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마음을 지킨다는 뜻
녹취자: 조경훈
특별히 교회행사가 있어서 구역공부가 중단된 때를 제외하고는 구역공부를 건너뛰시면 안 됩니다. 반드시 공부를 해서 따라오셔야 됩니다. 모이는 시간을 풍부하게 할 것이냐 조금 줄일 것이냐는 구역장이 지혜롭게 될 일이지만 오늘은 교제하고 구역공과는 그냥 묻어버리고 다음 주에는 전도지 돌리고 구역공부 안 해 버리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구역공과가 뒤쳐진 데가 너무 많아서 뭔가 조정을 해야 됩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오늘 공부하고 자기 마음이 따끈따끈한 그 주간에 가서 가르쳐야지 딱 맞는 것이지 3주 전에 배워서 다시 이것을 꺼내 놓으면 잘 맞지 않습니다. 공과공부와 구역장공부가 어떡하든지 붙어서 가게끔 구역장님들이 신경을 쓰셔야 합니다.
1. 마음지킴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 다섯 가지는 무엇입니까?(97)
첫째는 마음의 작은 동작에 유의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더라도 작은 행동을 통해서 그 마음이 어떤지를 우리는 압니다. 그런 것들이 마음에 표현입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일어난 작은 동작에도 유의하는 것이 마음지킴에서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자기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살피는 것이 신앙의 성숙도입니다. 마치 자기의 마음을 다른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기 마음은 결국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기 때문에 객관적인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의 빛입니다. 매일 매일 성경을 읽어야 됩니다. 은혜를 받아야 됩니다. 예배시간에 설교를 듣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주일날 들은 설교를 다시 한 번 듣거나 예를 들어서 내가 자꾸 마음을 못 지키는 것 같으면 마음지킴 시리즈 설교, 내가 자꾸 생각에 속는 것 같으면 죄의 속임을 이기는 길 시리즈 설교 등 적당한 것을 찾아서 일주일에 한 개나 두 개를 꾸준히 들으면서 지식을 쌓아야 됩니다. 요즘은 얼마나 발달했는지 마음만 먹으면 무선으로도 다 들을 수 있게 너무 좋게 돼 있습니다.
그 다음은 성경을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번에 임직자 교육에서도 얘기했는데 대체적으로 아침에 성경을 읽는데 사실 한 번에 다 읽어버리는 것 보다 오전에 묵상을 하고 정독을 하고 저녁에는 성경을 쭉 읽어 가거나 그 반대로 해도 좋습니다. 사실 더 좋은 것은 오전에 3장, 저녁에 2장 이렇게 읽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하루 만에 살펴보는 것과 아침에 한 번 말씀으로 살피고 저녁때 또 한 번 살피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유리하겠습니까?
그 다음은 책입니다. 항상 무슨 책을 읽고 있습니까? 하고 물으면 할 말이 있어야 됩니다. 이상한 책 이름을 대면 안 됩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가까이 하게 하고 현실사회를 잘 이해해서 고민하게 해 주는 책들을 읽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를 놓지 말아야 됩니다. 항상 말씀 하는데 설교 하나 성경읽기 하나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ESV 주석성경 거의 다 사셨는데 그것은 못 들고 다니니까 그냥 놔두시고 ESV성경을 차례대도 쭉 읽으면서 통독으로 사용합니다. 정독을 할 때는 성경만 펼쳐놓고 읽습니다. 그것은 몇 장을 읽어야 되겠다고 마음먹지 말고 단 한 장이라도 천천히 읽고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노트나 요즘 성경 중에 가장자리가 비어있는 부분에다가 자기가 깨달은 것과 기도제목을 적습니다. 그것이 몸에 배어서 말씀이 자기를 비출 때 내 마음의 움직임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 말씀의 빛이 사라지면 자기 마음의 움직임이 안 보입니다. 옆에 사람한테는 보이는데 자기한테는 안 보입니다. 