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서 건지시는 하나님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시107:20)
하나님을 믿는 자녀라고 해서 그들이 인생이 항상 고속도로와 같은 길이 펼쳐지지는 않습니다. 주님을 믿는 자녀들에게도 얼마든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것 같은 고통스러운 상황이 펼쳐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때로는 그 자신들의 불순종과 죄악으로 인해서 그들을 정결케 하시려고 고난의 길을 걸어가게도 하시고 비록 죄와 불순종은 없지만 무언가 새로운 신앙의 세계를 보여주시고 그들을 더 온전하게 만드시기 위해서 시련의 길을 지나도록 만들어 주시기도 합니다. 그것이 어떤 이유로 오는 것이든지 간에 고통과고난이 가득 찬 인생의 길을 지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는 유쾌한 경험일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 세상 사람들처럼 똑같이 하나님의 자녀들도 마음에 통증이 있어서 아프게 하면 아픔을 느끼고 괴롭게 하면 괴로움을 당하게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하나님이신 자기 자신보다도 고통에 대해서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에 때로는 하나님이 고통을 당신의 백성들을 당신께로 더 가까이 이끄시는 훌륭한 수단으로 사용하시기도 한다는 사실은 우리들이 아무리 상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한사람의 신앙이 깊고 돈독해져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늘 느끼고 그 교제 속에서 살게 되기까지 그는 무수한 고통과 시련을 통해서 연단을 받게 됩니다. 어쩌면 진실하고 아름다운 신앙의 성도들치고 이러한 고난의 길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과 아름다운 교제 속에서 깊은 신앙의 교제를 누리며 그렇게 의연한 삶을 살아가는 아름다운영적생활을 하는 성도들의 대부분은 그들의 발은 가시밭길을 헤치고 온 상처로 가득하고 그들의 손은 험한 나뭇가지를 짚으면서 걸어오면서 새겨진 상처들로 가득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이 고통을 통해서 잘 다루 십니다 인간을 고통스럽게 함으로 쾌감을 느끼시는 분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우리들이 다 측량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이 고통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를 고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시편 107편은 유서 깊은 시편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 함으로 인해서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 후에 70년의 세월동안 인내와형극의 시간들을 보내고 하나님이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신 그 예언을 쫒아서 이 백성들이 고토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그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포로귀한을 생각하며 찬송하는 마음으로 지은시가 이시입니다 그들이 바벨론포로로부터 귀환한 것은 포로로부터의 해방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해방의 기쁨도 있었지만 그렇게 따지면 예루살렘에 돌아간 이스라엘백성들의 형편이 포로로 살아가던 때의 형편보다 안락함에 있어서 나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은 깊은 신앙적인 의미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왕을 세우시고 이스라엘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던 통치의 중심부 였습니다. 거기에는 성전이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성도들이 있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성전이 거기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다시 이스라엘을 일으키시겠다. 라고 하는 희망의 표징인 동시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성전까지 지을 수 있도록 열려진 환경을 그들에게 다시 한번 육적왕국의 번성 뿐 아니라 그들의 영적인 축복을 하나님께서 다시 부어주시므로 무너진 신앙의 왕국을 중흥 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심히 고무된 상태에서 이 해방의 감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바벨론포로시대를 회고하면서 시인이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개인을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회복시키시는 과정이나 한국가나 한 교회를 회복시키시는 과정도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거의 동일한 원리를 따릅니다. 제일 먼저 시인이 회상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찬송이 있고 난 후에 그가 회상하는 것은 고난에 대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잘못된 생각 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고통을 받는 것이 단지 환경의 탓이라고 생각하였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러한 포로의 귀한과 회복의 과정을 통해서 깨닫게 하심으로 그들의 눈을 열어주셨는데 그 눈으로 이스라엘의 고통을 보고나니까 사람이 흑암의 그늘에 앉아서 사망의 사슬에 매이는 것은 지존 자를 멸시하고 그의 말씀에 불순종하기 때문이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후로 펼쳐지는 하나님의 회고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우리들이 읽은 이 성경구절 부분에 오게 되면 저가 말씀을 보내 사 저희를 그 위경에서 건지시는 도다. 라고 나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고통 속에서 건지고 우리의 영적인 소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방식이 어떤 것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그 앞 절에서 시인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고통 가운데 있으면서 부르짖는 그때에 하나님께서 이제 말씀을 보내어서 저희들을 고치신다고 하는 것을 여기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고통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고통을 통해서 무엇인가 일하시고 우리들을 바르게 만드시기 위해서 당하는 그 고난을 우리자신의 힘으로 극복해보려고 애를 씁니다. 왠만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면 고난이 오고 시련이 왔을 때에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하는 것을 깊이 인정하고 주님 앞에 즉각적으로 무릎을 꿇고 그 은혜만을 전심으로 의뢰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당하게 된 커다란 고난과 고통의 원인이 사람이나 혹은 환경으로부터 왔다고 생각을 하고 혹은 물질의 결핍이나 자신의 실수를 통해서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힘으로 그 상황을 바로잡아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동안 몸부림치고 처절하게 투쟁해도 자신이 놓여져 있는 이 고통스러운 상황을 극복할 수 없게 되면 절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잠시 절망하면서 혹은 잠시 하나님에 대한 독한 마음을 품고 그분을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그는 깊은 절망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기대를 갖기 시작 합니다
