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기도와 영적 성숙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10-11)
녹취자: 심영숙
1. 한나의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한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한나가 누린 유익은 무엇입니까?
그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한나는 예전에 누리지 못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사람들이 이제 많은 고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대부분 상념으로 그치거나 고민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기도로 화하지 않고 현실적인 많은 문제들이 있는데 보면 기도하는 모양은 하고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 앞에 깊은 교통 속에서 드리는 기도는 아닙니다. 여전히 이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 여인이 기도를 합니다. 한나를 이렇게 그려놓은 것입니다. 이 사람도 역시 하나님의 집에 나와서 기도할 때는 어마어마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아이를 낳지 못해서 너무 괴로워서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도가 마음을 온전히 쏟는 기도였습니다. 그런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기도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임재 속에서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그는 이런 똑같은 사람이었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서 그가 주님을 깊이 만나고 하나님의 이런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기도하는 모습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마음을 쏟으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느냐 (하는) 이것이 관건이라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보면 문제가 있는데 그런 문제를 통해서 처음에는 문제 때문에 괴로워하지만 그 문제를 통해서 문제 뒤에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문제를 뛰어 넘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 나는 모르지만 그러나 내가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실 것이라는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때 성령의 깊은 은혜 속에서 현재적인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사랑을 경험하고 상처가 있다면 낫고 고통에 위로를 받고 눈물을 씻겨주시고 참된 만족과 기쁨, 평안 같은 것들을 주시면서 이 문제가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다음은 뭐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죠~~ 뭘 어떻게 되겠습니까?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나 국가라고 하는 것이나 문명이라고 하는 것이나 다 똑같습니다. 모든 것이 안정되어지고 평안해지면 인간은 서서히 마음이 침몰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때 또 간절히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이 생기고 상황이 생깁니다. 그것은 굉장히 힘들고 때로는 괴로운 일이기도 하지만 우리로 하여금 계속 우리의 영혼이 움직여서 ‘구르는 돌에는 이끼기 끼지 않는다’는 것처럼 이끼가 끼지 않게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게 어떻게 보면, 신앙으로 보면 그것이 인생의 묘미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2. 한나가 통곡하며 기도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결국 그 통곡의 동기는 자식을 낳지 못하는 괴로움입니다. 당연히 그것은 인간적인 괴로움에서 시작된 눈물일 수 있지만 그러나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한나의 마음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로 그녀를 데려가고 그리고 그 속에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게 됨으로 말미암아서 하나님 앞에 깊이 깨어지게 되는 그런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하나님 앞에 갖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국은 신앙의 역할입니다.
1장 15절에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했다 그러는데 히브리어로 ‘바코’라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지금 분사형태입니다. 원래는 ‘바카’라는 단어인데 소리내서 엉엉우는 것을 말합니다. 흐느끼는 것이 아니라 아주 절규에 가까운 통곡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방성대곡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통곡했다라고 하는 이야기는 마음에 괴로움이 있었지만 그것을 신앙을 통해서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로 환원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태도입니다. 그래서 모든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사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렇게 되어집니다.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자신은 고립돼 있는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가문에 대해서는 미안한 마음이 들 수도 있었지만은 브닌나에 대해서는 미운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 속에서 이제 이런 것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하려는 신앙을 가지면서 이것들의 초점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문제를 바라보던 초점이 변화되어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고 그래서 결국은 이러한 고통으로부터 자신의 기도가 시작됐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수중에 자신의 인생이 있다는 것을 믿으면서 하나님이 고통 받는 자신을 돌아보아 주시는가? 하나님이 기억해주시는가?(에 더 마음이 가고 기도하게 됩니다.) 구약에서 기억한다는게 ‘자카르’란 단어인데 이것은 좋은 의미로도 쓰여지고 나쁜 의미로도 쓰여 집니다. 좋은 의미로 쓰여 질 때는 ‘사랑한다’는 말과 거의 동의어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잊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를 기억하며’(라고) 이렇게 말씀하실 때 그것은 ‘사랑한다’는 말씀과 거의 동의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나의 고통을 돌아보아 주옵소서’라는 이 탄원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실 우리에게 고난과 시련을 주실 때 모두 이러한 믿음으로 반응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이러한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하나님을 깊이 만나도록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기도 중에 한나의 기도는 어떻게 바뀌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도할 때 한나가 그렇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된 것, 통곡하며 울었던 것, 다 무엇 때문이었겠습니까? 