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예배 1, 2과
녹취자: 허혜숙
1과 성도와 가정예배
1. 우리가 자녀를 양육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8~9)
자녀를 한 없이 사랑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 안 됩니다. 가끔 ‘아이구 저 웬수’ 그런 소리가 나옵니다. 그래서 강조하는 것이 부모가 가진 연약함들이 있기 때문에, 자판기에서 콜라가 나오는 것처럼 원하는 때에 단추만 누르면 자녀들을 향한 사랑이 쏟아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것이 안 되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훈육’이라는 말은 ‘교훈하고 가르쳐 양육한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이미 구약시대에도 매우 강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명기 32장 46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 너희에게 증언한 모든 말을 너희 마음에 두고 너희의 자녀에게 명령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구약시대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교훈하고 가르쳐 양육하는 것이 강조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교훈이라면 이것은 징계를 통해서 아이들의 잘못을 바로 잡아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극적으로는 잘못을 바로 잡아주고 그 다음에는 잘 모르는 아이에게 잘 가르쳐 주어서 지식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엄마 아빠가 싸웁니다. 그러면 아이가 얼마나 고민이겠습니까? 그러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오늘은 싸웠다가 내일은 가르쳐야 됩니다. 싸울 때는 그런 생각이 안 드는데 그 다음 날 아이한테 ‘너 똑바로 예수 믿어라’ 하고 아담과 하와가 어떻고, 십자가가 어떻고 하면서 가르칠 때에는 이 아이의 고민은 여기에 와서도 풀려지지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떻게 풀려지겠습니까? 자, 여기에 쭈그리고 앉아서 여전히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 말라기 4장 6절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바는 무엇입니까?(10~12)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히브리 성경에 ‘아보트’라고 나옵니다. 복수입니다.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똑같이 복수입니다.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 4:6)이것도 복수입니다. 구약과 신약이 중첩되는 것처럼 똑같은 내용이 누가복음 17장에 나옵니다. “그가 또 엘리야의 신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희랍어 성경에 보면, “아버지들의 마음들을 자식들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손길이 돌아오게 하고”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결국은 가정이 망가지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종교가 타락했기 때문이고 그것이 회복 될 때 그 때에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한데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 그 때 영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첫 번째 조짐이 가족관계에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가정과 신앙이 얼마나 밀접한 관계에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결과가 오느냐 하면 오늘날의 사람들은 신앙을 싫어합니다. 그 원인은 가정이 깨어진 상태에서 자랐기 때문에 심지어 자기가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이미 가정이 깨어졌기 때문에 그 속에서 그런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또 어떻게 되겠습니까? 더 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회심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정의 회복의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주님을 만나면 내가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 그리고 내가 자식으로서 어느 자리에, 부모로서 어느 자리에, 그 다음에 나의 형제들에 대하여 어느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지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이 사실이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 믿어질 때 그 때에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 1번 2번 3번 모두 그리스도께로 돌아왔지만 그렇게 돌아온 사람들이 아버지는 내가 설 자리는 어디인가? 생각하고 자녀들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가정이 회복 될 가능성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3. 아이들의 회심이 보존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12~13)
아이들의 회심은 인간적인 사랑에 의해서만 보존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전에는 모든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의 문제의 뿌리가 가정에 있다고 보면 90%가 맞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청소년들의 문제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문제의식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문제가 있는 가정에서 문제아들이 생겨나는 것은 맞지만 자신들이 볼 때에 비교적 안정되고 문제가 없는 가정에서도 아이들이 문제아들이 양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이 사회의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부모의 그늘 아래서 따뜻한 사랑을 받으면서 돌봄을 받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 또 다른 욕망들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사실 