각해보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교만해지면 어떤 일이 생기는 가입니다. 우선 첫째는 사람이 교만해지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만한 사람의 제일 커다란 특징입니다 교만한 사람이 반드시 모두 나쁜 짓을 하면서 사는 악한사람은 아닙니다. 교만한 사람은 그 교만의 죄가 마음에 있기 때문에 악하게 행동하지 않아도 그 교만한사람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만한 사람의 첫 번째 갖는 특징입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들이 말씀을 깊이 사랑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혹시 성경에 대해서 교만한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갖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지식으로 교만해지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절대 지기 싫어하는 사람인데 바둑하나를 두어도 자기가 이길 때까지 두자고 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모든 면에서 지는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인데 어느 날 성경공부시간에 목사님이 이런 저런 질문을 했는데 성경공부 반에 온 사람이 무슨 예비고사를 치르러 온 사람처럼 척척 대답을 하는데 자기가 보기에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대답을 잘하니까 공부해야겠다. 는 생각이 들어서 신학교를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왜 신학교에 왔냐고 했더니 성경 좀 많이 알려고 들어왔대서 그것으로 무엇을 하려느냐고 했더니 자존심이 상해서 교회를 다닐 수가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 밀리지 않고 싶어서 그런 동기로 왔답니다. 심지어는 장로님들이 신학교에 가끔 오는데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말문이 막히면 장로님은 신학적으로 몰라서 그렇다는 말을 하도 해서 도대체 신학이 뭐길래 신학 모른다는 소리 듣기 싫어서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보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가서 한번 찾아봐야겠다. 는 동기에서도 얼마든지 성경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배우면 성경이 잘 안 들어옵니다. 물론 그렇게 하다가 어느 순간에 와르르 무너져서 진리의 빛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벤허 라는 영화 보면 한 오십년 전에 찍은 영화인데 지금 봐도 그렇게 감동적입니다 그것은 쓴 사람이 유명한 영화를 많이 만든 사람이었는데 기독교에 대해서 뒤틀려 있는 상태에서 기독교라는 것이 사기라는 것을 한번 입증해봐야겠다고 해서 기독교에 반박하는 자료들을 세계역사에 흩어져있는 것들을 모아서 어마어마한 작품을 만들어서 기독교가 사기라는 것을 한번 보여주고 싶어서 자료들을 수집하는데 기독교를 비판하려니까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니까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구약부터 신약까지 성경을 읽다가 성경을 다 읽지도 못해서 무릎을 꿇고 예수그리스도는 나의 주님 이십니다 하고 깊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래서 계획을 모두 바꿔서 만든 영화가 벤허 입니다.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제가 아는 친척 중에도 예수를 믿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때 그 영화가 나왔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감동을 받고 신앙이 약하던 사람들이 신앙을 붙들게 되고 했는데 아는 사람이 그 영화를 보고 왔는데 밤중에 영화에서 본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믿으라는 인상이 생생하게 박혀서 교회에 나간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된 경우도 있지만 일단 교만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다는 것과 받아들이려거 한다는 것은 다른 것인데 배우려고는 하는데 배우려는 그 동기자체가 자기 자신의 교만을 위해서 배우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이 꼭 필요하지만 그 지식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꼭 필요하다. 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전제되어 있는 것이 그 아는 말씀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라고 하는 신앙이 전제가 되어있을 때에 그 지식이 우리의 삶을 풍요하게 하고 은혜가운데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이 먼저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교만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려고 하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배시간에 와서 설교 안 듣고 딴청부리고 딴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두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본인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줄 모르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는 잣대로 보면 그것은 교만한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내가 썼지만 사람들이 많이 사가서 새벽기도라는 책을 다시 읽었는데 거기 보면 나오는 것이 이스라엘백성들이 새벽에 만나를 거두러 가는데 광야에서 만나 외에는 먹을 것이 없고 안거두면 굶으니까 모든 백성들이 나와서 이틀 치도 아니고 하루치 걷어가지고 오는데 그것은 먹고 살기 위한 것이니까 싫다고 안하고 매일 가서 거두러 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신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을 채우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살아있다고 산 것이 아니고 죽은 것이 다 죽은 것이 아닙니다. 살아있어도 밥 잘 먹고 있어도 그 영혼이 수척해서 기력이 없으면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살았다는 이름은 가지고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영혼이 무기력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은혜를 받지 못하니까 죄와 더불어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죄를 알 수도 없지만 죄를 안다고 해도 그것과 싸워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신자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가장 필수적이고 중요한 영적인 자양분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일년이 지나가도 한번도 예배를 드리면서 은혜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100%죄의 지배 하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중의 하나가 교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간절한 사모함,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그런 간절한 목마름이 교만한 사람들에게는 없기 때문에 그는 마치 하나님의 말씀이 쏟아져도 그 말씀의 단비를 받지 못하는 것이 솥뚜껑을 엎어 놓은 것과 같아서 수없이 말씀이 쏟아져도 말씀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그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는 일이 없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들은 모두 그 영혼이 메말라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 추악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교만한 사람들도 예배에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교회출석 생활할 수 있고 교만한 사람들이라도 교회에서 직분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교만한 사람들이 교회에서 직분을 잘 맡습니다. 