여기에서 위경이라고 되어있는 이 부분은 히브리말로 쉐히뜨 라고 하는 단어인데 이것은 깊은 웅덩이를 의미 합니다 요셉이 빠졌던 웅덩이 혹은 다니엘이 갇혔던 굴 그런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 깊은 웅덩이 팔레스타인사람들이 짐승 같은 것을 잡기위해 파놓은 그런 웅덩이 말입니다 그런 깊은 웅덩이에서 자신의 힘으로 벗어나 보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러나 어느 곳에도 그 웅덩이에서 딛고 올라갈 수 있는 어떠한 물건도 없고 사면을 둘러보아도 오로지 흙벽뿐입니다 몸부림을 쳐보지만 그러나 사용할 수 있는 도구도 없고 어떤 것으로도 자기를 거기에서 건져낼 수 없습니다 그 웅덩이위에 깊은 담이 드리우면 그 웅덩이 속에 갇힌 두려움은 점점 더 심해지게 됩니다. 그때에 그는 비로소 하나님을 향해서 깊이 낮아지는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거기서 기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자기의 중심을 실어서 자기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과 독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거기에서 배우게 됩니다. 무엇으로도 자신의 이 고통스러운 상황을 극복할 수 없고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그런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본분임을 거기서 깊이 배우게 됩니다. 너무나 많은 대가를 치루었지만 그러나 거기서 깨달은 것은 그것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는 것 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을 깊이 낮추고 거기서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소망이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 앞에 간절한 기도 자신의 온 마음과 모든 것을 실어서 하나님 앞에 매어달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마음으로 하는 것 입니다 마음은 우리의 인격과 인격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모든 삶의 중심부입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삶이 등대라고 한다면 우리의 인격은 사령부고 우리의 마음은 사령관 실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인격에 영향을 주고 우리의 인격이 우리의 온 삶을 어거하고 그 인격에 합당한 삶을 산출해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무엇에 의해서 점령되느냐가 중요 합니다 신앙생활은 이처럼 마음으로 하는 것 입니다 신앙생활을 마음으로 한다고 하는 뜻은 한사람 성도의 마음이 하나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있다고 하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연인들이 헤어지고 나면 상대방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그 마음이 가득 차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그런 마음속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함께 있으면 함께 있기 때문에 마음 가득히 그 사랑이 있고 없으면 없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그 마음에 가득 찬 가운데 사랑의 관계가 진보하고 유지되는 것처럼 하나님과의 관계역시 그런 것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그리고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갈망하는 가난하고 간절히 바라는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아가기를 원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육신의 삶만큼이나 자주 세상에 있는 것 들에게 점령당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아주 쉽게 도둑질 당하기도 하고 혹은 우리자신이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버림으로 하나님보다 더 좋은 것으로서 우리의 마음을 채우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삶의 껍질은 예전대로 계속되지만 이미 그 속에 있는 마음은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는 신앙에 있어서 요체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우리의 내면은 전혀 하나님으로 가득 차지 않은 그런 신앙생활이 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종종 우리의 마음을 세탁하고 싶으셔하십니다 우리의 온 마음을 구석구석 깨끗하게 청소하셔서 자기의 피로 정결케 하심으로 주님을 믿는 신앙의 동기를 정화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주의 자녀로 살아가는 동기를 새롭게 하시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주님을 섬기는 우리의 동기까지 순화시키시는 분이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은 심지어는 마지막에 지극히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까지 우리를 위해서 내어주셨지만 마지막까지 주님이 누구에게도 빼앗기기 싫어하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성도인 그대들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종종 우리의 마음이 이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에 더럽혀지고 그래서 도저히 그 마음으로는 순결하신 당신을 섬길 수 없다고 하실 그때에 고통의 한가운데를 지나가게 하셔서 거기서 모든 사랑하는 것들로 배신을 경험하게 하시고 자기가 추구하고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하찮고 헛된 것인지를 경험하게 하심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낮아지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시인은 여기서 그것을 경험한 것입니다 깊은 웅덩이와 같은 그곳에서 자신의 마음이 변하고 그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회복되기 전에는 그래서 제일 먼저 일어나는 것이 마음의 변화인 것입니다 오랫동안 빠졌던 죄로부터 일순간에 돌이키지 못할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과 타락한 성도의 불신앙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은 거의 같습니다. 