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그리스도의 속죄(1)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언을 받을 것이니라”(롬 5:10)
녹취자:변상윤
안녕하십니까? 성도 여러분,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 구역 공부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오늘 제5장 그리스도의 속죄입니다. 우리 같이 한번 본문을 읽어보시겠습니까 ?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지 않습니까? 더 위로 올라가면 아담과의 언약이 있고, 그 아래로 내려오면 아브라함과의 언약이 있고, 또 이삭과의 언약이 있고, 야곱과의 언약이 있고, 등등 내려오게 됩니다. 그러면서 모세와의 언약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그 언약을 옛 언약이라고 부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맺어진 언약을 새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언약이라는 말이 사실은 좀 애매한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말에 적당한 말이 없습니다. 도표로 돌아가 보시면 성경의 언약사상이라고 나오지 않습니까? 언약을 히브리 말로 "베리트"라고 합니다. "베리트"가 뭐냐 하면 이렇게("베리트"라고)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단어가 어디서 왔겠습니까?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이 소위 바벨론어 가운데 "바리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족쇄입니다. (두 사람이 있을 떄) 각각 두 발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을 묶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두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함께 움직여야 되는 사이가 되지 않습니까? 이것을 묶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리트"가 이런 말에서 왔을 것이라고 추정을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동사 ("카라트")가 항상 따라옵니다. 이것이 자른다는 뜻인데 "카라트 베리트", 언약을 자른다 그랬는데 이 말이 어려운 것이 우리 말에서 언약이라 그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일방적으로 약속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빠가 저녁 때 올 때 치킨 사다 줄게" 그러면 언약이 됩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것이 아니라 이 말은 언약을 하는 당사자가 있고 또 그 언약에 참여하는 당사자가 있어서 둘 혹은 셋, 여러 사이에 맺어지는, 서로 조건과 조건을 가지고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계약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계약"(이라고 하면) 너무 대등한 사이에 집 계약하고, 무슨 가게 계약하고, 고용 계약하고 하는 걸로 이어지게 되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이, (언약과 계약사이) 어디엔가에 있는 의미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언약이라고도 부르지만 이것을 계약이라고도 부르는데 계약이라는 걸 이야기할 때는 두 당사자 사이에 맺어지는 약정이라는 의미에서 그런 것입니다. (오른)쪽 그림부터 먼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여기에 소위 얘기하는 고대에 종주권 조약이라고 있었습니다. 종주권 조약이라는데 이것이 뭐냐 하면 여기 왕이 있는데 왕이 땅을 다 다스릴 수가 없으니까 이것을 쪼개서 여기에 영주를 임명합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평민이었는데 졸지에 (영주가 됩니다). "내가 너를 이 A이라는 땅의 영주로 임명하마. 여기에서 나오는 세금은 네가 걷어서 네가 살림하고 백성들을 잘 다스리고 그 대신 나에게 얼마를 바쳐라.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면 너는 군사를 모두 동원해서 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야 된다. 절대로 나 이외에 다른 주인을 두어서는 안 된다". 등 약정을 맺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종주권 조약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때 예식을 어떻게 체결하냐 하면 소를 둘로 가릅니다. 반을. 그럼 어떻게 되겠습니까? 피가 낭자하게 되겠죠? 그렇죠? 이때에 둘 사이에 이루어진 약속을 계약서로 꾸밉니다. 그것이 바로 이것(왼쪽 그림)입니다. 계약의 전문 앞에 무슨 머릿말이 나오고, 그 다음에 어떻게 두 사람이 인간적인 관계를 맺게 되어서 이렇게 종주의 관계가 성립되었는지, 그 다음에 여기에서 의무 조항들이 무엇인지 왕이 영주에 대해 지켜야 될 것 또 영주가 왕에 대해 지켜야 될 것, (그 다음에) 문서를 보관하고 낭독합니다. 그리고 증거와 징표들이 따르고 이 계약을 지키면 어떤 복을 받고 저주를 받는다는 것까지 하고 의식을 체결해서 이것을 3부 작성합니다. 그래서 한 부는 왕이 갖고 두 번째는 영주에게 주고,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신당에 보관을 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하나님이 아주 유사한 방식의 계약 구조를 가지고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는 것입니다. 특히 모세와의 언약이. 그러면 사람들이 묻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모세 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아브라함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유사한 방식으로 언약을 맺는 데에는 항상 제물이 들어오는데. 희생 제물이. 이것이 무엇 때문이냐(고 묻는데) 이것입니다. 소위 얘기하는 눈높이 교육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아브라함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실 그들이 알고 있는 신들이라고 하는 것은 신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자기 약속을 뒤집을 수 있고 자기 맘대로 하는 멋대로의 신들입니다. 쉽게 얘기해서 신실성을 확인할 수 없으니까 여호와라는 신이 새롭게 우리에게 나타났는데 그 신이 뭐가 다르겠느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과의 약속이 신실하다는 것, 그리고 매우 엄숙하고 반드시 그가 지키실 것이라는 것을 그 당시의 문화의 맥락에서 가장 엄숙하고 확실성을 갖고 있다고 믿었던 의식인 언약 체결 의식이라는 그 문화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이 자기의 선택된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 멀리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을 해서 모세에 이르기까지 그런 의식을 베풀 때 모든 당시의 언약을 맺는 사람들이 가장 신중하게 생각을 하고 진지하게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결단을 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그 문화를 사용하셔서 기독교를 사람들의 마음에 호소하시는 것입니다. 