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장. 삼위 하나님과 교회
녹취자: 허혜숙
1. 교회가 삼위 하나님의 교통의 모상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p.75)
‘모상’이라는 말을 ‘模相’ 이렇게 쓰기도 하는데 사전의 뜻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본떠서 나타냄 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삼위 안에 있는 사랑을 똑같이 베껴서 나타낼 수 있는 피조물 안의 사랑은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없습니다. 그렇지만 마치 완벽한 원이 있는데 인간이 그리는 원은 완벽하지 않지만 그 원을 저 원의 모상이라고 부르듯이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이 말을 쓰는 것입니다. 교회는 삼위 일체 안에 있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사랑을 본떠서 나타내야 하는 기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보면 삼위 일체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 안의 사랑의 교통이 있는데 그것이 성도들 속에 나타나는 것, 이것이 바로 교회가 하나님 사랑의 모상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이것을 확대하면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겠죠?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류전체를 사랑의 사회로 만들고 싶어 하셨기 때문에 교회 바깥에 까지 이것들이 확장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2. 삼위 하나님은 교회의 설립에 함께 하십니다.
1) 인간을 구원함에 있어서 성부의 역할은 무엇이며, 그 동기는 무엇입니까?(p.76-77)
하나님 안에서의 성부 성자 성령의 사랑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사랑이기 때문에 그 본질이 무엇인지는 우리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성부 성자 성령의 사랑이 피조세계에 투영되었을 때에는 우리가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떨 것이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가는 것입니다. 전에도 한 번 설명을 드렸는데 성부 성자 성령은 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자 성부 없이 성령 홀로 계시거나 성부를 빼놓고 성자와 성령이 모이시거나 성령 없이 성부와 성자가 모이시거나 그런 예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부 성자 성령은 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어느 위를 떼어놓고 나머지 위를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봐야 될 것이냐 하면 저는 가장 좋은 설명이 삼각형 설명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꼭지 점이 성부 성자 성령 다 똑같습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각 위는 떨어질 수 없지만 어떤 일, 피조물 특히 인간의 일을 행하실 때 어느 위격이 주로 관여하시는가? 이것은 차별이 있다 이 뜻입니다. 그래서 성부 하나님은 구원하시는 성부로서 사랑입니다. 축도할 때 이상한 것 못 느끼십니까? 왜 성부 하나님부터 시작을 해서 성자 성령으로 내려가지를 않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이 말이 먼저 나오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이렇게 나옵니까? 이유는 성자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보다 크시다는 뜻에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난 것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서 가장 확실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인식되는 순서를 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몰랐지만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통해서 성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고 그러니까 우리들이 교회의 한 몸이 되어서 사랑으로 교통하게 된 것입니다. 이 경험의 순서를 따라서 사도가 그렇게 배열을 한 것입니다. 이해되십니까?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성부는 구원하시는 분인데 사랑이 바로 이 성부의 피조물을 향한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이 성부 하나님은 성부 성자 사랑하심으로 사랑이시지만 성부 하나님은 이 모든 신성의 원천으로서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성부 하나님의 사랑을 구원 계획을 따라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종말에까지 많은 사람들을 중생하여 구원받게 하십니다. 그런 점에서 이것을 수여적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셨으니까 우리가 받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수여적 원인 하나님이 주셨으니까 우리가 받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 사랑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여기 하나님이 계시고 그 다음에 그 사랑에 의해서 교회가 세워지고 성도들의 마음속에 그 사랑이 주어지고 이 성도들이 서로 연합함으로써 사랑의 일치를 이루게 되는데 이렇게 됨으로써 그리스도의 교회가 사랑으로 한 몸을 이루고 이 사랑을 세상을 향해 확장해 나가는 것이 결국은 성부 하나님의 사랑에서 오는 것이고 성부 하나님은 사랑, 그리고 그것은 수여적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인간의 구원에 있어서 성자의 역할은 무엇입니까?(p.78-79)
자, 성자는 ‘희생하시는 성자,’ 그래서 ‘은혜’입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은혜와” 이렇게 나옵니다. 하나님이 구원계획을 세우십니다. 이 구원계획을 세우게 된 동기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랬잖습니까? 그것이 수여적 원인입니다. 그래서 독생자를 주십니다. 그래서 사랑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죽기까지 복종 하셨으니 하면서 십자가로 구속을 실행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결국 희생하시는 성자의 은혜는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공로적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공로를 지불하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수여적 원인, 외우기 어려우면 하나님 아버지가 주셨으니까 받는다, 그래서 수여적 원인, 두 번째 성자 하나님의 공로적 원인, 그가 우리를 대신해 희생하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공로적 원인입니다. 이것이 용어가 한 번 이해하고 외우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 번 해 놓으면 말하고 생각하는데 너무 빠릅니다. 여러분, 버스를 우리말로 한 번 풀어보십시오. 크고 쇠로 만들고 여러 사람이 함께 타고 갈 수 있는 다자를 위한 교통수단으로써 하면서 두 줄 세 줄로 써야 버스가 설명이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버스’라고 생각하고 외워두면 ‘버스’라는 말로 모두 통하게 됩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공로적 원인이다.
