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부 회심집회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마 13:18)
녹취자 : 김미현
여러분이 교회를 다녀도 어떤 사람은 신앙이 깊고 어떤 사람은 신앙이 얕습니다. 신앙이 깊은 사람은 부모님을 잘 만나서 신앙이 깊은 것이 아니라 물론 그런 영향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모든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감동을 받는데서 신앙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 없이는 감동이 없고 깨닫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집중해서 그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려고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입니다. 그래서 특히 설교 시간, 그리고 성경을 읽을 때에는 마음을 집중해서 읽어야 합니다. 집중하지 않고 성경을 10장, 20장 읽는 것 보다는 차라리 정확하게 집중을 해서 10절만 읽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신앙으로 그를 인도합니다. 설교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똑바로 앉아서 그리고 목사님 얼굴을 쳐다보고 그리고 ‘지금 말하는 것이 무슨 뜻인가?’ 그리고 ‘나도 정말 깨닫고 싶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설교를 들을 때 그 때 거기서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 사단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여러분이 말씀을 집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그것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왜입니까? 깨달으면 은혜를 받고 변화를 받아서 새사람이 되기 때문에 그것을 제일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속에 분탕질을 하고 어지럽게 해서 집중을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렸는데 무슨 설교를 들었는지 아무 생각도 안 나고 1년을 다녔는데도 단 한편이라도 설교 시간에 예배를 드리면서 ‘아! 감동이 되었다. 아! 정말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이런 시간이 단 한 번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까 그렇게 집중을 안 하니까 교회를 다녀도 아무런 신앙의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가장 중요합니다. 목사님은 여러분 같은 청소년도 가르쳐봤고 대학생들도 가르쳐봤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절대적인 공부의 시간이 많은 것이 아닙니다. 특징을 발견하면 한 번 할 때 집중하는 시간의 길이가 긴 학생들이 공부를 잘합니다. 그리고 집중한 학생들이 질문이 많습니다. 질문이 많다는 것은 깨닫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너무나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널리 알려진 아주 유명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에게..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천국은 마치 농부가 씨를 뿌리는 것 같다.’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농부가 씨를 뿌렸는데 바람이 확 불면서 씨가 날려서 어떤 씨는 길가에, 어떤 씨는 돌밭에, 어떤 씨는 가시 떨기나무 사이에 어떤 씨는 좋은 밭에 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밭에 떨어졌는데 ‘천국은 그와 같다.’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이해할 수 있는데 제자들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사람들이 있을 때는 창피하니까 못물어보고 다 사람들 간 다음에 예수님께 조용히 여쭈어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 씨 뿌리는 비유가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이 친절하게 제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땅은 마음이고 씨앗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씨가 길거리에 떨어졌다.’라고 하는 것은 이미 열매를 맺을 수 없는 땅에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 때는 지금처럼 아스팔트는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메마르고 딱딱한 밭에 씨가 떨어졌는데 씨가 맺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서 씨가 부서져 버리거나 새가 날아오면 딱딱한 땅에 있는 씨앗는 찾기도 쉽고 먹기도 편합니다. 부드러운 흙 위에 있는 것은 흙도 같이 집힙니다. 그러니까 부리로 조아서 먹으니까 씨를 뿌리나 안 뿌리나 마찬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와서 아무리 교회 오래 다녀도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올라올 때 교회 떠납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올라갈 때 또 떠납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교 올라갈 때 또 떠납니다. 대학에서 사회 나갈 때 또 떠납니다. 그리고 사회 가서 결혼하고 나서 또 떠납니다. 그렇게 자꾸 사람들이 떠나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속에 떨어져서 이 속에서 살아서 성장을 하면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점점 굳어져서 교회를 떠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됩니까? 