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기도와 교회
녹취자 : 오희열
이사야 62장 1절부터 2절입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아멘.
1.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 사람이 되었는지 아니면 옛날 그대로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존 오웬이 자신의 책 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면 그 사람의 욕망을 보면 알 수 있다. 겉모습과 속모습은 다를 수 있지만 욕망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든 사람의 욕망을 다 들여다볼 수는 없습니다. 욕망은 기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고 싶을 때, 항상 그렇진 않더라도 기도할 마음이 있다면 원하는 것을 기도하지 원하지 않은 것을 기도하지는 않을테니 말입니다.
옆에 있는 사람은 주님을 믿고 있지만 아직 세상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세상 것을 구할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로 변화를 받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갖고 싶은 것을 갖게 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갖게 되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이 없습니까?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2. 시온이 특별한 장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어떠할 때 시온의 의가 빛같이 나타납니까? 그리고 이 시대의 교회를 위한 최고의 기도 제목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시온이 특별한 장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풍경이나 다른 것들 때문이 아니라 “시온”이라는 말은 히브리말로 “요새”, 공략하기 힘든 지역을 뜻합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 시온이 특별한 장소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시온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도를 따를 때 시온의 의는 빛같이 나타납니다. 세 번째는 교회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온은 산이 있고 지역이 있습니다. 여기 시온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나와서 나무를 자라게 하고 짐승들이 자라게 하고 집안에도 그렇고, 말씀이 강물처럼 흘러 내려오면서 생태계가 형성되고 주거단지가 형성됩니다. 이 시온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는데 이 말씀이 무엇에 대한 말씀인가? 단편적인 것을 가리킨다기보다는 시온에서 나오는 이 말씀이 진리이고 이 진리를 잘 깨달음으로써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되고 인간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되고 세계에 대해서 알게 되고 자기 자신이 홀로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되어 있고 인간들과 관계되어 있고 자연 만물과 관계되어있는, 이러한 관계망 속에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은 자기 혼자만 놓고는 그가 누구인지를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종종 드는 비유인데 인간은 수백만 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우주선의 어떤 부품만 하나 떼어 놓고 보면 그것이 무엇에 쓰이는 부품인지 아무도 알 수 없듯이, 그것이 우주선 안에 들어가서 제 자리를 잡을 때 그것이 무엇에 쓰이는지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이렇게 하나님, 자연, 인간, 이 모든 관계 속에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 자기를 구현해간다, 자기를 완성해 간다는 것은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산속에서 혼자 자기를 완성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는 그렇게 완성되지 않고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자신이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면 여기에서 창조의 목적을 발견하게 되고 참된 행복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도를 따라서 삽니다. 그것이 바로 시온의 영광입니다. 시온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땅입니다. 그 시온이 빛난다는 것은 시온 자체를 유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온에서 다스리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말씀을 가지고 다스리시는데 사람들로 하여금 그 하나님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 시온의 빛입니다. 예수님이 “너희는 세상의 그 빛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너희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살면 사람들이 너를 통해서 빛을 보게 된다. 그 빛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빛이십니다. 발광체와 암체가 있는데 태양은 발광체입니다. 언제나 자기 스스로 빛이 납니다. 그런데 달은 그 빛을 받아서 빛이 납니다. 달이 얼마나 밝은지, 저는 가보지 못했지만 미국의 콜로라도 지역을 가보면 밤에 배를 타고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밝다고 합니다. 그렇게 찬란하게 밝은 달빛은 결국 태양을 반사시켜 그렇게 빛을 발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도를 따르게 되고 시온의 도를 빛내게 됩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빛이 아니라 이 사람의 인격과 삶을 통해 나타나는 빛입니다.
교회의 가장 큰 기도제목은 교회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크기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교회가 얼마나 순수한 말씀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성도들이 그 말씀에 부합하게 살아가고 그런 인격이 되어가고 있는가, 이것이 교회의 영광입니다. 그렇게 세상의 빛이 될 때 그 사람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그런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볼 때 “예수를 믿으면서 저렇게 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최고의 사명은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것이 최고의 선교입니다.
