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감사하라Ⅲ
(2003년 설교모음)
설교기간|2003년
편집내용|녹취원본
출 력 일|2013년 3월 23일
목 차
1. 공급해주시는 은혜에 감사함(마6:30) 2003.11.9 주일오후 1
2. 시련을 통과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시136:16) 2003.11.12 수요예배 11
3. 가장 감사할 제목(롬6:17-18) 2003.11.16 주일오전 19
4. 회복의 은혜에 감사함(시86:13) 2003.11.16 주일오후 27
1. 공급해주시는 은혜에 감사함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6:30)”
주님이 우리에게 한해 동안 공급해주신 은혜에 대해서 우리 한번 감사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공중 나는 새와 들에 핀 백합을 예로 들면서 말씀하신 이 그림같이 아름다운 비유는 사실 그 결론 부분에서 더욱 빛나게 됩니다. 그 결론 부분은 다름이 아니라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로 바로 이 그림 같은 비유의 마지막 빛나는 클라이맥스입니다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요즘 주일 오전에 듣는 설교의 맥락에서 이해하자면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해서 그렇게 우리가 창조의 목적에 부합하는 삶을 살고 또 만물을 창조에 부합하는 상태로 그 목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데에 기여하면서 살아가는 그것,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일을 여기에서 ‘의’라고 부르고 있고 그 나라의 완성은 바로 이렇게 모든 인간을 비롯한 피조물이 창조의 원래의 목적으로 돌아간 그 상태가 바로 그 나라의 완성의 상태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런 목적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창조의 원래의 목적으로 돌아가게 하시고 싶고 또 그 목적으로 만물을 돌아가게 하는데 이바지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바이십니다. 또 우리도 그렇게 살고 싶어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살지 못하게 하는 가장 커다란 원인이 우리의 속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살아온 그 인생 길에 대해서 대신 책임을 져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각자는 자기가 살아온 인생 길의 모든 결과들을 주님 앞에 지고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홀로 선 단독자로서 하나님 앞에 판단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모르는 이 세상의 사람들은 그 나라가 뭔지도 모르고 또 그 의가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냥 처음부터 자기가 이 온 우주의 중심이었고 처음부터 이 온 세상의 가치는 자신의 행복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자기의 육체의 만족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알게 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이루기 위해서 살아가고 싶어하고 자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이 구현되기를 소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살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물론 우리에게 주어진 많은 어려운 환경과 역경과 많은 시련도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목적대로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고통 속에서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분투하면서 싸우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살지 못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오히려 적은 요인이고 더 커다란 요인은 우리 안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차를 타고 가면서 평소 읽고 싶었으나 시간이 없어서 못 읽었던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은 쉐클턴의 ‘위대한 항해’라고 하는 책입니다. 쉐클턴이라는 사람을 다룬 이 책은 영국 사람으로 남극탐험에 도전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다룬 책입니다. 초인적인 인내를 가지고 그 남극에서 고립된 자기의 대원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거기에 22명의 대원들을 남겨두고 남겨두면 분열을 일으킬 것 같은 7명의 문제가 있는 대원들을 데리고 10미터 짜리 작은 배를 타고 그 남극 대륙에서 1270킬로미터 떨어진 곳을 항해해서 구조를 요청하고 구조대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서 약 3년 가까이 얼음에 갇혀있던 동료들을 극적으로 구해내는 실화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바다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만 거기에서 인상 깊은 장면이 그 7미터 짜리 배가 남극의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바람이 불고 엄청난 물결이 일어나는 악명 높은 바다를 헤엄쳐 가는 장면이 저의 마음에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바다에 나가서 파도 하나가 둥글게 넘어와서 떨어지는 한쪽 끝부터 다른 한 쪽 끝까지는(파도 마루) 보통 7-8미터, 길면 10여 미터 됩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나오는 파도 마루의 길이는 1.6킬로미터, 높이가 과학적 관측으로는 24미터쯤 되고 목격자들의 느낌으로는 64미터쯤 된다고 하니 상상이 안 되는 어마어마한 파도가 치는데, 7미터 짜리 배가 어떻게 넘어가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들은 정말 천부적인 항해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과학적인 도구도 많지 않던 때에 몇 개의 삼각자와 컴퍼스, 그리고 시간을 재는 분도기 몇 개를 가지고 그 엄청난 파도의 성격을 헤아리면서 가는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강력하게 몰아치는 폭풍우를 7미터밖에 안 되는 배로 슬기롭게 물결을 이용해서 파도를 타고 자기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로 항해하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항해술이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우리 인간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은혜를 많이 받고 나면 이런 항해술이 생깁니다. 참 신기합니다. 수십 미터 짜리 파도 앞에 7미터 짜리 배가 어림이나 되겠습니까? 파도에 부딪히면 배가 다 박살이 납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면 그 어려운 환경 앞에서 ‘내 인생의 파도가 너무 높다. 시련이 너무 많다’하며 원망합니다. 그런데 은혜를 많이 받게 되면 하나님이 기가 막힌 항해의 재주를 주십니다. 그래서 환난과 시련의 비바람이 불고 폭풍이 칠 때 그 풍랑을 이용해서 파도를 타면서 자기가 원하는 항구로 갈 수 있는 놀라운 은혜와 능력을 주셔서 나중에 그 모든 시험과 환난에서 벗어난 다음에 하나님을 그 환난 때문에 더 찬송하게 됩니다.
(예화: 한 경상도 남편이 생일에 아무 말도 없다가 선물로 종이에 둘둘 말은 금반지를 아내에게 주었다)
똑같은 다이아몬드 반지라도 어떤 상자에 담아 포장했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시련의 계곡을 통과하고 나오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난 은혜와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해주신 신앙의 경험들이 반지이고 우리가 겪은 많은 환난은 반지를 끼워놓은 배경의 까만 비로도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믿으면서 살아온 것이 꼭 환난을 겪을 때만 잘 믿은 것은 아닌데 환난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을 믿으면서 살아왔던 우리의 신앙이 더 보석처럼 빛나고 아름다워 보이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외부적인 환난이나 시련이 우리의 신앙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은혜를 받고 나면 그 풍랑과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놀라운 지혜와 기술을 하나님이 주셔서 어떻게 극복했는지도 모르게 그 환난의 비바람을 통과하고 시련의 파도마루를 타고 곡예를 하는 것처럼 살아왔는데도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고 우리들이 거기를 지나오게 되었기 때문에 고난과 시련에 대한 향수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로 볼 때 정말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우리를 하나님이 부르신 그 구원에 부합한 창조의 목적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우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살아야 할 우리를 가로막는 커다란 적도 역시 우리 안에 있는데 그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염려와 근심인 것입니다. 이 염려와 근심은 신령한 염려와 근심이 있고 육적인 염려와 근심이 있습니다. 신령한 염려와 근심은 성화 되지 않는 자신을 보며 가슴 아파하고 염려하는 것,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오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서 가슴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것,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그를 도울까 생각하면서 자신의 무력함에 대해서 낙심하는 그런 종류의 염려입니다. 이런 것들은 결코 그 사람의 영혼에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의 염려는 우리의 육체와 영혼에 놀라운 은혜의 틀을 유지하도록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죄가 깃들지 못하도록 만들어주고 마음에 신령한 염려와 경건한 근심이 있기 때문에 죄가 우리의 마음에 정착할 수 없게 하고 세상의 헛된 욕심이 우리의 마음에 붙어서 자라지 못하도록 만들어주는 훌륭한 역할을 합니다.
저는 한 때 갈비뼈와 갈비뼈 사이가 굉장히 아파서 견디지 못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거나 할 때는 지압을 하면서 몇 년 동안 지냈습니다. 의사에게 물어보니까 혈액순환이 안돼서 그런다고 했습니다. 물론 인간이 육체적으로도 건강해야겠지만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더 건강해야 되는데 그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스트레스가 모든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데 생각해보니 스트레스가 정말 너무 많았습니다. 학교에 가면 교회 염려, 교회에 가면 학교 염려, 교회에 가면 집 염려, 집에 오면 교회 염려를 하면서 일생을 살아왔는데 정말 근심이 없는 적이 하루도 없고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눈물이 나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을 정도로 그렇게 마음에 눌리는 것이 많고 가슴 아프게 하는 것들이 많은데 이러다 스트레스 때문에 질병에 걸려서 죽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어느 병원에 갔더니 그 원장이 펴낸 책이 있는데 진료를 기다리며 단숨에 거의 다 읽었습니다.
평소에 가지고 있던 의문을 얼마나 잘 풀어주는지 그 책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팔복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이런 모든 것들이 다 스트레스라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제 얘기였습니다. 심령이 가난하니 의지할 곳이 없었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싶은데 주님이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는 만족이 안되었습니다. 더 많은 은혜를 받고 싶지만 아직은 내가 부패했습니다. 그러니 이것이 스트레스였습니다. 애통하는 것은 더 스트레스였습니다. 오죽 스트레스가 쌓이면 울겠습니까? 예레미야나 이사야 같은 사람이 나라를 위해 애통할 때에 마음이 괜찮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이야 완벽히 거룩하고 신령한 슬픔 속에서 살았지만, 거기에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것도 가미가 됩니다.
그런데 그 저자의 결론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그런 스트레스는 돈을 주고라도 사야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스트레스는 결코 인간의 육체를 망가트려서 병들게 하는 스트레스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건강에 안 좋을까봐 심령이 가난해지지 못하고 육체가 염려되어서 하나님 앞에 애통하지 못하셨던 분들, 그리고 치료비가 많이 들까봐 의에 주리고 목마르지 못하셨던 분들, 안심하고 하십시오.
사슴 피 같은 것들을 먹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짐승들이 죽을 때 얼마나 고통하고 몸에서 아드레날린이 나왔을 텐데 그것을 먹고 몸에 좋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개도 두들겨 패서 잡은 개고기가 맛있다고들 하는데 저는 동의가 안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신 목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분투하면서 느끼는 그 거룩한 슬픔과 신령한 스트레스는 우리 몸에서 뭔가 다른 분비물질을 내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럴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만일 거기에서 우리 몸에 해롭게 하는 아드레날린이 쏟아진다면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얼굴이 일그러져서 죽을 것입니다. 일평생 걱정하고 스트레스 받으면서 산 사람들은 마지막 죽을 때도 인상을 쓰면서 죽습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저는 의학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니 단언할 수는 없지만 신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창조자의 섭리로 볼 때 분비물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분명히 생각합니다.
