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세대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사 53:1-2)
녹취자: 김정규
지난번에는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를 배웠고 오늘부터는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를 배우게 되는데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고난과 영광’ 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우선 이사야 53장은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구약성경에 흩어져 있는 메시아에 대한 묘사는 이사야 53장에서 원석을 캐서 확 뿌려 놓은 것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거꾸로 이야기를 하면 구약성경에 흩어져 있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들을 다 이렇게 함축해서 모으면 53장으로 집결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사실 메시아에 관한한 이 이사야서 53장은 정말 중요한 교훈입니다. 그래서 실은 유대인들 중에서도 이사야서 53장을 읽다가 회심하고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람이 나와서 유대인학자들을 당황하게 할 정도로 예수님 오시기 전 700-800여 년 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정교한 필체로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 사역에 대해서 놀랍고 정확한 묘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가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판화는 제가 너무 사랑하는 판화입니다. 저는 괴르너의 판화라고 믿었는데 일설에 의하면 그 사람이 아니라는 설도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저자 미상입니다. 원 판화는 이것보다 약간 커서 그 아래는 골고다 언덕의 이 장면이 나옵니다. 한 사람이 끌어안고 있는데, 거기에 누구라고는 안 나오며, 끌어안고 있는 사람이 남자라서 이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가능성이 3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당시 역사적인 인물하고는 상관없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의 그리스도의 고난에 공감하는 신자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보기도 하고, 두 번째는 이 판화의 작가 자신이라고도 합니다. 세 번째는 요한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요한이라 보기에는 너무 늙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이것이 작가 자신을 그려낸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주 정교한 판화가 아니라 뭉툭한 판화입니다. 이게 너무 좋아서 제가 30대 교수 시절에, 교수실 뒤편에 항상 걸려있었고, 밑에는 독일 작품이라서 독일어로 기록되어 있는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주여, 저는 당신의 것이고, 당신은 나의 것입니다.” 이런 말로 시작하는 시구가 아래에 쓰여 있습니다. 제가 이것을 이 속에 넣자고 강력하게 주장을 해서 창문에서 보는 것 같은 이 그림을 넣은 것입니다.
1. 이사야 53장의 1절의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가 전한 것”이란 무엇입니까?(27)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일차적으로 보면 당연히 선지자, 그리고 선지자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전파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더 확장해서 보면, 이사야 선지자뿐만 아니라 당시 메시아를 신앙하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구약성경 속에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이야기한 사람들, 더 넓게는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우리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은 이사야 선지자뿐만 아니라 후대에 태어나서 메시아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던 모든 사람, 그리고 그 메시아 신앙이 실현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복음을 전파하려고 했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리’ 속에 들어갑니다. 전한 것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휘모아(שְׁמוּעָה)’로, ‘들려진 것’입니다. 영어로 ‘리포트’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아무튼 전해진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당시로는 메시아로 말미암는 인류구원의 메시지, 이것이 바로 1절이 함의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2.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이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28-31)
답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누구이고 무슨 일을 행하셨는지를 아는 것은 우리의 구원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정확한 지식이 있어야 우리가 믿을 수도 있습니다.
다음은 사도행전 4장 1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시더라” 사람이 여기에 있으면서 도대체 우리의 구원자가 누굴까 하고 여러 가지 생각하는데, 그 구원을 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라는 것을 여기에서 보여줍니다.
