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 회심집회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막 1:35
녹취자: 이병두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수님께서 어느 날 기도하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생애에 비교적 초기 공생애 때에 있었던 일들로 여겨집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장면이 나오는데 시간은 아직도 어두움이 가시지 않은 새벽 시간이었고, 예수님께서는 어는 한적한 곳에 나아가 간절히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런 의문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이 꼭 기도하셔야만 했을까?” 우리는 죄가 많으니 기도라도 해서 우리의 죄를 회개하여야 하고, 우리는 능력이 모자라니까 기도해서 능력을 공급받고, 우리는 무지하니까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야지 만 바르게 믿고 살고 섬길 수 있기에 기도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었고, 처음부터 죄를 지을 수 없으신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왜 기도하셨을까?’ 이것은 크게 두 가지로 설명이 됩니다.
첫 번째는 먼저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는 하나님이셨지만, 스스로 당신의 큰 능력을 인성 안에 감춰지심으로, 스스로 낮아져 능력이 모자라는 인간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예수님도 이 기도를 통하여 육신을 입고오신 연약함을 이기면서 하나님을 믿고 섬기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함 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그 은혜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우리에게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계신 동안에 간절한 기도로 응답을 받으시면서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기도하셨으니 우리도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에 하나님 믿고 섬기며 간절히 기도하심으로 살아가셨던 것처럼 우리도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이 기도하신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새벽에 하나님 앞에 기도 하셨고, 오늘 성경의 표현에 의하면 새벽인데, 아직 밝기도 전 정확하게 말하면 아직도 밤중인 새벽에 나아가서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장소도 사람들이 쉽게 접근 할 수 없는 한적한 곳을 찾으셔서 하나님 앞에 자기의 마음을 쏟으며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누구든지 새벽은 일어나기 힘든 시간이고 예수님도 사람의 몸을 입으셨으니 아마 이 새벽 시간에 일어나서 기도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예수님이 새벽기도 시간을 택한 이유는 만약에 예수님이 낮에 기도하고 계시면, 그 시간에 사람들을 돌보고 치료하여야 하는데, 그들이 예수님의 돌봄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낮에 사람들이 나아올 때는 일을 하시고, 사람들이 아직 자고 있는 새벽시간에 예수님께서는 홀로 기도하시는 시간으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부지런히 분투하며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기도하시고, 다른 사람을 위해 섬기셨던 고난에 넘치는 예수님의 생애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서 우리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성육신입니다. 즉,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그 모습, 그 겸손하고 낮아진 모습의 가장 훌륭한 본보기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간절한 기도의 모본을 보여주시던 바로 그 광경이라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는 없으셨지만 연약한 인간의 몸을 입으셨기 때문에 인간이 육체에서 겪는 모든 연약함을 한 몸에 짊어지신 분이었습니다. 물을 마시지 않으면 목마르셨고, 오래 길을 걸으시면 길가에 앉아서 쉬셔야 할 정도로 다리가 아프고 피곤하셨습니다. 먹지 않으면 시장하여 굶주림을 느끼시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연약한 몸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일평생을 사시면서 우리와 똑같은 연약한 조건 속에서 우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넘치는 헌신의 바쁜 삶을 사셨습니다. 오히려 이 새벽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절히 하나님 앞에 기도 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똑같이 연약하고 어려운 형편에서 자기의 마음을 쏟아 부어 육체의 피곤을 이기며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신앙생활이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신앙생활 자체가 힘들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신앙생활을 계속 할 수 있는 영적인 생명과 힘을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에 연약하고 힘들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예화) 여러해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전투기가 이유도 없이 공중을 비행하다가 한 번에 추락을 해서 조종사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온 나라가 떠들썩했습니다. ‘왜 그런 첨단 전투기가 하늘을 비행하다가 갑자기 떨어졌을까?’ 조사를 했더니 기름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여객기나 경비행기는 비행하다가 엔진이 멎어도 날개가 워낙 크고 동체가 가벼워 한 30분 정도는 활강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전투기는 그 자체가 엄청난 중량에 무기까지 장착되어 있기 때문에 그 전체가 한 30톤이 넘는 쇳덩어리입니다. 그러니까 어마어마한 기름을 태워서 추진력을 계속 발휘하지 않으면 즉시 그 쇳덩어리가 땅으로 떨어지는 겁니다. 그런데 항공단에서 기름을 넣어 주었는데 기름 탱크에 습기가 찼고, 그 기름과 함께 물방울이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연료를 태우는 동안에는 전투기가 하늘을 가르며 날았지만 물방울이 들어오는 동안에는 연료공급이 중단 되면서 엔진은 멈췄고, 엔진이 멈추자마자 비행기는 쇳덩어리가 되어 단번에 꼬꾸라져 땅바닥에 처박혀 폭발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도 똑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 위해서는 그렇게 살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은혜의 힘은 기도를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회심했지만 심령이 나태해지고 신앙의 초점을 잃어버렸기에 마음의 죄로 인해 기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아예 처음부터 회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도 자체가 불가능한 것 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회심은 기도를 여는 첫 번째 문입니다. 하늘의 문이 회심과 함께 열리고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탁월한 감각들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회심하게 되면, 예전에는 전혀 알 수 없었던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찬송)
이 벌레 같은 나 위해 큰 해 받으셨나.
