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부르심과 중생(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녹취자: 최연희
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구역공부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 제6장 부르심과 중생에 대해서 우리 두 번째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중생의 본질에 대해서 이제 이야기할 차례입니다. 지난주 배운 것들은 지난주에 공과한 내용을 다시 한번 살펴보시고 이제 이 공과로 들어오시면 되겠습니다.
중생의 본질은 원래 중생이라는 말은 다시 태어난다. 두 번, 거듭될 ‘중’자고 태어날 ‘생’자 잖아요? 거듭 태어난다. 그래서 인제 이것을 원래 그리스어 성경에서 아노덴이라고 하는데 이제 그것은 다시 이렇게 태어난다 라는 말도 되지만 또 위로부터 태어난다 라고도 해석이 가능한 말입니다. 어쨌든 이 용어는 항상 우리가 육체로 태어난 것처럼 우리의 영혼으로도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이 거듭나기 전까지 죽어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또 위로부터 태어난다 라는 그 말은 그 모든 일이 우리에게 스스로 달린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우리의 영혼을 살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 중생의 본질은 어떤 것일까요? 중생은 영혼의 지배적인 성향을 바꾸는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가 이제 그 두 개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첫째가 이제 영혼의 라는 말이고 그 다음에 지배적인 성향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한다면 근복적이라는 말입니다.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계속 바뀌지 않나요? 그렇죠? 뭘 먹고 싶은 욕망이 생기다가도 갑자기 싫은 마음이 생기고 또 나쁜 일을 하려다가도 그걸 굳이 그렇게 해서 뭐하나 하는 마음의 어떤 변화가 오는 거죠? 그런데 그것은 영혼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게 어떻게 말하자면 영혼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의 마음에서만 표피적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영혼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본질적이라는 뜻입니다. 그 다음에 지배적인 성향이라는 것입니다. 지배적인 성향이라는 것은 뭐냐하면 인간이라는 것은 결국은 세상을 사랑하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든지 둘 중에 한 성향을 가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하나가 지배적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그냥 태어난 대로 내버려두면 세상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고 그것은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 지배적인 것을 바꾸는 근본적인 변화다
두 번째 중생은 점진적인 변화가 아닙니다. 어떤 변화가 점진적이에요? 그렇죠. 성화같은 것은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그런 게 아니라 이렇게 즉각적인 변화입니다. 또 어떤 것들 입니까? 중생이 즉각적인 변화고 칭의 같은 것도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죠? 그 다음에 영화도 즉각적인 변화입니다. 그런데 성화는 점진적인 변화인데 중생은 점진적인 변화가 아니라 즉각적인 변화다 그것입니다. 그리고 중생은 인간의 의식이 아니라 잠재의식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그래서 중생한 날짜를 기억해보라 그러는데 사실은 중생과 회심이 동시에 일어날 경우에는 회심을 보고 중생의 날짜를 특정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 두 개가 같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우리들이 날짜를 특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사실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중생했다는 사실, 중생한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사랑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진정으로 중생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에 성령과 중생의 특성 그러니까 중생은 이제 그 구원의 적용 사역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하나님이 구원 사역을 계획하시고 그 다음에 그 구원 사역을 위해서 희생하시고 그 다음에 그 구원 사역을 적용하십니다. 그런데 이제 이것이 이게 성부께서 하신 일이라면 이게 성자께서 하신 일이고 이것이 성령께서 하신 일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직접적으로 주도하여 역사하신다. 어떻게? 거듭나도록 그리고 이 역사는 인간 본성에 적합하게 이루어진다. 그래서 무엇인가 귀신이 들리는것 같은 방식으로 없는 것들이 바깥에서 들어와서 두 개가 나의 본성과 성령의 역사가 갈등을 일으키는 그것이 아니라 나의 본성을 사용하셔서 적합하게 그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실은 거듭난 사람들은 자기의 영혼 안에 이물질이 들어온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는 게 아니라 자신의 본성이 예전보다 더 훌륭하게 변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중생은 차이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성화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많이 성화 된 사람과 덜 성화 된 사람 있을 수 있지만 중생은 중생한 사람과 안 한 사람 둘 중에 하나이지 차이가 있을 수는 없습니다. 뭐 예를 들자면 태어난 아이 아니면 아직 안 태어난 아이 이렇게 있을 수는 있지만 그러나 반쯤 태어난 아이, 물론 엄마의 배 속에 있을 때 반쯤 나오면은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데 중생에 있어서는 죽어있느냐 살아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영혼이. 그러니까 영혼이 반쯤 죽어있고 반은 살아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살아 있느냐 죽어있느냐 중생의 차이였습니다.