객관적인 진리의 빛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자기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마음에 더러운 생각들이 나는데 그런 것들을 버리려고 해야 됩니다. 이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짧고 간절한 기도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유혹을 받습니다. 물질이든지 아니면 무엇이든지 마음이 흔들립니다. 사랑하자고 결심을 하고 눈물을 흘리며 새벽기도를 했는데 아이 씨! 하면서 핏대가 솟아 날 수도 있고 젊은 사람들은 성적인 유혹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문화로부터 자기를 때어 놓아야 됩니다. 자기를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문화를 즐겨야 합니다. 텔레비전조차도 집에 들여 놓는 것 자체가 세속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미국의 신학자들이나 설교자들도 보는데 저는 그렇게 까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몰입해서 자기를 자꾸 잃어버리게 만드는 힘이 미디어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진리의 빛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스마트폰 못 가지고 놀게 하는 이유가 거기에 폭 빠지면 책을 절대 안 읽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더러운 생각이 드러나면 그것을 탁 떨쳐버리는 것입니다. 그때 가장 효과적인 것이 진리의 말씀이 이것을 기뻐하지 않아. 하나님. 나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런 나쁜 생각을 사라지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절히 기도해 보십시오. 해 보십시오. 놀라운 효과가 나타납니다. 마음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해야 됩니다. 이렇게 이겨나가면서 마음을 무방비 상태로 내버려 두는 게 아니라 즉각 처치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가라지가 떨어졌을 때 빗자루로 쓸어내는 것이 쉬울까요? 아니면 한참 자라게 내버려 둔 다음에 캐내는 것이 쉬울까요? 잘라내도 뿌리가 있어서 계속 자랍니다. 그것을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마음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선한 의지가 우위의 상태에 있어야 됩니다. 그 선한 의지를 격려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해야 됩니다. 불행하게 되는 것이 마음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릴 때 자기가 와르르 무너지게 됩니다.
네 번째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새로워질 수 있는 수단들을 활용해야 됩니다. 문제는 마음을 내버려 두면 수단을 사용하면 되는 데 수단에 가까이 가는 것도 싫어집니다. 그게 우리의 마음을 죄로 사로잡아오는 방법입니다. 신앙적으로 상태가 나쁘면 신앙적으로 올바로 얘기해 주는 지체들과 만나기가 싫어지는 것입니다. 자기하고 비슷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과 만나면 만날수록 불평하고 불만하며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사람들을 혼란 속으로 데려가게 됩니다. 교회에서 수많은 경험을 통해 볼 때 이것은 정확하게 사실입니다. 상태가 매우 안 좋은 사람들끼리 만나서 합력하여 악을 이룹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이 일을 위해 성실하게 힘써야 됩니다. 성화에 있어서의 태도는 일체의 부지런함과 신실함으로 diligency and sincerity 부지런히 이 일을 계속합니다. 나는 이런 것들을 이제 모두 극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신자가 마음의 작은 동작에도 유의하는 것입니다. 이 문장은 외우십시오. 스마트폰에 기록을 해놓고 항상 보이게 해서 외우십시오. 짤막짤막한 기도로 자신의 마음에 통제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자신이 행복해 지는 비결입니다.