이런 놀라운 은혜가 심령에 밀려오게 되고, 이 세상에 나 같은 인간을 하나님이 정말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껴지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탁월한 감각이 생겨서 나는 정말 미천한 죄인이고 하나님은 온 땅과 만물 위에 너무나 높고 존귀하고 위대한 분이라고 하는 감각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그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나는 연약하니 도와주시옵소서! 나는 무지하고 어리석으니 나를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나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마시고, 나를 주님의 손으로 이끌어 주시면 내가 이끌어 주시는 대로 주님을 따르고 순종하겠습니다.‘ 라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놀랍게도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 마음을 어루만지셔서 견딜 수 없는 고통스러운 환경인데도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을 생각하면서 나의 고난을 이기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당하는 고난은 내가 당하는 고난인데, 내가 당하는 고난을 통해서 예수님이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그 고난이 얼마나 더 큰 것이었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의 문이 열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라고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티끌 같은 인간이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마음으로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간구의 행위가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하기에 가장 적합한 마음은 교만한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자기가 정말 아무 것도 아니구나.’ 하는 그런 마음을 가졌을 때 그리고 ’나는 정말 더러운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용서해 주시고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나는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존재구나’라는 것이 느껴질 때 그 때 비로소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기도의 문을 활짝 여는 회심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회심은 자기가 절대적으로 죄인이라는 사실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고 예수님만이 자기를 구원해 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에 대한 회개와 예수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이 회심의 요소입니다. 이것이 처음 생기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회심이고,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생기는 것을 가리켜서 우리는 ‘회심의 은혜가 새로워진다.’ 라고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늘 부패하기 쉬운 마음이기 때문에 우리가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했더라도 살아가면서 짓은 많은 죄들 때문에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 예수님만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 이런 회개한 신앙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다시 더러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잘 보면 수련회 때나 언젠가 은혜 받고 하나님 앞에 그렇게 기도가 잘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특별히 내가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그런 것이 있을 때도 있지만 이상하게 기도가 안 됩니다. 그리고 너무 마음이 산란하고 괴롭습니다. 그때가 바로 다시 한 번 회심이 새로워지는 은혜가 필요한 때 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은혜를 받았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예화) 제가 우리 김희연 목사님처럼 여러분들 같은 고등부 학생들을 가르치던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늦게 고등부를 맡았기 때문에 고등부를 가르칠 때 이미 신학대학교 교수였고 나이는 서른다섯, 여섯 정도 됐습니다. 그 때 고등부 숫자도 이 정도 됐습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적을까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설교가 끝나고 나서 “기도합시다!” 하면 기도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회심입니다. 그러더니 아이들이 정말 뜨겁게 기도합니다. 어른은 아무리 은혜를 받아도 밥 먹고 살아야 됩니다.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들은 학교만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학교를 안가고 기도를 한다는 뜻이 아니라 학교를 가도 자기가 시간을 내려면 얼마든지 낼 수 있는 것입니다. 