신앙의 세계가 소리 없이 서서히 균열되면서 어느 날 무너지듯이 불신앙의 패역한 세계도 형체는 남아있지만 이런 마음의 변화에 의해서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 합니다 그러면서 어느 결정적인 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립니다 여러분 모두는 아마도 하나님 앞에 지극히 겸비하게 낮아져서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내 인생은 아무 소망도 없습니다. 하고 고백을 하던 그 마음이 어떠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마음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늘 유지되어야 할 성도의 마음입니다
그런 마음이 되고 나면 두 번째로 하나님이 그 웅덩이에서 끌어내시기 위한 보내시는 은혜가 바로 말씀을 보내시는 은혜입니다 저가 말씀을 보내사 라고 되어있는데 히브리 성경에는 그의 한 말씀을 보내사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똑같은 성경을 읽으면서 왜 어떤 사람들은 깊이 감동을 받고 어떤 사람들은 잘 까요 똑같은 설교가 행해지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 설교를 들으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어떤 사람들은 지루함속에서 시간을 보낼까요. 그중요한 차이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하나님 앞에 겸비하게 낮아져서 이제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나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말씀을 접하는 것과 단지 예배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말씀을 접하는 것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가난한 마음을 가지고 나오지 않은 사람에게도 변화시키시는 예가 있습니다만 그러나 그것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고 그 말씀을 통해서 자신이 고쳐지기를 갈구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하나님과 대면하고 그분께로부터 말씀을 받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한 말씀을 저희에게 보내신다고 말씀 하십니다 여러분가운데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경을 읽으면서 혹은 예배를 드리면서 우연히 교회의 계획에 의해서 이루어진 예배였고 사경회이었지만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나한사람만을 위해서 준비하신 말씀이었다고 하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에는 자기와 함께 예배드리는 사람도 보이지 않고 심지어는 말씀을 전해주는 설교자조차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에게 오직 비치는 것은 홀로 무릎을 꿇은 자신과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뿐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향해서 하나님자신의 말씀을 보내고 계시다고 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이 필요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서 바로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깊은 어두움과 흑암 속에서 건져내신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로 인해서 또 다양한 종류의 고통의 웅덩이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항상 한 가지 방법으로 건져내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말씀을 그들에게 보내시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섞여서 남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 동냥으로 듣는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과독대한 가운데 나는 그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독립적인 음성을 듣고 그리고 그 하나님은 나 한사람을 향해서 말씀하시는 경험을 통해서 나를 그 깊은 웅덩이와 같은 위기에서 건져내신다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고통에 비례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시간도 아침이면 눈을 뜨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인생의 시기를 지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사는 것 보다 죽는 것이 훨씬 편할 것 같은 견디기 힘든 고난의 때를 지나는 때도 있건만 왠지 하나님의 음성은 들리지 않고 그의 도움은 끊어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거나 하나님자신도 나를 구원하기를 포기한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지체들이 많이 있습니다.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무리 많이 고통을 겪어도 우리들이 받는 그 고통과 형벌의 모습으로는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주께서 우리를 고통으로 다루실 때에 그 고통에 대해서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변하는가를 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소망이 바뀌는가하는 것을 보고 계십니다. 고난을 받으면서 주께서 기대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 마음이 낮아지고 자신의 깊은 위기 속에서 하나님이 말씀으로 자기를 건져주실 것이라고 하는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소망을 갖기를 하나님은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이 종종 깊은 흑암에 있고 절망적인 웅덩이 같은데 빠져있을 때에는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의 상황과는 상관없는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상황을 내버려두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고 내가 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 음성을 들으므로 내가 이 깊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믿음이 전심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나와 있는 시인도 이 경험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깊은 웅덩이에서 건지시기 전에 먼저 두 번째로 하신일이 당신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어떤 웅덩이에 빠져있든지 간에 동일한 것은 밧줄이 아니겠습니까? 