초등학교 다닐 때는 엄마가 교회 안 나가려고 하면 “맞을래?” 하면 할 수 없이 무서워서 따라다닙니다. 중학교 다닐 때는 “너 그러면 용돈 안준다.” 그러면 할 수 없이 치사하지만 따라다닙니다. 그런데 그 동안에 학교에서는 굉장히 많은 것을 배웁니다. 왜입니까? 이제 점점 어른스러워지고 진화론 배우고 과학을 배우면서 점점 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진실한 성경이 아니라는 생각이 점점 커지고 그런데 이런 것들과 대항할 수 있는 신앙은 안자라는 것입니다. 교회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한 번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정말 마음에 기뻤던 사람, 또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감동을 받아서 눈물을 흘렸던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너무 즐겁고 행복해서 교회 올 때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왔지만 갈 때는 너무 행복해서 다음 언제가 또 교회 오는 날인가 하고 기다렸던 적이 있는지 여러분 자신이 한번 스스로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길가에 떨어진 것처럼 떨어지면 그러면 예배에 수없이 참석했어도 하나도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지지 않습니다. 그 길가에다 씨앗을 포대로 쏟아버렸다고 하더라도 그 길가에서 열매를 맺는 나무가 자랄 확률은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만약 그런 식으로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면 전혀 신앙이 안 생깁니다. 가정의 문화가 기독교적이기 때문에 오래도록 결혼해서도 교회에 출석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적이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 사람은 돌밭에 떨어진 것입니다. 돌이 많이 있는데 돌 위에 살짝 먼지 같은 것들이 날아와서 흙이 덮였습니다. 씨가 떨어집니다. 습기도 있습니다. 양분도 있습니다. 햇빛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식물의 성장의 3대 조건이 다 갖추어 졌습니다. 탁 닿자마자 며칠 지나면서 씨앗에 습기가 베기 시작하면서 싹 뿌리가 돋는 것입니다. 그런데 뿌리가 1cm쯤 내려가고 나니까 아주 척박한 돌멩이밖에 없는 것입니다. 뿌리가 내려갔는데 양분이 공급이 안 됩니다. 그리고 수분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햇빛이 비치니까 그 다음에 잎이 나왔는데 조그만 떡잎이 나왔는데 맨 처음 씨앗으로 있을 때는 양분이 거의 필요가 없지만 떡잎이 나오고 잎이 자라기 시작하면 더 많은 습기와 양분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니까 어른 ?? 커다란 느티나무 같은 것은 하루에 물을 12드럼씩 먹어야 한다고 합니다. 나무자체가 나무가 크면 클수록 많은 양분과 물, 햇빛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 싹이 나다가 그 다음 시들어버리는 것입니다.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어떤 신앙인가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뭔가 깨닫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기쁨도 있습니다. 특히 수련회 같은 것 갔을 때 은혜를 받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 살아계신 것 같습니다. 너무나 기쁩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성경도 안 읽습니다. 기도도 안합니다. 교회에 나오기는 나오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을 안 합니다. 그 다음 마음은 여러 가지 많은 하나님이 안 기뻐하시는 일들에 몰두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핸드폰, 아이폰 많이 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충고하는데 그것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안 하고 어떻게 사느냐? 안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꼭 필요한데만 쓰고 접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책을 읽고 생각 하는데 많이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학생들이 책을 정보가 많은 것 같아도 책을 안 읽습니다. 왜냐하면 학교 다니고 공부하기 때문에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데 남는 시간, 쪼가리 시간은 아이폰, 스마트폰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동영상이나 sns, 소설, 동영상 뉴스 같은 것 있습니다. 책 읽는 것이 쉽습니까? 영상 한편 보는 것이 쉽습니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빨리 빨리 들어오니 편합니다. 그러나 인간을 거대한 기계로 만드는 것입니다. 나방이 날아다니다가 불빛을 보면 아무생각 없이 불빛으로 뛰어드는 것처럼 점점 그런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어떠셨습니까?’ 하는데 목사님이 여러분 만할 때에는 핸드폰, 스마트폰이 하나도 없습니다. 학교 안에 한반에 60명이면 전화 있는 친구가 5-6명밖에 없습니다. TV도 있는 집만 있고 없는 집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따라오기 힘들 정도의 아주 좋은 점들이 있었습니다. 여학생들과 같이 남학생들이 만나면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 만나면 기본적으로 오가는 대화가 문학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설국의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나오는 여자의 이름, 테스의 줄거리, 만약 친구들과 미팅을 하거나 만나러 갔는데 몇 마디 나오는데 아무 얘기도 할 수 없었다하면 그 아이는 거기서 아주 밟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아주 쪽팔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애들이 열심히 책을 읽는 것입니다. 