3) 인간의 구원에 있어서 성령의 사역은 어떻게 나타납니까?(p.79-80)
어떻게 나타날까요? 믿게 하시는 성령, 그러니까 뭡니까? ‘교통’입니다. 그렇게 성령님이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우리에게 적용하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는데 그 적용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속에 믿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믿음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시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요일 5:6)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속죄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한 구속을 실행하십니다. 그 실행한 것을 그냥 내버려두면 그리스도께서 실행한 것과 우리 사이에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성령 하나님이 우리에게 적용하셔서 즉 믿어지게 하셔서 우리 마음속에 믿음이 생겨나게 하는 것입니다. 아까 이야기한 하나님의 사랑도 그리스도의 속죄의 희생과 은혜와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사랑이 우리에게 쑥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과 성령의 적용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렇게 묻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면 목사님 이상하네요? 구약에서는 아직 그리스도도 없고 성령도 강림하셨을 때에는 그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나요?” 아닙니다. 그들도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어떻게 했습니까? 오실 그리스도를 제사나 율법을 통해 믿으면서 구약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신약시대처럼 이렇게 충만한 성령을 주시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들에게 주시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그들은 나름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아주 잘 아는 것처럼 그렇게 알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구약시대에는 그림이었고 신약시대에는 그 그림 밑에 달린 해설이고 성령이 오심으로서 그것이 동영상이 되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세 가지 원인을 다 발견하게 됩니다. 축도를 생각하면서 한 번 해 보십시오. 하나님 아버지를 앞으로 내 보내보면 ‘하나님의 사랑’ 수여적 원인, ‘그리스도의 은혜’ 공로적 원인, ‘성령의 교통’ 유효적 원인, 무엇에?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데 있어서, 이것을 통해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성령은 이렇게 성령 하나님이 성령 안에서 신자가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기 때문에 이것을 통해서 하늘의 자원 즉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이 흘러 들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 은 사경회 때 무엇이라고 설명을 했습니까? 한 인간으로서 주체성을 가지고 의미를 찾아서 살아가기 위한 힘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자기로서 하나님이 주신 주체성을 가지고 의미를 찾아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힘입니다. 그러니까 돈을 벌면서 버는 대로 그것으로 쾌락을 즐기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삶은 생명이 없어도 그렇게 살 수 있는 삶입니다. 그러나 불의를 거절하고 대의를 위해서 기꺼이 고통을 받고 옳은 일을 하며 불의한 사람과 싸우고 진리를 명백히 밝히기 위해 거짓과 투쟁하고 자신의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으면서 그것을 따라 사는 데는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입니다. 육체의 생명과는 다른 영혼과 정신의 생명입니다. 이 생명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습니다. 이 사랑이 뭐냐 하면 타자와 관계를 맺는 힘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생명과 사랑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로 움직여서 생명은 있으나 사랑이 없다든지 사랑은 있으나 생명이 없다든지 그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사랑만큼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너무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3. 삼위 하나님은 교회의 설립 후에도 함께 하십니다.