어떻든 그 순간에 염려와 근심의 스트레스가 모두 날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충분히 심령이 가난해져도 되고 충분히 애통해도 되고 충분히 온유해져도 되고 의에 주리고 목말라도 되고 핍박을 받아도 되고 충분히 정결해져도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그 책을 통해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령한 근심과 경건한 염려는 우리의 마음을 계속 하나님과의 교통에 어울리는 신령한 틀을 유지하도록 만들어서 죄가 깃들지 못하게 하는 놀라운 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해진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시시 때때로 주만 봅니다
‘정말 주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하며 눈물 흘리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불같은 정욕이 공존할 수 있겠습니까? 공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지 못하게 하는 염려는 그러한 신령한 염려가 아니라 아주 자기 중심적인 염려와 근심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먹을 것인가 무엇을 입을 것인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 것인가 무엇을 입을 것인가 생각도 하지 말고 살아야 하는가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 증거가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 속에서 “오늘날 일용할 양식을 우리에게 주옵시고”하시며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을 통해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수가 있습니까? 생각 없이 기도할 수 없습니다. 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렇게 생각할 때에 염려하지 않고 그 기도가 정말 절실한 기도가 될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시며” 이 기도가 간절해지기 위해서는 평소에 거룩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고민해야지 그 기도가 간절하게 되어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신학교 다닐 때 한 목사님이 생활비를 교회에서 안 받고 일용할 양식을 구한다는 간증을 했습니다. 사실 그런 생각들은 모두 옳고 건전한 생각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의 의미는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매일매일 살아가는 삶이 이 땅에서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아가는 것에 소망을 두는 인생이 아니라 그 나라와 그의 의의 회복에 소망을 두는 인생이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배경은 구약의 만나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험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일용할 양식을 얻었는데 새벽에 들판에 나아가면 만나가 내려있었습니다. 그것을 거둬들이는데 매일 나가기 귀찮아서 이틀 분을 거둬오면 해먹고 난 나머지는 썩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루치만 거둬오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적어도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 만나 자체가 의미하는 바는 ‘이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는 것을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만나를 먹으면서 육체의 기운을 얻는 것처럼 영혼도 또한 그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하늘의 은혜로 새로워지는 양식이 필요한데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가나안에 들어가서 첫 번째 추수를 거둘 때에 그런 방식으로 만나를 안 내리시고 농사를 지어서 먹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광야 길에서 그들이 형통할 때도 있었고 불통할 때도 있었지만 그 광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최종적인 본향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으셔서 가나안에 이르게 하실 때까지 하나님이 그들을 그런 방법으로 먹여 살리신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의도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육체의 양식을 먹으면서 동시에 영혼의 양식이 필요하고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통해 주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하늘 나라에 가면 우리들이 일용할 양식을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껏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부족한 것이나 결핍이 없이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아가게 되는 곳이 하늘나라입니다. 그런 것들을 바라보면서 살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항상 이 하나님의 일용할 양식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육체가 음식을 먹고 건강을 회복할 때에 더더욱 우리의 영혼은 영적인 만나를 먹고 매일매일 건강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근심하지 않고는 진실 되게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염려와 근심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은혜로운 방법을 통해서 우리에게 공급될 것에 대한 기대와 염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에도 혹은 불완전한 상태에서 자기의 입고 먹을 것을 온전히 자신의 힘과 능력에 의존해서 조달하려고 하거나 혹은 먹고 입는 것 이상의 과도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더 많은 것을 공급해야 한다고 느끼는 그 탐욕이 가져다 준 부담에서 오는 염려와 근심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영혼에 깊은 혼돈을 가져오고 우리로 하여금 죄가 깃들지 못하게 하는 은혜로운 마음의 틀을 유지하며 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앙망하는 경건하고 진실한 영성과 세상에 있는 물질에 대한 과도한 염려, 탐욕, 이런 것들과는 결코 이 경건한 영적인 세계가 공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질의 탐욕에 사로잡힌 사람 중에 경건한 사람들을 보셨습니까? 물질의 탐욕에 마음을 내어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신령한 사람들을 본 일이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혹시 신령하다면 그것은 모두 하나의 거짓되이 신령한 척 하는데서 오는 그러한 위장이지 진실로 신령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생각해야 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님의 자녀로 불러주셨을 때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뿐만 아니라 우리의 그 구원의 은혜를 통해서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우리에게 유업으로 주시고 누리면서 살게 하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들이 굳게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이제껏 하나님을 믿으면서 살면서 이렇게 불경건한 염려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온전한 승복이 결핍된 가운데 우리의 마음을 눌렀던 모든 근심과 염려가 옳지 않은 것이라고 하는 것을 하나님 앞에 깊이 깨닫고 그것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 먹고 입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과도한 염려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도 도움이 안되고 우리의 영혼에도 도움이 안되고 하나님께는 더더욱 도움이 안 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 도움이 안 되는 이유는 우리 속에 물질과 먹고 입고 사는 문제에 대한 신앙을 떠난 불신앙적인 염려와 근심이 가득 차게 되면 그 나라와 의를 위해서 살아야 할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그 물질을 위해서 사는 비참한 도구로 전락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도 도움이 안 되는 이유는 그 염려와 근심이 결국은 우리 안에 있는 죄와 손잡아서 검은 먹구름을 우리의 마음속에 가득 채우고 그 구름에 가리워서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과 그 말씀의 은혜의 세계로부터 차단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근심과 염려가 가득 차게 되면 신앙의 열렬함이 사라지고 하나님만을 초점으로 삼으면서 간절하게 매달리던 이 진지함과 진실함들이 사라져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도움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염려한들 네 키를 한자나 더 자랄 수 있게 하겠느냐” 우리들이 그렇게 염려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은 자기 벌어서 자기가 먹고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이 사람을 부하게 해서는 안되겠다고 마음먹으시면 계속 깡통 차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사람을 부하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으시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그 사람은 반드시 성공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수중에 우리의 인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고 그분의 주권을 믿으면서 만일 내가 부가 필요하고 양식이 필요하고 입을 옷이 필요하면 하나님께 구하고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을 위해서 염려하고 생각하면서도 내 마음이 하나님 앞에 나뉘어지지 않는 것이 가하지, 그것을 얻어내기 위해서 잠시 신앙을 방학하는 태도를 가지고 모든 것을 누리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리석은 것이고 그렇게 누리며 산들 그 영혼에 무슨 기쁨이 있겠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1년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1년을 돌아볼 때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 중 하나는 주님이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신 것입니다.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우리의 영혼은 3일 쯤 하나님의 말씀을 못 먹어도 육체가 살아있으면 다시 은혜를 받을 기회가 있지만 육체가 먹지 못하고 1주일 열흘씩 굶어서 죽음을 맞이한다고 할 것 같으면 우리의 영혼의 변화는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그래서 우리들이 가난한 나라의 백성들을 구제하고 물질로 인해서 고통받아서 끼니가 간데 없는 난민들을 구제할 때 종교를 생각하면 안됩니다. 일단 그들이 살아서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우리에게는 좋은 것이고 하나님도 그것을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원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우리들이 영혼의 문제만큼이나 우리가 무엇을 먹고사느냐는 문제는 정말 절박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많은 물질로 인한 고통과 염려들에 관한 이야기가 들려올 때는 우리의 마음이 늘 아픕니다.
많은 사람들은 요즘 시대에 밥 굶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하는데 지금도 밥 굶는 사람 많습니다. 지난주에도 신학교에 설교를 하러 갔는데, 점심 시간이 되면 1700원이 없어서 물 한잔 들고 뒷산으로 올라가는 학생들이 하루에 150명쯤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차도 몰고 다니면서 삽니다. 그러나 소수이기는 하지만 그중 어떤 학생들은 끼니가 간데 없습니다.
저도 신학교 다니면서 제일 부러운 사람이 매점에 내려가서 컵 라면에 김밥 한 줄 시켜놓고 먹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웃으시겠지만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침이 넘어갑니다. 아침에 뜨끈뜨끈한 컵 라면 국물에 금방 싸온 김밥, 다 합해봐야 그 당시에 천 원밖에 안됐지만 그 천 원이 없었습니다. 하루에 5백원 주머니에 넣고 생활하던 때 천 원씩 주고 사먹을 수 없었습니다. 라면을 시켜도 매점 아저씨에게 계란은 빼달라고 하면 50원이 깎였습니다. 그렇게 살던 생각을 해보면 그래도 그 사람들은 낫습니다.
우리가 더 시야를 넓혀서 아프리카나 난민들이 있는 곳에서 들려오는 선교 소식들을 들으면 어떤 때는 먹고살면서 뜨뜻한 방에 누울 수 있는 것이 죄송스러울 정도로 이 세상은 굶주림과 고통 속에서 사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1년 동안 잘 인도하시고 시시때때로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삶의 표준을 너무 높이 하기 때문입니다. 누구 말대로 ‘얻어먹을 기운만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는 고백이 있으면 그렇게 못합니다. 우리가 삶의 표준을 너무 높게 잡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욕망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끝이 없는지 보여주셨습니다. 목회를 하면서도 보면 지하실에서 살다가 지상에 올라온 때에는 그렇게 좋아할 수 없고 13평 아파트라도 가면 감사가 넘쳐나고 심방 할 때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그러나 1년 뒤에 가보면 ‘좀 좁아서, 그래도 24평은 돼야지’합니다. 또 불려 가면 은혜가 넘쳐서 ‘정말 기적적인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좋은 집을 주셨다’하는데 2년 정도 살다보면 ‘좁아서’합니다. 그래서 32평, 32평이 45평, 하다가 두 채 트고, 이렇게 한이 없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전능하신 하나님도 충족시킬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다고 합니다. 그 욕망을 하나님이 어떻게 채워주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오늘 우리들이 한번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물질적으로 곤고한 때를 한해동안 지나게 하셨습니다. 이번에도 남대문 시장에 집회를 갔는데 하나님이 은혜를 많이 주셨습니다. 제가 가기 전에 이미 마음들이 가난해져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경제가 어려워서 열 집 중에서 잘되는 집은 한집이고 아홉 집은 누가 언제까지 버티다가 문을 닫느냐가 숙제라고 했습니다. 그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물건을 팔아서 점심 먹을 식사비도 손에 넣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12000의 가게 중에서 하루에도 수많은 가게가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그런 속에서 저는 그들을 야단 칠 수가 없었습니다. 똑바로 살라고 얘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종일관 기도의 제목은 ‘믿음으로 삽시다. 환난의 비바람이 불고 시련의 눈보라가 몰아치고 폭풍이 이는 바다 한복판을 지나는 것같이 그렇게 고통스러울 때라도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나님 의지하십시오’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은혜를 많이 주셨습니다.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이 그들뿐이겠습니까? 오늘 우리도 한해동안 얼마나 어려움 속에서 지냈는지 모릅니다. 더군다나 요동치는 이 정치판은 우리의 근심과 걱정을 참 더해주었습니다. 그런 많은 어려움 속에서 그렇게 어려운 고비를 한해동안 넘기게 하셨는데, 그래서 어떤 때는 성도들이 살아가는 삶을 들여다보면 정말 차라리 몰랐으면 좋을 정도로 그렇게 가슴 저리게, 어떤 사람은 사업에 쪼들려서, 어떤 사람은 채무에 시달리면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볼 때 너무 가슴 아프고 힘듭니다.
그런데도 한해를 돌아보면 우리들이 한번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고민도 많고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은 많은 숙제들이 있고 경제적인 문제로 인한 고통들이 우리에게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헌금이 적어질 때면 다른 때라면 ‘이 사람들이 이렇게 헌신을 안 하나’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요즘은 ‘얼마나 어려울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고비를 소수의 사람들만 제외하고 너나없이 그 파도를 헤치면서 우리가 1년 동안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우리의 마음에 근심과 염려들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을 바꿔보십시오. 살아있는 한 희망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조금 경제적으로 고통을 받고 우리가 이루고 싶은 목표를 다 성취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한해동안 주님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없이 공급해주셨다고 한번 고백해보십시오. 먹고 마시고 입고 쓸 수 있도록 해주셨고 우리의 자녀들도 넉넉하지는 않지만 교육받으며 자라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청년들 중에서도 등록을 못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면 마음이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다 도와주고 싶은데 그럴 능력은 안되고, 그런데도 우리들이 그 많은 시련들을 헤치면서 살았고 더 감사한 것은 여러분들이 그런 경제적으로 어려운 한해를 살면서도 그것 때문에 믿음이 변질되거나 뒤로 물러나서 하나님 배반하지 아니하고, 오늘 이렇게 목양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머물러 있는 모습은 얼마나 더 감사합니까?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아직까지도 모든 것을 해결해주시지 않고 어려움을 남겨두신 것은 아마도 우리에게 이미 베풀어주신 것의 의미가 얼마나 큰지를 알게 하시기 위함이 아니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바꾸어서 주님께로부터 못 받았기 때문에 숙제가 되고 있는 것들 때문에 불안해하고 아파하지 말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않은 채 지나쳤지만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크고 놀라운 은혜를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서 그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감사해보십시오.