제가 서른한 살 때쯤 형언할 수 없는 두통이 왔습니다. 얼마나 심한지 뇌를 면도칼로 도려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이 한순간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하루종일 계속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진통제를 한 주먹을 먹어도 통증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병원마다 갔는데 병명을 모릅니다. 그런데 아주 용하다는 한약국을 가서 진맥을 해보니 그 두통이 신장 때문에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검사를 해도 어떤 수치가 나타나질 않았습니다. 그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약을 지어주면서 열 재를 먹으라고 했습니다. 열 재면 백 첩입니다. 먹는 것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 당시에 돈이 없었습니다. 한 재를 지어 먹었는데 그 값이 교회에서 받는 한 달 사례비의 절반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지탱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때 놀랍게 지혜를 주셔서 지어준 약 한 첩을 빼서 한의사 자격증을 가진 자매에게 보여줬더니, “목사님 문제 없어요. 한 첩 저를 주시고 제가 근무하는 한약국으로 오세요.” 했습니다. 갔더니 먼저 지었던 값의 4분의 1 값으로 지어줘서 꾸준히 먹었습니다. 열 재를 먹고 완전히 나았습니다. 가장 놀라운 변화는, 머리가 아플 때는 200m만 걸어도 온몸이 무거워서 걸을 수가 없어서 항상 누워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신장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먹고 나니까 몸이 아주 가벼워지고 머리가 맑아졌습니다. 그 후로부터 저는 두통이 심하다는 사람에게 그 약을 열심히 소개했고 김희철 장로님도 제가 경동시장 약국에 모시고 가서 지어드렸습니다. 한 20~30명에게 전파한 것 같습니다. 왜? 내가 확실하게 그 약을 쓰고 나니까 두통으로 고통받으면서 가만히 있는 사람을 보면 너무나 불쌍했던 것입니다. 머리가 얼마나 터질 것처럼 아픈지 알기 때문입니다.
결국 복음을 써보고 효과를 입증해야 합니다. 우울하고 불행한 사람을 보고 복음이라는 상품을 누가 사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리 지하철에서 약을 선전하면서 종기에 좋다고 해도 얼굴에 종기 몇 개를 달고 있는 사람이 파는 약을 누가 사겠습니까? 이해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구역원에게 최고의 설득력은 여러분이 행복한 구역장이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저렇게 기쁠까?”, “어쩌면 저렇게 사람이 부드러울까?”, “저렇게 어려움 속에서도 어디서 저런 샘솟는 행복이 있을까?” 생각하게 해야합니다. 제가 오늘도 설교했지만 구역원 가운데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게 “태움”입니다. 간호사들 태움 아실 것입니다. 세상이 여러분을 만만하게 보고, 신입이라고 보고 태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으로부터 받는 “태움”입니다. 어떻게 살겠습니까? 그래서 간호사들이 견디다 견디다가 자살하기도 하고 사표를 내기도 합니다. 그런 것이 세상입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문제를 주지만 해결은 세상에 없습니다. 세상이 주는 해결은 목마를 때 마시는 설탕물과 같아서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3.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어두운 세상을 향하여 예루살렘으로 말미암는 구원이 활활 타올라서 모든 사람이 그 구원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갈렙, 룻, 우리아, 라합.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가나안 원주민입니다. 종자적으로 원래 이스라엘 백성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이 되었겠습니까? 그 중에 어떤 사람은 어떻게 넘어왔는지 모르지만 가나안 원주민인 조상들이 있었는데 이런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신앙과 믿음과 할례를 통해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런 점에서 혈연적 공동체가 아니라 신앙적 공동체입니다. 많은 족속에 대해서 열려있었습니다.
