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기도와 고통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삼상 1:6-9)
녹취자: 양현정
1.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에 한나의 상황을 어떠했습니까?
아이를 낳지 못한 것입니다. 요즘도 아이를 낳고 싶은데 낳지 못하면 마음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그 정도가 아니라 특히 아들을 히브리어로 ‘댄’이라고 하는데 ‘집을 세우다’ 라는 뜻입니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못 낳으면 자기 집이 세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속에서 한나에게 브닌나에게 고통을 받으며 상한 마음으로 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15절, 1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너무 평범한 여자입니다. 마음이 슬픈 여자라 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아이를 낳지 못하고 첩에게 시달리면서 그런 관계 속에서 원통함과 격분함을 많이 겪었다고 합니다. 이런 평범한 여자인데 놀라운 믿음의 사람으로 기록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마음의 슬픔과 원통함, 격분함 이런 것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왔다는 것이 이 사람의 믿음이 큰 것입니다.
2. 성경은 한나가 임신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말합니까? 이러한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도전은 무엇입니까?
성경에 뭐라고 말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한나가 임신하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태를 막으셨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이러한 사실이 주는 도전은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삶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은 그렇게 하나님 앞에 풀어놓은 문제들이 고상한 문제들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궁핍하고 질병을 겪고 인간관계에 고통을 겪고 이런 등등의 많은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을 가진 사람과 믿음을 갖지 않은 사람은 그런 일들을 만나면서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는가 안 바라는가 이런 것을 보면서 차이가 나게 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이 제일 먼저 한나의 인생에 개입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심으로 무슨 의미일까요? 한나가 가장 연약해 하는 이런 문제 때문에 결국은 자기를 그렇게 사랑하는 남편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이 여자가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모든 수단 방법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결국은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인생의 문제에 개입하셔서 너는 내 앞에 서라 이 메시지를 한나 앞에 주시는 것입니다. 원통함을 느끼고 격분됨을 겪고 마음의 그 고통을 받고 모든 평범한 여자였지만 그가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 앞에 응답을 받은 후에는 평안한 마음이 되어서 드디어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평안하게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에 개입하시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빨리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면서 하나님을 찾는 기회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3. 고통이 심하여 마음이 타들어가는 것 같을 때 한나가 선택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마음을 토하여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시편 62편 8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으로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로다” 깊은 경험 속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자신은 도망 다니는 처지이고 적군은 많고 자신은 그 적군을 피해 도망 다니는데 하나님이 자신의 피난처가 되어주십니다. 그래서 커다란 환난 중에도 자기를 보호하는 것을 언제 경험하느냐 하면 마음을 하나님께 토할 때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 한나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태도가 어떠했느냐 하면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라고 했습니다. 그 이전에는 본인의 고백에 의하면 괴로움을 당하고 원통하고 격분되는 경험만 가지고 있었는데 그 모든 것을 가지고 만약에 인간 앞에 갔으면 살인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여자의 격렬한 질투와 이런 것들이 폭발하면서 자신의 절망감과 함께 뒤섞이면서 얼마든지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남편을 죽여서 흔적도 내지 않는 사건이 수사 중인데 수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인간이 극한의 사람입니다. 어떤 일까지 할 수 있는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랬을 경우 이 괴로운 것을 가지고 여호와께 기도하고 그분 앞에 물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비굴해지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이것을 남편 앞에 이렇게 털어 놓고 통곡했어도 남편이 해결할 수 없었겠습니다. 그 해결이 마음에 들었을 리가 없고, 첩에게 가서 이렇게 털어놓았으면 해결이 됐을까요? 어두운 밤에 혼자 앉아서 신세한탄을 하며 소주잔을 기울이며 울었더라면 해결이 되었을까요? 우울증이나 찾아오지 않았을까요?