회심하기 전에는 농구하고 축구하고 등산가고 하던 아이들이 주일이면 교회에 와서 간절히 기도하고 주일 예배드리고 모여서 교회 구석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들 중의 한학생의 가족이 찾아왔습니다. 전도사인 저와 상의할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했더니 “우리집안에 아무개가 여기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인데 큰일 났다”는 것입니다. “ 무엇이 큰 일 입니까?” 물으니, 하루에 두 시간씩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왜 큰일 입니까?” 물으니, 공부 안하고 기도만 할까봐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걱정하지 마십시오. 기도 열심히 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공부하라 그러실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항상 기억하십시오. 지금 여러분들은 인생의 사연이 많을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만 할 때 몇 번이나 자살 시도를 했습니다. 왜? 돈이 없어서? 아닙니다. 왜? 집안이 망해서?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사람으로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이었습니다. 한 가지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인생을 살아갈 힘이 없을 때, 그 힘을 얻을 수 있는 통로가 없다는 것입니다. 책을 보면 잠시는 반짝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통제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떠한 난관이나 말도 되지 않는 고난에 직면해도 하늘만 열려 있으면 살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신비한 방법으로 기쁨을 주십니다. 분명히 상황은 어렵고 너무 고통스러운데, 그 고통을 하나님 앞에 토해 놓고 간절히 기도하는 그 시간은 달콤한 것입니다. 그 때마다 주님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기도는 저나 목사님이나 집사님들 기도보다 더 잘 들어 주십니다. 왜냐하면, 신앙이 어리기 때문에 기도하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대견에 보이는 것입니다. 목사가 기도하면 대견 할 것이 없습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오히려 기도를 안 하면 ‘이게 돌았나!’ 하나님이 그러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립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 놀라운 방법으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면 이제 답이 나왔습니다. 이미 구원을 받았는데 기도가 안 되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됩니까? 회심의 은혜가 새로워지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 안에서 ‘왜 내 마음이 변했을까?’ ‘하나님이 내 마음의 어떤 부분들을 안 기뻐하시나?’ ‘하나님 앞에 예전에는 그렇게 뜨겁게 기도했었는데 오늘은 왜 어렵고 괴로운 일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 기도 할 수 없을까?’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과 나 사이에 있는 장애물들을 치워 버리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죄에 대한 회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가 살아 있는 사람은 똑바른 정신 상태에서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기도 많이 하면 공부를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단정적으로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예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인생을 걸어가다 보면 우리의 인생을 낭비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정신이 흐리멍덩했기 때문에 길이 아닌데도 가고, 인생을 그렇게 살면 안 되는데, 소용없이 우리의 생애를 낭비한 것입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예화) 이 간증에 나오는 형제자매들이 지금은 다 시집 장가가서 애기 낳고 중년이 다 됐습니다. 고등부 아이들이 다 그렇게 은혜를 받는데 형제 녀석 하나가 자매를 보니까 얼굴이 너무 예쁜 것입니다. 그 자매 얼굴이 정말 예뻤습니다. 얼굴도 하얗고 신앙생활도 잘하고 하니까 호감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매주 교회 나와서 연애편지를 그 자매에게 준 것입니다. 그런데 답장이 안 오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몇 주 있다 답장이 왔는데 아주 두꺼운 편지가 온 것입니다. 그때 그 감격이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뜯어보니까 ‘사랑하는 아무 아무개 형제에게~ 라고 쓰여 있으니까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는 것입니다. 무려 열두 장이 넘는 편지가 온 것입니다. 그래서 다 읽어보니까 그 내용이 하나님이 너와 나를 어떻게 이 교회로 인도하셨고, 지난 일 년 동안에 고등부 공동체에 하나님이 어떤 은혜를 주셨고, 어떤 것을 슬퍼하셨고, 마치 역사처럼 기록해 나가고 마지막에는 그러므로 ’너는 이런 편지를 보낼 때가 아니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될 때다’라고 썼습니다. 흔들림이 없는 것입니다.