(예화: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에 갔던 사람들이 1년 후 그 비참한 상황이 하나님 의 징계이므로 죄를 더 많이 회개하여야 한다고 할 때, 한 사람이 ‘흉년이 들고 걱정은 되지만 우리가 여기 온 것은 잘 먹고 살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기 위함이었는데 하나님이 안 해주신 것이 무엇이냐’는 말을 하며 오히려 감사하자 고 했다)
저도 오늘 아침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올 한해동안 안 해준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니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안 베풀어주신 것도 없고 안 해주신 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베풀어주셔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모자라는 것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인색했던 것과는 상대도 안될 정도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셨고 하나님이 그 모든 것들을 통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나 많이 보여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더 큰 것,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 주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것들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너무나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화려하게 차려지지 않은 식탁 하나에도, 넉넉하지 않은 생활비에도, 그리고 여유가 없어 보이는 일상적인 많은 공급하심 속에도 목자 되신 하나님의 마음은 녹아 있었고 지금 믿음의 눈을 가지고 우리의 살아온 1년을 보니 정말 눈물겨운 하나님의 은혜였고 우리는 그럴 자격이 없었는데도 분에 넘치는 은혜를 받아왔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들에 핀 백합을 봐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어질 들풀들이라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는데 너희는 얼마나 더 귀한 사람들이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이 창조하신 세계를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돌보고 계시고 그들에 핀 백합화, 공중에 나는 참새 한 마리도 그 돌보시는 혜택을 보고 살아가는데, 우리는 그런 정도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주시는 그 고귀한 희생의 사랑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 구원의 은혜 안에서 1년 동안을 살았습니다. 곤고한 영혼으로, 그리고 냉랭한 가슴으로 무거운 마음을 안고 살아간 적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거두셨다기 보다는 우리가 그 은혜를 싫어서 먼길로 떠났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보다 더 좋은 것을 찾아서, 양떼가 목자의 품을 떠나듯이 떠났을 뿐입니다.
성령 충만할 때만 하나님이 먹여 살리셨나요? 주님을 잘 섬길 때만 우리를 입히셨나요? 곤고할 때도 주님을 떠날 때도 심지어는 주님을 대적하며 살 때조차도 힘을 얻고 따듯하게 몸을 보존하면 그 건강으로 하나님을 거스를 것을 아시면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돌이키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으로 돌아올 날들을 기다리시면서 죄악 가운데 있는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셨습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소중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피었다 지는 들풀도 입히는 하나님
하물며 우리랴 염려 필요 없네
푸른 하늘을 나는 새들도 먹이는 하나님
진흙 같은 이 몸을 정금 같게 하시네
오히려 우리에게 아직까지도 경제적인 어려움이 남아있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생고생시키시기 위해서 우리를 그렇게 버리신 것이 아니라 진흙 같은 우리의 몸을 정금 같게 단련하시고 하나님의 은혜 없이 내 고집대로 살려는 나를 꺾고 바꿔놓으셔서 하나님을 온전히 의존하며 땅의 기름진 것과 땅의 충만한 것을 주셔도 그것 대신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인격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곰곰이 생각하면서 그 동안 닫혔던 여러분들의 입을 열어서 한번 감사해 보십시오. ‘하나님, 내가 이렇게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신 공급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베풀어주셨고 그래서 주님 때문에 살았습니다. 염려와 근심 속에서 감사를 잊어버렸던 우리의 마음의 검불과 같은 것들을 다 불로 태우시고 우리의 마음속에서 정말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이기에 주님이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감격하며 감사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그러면서 우리 일주일동안 노래하면서 사십시다.
2. 시련을 통과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의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36:16)
이스라엘백성들에게 광야생활은 두고두고 회고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경건한 사람들에게 이 광야생활에 대한 회고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대목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왜 이렇게 광야생활을 회고하게 되었는가 하면 그 당시에 광야는 단지 광야가 아니라 수많은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는 그런 곳 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광야의 생활이 40년 가까운 생활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에 이 광야생활은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김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자신의 민족적인 독립성을 유지하고 신앙의 통일성을 계속 고무시키는 방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이렇게 조상들이 겪었던 과거를 회상함으로써 우리가 조상과 동떨어진 다른 존재들이 아니라 그 조상과 함께 연결된 하나님의 한 언약 백성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예전에 조상들이 지었던 범죄를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반성하고 또 옛날조상들에게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위대한 은혜와 능력을 자신들의 시대에도 기대하면서 살았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광야에서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그들을 광야 길로 들어가게 하실 때부터 이미 그 광야의 고난의 연단을 통과하게하심으로서 완전히 이방문화에 젖어있는 가나안에 들어가서 정착할 때에 좋은 신앙의 정체성을 유지하게 하시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쇠를 단단하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 번 풀무에 달구고 그것을 다시 찬물이나 기름에 집어넣어 끊임없이 담금질을 한 가운데 쇠가 그 담금질의 과정을 통해서 더 단단해 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 부패한 땅에 기업을 얻게 하신 하나님이 그곳에서 섞이지 않는 신앙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오히려 자기의 인근의 이방백성들을 여호와를 믿는 신앙으로 감화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광야라고 하는 무대를 통해서 철저하게 연단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광야생활과 같은 연단이 늘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한해에도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렵게 산 모든 사람들을 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망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는 일마다 안 되고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을 모두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리지 못하는 불순종의 삶을 살고 있는 중이라고 경솔하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번성하는 악인도 있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고난 받는 의인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섭리의 목적 과 우리를 구속하신 목적 창조의 목적이 같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을 인간의 죄와 타락으로 이루어 드릴 수없게 되자 주님이 우리를 구속하셨기에 구속과 창조의 목적은 일치 합니다 구원받은 다음에 하나님 앞에 살아갈 때의 섭리는 숨겨진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 뜻은 살아봐야지만 알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아보면 그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요셉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 섭리는 결국은 우리를 구속하신 목적을 이루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섭리와 구속과 창조의 목적이 모두 일치한다는 말입니다 그 뜻대로 살면서도 그렇게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으셔서 우리를 연단하게 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기대와 계획을 가진 사람들을 연단하십니다. 그리고 고난을 받고 시련을 당한다고 해도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처럼 생각해선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잘못되지 않아도 하나님은 연단하시고자 하시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이스라엘백성들의 죄를 인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광야에서 더 많이 고난을 당하게 하시고 연단 받게 하셔야 했던 것입니다 사실우리들이 누구인지는 은혜 충만했을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은혜가 다 떨어졌을 때 우리가 누구인지 가장 잘 나타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의 열 재앙을 보고 애굽 사람들로부터 금 은 보화를 얻어가지고 광야로 뛰쳐나왔을 때 그 행진은 얼마나 위용에 가득찼겠습니까? 그들은 당시에 지상최대 강대국인 애굽을 초토화시키신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두 눈으로 바로보고 그 크신 권능을 맛보았습니다. 그 긴 세월동안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를 했을 때 그들이 민족적인 자존감을 잃어버릴 대로 잃어버렸는데 그 크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홀로 역사하신 것을 보면서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서의 자부심이 충만했습니다. 정말 그들은 믿음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되었고 광야의 길에 담대하게 탈출의 발걸음을 내딛었고 그것은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의 시작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충만한 거룩한 백성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지만 곧 이어서 만난 홍해의 경험이나 물이 없어 고통 하던 마라의 경험이나 이런 모든 경험들을 통해서 그들이 은혜와 관계없이 그 속에 깔려있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살려고 하는 애굽에서 오랫동안 굳어버린 악한 경향성들이 얼마나 큰 것인가 하는 것을 우리들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나안의 유업을 싫어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들에게는 옛 성품에서 비롯되는 많은 허물과죄의 욕구들이 있었습니다. 급기야 그들은 그렇게 등에 피가 나도록 얻어맞으며 노예생활을 하던 애굽생활을 그리워하게 하기까지 되었고 그럴 정도로 그들은 광야에서 많은 고난과 연단을 당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불순종과 죄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불순종과 죄로 말미암아서 그들이 광야에서 단련을 받고 고통을 받았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고통 중에 회개하고 깨닫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끝내 못 깨닫기도 했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전에 있었던 이스라엘백성의 조상과 그 후에 태어나 가나안으로 들어간 이스라엘자손들 모두 영적인 하나의 언약공동체로 단일하게 묶어볼 때에 그들은 점점 더 그 고난 속에서 믿음이 있는 성숙한 백성들이 되어갔습니다 이것은 모두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당한 고난과 큰 환란 이었습니다 그들이 가는 길에는 도처에 위험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 위험은 때로는 하나님이 연단하시기위해서 때로는 징계하시기위해서 하나님이 보내신 환란과 어려움이었고 때로는 그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때로는 이스라엘백성들의 뼈 속 깊이 배어버린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의 본성들을 드러내주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 속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은 광야를 떠났고 광야 길은 정말 그럴 수 없는 가까운 길인데 40년 가까이 광야에서 방황하며 수많은 민족과 싸웠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위기들을 수없이 만났습니다. 믿음과 불신앙이 교차했고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신앙과 불신앙이 서로 교차했습니다.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옛 생활에 대한 그리움과 주님이 주실 영원한 기업 가나안에 대한 소망이 함께 교차하는 가운데 40년 가까운 세월을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시편 136편에서 이 저자는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허락하신 광야세월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이렇게 감사하고 있는 가입니다. 오늘시인은 말하기를 백성들을 인도하여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하나님이라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스라엘백성들이 비록 범죄 하였고 그래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중에 있었어도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한곳에 머물러 진멸 당하게 하지 않으시고 그 피나는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의 길을 통과하게 하셨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들이 비록 죄가 있고 혹은 하나님이 이들을 더 순결한 백성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그 죄를 사용하셔서 연단하시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백성들이 가장 극악하게 범죄 했을 때에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단순한 보복이 아니라 그들이 범죄 한 가운데도 하나님은 그들을 선택하신 그 선택의 목적을 따라서 여전히 그들을 그 광야에서 인도하셨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광야를 통과했다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불을 통과하는 것이나 물을 통과하는 것처럼 광야의 길이 속히 지나야 할 위험한 길이었고 고난과 역경으로 가득 찬 가시밭길이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 가시밭길과 같은 광야의 고난의 길에서 심지어 그들이 범죄 할 때에 조차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거기서 복수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때리고 고치시기위해서 징계하시면서도 하나님은 그들을 잡으신 손을 놓지 않으시고 그 광야의 길에 주저앉아 멸망당하게 아니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을 당신이 그들을 애굽에서 불러낸 목적을 위해서 계속 길을 가도록 그들을 이끄셨습니다. 때리시면서 싸매셨고 징계하시면서도 그들이 광야에서 진멸되는 대신에 그 민족이 선택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서 갈수 있도록 이끌어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해를 살아오면서 어찌 감회가 새롭지 않겠습니까? 고난으로 가득 찬 광야의 길 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은 살아오는 동안에 금년처럼 큰 고통을 당해본적이 없을 정도로 극심한 고난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때로는 우리를 연단하시기위해서 때로는 우리가 지은 허물과 죄 때문에 우리를 책망하시는 가운데 우리를 징계하시는 가운데 고난의 길을 걸어오게도 하셨지만 어떤 경우이던지 하나님께서 는 우리가 지은 많은 허물과 죄를 향해서 보복하심으로서 이 광야와 같은 인생의 길에서 하나님 없이 엎드려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연단을 받을 때에는 그 연단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하심으로 격려를 받아 다시 살게 하셨고 우리의 죄와 허물로 인해서 징계를 받고 고통을 받을 때에는 때리시면서 동시에 어루만지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당신의 자녀들이 당신의 엄하신 성품 때문에 낙망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은혜와 긍휼을 적절하게 베푸셨습니다. 그러면서 일년이라는 세월을 우리들이 살아왔습니다.
