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성화와 마음
녹취자: 박나리
제2장 성화와 마음입니다. 마음을 힘써 지켜야하는 이유에 대한 내용입니다.
1. 잠언 4장 23절 상반절의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지키라고 말합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킬 만한 모든 것 중에서 네 마음을 지키라고 합니다. 히브리어로 ‘내초르’입니다. 이것은 ‘지키다, 파수하다‘라는 뜻으로 성을 지키는 병사들처럼 파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이 있고 병사들이 칼을 들고 그곳을 지킵니다. 죄, 정욕, 유혹 등에 대해서 마음을 지키면 그것들은 들어가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만 들어갑니다. 그러면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됩니다. 신자의 마음은 중립지대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치열한 전쟁터처럼 싸움이 벌어집니다. 마음은 생각, 감각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자아, 육체가 있다면 여기에 감각기관이 있습니다.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는 감각기관을 통해서 수많은 정보가 들어옵니다. 어떤 것들은 마음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사라지지만 어떤 것들은 마음 깊이 내려와서 우리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텔레비전에 수없이 광고가 지나가도 다 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제품 하나가 마음에 들어오면 점점 사고 싶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사고야 맙니다. 그래서 신자의 마음은 매우 치열한 싸움터가 됩니다.
존 플라벨(John Flavel)이라는 17세기의 청교도가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존 오웬(John Owen)이 1616년생이므로 거의 비슷한 시대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열 손가락 중에 꼽을 정도로 탁월한 청교도이자 많은 작품을 남긴 사람입니다. 널리 소개 되지는 않았으나 한국에도 존 플라벨의 책이 몇 권 정도는 번역되어 있으니 읽으시기 바랍니다.
플라벨이 이야기하는 마음지킴의 이유는 여섯 가지입니다. 첫 번째,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손이 붙들고 있을 때에는 참 훌륭한 사람이지만 놓으시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두 번째는 신앙 고백의 신실성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신앙고백을 했으면 그것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무엇이 그것을 따라 살게 해줍니까? 마음이 살게 해줍니다. 세 번째, 우리 처신의 아름다움을 위해서입니다. 마음이 아름다우면 처신하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그 사람의 행위나 삶이 아름답습니다. 표리가 부동할 때 추한 것을 보게 됩니다. 네 번째는 마음을 지키며 살 때 마음에 위로가 있습니다. 그래서 고난이나 슬픔이 와도 위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 가운데 주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섯 번째는 우리 안에 있는 은혜를 북돋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은혜가 없을 때에만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새벽기도를 하며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예배에 참석하시면 또 은혜를 주십니다. 그 은혜가 북돋아집니다. 은혜를 못 받고 있을 때에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내버려두면 매우 위험한 상태에 가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그 날이 장날인 줄 아십시오. 장날은 매일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를 받을 때 열심을 내어 열렬히 은혜를 받으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유혹의 때에 우리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입니다. 언제 유혹이 올지 모릅니다. 누구도 나는 어떤 유혹이 와도 상관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유혹은 스스로가 자신할 수 있는 측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하지 못하는 측면으로 오기 때문입니다. 어디선가 읽은 이야기인데 (용의 피가 묻은 곳은 절대로 다칠 수 없다기에) 어떤 이가 온몸을 용의 피로 적셔서 약점이 없게 되었는데 몸에 나뭇잎이 하나 붙어있었습니다. 거기만 용의 피가 묻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을 찔려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돈에 욕심이 없는 사람은 돈을 훔치도록 유혹을 당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연약한 부분을 공격당합니다. 누구도 자신이 안전하다고 보장할 수가 없습니다. 겸손해져야 합니다.
2. 신자들의 삶을 지배하기 원하는 두 가지 존재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어떠한 방법으로 신자를 지배하려고 합니까?