3. 메시아에 대한 약속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계시되었습니까?(32-34)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메시아에 예언은 개인을 통해, 혹은 공동체를 통해, 혹은 개인에게 일어난 사건을 통해 계시되어, 그러나 그것은 한 번에 완전한 형태로 주어지지 아니하고 마치 씨앗이 자라서 싹이 나고 싹이 자라서 조금씩 조금씩 커져서 마지막에는 이 씨앗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나무가 다 자라서 열매를 맺음으로 알게 되는 것처럼 그런 형태로 점점 발전하는 방식으로 주어졌고, 그것은 끊임없이 계속해서 시간의 흐름을 따라 주어지는 방식으로 계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계시되었지만, 씨앗에서 나무로 자라는 것처럼 발전하면서 계시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타락하고 나서 구원의 계시가 즉시 주어집니다. 창3:15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첫 번째로 아담에게 말씀하시고, 두 번째로 하와에게 말씀하시고, 세 번째로 뱀에게 말씀하시는데, ‘내가 너로’에서 너는 뱀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왜 선악과를 따먹었는지 물으셨지만, 뱀에게는 일체 묻지 않고 한 번에 뱀에 대한 저주를 내립니다. 그래서 뱀을 보면서 자꾸 이 사건을 생각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뱀이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뱀은 하나의 인간을 죄로 이끄는 사단의 도구로서 역할을 한 것이기 때문에 뱀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창조하신 하나의 아름다운 피조물 중 하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독이 있지 않느냐고 묻는데, 그렇게 따지면 독을 가진 것이 뱀뿐이겠습니까? 뱀의 독도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인류가 타락하고, 자연계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동물들이 서로를 해칠 수 있는 기능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그런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용을 하지 않았을 것들이 그런 것으로 사용을 하게 되었다고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의 인간의 구속이 모두 완성된 다음에 이 자연의 세계와 인간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심각하게 자연과 반목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해, 2017년도 한국 사람이 쓴 일회용 컵이 257억 개를 썼습니다. 그 중에 대부분은 플라스틱입니다. 여러분들이 종이컵이라고 그러는데, 사실은 종이컵이 아니라 안쪽에는 비닐로 코팅이 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무엇인가 뜨거운 것을 부어먹는 것 자체가 우리 몸에 매우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몸을 교란시키는 질병, 특히 화학적 질병의 유발요인 중 하나가 화학물질입니다. 그래서 굉장히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서부터 이런 컵들, 일회용품들을 완벽하게 사용안 할 수는 없겠지만, 사용하지 않도록 규제해야 되고, 더더욱 플라스틱 용품의 사용을 아주 획기적으로 줄여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비닐로 만든 백이 유럽에 가보면 나라들마다 점점 안 쓰는 추세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가방을) 자기가 가지고 다닙니다. 사무실에서도 내가 직원들에게 이야기한 것은 보기만 하면 일회용 컵을 꺼내지 말고, 모이라고 하면 각자의 컵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커피, 음료수 등을 마시고 자기가 가져가서 씻고 자기 책상에 놓았다가 다시 가져오라고 합니다. 불편하더라도 우리들이 환경을 보호하는 생활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여자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여자의 후손은 네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에서 “여자의 후손이 네 후손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는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부활로 이뤄지는 악한 권세들의 소멸입니다.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는 것입니다.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을 예고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큰 계획 속에 일어났지만, 하나님의 도구들은 마귀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이 놀랍게 나오는데, ‘여자의 후손’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사실은 좀 이상합니다. 남자가 아들을 낳으면서 남자의 후손이 되는 것인데, 근데 엄밀하게 말하면 부모의 후손이지만, 그 당시 여자를 별로 중요하게 취급을 하지 않았고, 마태복음 1장에서도 아버지의 이름과 아들의 이름으로 이어지는데, 놀랍게 마태복음 1장 16절에서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그리스도가 나시니라” 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마리아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요셉에게서 낳았다고 하지 않고, 마리아에게서 낳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혈통이 이렇게 그 가문에 있는 요셉과 결혼한 여자에게서 태어남으로서 이 족보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 족보를 이해야지만 마태복음의 독자들인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왜 왕일 수 있는가? 왜 그렇게 위대하신 분인가? 구약의 예언을 따라 오신 분인가?’ 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를 설득하기 위해서 요셉과 마리아가 함께 생식을 통해 낳은 아들은 아니지만, 그 집안의 가문에서 나오게 되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이제 민수기에서는 놋뱀으로 예표가 됩니다. 그래서 여기에 보면, 뱀이 이렇게 나옵니다. 병원표시에 보면, 지팡이에 뱀이 감겨져 있는 표시가 있는데 이것은 민수기에서 온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전부다 뱀에게 물리는-불 뱀이라고 나오는데, 빨간 뱀이라는 학설도 있고, 물렸을 때, 불붙는 것처럼 통증을 느낀다고 그래서 불 뱀이라는 견해도 있는데-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죽어갈 때,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치료의 방법을 제시하는데-그것이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아 이것을 보는 자는 살리라라고 하는 것- 결국, 요한복음 3장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라는 것이 하나님에 의해 제시되는 구원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해석이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해석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 두 개를 연결 짓습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놋뱀으로 예표되고 그것을 쳐다보는 사람이 구원 얻는 것처럼, 신약시대에는 그리스도 예수의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고 바라보고 믿는 사람들에게 공로와 상관없이 그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후에는 여호수아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기적을 일으켰던 모세의 뒤를 이어서 여호수아라는 인물-모세와 같은 카리스마를 갖지는 않는-이 등장하고,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지도자가 되게 하셔서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들어갔으며, 그의 이름이 바로 ‘구원’입니다. 여호수아, 여수아, 호세아 모두 다 같은 ‘야사’라는 동사에서 오는 활용-예수도 같은-입니다. 메시아를 바라보고 일어난 많은 사건들 중에 속한 것입니다.
