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마음을 각성시키시는 하나님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모든 백성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들었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위임을 받아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 그 때는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이십사일이었더라”(학 1:12-15)
녹취자: 박은희
언젠가 저는 여러분에게 학개서 1장 1절부터 12절까지를 ‘지금은 하나님의 전을 돌아보아야 될 때다.’ 라는 이런 제목으로 연속해서 설교한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그 뒤편에 12절 이후부터 15절까지를 오늘 읽었습니다. 때는 우리들이 알다시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고 그리고 7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기적적으로 바사왕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여서 이전의 일어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역사 속에 베푸십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원하는 사람은 자기의 본토로 돌아가도 좋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돌아갈 뿐만 아니라, 또한 돌아가서 각 족속들이 섬기던 신을 섬기되 특별히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서 무너진 성전을 수축하라는 꿈에서나 가능한 이런 기적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바사가 오랜 동안 그 나라를 다스리면서 그 모든 지배받는 민족들을 유화시키기 위해서 종교적인 관용을 베푸는 정책의 하나로 시행되었습니다. 비록 이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오래전에 하나님께서는 고레스라는 사람이 태어날 것을 예언하시고 그가 하나님의 심부름꾼이 될 것을 역사 속에서 예언해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성전을 짓게 되었을 때에 그때에 많은 사람들이 오만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스스로 바벨론에서의 모든 삶을 포기하고 그리고 성전으로 짓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겠다고 자원했습니다. 그래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성전을 짓기 위해서 올라갔습니다. 그들은 넘치도록 헌금을 했고 또 뿐만 아니라 바사에서도 국고에서 많은 재물들을 지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질 않았습니다. 왕이 허락을 하고 백성들이 한마음이 되어도 끊임없는 투서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지으려고 하는 것들에 대한 수 없는 모의와 그다음에 악담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혔습니다. 결국은 이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다가 그만 중단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역사가 흘러가게 되었을 때에 때는 바뀌어서 다리오 왕 때가 되었습니다.
이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전을 아직까지도 건축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때에 학개라는 선지자가 나타났습니다. 이 학개는 축제 혹은 뭐라 그럴까요? 축제 하여튼 잔치 이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선지자가 나타나서 백성들에게 외치는 장면이 1장에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선지자의 외침, 그 설교의 요지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너희들이 여호와의 전 건축할 시기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 그러고 너희들이 있는데, 정말 하나님의 전 건축 할 때가 이르지 아니한 것이 아니라 너희들은 너희들 배를 불리고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성전을 돌아보는 일을 그쳤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의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학개 선지자가 심하게 성전에 대해 무관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각성을 촉구하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여튼 놀라운 일은 이 학개 선지자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외치는데 백성들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우선 이 학개 선지자가 이렇게 외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그들의 죄를 탄핵하는 그런 일들을 하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제 기뻐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황무한 채 버려두고 자신들은 판벽한 집에서 살았습니다. 여호와의 전은 아직 지어지지 않았는데 자신들은 든든하게 지은 집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았습니다. 결국 그들이 예전에 바벨론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예루살렘에 올 때는 성전하나를 지어야 되겠다는 열망가지고 올라왔지만 이제는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도 때에 따라서 처음에 좋은 결심과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망을 잃어버리고 차차 식어버리기가 쉽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한때 바벨론에서의 그 모든 생활과 그리고 오래 70년 가까이 살아왔던 선조 대대로 살아왔던 그 많은 말하자면 정착한 삶의 안일함을 모두 포기하고, 그리고 대적들의 위협과 도전들이 도사리고 있고, 수많은 헌금을 해야 하는 이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는 일을 위해서 자신을 드렸습니다. 