왜냐하면 교만한 사람들은 무얼 좀 하고 싶어 하니까 적극성이 있는 사람들을 신앙이 있는 사람보다 말하자면 잘 일을 하게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렇게 해서 교회에서 직분을 맡아서 성실하게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으니까 교만한 사람들의 영혼에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늘 자기는 이제 더 이상 목양이 필요 없고 목회자를 도와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만 하면 된다. 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사람의 마음이 교만해지게 되면 필연적으로 많이 선생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이 선생 되는 것이 참 안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다보면 자기가 예수님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그래서 제가 가끔 얘기 하지만 군인들이 전쟁을 할 때에 무공을 많이 세워서 무용담이 많이 나와서 얘기 할 때는 군인들이 자기 자신이 그 폭탄이 비 오듯 퍼붓는 그 전선에서 용감하게 싸우는 것처럼 그렇게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사람의 심리입니다 많이 말하면 자신이 그 말하는 내용과 동화되는 것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심리인데 그렇게 하는 동안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많이 가르쳐주고 자기는 별로 못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공위성이 지구 주위를 수 없이 돌아다니지만 제대로 한번도 지구와 만난 적이 없는 것처럼 예수님에 관해서 말을 많이 하고 가르치고 또 예수님의 이름으로 봉사를 하면서도 교만한 사람들은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지식은 우리 안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한 수단인데 성경말씀이 자기의 것이 되어서 가슴속에 쌓여가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축적되어 가는데 그런 말씀을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서 말씀이 소화가 되어서 자기의 것이 되는 작용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만한 사람이 성경을 읽다가 눈물을 흘리고 은혜를 받는 적은 정말 드문 일입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들의 마음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영향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계속해서 영향을 주어서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지 않으면 내가 하나님 앞에 결코 온전한 사람이 될 수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되어야지만 교만을 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교만한 사람들의 또 다른 특징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잘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도 보면 교만한 사람들의 기도는 항상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수를 가르치듯이 한단 말입니다 하나님 이럴 땐 이렇게 해 주셔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계속 코너로 모는 겁니다. 그런데 논리는 살아있을지 모르지만 벌써 교만한 사람의 기도는 기도의 울림자체가 다릅니다. 저는 주일 낮에 대표기도에서 은혜를 참 많이 받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중 상당수는 그렇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드립니다. 교만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마음이 부족한 것입니다 생각이 많고 자기의 판단과 의지를 하나님보다 더 많이 신뢰하니까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없습니다. 기도할 때에 가장 중요한 마음의 자세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ㄴ 어린아이 같은 마음, 마치 시골에서 올라온 어린아이가 서울에서 벚꽃구경을 갔는데 시골에서 한가로이 들판을 뛰놀던 어린아이가 꽃구경을 가서 많은 사람들 속에 있으면 실은 기쁨보다 부모를 잃을 까봐 두려움이 생겨서 손을 꼭 잡는 것과 같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고 신뢰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교만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마음이 부족합니다. 기도를 시켜도 자기의 무엇인가를 과시하려고 하고 기도를 통해서 듣는 사람들에게 한수 가르쳐주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교만한 사람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는 마음이 없으니까 저절로 기도를 잘못하는 것입니다 기도에 있어서는 대가가 존재하지 않지만 기도할 때에 신자들이 가장 기도가 흘러져 내려올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유창한 언변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녹아져 내려서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해서 나는 이 세상에 지푸라기와 같고 하나님이 돌봐주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 희망이 없다는 마음이 들면서 슬픔 같은 것들이 마음이 밀려올 때, 그것을 저는 거룩한 슬픔이라고 하는데 그런 거룩하고 경건한 슬픔이 확 밀려올 때 그것이 마치 마음장작과 같아서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에 불이 확 붙으면 그런 경건하고 거룩한 슬픔이 마른 장작과 같아서 거기에 붙어서 치열하게 기도의 불꽃이 타오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래 예수 믿은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깊은 기도를 하는 것도 아니고 오늘 처음 예수님 믿은 사람이라고 해서 그렇게 간절하고 깊은 기도를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화) 제가 전도사 시절 때인데 청년들이 말씀을 들으러 왔는데 그중에 한 청년이 불교신자인 친구를 데리고 왔는데 첫날에 앞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데 한 30분 정도설교를 했는데 콸콸 눈물을 흘리면서 예수님을 영접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막 와서 30분 동안 예배를 드리고 신자가 됐는데 눈물을 쏟으면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교회생활을 수십 년을 해서 기도는 유창하게 하는데 자기얘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은 시장바닥에서 생선장수 떠드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기도가 하나님께로 가는 것은 고사하고 입에서 뱅글뱅글 돌다가 다 떨어지는 기도를 하는 것을 보면 저 사람은 기도에 저렇게 자신이 없으면 왜 여기 나와서 기도를 하는지 지기 영혼의 상태를 살펴서 기도를 사양을 하지 나와서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하는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들을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기도의 영이 고갈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 가만히 보면 기도는 언제 잘 나오는가 하면 눈이 젖었을 때 나옵니다.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서
시시때때로 주 만 봅니다.
비참한 눈물을 흘릴 때와 쓰라린 맘으로 탄식할 때
그 때도 주께서 같이 하사 시시때때로 날 생각하네.
