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마음대로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창1:3)
녹취자: 윤은정
이제 처음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는 광경을 이제 최초의 명령형을 가지고 원래 히브리어 성경에는 명령형이 아니라 단축형이라는 그 형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여기서 명령형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그게 인제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 얘기입니다. 이 후에 이루어지는 모든 창조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공식을 따라서 계속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있으라, 어떻게 되어라’ 그대로 되어져 나아가는 것을 보여줍니다.
창세기를 열자마자 우리들이 만나는 하나의 커다란 감격은 바로 그것입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까 빛이 있게 된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하나님에게는 그 빛을 만드는 과정이나 이 모든 것이 필요 없습니다. 주님이 ‘빛이 있으라’ 하면 있습니다. 빛이 생겨났을 때 사람들이 그 빛을 가지고 어떻게 이것이 없는데서 있는 빛이 생겨났을까를 아무리 해명을 하려고 애를 써도 해명할 수 있겠습니까? 공중에는 새가 날고 주님의 이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 공중은 새한마리 날아다니지 않는 하늘이었습니다. 공중에는 새가 날고, 그러니까 공중에는 새가 날아다녔습니다. 왜 조금 전까지는 빈 공간이었고, 정막하기 짝이 없는 공간이었는데, 새가 날아다닐까? 사람이 상상력을 아무리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추론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물속에는 고기가 다닐지어다. 어떻게 그저 파란 물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는데, 그것도 고기 알이 아니라 진짜 고기가, 그런 싱싱한 횟감이 바다를 막 둘러요. 그런 역사가 일어났을 때 어떻게 그 사이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신앙이 아니면은 설명이 안됩니다.
이 사실이 믿는 사람들에게는 즉시 커다란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왜 위로가 되냐면은 천지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그 하나님이시란 말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가운데에도 계십니다. 그 하나님의 능력은 시간이 흘러감으로 말미암아 쇠퇴하지도 않고, 또, 이전에 행하셨던 그런 놀라운 일들을 지금은 행하실 수 없으리만치 능력이 사라지신 것도 아닙니다. 당신이 마음먹으시면, 당신이 하고 싶은 데로 그 일을 행해 나아가시는 것입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까 빛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은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이 어떤 의지를 갖고 계신가? 어떤 뜻을 가지고 계신가?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그 일을 타고 좇아가기만 한다면 주님이 이루어 가실 것이고, 그렇죠? 만약에 주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을 거스린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반듯이 성취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 우리들이 인생을 살면서 미친듯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실까? 그게 하나님의 뜻일까? 이렇게 자꾸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 입니까? 예수를 오래 믿어서 소심해져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지가 이처럼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을 동반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지를 거스려서는 우리들이 축복을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살수 없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의지가 있는데, 하나님의 의지를 너무나 거스리니까 거기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호하시기 위해서, 거룩하심을 보호하기 위해서, 진노하시면서, 그러면서 자기 의지를 가로막는 사람들을 쓸어버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게 중요한 게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인생을 가장 힘 안 드리고 사는 비결 가운데 하나는 뭐냐하면 이런 하나님의 의지만을 따라가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게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지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 되야하는지 이제 알잖아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여기에 있는 나를 통해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하시는가?’ 이런 것에 대한 대답을 안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사는 게 아닙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냔 말이죠. 하나님의 의지를 찾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아직 안 데려가시고 여기에다 날 두셨을까? 그리고 나를 통해 가지고 계신 의지가 무엇일까? 다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의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의지는 이런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이루었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면 있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하나님의 의지가 그대로 성취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서 사는 그 인생은 얼마나 피나고 고통스러운 인생인가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사는 것은 하나님이 능력이 모자라시기 때문에 거스림을 당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고 ‘언젠가는 이 녀석이 내 의지를 이해하겠지. 지금은 비록 모르지만 좀 더 철이 들면 내 뜻을 이해하겠지.’ 하면서 하나님께서 참으시면서 그들에게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의지는 무엇입니까? 저는 여기서 온갖 관심이 있는데, 교회 이전 아닙니까? 교회 이전하는 것을 막 생각하다가 어디 강연하기로 가기로 해놓고 깜빡 잊어먹어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온 신경이 거기에 가서 있습니다. 어느 순간에 가만히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가려고 하는데, 자꾸 어려운 일들이 자꾸 가로막힐까? 제가 하나님 앞에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좋은 자리에 가서, 길목 좋은데서, 지금 사람들 긁어모으려고 하는 그런 욕망을 만약에 내가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다면은 이것은 출발부터가 하나님의 올바른 관계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막아주시는 것이 잘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만약에 그 교회를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주님이 우리를 거기로 보내시려고 의지를 가지고 계시다면 우리는 반듯이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그랬습니다. 지금 이렇게 하나님 앞에 많이 기도하고 매달려야 된다는 것은 쉽게 이야기하면은 좋은 교회에 가고, 좋은 땅을 차지해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게을러서 우리가 태만하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아서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이루시지 않을까봐, 그게 염려라는 것입니다.