그야말로 그들은 여호와께로부터 감동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 무리들을 감동시켰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의 신에 의해서 감동된 자들로서 예루살렘에 올라왔다고 에스라 1장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온 타오르는 열정과 그리고 마음으로 하나님의 성전만 건축될 수 있다면, 이 한 몸 초개와 같이 버려도 좋다고 생각하며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제는 여호와의 성전은 앙상한 집에만 놓여있어도 이들은 스스로 훌륭한 저택을 짓고 그 속에서 편안하게 거하는 이런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건축되지 못한 앙상한 성전을 바라볼 적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아직은 때가 아냐, 하나님이 허락을 아니하시나봐.” 하면서 사람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빙자하여 자신들의 이욕과 그리고 편안한 삶을 만족하기에 여념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각성이 필요한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그들이 자신들을 위해 살려고 애를 써도 그러나 그들은 계속 흉년을 만났고, 한재를 만났고, 그리고 열심히 일하고 애를 써도 재물이 모이지 않고, 그리고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을 해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그리고 땅은 산물을 내지 않고, 산에 곡물에 그리고 땅에 포도주에 기름에 땅에 모든 수고하는 일에 하나님의 재앙이 임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것을 모았고 집으로 가져갔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후’ 불어버리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학개 선지자는 갑자기 메시지가 변화되기 시작하더니 말하기를 “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함께 하노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어떻게 되었길래 하나님께서 흔들어서 재물이 모이지 못하게 하시고, 하늘의 이슬과 그리고 땅의 산물을 그치게 만드셔서, 산에 곡물에 포도주에 재앙이 임하게 하셨던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기뻐하지 않던 하나님이 오늘 어떻게 해서 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오늘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 하나님께서 임마누엘의 선언을 해주신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습니까? 어떻게 했길래 하나님께서 그렇게 불쾌해하고 싫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가 너희를 기뻐하노라” 하는 선언을 하시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뭔가 변화가 일어난 것은 틀림이 없죠? 아이, 그래요? 안 그래요? 변화가 일어난 것은 틀림없죠? 네, 변화가 일어난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무슨 변화가 일어났길래 하나님의 마음이 바뀌는가?
성경을 보십시오. 13절입니다. 13절을 같이 읽읍시다. 시작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명을 의지하여 백성에게 고하여 가로되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니라” 언제에? 때에. 그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명을 의지하여 백성에게 고하였습니다. 학개가 그렇게 명을 전할 때에 그때가 언제였습니까? 12절을 보십시오.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바 모든 백성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청종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을 인함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백성들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바뀌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기뻐하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백성들이 이전의 모든 잘못된 삶을 돌이키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성전이 황무하게 되어졌고 자신들은 잘 먹고 잘 살고 판벽한 집에 거하며 사는 이러한 일들을 자행하고 있을 때에는 기뻐하시지 않던 하나님이, 이 백성들이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들에게 친히 말씀을 보내시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여호와의 성전이 황무하게 버려지고 자신들은 이기심과 자만심으로 가득차서 자기만을 위하는 열심으로 그렇게 돈을 벌고 모으고 그리하여 그 재산을 가지고 판벽한 집에 거하며 황무한 하나님의 성전을 돌아보지 아니할 때에 기뻐하지 아니하셨던 하나님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자 그들의 모든 삶의 축복이 사라졌습니다. 그들의 모든 밭에는 곡물이 사라지고 그들은 애써서 모았으나 통장에는 언제나 비었습니다. 많은 것들은 모았으나 뒤로는 더 많은 것들이 빠져나갔습니다. 애쓰고 힘쓰며 이마에 땀을 닦으며 하루 종일 수고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수고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후’ 흩으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면 우리의 인생은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잘 살아보려고 피땀을 흘리고 바동바동 대면 먹고는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인생의 앞길을 여시고 복을 주셔도 그 복이 인생의 재앙으로 바뀌는 이런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기뻐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왜 아멘 그렇게 조그맣게 밖에 못하십니까? 하나님이 축복하셔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고 기뻐하셔야 됩니다.