아마 오늘 이렇게 감사주일을 바라보면서 여러분들이 한번 한해를 회고해 보면 정말 넘기 어려웠던 고통스러웠던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저 역시 지난해와 다름없이 그런 때들을 만나면서 일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것들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하늘을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들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기쁘고 행복한 일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때로는 우리의 죄와 우리의 잘못으로 인해서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고집대로 하나님이 주신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원망 속에서 마음이 강퍅해지기도 하였고 그렇게 강퍅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악심을 품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굳어짐과 그 은혜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차마 보실 수가 없어서 눈물을 머금고 우리를 때리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때리시는 아버지의 징계로 인해서 고통을 당할 때 사실은 우리보다도 우리를 때리신 하나님이 더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 앞에 많은 잘못을 하고 하나님 앞에 그릇된 삶을 살았으면서도 영원히 징계에 처해진 사람은 없습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이 위로를 주시고 징계 중에도 우리를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따뜻한 관심을 우리에게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년 동안 잘못 살면서 하나님 앞에 많이 매 맞아서 아팠던 사람들은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릇된 길로 갈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가슴아파하시면서도 때리시는 그 징계의 회초리가 없었더라면 우리들은 영영 신앙에서 미끄러졌을 것이기 때문이고 어두움 속에서 주는 죄의 즐거운 낙을 누리면서 하나님 앞에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향해 가지고 있는 그 크신 사랑 때문에 때로는 자기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잠시 하나님의 자녀의 맛을 잃어버리고 죄의 길을 걸어가고 주님을 반항하는 것을 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관심은 언제나 그렇게 당신의 품을 떠난 자녀들을 다시 얻는데 하나님의 징계의 뜻이 있었지 복수하시고 보복해서 광야에서 그들을 짓밟아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던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고난 중에 우리의 잘못으로 인해서 징계를 받고 아파했다면 그것은 우리를 향해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애정, 나는 아직도 너를 포기할 수 없다 너는 나를 버렸으나 나는 내 아들을 주고 너를 샀기에 나는 너를 버릴 수가 없다 하나님은 망가졌지만 아주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고쳐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징계 속에 나타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히려 많이 미끄러지고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던 사람들이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돌아올 때에 그들은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함을 경험하고 그래서 오히려 그 실패 속에서 예전에 몰랐던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 그리고 징계를 통해서 자신을 고난 가운데 광야의 인생길속에 처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핍절한 삶이고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범죄 한 우리를 향한 그 사랑과 자비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일이 일어났으면 안 되지만 그러나 우리의 실패 우리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한번 망가진 자들을 광야에서 짓밟아 매장하시는 대신에
쓰러진 나를 세우고 나의 빈 잔을 채우네.
주 나의 모든 것
하나님께서 죄로 말미암아 엎드려져 쓰러진 우리들을 일으켜 세우시고 이제는 하나님도 우리를 버리셨다고 생각하고 그 영원한 기업의 소망까지 포기하고 광야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우리들의 눈의 눈물을 씻기시고 다시 살게 하셨습니다. 정말 우리의 일생은 그 하나님을 향한 부단한 우리의 반항과 반항하며 악심을 품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언제나 사랑으로 우리를 굴복시키시는 우리를 감동시키시는 하나님의 그 사랑의 날카로운 대조 속에서 이어온 인생의 길이 우리의 삶의 길이 아닐까요? 그리고 금년한해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많이 하나님원망하고 얼마나 많이 하나님께 대들었고 얼마나 많이 하나님이 이 온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자기가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은 멀리 떠난 자신의 처지는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내 맘대로 움직여 주시지 않는다고 마음속으로 미워할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하나님의 의로우신 성품에 비추어말하자면 우리는 2003년이라는 광야의 길에서 진멸되어야 마땅했고 이 광야에서 하나님 없이 엎드려져 죽어간 수많은 이스라엘백성들 중 한 사람처럼 우리를 다루셨어도 그분의 정당하심에는 조금도 지장이 없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원래 용서하시기를 즐겨하시는 분이시기에 지금도 보좌우편에서 당신의 택한 자녀들을 위해서 쉬지 않고 기도하시는 아들의 중보의기도로 말미암아 우리들이 용서받을 수 없는 흉악한 죄를 용서받았고 베푸실 필요가 없는 그 큰 긍휼과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받으면서 한해를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겨울에는 하나님을 원망했으나 이제 이 가을에는 주님께 감사하게 되었고 여름에는 하나님을 향해 반감을 품은사람들이었지만 이 가을에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승복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주님을 거스리고 하나님 없이 살아보려고 애쓴 시절도 있었으나 이제 한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모두 꼭 끌어안고 계시는 하나님의 품에서 몸부림치던 것이었음을 깨닫고 우리의 반역보다 우리의 반역을 능가하고 우리의 불순종을 초월하는 사로잡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이 시간에도 조용히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수요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한 해 동안 우리의 불순종이 얼마나 극심했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들을 스스로 부패하는 기회로 삼으면서 살았던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도 있었고 시련 속에서 아파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두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추운겨울도 지나가고 모진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도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주님 앞에 돌아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자비하심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정말 더 이상 내안에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신 목적대로 살 의지조차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셔서 돌이킬 기회를 허락하시고 그래서 오늘도 여기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이 자체만으로도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들이 진멸되지 아니하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성실하심의 표징이고, 살아있는 한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지 않습니까?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용서해주셨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이 회개하고 자신에게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더 큰 은혜를 예비하고 계십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어떤 사람들이 많이 경험했습니까? 그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을 어떤 사람들이 많이 경험했습니까? 하나님 앞에 용서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경험했고 불신실하게 살다가 하나님 앞에 회개한 사람들이야말로 여호와의 신실하심을 가장 많이 체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믿지 못하는 여러분들에게 당신이 얼마나 선하신 분이시고 얼마나 인자하신 분이신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한 해 동안 여러분들의 범죄를 다루셨고 그래서 하나님이 고난을 허락하셨습니다만 그러나 마지막 남은 것은 형벌이아니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이고 계속되는 하나님의 인도였으니 여러분들이 그 은혜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 추수감사절에 다른 것 말고 지상최대의 선물은 여러분의 마음 강퍅하기 그지없이 얼어붙었던 마음을 깨트리고 그 은혜위에 녹아진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여러분들의 마음을 드릴 때에 그 마음의 열매가 하나님에게는 곡식과 알곡, 나무의 수많은 열매보다도 더 커다란 기쁨이 되지 않겠습니까?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믿음으로 살려고 애를 썼던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 평탄한길을 걸어온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요즈음에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인생길은 어차피 고통과 떨어질 수 없는 길이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하나님을 멀리 떠날 때에는 죄 때문에 그렇게 괴로워했습니다. 하나님을 친근히 하고 은혜 받으면서 살 때에는 또 자신의 사명과선한일에 대한 가슴 졸이는 고통이 있습니다. 사람이 은혜가 떨어지면 창조목적으로 이탈되기 때문에 그런 아픔은 없습니다. 자기가 불순종하고 타락의 길을 걸어가면서 변화되지 못한 영혼 때문에 가슴아파하고 눈물 흘리는 사람 보셨습니까?