이 창조는 혼자 행하셨습니다. 혼자... 누구 도움을 받았습니까? 누가 있어야지 도움을 받으시지... 성령하나님도 그때 없었습니다. 아버지도 아직 안 태어났습니다. 그때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어요? 하나님 홀로하신 일입니다. ‘빛이 있을 지어다.’ 빛이 쫙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하나님이 그렇게 행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인생사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좀 더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사람이 되고, 우리교회가 좀 더 영혼들을 많이 구원하는 교회가 되고, 우리 교회가 좀 더 정결한 교회가 되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혼자 하실까요? 우리랑 함께 하실까요? 함께하십니다. 함께... 그런데, 이제는 천지창조를 이런 식으로 우리의 교회를 이전하는 이런 것들이 이루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협력하여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주님이 가장 선하신 의지가 무엇인지를 보여 달라고 기도하고, 그 의지를 파악하고, 하나 된 그 의지대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갈망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주님이 영광가운데 당신의 의지들을 당신의 사랑하는 종들을 위해서 펼쳐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할 이유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 앞에 요새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일각의 여상추처럼 길지만은 하나님이 더 얼마나 우리에게 더 많이 기도하고, 그리고, 온 교인들이 더 한 몸이 되어서 더 간절하게 그렇게 부르짖어서, 그렇게 부르짖으면서 어떤 결과가 오는지 아세요? 그렇게 간절히 부르짖고 매달리는 동안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세요? 이 속에 있던 더러운 찌끼들이 몸 바깥으로 빠져나옵니다. 그래서 여기서 벗어놓고 새사람만 가자고 그랬더니 그 힘을 쏟으면서 쏟아내는 것입니다. 땀을 흘리면 몸에 좋다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사우나에서 가만히 흘리는 땀의 성분하고, 산을 오르거나 밭을 갈면서 땅을 파면서 흘리는 땀은 성분자체가 틀립니다. 사우나에서는 막 줄줄 흘러내려도 맹물만 나오고, 노동을 하면은 거기에서 노폐물이 함께 거기서 쏟아져 나옵니다.
똑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다 드려서 이것이 우리의 게으름과 그리고 우리의 깨어있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이 안 이루어지면 어떡하나? 지연되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으로 신명을 바치면서 아버지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면서 기도할 때, 우리는 상한 갈대와 같은 심령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어찌할 수 없다 라고 하는 절박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정결해지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 정결한 마음이 되면서 그 기도가 진정한 조국의 교회에 몽우리를 위한 기도로 변화되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새롭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교회를 온전히 새롭게 해서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이전하고 새로워지도록 부르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의지를 향해 주목하도록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의지를 가지고 계십니다. 이제는 창조를 하는 식으로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이 아니시지만, 그런 능력을 가지고 당신이 기뻐하는 자들을 위해서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의지에 협력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 교회, 여기에서도 변화되지 않는 사람들, 어떻게 하면 대충 신앙생활 하려고 하는 사람들, 그런 폼 잡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 목회자의 마음이, 그 사람들이 저를 겸손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교회 자랑하다가도, 변화되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이 쭉 떠오르 면은 ‘내가 뭐, 할 말이 있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넓은데 가가지고 그런 사람들이 꽉 차서, 다리 꼬고, 팔짱끼고, 폼 잡는 교회가 된다고 할 것 같으면은 살아서 뭐라고 그러겠느냐! 그 무슨 하나님 앞에 희망이 있는 교회가 되겠느냐!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번 하나님을 섬기다가 죽는 건데, 누가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섬기다가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신령한 교회 만들고 싶고, 거룩한 성도들 만들고 싶고, 충성스러운 성도들을 만들고 싶고, 그런 교회를 만들고 싶지, 누가 다리 꼬고, 팔짱끼고 말이죠. 하품하는 교인들로 가득 찬 그런 민방위 교육장과 같은 교회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이겁니다. 없죠. 없는데 그렇게 된다 이 얘기입니다.