어디 가서라도 말이라도 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입니다. 책을 읽으니까 생각을 자꾸 하게 됩니다. 테스를 읽었는데 집에 가서 가만히 생각하니까 알렉스 생각도 나고 강간당하는 테스의 심정도 생각이 나고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설국을 읽었는데 눈이 하얗게 내리는 설원이 생각이 나고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책을 읽은 것만큼 자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감수성도 예민해집니다. 그리고 거기서 모든 문학 작품 속에는 문학 작품은 우리의 인생에 대해서 답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수한 질문을 던져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인생을 살면서 고민합니다. 그런데 고민하는데 그런 고민을 여러분이 처음 하는 것이 아니라 옛날 사람들이 다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치열하게 싸우면서 그 고민을 해결해 보려고 몸부림을 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데 나는 내 인생에서 고민하는 것이 전부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인간이 고민해야 할 커다란 크기 중에서 내가 하는 것은 만일 우리 인간이 고민해야할 것이 동해바다만하다면 내가 고민한 내용들은 손바닥만한 것밖에 안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문학을 통해서 수많은 의문들을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 자랄 때 초등학교 때부터 기본이 소년소녀 문학전집을 읽는 것부터 시작해서 중학교쯤 들어오면 본격적으로 문학전집을 읽으면서 고등학교를 올라가면 더 열심히 읽습니다. 물론 그 때도 절대로 안 읽는 애들이 절반 이상이었습니다. 아무 생각이 없는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많은 학생들이 그렇게 책을 읽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이런 돌밭이라는 것은 수련회나 아니면 회심집회 가서 은혜를 받습니다. 눈물도 찔끔 납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에 가까이 다가가게 하면서 거기서 계속 영향을 받아야 하는데 스마트폰, 인터넷, 게임 특히 게임, 게임하는 것은 여러분의 정신적 자살 행위입니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말 나쁜 것입니다. 하지 말아야합니다. 물론 여기서 프로게이머로 나가 밥 먹고 살 사람들은 어쩔 수 없지만 하면 안 됩니다. 절대 하면 안 됩니다. 하면 그것이 죄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영적이고 정신적이고 이런 것들에 대해서 발달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어린아이 같은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한번 해보십시오. 그리고 한번 공부하느라 바쁘지만 틈틈이 시간 내서 읽고 헤르만헤스나 이런 책을 한권 읽고 깊이 생각할 때 가슴이 꽉 차오르는 뿌듯한 기쁨, 그리고 내가 이 한 권을 읽었다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이 사람들과 교감했다는 것 그런 것을 느끼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스마트 폰이나 이런 것 속에서 막 빠져서 필요도 없는 정보에 매몰되어서 살다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 마음을 열 정신의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수련회 가면 은혜를 많이 받는 이유가 무엇 때문 인줄 아십니까? 집을 떠나서 연락을 다 끊었기 때문에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자극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시간이 평소에 살아가면서도 항상 있어야지만 기도도 할 수 있고 성경도 읽을 수 있고 말씀을 들으며 은혜를 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럴 시간의 여유, 정신의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신앙의 성장, 예수 믿고 구원 받는 새로운 삶, 이런 것들이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두 번째 마음입니다.
세 번째 마음은 풀섶 가시떨기 사이에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가시떨기 속에 사이에 떨어졌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가시떨기 사이에 떨어지면 아주 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땅도 가시나무도 습도, 온도 이런 것이 다 맞는 데에서 자라는 것이지 아무데나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 떨어집니다. 뿌리를 내립니다. 양분을 빨아들입니다. 습기도 있습니다. 햇빛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시나무떨기와 함께 자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위에 가시가 막습니다. 양분을 가시나무가 쫙 쫙 빨아들입니다. 이것은 쪼그만 것이 떨어져서 어떻게 싹이 나와서 조금 자라기는 하는데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햇빛이 강하게 나거나 이렇게 되면 그 다음에 말라서 쓰러져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겠다고 신앙생활을 하고 때로는 말씀도 깨닫고 기쁨도 있고 기도도 하고 하는데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지 못하기 때문에 근심과 걱정, 고민거리가 많습니다.