그런데 이 백성들이 말입니다 이전의 그러니까 여호와의 성전은 황무하고 자신들은 판벽한 집에서 잘 살게 된 것이 결국 오늘 성경에 의하면 뭐가 없었기 때문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뭐가 없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무너진 하나님의 성전을 보고서도 조금도 가슴 아프거나 슬퍼하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자, 오늘날도 똑 같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향한 깊은 경외함과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 이것이 같이 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교회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교회, 우리교회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한국의 교회, 그리고 세상의 교회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교회가 요즘 큰 은혜를 받고 성도들의 심령이 부흥한다 그러더라 그럴 때 그 사람은 한없이 기쁘고 그리고 즐거운 것입니다. 할렐루야! 야, 오늘은 밥을 안 먹어도 되겠다 아무개 집사가 회개하고 새사람 되었다니까 밥 안 먹어도 되겠다 아무개 형제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니 야, 오늘은 월급 안타도 배부르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깊이 경외하는 마음을 이 백성들이 갖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함께 하노라.
그러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함께 안 하십니까? 그것 참 어려운 질문이네. 그렇죠?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을 안 하면 하나님이 함께 안하시느냐? 얼마 전에 복음성가 열심히 부르는 것을 보니까 “내가 어둠속에서 헤맬 때도 주님은 함께 계셔” 그리고 언젠가 수련횐가 어디 가가지고 탕자의 비유를 설교 할 때 보니까 우리가 주님의 곁을 떠나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를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그랬는데 오늘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이것 무슨 이야기냐? 하나님은 늘 함께 하십니다. 함께 하시는데 하나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시지만, 그러나 그렇게 함께 할 때에 하나님이 당신이 우리와 함께 하시다고 하는 증거를 보여주시는 일들은 우리가 또한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시원하게 좀 해보십시오. 믿습니까? 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은 언제나 함께 하시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 놀라운 은혜의 증거들을 드러내 보여주시는 일은 우리가 또한 전심으로 하나님과 함께 할 때에 그때에 하나님의 함께 하심,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함, 이 역사를 통해서 놀라운 은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무너진 성전이었지마는 하나님은 사람이 만든 집에 가두어 둘 수 없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성전이 비록 무너져 황무한 것 같았어도 하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계셨습니다. 계셨기 때문에 학개와 같은 선지자를 보내신 것 아닙니까? 함께 계셨기 때문에 학개와 같은 선지자를 보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깨우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앙과 영적인 삶의 제시를 알려주시기 원하셨던 것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백성과 함께 하셨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던 삶을 회개하고, 그리고 주님의 성전을 돌아볼 마음이 생기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바뀌어서 그들이 여호와와 함께 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바뀔 때에,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들과 함께하시는 놀라운 증거를 드러내 보여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다가 신앙생활 바로 안하고 흔들흔들하고 그리고 예수 바로 안 믿고 신앙대로 살지 않으면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함께 하시니까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평탄한 길로 못 가게 하십니다. 함께 하시니까. 함께 안 하시면 버리시는 것입니다. 버려두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갈 때 하나님이 우리를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만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맘먹은 대로 하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못하게 가로막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그런 식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증거를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예수 믿는 것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것을 보여 주기위해서 이 세상에 살면서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은 정신병자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서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에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복되고, 주님과 함께 이 어두운 세상에서 얼마나 승리하며 큰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낼 수 있는가 하는 것들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길 원하시는 것이지, 인생을 다 살고 났는데 마지막 장례식 할 때에 우리 모두 저렇게 살다가 죽은 저 사람처럼 신앙생활 하지 않도록 우리 조객여러분 통성기도 합시다 이런 사람이 되어서 되겠느냐 이것입니다.
