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 설 때입니다
아브람의 구십구 세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17:1)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미련하기 그지 없는 인생들을 주님의 크신 사랑 가운데 지켜주시고 오늘도 저희들이 이처럼 주님과 약속한 5일 저녁에 모여서 주님을 경배하고, 주님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저희들의 기도 가운데 오시고, 영혼의 활기를 돋우어주시며, 저희들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것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정직하게 보고 깨달을 수 있는 지혜와 은혜를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옵나이다. 자비하신 주님, 오늘도 저희가 기도회에 앞서 잠시 하나님의 말씀을 밝혀보고자 하오니, 이 말씀을 살필 때에 우리에게 큰 은혜가 되게 하시고, 우리 마음에 정직함을 더해주시고, 이 말씀을 통해서 저희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도하게 하시는지 깨달을 수 있는 은혜를 내려주시고, 성령이 간구하심을 마음에 새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성경 본문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만나는 그런 장면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하나님의 매우 특별한 사랑을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에서도 믿음의 훌륭한 점들을 많이 찾을 수 있죠. 그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아브라함의 생애는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의 위대함보다는 하나님 은혜의 위대함을 더 잘 드러낸 생애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이제 이 세상에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알리기 위해 한 민족을 택하시는데 그 시조였습니다.
그의 아버지 데라는 메소보타미아에서 우상을 만들어 파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불렀다기보다는, 하나님이 불러주셨기 때문에 그가 믿게 되었고, 주님을 따라오는 그런 생애를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생애는 그야말로, 일방적인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많이 입은 그런 생애였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이, 이때는 인생의 노년에 접어들었을 때인데, 아브라함에게는 매우 중대한 사건이 하나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찾아오셔서 은혜를 베푸시고, 믿음이 없을 때도 용서해 주시고, 이러면서 늘 교제를 가지시던 그 하나님과 약 13년과 교제가 단절되는 깊은 영혼의 암흑기 속으로 들어가게 되요. 16장과 17장 사이에 13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갔잖아요. 86세에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고, 13년이라고 하는 그런 긴 세월이 지나고 난 다음에, 하나님과의 만남이 17장에 기록되어 있는 거예요. 그 정도 세월이면 아주 긴 세월입니다. 일 년도 아니고 10년 하고도 3년이 넘는 13년의 세월 동안 늘 나타나시던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나타나시지 않고, 말씀하시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지 않은 것이죠. 이 장면을 보며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실 때, 우리의 신앙의 성숙에 맞추어 우리를 대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갈에서 이스마엘을 낳을 것이 왜 영적인 암흑과 관계가 있느냐 하나님이 보실 때에 아브라함이 그렇게 자기 부인의 말을 듣고 소실을 두고 거기에서 첩의 자녀를 낳아서 그 아들이 혹시 자기의 대를 이를까 그렇게 생각한 것이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한 죄였다 이거죠.
그런데 사실, 그 이전에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면, 이런 정도의 불신앙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이 즉시즉시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이 저지른 일들을 해결해 주시고 무마시켜 주시고, 끊임없이 그에게 나타나시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이 한가지 사건 때문에 13년 동안에 캄캄한 영혼의 암흑 상태로 들어가는 거예요. 하나님과의 교제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은 13년 동안 하나님이 안 나타나셨다.......뭐 원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한테는 그게 뭐 그렇게 뼈저리게 가슴 아프고 그럴 일이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과의 교제가 무엇이고, 그 분이 찾아오셔서 우리의 인생 가운데 말씀하신 것이 무엇이며, 그 분이 우리 앞서 행하시며 우리 삶을 인도하시고, 우리 사역의 복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이 없는 암흑기 13년이라는 세월은 깊은 고통의 시기였습니다.
16장과 17장 사이에는 아무 기록도 없지만, 그러나 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이 13년을 대단히 많은 고통과 많은 생각 속에서 스스로 수많은 교훈을 받으면서 보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때쯤은 이미 아브라함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흔히 저지르던 불순종을 저지른 다음에 13년 동안 하나님이 자기를 상대도 해주지 않는 영혼의 캄캄한 암흑기를 지나면서 아브라함은, 예전에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하나님과의 교제, 내가 기도하고 주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이 하나님과의 긴밀한 이 교제가 자신의 인생에 있어 얼마나 큰 재산이고 그것이 없이는 하나님 자녀로서의 삶이 불가능한가 하는 것을 처절하도록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13년이 지난 후, 하나님은 다시 원점으로 아브라함을 불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주도권을 누가 쥐고 있는 지 보여주지 않습니까? 물론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사람들의 간구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뿌리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만나 주시고 안 만나 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걸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불순종과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이런 긴말한 사귐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전심으로 하나님 앞에 자기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호소하면, 아브라함을 이렇게 어느 때 찾아오셔서 만나주신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 가운데 찾아오셔서 만나주시기릴, 아브라함처럼 우리를 이렇게 긴 세월 동안 내버려두지 마시고, 속히 찾아와 만나주시기를 탄원 하는 것 이외에 죄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이겁니다.