가정에서 부모가 잘 해 주는 것과는 상관이 없이 아이들이 한 번 욕망을 분출할 때 그 맛을 아이들이 알게 되면 따뜻하게 돌보는 사랑이 단기간적으로 아이들에게 영향을 못 미칠 수도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철이 들면 깨닫기는 하지만 그런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폭력이라든지 요즘 성범죄와 관련된 문제라든지 아이들에게 심각한 게임중독이라든지 이런 것들에 대한 문제는 이제 가정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바로 문제가 됐다 이렇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렇지 않은 가정의 아이들도 많이 노출이 되고 문제가 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들은 아이들을 일단 적절하게 세상의 문화로부터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 무제한으로 풀어놓아 두지 말고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것들은 가정들만의 노력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합의가 이루어지고 강력한 규제들이 주어져야 된다고 봅니다. 특히 인터넷 같은 것들이 발달한 상황에서는 청소년들이나 어린이들이 이런 위험에 노출되는 위협성이 훨씬 더 높아지기 때문에 폭력이나 게임 그 다음에 성범죄 같은 것들이 우리한테 많이 노출되기 때문에 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 아이들의 회심이 보존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라고 했는데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따뜻한 가정의 환경, 이것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설명을 하자면 가족들이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 하얀 테두리 속에서만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다. 부모도 끊임없이 바깥에서 세계와 접촉하면서 살고 아내도 그렇고 아이들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가정에 돌아왔을 때 가정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느낄 수가 있고 아이들이 그 정체성에 대해서 감화를 받을 수 있을 때 회심의 은혜가 가정에서 잘 보존될 수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4. 조엘 비키가 제시하는 성도의 가정에서 가정예배가 드려져야 할 이유 5가지는 무엇 입니 까?(14~17)
이것은 본인의 주관적인 생각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성경에 보면 근거가 다 있습니다. 이 분은 이것을 어떻게 보았느냐 하면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서, 가장의 선한 양심을 위해서, 자녀들을 더 잘 양육하기 위해서, 한정된 시간을 더 잘 살아내기 위해서,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며 섬기기 위해서, 이렇게 봤습니다. 꼭 위의 다섯 가지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여기에 빠진 내용도 있고 우리가 보탤 수 있는 내용도 더 많이 있을 것입니다.
5. 그 어떤 이유도 가정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17~18)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들에게 가르치며 말씀으로 살 것이라, 그 다음에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찬송할 지니라,
2과 청교도와 가정예배
잉크리즈 매더(Increase Mather)라는 청교도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가정은 교회와 국가의 양성소입니다.” 이것은 뉴잉글랜드의 청교도였습니다. 지금의 미국, 아메리카 대륙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가정을 잘 관리하십시오. 나라는 훌륭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뉴잉글랜드에서 경험하는 많은 상처와 불행은 대부분 가정이 신앙적으로 무질서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신앙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자녀들에게 신앙이 있고 그 신앙이 자기 홀로, 일본말로 독고다이로 믿는 신앙이 아니라 자기 혼자 믿는 신앙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신앙생활을 가지고 있다면 가족들의 모임 속에서 예배를 통해서 자기의 신앙이 객관적으로 확인이 될 것입니다. 그럴 경우에는 확실하게 이 아이의 삶을 보다 더 효과적으로 그리스도의 삶의 중심이 되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뿐 만 아니라 직장에서, 혹은 학교에서 드리는 그 예배가 여럿이 모이는 공적인 예배 뿐 만 아니라 혼자 예배를 드리기도 하는데 이것을 우리들이 경건의 시간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찬송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에 반응하는 기도를 드리고 결심하고 하는 예배의 행위들이 자주 진심을 다해서 이루어지면 이루어질수록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덜 이탈될 것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잉크리즈 매더는 이렇게 건강한 가정이 깨졌기 때문에 이런 사회적인 문제가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가정이 신앙으로 건강하게 회복되어 진다면 사회도 훨씬 더 나아질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1. 결혼의 목적에 대한 중세 카톨릭과 청교도의 견해는 어떻게 다릅니까?(24~25)
결혼을 두고 중세 카톨릭에서는 결혼의 중심점을 자녀의 생산을 위한 것에 방점을 찍습니다. 그런데 청교도들이나 개혁자들은 자녀를 생산하는 것은 결혼의 결과이고, 물론 우리가 생육하고 번성해야 되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것은 결혼의 자연스러운 결과이어야 하고 결혼의 일체적인 목적은 거룩한 친교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결혼을 함으로서 남편과 아내가 나눈 따뜻한 사랑의 친교, 그리스도 안에서의 친교,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대하면서 그리스도를 더 사랑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갖게 해 주고 그런 삶에 도움을 주는 거룩한 친교가 결혼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고 보았습니다. 사뭇 다릅니다.