우리가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가 살면 여러분 이미 벌써 이제 거친 인생의 바다에 들어섰지 않습니까? 그러면 수많은 삶의 상황들을 만납니다. 거기는 죽고 싶고 괴로운 일도 있고 슬프고 힘든 일도 있습니다. 내 친구 하나는 중학교 3학년 때 정말 친한 친구였는데 하나는 중학교 3학년 때 자살을 시도하였습니다. 간신히 살았습니다. 또 한 아이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자살해 버렸습니다. 온 몸에다가 신나를 끼얹고 스스로 불 질러서 죽어버렸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너무 괴로우니까 너무 행복해서 자살한 사람 보았습니까? 심심해서 물에 빠져 죽은 사람 보았습니까? 사는 것이 너무 괴롭고 힘드니까 자살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마 한두 번쯤은 자살해보고 싶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냐 하면 이제는 ‘전에는 내가 나를 주인 삼고 나를 의지하며 살았는데 이제는 예수님을 의지해서 살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를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내가 예수를 믿기로 시작하는 순간부터 불행은 모두 물러나고 행복만 밀려옵니까? 안 그렇습니다. 안 그렇습니다. 한 산속에 독초와 아주 진귀한 약재, 산삼이 함께 자라도 바람이 불면 함께 바람을 맞고 눈이 오면 함께 눈을 맞고 비가 오면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건들을 만납니다. 그 때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내 힘으로만 살았기 때문에 내 힘이 없으면 절망을 했습니다. 그런데 걱정되는 일이 생기고 염려가 되는 일이 생기면 이제부터는 그 염려를 모두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주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내가 너무 괴롭고 힘이 듭니다.’ 혹은 ‘엄마 아빠가 나를 너무 괴롭힙니다.’ 혹은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하려고 합니다. 이러이러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을 갖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믿음 생활을 해나가게 되면 어려움 당한 것이 오히려 이 사람의 믿음을 점점 굳세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지금 말고 조금 있으면 벚꽃이 피는 계절이 옵니다. 산을 한번 이렇게 쳐다보십시오. 여러분 아마 신경 써서 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산을 이렇게 쳐다보면 쌩뚱맞다는 느낌이 듭니다. 다 소나무 천지인데 벚꽃 한그루가 저 산꼭대기에 핀 것입니다. 또 아직 나무에 잎이 안 나서 다 관목으로 우거졌는데 뜬금없이 진달래 하나가 저 산속에서 빨갛게 피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새가 벚나무 씨를 먹고 날아가다가 똥을 싼 것입니다. 진달래 씨를 먹고 새가 날아가다가 똥을 눈 것입니다. 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새들이 눈 똥 속에 수많은 씨앗들이 있는데 그 씨앗들이 전부 다 나무가 되었다면 아마 장관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똥에서 씨가 떨어지는데 어떤 씨는 속에서 소화액에 녹아버렸습니다. 그리고 깨집니다. 그런데 어떤 씨는 떨어집니다. 그래서 잘 떨어졌는데 하필이면 그 때가 계속 비가 안 오던 때입니다. 말라 비틀어져서 똥과 함께 썩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때에는 딱 떨어졌는데 떨어지긴 떨어졌고 습기도 있는데 가시나무 떨기 사이에 뚝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조금씩 자라기는 하는데 이것이 열매를 맺을 수 있을 정도까지 자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나무는 떨어졌는데 아주 좋은 곳에 떨어진 것입니다. 쭉쭉 자라서 몇 년이 지나면서 이런 나무가 되어서 쌩뚱 맞게 다 소나무 천지인데 벚나무가 하나 싹 올라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이상한 일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고 기쁨이 있고 눈물을 흘리는 경험을 했다고 할지라도 여러분이 세상의 유혹 그리고 마음을 딴 데 온전히 빼앗기는 것, 이런 것에 자기 자신을 기울이면 신앙이라는 나무가 내 안에서 자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로 한 그 다음부터는 ‘예수 안 믿는 사람하고 나는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야 되는 사람이다.’ 그래야지 ‘내가 왜 주일날 교회 가야해? 내가 왜 성경을 읽어야 해?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내가 왜 아이폰 꺼두어야 하지? 왜 내가 스마트폰 많이 사용하면 안 되지? 내가 왜 기도를 해야 하지?’ 이런 생각하면 그러면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길가에 떨어지거나 돌밭위에 떨어지거나 가시나무 떨기 사이에 떨어진 그런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예수님이 네 번째로 말씀하십니다. 옥토에 떨어진 것입니다. 옥토란 무엇입니까? 자 보십시오. 