(찬송)
우리 죄와 강퍅함 주님께 기도하니 우리 불쌍히 여기사 치료의 은혜 허락하시네.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다시 기도할 수 있도록 놀라운 은혜를 주십니다. 그럴 때 정말 좋은 기도의 방법이 금식입니다. 금식을 나이가 많은 사람이 하면 금식 자체가 육체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데, 여러분 때에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평소에 너무 많이 먹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움이 됩니다. 이게 바로 하늘 다이어트입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에게 다시 은혜를 주시지 않으신다면, 저로 하여금 다시 기도할 수 있게 해주시지 않는다면, 제가 이 자리를 떠나지 않겠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런 수련회 때가 되면, 고등부 아이들이 60일 전부터 수련회를 위해 기도를 합니다. 40일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기도 하기 시작합니다. 그때는 곳곳에서 금식하는 아이들이 나옵니다. 점심만 금식하는 아이도 나오고, 아니면 한 이틀 동안 금식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아이도 나옵니다. 그러면 수련회 가기 전에 이미 기도로 준비하다가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기도가 다시 터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을 들어서 이렇게 주변을 돌아봅니다. 우선 자기 자신, 자기 가족, 그 다음에 교회, 학교, 이 사회 할 것 없이 기도의 제목들이 천지에 널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 집중하며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기도의 은혜를 회복할 수 있는 이러한 시간들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회심한 사람은 회심의 은혜를 회복하면 됩니다. 그러면 회심하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회심하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 앞에 간절하고 열렬한 기도가 쏟아져 나오는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회심에 이르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내가 회심한 사람인가? 회심하지 않은 사람인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제가 오늘 여러분들이 일평생 잊어버리지 않도록 다섯 가지의 잣대를 제공해 주겠습니다. 회심치 않은 사람의 본성은 다섯 가지의 결정적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중에 한 가지만 깊이 가지고 있어도 회심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첫 번째는 가치 판단이 자기중심적입니다. 회심한 사람이 은혜가 떨어지면 하나님의 영광, 친구들의 행복, 교회의 유익 이런 것을 생각하지 않는 자기중심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금방 후회를 합니다. 이런 후회가 없이 계속 가치 판단의 기준이 자기중심적일 때, 그 사람은 회심하지 않은 사람이 분명한 것입니다. 이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 앞에 달콤한 기도, 깊은 기도, 은혜가 부어지는 그런 기도는 경험 할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 기준은 신령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신령한 것이란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것들입니다. 예를 들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살아계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찬송)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네 주를 보낸 하나님 사랑
그 사랑이 나를 살게 하네 갈보리의 구속의 사랑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이런 것들은 이성이 아닙니다. 형언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신령한 것들 입니다. 이런 신령한 것들에 대한 사모함이 회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없습니다.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회심하지 못한 사람들은 회심하지 않은 사람과 친구가 되지, 회심하고 예수에 미친 사람들 하고는 별로 친밀하지가 않습니다. 그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이미 두 가지의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한번 그 자를 가지고 여러분들을 한번 재어보십시오. 신령한 것을 사모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없을 때, 말씀을 깨닫고 싶습니까? 그리고 심령이 답답할 때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싶습니까?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이런 저런 일들이 일어날 때, 초월적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여러분들이 당하는 많은 문제들을 생각하고 사고하는 경향이 있습니까?
세 번째는 하나님의 마음이 없습니다. 종종 우리는 제멋대로 살다가도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아! 내가 이렇게 하면, 우리 엄마가 얼마나 괴로워하실까? 엄마 생각해서라도 내가 이러면 안 되지‘ 정말 가끔이긴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 때 가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회심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이 수시로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내 마음대로 막 살아가다가도 주님의 마음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예화) 그래서 제가 전도사 시절에 심방할 때 항상 자주 쓰던 후렴 어구가 있었습니다. 주일 오후면 심방을 했습니다. 주일 오후 2시쯤 출발해서 밤 11시 까지 심방하면, 많으면 10여명 심방하고, 적으면 6명 정도 심방합니다. 기도하고 가면 도망 다녀도 기가 막히게 꼭 만납니다. 학원, 도서관, 동네 놀이터, KFC, 아니면 집문 앞에서 기다리면 반드시 만납니다. 그렇게 만나면 얼마나 멀쑥하겠습니까? 왜냐하면 그냥 교회 안 나왔는데 전도사님이 찾아 왔고, 거기에다가 아침에 거짓말까지 했습니다. 아프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신나게 농구공까지 통통 튕기면서 반바지를 입고 걸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항상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가 마음이 많이 가라앉으면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네가 이렇게 주일에 방황하는 모습을 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니?” 그러면서 한참 얘기하면 열 명 중 여섯 일곱 명은 눈물을 흘립니다. 그것이 바로 회심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진 가장 훌륭한 도구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야기 해주면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회심하지 않은 사람은 이것이 없습니다.
