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온유한 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녹취자: 장미연
안녕하십니까? 성도 여러분, 새해가 밝았습니다. 그리고 새해 첫 공과 공부입니다. 오늘 우리가 계속 공부하고 있는 팔복 제4장을 같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온유한 자입니다. 본문을 읽어보겠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온유한 사람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이 생각납니까? 무골호인같이 모든 사람에게 좋고 아무 일이라도 좋고 그런 사람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온유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줏대가 없거나 모든 일에 아무 상관하지 않는 그런 극단적인 낙천주의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 온유함이란 어떤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말씀하셨습니다. 첫 시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팔복은 예수님이 가상적으로 ‘이런 사람들이었으면 참, 좋겠다.’ 그러면서 어떤 사람을 상상해서 그려내신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리게네스가 말한 바와 같이 이것은 예수님의 자기 인격을 자기 자신의 사람됨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에게는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성화가 필요 없었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참 인간이 어떤 완전한 인간인가 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분으로 오셨습니다. 이상적인 인간이 있는데 예수님은 아직 그런 인간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의 자기 인격의 표현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가만히 돌아보십시오. 예수님이 말씀드린 것처럼 모든 사람에 대해서 좋고 무골호인같이 그냥 낙천주의자로 이렇든 저렇든 적당히 타협하며 그래서 싫어하는 사람이 없이 그렇게 사셨나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성전을 정화하시는 그런 광경. 종교 지도자들을 꾸짖으시는 광경 같은 데서는 그런 모습을 읽어낼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온유함은 우리가 생각하고 흔히 알고 있는 그냥 그렇게 양 같은 사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온유함이 무엇인지 도표로 돌아가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국어사전 적으로 보면 온유함은 사람의 표정이나 성질이 온화하고 부드러운 것. 이것을 국어사전 적으로 온유함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이런 선천적인 온유함이 아닙니다. 열정이 없는 무정염. ‘정염’이라는게 그리스어로 ‘파도스’라고 하는데 끌어 오르는 것입니다. 그리스어에서는 반드시 긍정적인 뜻으로만 쓰이지 않았습니다. passion without reason 이성이 없이 확 쏟아져 올라오는 열정적인 감정까지도 ‘파도스’라고 보았습니다. 그런 열정이 아예 없는 것. 열정이 있으면 싫어함, 좋아함. 그다음에 미움, 사랑 이런 것들이 다 정념입니다. 그런게 없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온유함은 다른 사람에 대해 이타적이고 부드러운 성품입니다. 원래 ‘온유하다’라고 하는 이 말이 그리스어로는 부드러운, 점잖은, 겸손한, 사려 깊은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타인에게 대하여 자신의 권한을 남용하지 않는 것. 어떤 경우가 그렇습니까? 자신은 권한도 없는데 상대방을 함부로 정죄하거나 모질게 대하거나 그런 것들이 온유함의 반대다라는 뜻입니다. 태도가 온유한 사람은 오만하거나 억압적이지 않습니다. 현대인이 그려내고 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본다면 사실 경쟁력이 없는 그런 특징 아닙니까? 이 정도로 해놓고 더 살펴보겠습니다.
오리겐이 굉장한 천재입니다. 2세기에서 3세기를 살았던 사람인데 아버지가 순교하셨습니다. 아버지 순교할 때 그 현장에서 박수를 친 아들입니다. 우리 아버지 승리하고 천국 가셨다고. 그리고는 아버지 순교하시고 집에 돌아와서 순교할 기회만 찾았습니다. 그 당시에 독실한 사람들이 대부분 그랬습니다. 동생이 여섯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오리겐 한테 ‘얘야 주를 위해서 죽는 것도 좋지만 동생들하고 살아야되지 않겠냐’ 타일렀습니다. 그다음부터 신학을 하기로 뜻을 세우고 공부하게 됩니다. 이야기하면 길지만 간단하게 얘기하면 천재였습니다. 순식간에 신학교의 교장이 되고 그때 나이 약관 18살이었습니다. 저 사람이 상황이 좋지 않았는데도 놀라지 마십시오. 기록에 의하면 쓴 책이 2천 권 정도 된다고 합니다. 나이로 보면 68세까지 살았는데 18살부터 글을 썼다고 하더라도 2천 권을 썼으니까 계산해보니 한 5, 6일에 한 권씩 책을 썼더라고요. 저렇게 기가 막히게 많은 글을 남길 수 있었던 배경에 일화가 있습니다. 암브르슈스라고 하는 귀족이고 아주 돈이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르겐의 놀라운 신앙과 학문적인 재능을 알아보고 아무 염려하지 말고 글만 쓰십시오. 그 당시 어마어마하게 비싼 양피지. 가죽이잖아요. 소 한 마리에서 두루마리 2개밖에 안 나온다고 하니까 엄청나게 비싼 양피지들과 필경서들 모두 다 동원해서 선생님의 사상을 글로 남기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 암브르슈스의 도움으로 아무 염려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저술하는데 몰두합니다. 그래서 약 2천 권 정도의 책을 썼습니다. 남아 있는 건 그렇게 안 됩니다. 기독교가 아직 확고하게 적립되지 않던 시대에 기독교 신학의 기초를 놓았던 그런 위대한 인물 중 한 사람입니다. 삼위일체에 관해서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핍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 유명한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 모든 팔복을 당신 자신 안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그것을 닮기 위하여 우셨으니 이는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라고 하셨음이며 또한 팔복의 기초를 놓으시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예수님이 죄는 없으셨지만 더 온전해지기 위해서 주님 앞에 애통하는 삶을 사신 것인데 그게 당신 자신 안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당신 자신이 지금 이미 있는 것. 당신의 인격적인 상태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이지 가상적인 인간의 팔복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온유한 자의 특성이 거룩함, 꿋꿋함과 연단 된 성숙함. 꿋꿋함과 성숙함인데 거룩한 꿋꿋함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뜻을 세우고 꿋꿋한 것. 성숙 되었는데 많은 연단을 받으면서 성숙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좁지 않고 아주 넓겠지요. 연단을 아주 많이 받으면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성숙해지니까 알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부드럽고 친절하고 타인에 대해서 너그럽고 관대합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서 쉼을 얻은 영혼의 표지입니다. 온유한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힘을 얻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 편이시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해준다는 사실 때문에 요동하지 않는 사람. 또 때로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어도 하나님의 섭리에 자신을 온전히 맡겼기 때문에 평안을 누립니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을 하나님을 향해 가지고 있으니까 당연히 사람에게 그것을 베풀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께로 받은 것만큼 사람에게 베풀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엄마들이 은혜를 많이 받으면 덕보는 건 남편하고 아이들입니다. 