이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인데, 우리나라의 인구가 심각하게 줄어드는 것을 아십니까? 최근에 외국계 기관에서 발표를 했는데 전 세계에서 인구 감소로 첫 번째로 소멸되는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합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지금부터 약 500년 후에는 민족 자체가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기를 낳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라에서 헛된 곳에 돈을 쓰지 말고, 이런 이야기를 성경공부시간에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인구부”같은 것을 만들어서 - “가족부” 정도로는 안 됩니다 - 인구에 관련된 문제만 담당하는, 그것도 부총리급으로 만들어서 온 힘을 다해서 어떻게 이 인구를 늘려나갈지 생각해야 합니다. 남북한을 합쳐서 최소한 1억이 넘어야 합니다. 인구가 1억이 되면 내수시장이 형성된다고 경제학자들은 이야기합니다. 아무튼 “백성들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요”라고 했는데 백성들이 없는 것은 나라에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2080년쯤 되면 청년 한 사람이 노인 여섯 명을 부양하는 시대가 온다고 합니다. 결국 못 사는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아이를 낳아야 하고,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을 적극적을 끌어 안고 그들을 우리 국민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지난번에 나그네에 대해서 설교했지만 외국인 근로자들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됩니다. 외국인들이 이 나라의 국적을 취득하고 나면 심리적으로 국적을 가진 그 나라로 마음이 기울어진다고 합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한국 사람이 미국에서 국적을 취득하고 공직에도 오른 사람들이 있는데 뼛속까지 미국인입니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이 나라가 살고 싶은 나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동남아 사람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많습니까? 그렇다고 아무나 제한없이 몰려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격을 심사해서 괜찮은 사람들은 과감하게 받아주고 여기서 아이를 낳고 살라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인구를 지탱해 나가야 합니다. 짐 로저스 라는 세계적인 투자의 3대 귀재 중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일본은 곧 망할 나라로 보고 일본에 있다면 속히 도망치라고 이야기할 정도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어마어마한 부채입니다. 일본의 1년 예산의 4분의 1이 이자입니다. 실감나십니까? 40만 원을 국가 예산으로 짜면 그중 10만 원이 국채에 대한 이자입니다. 두 번째는 이민자들을 받아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엄청나게 늙은 할아버지들, 휴대폰도 사용할 줄 모르는 할아버지들이 운전을 하는데 너무 불안해 보입니다. 네비게이션을 작동할 줄 모르고 길도 모르니까 본부와 무전기로 연락하며 운전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좋아 보이겠지만 어떻게 보면 굉장히 불안한 사회입니다. 사회가 전체적으로 늙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점에서 심각합니다. 과감하게 문을 열고 우리와 다른 색깔의 한국 국민들을 들어오게 하고 자국민들은 어떻게 하든지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10만 원, 20만 원, 30만 원, 이렇게 주는 것으로 아기를 낳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아기를낳으면 3년쯤 휴직을 주고 언제든지 경단녀(경력이 단절된 여성)가 되지 않고 취직을 할 수 있고, 토요일에는 다른 사람이 와서 육아를 맡아주고 자신은 어디든 가서 하루 쉴 수 있게 해주는, 그런 나라가 되어야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국민교육해서 죄송합니다. 설교시간에는 못하니까 이런 얘기도 가끔 하고 싶습니다. 그 사람들을 사랑해줘야 합니다. 이 나라에서 정말로 살고 싶도록 말입니다. 그러면 동남아의 정말 똑똑한 사람들이 몰려올 것입니다. 왜 동남아에서만 오겠습니까?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즈스탄, 이런 곳의 아주 유능한 젊은이들이 왜 오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그림처럼 예쁜 여자들만 와서 살지 않습니까? 그렇게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됩니다. 제가 왜 저쪽을 보며 말씀드리는지 아시겠습니까? 차별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많이 공감하실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믿음과 할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오히려 어두운 세상을 비춰서 이렇게 쓰러지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횃불로 삼으신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부터 반성하고 해외에 나가면 그러면 안 됩니다. 국내에서도 일하러 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하짜 취급하고, 그런 것이 우리 의식 속에 있는데 우리가 구라파 같은 곳에 가서 백인들이 그런 처신을 하는 것을 목격하면 역겹지 않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친절하게 대해서 이 나라가 살만한 나라임을 그들 마음에 심어줘야 합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이 무슬림 선교를 했습니다. 정말 헌신적으로 했는데 임금을 못 받으면 대신 일을 해주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고 선교비를 모아서 생활비를 주고 거처를 마련해주고 공장 주인이 젊은 여자 노동자를 겁탈하려고 하는 전화가 오면 가서 구해주었는데, 놀라운 것이 여기서 그렇게 도움을 받은 한 사람이 가서 온 동네 온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한국이 너무 좋은 나라라고 선전을 하는 것입니다. 그 마을에서 이 목사님을 초청을 해서 갔다고 합니다. 까만옷을 입은 무슬림 사람들 앞에서 성경을 들고 “예수의 사랑으로 이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당신들도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했다고 합니다. 웬만한 데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처형감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선교입니다.