쉽게 얘기하면 나에게도 아들을 하나 주십시오. (하는) 그거 아니겠습니까? 여자가 그 당시에 시집가서 아이를 낳지 못하면 사실은 뿌리가 없다고 본 것입니다. 우리나라 옛날 조선사회에서도 그렇게 비슷합니다. 특히, 왕의 부인이 되었을 때, 왕비가 되었을 때 아들을 낳지 못하면 언제나 위치가 불안합니다. 그런데 아들을 하나 낳아서 그 아들이 원자가 되고 세자가 됐다(고 하면) 그렇게 해서 책봉이 됐다하면 그 어머니의 위치는 왕궁에서 확고해집니다. 웬만한 사람은 흔들 수 없는 분명한 위치를 갖게 됩니다. 아들이 다 보고 있으니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얼마 있으면 (그 아들이) 왕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화 속에서 보면 아들을 낳는 이 문제는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하는 문제와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그런 것을 원했는데 마지막에는 이 아들을 여호와께 드리는 것으로 귀결이 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이런 마음을 가졌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나니까 하나님은 나에게 아들을 주셔서 나의 부끄러움을 면하게 하실 텐데 그러면 나는 이 아이에게 삭도를 대지 않고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으로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사실 기도하면서 한나의 마음이 이런 놀라운 영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이제 말씀들이 나옵니다. “기억하사 잊지 않고 아들을 주시면 그를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삭도를 머리에 대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께만 받쳐진 나실인으로써 그 규례를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나실인은 하나님 앞에 바쳐진 사람으로써 독특한 윤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가 죽어도 가까이 가면 안되고, 삭도를 대지 않고 등등등등의 나실인의 규례가 있습니다. 그 규례를 이야기 하면서 내가 자식을 낳는다 하더라도 이제는 그 자식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바쳐진 아이로 여기겠나이다. 이게 은혜를 받으니까 이런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나의 영광, 나의 고통의 해결을 갈망했다가 결국은 신앙을 갖게 되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니까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영광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갈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이 아이가 결국은 이스라엘의 역사에 커다란 수문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약의 역사에 두 개의 수문이 있는데 하나는 모세고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이 사무엘이라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이 두 사람보다 열등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데 좀 성격이 다릅니다. 왜 이 두 사람이 구약에서 중요한 수문의 역할을 하냐면 모세는 선지자의 시조였고 그래서 거기서부터 선지자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사무엘은 왕정시대를 열고 선지자 학교를 연 사람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의 역사에 제도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두 인물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더니 마지막에 가서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의 빛이 없더라” 하나님이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는데 하나님이 이 여자에게 응답을 해주시니까 마음에 평강이 찾아 온 것입니다. 그래서 시련 속에서 기도하지 않고 현실을 보면서 투덜거리는 사람들은 평강이 없습니다.
제가 오늘 4부 예배 때 청년들에게 설교를 하면서 아주 두 가지 중요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필기해 놓으시면 구역예배 때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겁니다. 한번 써 보십시오.
첫째는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은 한 시간에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과거가 서로서로 연결되면서 현실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태어났다는 과거가 있으니까 내가 여기 있는 것이고, 내가 장가를 들었으니까 가정에 대한 짐을 지고 있는 것이고, 내가 아직 결혼을 안했으니까 결혼에 대한 압박을 느끼고 있는 것이고, 아니면 엄마가 동생을 낳았으니까 형제간의 불화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모든 현재는 과거와 다 연결되어서 현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이런 식으로 허비한다는 것입니다. ‘왜 나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나에게는 그런 사건이 발생했을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게 일어난 일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혹은 일이었다.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미래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미래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일을 만날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일어난 모든 일은 우리의 예상을 빗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예상을 빗나갈 순 있겠지만 그러나 적어도 일어났을 때 ‘도저히 생각지도 않은 일이 일어났다’고 우리는 그렇게 말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예상했던 일이다’(라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인들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살아야 합니다. 10년이 넘도록 ‘왜 나는 이런 집안에서 태어났을까?’, ‘왜 나에게는 그 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러면서 가슴을 한을 품고 힘겨워하며 살아봐야 어차피 못 피하는 현실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내게 일어난 모든 일들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는) 그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미래에 일어날 모든 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가슴 아프기도 하고 싫은 일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 것이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처럼 생각하지는 말자(는 말입니다.) 내일 검진을 받으면서 의사선생님이 ‘굉장히 위독한 병입니다.’라고 진단을 해도 내 인생에 충격이 될 정도로 그러지는 말자(는 얘기입니다.)