이 여자는 올바른 길을 택했습니다. 모든 평범한 여자의 슬픈 가슴을 앉고 하나님 앞에서 물을 쏟듯이 쏟아놓았습니다. 그가 그 모든 인생의 불행한 사건들을 신앙으로 승화시킬 수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비굴해지지 않고 하나님에게 응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몇 주째 말씀드리는데 뭘 그렇게 인간에게 많은 기대를 거십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을 우리가 발견하길 원하지 않습니다. 무슨 사람에게 그렇게 많은 기대를 거시길래 그렇게 자주 실망을 하십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일어난 일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비록 내일 내 앞에 죽음이 기다리고 이제껏 가보지 않은 아주 치열한 고난이 기다려도 내게 일어나는 일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고요히 그 모든 것을 주님께 쏟아 놓으며 가는 것입니다. 비굴해 하지 말고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4. 한나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을 때 한나의 눈과 마음을 채운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처음에는 문제에 눈길이 갔습니다. 보니까 괴롭고 원통하고 격분합니다.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 괴로울 때 수없이 솟아오르는 것이 언어입니다. 사랑할 때와 분노할 때 마음속에서 언어는 풍부해집니다. 팥죽 놓고 세게 불을 때면 부글부글 끓는 것처럼 거품처럼 올라옵니다. 그 말을 혼자서 이속에서 삭히면서 싸우면서 에너지가 탈진합니다. 그것을 꺼버려야 합니다. ‘내게 일어난 일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내가 모두 헤쳐 나갈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이 세상에 잃어버릴 까봐 두려울 정도로 애착하는 것은 없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사자가 나를 에워싸며 울부짖어도 나는 요동하지 않고 내가 가는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속에서 한나는 하나님 앞에 처음에는 근심과 염려 괴로움 격분됨 이런 것들로 꽉 찼고 여염집 여자와 똑같이 첩과의 사이에서 남편의 사랑을 두고 대를 이을 자식을 낳는 것을 두고 이 속에서 요동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자 그의 눈은 시선은 이동하게 됩니다. 그것을 하나님은 신앙이라고 보십니다. 인생에 문제가 일어나면 이 문제에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문제 속에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문제를 놓고 사람은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자신을 의지합니다. 문제가 확산됩니다. 무슨 문제입니까? 야곱이 오랫동안 외삼촌의 집에서 일을 했는데 얻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이 계시해 주심으로써 많은 소유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그 결과, 에서와 그 자녀들의 원망을 사면서 그러면서 사백 여명의 장정들을 거느리고 달려오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를 건져주지 않으셨으면 그는 거기서 멸망했겠습니다. 하나님이 건져주셨습니다. 이에 비해서 시인의 경험은 “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습니다.” 야곱은 결국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로 살아남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이 되지만 여러분들이 아는 바와 같이 그는 처음부터 순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꾀와 술수를 의지해서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끊임없이 많은 난관을 만납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어떤 문제에 부딪칠 때에는 하나님이 그 문제를 통해서 우리의 능력을 시험해 보시고자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살던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할례를 행하고 다시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되도록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은 정말 복스러운 마음입니다.
5. 본문은 문제를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태도를 어떻게 바꾸라는 것입니까?
문제를 보면서 의심하는 태도를 버리고 이렇게 나의 능력을 넘어서는 해결할 능력을 넘어서는 문제는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주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문제가 생겨 근심합니다. 아무것도 해결되는 것이 없습니다. 근심하는 동안에 마음이 녹고 뼈와 살이 타들어가고 그리고 육신이 쇠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런 속에서 하나님은 의지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들으셨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1장 18절이 나옵니다.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상황이 당장 바뀌었겠습니까. 뭐가 바뀌었겠습니까. 그런데 아주 놀랍게 자기를 지배하고 있던 근심과 염려, 이런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마음의 평화가 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잃어버릴 준비가 된 사람만이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의 묘미가 거기에 있습니다. 세상이 빼앗아 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세상이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의 아름다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