봄이 되면 이제 농부들이 쟁기로 밭을 일굽니다. 그러면 겨우내 이제 막 풀 같은 것들이 자라다가 시들고 뿌리들이 나있습니다. 그럼 이제 봄이 되면 그놈들이 자라서 다시 양분을 빨아먹습니다. 그것을 쟁기를 가지고 소에다가 매달고 깊이 갑니다. 그러면 거의 50cm정도 땅이 파지면서 아래 있는 것은 밑으로 들어가고 밑에 있는 것은 위로 올라오는 것입니다. 산소가 들어가고 위에 있는 뿌리 있는 식물들은 뒤집히면서 그 속에 들어가서 뿌리가 잘리고 뒤집히니까 비가 오면 물을 뿌리면 썩어서 비료가 됩니다. 그러면서 확 갈아엎습니다. 호미로 가지고 가면서 싹 갈아서 써래 같은 것으로 쓸면서 보드라운 흙이 되게 합니다. 그렇게 해놓고 농부가 구멍을 파고 씨를 뿌립니다. 그렇게 될 경우에는 씨가 너무 좋은 환경을 만난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 떨어져서 그래서 습기를 머금고 거기에서 양분을 섭취하면서 자라는 것입니다. 처음에 씨는 그 씨 눈 하나가 자라기위해서 씨 전체를 썩혀서 양분으로 삼습니다. 그 씨의 눈에서 이파리가 나옵니다. 이파리가 자라면서 뿌리가 나오고 그 때에 옥토에 떨어진 씨는 거기에서 뿌리가 나오면서 옥토에서 양분을 습기를 빨아들이면서 햇빛을 받으면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쭉 쭉 자랍니다. 그러면서 그 나무가 큰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예화) 목사님이 한번 3200년 된 나무를 보았습니다. 메타세콰이어인데 높이는 120m 정도 밖에 안 되는데 둘레가 남자가 11명이 손을 잡아야지만 에워쌀 수 있는 나무입니다. 그 나무를 잘랐다고 생각을 하면 나무를 딱 잘라놓은 그 위에서 한 35명이 수건돌리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습니다. 연도는 3200년 된 나무입니다. 어마어마하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나무 가운데를 뚫으면 대형버스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크기입니다. 그런데 그 나무의 씨앗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아주 쬐그만 씨앗입니다. 그 씨앗에서 그 나무가 된다라고 하는 것은 아무도 상상을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나라의 역사에도 보면 젊은 시절에 하나님을 잘 믿어서 나라와 역사를 위해서 크게 이바지한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한 소년이 16살 먹은 소년이 시골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이 예배 시간에 계속 자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보니 교인도 몇 명 모이지 않았는데 멀끔한 청년 하나가 와서 좋다 그랬더니 예배 시간에 계속 자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너무 마음이 상하니까 “이보게 젊은이! 이 젊은이!”가 눈을 번쩍 떴습니다. “그렇게 졸지만 말고 저 위에 계신 우리 예수님을 한번 보게!” 그 소리를 듣고 이 청년이 예수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큰 충격을 받고 영적으로 변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 찰스 스펄전입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여러분이 예수님을 만나고 말씀이 마음에 떨어져서 잘 자라고 이 자라는 나무를 여러분이 계속 말씀의 양분을 주고 성령의 은혜를 받고 계속해서 자라면 여러분은 씨앗과 나무 사이의 차이를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결과를 만드는 것처럼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어떤 사람이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목사님도 45년 전에는 여러분처럼 그저 인생사는 것이 힘들고 무거운 현실에 대해서 비관하는 청소년이었습니다. 그 때 그리고 주님을 깊이 만나고 이렇게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장하는 살아있어서 성장하는 씨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결과를 만들고 죽어있는 씨는 의미 없이 흙보다도 못하게 죽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어떤 신앙생활을 해야 되겠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유년주일학교 6년, 중등부 3년을 다니면서 주님을 깊이 만난 적이 있습니까? 또, 주님을 깊이 만난 그 은혜를 간직하며 살고 있습니까? 그렇게 하나님을 깊이 만나지 못하는 원인이 무엇이었습니까?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이 여러분에게 떨어져서 여러분을 변화시키기 전까지는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 제대로 만나는 사람이 되기 전에는 여러분이 진정으로 변화를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공부를 잘하는 재능을 주셨는데 공부를 못한다고 열등감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는 내가 잘하는 운동을 못합니다. 내가 운동도 못한다고 할지라도 무엇은 다른 사람보다 잘하는 한 가지는 있을 것입니다. 사람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은 공부를 잘하게, 어떤 사람은 노래를 잘하게, 어떤 사람은 운동을 잘하게, 어떤 사람은 이야기에 재능이 있게 아주 다양하게 하나님은 만드셨습니다.