곤고하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이 찬송을 혼자 조용히 부르면 마음에 눈물이 가득고입니다 그리고 정말 나는 혼자 버려진 외로운 사람이구나. 주님이 나를 생각해주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 희망도 없는 인간이다 그런 거룩한 외로움이 가슴에 확 밀려옵니다. 그때에 우리 주님을 꽉 잡고 싶은 겁니다. 그것이 신앙의 마음입니다 믿음의 마음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마음에는 자기의 무가치를 인식하는 거룩한 슬픔과 경건한 외로움의 눈물이 배어있다는 것입니다 이때에 기도가 막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만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는 마음이 없고
세 번째로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열렬한 기도의 은혜가 고갈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도의 은혜가 가슴 속에 깊이 살아있는 사람들은 잘 모르고 어눌해도 이야기를 하면 눈물 젖은 진실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들은 이런 기도의 은혜가 없기 때문에 항상 차가운 논리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또 마음이 교만해 지면 네 번째로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능하고 일을 잘해도 교만한 사람을 세워놓으면 마치 설거지 하다가 그릇 다섯 개 깨는 것같이 그렇게 일을 많이 벌려서 뒤를 따라 다니면서 뒤치다꺼리를 해주어야 합니다. 워낙 영리하고 똑똑하고 유능해서 맡겨주었더니 이것이 성품이 하도 교만해서 일을 같이 하는 사람이 없고 누구와 같이 일을 하게 해주어도 같이 하려고 하지 않고 밑의 사람을 데리고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항상 마음 상하는 일이 있고 마음이 상해서 관계가 깨트려 지니까 그 사이를 사단이 비집고 들어와서 훌륭하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들은 사단의 통로가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무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떤 깊은 자신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하나님의 은혜 같은 것들이 공급되어서 내면의 세계가 비옥하게 되는 만족을 잘 못 느낍니다. 그런데서 오는 허기짐을 어떻게 채우려고 하는가 하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우월해지고 깔아뭉개고 부딪치고 하면서 자기의 우월감을 충족시키면서 그것을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을 제대로 못 받은 사람치고 망가지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모두 망가집니다. 그래서 자녀 교육할 때에 일번지가 공부하라고 닦달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에게 사랑을 많이 베풀어주어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망치는 가장 커다란 원인이 사랑의 부족입니다 사랑을 충분히 해주어서 그가 충분한 사랑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면서 공부도하고 다른 일도 하고 해야 그런 관계들이 깨트려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못 받으면 반드시 망가진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보면 교회에서 성격이 유별나고 성품이 안정되지 않아 잘 부딪히거나 깨트려지거나 하는 사람들을 보면 확인해 보지 않아도 항상 성장과정이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을 세상 사람들은 가정교육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 하는데 나는 그것을 성장과정의 잘못된 문제라고 봅니다. 또 여태까지 해온 교회생활과도 관계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런 과거를 통해서 현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은혜를 많이 받고 깊이 변화되어서 성화의 진전을 계속보이면 그것들이 은혜아래 살면서 마치 도라지를 쪼개어 물속에 담가두면 쓴물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것과 같이 나가는데 은혜아래 살지를 않으니까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으며 죄 아래 사니까 점점 나빠지지 좋아지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다니면서 성격이 더 이상해지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할 때 오는 것입니다 사람의 사랑을 못 받아도 그것이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못 받으니까 성품이 일그러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한 아이들은 행동이 굉장히 돌출적입니다 그래서 싸움을 아주 잘한다든지 아니면 유별난 행동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든지 충동적으로 한다든지 하는 다양한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아주 분명한 사실하나는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하면 이 교만한사람들이 그런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살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쉽게 무시하는데 사람을 무시한다는 것은 자기를 너무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사람들을 정당하게 가치평가를 안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중요한 사람이고 당신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라고 하는 이런 상대적인 비교의식이 그런 우월감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교만한 사람들이 자꾸 사람들과 부딪히게 되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들은 잘 부딪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들은 사람들로부터 많이 인정받지 않아도 다른 곳에서 자기 자신의 내면의 세계가 가득차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로부터 흘러 들어오는 신령한 만족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로부터 흘러들어오는 신령한 만족이 있으니까 뽐내고 싶어 하고 사람들을 딛고 올라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저는 여자의 심리를 다 알 수 없지만 그러나 남편의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있는 사람들은 부자 동창생만나도 집에 와서 바가지 안 긁습니다. 그런데 남편으로부터 자기가 충분히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면 친구가 무얼 샀건 간에 신경 안 씁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겸손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시시 때때로 나를 매만져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사람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눈동자같이 보호하시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자기와 같이 하나님과동행하며 사는 사람이 별로 없다. 