1) 이 세상이 아무리 교회를 파괴하려고 애쓴다 할지라도 교회가 영원한 이유는 무엇입니까?(p.81-82)
자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하고 이 세계를 창조하실 때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도와 관련되는 것입니다. 처음 창조하실 때 당신의 의도대로 정확히 세상이 창조되었기 때문에 “보시기에 좋았더라” “매우 좋았더라” 이렇게 표현하신 것입니다. 인류를 그렇게 해서 만드셨는데 인간이 타락합니다. 그렇게 타락한 인간을 내버려두면 창조의 목적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창조가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구속을 실행하십니다. 그리고 교회를 세우십니다. 이 망가진 인간을 다시 세워서 창조의 목적을 알고 그 다음에 창조의 목적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성과 의지를 주셔서 가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이 교회는 창조 목적을 떠난 인류를 다시 창조 목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곳이고 사실 교회가 없으면 세상에 희망이 없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교회 자체의 건물이나 모임 때문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진리의 힘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다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하나님이 이렇게 교회를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신적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꺾을 사람이 없고 교회는 안전하고 영원할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이중적인 머리되심에 대해 설명해 봅시다.(p.83-84)
그리스도의 통치 안에 있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부활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이때가 언제인가 하면 그리스도가 죽고 부활하신 후입니다. 원래 ‘주’ 라는 호칭은 여호와 하나님께만 사용하던 호칭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고 부활하신 후에는 이 여호와에 대한 명칭이 그리스도에게도 적용이 되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온 교회를 다스릴 뿐만 아니라 또한 온 우주의 통치주가 되셔서 교회뿐만 아니라 이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엡 1:22) 이것은 우주적인 주가 되는 것이고 이것은 교회의 주가 되시는 것인데 교회의 주되심은 우주적인 주되심 안에 있는 것입니다.
다음 유기체적 생명의 머리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심으로 그 분은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 모두에게 참여하게 해 주시는 원천이 되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생명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핏줄처럼 얽혀서 그것이 우리가 예수의 생명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이 사람이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이들이 느끼는 생명의 정도는 각각 다르기 때문에 영혼의 침체와 회복, 성령의 충만함과 영혼의 쇠약함 같은 것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유기체적 통치의 머리되심’ 하나는 생명이고 하나는 통치입니다. 그래서 아까 얘기했듯이 교회의 통치자가 되시고 온 우주의 통치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잘 보십시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이니라”(엡 1:23)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충만’은 완성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만물을 완성하시는 이의 완성이시니라”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교회는 그의 몸인데 그의 몸인 교회 안에서 그의 몸이 교회인데 그 그리스도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완성하시는 하나님의 완성,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통치하시고 유기체적으로 교회를 통치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주셔서 교회를 통치하시고 또 말씀으로 이들을 통치하셔서 많은 교회가 있지만 하나의 그리스도 아래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통일체를 이루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시는데 그 통치는 나중에 온 우주를 향해 확장되어 갑니다.
3) 교회의 설립 이후 교회 안에서 성령의 사역은 어떻게 나타납니까?(p.84-85)
그 교회가 설립 된 다음에는 성령 하나님은 위로를 주십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행 9:31) 그래서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이루신 하나의 교회 안에 성령님의 사역을 통해서 위로를 주십니다. 이 위로의 힘으로 성도들은 고난을 이기고 하나님이 주시는 소명을 따라서 교회의 한 지체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4. 천지창조 목적은 무엇이며, 그것과 교회는 어떠한 관계가 있습니까?(p.85-87)
아까 설명하고 반복되는 것인데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창조의 목적을 떠납니다. 흐려집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의도 속에는 여전히 창조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완성하시기 위해서 구속을 실행하시고 교회를 설립하시고 인류를 하나의 십자가 사랑으로 묶으십니다. 그것은 사랑의 사회가 되는 것이고 나아가서 그리스도께서 인간과 모든 세계를 당신의 뜻대로 통치하시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 이것이 바로 창조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 특히 인간이 피조세계를 보면서 인간 사회를 보면서 ‘아,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구나, 그리고 우리가 그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그것을 발견하게 해 주는 것이 창조의 목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