인생의 제일 큰 행복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재능이 무엇인지 찾아가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진정한 행복입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목사님도 여러분처럼 어렸을 때에는 내가 왜 이렇게 공부를 못할까 무지하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후일 나는 그 후에 대학교를 가고 대학원을 가고 공부를 하고 대학교의 교수가 되고 하면서 하나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내가 공부를 못 했던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교육이 나에게 정말 안 맞았다.’ 아니 그것은 내가 한 40년을 산 다음에 내린 판단입니다. 정확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방법으로 공부를 하니까 너무 공부가 재미있고 잘되었습니다. 여러분 중에서도 희생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깊이 생각하고 열등감을 갖고 좌절감을 갖지 말고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재능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것을 계발해야하는지 잘 생각하며 살아야합니다. 그런데 신앙은 여러분이 이런 사람이 되고 저런 사람이 되고 하는 것만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신앙은 그렇게 이 세상에서 외형적으로 어떤 사람은 공부를 잘해서 학자가 되고 회사에 들어가고, 어떤 사람은 미용사가 되고, 어떤 사람은 장애인들을 돌보는 복지사가 되고 다양한 직업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그것을 ‘하나님이 나에게 주셔서 이 세상에 나를 보내신 이유다.’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그 때에는 마음속에 커다란 긍지와 그리고 인생의 보람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할 수 없이 학비나 벌고 밥을 사먹기 위해서 직장을 다니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하고 자신이 어떤 큰 꿈을 갖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그런데 신앙은 그런 꿈을 갖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면 신앙의 근본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정으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 사람이 되기 전까지는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시고 예수 믿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신 진정한 의미를 잘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진지하게 예수를 믿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교회에 친구가 좋아서 부모님이 다니라니까 그러지 말고 이제 ‘이 신앙이 나의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내가 이렇게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을 어떻게 의지해야 하는가?’ 이것을 생각하고 배우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 제일 필요한 것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회개하고 그리고 내가 일생에 의지할 수 있는 분이 나를 위해서 이 세상에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신 예수님밖에 없다.’라고 하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내가 죄인인 것, 내가 실제로 살면서도 수없이 죄를 짓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또 아주 오래전에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나는 하나님 앞에 죄인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무수히 많은 회개거리가 있지만 제일 큰 회개는 하나님이 나를 당신의 피조물로 이 세상에 창조했는데 내가 하나님인 것처럼 산 것, 내가 스스로 내 인생의 주인이 되고 나를 기쁘게 하고 나만을 위해서 이기심을 가지고 살았던 것들을 깊이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회개하는 나를 구원하셔서 내 죄를 온전히 용서해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분이 예수님 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예수님을 깊이 믿을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해 주시고 새로운 성령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나 혼자 살던 삶인데 이제는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젊은 시절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 제일 먼저 느끼게 된 큰 행복이 외롭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이전에는 너무 외로웠습니다. 내가 고민하고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을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사람이 별로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내 마음 속에 영접하니까 내게 있는 모든 괴로움들을 하나님 앞에 쏟아놓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내가 그 고민을 털어놓기도 전에 내 마음 가까이 오셔서 내 소리를 모두 들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내게 베푸시는 사랑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랑이고 크기에 있어서 무한한 사랑이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찬양)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그러면서 뜻을 세우는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이제 내가 어떻게 살아서 정말 후회 없는 아름다운 삶을 살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꿈입니다. 현실은 거기에 너무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왜입니까? 예전에는 나 혼자였는데 지금은 예수님이 함께 계셔서 나를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무엇이 필요할 때는 도와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외로울 때에는 ‘하나님 나는 외롭습니다. 나를 좀 위로해 주시고 함께해 주십시오.’ 하면 하나님이 놀랍게 우리의 마음속에 위로를 주십니다. 유혹을 받을 때, 시련이 올 때 하나님 의지하면서 믿음 생활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까 지금은 여러분이 물질적으로는 평온하지만 목사님이 여러분만할 때에는 경제적으로도 밥을 굶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면 교회에 가면 정말 가난하고 학교도 간신히 다닐까 말까하는 아이들이 교회에 와서 단발머리하고 그렇게 뜨겁게 기도를 합니다. 