그렇게 불순종하고 살 때에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고통입니다 양심이 자기를 찌르기 때문입니다 율법도 우리를 송사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나오면 그렇게 너무 괴로운 것입니다. 더구나 모든 성도들이 은혜를 받는 때에는 더 괴로운 것입니다 왜냐면 참다운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가 자신이 옳지 않은 자리에 있다. 라고 하는 것을 지적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가 충만해져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오면 또 다른 고통이 있습니다. 자기가 충분히 변화되고 나니까 그다음에는 변화되지 못한 영혼들이 떠올라서 내가 은혜 밖에서 살 때에는 우리 가족이 예수를 믿든 말든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변화되고 나니까 신앙생활 안하는 아버지가 너무 불쌍하고 교회 다니면서도 모임을 즐거워하며 기다리는 엄마가 불쌍하고 회심하지 못한 체 놀러 다니듯이 교회 다니는 동생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생명이 없음을 알게 되어서 너무 불쌍합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오고 가슴이 아픈 것입니다 그러니까 은혜가 떨어져도 아프고 은혜가 임해도 아픕니다. 결국은 고통이 가실 새가 없는 것이 이 세상에서의 신자의 삶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 세상에서 많은 즐거움이 있어도 하늘나라에 그 안식과 기쁨에는 비교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고통 받을 때에는 고통만 있고 위로가 없습니다. 그런데 은혜가운데로 돌아와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애매히 고난을 받을 때에는 그 고난 속에서 예수님이 현재적으로 내안에서 죽어 가시는 것을 경험하면 또 현재적으로 예수그리스도께서 내안에서 살아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고난이 우리로 하여금 예수그리스도를 더욱 닮게 만들고 그 예수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만들어서 그의 부활의 능력과 고난에 참여함이 무엇인지를 경험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위로가 정말 크고 놀랍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한 해 동안 정말 게으르고 나태하게 살아온 사람들도 없지 않지만 여러분 가운데 상당수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기위해 애쓰면서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돌이켜보면 주님의 그 사명을 감당하기위해서 흘린 눈물도 많고 희생도 있었지만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큰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베푸신 큰 위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혼자 힘겹게 이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될 때 그래서 우리의 인내가 끝날 때쯤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렇게 외롭게 자기의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분투하는 우리들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홀로 두신 것이 아니고 지금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서 아파하고 고통당하는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계시다. 라고 하는 사실을 수시로 보여주셨기 때문에 그 위로가 우리로 하여금 고난을 이기게 하였고 시련 속에서도 시련보다도 더 큰 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불철주야 자기를 바치며 헌신적인 섬김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도 여호와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찬송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한 고난은 장차 받을 그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고 또한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지금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하나님의 그 위로에 비교하더라도 우리의 고난은 너무 작았습니다.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살지 않는 것은 아니고 주님을 위해서 끊임없이 살려고 하지만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산 것은 너무나 작은 분량인데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를 향해 베푸신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그 은혜는 너무나 크다는 것을 우리들이 체험하게 되고 또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복잡하고 고난 받는 이 현실을 주목하지 말고 한번 눈을 들어 굽이치는 일련의 물결 속에서 그리고 굽이치는 우리일생전체의 물결을 통해서 변하지 않는 도도한 하나님의 섭리로 끊임없이 불순종하는 우리들을 창조와구속의 계획을 따라 살게 하시고 싶으셨던 하나님의 그 크고 놀라운 계획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 은혜와 사랑을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랑과 은혜 때문에 진멸되지 않고 오늘도 하나님 앞에 살아서 소망을 얻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주님 안에서 누리는 그 안식이 있기 때문에 고난과 역경으로 가득 찬 일년을 걸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고난을 생각하는 대신에 우리를 부르신 그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에 합당한 영광을 돌려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서 더 많이 아파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이제껏 까지 끊어놓을 수 없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매순간 인도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우리도 인도하시고 심지어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어둠 가운데 있는 우리들도 짓밟지 않으시고 쓰러진 우리를 일으켜 세우셔서 다시 광야의 길을 걸어가게 하셨습니까? 왜 우리를 그 많은 무책임과 많은 불성실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도움이 별로 되지 않는 인생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살아서 우리들이 2003년도에 추수감사절을 바라보게 만드신 것입니까? 아직까지도 우리는 우리자신도 우리인생에 대해 기대하지 않을 때가 많지만 하나님은 아직까지도 우리를 통해서 이루고 싶으셨던 일이 있었고 우리를 통해서 여전히 감당하기 원하시는 사명이 있기 때문에 오늘도 여기에 살려두시고 많은 죄와 허물 시련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또 새로운 한해를 넘기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이감사절에 우리는 두 가지를 새롭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실한 감사입니다 그래서 나의 나 된 모든 것이 주의 은혜라 잘했던 일은 모두 잊어버리고 주님 앞에 잘못했던 범죄 게을렀던 우리의 악함 주님께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우리의 불성실함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며 우리들이 이 절기를 지나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무가치함과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베푸신 그 은혜의 크심을 동시에 생각하며 주님이 우리를 인도하신 그 한 해 동안 내내 감사하고 어떻게 하던지 이감사가 우리의 마음속에 우러나오는 감사가 되어서 무딘 우리의 마음을 그 사랑에 전율하게 만들고 무디어진 우리의 심령이 우리같이 쓸모없는 죄인을 향한 부당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인하여 감격으로 떨도록 그렇게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장차 나를 본향에 인도하시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그렇게 주님 앞에 감사하며 그 감사에 정말 가슴 떨리는 전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감사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는 이절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두 번째로는 주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까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일년이라고 하는 말할 수 없는 고난의 세월 속에서 우리를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이제껏 이끄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 우리인간들은 인간의 뜻을 거슬러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참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을 거스리는 죄인들을 향해 한없이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그런 크신 자비하심과 인자하심을 바라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엇을 생각해야할지 한번 말해보십시오
성경을 보십시오. 주께로부터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받은 사람들 죄인에게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사도바울이 전에는 핍박자요 포행자요 동족을 박해한 스데반을 죽는데 까지 내어버린 그런 죄인중의 괴수였기 때문에 그를 향해 베푸신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를 경험하고 난 다음에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결심은 무엇이었습니까? 이제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 하는 고백 이었습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나니 우리 중에 누구도 자기를 위하여 사는 사람이 없고 우리는 오직주의 것이라는 고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숨이 붙어있는 날 동안 숨질 때까지 주님이 나를 창조하신 목적 나를 구원하신 계획이 다른 자리가 아니라 섭리 속에서 나를 여기에 세워두신 그 뜻을 이루면서 살아야겠다. 라고 하는 아름다운헌신의 다짐이야말로 주님의 은혜의 깊이와 넓이를 아는 사람이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얼마나 가슴 벅찬 일입니까 우리같이 쓸모없는 죄인들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위해 살 기회를 얻었고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고도 끝없이 범죄하고 미끄러져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죄도 서슴지 않았던 우리들을 망가진 채로 버리지 않으시고 그 피로 씻고 그의 찢으신 살로 우리를 고치셨습니다. 한번 망가진 우리들을 그냥 버리지 않고 다시 고쳐서 사용하시고 싶으셨습니다. 그 크신 인내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었고 그 오래 참으시는 사랑 때문에 우리를 하나님께서 여전히 여기에 세워두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감사절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깊은 감사와함께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인생의 길을 사는 날 동안 정말 주님이 보시기에 진실한 신자 그리고 세상에 모든 사람이 다 떠나도 내게 맡겨진 그 사명의 자리에서 나를 용서하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깊이 새기며 사나죽으나 그리스도예수 의 십자가를 붙드는 그런 사람들이 되는 것이 우리들이 결단해야할 또 하나의 제목인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죄 용서함을 받은 후에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에 얼마나 감격했습니까?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하신 하나님의 넓은 사랑에 우리들이 얼마나 눈물을 흘렸습니까? 그 후에 우리들이 흔들리지 않고 외길을 걸어와서 여기까지 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중 아무도 그렇게 견고하게 살아온 사람은 없습니다.
때리시고 싸매시며 찢으시고 어루만지시는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힘입으면서 시시때때로 사명을 잃어버리고 갈지자로 방황하는 우리들을 여기까지 이끌어오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의 승리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은총의 승리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존재그자체가 빚 덩어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빚 하나님의 은혜의 빚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의 빚진 삶입니다. 그래서 이 큰사랑을 힘입으면서 감사하고 이제는 우리 중 아무도 나는 내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같이 쓸모없는 죄인들에게 우리같이 더러운 죄인들을 건져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주님의 교회에 한구석에서 조국교회의 한 모퉁이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오직 하나님이 나를 거기 세워주신 것 때문에 중심을 드려 헌신하고 마음을 바쳐 충성하며 나 같은 죄인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할 수 있다면 하나님 앞에 그 사람의 인생은 결코 작은 인생일수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주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며 주님께 진 그 사랑과 은혜의 빚을 사명으로 갚아드리는 그런 성도들이 되도록 이감사절에 깊이 결단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가장 감사할 제목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6:17-18)
꼭 감사절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말 한해를 돌아보면 주님이 은혜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들이 늘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은 잃어버릴 때까지 그것을 고마움을 잘 모릅니다. 건강을 잃어버리고 나면 옛날에 한번도 감사해본 적이 없는 내 건강이 이렇게 큰 감사의 제목이구나. 깨닫게 됩니다.
또 보다 더 많은 물질이 없어서 평화로운 환경에도 감사하지 못하고 살던 사람은 경제적으로 쪼들려보면 그래도 옛날에 넉넉한 환경은 아니더라도 평안하게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 물질을 누리면서 산 것도 하나님의 큰 은혜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명예를 잃고 수치를 당해본 사람들은 비로소 많은 사람들에게 존중히 여김을 받으면서 적절한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이 세상에 있는 어떤 재산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라고 하는 것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깨닫게 됩니다.
그만큼 우리는 현재적으로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보다는 아직 누리지 못한 것들에 대한 불만 속에서 살기 쉬운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욕망에 끝없음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만족을 모르며 탐욕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감사가 없고 불평과 불만만이 있습니다만 자족할줄 아는 만족이 있는 사람들은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 넘쳐납니다.
한해를 돌이켜볼 때에도 정말 감사한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작은 어려움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국가적으로 한 해 동안 참 감사한 일이 많았습니다. 사소한 어려움들이야 있었지만 민족이 큰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 그래도 하나님의 보호 속에서 한 해 동안 살아왔습니다.
특별히 저는 남북이 예전에 냉전의 시대를 접고 이렇게 활발하게 오고가고 하는 것을 보면서 참 마음속으로 하나님 앞에 감사했습니다. 내 동포, 내 형제들인데 전쟁과 갈등의 소지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비교적 자유롭게 오고가면서 사람들이, 동족이 교류한다는 것, 너무나 감사한 한 해였습니다.
교회적으로도 한해를 새롭게 시작하면서 새로 이사 온 교회에 선교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그리고 아직까지도 잘 갖추어지지 않은 모든 것 속에서 부채를 짊어지고 참 많은 근심과 걱정이 있었습니다만 그러나 돌아보고 나면 한 해 동안 주님이 채워주신 은혜가 참 감사합니다. 뒤로 미끄러지고 어두움 속에서 가슴아파하는 지체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고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할퀴지만 그러나 미끄러져서 가슴아파하던 지체들보다는 더 많은 지체들이 주님을 새롭게 만나고 그리고 오랫동안 정체되었던 것에서 깨어나고 새롭게 말씀을 붙들고 거룩한 성화의 길을 가는 성도들을 보면서 우리들이 한 것은 정말 티끌과 같은 것이었지만 주님이 베풀어주신 은혜가 참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째든 오늘 아침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계단을 내려오면서 금년은 내 생애 최고로 감사한 한해였구나. 더욱이 일년 동안 영혼의 깊은 어두움 속에서 어찌할 수 없는 죄 속에서 용서받지 못하고 원인도 알지 못하는 침체 속에서 고통 하다가 어두움을 헤치고 주의 진리로 말미암아 빛 가운데로 나아오게 된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도 감회가 깊은 감사절이 될 것입니다.
시인 다윗이 고백했듯이 자신의 영혼을 소생시켜주셨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일평생 목자로 모시고 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처럼 또한 우리에게 주신 많은 은혜 가운데 특별히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켜주신 그 하나님의 은총은 이루 비할 대 없이 큰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 각자의 삶 속에도 지난 일년 동안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이고 그 속에서 시시때때로 도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면서 여러분도 살아왔고 저도 살아왔습니다. 아마 우리가 밤을 새워서 마주앉아 금년 한 해 동안 우리와 그리고 우리의 지체들, 교회와 그리고 이 민족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려도 아마 다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만입이 있어도 주님의 그 은혜를 다 찬송할 수 없고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삼아 글을 써도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그 고귀한 은총을 다 기록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살아야지 됩니다. 아주 작은 것에도 주님께 깊이 감사하며 그 감사 속에서 영혼이 소생합니다. 여러분도 살다가 그런 적이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캄캄하고 어두운 것 같았는데 어느 한순간 생각을 바꾸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나니까 새 힘이 솟게 됩니다. 감사에는 그렇게 우리의 마음의 틀을 고치는 놀라운 영적인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가 참 크고 놀라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는 한 가지 은혜에 기초하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우리가 구원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약속된 영생을 누리게 되었고 그 영생 안에서 모든 것을 자기의 자녀들에게 후히 주시고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서 우리들이 한 해 동안을 살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 성경에서 사도 바울이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전에는 죄의 종이었더니 이제는 의에 종이 되었느니라.” 예전에는 죄의 종이었더니 이제 교훈의 도를 받고 그 본을 순종함으로 받아들여서 죄의 종이었던 사람들이 의의 종으로 변화되게 되었습니다.