그런데 다시 찾아오신 하나님이 13년 만에 하신 말씀이 얼마나 의미 있는 말씀이었어요? 하나님이 13년 동안이나 가슴에 묻어두셨던 그 말씀! 얼마나 가슴에 묻어 두셨으면, 푹 익은 말씀이었어요. 그게 뭐냐하면,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그 말씀 이전에 당신의 성품을 먼저 보여주셨어요. 나는 전능한 여호와니라. 이게 뭘 보여 주시는 거예요. 아브라함에게 만나자마자, 왜 네가 13년 전에 내 앞에 불순종하며 범죄하여서 너와 나 사이에 깊은 어두움이 깃들게 만들고 니가 나에게 나아올 수도 없고, 내가 너에게 갈 수도 없는 그런 신앙생활을 하게 만들었는지 아느냐, 그건 네가 바로, 내가 전능한 하나님 여호와라는 사실을 잊었기 때문이다. 왜 그랬어요?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하면 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왜 의심했어요? 부인이 보채고 그러니까 인간의 생각이 들어간 거예요. 내가 이렇게 늙고 사래가 저렇게 늙었는데, 어떻게 인간적인 방법으로라도 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이 든 거예요. 그게 뭐냐면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라고 하는 사실을 잠시 잊어버린 거예요. 우리의 대부분의 불순종과 범죄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과 그 전능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우리를 위해 역사하실 것이라고 하는 믿음이 없는데서 우리가 불순종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살아가면서 정직할 수도 없고, 항상 편법을 사용해서, 어떻게 위기를 면해보고, 어려움을 면해보고자 하는 얄팍한 술수가 나오게 되는 것이에요. 그걸 성경은 아주 간단하게 불신앙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런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 때문에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잃어버리고, 13년 동안이나 캄캄한 어두움의 때를 보내야 했던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도 13년이 넘었을 수도 있고, 13년 까지는 안 되었을 지라도 그러나 몇 개월째, 아브라함과 유사한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 앞에 적극적인 범죄를 한 것도 아닌데, 무엇인가 그 이전에 친밀하게 들리던 하나님과의 속삭임이 사라지고
그 모습 내 눈에 안 보이고 그 음성 내 귀에 안 들려도
내 영혼 날마다 주를 만나 신령한 말씀 늘 배우도다
사실, 그 찬송가는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그게 주님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고, 그것이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거예요. 내 영혼 날마나 주를 만나 신령한 말씀 늘 배우도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어 버리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영혼 속에 들리는 신령한 감화가 사라지는 거예요. 그게요, 잠깐이에요. 잠깐......이렇게 환해도 스위치가 팍 내려지면, 한치 앞도 보지 못하고 더듬으면서 문을 향해 걸어 나가야 해요.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저장이라고 하는 것이 없어요. 하나님이 우리 영혼에 줄을 대어서 뭔가 하늘의 것들로 공급해 주실 때에 우리가 뭔가 작동도 하고, 불도 들어오고 개떡 같은 인간이 찰떡같은 사람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 코드 뽑아버리면 그만이라구.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렇게 교만해? 마치 자신 속에 뭐가 한없이 저장되어서, 일정한 양이 저장되면, 주님이 스위치를 뽑아도 뭔가 될 것 같은 그런 착각을 하냐 이거예요. 그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거예요. 생각해 봅시다. 13년 동안이라고 하는 그 캄캄한 주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그 동안에 그 이전에 아브라함이 생생한 주님과의 교제를 누렸다고 하는 그 사실이 아브라함의 인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었을까요? 그냥 13년 동안 하나님 없는 삶을 산 거예요.
하늘의 신령한 감화로 우리 영혼을 움직이지 못하는, 머리 속에 앙상하게 남아있는 추억과 지식이 우리의 인생을 얼마나 훌륭하게 지속할 수 있을 지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런 삶을 아브라함이 산 거예요. 불신앙 때문에. 그러니까 자기가 아무리 하나님 앞에 옳다고 생각하면서 13년을 보냈다고 할지라도 뭐가 자기가 옳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느냐 하면, 신령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고갈된 영적 세계가 자기가 옳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주어요. 그렇지 않은가요?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옳다고 하시면, 그러면 다른 사람의 인정이 필요 없어요. 하나님이 눈을 돌리시는데........그러면 만약 하나님이 여러분을 인정해주신다고 할 것 같으면, 그건 반드시 하나님이 여러분을 인정해주는 증표가 여러분들의 영혼의 속에서 드러난다, 이겁니다.
