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을 잊지 못하시는 하나님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 하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 49:14-15)
녹취자: 허혜숙
19세기 마지막을 살았던 위대한 복음 전도자 도하이튼 무디에 대해서, 소위 디엘 무디에 대해서 여러분들은 들었을 것입니다. 그 분이 어렸을 때 아주 장난이 심하고 말썽을 참 많이 피운 적극적인 소년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아주 철저한 청교도 집안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때려서 교육을 시켜야 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디가 얼마나 매집이 좋은지 어머니가 팔이 휘도록 막 두드리면 ‘엄마 안 아픈데요’ 그래서 엄마를 더 약 오르게 한 장본인이었습니다. 그 말썽쟁이 무디가 생애의 잊을 수 없는 한 만남을 갖게 되었는데 초등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이 분은 때리지 않는 교육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는 자매였습니다. 그리고 무디에게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바로 이 선생님에게 벌을 받는 일이었습니다. 매도 때리지도 않고 잘못하면 방과 후에 홀로 남겨놓고 이 무디에게 인격적으로 천천히 말을 했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무디를 사랑하는지, 그리고 무디는 결코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얼마나 큰 기대를 자신이 무디에게 갖고 있는지, 그런 사랑을 낱낱이 말할 때 이 어린 무디의 마음은 어머니에게서 회초리를 맞는 것보다 더 극심한 고통에 마음이 아팠다고 그렇게 술회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때로는 우리를 징벌하시고 환란과 시련 가운데서 연단하셔서 우리를 정신 차리며 살도록 만들어주시기도 하지만 그러나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주님이 우리를 향해 가지고 계신 어머니와 같은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게 하심으로서 우리에게 마음에 큰 고통을 불러일으키셔서 우리로 하여금 바른 길로 돌아오게도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런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습니다. 아담도 하와도 모두 그 형상과 모양을 하나님께로부터 물려받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자신 안에는 여성성도 있고 남성성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그 하나님 아버지는 확실히 오늘날 우리들의 인간세계에서 경험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만을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를 해석하려고 해서는 제대로 해석이 안 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차라리 어머니에 가까운 아버지라는 사실을 오늘 이 성경을 통해서도 우리는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이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마치 어머니가 된 것같이 말씀하셨고 또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백성을 낳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오늘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후일에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아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것을 예고하면서 동시에 그렇게 나라가 모두 망하고 하나님 앞에 징벌을 받아서 백성들이 노예처럼 산산이 흩어지게 되었을 때 그들이 당하게 될 절망과 그리고 사실은 그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총이 그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이 다시 조국으로 돌아와서 나라를 세우는 예가 없습니다. 하물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제 멸망시키고 그 나라를 초토화 시킨 백성들은 바벨론이었습니다. 그런 강력한 군대를 가진 나라에 의해서 멸망당한 민족이 다시 이 고토로 돌아와서 다시금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를 만든다고 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나오는 이 대목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적인 말씀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로 말미암아서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징벌하여 포로로 끌려가고 나라가 모두 흩어지게 되었을 때 그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하나님의 은혜는 사라지고 주님의 긍휼은 찾아볼 수가 없었으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백성이라고 하는 여러 가지 많은 표징들도 이제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방인들 가운데서도 찌꺼기와 같은 존재들이 되어버렸습니다. 상황은 그들로 하여금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잊으셨고,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고 말하기에 충분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늘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시온이 이제 하나님이 우리를 잊으셨고 그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고 말할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다른 대답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기의 마음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어미가 젖먹이를 어찌 잊을 수 있겠으며 자기의 태에서 낳은 아이를 그 엄마가 어찌 버릴 수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인간이라도 그것이 불가능할진데 하물며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하나님이 과연 너희를 버릴 수 있겠느냐’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남자이기 때문에 어머니가 되어 본 적도 없고 앞으로 될 가능성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오랜 동안 아이를 배속에 품고 열 달 가까이 자라다가 온갖 고생 끝에 그 아이가 태어나서 이 세상에서 만난 첫 번째 사람으로서 그 어미의 가슴팍을 헤치며 젖을 물고 하루 이틀 자라는 그 아이를 그 어미에게서 빼앗는다는 것은 마치 그의 생명을 빼앗는 것보다 더 잔인한 것이 될 것입니다. 