눈물을 쏟으면서 하나님 도와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여러분만한 나이면 전부 주일학교 내려가 주일학교 선생님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놀랍게 도와주셔서 그런 형제자매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응답을 해주십니다. 그러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람으로 창조하셔서 하나님 자녀 되게 하신 것은 한번 여러분 자신의 고민만 생각하지 말고 눈을 떠서 사회를 보고 세상을 보십시오. 그러면 어떤 때는 우리가 하고 있는 고민은 너무나 사치입니다. 너무너무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무엇인가 돕고 싶은 마음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사람으로 만드셔서 여기에 두신 목적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뜻을 세우고, 공부도 하고, 기술도 익히고, 정신도 성숙하고 이렇게 하면서 어른이 되어서 그래서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맨 처음 전도사가 된지 얼마 안 되어서 가르쳤던 아이들이 지금 40대 중반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면 몇 년 전에도 한 40년 만에 편지가 왔습니다. 이메일이 왔는데 이제 아이들이 여러분처럼 중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있는 부모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때 목사님은 목사님도 아니고 교회 다니는 청년이었는데 아이들을 뜨겁게 사랑하고 열심히 성경을 가르치고 그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주었더니 방황하고 그럴 아이들이 예수님 잘 믿고 새사람이 되어서 나하고는 오래 전에 헤어졌지만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신앙을 간직하면서 자녀들을 또 신앙으로 기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이렇게 자기 자신이 무슨 많은 것을 누리고 행복하게 사는 것에서 찾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리고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더 불행하고 고통 받고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재능과 모든 좋은 것으로 잘 계발해서 그 사람들에게 이바지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런 인생의 계획을 기뻐하시고 그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다.’ 생각을 하면 기도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하나님 앞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깨닫고 나면 ‘주님, 나에게 도움을 주십시오. 나에게 이러이러한 것들을 주십시오.’라고 하는 기도가 간절히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이고 시련과 역경이 와도 여전히 인생을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는 이유는 이런 희망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가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어느 작가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젊은 시절, 젊음이라고 하는 것은 30년 후에 갖기로 되어 있는 지불만기 어음이다. 여러분이 지금 젊고 어린 시절에 쓸모없이 인생을 낭비하고 허비하면서 보내면 이것은 능력도 안 되면서 카드를 계속 쓰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월말이 되면 엄청난 양을 결재하라고 카드청구서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에서도 마지막 30년 후에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럼 그 때에는 정말 그 하잘 것 없는 인생을 살면서 세상을 원망하고 하나님 원망하는 사람이 되기 쉬운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마음속에 ‘내가 이 세상을 왜 꼭 살아야 하나?’ 그리고 ‘하나님은 왜 나를 개나 돼지나 쥐로 안 만들고 사람으로 만드셔서 그것도 이 세상 200개국이나 되는 많은 나라 중이 하필이면 이 한국 땅에 태어나게 하셨을까?’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내가 하나님이 나를 사람으로 창조하셔서 여기 있게 하셨을 때에 하나님이 나에게 바라셨던 일을 나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것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훌륭한 학자가 되는 일인지, 돈을 많이 벌어서 사업가가 되는 일이든지, 아니면 그저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는 일이던지 무엇이든지 상관없습니다. 가치 있는 것을 찾고 하나님이 ‘정말 나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할 그런 사람으로 살기로 다짐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정말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거듭나서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새 사람에게는 놀라운 특징이 있습니다. 두 가지 이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이렇게 새 사람이 되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해도 늘 배반을 하거나 실망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한한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어디서 우리의 인생이 상처를 받고 꼬였던지 간에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은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치료의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그리고 너무 좋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자상하시고, 사랑이 많으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또 능력이 있으셔서 우리에게 주시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생겨나게 됩니다. 여러분은 흔히 사랑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외롭고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그런 만족한 사랑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못 받아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 것입니다. 온 인류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아도 외로울 수 있지만 한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은 외롭지 않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외롭지 않습니다.
