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고난당하신 하나님의 아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 53:3)
녹취자: 강정아
1. 메시아가 이 세상에서 어떠한 대우를 받게 될 것인지에 대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이 부분을 기록한 이사야 선지자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요?(50-51)
첫째, 세상에서 메시아가 배척을 받게 될 것이고 둘째, 선지자의 마음은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을 것입니다. 선지자가 예언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으며 간고를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그래서 마치 사람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랑으로 오셨지만 멸시와 욕을 당하시고 그 시대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을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분을 부당하게 대접하였던 이유는 무엇입니까?(51-52)
첫째, 그분이 메시야임을 몰랐기 때문이고 둘째, 그분의 가르침이 사람들에게 싫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셨는데 어떤 사람은 그 가르침을 듣고 환호하면서 구원을 받고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그 가르침을 싫어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가르침은 빛 가운데 사는 사람의 삶을 가르치고 그 빛을 증거 하는 일이었는데 어둠속에 있고 싶은 사람들은 그런 곳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선한 것을 가르쳤지만 그들이 악했기 때문에 그 가르침을 싫어했고 주님을 떠난 것입니다. 그가 멸시를 받은 이유는 그 분이 메시아이심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로 오실 것인데 그 분이 메시아인줄 몰라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분을 멸시했고 그분의 가르침이 싫었기 때문에 그를 박해했던 것입니다.
3. 저자는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부당한 대접, 메시아에 대한 모욕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교회 속에 그러한 신앙생활이 만연해져 있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52-54)
현재적인 구원의 감격 없이 살아가는 것이 메시아에 대한 매우 부당한 대접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한 번 구원 얻는데 사용되는 일회용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어서 그 감격을 가지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경륜을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이 지식이 현재적으로 그에게 감화를 끼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그리스도를 배워가고 매일매일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사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일하게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사랑으로 사람들을 구원해서 교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를 깊이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고난을 묵상하며 그 분이 자기를 위해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돌아가신 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삶의 모든 방면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이에 반해서 어떤 사람은 사랑이 식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해 죽으시고 고난당하신 그것이 이 사람의 마음에 큰 감동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리차드 십스라고 하는 청교도는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면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리스도의 교훈에 쉽게 영향을 받고, 세상의 욕망에 대해서는 딱딱한, 영향을 잘 받지 않는 마음이 되고, 반면에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은 세상의 영향을 잘 받고 받아들이지만, 그리스도의 교훈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딱딱한 길과 같아서 말씀이 뿌려져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아주 적절한 설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구원해주신 감격 속에서 사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4. 이사야 53장 3절의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 가운데 어떻게 성취되었습니까?(55-56)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온갖 고난을 당하셨고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메시아가 고난을 당하고 외면을 당하고 귀히 여김을 받지 못했다고 본문에서는 말합니다.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에서 ‘간고’는 ‘마크보트’라고 합니다. ‘마크보트’는 ‘질병’, ‘연약함’, ‘상처’, ‘고통’ 등을 의미하는 복수의 단어인데 메시아가 당하게 될 이것이 아주 많고 클 것임을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는 없으셨지만 죄 때문에 고통 하는 인간의 많은 아픔들을 이해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죄는 없으셨지만 인간과 똑같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인간들이 당하게 될 모든 고통, 굶주림, 추위, 목마름 같은 모든 것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경험하심으로서 자기가 구원할 백성들을 당신의 육체로 배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분이 이런 걸 많이 겪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질고와, 질병, 많은 고통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감할 수 있고, 공감하기 때문에 우리를 긍휼이 여기신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 사람이 얼굴을 가리는 것 같다는 것의 의미는 그 광경이 너무 비참해서 차라리 보지 않기를 바랄 정도로 그렇게 그리스도께서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실 정도로 많은 고통을 받으실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 자체가 커다란 고통이었습니다. 율법아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정죄를 당하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신 것뿐만 아니라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복종하며 사신 그 모든 핍박과 배척받으신 생애 자체가 그리스도에게는 고통 이였고 그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직시하는 모든 사람들은 차라리 고통을 볼 수 없어서 가리는 것 같이 그런 정도로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을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여기에서 ‘우리’라는 사람들은 이 언급이 예언적 과거로서 이사야 선지자의 시대와 앞으로 올 모든 신자들에게 해당되는 예언입니다. 이것이 정말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돌아와서 구원을 받았지만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선지자와 제사장 같은 사람들이 성경 말씀을 읽고 연구하고 있었지만 그 성경이 명백히 증거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로 오실 것임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잘 몰랐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셨는데 구약의 사람들에 비해서는 훨씬 풍부하게 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에게는 이 메시아를 믿어야 할 책임이 훨씬 크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희미한 그림자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했다면 오늘 우리는 이미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죽으시고 고난당하시고 부활하신 명백한 사실의 주인공인 예수를 믿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더 큰 믿음의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당연히 믿지 않았을 때의 그 책임은 계시가 희미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책임을 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5. ‘세상의 안목’으로 본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의 눈’으로 본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다릅니까?(57-59)
외견상으로는 너무나 볼품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은 정치적 메시아였기 때문에 정말 그럴싸한 사람이 나타나서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고 아주 탁월한 지도력과 신적인 기적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로마의 압제에서 회복시켜서 다윗의 왕국 같은 영광을 되돌려줄 사람을 메시아로 기대했습니다. 그러한 구도를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봤을 때 그리스도는 외견상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위대한 왕도 아니었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메시아 상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정치에 너무 관심이 없었고 로마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로마로부터의 해방을 꿈꾸고 더 나아가서는 로마를 멸망시킬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였는데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종종 ‘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저런 능력을 가지면 우리 꿈을 이럴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던 때가 가끔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셨을 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삼고 싶어 했던 이유가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가면 흘러갈수록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인 메시아에 대한 그림과 실제 예수 그리스도가 현실에서 보여주는 것은 너무나 다른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외관상으로는 볼품이 없는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눈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데 믿음의 눈으로 본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한 민족을 잠시 정치적인 압제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고통과 샬롬을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궁극적인 치료책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원을 궁극적으로 주셨다는 것을 믿음의 눈을 보게 될 때 그 예수 그리스도가 힘이 없는 것이 능력이요 약한 것이 강한 것이며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오히려 세계를 정복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구유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구유’를 생각할 때 흔히 나무로 된 말구유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돌멩이를 웅덩이처럼 움푹하게 파서 그 안에 사료를 주던 것이 그 당시의 구유라고 합니다. 그런 밥그릇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메시아에게 어울리는 탄생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리고 일생 동안 종처럼 모욕을 당하시고 마지막으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죽음을 당하신 것을 볼 때 외견상으로 너무나 볼품없는 메시아였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예수 그리스도를 보며 과연 저 분이 메시아일 수 있을까 의문을 갖게 되었지만 믿음의 눈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본 사람들은 이렇게 겸손한 모습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뜻입니다.
6. 우리가 정직하게 복음 앞에 서서, 진지한 마음으로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배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61-62)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서 이 세상이 재창조될 것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있는 이유는 오늘을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이루실 그 재창조를 이 세상에 보여주고 그 일을 위해 이바지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우리를 창조하고 구원하신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은혜의 빛 아래서만 이것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배워야하는데 그것은 오직 은혜의 빛 아래서만 배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경험이 없이는 그리스도를 알 수 없습니다. 한 번의 경험으로는 그 분을 모두 알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고난을 묵상하면서 그렇게 자기를 구원해주신 구원의 은혜 안에서 살아갈 때에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배워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배워가는 은혜 생활이 있을 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왜 구원하셨고 우리가 여기에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명료한 이해가 생겨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