아마 그가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목숨을 걸고 그 어린 젖먹이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며, 만약에 그 아이를 강압에 의해서 빼앗기게 되었다고 할 것 같으면 그 어미의 눈에는 피눈물이 흐를 것이며, 인생에 아무런 기쁨과 즐거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여기에서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될 것입니다. ‘도대체 이스라엘 백성이 무엇이관대 하나님이 이처럼 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집착하시는 애정을 보이시는 것일까? 왜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독특한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이방인과 모두 섞여서 멸망당한 이 백성들을 향해서 그치지 않는 집착을 보이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물론 우리는 그 이유를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불가능할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사실 하나는 가치가 없는 이스라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셨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랑의 마음이 오늘 이 시간에 이러한 예언을 선지자를 통해 쓰게 하셨다는 것 외에 우리들이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사랑을 말씀하실 때마다 되풀이해서 추억하셨던 것들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속박에서 건져내신 구속의 사건과 두 번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광야에서 지내시던 그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사이에 아름다운 교제를 추억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자주 말씀하신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벌써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특별한 민족이며 자신의 매우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라는 것을 말씀하실 때마다 하나님께서 크고 능력 있는 편 팔로 애굽에서 그들을 건져내신 것을 상기시켰습니다.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되어서 광야로 탈출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만 잊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 있어서도 매우 의미심장하고 기억 할 만 한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어떤 백성들에게도 쉽게 베푸신 적이 없었던 독특한 기적과 놀라운 역사를 베푸시면서 이방의 신과 우상의 숭배로 가득 찬 애굽의 땅위에 거기에서 종살이 하고 있는 히브리 민족에게 하나님이 상천하지에 유일한 하나님 아버지라는 사실을 보이시기를 마다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시는 과정을 통해서 커다란 재앙과 징벌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주적인 형벌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애굽 사람들 속에 있었던 헛된 신앙심들을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히브리 민족 속에 잠들어있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경험을 새롭게 일깨우심으로 한편으로는 애굽의 백성들을 굴복시키시고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격려하심으로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땅 압제에서 풀려나오게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범사에 그러하시지만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 애굽에서 건져내시는 이 일을 위해서 공을 들이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 흠 없는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백성들을 죽음의 재앙에서 면하게 하심으로 애굽을 탈출하여 광야에 이르게 하신 이 사건을 하나님이 늘 추억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과 자신과의 관계를 아이를 낳은 것과 부모의 관계에 비유하셨습니다.
특별히 호세아서에서 하나님은 광야 생활 초기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나누던 그 교제의 때를 특별히 생각하시면서 이스라엘을 버릴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토로하셨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은 비록 하나님을 멀리 떠나있었지만 그 광야의 때에 어떻게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연모하며 연애하듯이 그렇게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으며 따라다니고 순종하였는지를 반추하였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의 생활은 온전한 순종의 생활이거나 혹은 온전한 복종의 생활은 아니었습니다. 광야로 나온 지 얼마 안 되면서부터 그들은 원망과 불평으로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우상숭배와 여러 가지 많은 죄들로 그들을 구속해 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원수로 갚는 죄들을 저질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과 함께 지내던 때를 여러 번 추억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왕을 세운 사건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서 백성들이 왕을 세우게 해 달라고 아우성 했을 때 주님이 그 제도를 허락하시면서도 그것은 사실 하나님이 인정하셨기 때문에 허락한 것이라기보다는 마음이 아파하시는 가운데 상한 마음으로 분노하심으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왕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왕을 세운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은 