중생은 세례에 의해 효력을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주의라고 하는데 그래서 이제 성도들이 어쨌든 교회 안 다니시던 분들을 세례를 받게 해달라고 그 애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인제 그런 경우 교회에서 병원에 가서 그래서 교육을 하고 그 다음에 신앙고백을 받고 세례를 주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 세례가 구원의 조건은 아닙니다.
그 다음에 다섯 번째 중생과 삶의 개혁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중생한 사람이 곧 모든 삶을 다 완전히 개혁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그것입니다. 중생하고 회심하는 그 순간에는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어 하지만 그러나 이제 남아있는 죄의 잔존이 있습니다. 잔존하는 죄가 이제 그를 중생하게 했지만 그러나 중생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완벽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여섯 번째 중생은 열광적인 체험을 동반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체험을 동반하게 되는 것은 회심의 경험을 통해서 이제 이런 열광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데 그것도 모두 똑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즈같은 사람은 부흥 운동이 일어날 때 중생하고 회심하는 사람들을 면밀하게 관찰을 했습니다. 그 결과 마지막 내린 결론은 중생한 사람들이 어떤 체험을 한다는 것은 매우 다양하다 이렇게 막 열광적인 사람도 있고 조용한 사람도 있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모든 것을 결정할 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자, 중생의 본질은 중생은 요약을 하면 아까 이야기를 요약을 하면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존 오웬이 이제 중생에 대해서 이렇게 하십니다.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성령님은 사람들의 정신의 능력을 사용하십니다. 악한 영이 사람들의 몸과 씨름하는 것처럼, 성령은 성경을 믿는 사람들의 이성을 사용하셔서 합리적으로 역사하십니다. 성령은 영혼의 능력 위에 강압적인 완력을 가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본성에 알맞게 우리의 능력 안에서 능력에 따라서 역사하십니다.” 결국은 성령의 은혜와 인간의 의지의 조화, 성령의 은혜와 그 다음에 인간의 의지의 조화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에드워즈가 한 이야기도 한번 읽어볼까요? 자 시작. “거듭남으로써 주어지는 그 위대한 변화가 구원 얻으려고 애씀이 없이 상당한 수고를 지불함이 없이 획득된다는 것은 얼마나 가능성이 적은 추측인가! 그러나 그들은 거듭나기 위해 수고하지 않는다. 몸부림치지 않는다. 그렇다. 더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거듭나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며, 그러한 자신의 상태에 대하여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들이 죽기 전에 기적적으로 거듭나지 않는다면 그들은 필경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것이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중생의 사역이 하나님이 주도해서 하시는 사역이기는 하지만은 거듭날 사람들은 거듭나고 싶다는 강한 의지와 희망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에 거저 그냥 그 인간의 노력이 아무 상관이 없다면은 성경이 무엇 때문에 너희가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 그렇게 말했겠습니까? 또 혹은 너희는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라 죄를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렇게 말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경험으로 보아도 입증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열렬하게 찾고 그 다음에 만나고 싶어 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 애썼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만나주셨다 그렇게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만나주셨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비참한 영혼의 상태를 기억하고 거듭나기를 사모해야 된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이 주제에 관해서 특별히 더 알고 싶어 하는 분들은 중생과 회심이라는 시리즈가 있습니다. ‘거듭남과 회심’이라는 시리즈가 있습니다. 책은 ‘돌이킴’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시리즈의 설교를 듣고 책을 읽으면서 그러면서 이 중생과 구원에 관한 것을 정리하시면 은혜받으실 것입니다.
문제 3번 중생이란 무엇이며 중생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인간을 거듭나게 하시는 중생은 새 생명의 원리를 인간 안에 심으시고 영혼의 주도적인 성향을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다. 그 다음에 모든 사람은 거듭나지 못한 상태에서 출생하고 영적으로 죽어있기 때문에 중생해야 한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과 영적인 것에 대해서 무감각한 상태이기 때문에 새로운 감각을 갖기 위해서라도 거듭나야 된다. 이렇게 크게 세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문제 4번 중생의 특징 세 가지는 무엇입니까? 근본적인 변화다. 즉각적인 변화다. 잠재의식 속에 일어나는 변화다.
문제 5번 인간을 거듭나게 하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하나님, 그중에서도 특별히 성령 하나님이 인간을 거듭나게 하시는데 역사하신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