세상과 마귀입니다. 그 둘의 공통점은 죄와 관련이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힘으로는 지배할 수는 없습니다. 마음의 동의를 얻어서 우리를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3, 4부 예배에서 이야기했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는 것은 이를 통해 우리의 멘탈을 강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정신이 아무리 맑고 탁월해도 멘탈 자체가 유리멘탈이면 이겨낼 수 없습니다. 멘탈이 깨지면 삶 자체가 무너져 내립니다. 멘탈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만만하지만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그것들을 이겨낼 수 있는 멘탈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시련을 통해 연단함으로써 단단하게 해주십니다. 멘탈이 매우 강해야 될 사람들은 목회자, 연예인, 정치인들입니다. 사람들의 눈에 많이 띄고 입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입니다. 텔레비전에서 연예인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그 사람의 멘탈을 알 수 있습니다. 모 배우는 굉장한 시련을 겪었는데, 나이가 어린데도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많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인간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인간적으로만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이겨내야 하기 때문에 멘탈과 함께 하나님의 성령의 열매가 자라게 됩니다.
죄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할 때 결코 우리 마음의 동의가 없이는 지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신자들의 마음을 차지하려고 하는 것이 세상사랑, 그것을 움직이는 마귀의 세력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마음의 주인의 동의를 거쳐서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혹도 악을 위해 준비된 사람에게 떨어질 때 열매를 맺고, 은혜도 준비된 사람의 마음에 떨어질 때 결실하게 됩니다.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있으면 죄가 아무 대가없이 우리에게 그 죄를 행하도록 요구하지 않습니다. 죄의 대가는 항상 즐거움을 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히브리서에서 ‘죄의 낙’이라고 말합니다. 마음이 그것에 대해 동의할 때 받아들여지고 거절하면 거절되는 것입니다. 칼빈이 우리에게 충고하기를 죄를 지으면서 마귀 때문에 그렇게 된다고 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거절하고 동의하는 것을 통해 죄가 우리 마음을 들락날락하게 됩니다.
죄가 우리를 지배하는 방식은 생각입니다. 프린트물에 뇌를 조금 섬뜩하게 그렸는데, 색깔을 이렇게 그린 이유는 좋지 않은 생각이 들어간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하루에 10만 개의 생각이 스쳐간다고 합니다. 그 모든 것들이 다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것은 우리의 마음에 떨어지고 생각에 붙잡힙니다. 우리의 마음에 떨어져서 뿌리를 내립니다. 그러면 그것이 어떤 사물에 대한 욕심, 혹은 욕망이 됩니다. ‘하고자 할 욕’은 죄가 되지 않는 것이고, ‘욕심 욕’은 죄가 되는 욕망입니다. 이는 차이가 있는데 ‘식욕’이라고 할 때는 전자이지만, ‘정욕’, ‘권력욕’, ‘야욕‘할 때는 후자인 ’욕‘입니다. 결국은 생각이 착상이 되면 욕망을 갖습니다. 갖고 싶다든지, 어떤 상태가 되고 싶다든지, 어디로 이동하고 싶다든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그것을 방해하는 것들과는 다투게 됩니다. 아기씨가 몸에 떨어져 자라나 여자가 때가 되매 아이를 해산하는 것과 같습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는 말은 죄를 낳은 자에게 생명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마음지킴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3. 신자의 마음에 내재하는 부패성은 어떠한 방법으로 그의 마음을 지키지 못하게 합니까?
신자의 마음은 아무런 사물이 없이도 이 안에서 상상할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짓는 죄입니다. 자기가 아는 것이 아니면 상상할 수 없습니다. 경험한 범위 내에서 상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면 생각이 혼란스러워집니다. 말씀의 은혜를 받으면 생각이 올바르게 되고, 마음에 있는 질서가 아주 가지런하게 됩니다. 마치 기타를 조율해서 코드를 잡고 칠 때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듯이 정신과 마음의 질서가 가지런해 집니다. 그러면 정신 자체가 훌륭한 탐지기의 역할을 합니다. 죄가 들어오면 이것이 죄라는 것을 금방 파악합니다. 시험에 들어 정신이 혼탁해지고 무엇이 들어와도 잘 파악이 안 됩니다. 파악되지 않는 것이 곧 생각을 지배하고 뿌리를 내리려고 합니다. 그것을 나중에 발견했을 때에는 스스로 끊어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마음을 철저히 지켜줍니다. 그런데 내재하는 부패성은 죄에 대해 문을 열어줍니다. 우리 안에서는 두 가지가 늘 싸웁니다. 막으려고 하는 쪽과 문을 열어주려고 하는 쪽이 늘 싸웁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열렬한 기도 생활 속에서만이 마음을 잘 지킬 수 있습니다. 잠시 그런 생각이 들더라도 털어내며 마음이 수시로 올바르게 제자리로 들어옵니다.