거기가 아주 깊은 웅덩이이건 낮은 웅덩이건 심지어는 몸부림칠수록 깊이 빠져 들어가는 수렁이든 간에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하나의 밧줄입니다 끊어지지 않는 튼튼한 밧줄과 반대편에서 그것을 잡아당겨주는 사람이 있기만 하면 웅덩이의 깊이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든지 지칠대로 지친상태에서 더 이상 몸부림쳐서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고 조용히 무릎을 꿇고 나를 이 깊은 웅덩이와 같은 인생의 위기 혹은 영적인 깊은 침체의 늪에서 건져주시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제게 필요 합니다 아버지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내게 보내달라고 기도하는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주 여호와 능력의 주 내영혼의 치료자
말씀으로 고치시네. 주는 나의 치료자
이어서 세 번째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바로 우리를 고치시는 일입니다 라파 라고 하는 이 단어는 이스라엘백성들의 가장 좋아하던 단어 가운데 하나이었습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것이 너무 어린아이와 같고 너무 단순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거나 혹은 하나님이 우리를 고치기 위해서 깊은 웅덩이와 같은 수렁에 두셨을 때 우리는 깊은 고통을 경험 합니다 그리고 나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즉시 아주 정상적인 삶을 살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어린자녀들이 몇 년 만 비뚤어진 자세로 책상에 앉아서 등뼈가 휘고 그렇게 휜 등뼈는 장기간의 운동과 치료를 통해서 겨우 교정이 될까 말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고통으로 손보셔서 고치시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우리들이 깊은 웅덩이에 들어갔다라고 하면 그동안에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살아왔던 많은 날 동안에 우리는 우리의 내면의 세계가 많이 굽어지게 되고 그 굽어진 우리의 마음과내면의 세계는 우리의 인격을 휘게 만들고 그 휘고 굽은 우리의 인격과 마음이 우리의 삶을 비뚤어지게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비뚤어진 삶속에서 계속해서 맺혀지는 불순종과악의 열매들을 감당할 수 없어서 우리를 고치시리라고 마음을 먹고 우리에게 커다란 고통이나 시련들을 경험하도록 만들어주십니다 그러니 거기서 바로 끌어올려준다고 해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깊은 웅덩이에 빠져있는 우리들을 즉시 건져주시지 않고 거기에서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거기서 치료받도록 만들어 주시는데 이때 하나님께서 치료하시는 것이 크게 세 가지입니다.
제일먼저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고치게 하시고 그리고 두 번째로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고치게 하시고 세 번째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관계를 고치게 하십니다. 제일먼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고치도록 그 웅덩이에서 나오게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그렇게 살아가던 때에는 사람들이 굉장히 부 정직 합니다 좀처럼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려하지 않을 뿐 더러 또 피할 수 없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논리적으로 구석에 몰렸다하더라도 거기서 진심으로 무릎을 꿇는 일들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의 말씀을 보내시고 그 말씀에 의해서 그가 깊이 깨닫고 그 마음이 녹아지기 시작하면 웅덩이에 빠질 때 까지 자신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야를 가지고 자신의 문제를 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실패한 것이 자신의 고통의 원인이었다고 하는 것을 깊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이야기해도 본인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내가 이처럼 위기를 만난 것은 IMF 때문 이다. 라고 변명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처럼 고통스러운 상황을 살아가는 것은 어느 동업자 때문이라고 생각 합니다 또 내가 이런 위기를 만난 것은 주식시장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재경부관계자들의 책임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심지어는 내가 이렇게 망가진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어느 인간 때문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러면서 실의에 빠진 채 사람들을 미워하게 되고 환경을 탓하면서 그는 부적절하게도 복수의 칼을 갈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를 향해서 바뀌어 지기만 하면 고쳐질 수 있고 심지어는 경제적으로 환경만 피면 자신은 즉시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더 깊이 고통을 받으면서 문제의 핵심을 보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사로잡고 그 진리가 그 영혼에 어두움을 밝히 뜨게 만들어주고 나면 그는 비로소 자신이 이처럼 고통스러운 인생의 웅덩이에 빠져서 소망이 없는 인생이 된 것은 하나님과의 망가진 관계 때문이었다고 하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최초로 회개라고 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진정한 통회 하나님과의 망가진 관계가 바로 자신이 원인이었고 자신의 고통을 통해서 함께 고통에 동참하게 된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입힌 손해에 대해서 진지하게 뉘우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자신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고 살아온 것이 이런 고통의 궁극적인 원인이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주님이 자신을 이렇게 대우하시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의 판단이 의로우시며 자기는 전적으로 불의 하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가 놓여진 그 고통 받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일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거기서 처음으로 죄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고 예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하나님의 큰 사랑 이제까지 하나님께서 자기가 이 깊은 웅덩이에 빠지기 까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과 은혜를 기억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바로 그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등지고 살았기 때문에 이 깊은 웅덩이에 빠졌고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이나 사람을 원망할일이 없으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일은 오히려 정당하다. 