두 번째는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은 만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왜 내가 그 사람을 만나서..”(하면서) 그렇게 원망하고 불평하는데 시간낭비입니다. 이왕 만난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부모 밑에서 태어났는데 그걸 가지고 자꾸 후회도 아닌 후회를 해봐야 뭔 소용이 있겠습니까? 내가 어떤 이상한 사람을 만나도 ‘에이, 만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엄중한 현실이 주어져서 ‘이것은 내가 살아있는 한 내가 맞서야 하는 현실이다.’라고 용기를 내야 되는 것입니다. 이번 과와는 별로 직접 관계는 없었는데 하고 싶은 얘기라서 했습니다.
4. 간절한 기도의 유익은 무엇이며, 그 기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간절한 기도의 유익은 집중입니다. 여러분들이 겨울에 쌀쌀한 날씨에 옥상에 떨어지는 이 빛을 보면서 그 햇빛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부채꼴 모양으로 되어있는 반사판으로 그 빛을 모으면 그 추운 겨울에도 옥상에서 라면 하나 거뜬히 끓일 수 있을 정도의 열이 나옵니다. 그것이 바로 집중의 힘입니다. 보십시오. 끈질긴 기도는 집중에서 나옵니다. 간절한 기도는 결국은 집중하는 데서 나오고 집중하는 기도가 오래 지속됐을 때 그게 끈질긴 기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경 여러 곳에서 간절한 기도를 우리에게 강조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는) 무슨 뜻입니까? 도저히 억제할 수 없는 마음의 정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쏟아 놓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응답하시겠고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일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절한 유익은 쓸모없는 생각이 죄가 되고 간절한 기도 속에서 기도자의 마음이 바뀝니다. 몸이 막 이렇게 갑갑하고 어쨌든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 때 만약에 몸에 심각한 몸살이나 질병이 오지 않는다면, 뛴다든지 운동을 좀 하면 찌뿌둥한 몸이 이렇게 풀어지면서 몸에 엔진이 다시 돌아갑니다. 그러면 오히려 가만히 누워서 휴식한 것보다 훨씬 더 몸에 활기를 불어 넣어 줍니다. 마찬가지로 그렇게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은 기도자의 마음이 바뀌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고 환경에 매어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환경의 사슬이 아니라 마음의 사슬이거든요, 그것을 벗겨내면서 하나님 앞에 다시 살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렇게 간절한 기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히브리스 11장 6절에 나와 있듯이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나에게 응답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때 그 믿음 안에서 우리는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5. 사랑하는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의 집에 두고 올 때, 한나가 슬퍼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러한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도전은 무엇입니까?
아이를 그렇게 사모하다가 아이를 가져서 돌이 됐을 때 그 아이를 하나님의 집에 두고 온다는 것이 정말 쉬웠겠습니까? 굉장히 어려웠을 것입니다. 남자들은 잘 모릅니다. 남자들은 충분히 두고 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엄마는 그렇게 안 됩니다. (한나가 하나님의 집에) 아이를 두고 올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냐면 아이를 바라고 기도했다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아들을 낳았어도 그 아들이 하나님의 큰 사랑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과 사랑으로 아들을 내려 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라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것을 하나님 안에서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은 잃어버릴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것들을 사람들이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6. 기도가 어떠해질 때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했음을 알 수 있습니까?
기도할 때 어떤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이 문제해결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것은 대부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이고 이러한 마음의 바람이, 쉽게 얘기하면 욕망이, 하나님을 향하는 사랑보다 더 큽니다. 우리는 환경을 깨려고 기도하는데 하나님은 그 환경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깨뜨리십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더 작은데, 하나님이 이런 문제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바꿔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드(십니다.) 사실은 이렇게 내가 어리석고 미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런 기도제목을 주셔서 나를 기도하게 하시는데, 사실은 내가 더 큰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 살도록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는) 그것을 하나님이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은 육신을 위한 기도 제목으로 주님 앞에 나아갔지만 마지막으로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며 그 아이를 하나님께 기꺼이 드림으로써 이 한나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놀라운 과정을 보여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 인생의 문제를 통해서 우리를 영적으로 성숙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만 하면 모든 문제는, 결국은 하나님이 우리를 성숙하게 하는데 사용하십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하면서 영혼들을 돌보기를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