4. 사람들이 세상이 주는 다양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무엇입니까? 이것이 지금의 교회에 요구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고통이 다양해도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그분을 믿고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잘 전해서, 혹시 그런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해도 은혜를 모른다고 하면 안 됩니다. 한국 사람도 똑같습니다. 한국사람은 안 그럽니까? 범죄자의 비율이 이민자가 높다고 통계적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주면 “예수 그리스도가 참 희망이구나!” 하고 깨닫지 않겠습니까? 교회를 통한 구원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총명이 어두워지고 무지함과 마음이 굳어짐으로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정말 행복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천하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면 뭐 하겠습니까? 행복하지 않은데 말입니다. 갖는 것도 행복하려고 갖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어둔 세상에서 죄에 미끄러졌는데 이 사람들도 세상에서 이렇게 미끄러져 있습니다. 교회에 있으면서도 미끄러진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는 하나님이 복음의 영광을 드러내시기가 어렵습니다. 여기 든든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끼고 가고 있습니다. 진리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진리의 힘입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어두운 세상을 겁내지 말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잃어버리면 안 되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그러나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지 말고 뚜벅뚜벅, 자신이 옳다고 믿는 그 길을 말씀을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고난 당할 것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큰 은혜를 주십니다. 위기를 만날 것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십니다. 핍박을 받을 것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기쁨을 주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5. 이사야 선지자가 기도하였던 바를 우리도 기도하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 번째, 사람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두 번째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 위해서 악한 세력이 소멸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도를 쉬지 않고 잠잠하지 않겠다. “시온을 위하여 잠잠치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왜 입니까? 시온의 의가 빛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도록 쉼없이 기도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아주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고 전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장로님들과 마카오를 다녀왔습니다. CRTS 를 졸업한 학생이 81명인데 신대원을 졸업한 학생이 79명이고 59명이 모였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기차를 열 시간, 열다섯 시간씩 타고 모였습니다. 너무너무 행복해합니다. 거기서 그 사람들의 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데 놀라웠습니다. 바람이 불면 곧 쓰러질 것 같은 연약한 자매인데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일구시고 수십 명의 영혼을 주님께 돌아오게 했습니다. 진짜 하나님은 놀라우십니다. 이것이 기도의 힘입니다. 그리고 말씀의 힘입니다. 여러분도 그럴 수 있습니다. 평신도입니까? 사실 선교의 위대한 역사는 평신도에 의해서 쓰여져 왔습니다. 만약 그런 평신도의 헌신이 없었다면 예루살렘이 어떻게 그렇게 놀랍게 변화되었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쓰십니다.
고통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기도는, 나에게 복음에 감격이 있고 기쁨과 환희에 넘칩니다. 이렇게 내가 기쁘고 행복한 만큼 불행하고 고통스럽고 괴롭습니다. 왜냐하면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난 사람들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이런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여러분이 전도하지 않으면 어둠 속에서 그렇게 비참하게 죽어갔을 사람들을 여러분이 전도해서 단정한 사람들로 만들고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삶의 시련들을 극복하게 하십니다.
6. 우리가 복음의 일꾼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십니다. 한 사람이 말씀을 통해서 사랑과 성령을 충만하게 받습니다. 그러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교회를 위해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 어두운 세상, 그리스도께서 죽으시면서 바라보셨던 세상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예수님이 여기 살아계셨더라면 하셨을 일을 지금 하면서 그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으며, 때로는 시련을 만나며 어렵지만 그 속에서 자신이 완성되어 가는 것을 경험하며 사는 것입니다. 아멘.
이것으로 구역장 공부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