2. 마음을 지킨다는 것의 첫 번째 의미는 ‘신자가 마음의 작은 동작에도 유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주의 깊게 행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98-105)
하나님이 우리에게 굳센 신앙의 강인함을 주시는 방법과 죄가 자신을 견고하게 하는 방법이 똑같습니다. 저도 어디서 들은 이야기인데 요즘 보면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파일 하나가 120미터 쯤 됩니다. 그 파일 위로 이 산과 저 산 사이를 잇는 고속도로가 지나갑니다. 어떻게 그것을 건설하는지 그 방법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콘크리트를 부어서 자동차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한 파일을 만들어서 그것을 박습니다. 여기까지는 길이 났을 것 아니겠습니까? 놀랍게도 여기에 아주 특수한 트럭이 올라갑니다. 트럭이 여기까지 올라가서 이렇게 되어있는 커다란 콘크리트 바가 자동차 속에서 나와서 이리로 가는 것입니다. 여기를 놓으면 여기까지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간 다음에 다시 장착을 해서 그 다음 것을 여기다가 놓습니다. 밑에 구조물 없이 이것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사람들이 가서 기계를 이용해서 두개 사이를 조인트로 탄탄하게 이어 붙입니다. 한 번에 어느 정도의 차량이 지나갈 때의 무게와 하중을 구조 역학적으로 계산을 해서 문제가 없게끔 일을 처리합니다. 옛날에 사람이 오르내릴 수 없는 계곡 같은 곳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만들까요? 누가 책에서 얘기를 하는데 활을 쏜다고 합니다. 가느다란 가벼운 화살을 쏴서 멀리 날아가게 합니다. 고구려 시대 때 이미 450미터 가까운 화살의 비거리 기록이 나옵니다. 엄청나게 먼 거리를 가느다란 실을 따라 가면 반대쪽에 있는 사람이 낚싯줄 같은 가느다란 줄을 잡아당기고 그 위에 좀 더 굵은 밧줄 위에 철근작업을 하면서 양쪽에 다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죄가 들어올 때도 똑같습니다. 죄는 우리의 마음에 작은 동작을 타고 그것을 계속 이용해 죄를 흘려보내면서 어느 방향으로 그 사람이 가게끔 계속 만듭니다. 이것이 어느 정도 강화되면 모든 것을 해석할 때 그 방향으로 해석을 하게 됩니다. 누가 저 인간 너무 싫다. 하고 생각이 들어오면 그 다음에는 그 사람이 먹는 것, 그 사람 곁에 가면 나는 냄새, 하는 짓, 말하는 것 , 얼굴표정, 눈동자 모든 것이 싫어집니다. 그러다가 어떤 사건이 생기면 기가 막히게 여태까지의 경험을 이용해서 해석을 해서 사람을 미워하는 것들이 폭발하게끔 만듭니다. 그러므로 작은 동작에도 유의해야지만 우리가 더 큰 손실을 안 보게 되는 것입니다.
충격적이고 엄청나게 자극적인 죄에 대해서는 그것을 좋아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바닥까지 내려가서 죄의 지배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대부분은 너무 끔찍하고 충격적인 죄들을 어떤 의미에서는 끔찍해 하고 싫어하고 그런 소리를 듣는 것 자체도 거부감을 갖습니다. 그러나 작은 것을 허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너그럽고 익숙해져 있습니다. 같은 곳을 계속해서 때릴 때 빗방울에 바위가 패이듯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2).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이런 것이 계속 발전해서 결국은 살인과 같은 마음을 인간에게 가져다주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눈앞에 있는 것 말고 결과를 미리 보는 게 바로 명철이고 총명입니다. 이것이 바로 재산입니다.
생각에 대한 두 전제는 신자의 마음이라도 반드시 불경건한 생각에 공격을 받지 않겠습니까? 불경건한 것이 무슨 살인이나 끔찍한 성적인 범죄 같은 극단적인 것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옳지 않은 것 예를 들어서 세속적인 것에 빠지고 그런 것이 불경건한 것입니다. 그런 거에 공격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생각이 이런 식으로 점령될 때 야기될 수 있는 결과를 미리 아는 통찰력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씀의 빛이 필요합니다. 그냥 말씀의 빛이 비추는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말씀의 빛을 사용할 때 이런 것들에 대한 통찰이 생기는 것입니다. 성경을 베고 잔다고 해서 거기에서 신기한 빛이 나오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는다고 해서 항상 은혜를 받고 마음이 그것을 받아들입니까? 아닙니다. 마음을 사용해서 감찰을 할 때 성화를 가져오고 죄를 아는 지식을 가져옵니다. 죄를 아는 지식은 정확하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자기를 아는 지식과 정확하게 비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자신의 마음이 원래 여기 있었는데 이것을 바깥으로 뚝 때어서 이게 맞는 마음인가 보는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마음과 현재 자신의 마음이 워낙 똑같지 않아서 괴로운 것이 회개입니다. 그게 고통이고 하나님 앞에 그것을 뉘우치고 다시 예수님의 피로 깨끗하게 될 때 그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결국 마음 때문에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내가 무지하게 많은 죄를 저질렀습니다. 완벽한 기억상실에 걸렸다면 회개가 가능하겠습니까? 의식이 없는데 불가능합니다. 양심이 작동하지 않는데 어떻게 회개하겠습니까? 물론 괴롭기야 하겠지만 회개할 수는 없습니다. 언제 치매가 올지 모릅니다. 치매 오기 전에 회개하고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회개하는 것도 특권입니다. 치매 걸리면 소용없습니다.