라고 하는 신앙적인 하나님과의 관계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그런데서 자존심상하고 그런 것으로 사람들과 다투고 거기에서 자기를 세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 높아지려는 사람들은 높아지게 내버려 두고 겸손하게 사람들 속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것을 인해서 너무 좋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속에서 서로 높아지려고 무시하고 그렇게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만족으로 인해서 충분히 위로를 받으면서 사람들 속에서 그렇게 되어야 할 필요를 거의 못 느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교만한 사람들에게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더더욱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교만한 사람들이 교회에서 판을 칩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교만해서 사람들과 계속 부딪히면 사람들이 점점피하니까 행동반경이 아주 넓어집니다. 겸손한사람들은 구석에서 섬기는데 교만한사람은 휘젓고 다닙니다. 조나단 에드워드가 말하길 신앙이 없는 무지한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으로 예의를 갖추어서 대하자 이것은 그의 결심 문 속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목회를 하면서 그것을 탐독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제일 대접받는 사람은 짐승 같은 사람입니다 항상 휘둘러서 어느 팔에 맞을지 모르니까 대접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교만한 사람들에게는 그래서 친구가 없고 외롭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따뜻한 사랑도 없고 사람들도 그 사람에게 가시가 너무 많아서 가까이 접근하기가 참 힘듭니다. 우리들이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로만 사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교회이고 세상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내안에 하나님이 계셔도 하나님이 직접관계를 맺으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하나님이 관계를 맺으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입니다 제가 제일하기 싫어하는 것이 싫은 사람하고 밥 먹는 것 입니다 먹으면 반드시 체 합니다 제가 학교에 있을 때에 교수실에 있을 때에도 혼자 점심 먹으러 가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리고 같이 갈 때에는 정말 내가 좋아하는 교수님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학생들 친구 목사님들하고는 갑니다. 그러면 99%는 내가 냅니다. 우리도 이렇게 사람과의 관계에서 다 다른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메아리와 똑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사람에게 따뜻하게 해주면 그 따뜻한 것이 내게 돌아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을 위해서 진심으로 눈물을 흘려주면 시간은 지나지만 그 사람이 그 사람에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만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무시하니까 그 사람들과의 관계가 모두 깨트려지고 하면서 신앙생활자체가 점점 외로운 싸움이 되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들은 이처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많은 깨트려 짐들을 경험하면서 외롭고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인복이 있다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모두 거짓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인복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사람이 떠올랐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격이 아주 야비하고 치사한 사람이 인복이 있는 사람 본 적 있으십니까 인복이 있다는 사람은 모두 성품이 후덕 합니다 후덕하니까 자기도 베풀었는지도 모르게 베풀고 선을 행하고 그 사람을 진심으로 받아주면서 살아가는데 살아가는 자체가 나눠주고 베풀고 어루만져주고 하면서 자기는 잊어버리는데 그것이 메아리처럼 모두 울려서 자기가 필요할 때 다시 그 사람을 만나는 때 그때는 그 사람을 만날 때 생각 속에 겸손한사람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머릿속에 새겨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문들이 퍼져 나가고 퍼져나가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병원 갈 때 그 의사 명의이다 가면 몇 시간 줄서야 될거다. 그리고 갔는데 마침 진료를 잘해주면 청진기를 대도 무언가 틀린 것 같은 겁니다. 그런데 정 반대의 소문을 듣고 가서 진료를 받으면 의심이 생기고 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인복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후덕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은 항상 외롭습니다. 그것이 교만한 사람의 또 다른 삶의 모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만한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적수들을 만납니다. 그러니까 삶이 항상 고달픕니다. 겸손한 사람들은 친구가 많은데 교만한 사람들은 맞서서 싸워야 할 적수들이 참 많습니다. 겸손한 사람들은 항상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환영을 받는데 교만한 사람은 경계해야할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삶이 긴장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사실 인생을 살면서 우리에게 커다란 활력소가 첫 번째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은혜를 많이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이 피곤하다 힘들다. 