2. 청교도들은 가장의 직책을 막중하게 여겼습니다. 특별히 가족들의 신앙에 있어서 남편의 역할은 무엇이었습니까?(25~27)
남편의 역할이라기보다 가장의 역할입니다. 기본적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은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가정의 목사이고 엄마는 여전도사이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엄마의 역할분담, 아버지의 역할분담 이런 모든 것들은 한 가정을 사랑으로 목회하는 것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는 교회에서 하는 일과 가정에서 하는 일이 그렇게 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영혼을 회심에 이르게 하고 회심한 자녀들은 하나님을 끊임없이 사랑하는 그 회심의 은혜 안에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을 위해서 엄마가, 아빠가 각각 할 역할들이 있었고 그것들은 모두 합력하여서 이 목적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신앙 안에서만 좋은 사람이 태어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가장은 세상과 맞서 싸우는 선봉장이라고 본 것입니다. 가정의 경건을 위한 두 가지 열쇠가 있는데 그것은 질서,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입니다. 여기에서 사랑이 굉장히 강조된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무질서하고 혼란한 가치관들이 밀려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위협합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지만 그 말씀과 함께 이런 세상의 무질서의 문제의 본질이 무엇이고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성경과 신학을 통해서, 더 나아가서는 사회에 대한 지식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에서 목회자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사실은 청교도 때의 목사의 본분은 설교하고 기도하고 공부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후에 오면서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와 맞물리면서. 산업화 되면서 목사의 일이 이렇게 복잡해 진 것입니다. 아주 단순한 것입니다. 목사는 진리를 탐구하고 진리를 따라 살고 언제든지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도록 진리를 가르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목사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그런데 오늘 같은 목회 상황에서 목사가 그림처럼 앉아서 성경을 탐구하고 기도하고 그러다가 예배시간에만 올라와서 “설교하는 것이 자기 임무다.” 라고 생각한다면 여전히 목회자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목회자들이 얼마나 될까요? 궁금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그 분도 몇 천 명을 목회하시던 목사님인데 신문에 인터뷰를 하면서 자기는 목회에 실패했다고 말씀하시면서 자기는 양떼를 모두 알아야 되는데 그 몇 천 명을 제대로 기억을 못했다고 하시면서 자기는 목회를 실패했다고 하시는데 물론 겸손의 말씀일 것입니다. 그런데 청교도들은 그런 것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우리들이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기댈 수 있는 사람으로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목회자를 원한 것입니다. 살다가 뭘 모르면 이것을 목사님께 질문을 해 보자, 그러면 목사님은 준비했다는 듯이 그것에 대해서 충분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준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쉬운 일이겠습니까?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어려운 일입니다.
오늘날 저는 다른 나라 교회는 잘 모르고 조금 압니다. 이야기하고 싶지 않지만 한국교회를 보면 신학교에서는 신학생들을 계속 길러내서 공부하는 목회자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교회는 그런 사람들이 와서 오기 전까지는 미국에서 박사도 하고 별 공부를 다 하다가 목사안수를 받은 다음에서 다 때려치우고 심방에서부터 시작해서 온갖 교회의 사역에 얼굴을 내밀어야 하는 이런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공부하고 진리를 탐구하고 분투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시간을 내어주고 그렇게 하는 것이 목회자를 잘 길러내는 좋은 방법입니다.
옛날에 우리 어머님들이 시골에서 상추를 뜯을 때에도 한꺼번에 뿌리까지 잘라 오지는 않습니다. 잎만 따고 그 다음날 또 가서 잎을 따오고 합니다. 목회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한꺼번에 빨대를 꽂아서 뽑아먹고 나면 뭐가 남겠습니까? 제대로 탐구하지 않는데 뭐가 나오겠습니까? 매일매일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렇듯이 교회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은 가장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가정도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려운 일입니다.