(예화) 잊혀지지 않는 게 옛날에 있던 그 교회에서 말입니다. 한 사람 초상이 났습니다. 그 초상 난 것 보면 참 우리는 태어날 때는 아무렇게나 태어나도 괜찮습니다. 다리 밑에서 주워 와도 괜찮고요. 누구 말마따나 얻어 와도 괜찮은데 죽을 때는 잘 죽어야 됩니다. 그런데 죽는데 괴로움만 남습니다.. 예수를 25년을 믿었는데 은혜를 받아본 적도 없고, 그렇습니다. 친척이 이야기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저 사람처럼 비참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 돈을 제대로 벌어 본 적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가족들에게 제대로 대접 받아본 적도 없고, 그렇다고 해 가지고 신앙생활을 똑 부러지게 해본 적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신나게 세상에 나가서 한번 바람피우면서 한번 객기를 부려본 적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집안에서도 존경받는 아버지도 아닙니다. 나중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습니다. 그렇게 신앙생활 바로 하라고 그렇게 목사님이 가서 권면하고 제가 가서 권면하고 그래도 결국 말을 안 듣더니 오락가락 하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진짜 하는 이야기가 그 이야기입니다. 권사님이 “참, 우리는 저렇게 살다 죽지 말아야 돼” 그것이 얼마나 비참합니까?
여러분 그러나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을 경외했던 사람들은 인생 그 자체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간증입니다. 믿습니까?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그렇게 찬송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한발을 세상에 들여놓고 주님을 믿어볼까 말까 예수를 위해 살아볼까 말까 이러던 사람들은 그 찬송 부를 수 없습니다. 오직 나의 인생을 주께 맡기고 나의 모든 짐 대신 지시는 능력있는 주의 팔을 의지하며 자신의 인생을 담대히 던지고, 여호와 한분을 경외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예수 예수 믿은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간증으로 충만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이렇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리고 싶으면 아멘 해보십시오. 맞습니다. 그런데 그 백성들이 그렇게 여호와를 경외하니까 하나님께서 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맞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면 끝 입니다 이제.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그 까짓게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그 모든 게 끝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러면 강퍅하고, 이기심에 가득차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대신에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살아보려고 하던 이 사람들이 그렇게 변화되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된 것은 어떤 일들입니까? 그것은 뭐냐 하면 많은 이스라엘의 지도자와 그리고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선지자 학개의 말을 청종하게 되었을 때에 그 때에 깨닫게 된 것입니다. 무엇을 깨닫게 되었습니까? 아! 우리가 이렇게 주의 성전을 황무하게 버려두는 것이 하나님 앞에 옳지 않구나! 하는 사실을 깊이 회개하고 뉘우치게 되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되니까 자기들이 이전에는 성전을 저렇게 버려두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흐르고 나니까 말씀을 들으면서 생각해보니까 이것이 바로 자신들의 잘못된 신앙이었음을 깊이깊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선지자의 음성이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어났습니다. 깨어난 선지자의 외침이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을 경외하지 않던 삶에서 경외하는 삶으로 돌아서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어떤 일들이 일어났느냐 하면 1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바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역사를 하였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이스라엘의 지도자 스룹바벨과 그리고 종교적인 지도자 여호수아 그리고 그 모든 백성들의 마음을 흥분시키시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히브리 성경에는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의 영혼과 이스라엘의 영혼과 남은바 모든 백성들의 영혼을 만드시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이스라엘의 민족의 지도자와 그리고 남아있는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의 영혼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영적인 각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성전이 황무하게 되어진 가운데 자신들이 판벽한 집에 살아가는 것이 조금도 문제가 없다 생각하던 사람들의 마음들을 하나님께서 각성 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각성시키고 변화시키는 놀라운 역사를 하시셨습니다. 영혼이 움직였습니다. 이전의 자신들이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잘못 알은 것들을 새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삶의 태도가 그릇되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지나간 모든 삶의 태도들이 바로 잘못되어 있는 자기의 마음속에서 시작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어두운 마음의 눈을 밝히고 그리고 때 묻어 있는 그들의 영혼을 씻기시자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시자 그들의 영혼이 밝아졌고,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이와 같이 놀라운 일들을 일어나시고 그리고 그 어두운 영적인 눈들을 변화시키고 그들에게 영적인 각성을 주시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자신이 잘못된 관계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학개 선지자야 말로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요, 그가 외치는 말씀이 바로 그 시대의 자신들을 향해 주는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크게 각성하게 되었습니다. 