라고 많이 하는데 육체가 물론 피곤하고 힘이 들지만 사람의 힘이라고 하는 것이 반드시 육체에 영향만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 어느 과학자가 실험을 했는데 컵에 물을 놓아서 수십 개의 컵을 만든 다음에 평화 은총 같은 좋은 말을 쓰고 또 죽음 미움이나 욕을 써놓습니다 그래서 일정시간이 지난다음에 물의 분자를 현미경으로 보니까 모두 틀리게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랑 기쁨 평화 같은 말을 써놓은 물은 분자구조가 일정하고 육각 수 같이 나타나는데 부정적인 말을 써 놓은 물은 구조가 일그러져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인체에 들어갔을 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과학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체가 모두 그런 인간의 감정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범죄는 인간이 하게 되었는데 그 온 하나님의 피조세계에 이 죄의 영향을 미쳤다는 성경의 진술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확신 합니다 그때 처음 창조세계의 그 빛이 이제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은총을 받음으로서 모든 정신구조나 육체구조 같은 것들이 전부 영향을 받으면서 회복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가끔 말씀드리는 것이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도저히 못 일어날 때 마다 귀에 잠잠히 떠오르는 것이 충성. 그러면서 일어나서 새벽기도 설교 끝나고 집에 가서 잠자야 겠다. 는 마음으로 오는데 신기하게 그런 날은 기도시간에 하나님이 은혜를 더 많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가득한 힘이 육체에 공급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과 함께 병행되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놀라운 기쁨 평화 이런 것들을 통해서 새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치고 고단해서 쓰러질 것처럼 힘들고 영적으로 지쳤는데 사랑하는 사람들하고 만나서 저녁이라도 먹으면서 옛날이야기 하면서 한바탕 웃고 마지막에 주님이 베풀어주신 사랑을 서로 이야기 하면서 기도하고 그렇게 새 힘을 얻고 나면 사우나에 누워서 몇 시간 쉰 것보다 훨씬 더 새 힘을 얻는 경우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은혜로운 사람과의 아름다운 관계의 작용들이 교만한 사람들에게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만한 사람들은 반쪽자리 신앙생활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우리의 영혼에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내려주시기도 하지만 사람을 통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을 직접 내리실 때에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직접 부으심의 은혜를 받아들일 수 없을 때조차도 하나님께서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우리를 아직도 사랑하시고 있다는 따뜻한 증거들을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 호주에 가서 선교사 훈련을 받는 자매가 있습니다. 교인이 워낙 많으니까 인사도 잘 안 하고 사실 얼굴도 상세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데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래서 내가 책에 싸인을 해서 건강하게 잘 보내라고 써 보냈더니 감격하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편지가 또 왔습니다. 거기에 가있는 한국의 많은 동료들이 너네 목사님이 얼마나 바쁜데 이렇게 편지까지 써서 보내주었냐고 하면서 새 책 온 것도 좋지만 그렇게 자기를 부러워해서 눈물이 나오도록 고마웠다고 그래서 새 힘을 얻는다고 보내온 것입니다 편지 몇 줄 써서 보내주었는데 그렇게 감격하고 힘을 얻는데 좀 불만스러운 일이 있고 힘든 일이 있어도 그렇게 기쁜 관계를 가지고 나면 새 힘이 솟지 않습니까? 그래서 성도간의 관계의 교제가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들에게는 항상 그런 것에서 기쁨과 은혜가 많습니다. 그리고 너무 좋고 행복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고갈되었을 때에도 그런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는 교회를 찾아가서 교제를 나누고 나면 거기에서 샘솟듯이 그런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물을 다시 먹고 그렇게 고통스러운 광야와 같은 세상의 길을 다시 한번 노래하면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성도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중의 하나입니다 거기에서 육체가 피곤하고 지칠 때에도 그렇게 교제를 나누고 나면 행복하고 그렇게 기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성도들이 좋은 교제를 가지고 있을 때에 그 속에서 생산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면서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시켜가고 자기보다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과의 교제를 통해서 그의 삶이 지혜를 배우고 하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때문에 육체의 연약함도 때로는 이기게 만들어 주는 커다란 활력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만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은혜의 수단들이 굉장히 많이 차단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들은 자기하고 비슷한 사람들하고만 교제를 나누고 다니는데 이것은 아무리 많은 교제를 나눈다고 해도 거기에서 새로운 힘들이 솟아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렇게 교제를 나누는 사람들 속에 예수님이 충만하게 살아계실 때에 그 교제를 통해서 힘 있는 영향력들이 흘러나오는 것이지 그렇게 몰려다닌다고 해서 신령한 것이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정이 흘러나올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해서는 신령한 은혜의 영향력들이 흘러나오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만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흘러나오는 충만한 기쁨 같은 것들을 풍요하게 받아 누리는 신앙생활을 잘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살아가는 것이 척박하고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만한 사람들에게는 항상 이런 종류의 신앙의 어려움이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절대로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왕따 시키고 사랑하지 않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과를 던져줄 때 받는 것과 밤송이를 던져줄 때 받는 방법이 다르듯이 던지는 사람도 방법이 다른데 받는 사람도 방법이 다르니까 그런데서 어떤 신령한 영향력 같은 것들이 교제를 통해서 흘러나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만하게 될 때 받는 커다란 영적손해입니다 더 많이 있지만 하나만 더하면 교만한 사람들에게는 또 없는 것이 있는데 바로 목자가 없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자기가 교회를 다니고 그 교회에 목사가 있다하더라도 그 목자가 모든 교인의 실질적인 목자는 아닙니다. 