진실성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조금 어렵습니까? 그런데 본문을 읽어보시면 그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이런 깊은 뜻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은 제일 먼저 아담과 하나님 사이에 행위 언약이 맺어지게 됩니다. 이런 종주권 조약은 당연히 아담 시대에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그것은 그 후에 아브라함을 비롯한 조상들의 시대에 흔히 있었던 것이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을 때도 아주 널리 이루어지던 종주권 조약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특히 중동에 널리 15세기 전후로 퍼져 있었던 그런 종주권 조약을 배경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언약은 쭉 거슬러 올라가면 인류 최초의 행위 언약까지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그 언약의 당사자는 하나님과 아담이고 그다음에 선악과를 따먹지 않으면 영원히 산다라는 생명이 약속돼 있고 언약의 조건은 절대적인 순종 그러니까 변형할 수 없이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먹지 말아라하는 그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만지기만 했어도 괜찮았을 것입니다. 입에다가 키스를 했어도 상관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먹지 말라는 그 조건은 지켰어야 되는 것입니다. 형벌은 육체와 영혼의 영원한 죽음,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의 영혼의 영원한 분리입니다. 이렇게 되어 행위 언약 혹은 계약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결국은 무엇입니까? 계약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 책임이 뒤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이 범죄하고 타락하게 되었을 때 결국 이 언약은 깨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깬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이 언약을 깬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가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에서 이미 배운 바와 같이 하나님과의 관계, 그 다음에 사람과의 관계, 그 다음에 자기와의 관계, 그 다음에 네 번째는 자연과의 관계들이 다 깨진 것입니다. 깨진 것 이것들이 악이 되고 그 다음에 고통이 되어서 인간에게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더 큰 것은 인간의 마음 안에 결국은 이 죄가 들어오게 됨으로 말미암아서 생리적으로 인간은 하나님을 향해 원수처럼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모든 불행과 고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언약이 깨졌으니까 결국은 하나님과의 관계도 모두 파괴됐는데 그런 인간을 하나님이 그냥 두고 보실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떻게든지 인간을 창조하시고 세계를 창조하신 목적을 이루어 가기 위해서는 인간을 그렇게 타락한 상태로, 형벌을 받은 상태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길을 여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구원의 길을 여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인간과 언약을 맺으시기 전에 삼위일체 하나님 사이에 의논이 먼저 있었습니다. 그것이 이런 인간을 구원하는 걸 가져다 준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우리들이 구속 언약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스가리아 6장 1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자리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리에 자기 자리에 있으리니 이 둘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 사이에 인간의 구속을 위한 의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구속 언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언약입니다. 그러면 그 구속 언약의 의논자인 삼위는, 세 위격은 각각 어떤 일을 맡으셨습니까? 성부 하나님은 성자에게 사람의 몸을 입혀 성령으로 잉태하게 하셔서 태어나게 하시고 그와 함께 하시며 죽으신 그를 다시 살려 만왕의 왕으로 삼고자 약속하심, 이것이 성부 하나님의 역할이었고 성자 예수님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비천한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시고 고통을 당하시고 율법 아래 복종하시며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약속하심, 이것이 성자 하나님의 몫이었고 그 다음에 성령 하나님은 성자께서 성부의 뜻을 행하고 지상에서의 사역을 감당하시도록 능력을 주셔서 함께 하실 것을 동의하심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성부, 성자, 성령이 모두 인간의 구속에 참여하시는 것입니다. 구속 언약을 토대로 그 다음에 은혜 언약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행위 언약은 어떻게 됐습니까? 실패했으니까 행위 언약으로는 구원을 얻을 자가 없으니까 은혜 언약으로 구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위 언약은 이제 상관이 없습니까? 믿고 구원을 얻은 사람들은 행위 언약을 따라서 심판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 행위 언약을 따라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은혜 언약은 당사자가 삼위일체 하나님, 그리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선택된 백성들입니다. 여기에는 구약의 백성들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같이 한번 읽어봅시다. "나는 너희와 너희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것이 언약의 약속이고 언약의 특징은 구원받은 자들에게 영적인 힘의 공급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크게 둘로 나누어지는데 모든 죄의 무한한 용서, 그 다음에 순종할 수 있는 무한한 은혜를 주시기로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언약이 요구하는 바가 있습니다. 믿음과 순종입니다. 이것은 요구하는 것에 응하는 (것이) 공로가 되는 건 아닙니다. 믿음과 순종을 했으니까 그 대가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다라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비유를 하면 이런 것입니다. 여기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선물을 주는 것입니다. 너 받아라 그랬더니 여기 있는 사람이 손을 벌려서 이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때 우리는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에게 선물을 주었다라고 말하지 이 사람이 손을 내민 공로로 선물을 받았다라고 말을 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그분이 나에게 선물을 주셨어. 