라고 하는 고백을 거기에서 하게 되는 것 입니다 비로소 그는 이제껏 고난 중에 볼 수 없었던 자기의 정직한 모습을 보게 되고 그 모습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 입니다 그렇게 해서 발견한 자신의 모습은 전혀 소망이 없는 모습입니다 하나님 앞에 받은 은혜를 불순종과 죄 가운데 모두 되갚아버리고 자신 안에는 스스로 자신을 이 깊은 웅덩이에서 일으켜 세울만한 아무런 선한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세상이나 혹은 자기 안에도 자기를 이 깊은 웅덩이 속에서 구출해 줄 것이 없고 어떠한 식으로도 하나님이 자기를 마땅히 이 웅덩이에서 건져내어 주셔야할 의무를 부과할 그 이유와 근거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전에는 이 깊은 웅덩이에서 고통 받는 것은 부당한 것 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이 하나님 앞에 통회를 경험하면서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망가진 것을 보면서 자기가 이렇게 고생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구해주시지 않아도 자기는 할말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그 큰 사랑 이제껏 걸어온 걸음마다 응답하시고 그 큰사랑으로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불순종으로 되갚고 이제는 누구도 건져낼 수 없는 이 웅덩이에서 쓸모없는 인생이 된 것을 인해서 마음아파 하는 깊은 통회의 탄식이 터져 나오게 됩니다. 그는 실로 오랜만에 하나님의 면전 앞에 홀로 무릎을 꿇는 것이 무엇인지를 거기서 배우게 되고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이 자기를 고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동안 쌓아올렸던 자신불순종의 세계들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거기에서 비로소 그는 진심으로 회개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는 거기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가슴을 두드리며 세리의 가슴 아픔이 무엇인지를 경험하게 되고 그가 흘린 눈물이 무엇인지를 체험하게 됩니다. 깊은 웅덩이지만 거기에서 살아계신 지존하신 하나님을 대면하고 흘리는 그의 진실 된 눈물은 수정같이 맑은 것입니다 그의 이제까지 살아온 삶이 하나님 앞에 열납 될 수 없는 삶이지만 그러나 내면의 세계의 깊은 통회 속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은 그는 죄인이지만 쏟아져 나오는 그 눈물은 하나님 앞에 무공해의 수정과 같은 눈물입니다 그 눈물은 끊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잇는 접착제가 됩니다. 그 눈물은 망가진 하나님과의 관계에 새살이 돋아나도록 만들어주는 훌륭한 치료제가 됩니다. 예전에는 쓸모없는 쾌락이나 이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 망가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고통을 잊어보려고 애를 썼지만 이제 그는 자신의 영혼의 탄식에서 터져 나오는 진실한 통회의 눈물로서 오랫동안 죄 된 생활로 망가졌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귀를 기울여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고 부르짖어도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없고 그리고 노래를 해도 하나님을 향해 아름다운가락을 울려 퍼지게 할 수 없었던 그 마음의 모든 세계들을 주님이 그 통회의 눈물에 응답하시는 말씀의 은혜를 가지고 치료하고 고치기 시작 하십니다 굽어서 무릎을 꿇을 수 없었던 그의 다리를 다시금 무릎을 꿇게 만드시고 들리지 않았던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수 있도록 그의 마음속 귀를 여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릴 수 없었던 그의 어눌한 입술을 풀어주시고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울려 퍼질 수 없었던 그런 음침한 동굴과 같았던 어두운 마음에 하나님의 찬양이 메아리치도록 만드십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흐느적거리던 고깃덩어리와 다름없던 그의 육신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양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꾸어놓으십니다
이모든 회복과 놀라운 역사는 물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 은혜는 바로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고치시는 은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모든 삶은 우리마음의 반영이고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반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고통가운데서 때로는 회복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게 하시면서 까지 라도 그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음이 온전히 고쳐져서 당신과의 관계가 치료되어져서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친교 속에서 살아가도록 주님이 고쳐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상황은 안녕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의 영혼 하나님과 맺고 있는 여러분과 하나님과의 관계도 안녕하신지 오늘 묻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건강 합니까 혹시 어리석게도 망가진 하나님과의 관계는 방치한 채 지금도 여전히 벗어날 수 없는 시련의 웅덩이 속에서 자신의 힘으로 그것을 극복해보려고 몸부림치다가 지쳐서 쓰러진 상태에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자기와관계가 깨뜨려진 사람들을 치료하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회개하는 마음과 뉘우치는 마음을 주셔서 무엇으로도 고칠 수 없었던 당신과의 관계를 고치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자기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신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향해 가지고 계신 최대의 기회는 고쳐진 관계 속에서 당신과 행복을 누리면서 사는 것 그것이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은 당신과의 관계를 고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세월들을 주님과의 관계는 망가진 채로 방치한 채 우리들 멋대로 살면서 우리의 죄와 불순종으로 인해서 당한 고난이며 영혼의 침체이거늘 하나님자신을 원망하고 그래서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주님을 욕보이는 행동들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여러분 오늘도 여러분들이 가지고 계신 고통의 문제와 영적인 고난의 모든 문제들이 단지 환경의 탓이라고만 생각합니까? 