3. 마음의 움직임은 항상 어떤 생각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신자는 마음에 오가는 생각으로부터 자신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106-108)
이것이 청교도들이 가졌던 위대한 통찰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마음에 자리를 잡기 전에 생각이라는 기능을 통과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애들도 가만히 보면 어디서 무엇을 보거나 혹은 생각을 가져서 이것을 너무 사고 싶으면 기를 쓰고 사생결단을 해서 사달라고 조릅니다. 심지어는 몰래 알바를 해서라도 사고야 맙니다. 그것이 생각이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십 만 개의 생각이 하루에 지나간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 수치를 쟀는지는 모르겠는데 뇌파 같은 것을 이용해서 쟀을 것입니다. 십 만 개의 생각이 하루에 지나가는데 그 중에 대부분은 무의식에서 지나가는 것이고 의식할 수 있는 것들도 대충 세어 봐도 진짜 많은 생각들이 아침부터 지나갑니다. 어떤 것들은 길게 몇 시간씩 지나가기도 하고 어떤 것은 픽하고 빠르게 지나가기도 합니다. 다섯 살 때쯤 친구들하고 얼음을 지치던 생각이 뜬금없이 흑백사진으로 휙 하고 지나갑니다. 수많은 생각이 지나가는 데 도덕과 상관이 없는 생각이 지나갈 때는 마음이 산란할 뿐인데 도덕과 관계될 때에는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생각들이 마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마음 안에서 생각이 재생이 되는 것입니다. 성품이 많이 성화되어 선한 사람은 대체로 선한 생각을 할 때 즐겁습니다. 그런데 악한 사람은 악한 것을 생각할 때 너무 즐겁습니다. 비관적인 사람은 낙관적인 얘기를 들을 때 너무 힘듭니다. 비관적인 사람은 비관적인 얘기를 들어야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합니다. 마음이 변화되는 것과 생각이 움직이는 것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여기는 안 나오지만 정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침침한 것을 싫어합니다. 제가 회심하고 일어나는 변화인데 회심하기 전에는 컴컴한 곳을 좋아했는데 회심하고 나니까 햇빛이 쫙 들어오는 밝은 곳이 좋습니다. 요즘은 대개 지하에 음식점들이 있으니까 햇빛은 안 들어오고 전기 불빛으로 비치지만 전기 불빛이라도 환한 것이 좋습니다. 우리교회 보면 너무 환하지 않습니까? 빛 가운데서 못 살면 전깃불 아래서라도 살아야지 되겠습니다.