훨씬 더 이방의 나라들의 모습과 유사하게 닮아갔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님께 순종하는 왕이 나라를 다스릴 때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도 하였지만 그러나 왕을 세운 후 이스라엘 역사는 좋을 것이 별로 없는 역사 속으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패역한 왕들이 수많은 백성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해 가는 것을 볼 때마다 하나님은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분적으로 불순종하고 하나님께 저항했지만 그래도 하나님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고 경건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왕이 되tu서 다스려주시는 것을 기뻐하던 광야의 때를 주님이 잊으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아 이방 민족의 압제를 받아서 뿔뿔이 포로로 끌려가고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서 하나님의 은혜가 이제는 사라졌고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라고 하는 그 지점에서 사실은 하나님이 그들의 죄악 때문에 보여주셔도 그들이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 아버지의 속마음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다름이 아니라 젖먹이를 품에 안은 그 자식을 향한 어미의 마음이며 자기의 태에서 아이를 낳은, 그 낳은 자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악하고 부패한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그들 가운데 있는 가장 강력한 사랑의 집착이 무엇인가를 찾고자 하셨을 때 그것이 바로 어린아이를 젖먹이고 있는 젖먹이 어린아이의 어미, 그 어미가 자식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그 마음이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성질 상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가지고 계신 그 마음을 가장 많이 닮았다고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무디어 질대로 무디어진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아버지께서 우리를 향해서 갖고 계시는 마음을 생각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왜 이 세상을 만드셨을까에 대해서는 적절한 대답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왜 우리와 같이 쓸모없는 인간을 사랑하셨을까에 대해서는 적절한 대답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왜 그 분이 그렇게 사랑하셔야 했던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고 바로 나였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우리는 그저 바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이 확실히 알 수 있는 사실 하나는 만약에 이 구약의 시대에 그 하나님이 하나님의 은혜가 모두 끊어지고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았던 것 같은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속하시고 광야에서 그들과 함께 교제하신 추억 때문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사랑의 집착을 버리실 수 없었다고 할 것 같으면 오늘 우리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큰 능력과 위대한 권능의 팔로 온갖 재앙과 권능을 보이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구속하신 것은 그런 놀라운 이적과 기적보다도 더 놀라운 사랑의 기적으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천둥과 번개와 우박이 치는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재앙을 통해서 바로가 무릎을 꿇게 함으로 구속받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물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어린양으로 못 박으심으로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바르시고 우리의 그 죄의 멍에에서 구속하심으로 사단의 권세를 잠재우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서 못 박으셔서 우리를 구속해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어떠함을 알고 그리고 구원받은 이후에도 우리들이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오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공로를 의지해서 구원받은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더더욱 어머니와 같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고 우리들이 불순종과 죄악 가운데서 인생의 갈 길을 잃어버릴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서 모두 사라졌고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아서 내동댕이쳐졌다고 생각되는 바로 그 때에 우리를 향한 어머니로서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나게 하심으로서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만들어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과 나눴던 교제의 축복이 하나님의 마음에 복 된 것이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이었다고 할 것 같으면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피로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하신 이후로 하나님의 성령과 동행하며 주님과 교제를 나누면서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하나님만을 온전히 사랑하며 순결하게 하나님 한 분께만 우리의 사랑을 바치지 못하며 살아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우리가 우리의 모든 것을 바쳐서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순결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 분과 화목을 유지하며 살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러나 우리는 한 번 더 하나님 없이 광야와 같은 우리 인생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으리라고 한 번도 생각한 적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은 인생의 어떤 때를 지나고 있습니까? 