그 속에서 오늘도 말씀을 통해 드러내시는 하나님과의 관계의현주소가 무엇인지를 여러분들은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과의 관계가 어떻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망가졌는지를 보고 경험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고치시는 가장 중요한 밑거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치료하고 고치지만 모든 사람을 치료하고 고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치료받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가셔서 하나님께서 치료하고 고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너무나 바쁘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잊고 현실에 충성하면서 살아오는 동안에 우리는 깊은 웅덩이 속에 들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주시기를 원하시지만 우리가 적절히 반응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것을 경험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날만한 때가 되면 마음에 놀라운 변화가 오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무엇인가 중요한 계기가 있기를 원하는 사모함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깨닫게 하신 그 말씀에 지속적으로 씨름하면서 그 말씀이 하나님과자기와의 관계를 치료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신실함이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자기의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셨던 가르침 일흔 번의 일곱 번씩이라도 용서하라고 가르쳐주신 그 가르침이 바로 하나님자신이 우리에게 하시는 행동들을 통해서 나타난 것임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매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 은혜를 경험하면서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치료하고자하시는 그 계획들을 보게 되고 그리고 그것을 깊이 받아들이게 되는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나면 언제나 하나님은 거기 계셔서 마치 우리가 언제 범죄 했느냐고 하는 것처럼 다시금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맞아주시고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패역과 주님의 등진 우리의 변덕을 능가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리고 자기의 백성인 우리를 향한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의 기대를 읽게 되는 것입니다 참된 회개와 정직한 통회를 통해서 하나님은 이처럼 당신과의 관계를 고치심으로 우리는 이제 이 깊은 영혼의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께서 이제 사람들과의 관계를 고치기 시작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뜨려지고 나면 반드시 사람과의 관계의 균열을 초래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뜨려진 채 살아가는 고갈된 사람은 항상 공격적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망가졌고 깨뜨려졌으면서도 온유함과 하나님의 은혜에 넘치는 심성을 가진 사람들을 본적이 있습니까? 그들은 공격적입니다 파괴적입니다 그리고 도전적이고 누구하고도 부딪히고 싶어 하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아주 공격적이고 가해적인 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그가 치료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마음과 성품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자기가 당하고 있는 고통과 견디기 힘든 시련의 웅덩이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온 것 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사람을 원망하고 사람을 탓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고쳐지면서 다시금 주님의 사랑을 받게 될 때에 그는 비로소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인지 자기에게 미친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인지를 깨닫게 되고 그들을 긍휼히 여길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피해를 받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걸어가서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그들에게 은혜를 구하는 변화들은 언제든지 일어납니다. 마음에 맺힌 것을 풀고 쏟아 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받은 자신이 그 관계를 치료하는 도구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도구로 작동했던 그 사람이 주님과의 관계가 고쳐지고 나니까 망가진 사람들과의 관계를 고치는 훌륭한 도구로 사용되는 사람들로 만들어주십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고통에 있는 곳에 평화를 심게 하소서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거기서 인간이 얼마나 불쌍한 존재인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주님을 너무나 필요로 하는 인간들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있는 죄악 된 경향성으로 인해서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너무나 필요 로 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한사코 거절하며 자기의 욕심을 따라 각기 제 길로 가는 인간들의 그 운명적인 