네 번째는 회심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유 때문에 자기를 꺾는 법이 없습니다. 나는 너무 하고 싶으나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꺾어야 됩니다. 모든 사람이 항상 꺾어진다면 불순종 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회심한 사람들도 안 꺽어질때도 있지만 꺾어질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런데 회심하지 않은 사람은 안 꺾어집니다. ‘하나님이 무엇이 관대 내가 내 의지를 꺾으랴?’ 왜 그렇습니까? 조금 전에 여러분들이 찬송했습니다. 회심하지 않은 사람의 삶의 본질은 자신을 주인 삼은 삶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인인 것을 인정했는데 실수해서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잠시 살다가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자신이 자기 인생의 주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꺾는 법이 없습니다. 자기가 왕이고 황제입니다. 결코 꺾는 법이 없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을 꺾을 때 쾌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엄마의 고집을 꺾고 게임기를 샀을 때 쾌락을 느끼거나, 친구랑 놀러가고 싶은데 마음대로 갔을 때, 누군가를 꺾어서 자기의 뜻을 성취 했을 때 쾌락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회심하지 않은 사람의 증거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생활의 실천에 있어서 무신론자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안 나올 수도 있지만 나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삶이 예배의 정신이 아닙니다. 회심하지 않은 사람의 가장 커다란 특징이 예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지겨워하는 것입니다. 예배의 상징은 ‘전능하고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나는 굴복 되었습니다.’라는 것입니다. 나는 무가치하고 당신만이 존귀합니다. 나는 당신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존재이고, 경배해야만 하는 존재이고, 나의 인생의 가치는 그 무한하신 당신을 존귀하게 여기고 경배하는 것에 내 인생의 가치가 있습니다. 이것을 농축해서 표현 한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그것은 자기를 주인 삼은 삶의 정반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시간이 지겨운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오는 이유는 집에 가기 위해서 옵니다. 예배시작 할 때는 우울해도 끝날 때는 행복한 것입니다.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회심하면 변화가 오게 됩니다.
(예화) 이것은 실화입니다. 제가 고등부를 맡았을 때 보니까 선생님들 중에도 3분의 1은 회심을 안했습니다. 끝까지 회심 안한 사람들은 뛰쳐나갔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심했습니다. 아이들이 선생님이 안 오셨다 그러면 그렇게 좋아합니다. 공과 책을 던지며 기리 뛰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안 나오신 이유를 알아봐야 하지 않습니까? 교통사고가 났을 수도 있고, 아파서 드러누웠을 수도 있고, 집안에 큰 일이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선생님이 안 나왔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왜냐하면 공과 공부를 안 하고 집에 간다는 것입니다. 공과 공부는 한 시간 반 정도 합니다. 예배는 아무리 싫더라도 한 40분만 참으면 되는데, 공과공부는 한 시간 반을 참아야만 합니다. 그러니까 지긋지긋한 것입니다. 그러니 야호하고 야단이 난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 독감 걸려서 링거 맞고 있다는데도 아이들은 그런 것에 상관 안하는 것입니다. 너무 신나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 아이들이 정말 회심을 했습니다. 공과 책을 던지면서 환호성을 하던 아이들이 한명도 집에 안 가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1, 2학년 학생들이었습니다. 동그랗게 모여 앉았습니다. 지금 기억으로는 한 8명 정도 모여 앉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아파서 안 나온 게 아니고 그냥 안 나온 것입니다. 전날 과음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당시 술 먹고 안 나오는 선생님들도 몇 있었습니다. 다른 반은 선생님들하고 공부하는데 전에 같았으면 공과 책을 던지고 도망갔을 텐데 아이들이 모여 앉아서 돌아가면서 성경 구절을 읽고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우연히 그 옆을 지나가다가 아이들이 기도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하면서 너무 진지하게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선생님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선생님이 방황하고 있사옵나이다.’ 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누가 선생님입니까? 삶에 있어서 실천이 없는 삶은 하나님 없는 무신론의 삶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섯 가지 잣대입니다.