혹시 선지자가 바라보고 있는 이스라엘의 때와 같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모든 은혜는 그치고, 여러분들의 인생은 내동댕이쳐지는 존재가 되었고, 하나님의 도움은 끊어졌고, 그리고 여러분들의 영적인 생활 어느 곳에서도 여러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어두운 밤과 같은 때를 지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선지자가 전망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고난의 때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누가 포로로 끌려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하나님이 여전히 그들을 버리시지 않으셨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민족에게 압제를 당하며 노예와 다름없는 삶을 살아가는 나라를 잃은 설움에 가득 찬 백성들,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를 하려고 해도 더 이상 제사 할 수 없게끔 예루살렘으로부터 격리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며 하나님이 여전히 그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고 계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선지자가 전망하고 있는 이때에 그들은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셨고 이제는 하나님의 은총은 다하였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젖먹이를 향한 어미의 마음이 바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심으로서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되는 그 때가 사실은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요 하나님의 은혜가 그쳤다고 생각되는 그 때가 사실은 주님이 은혜를 부어주시고 싶어 하시는 때라는 사실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깨닫게 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혹시 이스라엘의 백성과 같은 때를 여러분은 지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 망하는 증거를 받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상하도록 매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로 여전히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러분들 가운데는 있을 것입니다. 몸은 반듯하게 신앙생활 하면서도 마음은 하나님을 떠난 지 오래되었고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고통과 아픔이 크면서도 이상하게 그 아픔과 고통을 통해서는 도저히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여러분들 중에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오늘 하나님께서는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어머니의 심성으로 아무것도 모른 체 가슴을 풀어 헤치며 젖을 무는 어린아이를 향한 어머니는 그 어린아이의 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데 있어서 유일한 희망이요 그리고 유일한 사랑을 받을 대상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증거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돌아올 수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그들을 어머니로써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가르쳐주시며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들에게로부터 사라졌다고 생각되는 그 때에 하나님이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를 갈망하시는지, 그리고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간절했었는지 하나님이 몸소 보여주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휘두르는 몽둥이와 혹은 가시에 찔리는 고난을 통해서도 하나님 앞에 돌아올 수 없었던 사람들은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이 어떠한 사랑으로 여러분들을 낳으셨고, 낳은 여러분들을 어떻게 양육하셔서 오늘 그래도 거미줄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들로 여기까지 세워주셨는지 추억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과거를 회상하고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얼마나 끊을 수 없는 숙명적인 사랑의 사이인가를 기억하면서 우리들이 그 하나님의 사랑이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과 편견들을 담대하게 내어버리는 그런 거룩한 날이 되어야 합니다.
어디선가 들리는 주님의 음성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내 것이라
어디선가 들리는 주님의 음성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어둠 속에서 건져내어 주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하셨고 얼음장 같이 얼어붙었던 여러분들의 마음을 여셔서 우리를 향한 자기의 사랑을 보이신 그 사랑은 애굽에서 위대한 이적을 행한 그 사랑보다 못하였습니까? 곤고하고 상처받은 마음으로 고난의 골짜기를 지날 때 우리의 믿음으로 목을 축이시려고 은혜의 샘을 터트리시고 이제는 아무도 의지할 바가 없이 벌판에 버려진 것 같은 존재가 되었을 때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가 홀로 이 광야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신 주님의 교제의 그 놀라움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이시고 생수를 터트리신 것보다 작은 은혜였다고 우리가 말할 수 있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그 사랑을 필요로 할 줄도 모르는 우악스럽고 무지막지한 죄인들을 위해서 흠 없는 자기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이 온갖 섬김을 다하시고 마지막에는 순결한 자기의 옥체를 산산이 부숴서 우리를 위한 대속의 제물로 삼아주셨습니다. 우리를 그렇게 해서 주님이 낳으셨습니다.