연약함을 보며 그리고 바로 하나님이 자기도 그와 같은 사람 중의 한사람인데 자기와 같이 쓸모없는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화목을 등지고 살아가는 불행한 자신 실패밖에는 그 어떤 것도 자신의 인생 앞에 기다리는 것이 없는 자신을 위해 하나님이 자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을 깨닫고 그러면서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하나님과의 평화가 없이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내가 만난 하나님 내가 그 수많은 불순종과 죄 가운데 흑암의 그늘과 깊은 웅덩이 속에서 용서하고 나를 사랑해 주신 그 하나님이 내가 미워하던 사람들에게도 너무나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한때는 자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이 녹아지고 그래서 하나님이 통곡하셨음을 경험했는데 이번에는 하나님이 자기를 고치고 나니까 사람들이 너무 불쌍해 보이는 것입니다 나를 끊임없이 미워하는 자도 전혀 미워할 수 없고 나로부터 그렇게 미움을 받으면서도 조금도 변화될 수 없는 그 숙명적인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기의 고결한 몸을 산산이 부수신 것은 이러한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 인도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치료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전도를 잘 합니다 그리고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영혼에 대한 사랑은 자신이 그 사랑을 받아본 사람들 말고는 그 사랑을 증거 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생전처음 혹은 실로 오랜만에 그 강퍅하던 마음이 영혼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큰 사랑 그리고 내가 그렇게 미워하고 나와 산산이 부서진 관계 속에서 한을 품고 살아가는 그 사람들도 사실은 하나님 없이는 아무 소망이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 만 바라 볼 찌라.
이전에는 자신이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부당하게 하나님을 원망했으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치료받고 나니까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사랑하는 자녀들의 세미한 음성에도 귀를 기울이고 심지어는 기도하기 전에도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시는 어머니와 같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깊이 경험하고 그러면서 그런 사랑을 받고 나니까 나와 깨뜨려진 관계 속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그 수많은 가족들이 자기를 만져주신 것과 동일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혼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이기적인 사랑은 자기를 중심으로 오그라드는데 아가페의 사랑은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부으시면 내 마음에 머물러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나가는 것을 하나님이 경험하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누군가 미워하고 계시지요 여러분들의 인생이 수세미처럼 구겨지고 버려진 휴지조각처럼 인생의 고난의 웅덩이에 집어던져졌을 때는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죽이고 싶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원망 합니다 그러나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망가지는 것은 여러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만 지속적으로 파괴 됩니다 복수심으로 불타는 사람 폭력으로 내면의 세계가 가득 찬 사람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없다. 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 그 문제가 그 사람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잘못 살아온 여러분 자신에게 모든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정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묶어두었던 사람들을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푸셔야 합니다. 그들이 용서를 빌지 않아도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는 내가 망가뜨리고 미움은 그들이 당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것이 나의 악함 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숨겨진 칼을 내려놓아야합니다 그러면서 진심으로 화해해야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나의 모든 고통과 고난과 시련의 원인입니다 라고 하는 신앙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반쯤은 하나님과의 관계와문제가 있지만 반쯤은 그 못된 인간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동안에는 치료는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수많은 원수들이 그들을 시련 속에 몰아넣어 죽이려고 했지만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사람들은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사자굴속에서도 풀무불속에서도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서도 하나님의 사람은 건져 내셨습니다 사람을 원망하는 것들을 다 버리고 하나님 앞에 부지런히 무릎을 꿇고 주님 이제 내가 여기 있습니다. 이제 내가 하나님 앞에 독대 합니다 내게 무엇이든지 다 말씀 하십시오 아직까지도 내게 남아있는 좋은 것이 있다면 이것은 주님을 향해 진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신 당신의 전적인 은총이며 지금 내가 경험하고 있는 고통과 견디기 힘든 시련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나의 죄와 악함 때문입니다 라고 기도하면 주님이 우릴 위해 놀랍게 부서진 사람들과의 관계를 치료 하십니다
우리 죄와 강퍅함 주님께 기도하니
우리 민망히 여기사 치료의 은혜 허락 하소서