애들이 은혜를 많이 받으면 덕보는 건 부모입니다. 남편이 은혜를 많이 받으면 아내가 덕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으니까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온유함이라고 할 때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에서 인간에게만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렇게 흘러와서 흘러가는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이걸 본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요셉이 예수님보다 더 먼저 사람이니까 예수님을 본받지 못했겠지만 예수님의 성품이 결국 하나님의 성품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서 연단을 받으면서 그 온유한 성품을 배운 것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으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인데 쉽겠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온유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한 예가 신약에 나타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스데반이 예수 그리스도의 분신처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자기를 못 박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셨잖아요. 당신의 십자가 고통보다는 저들이 미래에 받을 형벌의 고통을 더 아파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을 위해 변명하시면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런 모습이 바로 온유한 모습입니다. 그것을 그대로 스데반이 본받으면서 그렇게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하고 죽습니다. 이게 온유한 사람의 특성이라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는 어떤 복을 받느냐 그것이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여기서 쓰여진 기업은 회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사라는 의미를 쓸 때는 이렇게 씁니다. 기업(企業)이라고. 이것은 유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가기 전에 지파별로 제비를 뽑아서 땅을 나눕니다. 정복한 다음에 실제로 제비 뽑은대로 돌려줍니다. 이 경계는 침범하면 안 됩니다. 침범당해도 잘못하는 것이고. 그게 지계표 사상입니다. 지계표를 옮기지 말라고 하잖아요. 이게 기업입니다. 이 땅 때문에 누구도 옛날처럼 종살이 하는 사회가 안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다른 사람의 침범을 받지 않으면서 자기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게 기업입니다. 원래 기업은 몫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어로 ‘한락’이라고 합니다. 몫입니다. 그걸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진짜 땅으로 해석해서 성경에 온유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땅을 차지했는가를 예로 드는데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신약에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땅에 관심이 없습니다. 사람들의 마음. 영력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땅을 주셨을 때 감격적이냐면 땅이 없었을 때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십시오. 노예로 살고 땅이 없으니까 아무 땅도 자기 땅이 아닙니다. 들판 같은데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성은 아무데나 짓는 게 아니기 때문에 성이 없으니까 누구로부터도 공격을 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땅이 주어졌다고 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 때문에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 안전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앨머 마틴스 같은 신학자는 “가나안 땅을 주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될 안신의 예표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있었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그래서 땅은 곧 그리스도를 바라본 것입니다. 구약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온유한 삶으로써 복음을 보여주고 사람들에게 감화를 끼칩니다. 이 사람들 마음속에서 사랑이 생길 거 아닙니까? 사랑이 생기면 이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향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것을 땅이라고 본 것입니다. 이 영역을 땅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영역. 정확하게 해석하면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많은 사람에게 감화를 끼쳐서 영향력을 준다 이런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읽겠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예수님처럼 온유함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하나님과의 평화에서 오는 일체의 온유함으로 감화를 끼침으로써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입증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온유함이란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고전 그리스어에서는 말 같은 동물이 길들여져서 온순하게 된 상태 이런 것을 온유함이라고 했는데 부드러운, 점잖은, 겸손한, 사려 깊은 이런 뜻이 있는데 다른 사람에 대해서 이타적이고 부드러운 성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번. 온유한 자의 특성은 하나님을 향해 어떻게 드러납니까? 완전한 평안을 누립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온전히 맡겼기 때문에 평안함을 누리고 삶이 어떻게 변해가든지 간에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입니다.
3번. 온유한 자의 특성은 사람을 향해 어떻게 드러납니까? 거룩함, 꿋꿋함과 연단 된 성숙함.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게 됩니다. 타인에 대해서 부드럽고 친절하고 너그럽고 관대하게 됩니다.
가나안 땅에서 누린 안식과 평안은 무엇을 예표 합니까?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될 안식의 예표입니다.
온유한 사람들의 땅을 정복해가는 방식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의 마음에 감화를 줌으로써. 제일 중요합니다. 감화를 끼침으로써 그 마음을 정복해 그들 사는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하는 것. 이게 바로 온유한 사람이 땅을 정복해 나가는 방식입니다. 복음으로 감화를 끼쳐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한다. 이것이 땅을 정복해 나가는 방법입니다.
오늘 어떠셨습니까? 온유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새해가 시작되었는데 부드러운 사람, 꿋꿋하지만 이해심이 많은 사람 그리고 남을 쉽게 나쁘게 말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이번 한 주도 주님과 함께 활기찬 한 주를 시작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