인간의 어머니는 단지 잠시 해산의 고통을 통해 자식을 낳았지만 아버지는 단지 고통이 아니라 아들의 죽음을 통해서 그 피로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해산의 고통을 인간이 안다면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신 하나님의 우리를 낳으신 그 구속의 고통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그 사랑으로 구속하시고 우리는 즉시 이제껏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연애의 기간으로 들어갔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압제에서 벗어 나와서 자신들이 마음껏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었던 이 놀라운 은혜의 감격함이 하나님을 기뻐하였던 잠시의 연애기간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들도 또한 주님만이 우리 없이 살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주님 없이 살 수 없다고 고백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입술의 말이나 그리고 머리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고백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의 기쁨이 되시고 우리가 주님의 기쁨이 된 것, 그래서 어머니의 사랑에는 눈물을 흘릴 수 없었던 무지몽매한 사람들도 어머니처럼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그 피로 우리를 구속하셔서 우리를 태어나게 하신 아버지의 사랑에 목 매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낳는 데만 그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낳아서 그 복음 안에서 태어나게 하셔서 우리를 거친 이 세상에서 걸음마부터 배우게 하셨습니다. 단연코 그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불순종하며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끊임없는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돌이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열심 때문에 쉬운 길이 아니었고 자기를 그 피로 구속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사랑에 어울리는 삶을 살려고 신앙대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신앙을 지키기 위한 길이었기 때문에 그 길은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패역하게 하나님을 등지며 살아간 사람들에게도 종종 순종하던 때가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고 자기를 광야와 같은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피 묻은 그리스도예수의 사랑을 아는 사람들도 때로는 불순종과 죄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걸음마를 배우며 넘어지는 일도 경험하게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인생의 전 과정, 우리가 걸어왔던 길, 걸어가고 있는 길, 그리고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걸어가야 할 길도 모두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의 피로 구속하여 낳으셨어야 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아이가 그 복음 안에서 태어나서 어떻게 걸음마를 배우고 어떻게 넘어지고, 어떻게 피투성이가 된 가운데에서도 포기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붙잡으면서 여기까지 걸어와서 오늘 때로는 찬란한 진리의 빛 아래, 때로는 곤고한 인생의 먹구름 아래, 캄캄한 어두운 밤바다와 같은 풍랑 이는 바다 한 가운데 있게 되었는지 주님의 추측의 범위를 우리의 인생은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한 번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저항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우리를 향한 사랑에 자기를 묶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실하지 않은 인간들에게 약속을 지키심에 있어서 신실하심으로 당신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보이셨고 고멜과 같이 뿌리치며 세상의 즐거움을 향해 더러운 배역의 길로 걸어가는 우리 인간들을 찾아오셔서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보이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한 이러한 간절한 사랑의 집착을 포기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우리도 역시 포기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 한 분밖에는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 진정한 희망이 없다고 고백하며 그 분께로 돌아올 때까지 주님은 어찌하든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징벌을 통해서 우리를 다루시므로 그것이 가능하다면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을 통해서도 불가능했던 우리들이 우리에게 거룩한 감동과 어머니로써 아버지의 사랑을 생각나게 하심으로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다면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은혜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 앞에서 갈 길을 몰랐던 사람들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그 끔찍한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피 흐른 징계를 통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인간들이 흐르는 눈물 앞에서는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알고 돌아가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그래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젖먹이를 품에 안은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자기의 품을 뿌리치고 하나님을 버리고 먼 곳으로 가려고 하는 우리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이 사랑의 집착을 어찌합니까? 우리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이러한 사랑에 대해서 반응해야 하고 주님이 우리를 끊임없이 부르시는 이 돌아오라는 음성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인가 분명한 어조로 하나님의 그 부르심에 대핵서 말해야 합니다. 누구입니까? 태어나서 여러분들이 어떤 완전한 사람으로부터 이런 종류의 사랑을 받아 보았습니까? 사람들 속에 오고가는 사랑은 결국은 캐들어 가고 뒤집어보면 자기를 위하는 범위 내에서의 사랑일 뿐입니다.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도 사실은 자기의 이기심에 기초한 사랑이고 자기의 행복을 위해서 그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베푸는 사랑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런 어미의 마음으로 유모의 심정이 되어서 자신에게로 돌아오기를 갈망하며 부르짖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한 번 보십시오. 주님이 이런 사랑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희망이 없는 절망의 구덩이 속에서 건져 내신 적이 한 두 번이었습니까? 그렇게 건져낸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그 구속의 공로를 찬성하며 그 분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의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와의 관계에서 떨어져나가서 자기 없이 살아가는 그 모습이 하나님에게는 가장 고통스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회개하는 것을 언제나 기뻐하십니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고 회개한 후에는 다시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드렸던 고백과는 달리 세상을 향해서 뛰쳐 갈 것을 아시면서도 진실 되게 고백하고 회개하는 그 순간에 기뻐하시는 이유는 바로 이처럼 목메이도록 자기의 자녀를 이 세상에 놓아두려고 하지 않은 하나님 아버지의 어머니의 마음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