생각을 객관적으로 대할 수 있어야 됩니다. 복잡한 그림이 나옵니다. 사물을 보고 스쳐가는 생각들이 있고 매개체 없이 스쳐가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상상입니다. 인간의 머리는 놀랍게도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 창조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에게만 있는 아주 독특한 능력입니다. 애들이 글짓기 연습시킬 때 어떻게 시키는지 아십니까? 어린 아이 두신 부모님들은 가서 제가 하라는 대로 해보십시오. 제가 글을 좀 쓰지 않습니까? 애들에게 뭐를 쓰라고 하거나 누구를 따라하라고 하지 말고 자신이 생각나는 단어를 마음대로 적어 보라고 해 보십시오. ‘꽃, 구름, 송곳, 얼음, 칼, 불, 마약’ 등을 막 적는 것입니다. 애들 입에서 항상 ‘꽃, 풀, 새’ 이런 것만 나오기를 바랍니까? 그런 것을 생각하는 자체가 이상한 것입니다. 그런 것을 놓고 ‘네가 막 적은 단어가 네가 생각나서 쓴 것이잖아? 네가 왜 꽃을 생각하다 갑자기 송곳이 생각났는지 한번 말해봐.’ 그러면 애들이 말을 합니다. ‘엄마. 꽃이 있는데 이 꽃이 내 생각에는 마리아 릴케를 죽게 만든 장미꽃이야. 그 가시는 송곳 같았어. 그래서 죽었어.’ 그러고 아이가 설명을 합니다. 그 다음에 차이코프스키가 나옵니다. ‘차이코프스키도 죽었어.’ ‘왜?’ ‘자살을 했어.’ 이렇게 하나하나를 연결시키는 것을 훈련시킬 때 애들이 사물을 보면서 사람들이 익숙해진 사물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창조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창조적으로 떠올랐지만 마음속에서 이것을 좋아하는 것이 있을 때 백업을 받으면서 생각이 계속 돕니다. 음식을 앞에 갖다 놨는데도 계속 그 집 음식이 생각이 납니다. 그것을 먹었더라면 더 맛이 있을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똑같은 갈비탕인데 그 집에 가서 먹었어야 되는데 라는 생각들이 계속 도는 것입니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생각이 떠오르는 데는 거기에 목표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착상입니다. 아기의 씨를 받아 자궁에 수정란이 되어서 아이가 착상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붙으면 그 속에서 생명을 빨아들이면서 성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의 목표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라고 합니다. 죄가 잉태해서 성장하고 때가 되면 출산을 합니다. 그 다음에는 이 죄가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됩니다. 스쳐가는 생각에 대한 처방은 객관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바라볼 수 있어야 됩니다. 착상되기 전에 악한 생각을 도려내야 됩니다. 훌륭한 것은 하나님 앞에 간절한 기도입니다. 그 다음에 털어 버리는 것입니다. stop thinking. 더 이상 생각하기를 의지적으로 끊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안 끊어 질 때에는 벌써 그것을 굉장히 많이 착상된 상태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언젠가는 마음을 비집고 들어와서 자리를 잡습니다. 그것을 경계해야 되는 것입니다.
2002년도에 이 내용을 설교를 했는데 미리 연구한 것은 아니고 목회를 하면서 자신의 성화를 고민을 하다가 마음공부를 했습니다. 그때가 벌써 17년 전이니까 지금은 마음에 대해서 그 때보다는 훨씬 발전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것을 다 공부하고 설교를 하고 책을 내면서 나 자신이 대부분의 시간들을 짐승처럼 살 때가 많았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마음으로부터 그렇게 고난을 겪으면서도 우리는 마음에 대해서 잘 공부하지 않습니다. 수없이 화살이 날라 오고 터지고 하면서 피가 나는데 적이 어디에 숨어있는지를 살피려고 하지 않습니다.
착상된 이후에는 도려내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피를 흘리는 싸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기서는 손을 움직이는 싸움이 필요하다면 좀 더 진전되면 땀을 흘리는 싸움이 필요하고 그 다음에 여기서는 피를 흘려도 잘 안 되는 싸움이 이루어집니다.