4. 이사야 53장 1절의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라는 질문의 의미는 무엇입니까?(35-36)
우리가 전한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이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의 의미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이 생각하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방식으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거의 신에 가까운 아주 특별한 존재가 나타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든 억압에서 건져 낼 것이라는 정치적인 메시아 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것을 깨고, 사람들이 예측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메시아가 오시는데, 그를 볼 때에 그런 일을 하실 것처럼 안 보이는 분으로 오셔서 사람의 생각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구원할 것을 보여줍니다. 이 의미는 구원에 있어 여호와의 권능을 알아볼 자가 누구인가라는 것이며, 이 질문의 의미입니다. ‘여호와의 팔’에서 ‘팔’은 ‘제로아(זְרוֹעַ)’라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원래 신체의 부분을 의미하는데, ‘손’(יָד)이 아니라 전체 ‘팔’을 의미합니다. ‘어깨’라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이 팔은 하나님의 놀라운 힘을 나타냅니다. 남자가 힘을 쓸 때 팔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딱 볼 때 힘이 세게 보이는 사람은 팔에 근육이 튀어나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충분하게 구원하고 보호 할 수 있다는 의미로 ‘편 팔’로 묘사합니다. 편 팔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붙드신다는 것입니다. 아이를 안을 때 한쪽으로 감아서 안으면 엄마에게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그런 뜻입니다.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라는 것은 구원에 있어서 여호와의 권능이 나타날 것인데, 그것을 여호와의 구원의 방법, 구원하시는 여호와의 능력이 권능이 이런 식으로 나타날 것을 알아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라는 의미입니다. 그런 우울한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이 당시 이사야시대이기도 하고, 복음을 듣는 오늘날 우리 시대이기도 합니다.
5.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했던 구원의 방법과 어떻게 다릅니까? 하나님의 구원방법이 자신의 기대와는 다르다는 이유로 마음을 닫는 사람들의 결국은 무엇입니까?(37-42)
그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강력한 정치적인 통치자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던 이유 중에 하나는 순수하게 복음을 듣고 감동을 받은 사람들도 그 속에 있었지만, 따라다니던 많은 무리의 동기는 예수님이 일으키는 저 놀라운 기적을 이스라엘을 로마제국의 식민지에서 해방시키는데서 사용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요한복음 6장에서 임금을 삼으려고까지 했던 것입니다. (철저하게)
생각해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게 나쁜 게 없는데, 유대인들에게 철저하게 미움을 당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예수를 보았을 때 가지고 있었던 정치적인 기대가 큰 실망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거기서 오는 복수심이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 미워하게 만든 것입니다. 결국 그렇게 해서 그들은 사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설명하자면, 메시아는 영광스러운 왕으로 아주 초인적인 존재로 올 것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갖는 묵시문학적인 전통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오신 모습은 그는 주 앞에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는 모습이며, 이는-자신들의 기대와는 다른-현실입니다. 이 둘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반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메시아를 생각합니다. 메시아는 나를 구원할 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안 믿을 경우에는 그런 식으로 인물이 와서 우리를 구원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메시아라고 기록되었지만, 사실 이것은 우리의 구원에 관한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런 구원에 관한 지식이 없기에, 내가 높은 자리에 오르면 행복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비슷한 얘기지만, 금덩이가 많으면 자기가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든지 인격이나 인물이 아닌, 이 세상에 있는 비인격적인 지위나 재물 부귀 이런 것들이 자기들을 행복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억지로 임금을 삼게 했던 요인들입니다.
6.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을 때, 세상이 보여준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이 우리에게는 찬양의 제목이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43-47)
답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세상을 재창조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낮아지심을 찬양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어떤 그림을 보며) 처음에 이 그림이 무엇인지 몰랐는데, 이 그림은 마리아와 요셉, 말구유에 누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이신 그분이 우리를 위해 낮아지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방법은 정치를 통해서 나라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 모든 불행의 근원이 되는 인간이 가진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지혜 속에서 이 모든 인간의 죄를 그냥 넘어가실 수 없는 공의로운 성품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 죄를 전가하게 하시고 그 죄를 위해서 대가를 치르게 하신 후,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구원의 공로가 전달되게 하여 그를 구원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야 했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공과는 사실은 어렵지 않습니다. 밑에 각주가 있는데 그것은 그냥 읽으시면 좋습니다. 그것은 히브리어 본문을 놓고 이것이 원래 어떤 본문이 되어야 제대로 된 본문이겠는가 하는 것들을 비평하면서 작성한 것입니다. 20여 년 전에 설교한 내용이 2000년에 책으로 나왔습니다. 이것을 보고 만져서 결과를 내놓은 것이 벌써 20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봤는데도 너무 머리가 아파서 다시 꼼꼼하게 책들 찾아 정리해서 초판보다 더 말끔하게 내놓았습니다. 여력이 되시면 읽어보시고, 위에 있는 내용들은 별로 어렵지 않고, 물 흐르듯 내용이 되어 있기에 여러분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