변화 받게 되었다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오랜 세월동안 환경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여호와의 성전을 지을 때에, 그것을 가로막는 많은 사람들의 도전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그리고 패배한 상태로 여호와의 성전 짓기를 그치고 버려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점차 하나님의 전을 떠났고 여호와를 떠났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모든 삶의 하나님의 축복과 하나님의 은혜로운 간증들이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실 때에 학개 선지자의 평범한 메시지는 오늘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지도자와 종교적인 지도자 두 기둥에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고, 모든 백성들이 그 마음이 각성되는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이었습니다. 틀림없이 학개 선지자가 이 모든 백성들을 모아놓고 “여호와의 성전을 황무하게 버려두는 것이 너희에게 옳지 않도다.” 하며 증거하고 외칠 때에 이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모든 백성들의 마음을 찌르는 말씀에 역사가 있었습니다. 영혼을 움직이는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사람들이 뜨겁게 그 심령이 변화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감동을 받고 영적인 각성이 일어나자 이전의 여호와의 성전을 짓지 못하도록 가로 막았던 그 모든 이스라엘의 성전의 역사를 계속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요인들이 이제는 걸림돌이 되질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전의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은 사실 환경이나 여건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신뢰심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을 해 주셨어도 때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연약한 믿음을 더욱 강화하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 아니 하는 수 없도록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시련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면 전을 건축하게끔 길을 열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까? 안하셨습니까? 하셨습니다. 응답 받은 일입니까? 안 응답 받은 일입니까? 그런데도 큰 도전에 직면해서 성전 공사가 멎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이런 시험을 보내셔서 이들이 이 성전을 새로 건축 하는 이 위대한 역사에 있어서, 당신 자신을 온전히 의뢰하는 백성들인가 그렇지 아니한 백성들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어려운 일들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려움 속에서 마음이 변하고 한결같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을 견지하지 못하자 어려움은 실제로 다가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응답받은 일들이 어려움에 처하고 난관이 되어서 우리 앞에 나타날 때에, 그때에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더 담대하게 하나님만 의지하며 이 일을 계속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람들을 각성시키고 감동시키는 목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여호와의 전 역사를 하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큰 감동과 변화와 은혜를 받은 다음에 이제는 자신의 판벽한 집을 돌아보는 대신에 황무한 이 두 번째 성전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온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성전의 건축하기를 멎었을 때에, 그 성전은 황무한 땅이 되어있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금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하자 성전은 지어지기 시작했고 성전은 시간이 흘러갈수록 아름다운 하나님의 전의 모습을 갖추어 가기 시작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렇게 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동받은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충성 속에서 지어져 가는 교회인 것입니다. 이렇게 지어져 갈 때 사실 그것은 하나님이 그 성전을 지으셔서 뭐하겠습니까? 솔로몬의 첫 번째 성전을 지을 때도 하나님은 거기에 용납될 수 없을 정도의 하늘의 하나님이고 온 땅의 하나님이라 그러셨는데 그 성전보다 훨씬 작고 초라해. 그래서 뭐라고 그럽니까? “이것이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 것 없지 아니하느냐” 성전을 건축해 놨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성전이 보잘것없이 초라한 건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전을 짓기를 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거기 계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성전을 짓는 가운데에 하나님의 사랑하는 백성들의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성전을 짓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성전이 이렇게 지어질 때에,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이 초라한 성전을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충만하게 채우시기를 원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마음을 각성시키시고 움직이셨더니 그들이 가능할 수 없었던 하나님의 전 역사를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교회답게 서기 위해서는, 우리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이렇게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흔들리는 각성과 흥분의 역사가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고, 영이 바뀌고, 그 영혼이 변화를 받고 움직이는 역사가 일어나서, 내 인생을 바라보는 시야가 나의 모든 이기적인 욕심과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서, 하나님의 영광과 그 교회와 하나님의 거기에 두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일생이 되기를 소원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각성시키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초라한 인생들을 통해서 크고 놀라운 교회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렇게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인생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