결국 뭘 보여주냐하면, 교회 안에 그렇게 사람들이 그 교회에 들어올 때에 정말 하나님을 의식하고 자기가 잘못된 교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기를 한번 뒤집어보게 만들어주는 그러한 교회 안에 어떤 신령한 영향력이 존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조명기구 바뀐다고 생기는 문제가 아니고, 강단을 하늘높이 치솟게 만든다고, 종탑을 하늘 꼭대기까지 끌어올리거나, 값비싼 파이프 오르간을 들여놓는다고 생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들이 몸부림치며 아버지 앞에 매달리고 기도할 때에 그들을 기억하셔서 하나님이 그들을 기뻐하셔서, 그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셔서 그 성전 안에 그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그런 일들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그런 축복을 쟁취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헌신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마음이 많이 나뉘어져있고, 우리의 관심이 너무나 분산되어있고, 그리고 이 한 가지 일에 마음을 다 바쳐 하나님 앞에 영혼의 시선을 고정시키는 일들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누군가가 하나님의 교회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때에는 소정의 눈물의 병이 있습니다. 교회의 이전하는 일에서도 주님이 병을 하나 딱, 보이지 않는 병을 놓으시고, 이게 차야지만 되는 것입니다. 차야지만....
하나님 앞에 지금 우리가 얼마나 결정적이고 중요한 기회내지는 그런 분기점을 맞이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기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최대한 당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로 닦고, 갂고, 다듬고, 다듬고, 새 교회로 만들고, 만들고, 만들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신 일들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그것입니다.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의 의지대로 이루어지고 나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셨습니다. ‘아, 참, 좋다. 좋다.’ 그 아름답다라는 말 하고는 다릅니다. 토브라는 말인데 ‘선하다. 참 좋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완전히 당신이 가지고 계신 그 의도가 성취된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 좋다’ 가정주부들이 음식을 막 만들어놓고 한번 먹어 보면서 ‘아, 맛있다.’ 무슨 뜻이에요? ‘다시 만들어도 이렇게 밖에 못 만들겠다.’ 그것입니다. 글을 막 써놓고 쭉 읽으면서 ‘아, 진짜 좋다. 내가 썼지만...’ 나밖에 그런 말할 사람 없죠. 그게 딱 던지는데, 그게 뭐냐 하면은 ‘아, 잘했다. 다시 한번 기회를 줘도 내가 그렇게 밖에 못하겠다’ 하나님이 만들어진 빛을 보시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아더라’ 이렇게 말씀해 주신 것은 하나님의 최상의 만족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의지가 이루어지는 것에는 하나님의 만족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만족하실 때에 함께 만족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사람들은 하나님이 만족하실 때에 불만족하고, 하나님이 불만족 하시는데, 만족해 한단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그렇게 간절히 원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노심초사하며 아버지 앞에 구하는 유일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에요?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시니까...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이루어져야 되지 않겠어요? 우리는 교회가 그리로 가는 것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여기에 살아있는 것도 기뻐하시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에 있을 필요도 없고, 생존할 필요도 없고, 또 우리가 이런 저런 계획을 가질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그 일을 하는데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라는 믿음을 가지고 어찌하든지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주님의 의지가 그대로 이루어져서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의지가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위해서 협력함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질 우리가운데 일들을 보시며 하나님이 만족 해 하시도록 우리들이 오늘 그 일을 이루고자 이렇게 모여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하나님 앞에 아뢰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더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운데 주님의 의지가 그대로 이루어져서 주님이 그 결과를 보고 ‘참 좋다.’ 그러시도록, 우리가 그 성전에 들어갈 때 그 비어있는 성전을 보는 것 보다는, 또 다른 사람들이 거기에 들어가는 것 보다는, 우리가 거기에 들어가는 것을 가장 기쁘게 여기시는 그런 교회가 되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지막으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마음을 주셔서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또 매달리도록 도와달라고 우리같이 기도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