그러면 한번 재어 보십시오. 이미 주님을 만나고 회심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계속 살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여야 할 것이고, 회심하지 못한 사람은 오늘 이 시간에 회심하고, 하늘로부터 오는 기도의 능력과 은혜를 받아서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를 힘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미 회심한 사람의 회심이 새로워지는 것이나, 회심하지 않은 사람이 처음으로 회심하여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에는 놀라운 일치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죄를 회개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때 회심한 사람들은 회심의 은혜가 새로워지고,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함으로서 자기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서 구원 받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죄인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과 비교해서 죄인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보다 나쁜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비교하라는 것이 아니고, 완전하시고 거룩하시고 충만한 사랑이신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보고 누구라고 말하는가? 어떤 사람이 되라고 말하는가? 실제 나는 누구인가? 어떤 삶을 사는가?’를 비교해 본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외 없이 응답해 주시는 기도의 제목이 있습니다. ‘좋은 남자친구를 만나게 해주십시오.’ ‘일류대학에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우리아빠 주식 투자 대박 터지게 해 주시옵소서’ 이런 기도는 응답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외 없이 반드시 응답되는 기도가 있습니다. ‘나의 죄를 생각나게 해 주시옵소서’ 진지하게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객관적으로 보게 만들어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만들어주십니다.
하나님이 한 순간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우리에게 비춰주시면, 우리는 그렇게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자기 자신이 정말 걸레와 같이 더러운 인간이라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이렇게 더러운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기도하게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앞에 회심하기 원합니다. 회심의 은혜를 새롭게 해 주시옵소서’ 라고 간절히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놀랍게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게 해주시고, 그렇게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큰 은혜를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회개하고 나면 두 가지를 느낍니다. 우리가 너무 가벼워진 것을 경험합니다. 전에는 죄의 짐을 달고 살았는데 아주 가벼워 진 것을 느낍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신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그 당시 고등부 학생중 은혜를 많이 받은 자매에게 “그래, 어제 밤에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어떠냐?” 물었더니 “전도사님! 어제 저녁때 까지는 하나님이 하늘에 계셨는데 오늘 아침에는 내 마음속에 계셔요.” 이것은 아주 단순한 표현이지만 최고의 표현입니다. ‘어제 저녁까지는 하나님이 하늘에 계셨어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하나님이 내 마음 안에 계셔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은 처음 우리 인간을 만드실 때 당신을 의지하며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는 혼자서 씩씩하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인 정신으로 씩씩하게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 속에는 기도가 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가는 길은 자기 소견의 옳은 길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은 누구도 알지 못했던 크고 놀라운 은혜의 세계를 보여주시고, 견딜 수 없는 고난의 길을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길도 기쁨으로 걸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부에 바쁘고 정신없이 살다가도 수시로 우리의 마음을 모으고 하나님을 향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여러분이 두세 시간 기도할 때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있으면 더 좋겠지만, 그렇더라도 항상 마음을 모으고 하나님을 앙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찬송)
주님을 송축하리 내입술 주를 찬양 나의 눈 보기 원하네 주님 얼굴
주님의 음성 듣기를 주님을 만져 보기를 전심으로 원합니다. 주여!
그리고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주님을 간절히 찾으면, 하나님이 정말 놀라운 방법으로 찾아오셔서, 고난도 이기고 시련도 이기고 견딜 수 없이 미운 사람도 용서할 수 있는 은혜의 힘들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돌아가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그동안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았던 것을 오늘 저녁 깊이 회개하고,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심령을 가득 채워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회심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은 오늘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을 믿고 회개하여 참다운 구원에 이르러 기도의 문이 열리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