(예화) 목사님이 대학원 다닐 때 내게 공부를 가르쳐주던 아주 훌륭한 할아버지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내가 대학원을 졸업할 때 그분이 72살이셨습니다. 그리고 22년이 흐른 다음에 미국을 갔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수소문해서 찾았습니다. 작은 아파트에 혼자 살고 계셨습니다. 사모님은 7년 전에 돌아가시고 94살이신데 92세 되실 때까지 차를 몰고 다니셨는데 2년 전부터는 다리가 아프셔서 목발을 짚고 다니시는 신세가 되셨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목사님이 혼자서 목발을 짚고 엉금엉금 다니시면서 물 끓여 드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복지사가 이틀에 한 번씩 와서 봐주고 그럽니다. 목사님께 절을 하고 내 책 한권을 드리고 꽃다발을 드리고 그리고 이제 인사를 했습니다. 목사님이 나를 기억하시더니 정말 반갑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목사님, 많이 외로우시죠?” 목사님이 뭐라고 하셨는지 아십니까?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시면서 “외롭긴 뭐가 외로워 내가 혼자 있나? 우리 주님이 나와 늘 함께 계시는데 책도 보고, 누워서 쉬기도 하고 기도도 하고 하면서 지내지.”
(찬양)
주 내 안에 늘 계시고 나는 주님 안에 있어
저 포도비유 같으니 참 좋은 나의 친구
그래서 새 사람이 되면 정말 하나님과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해집니다.
두 번째는 새 사람이 되면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다우신 분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아름다움. 아름답다는 것이 우리들은 얼굴이 예쁘고 이런 사람을 보면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마음속에 있는 아주 커다란 아름다움입니다. 전 세계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앙케이트를 했습니다. 가장 가슴에 따뜻하게 다가오는 낱말을 쓰라고 하였습니다. ‘사랑’은 4위밖에 안됩니다. 1위가 ‘엄마’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엄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우리 엄마 얼굴이 김태희 같아서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엄마였으면 우리 얼굴이 이럴 리가 없습니다. 엄마는 그런 것을 초월했습니다. 그래서 막 괴롭고 힘들 때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기분 좋을 때는 보고 싶지도 않던 엄마가 그립고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사귀어 보니까 너무나 자주 하나님 아버지가 아니라 ‘하나님 엄마’ 그러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로 아름다우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어떻게 아름다우신 분인지 얼마나 아름다운 분인지가 다 모여 있는 데가 성경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매일 읽고 생각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깨달으면 마음속에서 ‘하나님이 정말 내가 사랑하기에는 과분할 정도로 예쁜 분이시구나.’라는 것을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변화 받아 새사람이 된 사람의 특징입니다.
목사님은 여러분이 오늘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던 것, 회개하고 바로 그 죄를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은 믿는 여러분이 되길 원합니다. 새사람들이 되어서 그래서 하나님 사랑하고 그리고 그 예수님이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다운 분인지를 깨달으면서 행복하게, 인생의 아주 훌륭한 비전을 가지고 주님 앞에서 아주 건강하고 씩씩하게 하나님 앞에 사는 빛의 자녀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