4.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신자라고 할지라도 믿음을 지켜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며 사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장 어려운 것은 꾸준히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유교에서도 인간의 마음을 지키지 않으면 인간은 짐승처럼 변한다고 합니다.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열렬히 기도합니다. 그런데 부패성이 치고 올라오면 은혜에서 미끄러져서 기도도 못합니다. 당연히 사랑이 식습니다. 다시 은혜를 받으면, 다시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며 성령 충만한 삶을 삽니다. 그렇지 못할 때는 다시 떨어집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끊임없이 주시려고 해도 우리 마음 안에서 그것을 받아들이려고 해야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점점 성화시켜가는 것입니다. 결국 점차 올라가느냐, 제자리에서 살다가 죽느냐, 그나마도 못해서 아래로 내려가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 사랑이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신령한 은혜의 결과입니다.
하나님 앞에 많은 은혜의 경험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화의 삶에 진전이 없습니까? 신령함에 진보가 없습니까? 하나님이 만지고 지나가신 부드러운 마음, 주의 은혜에 잠기게 하셨던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을 지키지 못한 데에서 모든 신앙적 재앙이 생겨나게 됩니다. 솟구치는 분노 같은 것, 그래서 평생 후회할 말을 저지르게 되는 것, 욕망, 신념 전부 다 이런 데에서 오는 것입니다.
5. 우리의 마음에 착상되는 수많은 죄를 떨쳐내기 위해 신자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죄가 생각을 타고 들어옵니다. 마음지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각지킴입니다. ‘마음지킴’을 할 때 생각지킴에 대해 많이 설교했습니다. ‘마음지킴’ 설교를 2002년도에 시리즈로 했습니다. 시리즈 설교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결국 인간의 생각에서 올바르지 않은 것을 떨쳐내는 것은 약 10 정도의 힘이면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내려와서 마음에 자리 잡고 떨쳐낼 때는 50, 60의 힘이 듭니다. 뿌리를 내린 후에는 100, 200의 힘이 듭니다. 마음에 뿌리박혀 있는 것을 떨쳐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본성은 그 사람의 운명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도 이야기했습니다. 이 말은 어떠한 면에서는 진실한 말입니다. 우리는 그래도 우리를 고쳐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것입니다. 인간이 은혜를 받고 정신 속에서 마음이 잘 형성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생각이 떨어질 때 이것이 스쳐가는 것인지 내 마음에 호소하는 힘을 가진 것인지를 파악해 낼 수 있습니다. 아이를 가졌을 때 태교를 하는 것은, 보고 경험하는 감각 속에서의 작용이 우리 마음, 태아에게까지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생각을 받아들이지 말고 마음과 정신 속에서 먼저 걸러내야 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너무 오랫동안 해왔고 지금도 하고 싶은 것을 끊어내는 경험을 한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이제 예수를 믿어 회심하였는데 이전의 죄악된 습관을 끊는다던지 –예를 들어, 술이나 이성에 대한 탐닉-성향을 바꾸는 일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이것이 우리 마음속에 들지 않도록 스스로 마음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음식이 들어가서 소화가 안 되면 약국에 갑니다. 그러면 토하든지, 강력한 소화제를 먹어 소화를 시키든지 하라고 합니다. 마음 안에 떨어지는 생각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떨쳐낼 수 있도록 진리의 빛이 필요합니다. 회개는 이것들이 더 이상 뿌리를 못 내리도록 토해내거나 잘라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들이 살아갑니다. 그래서 마음을 지키며 살아온 모든 성도들의 눈에는 항상 눈물이 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우리가 공과를 공부했는데 잘 배워서 잘 가르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