그분이 나를 사랑하셔서 나에게 선물을 주신 거야"라고 말하지 "내가 팔을 내민 공로로 선물을 받았어"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 팔과 같은 것이 믿음과 순종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다음 보겠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로 하나님이 한시적인 방편인 제사를 옛날에 주셨습니다. 언제부터입니까?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자마자부터 바로 주셨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잡한 제사의 방식은 모세 시대에 계시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성막이 있는데 이 안에 성소와 지성소로 삼분의 이, 삼 분의 일, 이렇게 나뉘어집니다. 그리고 여기서 제사장들이 제사를 드려주는 것입니다. 그 제사는 제물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반드시 여기에 순종과 믿음이 함께 따라감으로써 이 헌제자가 드리는 제물이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져서 이 제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한시적인 평화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하나님과 교통하고 그 다음에 또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하는 은혜로운 교통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 (교통은 어떻게 됩니까)? 죄로 말미암아서 금방 또 막히는 것입니다. 그럼 또 다른 제사를 필요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결국 한시적인 방편에 지나지 않았고 결국은 영원한 방편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속죄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속죄는 크게 두 가지로 이루어지는데 첫째는 하나님께 만족을 드린 것입니다. 어떤 만족입니까? 인간이 많은 죄를 지어서 하나님께 손해를 끼쳐드렸는데 그 인간의 많은 죄를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대신 하나님의 형벌을 당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당신의 만족, 이것은 무엇입니까? 공의에 대한 만족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죄인이 형벌을 받고 피를 흘리고 죽어야 됩니다. 누가? 모든 인간이 다 이렇게 죽어야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렇게 안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대리적으로 속죄를 당하셔서 죽으신 것으로 하나님이 만족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 때문입니다?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영원히 죽이실 수 없어서 예수가 대신 대리적인 속죄를 통해서 우리를 용서하시도록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속죄의 동인이라고 하는데 동인이라고 하는 것은 속죄를 하시게끔 한 원인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그것을 신학적으로 사랑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결국은 십자가 희생을 통해서 인간이 구원받게 되는데 그러면 왜 예수님이 꼭 그렇게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됐는가 이것에 대해서 한쪽 의견은 "그냥 그것은 가설적인 필요이다. 무슨 거기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것이 좋다고 정하셨기 때문에 십자가라는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다"라고 보는 것이 가설적 필요론이라면 이것보다 좀 더 성경적이라고 믿어지는 것이 결과적 절대적 필요론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논리적입니다. 가설적 필요론은 "그냥 하나님의 뜻이 오케이 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라고 보고 결과적 절대적 필요론은 "결국 인간이 죄를 지었고 이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공의에 의해서 죽음이 필요했고, 인간의 죄가 무한했기 때문에 죄인은 아무리 죽어도 이런 구원의 효과를 가져올 수 없었고, 무한하게 의로우신 분만이 이것을 가져올 수 있었다고 볼 때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이 방법은 이렇게 해도 좋고 저렇게 해도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꼭 이렇게 하셔서 구원하셔야지만 하나님의 성품에 딱 들어맞는 방법이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결과적 절대적 필요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좀 어려운 말이긴 합니다. 그래서 그냥 쉽게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속죄의 동인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으며, 그렇게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는 형벌하시고 우리를 용서하게 하신 것이다, 그 십자가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 라고 정리해 두시면 되겠습니다.
그럼 오늘 양이 많아서 절반만 합니다.
문제1)
구원과 관련된 성경의 세 언약은 무엇이며 은혜 언약에 담긴 요구 두 가지는 무엇입니까?
행위 언약,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맺어진 언약이었습니다. 두 번째 (구속 언약)은 삼위일체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언약입니다. 은혜 언약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구원 받은 백성들 사이에 맺어지는 언약입니다. 그래서 두 가지 요구가 있는데 믿음과 순종입니다.
문제2)
예수님께서 참하나님인 동시에 참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는 죄가 없으셔야 했습니다. 사람은 죄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셔야 된다. 두 번째 하나님이시기만 했다면 하나님은 죽으실 수가 없습니다. 죽지 않고는 속죄를 위한 제사를 드릴 수가 없기 때문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안셀무스라고 하는 캔터베리의 주교가 있었는데 이분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분도 그랬고 그다음에 아우구스티누스도 무슨 얘기를 하냐 하면 만약에 하나님이시기만 했다면 사람과 상관이 없으신 분이었고 사람이시기만 했다면 하나님과 상관없으신 분이었기 때문에 사람인 동시에 하나님이셔야 했습니다. 이렇게 얘기한 것입니다.
문제3)
속죄의 동인은 무엇이며, 속죄의 동인과 관련된 논쟁 두 가지는 무엇입니까?
동인은 사랑이고 가설적 필요론과 절대적 필요론으로 나뉜다,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금주 한 주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을 묵상하며 은혜로운 한 주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