구원받기 전의 우리의 삶과 구원받은 이후의 우리의 삶을 한번 대조해보십시오. 예전에는 우리가 죄의 종이었습니다. 죄의 종으로서 일생을 살았는데 이것은 거의 숙명적인 것이었습니다. 신분도 죄의 종이었고, 그리고 죄지은 자로 태어났고, 상태도 그 속에 이 죄의 강력한 본성을 지녀서 도저히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갈 수가 없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죄의 종으로 살아가면서 이 세상의 즐거움을 맛보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일생을 죄에 매여 종노릇하는 그 복종의 삶 속에 주어지는 삯에 불과했습니다. 그 삯은 바로 잠시 느끼는 이 세상에서의 즐거움이지만 그 즐거움도 사실은 죄지음으로서 얻는 즐거움이었고 그 즐거움 속에서 사람은 점점 더 사망이 자신 속에서 역사하는 불행한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은 그 사망 속에서 죄의 종이 되어서 하나님이 자기를 창조하신 신분을 찾아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고귀하게 창조되었는지 한번 보십시오. 천사들은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의 수종을 들고 미구에 들어갈 성도들의 수종을 드는 존재들이었지만 그러나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셔서 온 세계를 하나님의 대리자로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천사가 그 신분에 있어서 비교가 안 됩니다. 그런 아름다운 지위를 주셨는데 그 훌륭한 지위를 내팽개치고 죄의 종으로 살아가고 창조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던 삶이 우리의 옛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우리들이 구원받고 난 후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부족하지만 창조주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평생 살면서 그 창조주 하나님을 잘 섬길 때도 있고 못 섬길 때도 있지만 그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그 지식은 결코 사라지거나 없어질 수 있는 그런 지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창조주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마음에 있는 소원은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이 나를 이 세상에 창조하신 그 목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죽으신 그 구속의 목적을 따라서 사는 것이 우리의 간절한 소원이 되었습니다. 예전의 삶이 죄에 매어 짐승과 같은 삶이었다면 이제는 온전한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서 살고 싶어 하는 그런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가운데 누리게 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특권들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이 세상에서는 이 세상의 자원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행복해보려고 애를 쓰면서 살아갑니다만 그러나 역설적인 것은 세상의 자원을 가지고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하니까 세상의 자원을 많이 소유하면 그 세상의 자원이 죽어있는 영혼의 생명을 줄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 세상에 있는 자원을 가지고 하면 뭔가 잘사는 것 같은데 또 한편으로는 죽음이 더 크게 역사합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들이 경제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던 옛날에는 삶이 얼마나 불편했습니까? 밤만 되면 모두 불 끄고 자야지 되고 뭐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할 수가 없고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갈수가 없고 뭐 뜻있는 일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놀랍게 문명이 발달해서 몇 시간 만에 사람을 수천 키로밖에 데려다주고 그리고 또 원하는 것만큼 좋은 문명에 시설의 도움을 받으며 일할 수 있게 되었고 예전보다 사람들은 더 많이 일할 수 있게 되었고 또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동안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소비가 늘어나니까 공해가 생겨났습니다. 빨리 빨리 달리니까 교통사고로 더 빨리빨리 부딪혀서 죽는 사람도 생겨났습니다. 이런 일들이 항상 이 세상에서는 함께 일어납니다.
그러나 하늘자원을 힘입어서 살려고 하니까 주님이 우리 안에 영생을 주시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이 세상을 영생을 통해 우리에게 공급해주신 하늘자원을 통해서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넘어설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주님의 은혜로 넘어서고 고난을 자신의 힘으로 인내할 수 없지만 신앙의 힘으로 인내하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주님이 내게 주신 참 놀라운 은혜로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고 그들을 불쌍히 여길 수 있는 마음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구원을 통해 온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구원이 가능하게 되었습니까? 물론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구원을 주셨지만 만약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지 아니하셨더라면 아마 결코 우리가 믿을 수 없었고 믿어도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약속대로 우리에게 오셔서 구원받을 이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지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가지고 계신 그 죄에 대한 진노를 담당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었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은혜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 감사할 일도 많고 주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하나도 없지만 그 모든 감사한 길과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위해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을 원천으로 해서 흘러나온 것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일평생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어도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만약에 내가 구원받지 못했더라면 이 세상에서 정말 황제와 같은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생명 없는 삶이오, 마지막에 그렇게 죄 가운데 산 그 삶에 대해서 영원한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죽으신 그 구속의 공로가 있었기 때문에 전에는 죄의 종이었으나 이제는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주님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고난이 오고 불만족스러운 일이 일어날 때에도 이 벌레 같은 죄인을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피 흘려 죽으심으로 구원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마다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이나 불만족들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끊임없는 회고의 삶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기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십자가를 보고 자기의 원래의 정체가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신 그 희생의 흔적을 보면서 오늘 하나님 앞에 받고 있는 이 모든 대우가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기초였다고 하는 사실을 깊이 자각하는 그런 회고가 필요합니다. 그런 영망적인 회고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삶이 무엇을 전망하며 살아야 되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회고하는 은혜를 통해서 나 같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아무 것도 아니고 오로지 용서받은 죄인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수감사절 때가 되면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추수철에 처음 거둔 곡식 단을 가지고 주님께 감사하면서 한 첫 번째 원시신앙고백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우리는 원래 유리한 아람백성들이었더니, 원래 이스라엘은 유리하는 아람백성들이었는데 그때에 주님이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이스라엘을 선택하셔서 그들에게 구원의 놀라운 은혜를 베푸시고 하나님과 특별관계를 맺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께로부터 얻은 이 땅에서 농사 진 첫 수확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항상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은 현재에 골몰하거나 미래를 꿈꿈으로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위대한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살았던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회고하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뒤에 분명하게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기를 위해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안 사람들이 앞에 있는 푯대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 달려간다.” 라고 말할 때 그에게는 뒤에 있는 푯대도 있었으니 죄인 중에 괴수인 자기를 구원하기 위해서 만세전에 자기를 택하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인생에 나타나셔서 자기를 구원하셨다고 하는 것, 그리고 성경대로 자기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죽으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할지가 목표가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이 오고 어려움이 올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고난을 당하신 것을 생각하며 이길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보면서 우리는 단 한점도 그렇게 하나님이신 그분이 오셔서 우리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야 했을 만큼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십자가 앞에서 자기에게 미친 하나님의 모든 사랑이 부당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무엇 때문에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시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셨겠습니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날마다 보면서 결코 우리의 목적을 따라서 살수 없는 문제들이고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보면서 나는 아무 것도 아니고 지금 내가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일뿐이라고 말하게 하시려고 주님이 우리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만사가 크게 보이고 자신의 욕망이 중요하게 생각될수록 그리스도는 작아 보이고 하나님은 사소하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모두 창조의 중심에 목적에서 하나님을 밀쳐버리는 불신앙들입니다. 그러나 어느 한순간 깊이 회개하고,
이 벌래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깊이 깨닫게 될 때 예수님이 크게 보이고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나의 욕망과 그리고 육체의 욕심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는 그렇게 우리를 하나님이 구원해주신 것에 대해서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으셨지만 그 죽으심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건만 아직까지도 구원으로 돌아오지 않는 택한 백성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고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는 그 죄악 된 삶을 청산하고 그리스도를 통해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도록 그래서 주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찬란하게 영광의 불빛으로 밝히는 사람들이 되도록 부르시는 이들이 얼마나 많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부르시는 이 아름다운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슬픕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으셨건만 너무나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생명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는 것,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우리밖에는 아직까지도 내가 인도해야 할양들이 많다고 탄식하신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고 희어져 추수하게 된 이 세상에 사랑하는 제자들을 사도 삼으셔서 보내셨던 이유도 바로 그 영혼들에 대한 말할 수 없는 눈물 때문이었습니다.
몇 주 전에도 제가 중국 이야기를 잠깐 했습니다만 나는 여러분들이 모두 중국으로 한번씩 갔다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나는 신앙생활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을 자주 가시는 어느 목사님을 만나서 자기가 측근에 알고 있는 장로님 한분이 상처를 하셨습니다. 사모님이 먼저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두 분이서 금술이 좋고 믿음도 좋았는데 사모님이 아직 연세가 있으신데 하나님이 데리고 가셔서 상실감 속에서 너무너무 괴로워하고 일년 이상을 그 영혼의 상처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누가 와서 뭐라고 위로를 해도 아내가 사라진 그 허전함과 상처를 달래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중국을 보내드렸답니다. 중국에 가서 그 오지에서 중국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으면서 소망을 갖고 살아가는지를 보면서 단숨에 회복이 되었습니다. 돌아와서 열심히 선교하고 봉사하는 장로님이 되었습니다.
나는 모두 갔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한번 갔다 올 때마다 그렇게 눈물이 날 수가 없습니다. 두 가지 때문에 눈물이 납니다. 첫 번째는 어쩜 그렇게 그 영혼들이 복음에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만난 젊은이는 27살인데 예수 믿은 지 3년밖에 안 되었는데 목회를 하는데 교인이 얼마냐고 하니까 만 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요만한 말씀의 쪼가리를 주어도 그것을 받아먹고 살려고 하는 영혼들이 가난한 사람들만큼이나 많습니다. 공산주의로 채울 수 없었던 영혼의 갈증, 무엇으로 채울 수 없었던 그 영혼의 갈증,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심이라”
그 26-28살 된 이제 예수 믿은 지 3년 되었으면 열린 교회에서는 새가족반 수준인데 얼마나 그렇게 잘 가르치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드러내서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런 영혼들이 얼마나 많이 흩어져 있는지 그래서 이것은 정말 비밀인데 어떤 때는 진짜 선교사로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내가 정말 저렇게 유리하고 교육도 받지 못하고 물질의 해택도 받지 못하는 흩어진 수많은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해준다면 저들이 얼마나 행복해할까? 그런 영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누군가는 가야지 됩니다. 생각하니까 눈물이 나고 또 하나 여러분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이 땅에는 한국교회처럼 그래도 신앙에 열심이 있고 목회자들이 열심히 가르치고 섬기는 그런 나라도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국민소득은 만 불이 조금 넘고 땅덩어리는 손바닥만 해도 이게 마지막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한국교회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전 세계의 마지막 복음의 불씨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도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그분 앞에서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어도 너무 배부른 것처럼 아랑곳하지 않는 영혼들을 볼 때 그래서 너무 슬픕니다. 그게 무엇인가 하면 감사입니다. 나는 정말 여러분 모두 한번 데리고 가고 싶습니다. 진짜 돈이 없으면 대출을 얻어서라도 가십시오. 한번 가서 진짜 얼마나 영혼들이 그 핍박받고 고난 받는 상황 속에서 열악한 속에서 예수 믿고 이렇게 살아가는지 한번 경험해보면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못하고 예수님 나를 위해 죽으신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는 이 삶이 정말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삶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이 하고 있는 고민들은 그곳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고민에 비하면 너무 사치스런 고민입니다. 그런 수많은 영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가 오늘 감사하는 게 무엇인가 하면 그 교훈의 본을 전해준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전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복음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으며 알지 못하는 복음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으며 믿지 않으면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한해 동 안에도 많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마음을 보이시고 어떻게 하든지 우리가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우리를 돌아가게 하시고 싶으셨던 그 창조의 아름다운 목적으로 우리를 돌려놓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정말 불쌍한 영혼 중에 하나는 죄 가운데 살고 싶지 않고 어두움을 뿌리치고 빛 가운데 살고 싶은데 그 길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 그 길이 무엇인지 알았지만 그 길대로 순종하며 살수 있는 능력이 어디서부터 오는지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 제일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그 어두움 가운데서 헤어 나와 빛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는지 하나님의 마음도 보여주시고 길도 보여주십니다.