4. 마음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은 대개 보는 것을 통하여 발생합니다. 보는 것을 통한 자극은 생각들이 마음에 뿌리를 내리도록 돕습니다. 보는 것으로부터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109-111)
보는 것을 통한 자극은 벌써 좋은 의미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의미의 것이면 사라지지 않도록 꼭 끌어안고 붙들어야 되지만 그 반대의 의미입니다. 그런 환경에 자기를 방치하지 말아야 됩니다. 시각을 통해서 들어옵니다.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이 모든 것 중에서 압도적으로 강한 호소력을 갖는 것이 시각입니다. 시각이 주는 효과를 다른 것들이 따라올 수 없다는 것을 어거스틴도 인정을 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이 이제는 음악을 해도 CD가 안 팔립니다. 이 전에는 탁월한 음악성을 가지면 CD가 엄청나게 팔렸습니다. 그 다음에는 오디오 쪽으로도 계속 발전을 하지만 비디오 쪽으로 훨씬 더 발전을 하였습니다. 그 발전의 속도를 오디오는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오디오는 조금씩 조금 씩 발전을 하고 조금 발전하는데 투자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듭니다. 그런데 비디오는 시장이 어마어마하게 크기 때문에 많이 투자해도 1/n로 따지면 투자비가 얼마 안 드는 것입니다. 옛날처럼 목소리 좋은 것 가지고 이제는 가수를 못합니다. 예뻐야 됩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아이돌 가수 중에 머슴처럼 생긴 애들을 상상합니까? 남자애들도 여자애들같이 50킬로도 될까 말까 해서 닭 가슴살 하나하고 시리얼 하나 먹고 하루 종일 버티게끔 만듭니다. 우리는 그런 비인간적인 것에 항거해야 합니다.
어쨌든 시각적인 것들을 통해서 자극을 받습니다. 생각이 유입됩니다. 유입된 생각이 다시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악한 것일 경우 마음에 착상이 되고 마지막에 행동으로 나오고 싶고 행동으로 계속 되서 이것이 습관으로 가고 습관이 계속 돼서 이 사람의 인격을 형성해서 이것이 맴돌이가 되어서 그냥 내버려 둬도 계속해서 죄악 되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만들려는 것이 죄의 원대한 계획입니다. 참된 신자들의 사고방식은 그런 행위가 죄인가 아닌가를 행동에만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까지 규정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보는 것이 내 마음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까를 생각합니다. 요새는 이메일도 잘 안 하는데 한창 독자들하고 이메일을 할 때 누가 책을 읽고 은혜를 받았다고 친절하게 이메일에 적고 목사님에게 들려드리고 싶은 좋은 노래가 있다고 추천했는데 들어보니까 영화 러브 어페어(Love Affair, 1994)의 주제가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노래는 안 듣습니다.’라고 답장을 했습니다. 이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형언할 수 없이 낭만적이라고만 말할 수 없고 사람을 빨려 들어가게 만드는 뭐가 있습니다. 그런 것은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음악을 들을 때에도 그 음악이 나에게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지 생각하면서 바람직한 음악을 들어야 됩니다. 그렇다고 꼭 찬송만 들으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신자의 영성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에 일어나는 작은 변화를 지켜보고 움직임이 마음 전체와 영혼 실제의 삶에 줄 영향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5.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을 통해서도 여러 생각이 떠오릅니다. 말하고 듣는 것으로부터 합당하지 않는 생각이 유발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111-114)
입과 귀를 조심하고 생각의 변화를 깊이 반성해야 됩니다. 죄악 된 이야기들을 듣고 생각이 유입되고 말을 통해 생각이 확정되고 착상되고 죄악 된 행동을 만들어 냅니다. 아까 말한 대로 행동의 연결이 습관이 되고 이것이 인격이 되고 인격이 다시 생각을 지배하는 구도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6. 마음을 지킨다는 것의 두 번째 의미는 ‘더러운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마음에 떠오르는 더러운 생각을 버리기 위한 방법 두 가지는 무엇입니까?(119-131)
첫 번째 생각을 떨쳐 버리기가 제일 쉽습니다. 두 번째로 의지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존 오웬(John Owen, 1616-1683)은 성화에 관한한 하나님께서는 거룩해지고자 하는 성도들을 거룩하게 하신다. 빌립보서는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2-13). 의지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첫 생각을 떨쳐 버리고 그것에 대항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이 바람직한 것입니다.