아브라함 입장에서야 얼마나 할 말이 많았겠습니까? 하나님이 같이 살게 한 그 여자, 얼마나 남편을 들볶아가지고, 첩을 얻어주어서라도, 거기서라도 어떻게 아이를 하나 얻어 무릎에 안아볼까? 어느 모로 보나 아브라함이 육신적인 정욕에 이끌려서 일을 친 것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거예요. 마찬가지. 옳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 13년 동안의 캄캄한 암흑기가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느냐하면,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에요. 그게 참 묘해요.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위로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전지하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신다.......그 말이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누리고 있을 때, 그래서 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그 때에만 그게 위로가 되는 것이에요.
만약에 여러분들이 주를 위해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걸어가고, 그 하나님이 인정해주시는 영혼의 상태에서 몸부림치고 있다고 할 것 같으면, 주님이 여러분들을 모두 아신다 라고 하는 말씀 자체가 여러분들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위로가 될 것이에요. 하나님의 전능하심도 마찬가지예요. 힘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힘이 남아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걸어가고, 자기가 걸어가는 일 길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이 사실, 그리고 지금 내가 이러한 태도로 이 신앙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라고 표징을 보여주는 사람.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전능하시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는 것이에요. 아주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조상으로서 아브라함을 부르면서 처음부터 아브라함에게 상기시키셨던 것이, 나 여호와 하나님은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상기시키셨어요.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하나님께서 13년 만에 나타나셔서 하고 계신 거예요. 나는 전능한 여호와라.
여러분들이 저랑 한 13년 못 만났는데, 제가 딱 나타나서, 나는 이 교회 목사니라. 얼마나 웃기겠어요. 당연한 얘긴데.......그런데 그 당연한 신앙을 아브라함이 놓친 거예요. 그러면서 하나님 하시는 말씀이 너는 내 앞에 행하여 완전하라. 두 가지가 나오는데, 내 앞에 하나는 완전하라. 내 앞에서라는 말은 아브라함이 이처럼 범죄하고 이렇게 실패하게 된 것이 하나님 앞에 사는 정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깨어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어디서든지 인식하면서 살아가는 그것이 깨어있다는 것입니다.
완전하라, 는 이야기는 온전히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리고 이 시점에서 이것을 말씀하시면서, 아브라함은 이 시점에서 큰 전환점을 맞이해요. 22장에 나타나는, 이삭을 하나님 앞에 바친 그 믿음이 이 시점의 이 사건이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고 봐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불순종할 때, 하나님 앞에 어떠한 불순종이 찾아오는가 하는 것을 알았고, 또 그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게 되었기 때문에, 자기 아들을 죽여도 전능하신 하나님은 살리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이 가슴 아픈 일을 행하면서라도 그 하나님과의 교제의 단절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예요. 그것이 22장 믿음의 토대가 된 것이죠. 13년 만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 자기의 성품을 상기시켜주시면서, 너는 내 앞에서 살아라 그리고 내 앞에서 순종하라,, 이 두가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 다음 주부터 사경회를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무엇인가, 이제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보다 분명하게 하나님 앞에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면, 불완전한 순종에서 좀 더 완전한 순종으로 나갈 수 있을 지 모르지만, 불순종한 삶을 살고 있었다면, 결단과 용기 그리고 전환, 그 어떤 용단이 필요하다 이겁니다. 그러한 전환과 결단 없이는, 우리는 불순종한 삶을 계속 불순종한 삶으로 이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사경회에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 하실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우리는 무엇인가 이 불순종하는 삶에서 돌이켜 순종하는 삶으로 가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하고, 이제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진 것 같은, 혹은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꺼져가는 심지와 같고, 상해당한 갈대와 같은 그러한, 초라하기 그지없는 그런 관계였다고 할 것 같으면, 우리는 더 이상 그런 관계 속에서 신앙을 이어간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깊은 결단을 마음 속에 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에게 13년 만에 하나님이 나타나셨던 것처럼, 이번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우리의 어두움들을 모두 정리해 주시고, 우리에게 참 된 빛을 비추어 주셔서, 우리가 이 때까지 경험했던 하나님과의 교제의 단절이, 아브라함처럼, 보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 분과의 사귐을 매우 고귀하게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 등 뒤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그런 신앙을 갖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맥 놓고 그냥, ‘(사경회를) 5일이나 한다는데 수요일하고 월요일하고 한 둬번 참석해 볼까’‘ 하는 식으로 마음을 먹어서는 안 된다 이거예요. 뜻을 세워야해요.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