그렇습니다. 여전히 어떤 사람들이 그대들을 미워한다고 칩시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지금 문제는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못 받기 때문이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뜨려지고 영혼의 어두움이 찾아왔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 아닙니까? 사람이 자기들을 용서하는 내 마음을 몰라주고 더 미워하고 사랑을 복수로 갚는다고 할지라도 주님과의 관계가 고쳐진 사람들에게는 피할 주님의 피난처 은신처 그리고 은밀한 장막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하신 그 아름다운 피난처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사람들과의 관계가 고쳐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을 보내셔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고치고 나면 자기와의 관계를 고치십니다. 이렇게 깊은 시련을 통해서 고난을 당하고 영혼의 깊은 침체 속에 장기간 있던 사람들은 아주 이율배반적인 심리가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죽어라 자기만 사랑하고 다른 사람생각을 하지 않고 모두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입니다 그런데 그가 진심으로 자기를 사랑했느냐하면 아닙니다. 자기를 용납하지 못하고 자기를 학대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미워하고 악한 일을 해서라도 다른 사람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이 어느 날 양심의 가책이 오고 나면 머리를 벽에 치면서 나쁜 자식 그러면서 자기 스스로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가 주님을 깊이 만나기전에 깊이 시달렸던 것이 열등감 이었습니다 물론 공부를 뛰어나게 잘한 것은 아니었지만 창피할 정도로 못하지도 않았는데 그렇다고 아주 뛰어난 정도는 아니지만 남들만큼 운동도 했는데 나중에는 집이 가난했지만 잘 해결되었고 나보다 못사는 아이들도 많고 그런데 하여튼 그렇게 열등감 이 굉장히 오래 갔습니다 심지어는 나는 왜 우리 반에 학생이 70명인데 53번인가 그것가지고도 열등감이 있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키가 커서 바보처럼 보이는 걸까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바보같이 볼까 해서 사람들 앞에서 말을 못 했습니다 그래서 두 세 사람만 모이면 가슴이 벌벌 떨리면서 말을 더듬기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자기 자신이 싫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주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깨닫고 나니까 내가 비로소 하나님이 소중하다고 그러면 소중한거 아닙니까? 하나님이 소중하다고하면 소중한겁니다 하나님이 쓸모없다고 하시면 쓸모없는 겁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나는 세상이 최고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까 세상은 소중한 것이 아니구나. 그리고 나도 쓸모없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주님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고쳐지고 나니까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이렇게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열등감에 빠질 염려는 거의 없습니다. 교만해질 염려는 좀 있는 것 같습니다 나처럼 사랑받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이런 겸손해질 염려는 있을지 모르지만 열등감에 빠질 염려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너무너무 소중한 것 입니다 그래서 미워하던 옛날의 나와 악수하고 실패한 과거를 가지고 살아왔지만 그것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패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할 수밖에 없었지 나는 포기한 인생인데 주님은재생의 기회를 주셨지 자기의 약한 것을 사도바울이 자랑한다고 한 것도 그런 것입니다 약한 것은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그런데 자랑 하니까 그 자랑한 것이 반드시 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강하게 만드셨던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하나님 앞에 관계를 치유 받고 나니까 제일 용납할 수 없는 자기의 모습과 화해하는 것입니다 성질이 못 됐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화의 의미를 더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과 회복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과 화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볼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도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은혜를 경험하고 나니까 자신과의 관계가 고쳐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니까 웅덩이 속에 있는데도 거기가 너무 천국인 것입니다 그렇게 망가진 우리와의 관계를 고쳐주시고 그다음에 망가진 사람들과의 관계를 고쳐주시고 또 자기와의 깨뜨려진 관계도 고쳐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웅덩이 속에서라도 주님이 나와함께 하시면 내가 잘 지낼 수 있다고 받아들여지는 마음이 생겨나고 나니까 어느 날 눈을 뜨니 그 웅덩이에서 하나님이 나를 건져내셔서 푸른 풀밭 시냇물이 흐르는 곳에 나를 두시고 목양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놀라운 경험들을 깨닫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이 빠진 웅덩이는 여러분마다 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깊이와 그 상황도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동일한 것은 여러분모두에게 밧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거기에서 건져내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사경회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념하기위해모인 자리가 아닙니다. 고난 받으신 주님의 고통을 우리가 매일저녁 고통 받자고 모이는 사경회가 아닙니다. 주님이 말씀하실 것이고 그렇게 주님이 말씀하시면 우리가 어떤 웅덩이에 빠져있든지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주시고 거기서 주님의 큰사랑을 만나고 예전에는 깊은 웅덩이 속에서 가슴을 치던 사람들이 이제 다시 거기에서 끌어올려져 새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움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람들이 되게 하려고 하나님이 이런 사경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경회에서 이렇게 하 나님이 여러분들을 온전히 고치시는 은혜의 역사들을 경험하고 이제껏 까지 주님의 마음에 근심과 고통을 드렸던 옛 삶을 십자가아래 묻고 여러분들이 여기에 살아있음에 하나님께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드릴 수 있는 그런 생애로 다시 태어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