3. 자녀의 신앙교육에 대해 청교도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은 무엇이었습니까?(27~29)
간단합니다. 하나님께는 손자 손녀가 없다. 어떻게 보면 웃기는 이야기이지만 의미심장한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거듭나야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지 부모가 예수를 믿었다는 이유 때문에 하나님과 상관없이 구원받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을 이렇게 포괄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청교도들이 갖고 있는 두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에 이르도록 선택하신 자녀를 주실 것이라는 믿음과 그렇더라도 그들을 교육하지 않으면 죄와 부패에 빠질 것이라는 이 두 믿음이 긴장을 갖게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 아이가 선택된 백성이라는 것을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아이가 공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부인하고 타락에 빠질 수 있는 위험성을 감지하면서 하나님 앞에 겸손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경건한 신앙이 자녀의 구원을 보증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교도들은 자녀의 신앙을 교육하는 것을 자신의 삶의 이유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 정신을 우리가 계승해야 합니다.
4. 청교도 가정 안에서 가장의 영적인 지도력은 가정예배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를 돕기 위해 어떻게 하였습니까?(29~30)
두 가지가 있는데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 모본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가장의 영적인 책무를 일깨웠습니다. 그래서 가장들에게는 가족들과는 별도로 매우 중요한 특별한 사명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줬습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를 제시했습니다. 간략함, 자유, 진정 이런 예배가 되어야 한다. 간략하지 않고 한 시간씩 장시간 예배를 드리면 아이들이 지겨워서 도망을 갑니다. 간략하면서도 자유롭고 진정성이 있는 예배를 드리게끔 모본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가정의 영적 책무를 일깨웠습니다. 잉크리즈 매더가 다시 한 번 나옵니다. “우리 가정에서 끊임없이 예배를 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보스턴 교회에서 하나님 앞에 우리가 이렇게 살기로 다짐합니다.” 라는 서약을 범 교회적으로 하게 됩니다. 그 때 나온 언약 문에 또한 우리는 우리의 책임을 행할 것이며 교리문답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주님을 경외하며 섬기도록 권하고 명할 것입니다. 자녀들의 회심과 구원을 위해 많이 기도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렇게 교회적으로 언약을 한 것입니다. 우리도 옛날에 1995년도에 온 교인이 언약문을 쓴 적이 있습니다.
5. 조엘 비키가 가정예배를 권면하며 제시한 3가지 유념할 사항은 무엇입니까?(31~32)
비슷합니다. 첫째 간결할 것, 둘째 일관될 것, 가정예배 형식을 대예배 때처럼 드렸다가 성경도 안 읽고 기도만 하고 끝내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시종일관 늘 똑같은 형식으로 예배를 드리는데 간결해야 됩니다. 어느 정도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제가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느낀 이상적인 시간은 15분 정도, 길면 20분 그래서 아이들이나 그 누구도 시간에 너무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예배를 드릴 수 있게, 찬송하나 부르고 가족 중 누군가가 간단히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간략하게 설교를 하고 함께 기도하고 주기도문으로 마치는 예배, 즐거우면서도 엄숙할 것, 그런가 하면 윌리암 퍼킨스는 가정예배의 가장 중요한 골격을 성경봉독과 기도와 찬양으로 꼽았습니다. 이 당시에는 개인이 성경을 구해서 가족들이 한 권씩 가지고 있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비쌌습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성경을 읽어서 들려줄 때 가족들이 그것을 기억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사실 예배에서도 성경을 아주 길게 서너 장씩 읽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아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있을 때에든지 일어 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할 성도의 의무 특히 어린아이였을 때 말하자면 갓난아이, 무릎을 기어오르면서 말귀를 알아들을 나이부터 시작을 해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 그 때의 시기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특히 유치부 때까지는 너무너무 중요한 시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