저 개인적으로 감사한 것이 올 한 해 동안 하나님이 여러분이 받은 은혜와는 비교될 수 없도록 말씀에 많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매일 예배를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소개할 게 많습니다. 일주일 예배를 드리고 헤어지면 일주일 동안 기다려야지 또 다음 설교를 해야 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고통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변화되지 않은 여러분들의 영혼을 보면서 기도하면 여러분들을 고칠 수 있는 말씀들을 어김없이 그렇게 은혜로 주셨습니다. 그 말씀으로 먼저 하나님이 나를 고치시고 또 여러분도 고치셨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서 저의 영혼에 많은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추수감사예배를 드리고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감사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관데 쓰레기 같은 죄인들, 그리고 한 것이라고는 주님의 창조의 세계를 망가트리고 자신들이 죄인인 것처럼 하나님을 원수 삼으며 살아온 것밖에는 한 것이 없었는데 우리에게 복음의 도를 들려주시고 믿고 싶어도 전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어떻게 어두움 속에서 빛으로 나아와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허다한데 우리가 무엇인관데 우리에게 이 진리를 보이시고 우리에게 이 복음을 알게 하셨을까요? 우리가 이 은혜의 복음에서 소외된 사람들보다 더 의로운 것도 아니고 남다른 공로가 있는 것도 아닌데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우리가 이 복음에 찬란한 빛 아래 살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전에는 감사절에 이 은혜를 감사하면서 아직까지도 이 복음과 화해하지 못한 사람들, 우리에게 교훈의 본을 주셨지만 그 교훈의 본을 통해서 창조주 하나님께 돌아가고 빛줄기처럼 쏟아지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수 있는 그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어두움 속에서 흐느끼고 있는 그런 지체를, 죄인들을 봅니다.
어두움의 밝은 빛을 비쳐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지라
하나님의 강력한 성령의 역사로 섬기고 봉사해도 미치지 않는 여러분들, 지체들 구속구석까지 주의 이 복음의 교훈의 본이 새겨져서 깊은 회개와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속하신 사랑으로 돌아온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냉담하게 살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 같은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아무 가치도 없는 우리들에게 이 아름다운 영생을 주셨는데 우리가 어떻게 냉담하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 좋으신 하나님께 예배하고 이분의 이름을 높여드리는데 어떻게 우리가 차가울 수가 있겠습니까? 쏟아지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이 더러운 죄인을 용서하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그렇게 나 같은 죄인을 위해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의 구원이 있음에도 감사할 줄 모르는 자신 때문에 회개하든지 둘 중의 하나이어야지 될 것입니다.
교훈의 본을 주님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교훈의 본을 받았기 때문에 두 번째로 우리는 순종할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멀리 떠나 구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두움 가운데 살았을 때도 우리가 순종을 통해서 원래 의에 상태로 돌아갔고 우리의 구원이 곧 그 순종을 가져왔습니다. 구원받은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심으로서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날마다 날마다 하나님이 그렇게 살게 하셨습니다. 구원받았다고 모두 다 저절로 잘사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에 쓴 뿌리가 나고 주님을 거역할 때 어쩌면 그렇게 하나님은 어김없이 찾아오셔서 단단한 우리의 마음을 녹이시고 식어진 우리의 마음에 은혜의 불을 붙이셨습니다. 참회의 눈물과 함께 다시 살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다시 찾은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다시 찾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 것도 없어도 우리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모두 있는 것이 아닙니까? 주님이 내 안에 계셔서 우리의 전부가 되시고 그리고 우리도 주님께 전부가 된 것처럼 주님도 우리의 전부가 되어서 그 아름다운 영생의 연합 속에서 살고 싶어 하십니다. 감사하십시오. 그래서 환난과 시련 속에서도 시련의 크기보다도 더 큰 예수의 사랑, 내 안에 베푸신 이 놀라운 구원의 사랑, 아무 가치가 없고 쓸모없는 죄인들이 완고한 고집이 있어도 그 고집 때문에 구원하신 하나님의 계획에서 영원히 도망치지 못하게 사랑의 줄로 우리를 묶으시는 은혜로 인해 감사하십시오.
그래서 이제는 좀 그 은혜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갔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혼내지 않아도 우리가 그 사랑의 줄에 붙들려 매어서 그래서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순종하고 날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고난당하신 그것을 빚으로 여기며 그 십자가 안에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고백하며 예수 죽인 것을 짊어지고 살아서 그래서 우리 안에 예수의 생명이 풍부하게 나타나서 그 생명으로 고난도 이기고 시련도 이기고 우리보다도 더 불행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우리의 소유를 나누어주고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모본을 따라서 주님이 여기에 계셨더라면 사셨을 그런 삶들을 우리들이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4. 회복의 은혜에 감사함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하심이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스올에서 건지셨음이니이다(시86:13)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주님께 많은 것들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많은 것들을 받고 있기 보다는 더 정직하게 말하면 지금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이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이고 모두 주님의 선물입니다 그렇게 볼 때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가지고 있는 것들을 누리고 있는 우리 자신조차도 정말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살면서 우리들은 끊임없이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곤궁한 사람에게는 물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빼놓지 말고 기도해 주어야할 제목하나가 경제적으로 고통 받는 지체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하며 특별히 잘살다가 조금 덜 잘살게 된 사람들을 위해서는 기도를 조금만 해주어도 되는데 부채에 허덕이는 사람들 그래서 채무 때문에 고통 받는 지체들을 위해서는 기도를 많이 해주어야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질병으로 인해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정말 희망이 있다면 다만 며칠이라도 건강한 몸이 되어서 살다가 죽는, 저는 며칠 전에도 아침에 일어나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한번 아침에 일어났을 때 상쾌한 아침을 경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경험을 못한 지가 벌써 15년이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언제나 상쾌했습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그런 상쾌한 경험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세월 병상에서 시달리고 가족들을 경제적으로 곤궁하게 하고 할 때에는 소원이 병 낫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암에 걸려 돌아가셨는데 늘 하는 얘기가 동대문이고 남대문이고 지게로 벌어먹고 살아도 좋으니까 10년살 수 있는 거 5년만 살아도 좋으니까 건강하게 살다가 죽어봤으면 원이 없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 뜻을 못 이루고 죽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건강이 무엇보다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런 필요한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기도의 제목이 되고 또 하나님께로부터 그것을 받을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면 그 중 어떤 것들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을 해주시기도 하지만 그 주신 것에 대한 깊은 감사 그것이 얼마나 오래 가는 것 같습니까 제가 느낀 바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감격이 사라집니다. 예를 들자면 채무에 시달리면서 하나님 앞에 빚을 갚게 해달라고 기도를 5년 동안 했는데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갚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응답해주셔서 빚을 갚고 난 감격은 1개월도 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좁은 집에 살아서 늘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새집 하나달라고 기도를 3년을 해서 집을 하나 얻었는데 심방가면 하나님의 은혜로 집을 얻었다고 눈물이 글썽거렸는데 석 달도 지나기 전에 이미 감사는 사라지고 불평이 생겨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이 영국속담에 일년이 행복하려거든 집을 사고 한달이 행복하려거든 말을 사고 일주일이 행복하려거든 결혼을 하고 한나절이 행복하려거든 면도를 하라는 얘기인데 인간이 결핍 속에서는 고통 받아도 막상 그것들이 채워졌을 때의 그 감격과 감사와 기쁨을 얼마나 쉽게 잊어버리는가 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부패의 본성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집주시고 좋은 차주시고 하는 이런 모든 것들이 주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감격은 짧아도 그렇게 짧게 생각하는 것이 배은망덕의 본성임에도 불구하고 그 배은망덕한 인간에게조차도 비교적 오래도록 남는 하나님의 그 섭리는 하나님이 곤고한 영혼을 건져주셨을 때입니다 그래서 집을 사서 감격을 하고 눈물을 흘린 감격은 몇 달 안가도 어두움에 빛을 비춰 주셔서 거기에서 건져주신 것은 너무 감사하고 비교적 부패한 죄인들에게도 오래 갑니다
또 적절하게 은혜생활을 하면 그 감격이 굉장히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좁은 집에 살고 배우지 못하고 결핍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불편할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영혼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끊어진 것은 불편한 상태가 아닌 고통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침체 속에서 죄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져서 영혼이 진토에 붙은 것 같은 깊은 영혼의 어두움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제 말이 어떤 뜻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시인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고 주님의 이름을 높이고 싶었습니다. 그이 유는 하나님이 자신의 영혼을 깊은 스올에서 소생시키시고 건져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스올 이라고 하는 것은 히브리말을 그냥 적어 놓은 것인데 스올이란 여러 가지의미가 있는데 여기에서는 깊은 음부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이 스올이란 나중에 신약으로 연결되면서 지옥의 개념으로 발전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사람이 죽어서 가는 그런 상태를 스올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죽어서 가는 그 상태는 생명의 모든 소망이 끊어지고 깊은 고통 속에 있는 그런 상태입니다 생명이 없고 하나님과의 어떤 은혜의 감격이나 소망도 없고 사람들이 절망적인 상태를 말할 때 스올 이라고 많이 비유 했습니다 내가 슬피 울며 음부로 내려갈까 하노라 이것은 그렇게 되면 나는 견딜 수 없이 괴롭게 되고 영혼은 아무소망도 없는 절망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런 말입니다 음부에서 부르짖나이다. 하는 모든 표현들이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음부라고만 해도이미 소망이 끊어진 절망적인 상태인데 여기에 깊은 이라는 말이 추가되므로 자기의 생애에서 만난 영혼의 깊은 어두움 중에서 매우 특별한 시기였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영혼의 깊은 절망상태 ,무엇 때문입니까 왜 하나님의 자녀이고 주님께 선택되었고 하나님과생명적인 교제를 누리고 그 유업을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어떻게 그런 깊음 속에 들어갔느냐는 것입니다 죄 때문입니다 어떻게 죄가 들어오게 되었고 하나님과의 생명적인 관계가 거의 단절된 가운데 정말 견디기 힘든 고통이 있는 어떠한 소망 살아있어야 할 어떠한 이유도 발견할 수 없는 절망스러운 영혼의 어두움의 깊은 나락 속에 떨어지게 된 경로야 우리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죄를 제외하고 는 누구의 영혼도 이런 비참한 절망으로 데려갈 수 없는 것입니다 시인이 이것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 속에서 죽음을 경험하고 절망을 경험하면서 모든 소망을 가져보려고 애를 써 봐도 어떠한 소망의 여명도 발견할 수 없고 더 이상 어떠한 소망의 여지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두움 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하나님이 건져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인이 온 마음과 영혼을 다해서 왕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렇게 우리들이 신앙생활하고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재능이나 재산이 다르고 성격도 다릅니다. 각자 하나님이 세워주신 삶의 자리도 모두 다릅니다. 어디에다 하나님이 그들을 세워주셨던지 그렇게 세워주신 자리에서 그 하나님께 정말 영광을 돌리는 사람 깊이 감사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큰집주신사람 아들 좋은 대학 들어가게 해주신 사람 그런 사람 아닙니다. 진짜 하나님이 자신의 영혼을 죄와 어두움의 구덩이에서 건져내신 것을 경험한사람 그런 사람들이 바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30편4절에서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케 하심이니다. 