저는 몇 해 전에 교리 반을 모아놓고 방배동에서 공부할 때인데 목자와 양을 하면서 거기 모여 있는 한 30여명의 사람들에게 이전에 교회를 다닐 때에 신앙생활하면서 예전에 목사님에게 무엇을 기대했는가 물어봤더니 30명중에서 12명에게 질문을 했는데 두 명이 정확하게 목사님을 통해서 신앙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또 목사님이 말씀을 통해서 자신을 바르게 가르쳐주길 원했다고 답이 나오고 10명의 사람들은 목사님에게 바라는 것이 없었답니다. 그런데 그 답은 목사님을 무시해서 라기 보다는 자기가 그 목사님에게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를 사실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무엇이고 이 계획과 목적을 따라 살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힘과 재능만으로는 불가능 하다. 라는 것을 깊이 인식할 때에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라고 하는 것을 파악할 수 있는데 그렇게 안 될 때에는 자기가 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저 교회에 최고책임자 리더 정도로만 생각을 하지 절대로 그분에게 기대서 무엇인가 도움을 받아야한다는 생각은 안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만한 사람들에게는 목사는 있으나 자신의 영혼의 목자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삶이 목양 아래로 들어오지 않은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전에 하나님을 깊이 인격적으로 만나고 말씀에 의해서 깊이 정리가 되고 자기스스로 부지런한 경건생활을 하면서 비교적온전한 삶을 살아가려고 애를 쓴다고 하더라도 기독교신앙이라고 하는 자체가 독학으로 파악을 해서 하나님께로 가는 종교가 아니라 그렇게 사람들이 스승과제자의 관계로 목자와 양의 관계로 참된 신앙생활의 모본이 목자를 통해서 보고 배우고 들으면서 자기도 예수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자신도 시간이 지나면 목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원리가 아니라고 할 것 같으면 하나님이 하늘에서 책 한권 집어던지고 마시지 무엇 하러 당신의 외아들을 사람의 몸을 입혀서 내려오게 하십니까? 물론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시기 위해서 내려오신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을 위해서 오신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위해 오셨다면 내려 오시자마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지 왜 그렇게 긴 생애를 사셨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예수님이 제자들과 관계를 맺고 그 제자들을 목양하시면서 거기에서 하나님을 믿는 길과 교리를 가르치시고 그것을 배운 제자들이 또 제자들을 가르치고 그 제자들이 다시 제자들을 가르치고 하면서 그 신앙이 여러분에게 까지 넘어 온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자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에서 목회자를 통해서 겸손하게 목양을 받으면서 자라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목양을 하는 사람이 천사이면 상대가 되지 않으니까 사람이라서 불완전 합니다 그러니까 아까 말씀드렸듯이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은 사람들과 잘 부딪히고 유화를 이루지 못하고 그런 성품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목양의 관계에 그대로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양을 잘 안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다음에는 야생의 신자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세상에서는 광어도 제멋대로 바다를 헤엄치고 돌아다니는 것은 양식한 것보다 훨씬 비쌉니다. 삼도산삼하고 사람이 기른 인삼하고 다릅니다. 야생으로 자연 상태에서 자란 것이 이 세상에서는 좋은 것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부패성과 영적인 무지 때문입니다 그래서 적절하게 그것을 자기 자신의 원하는 바와는 다른 방법으로 라도 외부에 의해서 그것들이 다루어지고 교육이 되고 바로잡아지고 할 때 참된 신자가 되지 가만 내버려 두면 자기 자신 속에 있는 부패성이 억제되지 않아서 그것이 흘러나와서 결국은 그 사람을 망가트린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억제하고 다스려서 단정한 사람으로 하나님이 사람을 세우고 성도들을 세워 가시는 방법이 바로 목양이라는 관계를 통해서 세워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들에게는 존경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벼랑 끝에 까지 내몰려도 찾아가서 머리를 조아리고 상담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점점 더 힘든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저는 집회를 가서도 가장 가슴 아픈 것이 교회에서 직분을 맡은 사람들은 은혜를 받고 진실한 신자가 되어야 겠다. 라고 하는 강렬한 갈망이 현격히 부족합니다. 오히려 처음 믿고 무명의 신자들이 그 열망이 강하고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교역자가 되고 교역자나 장로들의 부인이 되고 하면 점점 더 그런 열망이 줄어듭니다. 어느 목사님은 앞자리든지 가운데든지 성도들에게 섞여서 은혜를 받으려고 애를 쓰시는 그런 분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느 목사님은 앞자리에는 앉으셨는데 계속해서 뒤를 돌아다보시는 겁니다. 설교시간에도 누구 왔나 누구는 안 왔나 하면서 생각이 머리에 꽉 차서 장로님은 장로님대로 집회 끝나고 일정에 대해서 생각이 가득 차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섬기고 사랑해야겠지만 항상 제일 중요한 것이 본인 자신의 신앙입니다
그래서 제가 늘 얘기 하는 것이 일본에서 한때 유행하는 산업이 하나 있었는데 일본은 우리나라 보다 노인들이 많습니다. 일본은 사회복지가 잘되 있으니까 이 사람들이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은데 가정이 없는 것입니다 무슨 이유로든지 가족들이 자기를 받아들여주지 않거나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사람들이 우리나라 돈으로 하루에 30만원정도를 주면 가정을 빌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할아버지가 가정에오면 하루 동안은 그 가정에 신세를 져서 젊은 부인은 낯도 모르는 할아버지를 아버지라 불러주고 자기집안의 자식들은 하루 동안만 요금을 낸 그 할아버지를 할아버지라고 불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라고 30만원을 내고 하루를 낯도 모르는 가정에 들어가서 할아버지소리를 듣고 사는데서 노년의 외로움을 달래는 것입니다 그이야기를 읽으면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노인 분들은 이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 합니다 그런데 나는 요즘 새로운 산업을 하나 만들고 싶습니다. 그렇게 모시는 할아버지 말고 갓 쓰고 곰방대 물은 무서운 할아버지가 가서 그 집 남자도 세워놓고 회초리를 쳐주고 손자들도 버릇을 혼내주는 그런 산업을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산업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을까 합니다.