하나님이 깊은 죄 속에서 용서받지 못해서 곤고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살려주셨는데 그 계획은 이제는 그 죄로 말미암는 고통에서 건져주신 목적그자체가 고통을 제거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다시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자기를 선택하신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따라서 살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건져주신 것입니다 시인이 그런 영혼의 구원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미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지만 죄로 말미암아서 음부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깊은 침체 속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어떠한 도움도 끊어지고 철저하게 홀로 고립된 것 같은 비참한 상황 속으로 들어간, 자기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처절한 시기에 하나님이 그를 주님의 진리를 통해서 그 영혼을 어두움에서 건져 내셨습니다 그랬더니 이 시인이 전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그분을 찬송하면서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해 동안 주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물질적인 은혜도 너무 감사하고 환난과 어려움 속에서 막아주시고 시시때때로 우리에게 기회를 주셔서 주님섬기며 살아오게 하신 것 너무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지켜주신 모든 것들이 감사한데 우리들이 너무 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오늘아침에 설교한 주님이 당신의 외아들을 주셔서 우리 같은 쓰레기 같은 사람들을 구원하셔서 주님의 자녀 삼으셨는데도 그 구원의 감격조차도 잊으면서 살아갈 때가 많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언제 이런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격을 하나님이 회복시키셨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영혼이 진토에 붙은 것 같을 때에는 나 같은 죄인살리신 주님의 은혜가 고마울 수가 없었고 우리영혼이 깊은 침체 속에 있을 때에는 나 같은 배역 무도한 죄인을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 때문에 눈물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인이 음부에서 누가 주께 감사 하리이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영혼의 어두움 속에서 이 시인을 하나님이 건져 주신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영혼을 건져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영혼의 침체의 상태에 있을 때에는 다른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고 어떤 말로도 감사할 수 없으리만치 감사한 일들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죄로 말미암아 영혼의 깊음 속에 빠졌을 때에는 나는 감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감사할 때 감사해야 겠다. 하는 이성은 있는데 내속에서 깊이 끌어올려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죄와 감사는 공존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자체가 하나님을 거스려 기를 원하는 것이고 감사는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고백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을 따라서 살면 할 수 없이 감사해야겠다고 애를 쓰지 않아도 속에서 저절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속에 하나님께 대한 한없는 감사가 흘러나오면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 싶은 것입니다 왕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살고 싶은 간절한 소원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지금도 이 설교를 하면서 마음 아픈 것은 아직까지도 어두움 속에 있는 영혼들입니다 부분적으로는 환경 때문이겠지만 부분적으로는 우리가 그 영혼들을 잘 돌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 부분적으로 는 자신이 그 영혼의 어두움을 뿌리치고 빛 가운데 나오려고 하는 마음이 부족했기 때문이겠지만 누구 때문이든 간에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이 아직까지도 깨달음 없이 그렇게 신앙생활하면서 곤고하게 살아가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너무 무겁고 이런 저런 이유로 시험에 들고 미끄러진 지체들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에는 정말 그렇게 마음이 괴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만 두시지 않고 여러분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한 해 동안 하나님이 깊은 웅덩이와 같은 곳에서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요셉이 빠졌던 곳과 같은 웅덩이 속에서 어찌할 수 없는 그때에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그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다가오신 하나님의 일체의 자비하심 때문에 숙명처럼 갇혀 있던 영혼의 어두운구덩이에서 빠져나오게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어두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이야기를 들어보면 얼마나 행복하고 기쁜 일일까요
이 세상에서 다른 어떤 이야기보다도 그 음부에 깊은 어두움 속 절망 속에서 삶의 소망이 모두 끊어진 것 같은 상황 속에서 주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어두움과 결별하고 빛으로 나아오게 되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만큼 우리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영혼의 원기를 불러일으키고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당신의 이름으로 선택하고 당신의 아들의 이름으로 구원하신 백성들을 향한 아버지의 눈물겨운 사랑을 실감 하게하는 대목이 어디 있습니까? 수시로 우리 안에 남아있는 부패한 본성과 악 때문에 주님이 주신 놀라운 은혜에 감격들을 상실하며 산적도 많이 있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미끄러지는 것만큼이나 자주 어두움 속에 있는 우리들을 빛으로 꺼내시고 벗어날 수 없는 웅덩이와 같은 곳에서 우리를 건져 주셨습니다 영혼 속에 일어나는 깊은 고통을 하나님과 성령 그리고 자신 이외에 남이 얼마나 많이 알겠습니까? 그래서 깊은 영혼의 침체와 음부와 같은 절망의 고통 속에서 우리는 다행히도 교회를 떠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이외에는 우리에게 소망이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여주시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영혼의 회복을 경험하고 이런 하나님의 만져주시는 은혜의 역사가 끊어지지 않고 크게 혹은 작게 곤고할 때나 유혹받아서 미끄러질 때에나 형통한가운데 자만할 때에나 시시때때로 나타나셔서 우리의 영혼을 어루만지시기 때문에 거미줄 같은 믿음이나마 붙들고 금년한해도 주님 앞에서 살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 이중에서 예배드리는 어떤 분들은 금년 한해가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해인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숙명처럼 매여 살던 죄악의 어두움에서 울려 퍼지는 하나님의 복음과 복음이 두들겨 열어놓은 찬란한 은혜의 세계를 경험하고 척박하게 살아왔던 옛 삶을 청산하고 복음 안에서 죄를 죽이고 승리의 삶을 누리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체험한 사람들에게는 금년이 최고의 해가 될 것입니다 논밭에 식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외양간에 송아지가 없어도 그는 아마 기뻐 뛰며 우리 하나님을 찬송할 것입니다 매 순간마다 영혼이 약해질 때에 힘을 주시고 한번 미끄러진 사람들을 영원히 흑암에 흐느껴 울다가 인생을 마치도록 버리지 않으시고 죄를 능가하는 자비로 그들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실수와 허물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고의 적인 죄를 지으면서 그러면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사는 돌이켜 생각해봐도 우리도 용서할 수 없는 우리자신을 용서해주신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자비 그리고 그자비와 은혜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의 곤고함이 우리의 죄 때문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한번 망가진 사람들을 한번 망가졌다는 이유로 영원히 버리시는 대신 선택하신 책임을 지시고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붙드셔서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고갈 된데서 충만한 것으로 새롭게 새롭게 이끄시지 않으셨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부인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닫고 주님의 진리로부터 멀어지고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로부터 이탈한 죄인들이라 할지라도 오늘 이 설교를 듣고 주님이 얼마나 자주 일년 동안 여러분들의 영혼가까이에 다가오셔서 어두움 속에 있는 여러분들에게 빛을 주고 싶어 하고 죽음 가운데 있는 여러분들에게 생명주시기를 원하셨는지 한번 기억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렇게 쉽게 포기할 것 같습니까 자기의 외아들까지 십자가 에 못 박혀서 헤아릴 수없이 비싼 값을 주고 사셨습니다. 한 생명을 천하보다도 더 소중하게 생각하신 하나님이 우리죄인들의 생명이 천하보다 소중하다면 흠 없으신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은 얼마나 소중 하겠습니까 그 아들을 주셔서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겠습니까? 간절한 소원은 여러분모두가 그 영혼의 침체 없이 찬란한 빛 가운데서 주님이 나 같은 죄인을 십자가에 못 박아 구원하신 그 구속의 은혜에 가슴깊이 감사하며 이 벌레만도 못하고 쓰레기만도 못한 이 죄인이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나를 향해 위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내가 하나님 앞에 깨끗이 씻겨 돌아감으로서 나로 말미암아 이 창조의 세계가 찬란히 주의 신성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놀라운 지위로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 하셨습니까? 얼마나 우리에게 베푸신 그 선택의 은혜가 크고 놀라운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그런 놀라운 하늘의 계획으로 구원받고 선택받은 여러분들이 죄의 어두움 속에서 사는 것만큼 우리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대목은 없습니다. 특별히 주님이 은혜를 주셔서 말씀의 빛을 밝게 끼쳐주신 때에 어두움 속에서 사는 것은 하나님에게 있어 더더욱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캄캄한 어두운 밤길에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것도 가슴 아픈 일이지만 찬란한 빛이 비친 대낮에 눈을 감고 걸어가다 다치고 넘어지는 것은 하나님께 얼마나 더 가슴 아픈 일이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주님을 사랑한 성도들에게 가장 기쁜 양식은 무엇일까요 기름진 육선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신 한 선택한 사람, 주님께로 돌아오고 미끄러졌던 영혼들이 그 침체에서 회복되어서 절망적인 영혼의 어두움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벗어났다고 하는 소식을 듣는 것보다 기름진 양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한 해 동안 여러분들을 어두움 속에서 건져주시고 영혼의 깊은 침체에서 건져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은혜가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것임을 기억하고 영혼이 곤고할 때 그 영혼의 어두움에서 나를 건져주신 주님의 은혜를 가슴에 새기면서 미끄러지지 말고 사는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한해가 저물어가도 여전히 영혼의 침체 가운데 오늘 이 시간도 아무런 기대 없이 예배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그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모두 목회하고 주님 앞에 갔을 때에 무엇이라고 말씀드릴까요? 탐구하고 노력해서 진리를 가르쳐주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어두운 죄악의 길에서 돌이키게 하고 그러기 위해서 밤낮으로 계획을 세우고 일꾼들을 규합하고 위해서 기도해주고 했지만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가혹하리만치 긴 세월동안에 어두움 속에 살아갔고 제가 목회를 끝나고 주님 앞에 오기 직전까지 그 영혼은 여전히 어두움 속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고백을 해야 한다면 거기가 어떻게 천국이 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실까요? 아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그 영원한 생명을 마음껏 누리며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며 그 진리의 빛 가운데서 그렇게 함께 살기를 원하시는 것 말고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탐내시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주님이 탐내실 만큼 소중한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중에 누가 있겠으며 또 우리에게 빼앗아가고 싶을 정도로 하나님이 결핍을 느끼시는 분이십니까 목마른자들도 내게로 오라 주린 자들도 내게로 오라 값없이 내게 와서 마시고 먹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와서 내안에서 쉬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청을 우리들은 왜 거절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우리는 그렇게 살면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많은 길이 있는 것 같아도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한가지 길 밖에는 없습니다. 오로지 한 가지 길은 내주 되신 주를 참사랑하고 예수님이 나를 구원해놓으신 목적을 따라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가는 삶 이외에는 하나님의 자녀가 살 수 있는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을 가슴 아프게 하고 내가 얻을 수 있는 행복이 어떻게 행복일 수 있겠으며 그 결말이 정말우리에게 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생명 되신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자비로우신 분으로 느껴지고 주님이 자기를 구원하신 목적을 저버리고 죄 가운데서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살고자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너무 가혹하신 분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점에 있어서 하나님은 결코 양보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 왜 죄에 매여서 삽니까? 성령께서 오늘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를 그 모든 죄에서 자유케 하시도록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해주셔서 우리를 그 영원한 죄의 노예상태에서 해방해주시고 죄에 매여살 수밖에 없는 우리의 영혼에도 하나님께서 그 죄의 법을 끊고 자유하심을 주셨는데 우리가 왜 죄에 매여서 침체 에서 살아야 합니까? 우리가 왜 죄의 어두움 속에서 살아가야합니까 찬란한 복음의 빛을 우리에게 비춰주시고 생명 되신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하셨는데 우리가 왜 어두움 속에 그렇게 살아야 합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들고 나오는 아름드리 곡식단과 줄줄이 끌고나오는 수많은 숫 송아지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오늘 이감사절에 정말 받고 싶어 하시는 것은 여러분자신을 하나님 앞에 열매로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자신을 추수하여 여러분자신을 하나님께 열매로 드리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죄와 허물로 인해서 영혼의 깊은 침체가운데서 음부와 같은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등지고 살았던 사람들이 바로 이 수확의 계절에 손들고
주 나를 박해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선물일 것입니다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절절한 마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들이 돌아왔다는 소식보다도 죽은 줄 알았던 자식이 다시 돌아왔다는 것보다도 그 아버지에게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깊이 한 해 동안에 주님이 베푸셨던 은혜에 깊이 감사하고 아직까지도 영혼의 침체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고 그리고 마음에 감추어진 강퍅함 들과 은밀한 죄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그 자비하신 사랑 앞으로 나아와서 자신을 추수의 열매로 드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