그런데 인생을 살아가다가 지혜가 모자라고 나 혼자 광야에 서있는 것 같다고 느낄 때에는 정말 그런 선생님이 눈물나게 그립습니다. 그래서 너 이렇게 살아서 되겠느냐고 야단쳐 주는 선생님 우리들 가운데 그런 부모님께 나무토막위에 종아리 맞고 자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것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지 않습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이 혼자 내버려둬도 잘하고 혼자서도 잘해서 인간시대와 같은 신앙을 이뤄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완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힘과 결심이 약해서 늘 깨어지기를 잘하는가하면 어떤 때는 기고만장해서 펄펄뛰고 교만해지는가 하면 어떤 때는 마귀의 꼬임을 받아서 한없이 파괴적인 생각에 빠져서 도저히 자기를 가눌 수없을 정도로 자기 비하의 감정에 빠지는 이런 폭넓은 타락의 가능성을 가진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목양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겸손한 사람들은 목양을 잘 받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정체성과신앙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으면서도 진리로 자신을 가르치고 훈계하고 사랑하는 목양의 관계를 받아들이면서 그 안에서 그 목자들을 통해서 자기의 인생에 간섭하시고 자신의 신앙을 세워 가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깊이 인정하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갑니다 이것이 겸손한 사람들이 누리는 큰 축복으로서 이런 축복이 교만한 사람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정말 마음을 낮추고 겸손해 지셔서 목양을 잘 받고 여러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들이 그렇게 살아갈 수없을 때에도 그렇게 살아갈 힘을 하나님을 통해 공급을 받고 무지할 때에도 하나님께로부터 그 목양의 관계를 통해서 지혜를 공급받으면서 하나님의 집에 사는 감람나무와 같이 그렇게 번성하게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마지막 크게 세 번째로 교만의 원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교만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우선 첫 번째로 교만의 원인입니다 교만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일 커다란 것은 지성적으로 볼 때에는 자기 자신을 모르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 교만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신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래 누구였습니까? 죄인이었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사람이었고 우리의 가치라고 하는 것은 빈들에 피어있는 들풀만도 못한 것 이었습니다 들풀이 하나님 욕하는 것 봤습니까? 들에 핀 백합화가 하나님 모욕하는 것 보셨습니까? 들에 자란 잡초가 하나님의 영광을 거스리는 것을 보셨습니까? 우리는 사실 들풀만도 못하고 들에 핀 백합만도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에게 죽어도 만족을 줄 수 없는 부패하고 더러운 죄인들 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렇게 하나님께 범죄하고 주님을 훼방하고 주님 앞에 깊이 반역하는 인생을 살아가던 막되 먹은 인생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내려오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이 시켜서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 아닙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았을 때 순종함으로 우리에게 내려오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우리같이 쓸모없고 가치 없는 인간들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다 주셔서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누리는 모든 은혜와 사랑스러운 모든 축복들은 이처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중보자로서 대신 고난을 받고 희생을 치루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온 것들입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만한 것도 주님께 만족을 드릴만한 것도 그 아무것도 우리 안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자기의 외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해내신 것입니다 이 교만은 이러한 사실을 지적으로 망각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진정한의미의 겸손은 사람과 사람을 대하면서 내가 네 앞에서 나를 낮추리라 에서 오는 것이 겸손이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무가치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깊이 터득하고 깨달은 데서 비롯된 겸손입니다 그것을 깊이 터득하고 깨닫는데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깊이 자각하고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자기의 무가치를 확인하고 그런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가 무가치 하다라고 하는 은혜로운 생각이 사람들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쳐서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경건한 태도 가 바로 겸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 있고 그리스도예수의 은혜로부터 멀어져있는 사람들은 교만해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교만해지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항상 우리의 마음에 교만이 싹틀 때 마다 우리가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고 하는 것 아무 의로운 것이 없고 벌레만도 못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과 죄가 가슴속가득에 차있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서 한번에 쪼개어져서 지옥 불에 던져져야 마땅할 더러운 나무토막과 같은 존재들이었는데 주님이 우리를 구원해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다른 사람보다 선한 것이 있어도 그것은 내가 스스로 얻은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도 내 스스로 가지고 생래적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새사람으로 만드셔서 내게 주신 선물이라는 인식을 가져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들이 이렇게 하나님의 겸손의 은혜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정서적으로는 신자가 하나님의 은혜아래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가 교만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그자체가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인 것입니다 그것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항상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이며 자격이 없는 자신에게 이렇게 은총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 너무 감사하다. 라고 하는 그런 감사의 정서가 있습니다. 이런 것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가 교만해지기가 굉장히 힘들게 됩니다. 잠시 전에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인간이 얼마나 형편없고 자기가 어떻게 죄 가운데서 인생의 막다른 벼랑에서 방황할 때 하나님이 자기를 건져주셨는지를 깊이 깨닫고 그래서 그 하나님의 은혜가 부당하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이 그 은혜가 크고 자기는 하나님 앞에 정말 쓸모없는 쓰레기와 같은 존재일 뿐이라는 깊은 자각을 가지고 펑펑 울던 사람이 어느 한순간에 사람을 보면서 저 인간은 왜사나 내가 저렇게 못났으면 죽어 버릴텐데... 그렇게 생각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만한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기도하면서 강물처럼 밀려들어오고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이전에 죄 가운데 멸망아래 살았던 진노의 자식이었는데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하나님이 자기와 같이 정말 쓸모없는 인간을 이렇게 사랑 하는구나 은혜아래 있으면 교만해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부어주시는 은혜아래서 감격하는 법이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안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는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대적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적수처럼 생각하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싫어하시고 미워하시고 적수처럼 생각하시는데 무슨 은혜를 받을 수 있겠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마음에 가시 같은 것들이 잔뜩 들어있어서 은혜아래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은혜아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계속은혜를 주셔서 죄를 몰아내시고 죄에 대해서 깨트려지고 자기 의에 대해서 부서지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 부어지고 해야지만 은혜아래 살수 있는데 그런 은혜를 잘 안주시는 것 입니다 그런데 겸손해서 그런 은혜를 많이 받아도 관리를 잘못하면 부패해져서 은혜아래 있을 수가 없고 죄의 지배 아래로 들어가게 되는데 교만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위로부터 부어지는 은혜자체가 거의 없거나 아주 작은데 이속에서 교만해서 은혜를 소멸시키는 힘은 아주 강력합니다. 그러니까 조금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도 단번에 죄악이 그것을 삼켜서 은혜가 없는 것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언가 신앙생활은 하는 것 같은데 계속 죄 아래서 죄의 지배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서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아래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의지적으로 불순종 하는 것입니다 의지적으로 불순종을 하면 교만한 마음이 계속 높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 의지적으로 계속 불순종하게 되면 하나님 앞에 낮아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 순종을 잘하는 사람치고 교만한 사람 없습니다. 그래서 순종을 잘하는 사람이 잘 깨트려지는 사람이 순종을 잘합니다. 순간적으로 혈기가 나와서 대들다가도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면 깨어져서 하나님의 사랑이 그 마음을 녹이는 것입니다 하나님 조금 아까 내가 한 행동은 전혀 부당하며 잘못된 것이며 제가 그렇게 한 것은 모두 내마음속에 있는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하고 펑펑 울고 깨트려지고 나면 보는 데서는 소리소리 지르고 까불었어도 뒤에 가서는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는 데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 하고 하나님이 명령하시면 예 예하면서도 깨어짐이 없으니까 뒤에 서 딴 짓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에 무슨 다 주고도 사고 싶은 것이 있다면 잘 깨트려지는 어린아이 같은 참회의 자세 이것을 가진 사람들은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로버트 머리 맥체인 이라고 하는 청교도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잘 깨트려져서 풍부한 참회 속에 사는 사람들은 잃어버릴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죽음이 와서 그를 삼킨다고 할지라도 그는 주님의 품에 뜨겁게 안길 것입니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깨트려지면 순간에 하나님의 평화가 밀려오며 죽음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죽음의 세상이 거치고 나면 그렇게 어린아이 같이 깨트려지는 나를 뜨겁게 사랑하시는 주님이 기다리고 계시는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그래서 정말 그렇게 깨트려진 마음인 사람들은 순종을 잘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예스맨이 되어서 노예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어서 이것 좀 하라했을 때 예예 했어도 뒤에 가서는 마음이 깨트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서 순종할 때에는 희생이 없이 순종하는 것이 불가능 한 것입니다 희생 없는 순종은 순종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하던데 순종한다. 라고 하는 것은 순종할 수 있을 때 까지 순종하는 것은 순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안 될 때 순종하기가 힘든데 그것을 극복하는 고통을 지불하고하나님의 지시대로 하는 것 거기부터가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인내라는 것이 무엇인가 싫증이 날 때 까지만 하는 것은 참된 인내가 아니고, 만약 밥 먹기 싫어서 안 먹는 것이 금식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금식이란 먹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면서 영적인 목표를 가지고 뜻을 세우려고 육체의 욕심을 누르면서 하는 것이 금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매달리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교만한 사람은 의지적으로 순종을 하지 안하니까 순종안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깨트려짐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만의 원인입니다 이게 마지막으로 그러면 그 대책은 무엇인가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대책은 두 가지인데 우선 첫째는 자신의 본분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파악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아니라 용서받는 죄인이라고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자녀라고 불러주셔도 나는 용서받은 죄인입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영원히 예전에 내가 누구였는지에 대해서 잊지를 말아야 합니다. 예전에 나는 하나님을 반역하고 거스리던 그래서 형벌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는데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셔서 구원해주셔서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주님이 아무리 나를 하나님의 자녀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택하신 족속이라고 불러주셔도 나는 그분의 발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하리라 나는 하나님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할 수 없사오니 나를 아버지에 집에 용서받은 죄인중의 하나로 여겨주시옵소서 그것이 자기의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믿고 하나님의지하면서 살아가는 동안에 아무리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나도 예수님 믿기 전에 일어났던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일에 비하면 감사할일입니다 최소한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끔 근심걱정에 싸여 있는 성도들을 찾아가서 심방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하나님이 그대를 사랑하시고 그대가 다닐 교회가 있고 돌보아주는 목자가 있는데 무엇을 염려하십니까? 마음을 편안히 가지고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시라고 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예수안에서 그대를 다스릴 것이다 그렇게 하고 사는 것이지 무슨 인생이 별거입니까 그래서 첫째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인식을 정확하게 가져라 이고 두 번째는 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죄도 마찬가지이지만 교만의 죄는 깨어지지 않고는 절대로 극복될 수 없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무조건 많이 사랑해주면 그 교만이 깨트려질 것 같습니까 중요한 것은 십자가 그늘 아래서 교만한 우리의 인생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어떻게 겸손하게 하늘을 버리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고 어떻게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는지를 우리들이 두 눈을 들어서 똑바로 십자가를 보면서 예수님이 거기에서 흘리신 고난의 피와 마시신 쓴잔이 바로 우리의 교만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당하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깊이 깨트려져야 합니다. 거기에서 깊이 깨트려질 때에 그때 우리는 우리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고 일분일초라도 주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그런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다. 라고 하는 파산선고 받은 거지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앙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교만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늘 깨트려지기를 구하면서 교만해지려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트리시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 앞에서 나의 본성은 교만하고 거스리기를 잘하지만 주님이 베풀어주시는 그 은혜아래서 참회의 실천을 통해서 깊이 깨트려져서 교만의 사로잡혔던 우리들이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성화되어 하나님 앞에 한없이 겸손한 사람이 되어서 주님의지하고 사는 그런 백성들이 되면 얼마나 하나님이 행복하시겠습니까? 그래서 대적해야할 사람이 아니라 그렇게 깨트려지고 상하고 부서진 마음을 보면서 하나님이 은혜의 호수를 끌고 가서 부어주시고 싶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항상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한 삶을 살 것 아닙니까? 그 자리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예수님의 분신처럼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을 만나러 갑시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